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호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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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호
孫仁鎬
기본 정보
본명손효찬(孫孝贊)
출생1927년 5월 6일
일본제국령 조선 평안북도 창성군 (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창성군)
사망2016년 7월 16일 (89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1]
국적일본제국령 조선(1927~1945), 소련 민정청(1945~1946), 북인위(1946), 미군정 한국(1946~1948), 대한민국(1948~2013)
직업가수
장르트로트
활동 시기1950년대~1980년대
종교개신교(장로회)
소속사한양녹음실

손인호(본명손효찬, 1927년 5월 6일 ~ 2016년 7월 16일)는 대한민국트로트 가수로, 종교는 개신교(장로회)이다.

영화녹음기사로 195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한양녹음실에서 대표기사로 활동했다.

생애[편집]

1927년 일본제국령 조선 평안북도 창성군 (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 날 한때 평안북도 벽동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훗날 수풍댐 건설로 인하여 고향이 에 잠기자 1938년만주국 신징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해방 후 귀국하였으며, 1946년 관서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심사위원의 권유로 인하여 월남하였다. 이어 KPK 악단에서 가수 생활을 했고, 한국 전쟁 체제를 전후해 녹음기사로 전업하였다. 그러다가 1954년 작곡가 박시춘에게 <나는 울었네>, <숨쉬는 거리> 두 곡을 받아 취입, 크게 히트시켰다.

이후 그는 "신세기 레코드"를 거쳐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비 내리는 호남선>을 발표하였고, 계속 <울어라 키타줄>, <사랑찾아 칠백리>, <하룻밤 풋사랑>, <이별의 성당고개> 등을 히트시켰다. 1957년 말에 도미도레코드로 이전, <한많은 대동강>,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이별의 부산항>, <청춘등대>, <향수의 블루스>, <동백 꽃일기>, <남원땅에 잠들었네>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었고, 빅토리레코드에서 <해운대 엘레지>를 발표하여 크게 히트시켰다. 1960년대 중반까지도 <돌아가자 남해 고향>, <한 많은 명사십리> 등을 취입하여 히트시켰다.

가수로 정식 데뷔하기 전인 영화녹음기사 시절에는 나화랑의 <함경도 사나이>가 최초의 취입곡으로 뒤늦게 밝혀진 바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영화녹음 작업을 했으며, 원로가수거목회, 만나리, 뿌리회 등 가수친목회에서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2013년까지 계속 가요무대에 출연했다.[2]

이후 노환에 따른 간경화로 투병해 오다가 2016년 7월 16일 새벽 6시 40분경 상태가 나빠져 결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향년 89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으며[1], 7월 20일 경기도 통일동산 부근 동 경모공원(이북5도민 묘원)에 안장되었다.

각주[편집]

  1. 이은정 (2016년 7월 16일). '비나리는 호남선' 원로가수 손인호 씨 별세(종합2보)”. 2020년 6월 3일에 확인함. 
  2. 서울 종로구 명륜1가에서 20년 거주 이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선릉부근에서 40년 살다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