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호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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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호(1927년 5월 6일 ~ 2016년 7월 16일)는 대한민국의 가수로, 본명은 손효찬(孫孝贊)이다.

영화녹음기사로 1950년대에서 ~ 1980년대 초까지 한양녹음실(당시 대표이사 이경순 실장)에서 대표기사로 활동했다.

생애[편집]

1927년 평안북도 창성 출생으로, 어릴 적 수풍댐 건설로 고향이 물에 잠기자 만주국 신징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해방 후 귀국하였으며, 1946년 관서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심사위원의 권유로 월남하였다. 이어 KPK 악단에서 가수생활을 했고, 한국 전쟁를 전후해 녹음기사로 전업하였다. 그러다가 1954년 작곡가 박시춘에게 <나는 울었네>, <숨쉬는 거리> 두 곡을 받아 취입, 크게 히트시켰다.

이후 그는 신세기레코드를 거쳐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비 내리는 호남선>을 발표하였고, 계속 <울어라 키타줄 > <사랑찾아 칠백리>, <하룻밤 풋사랑>, <이별의 성당고개> 등을 히트시켰다. 1957년 말에 도미도레코드로 이전, <한많은 대동강>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이별의 부산항>, <청춘등대>, <향수의 블루스>, <동백 꽃일기> <남원땅에 잠들었네>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었고, 빅토리레코드에서 <해운대 엘레지>를 발표하여 크게 히트시켰다.1960년대 중반까지도 <돌아가자 남해 고향>, <한 많은 명사십리> 등을 취입하여 히트시켰다.

가수로 정식 데뷔하기 전인 영화 녹음 기사 시절에는 나화랑의 <함경도 사나이>가 최초의 취입곡으로 뒤늦게 밝혀진 바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영화녹음작업을 했으며, 원로가수거목회, 만나리, 뿌리회 등 가수친목회에서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2013년까지 계속 가요무대에 출연했다(서울 종로구 명륜1가에서 20년 거주 이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선릉부근에서 40년 살다 별세.).

이후 노환에 따른 간경화로 투병해 오다가 2016년 7월 16일 새벽 6시 40분경 상태가 나빠져 향년 89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으며, 7월 20일 경기도 통일동산 부근 동화 경모공원(이북5도민 묘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