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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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 셔블

불도저 혁명은 2000년 10월 5일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일어난 민중 봉기이다. 이 시민혁명으로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제3대 대통령이 쫓겨났다.

역사[편집]

분노한 시위대가 중장비 차량인 트랙터 셔블을 앞세워 국영방송사로 밀고 들어갔다. 그래서 불도저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1]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이론물리학 학사 출신인 1975년생 부크 예레미치(en:Vuk Jeremić)가 불도저 혁명을 이끌었다. 이후에 세르비아 외무장관이 되었으며, 2016년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올랐다.[2]

2000년 9월 19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유고연방 대통령 선거와 관련,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통해 당선된다면 세계는 그의 지위를 무효화시켜 야당세력이 그의 정권을 무너뜨리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3]

2000년 9월 24일,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13년간 장기집권한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패배하고, 야당후보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가 당선될 것이 예측되었다. 과반수를 득표하는 후보가 없을 경우 10월 8일에 결선투표가 치러진다.[4]

2000년 9월 26일, 선관위는 국영 TV를 통해 대선 1차 투표에서 코스투니차 후보가 48.2%를 얻어 40.2%를 얻는데 그친 밀로셰비치 대통령에 앞섰지만 "조만간 2차 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야당 DOS는 자체 집계를 토대로 코스투니차 후보가 54.6%를 얻어 35%를 얻은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여유있게 누르고 1차 투표에서 당선이 확정됐다고 선언한 상태다.[5]

2000년 9월 26일, 미군, 크로아티아군, 영국군은 크로아티아 앞바다에서 '유고 압박용'으로 분석되는 대규모 상륙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나 발칸 전쟁 당시 유고의 입장을 지지했던 러시아와 그리스는 이번에도 유고를 지지하고 있다.[6]

2000년 10월 5일, 수십만명의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을 점령한데 이어 법원과 군부, 서방과 러시아 등 각계 각층의 지지의사를 표명했다.[7]

2000년 10월 10일, 대선 공식 결과가 수정 발표되었다. 야당후보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50.24%로 과반득표를 하여 결선투표가 필요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체노워스 법칙[편집]

에리카 체노워스 미국 덴버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가 2012년 시민 저항 운동이 통하는 이유(Why Civil Resistance Works)라는 저서에서, 불도저 혁명처럼, 전체 인구의 3.5%가 비폭력 시위에 나서면 정권이 버틸 수 없다고 주장했다.[8]

불도저 혁명에 참여한 비폭력 저항 운동 단체 '오트포르!(otpor!)'의 리더였던 스르자 포포비치가 쓴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박찬원 옮김, 문학동네 펴냄)에서는 유머와 재기발랄한 저항이 정부를 무너뜨리는 힘이라고 강조한다.[9]

밀로셰비치 사망[편집]

2001년 4월 1일, 밀로셰비치 자택에서 총기로 무장한 경호원들과 경찰간에 36시간 동안 대치한 끝에, 밀로셰비치가 직권남용과 부정부패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는 거부하면 IMF세계은행의 금융지원이 없을 것이라면서, 밀로셰비치를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로 이송하라고 압박했다. 밀로셰비치는 코소보에서 인종 청소라는 미명하에 170만 명의 알바니아계 주민 중 85만 명을 살해하거나 몰아내 '발칸의 학살자'로 불린다.[10]

2001년 6월 28일, 밀로셰비치가 유엔의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로 인도되었다.[11]

2005년 8월 1일, 밀로셰비치가 네덜란드 헤이그의 유엔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에서 최소 2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으면, 러시아에서 형집행을 하기로 미국, 영국, 러시아가 합의했다. 현재 밀로셰비치의 부인, 친형, 아들이 러시아에 살고 있다.[12] 유고 내전에서 밀로셰비치는 러시아군의 지원하에 미군과 싸웠다.

2006년 3월 11일, 20여만 명이 목숨을 잃은 보스니아 전쟁의 핵심 전범인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64)이 재판을 받다가 고혈압으로 사망했다. 감옥의 침대에서 죽은채로 발견되었다. 역시 인종청소를 주도한 혐의로 네덜란드 헤이그 유엔 감옥에 함께 수감중이던 최측근 밀란 바비치가 지난 5일 자살한 이후 6일만이다. 밀로셰비치의 변호인들은 독살설을 주장했다.[13] 밀로셰비치는 권오곤 재판관이 소속된 3인의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아 왔다.[14]

2006년 3월 12일, 네덜란드 공영방송 NOS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자문관 말을 인용해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 사이 채취된 밀로셰비치 혈액에서 한센병이나 결핵환자 치료에 사용되는 항생제 리파마이신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리파마이신은 밀로셰비치가 복용하던 고혈압 치료제를 무력화시킨다.[15]

2006년 3월 15일, 아버지가 살해되었다고 아들인 마르코 밀로셰비치가 말했다.[16] 세르비아의 한 시민은 "재판소가 그를 3년간 투옥하면서 그를 동물처럼 다뤘고 의사의 진료도 받지 못하게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17]

각주[편집]

  1. [나는 역사다] 10월5일의 사람, 민중봉기로 실각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1941~2006), 한겨레, 2016-10-04
  2. ‘미국 vs 중국·러시아 대리전’ 차기 유엔총장… 제3후보 부상, 서울신문, 2016-09-27
  3. 클린턴 "밀로셰비치 부정선거하면 정권타도 지원", 연합뉴스, 2000-09-20
  4. 밀로셰비치 유고대통령, 선거서 야권후보에 패배 가능성, 한국경제, 2000-09-25
  5. 밀로셰비치 퇴진압력 일축..결선투표 강행(3보), 연합뉴스, 2000-09-27
  6. 유고 대선 국제사회 '편가르기'…美-서유럽 야당측 지지, 동아일보, 2000-09-28
  7. 밀로셰비치, 패배 인정, 연합뉴스, 2000-10-07
  8. 인구 3.5% 뭉치면 퇴진… ‘체노워스 법칙’ 한국서도 통했다, 한국경제, 2016-11-29
  9. 매직 넘버 3.5%보다 '비폭력'이 중요하다, 프레시안, 2016-12-02
  10. "카다피, 밀로셰비치 전철 밟을 것 체포영장 발부 전 출구 찾아야", 중앙SUNDAY, 2011.05.14
  11. <연합시론> 밀로셰비치 재판 회부의 역사적 의미, 연합뉴스, 2001-06-29
  12. 밀로셰비치, 러시아 감옥에 수감될듯, 연합뉴스, 2005-08-01
  13. 유고내전 때 인공청소로 재판받던… 밀로셰비치 감옥서 사망, 국민일보, 2006-03-12
  14. [초대석]국제유고전범재판소 권오곤 재판관, 동아일보, 2006.04.26
  15. “심장마비냐 독살이냐”…밀로셰비치 사인 논란 일어, 쿠키뉴스, 2006-03-13
  16. 밀로셰비치 아들 "아버지 살해됐다", YTN, 2006-03-15
  17. 밀로셰비치 사망 각국 반응, 연합뉴스, 2006-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