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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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업소는 1950년 김일성이 공장터를 잡아서 1958년 체코 슬로바키아의 지원으로 건설되어 1959년 덕천 자동차 공장으로 시작되었으며 1959년 10만m2 로 자주호 생산을 조업하기 시작하여 1차 7개년 계획(1961년 ~ 1970년)과 6개년 계획 기간(1971년 ~ 1976년)에 확장 공사를 하였다.

1971년 설비확장을 적극 추진하여 1972년에는 규격품 공장과 수지 공장, 고무 공장, 혁장분 공장, 청정기 공장, 분사기 공장, 휴대용 공구 공장, 9개 공장을 완성하였으며 1973년에는 적재함 공장과 40여개의 가공 라인 중 자동 가공 라인과 반자동 가공 라인으로 개조하였다.

1974년에는 화물 자동차를 생산하였으며 화물자동차용 제1공장과 제2공장, 제3공장이 확장되고 1975년에는 500여대의 만능 설비와 20여개의 자동 가공 라인을 실천하는등 자동차 구조물 생산의 가공과 생산 속도를 2배 ~ 3배로 늘리는데 집중 성공을 하였다.

1980년대에 2단계 계획을 확장하여 확장 공사를 하였는데 공장은 승리 자동차 종합 기업소로 개칭 되고 연건축 면적은 10만m2의 확장과 30여개의 새로운 생산 건물을 건설하는 확장 공사를 완료 하였다.

13개의 단일 공장과 30여 개의 생산 건물이 들어서는 북한 최대의 자동차 기업으로 발전을 하였고 전체 생산 능력이 두배로 발전함과 동시에 트럭인 자주 64호의 생산 능력이 7배로 증대 되었다고 주장을 하였다.

또한 확장 공사의 결과로 자동차 생산의 필요한 모든 부속품들을 자체로 생산할수 있도록 확장이 완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과정에서 소련과 동구권으로부터 탠덤 프레스와 열처리 공정 그리고 규격품 가열 소재 공정에도 로보트를 채용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기관 공장, 제관 종합 공장, 총 조립 공장, 주물 종합 공장의 건설이 확장공사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2001년에는 주물 종합 공장은 주강 직장의 컴퓨터화가 이루어져 통합 생산 체계가 구축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고 특히 주물 조형선에 의한 원격 조종 방식의 조형선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수가 있다.[1]

그리고 2009년에 김정일이 현지 지도를 올때 CNC화의 초석을 담으라고 지시를 내린 후 결국 승리 자동차 종합 기업소는 결국 2010년 부터 구성 공작기계 종합 공장의 CNC화가 이루어져 있음을 알수가 있다.

북한은 2010년 기관 본체 가공 흐름선의 현대적으로 개건이 완료된 이후 조립 흐름선과 함께 교체가 되어 있음을 알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북한은 2011년 개건 목표가 1만 대 정도를 목표로 잡았음을 알수가 있고 이때 2010년대에는 덕중 자동자 합작 회사를 설립하여 총 조립 직장을 합작 회사 분공장으로 인수를 도와주었음을 알수가 있었다.

북한은 2017년 11월 김정은이 현지지도를 올때 부분적인 현대화 개건을 목표로 삼아서 개건을 목표하라고 명령을 내린뒤 전격적으로 공사가 시작이 되어 있음을 알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북한은 현재 컨베이어 체계로 총 조립 직장이 일부 구성이 되어 있고 특히 박봉주 (1939년) 총리가 현지지도를 갔을때 많은 직원들에게 료해를 하였음을 알수가 있었다.

승리 58호

차량 생산 종류[편집]

  • 승리 58호
  • 자주호
  • 금수산호
  • 투쟁호
  • 승리 1010호
  • 승리산호
  • 건설호
  • 승리-415호
  • 백두산호
  • 갱생호

각주[편집]

  1. 이석기, 심완섭, 김창모, 빙현지, 이승엽 (2014년 12월). 《북한의 기업》. 산업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