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체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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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론(世界體制論, World System Theory) 또는 세계체제이론은 세계를 하나의 사회체제로 파악하여 중심부와 주변부의 비대칭적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1970년대 중반 뉴욕주립대학 교수인 이매뉴얼 모리스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이 주창하였다.

세계체제론 등장 이전[편집]

페르낭 브로델[편집]

브로델의 주요한 관심은 랑케 사관에 대한 반발에서부터 시작된다. 랑케 사관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객관주의 사관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브로델은 이 사관을 비판하며 역사는 연구자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는 E. H. 카의 사관과 유사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는 역사가가 할 일은 진정으로 역사에서 의미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려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브로델 이론의 주요한 개념인 ‘전체사’와 ‘문제사’로서의 역사가 중요하게 등장하게 된다.

‘전체사’란 역사의 대상을 분과학문 중심의 영역별로 분할하여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사회를 하나의 체제로 파악하고 그 전체를 서술해야 한다는 브로델의 주장이 담긴 개념이다. 정치사와 경제사 등의 분과 역사가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분리되어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히 실제로는 하나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제사’는 역사가 결코 사건의 내러티브적 서술이 아니라는 브로델의 주장을 담은 개념이다.[출처 필요] 즉, 역사를 어떻게 탐구하느냐에 따라 역사를 재구성해서 쓰게 된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역사가 자신은 자신의 문제설정이 역사의 서술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주지해야한다고 브로델은 주장했다.

‘시간’개념[편집]

브로델은 역사의 지속 시간대를 네 종류로 나누는데, 그 길이가 가장 긴 초장기지속(très longue durée), 중세나 근대와 같은 장기지속(longue durée), 연계된 사건들의 유기적 집합인 콩종튀르(conjoncture), 그리고 사건의 시간대가 그것이다. 브로델은 이 4가지 시간 개념이 역사 속에서 중첩되어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통해 역사의 편년체(編年體)적 서술을 비판하고 역사학자는 역사를 연구할 때에 이와 같은 복잡한 시간관을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역사학자가 주목해야 할 시간대는 장기지속과 콩종튀르라고 말했다. 이는 이후 조반니 아리기의 헤게모니 분석과 ‘장기세기’개념 도입에 영향을 끼쳤다.

삼층도식[편집]

삼층도식은 브로델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프랑스어: Civilisation matérielle, économie et capitalisme)에서 자본주의의 이해를 위해 제시한 분석틀이다. 층도식적 분석방법 중 마르크스의 토대-상부구조라는 유물론적 이층도식이 있는데, 브로델의 삼층도식이 이를 발전시켜 분석한 것인가 혹은 브로델이 독립적으로 정립시킨 모델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브로델은 맨 아래에 ‘물질문명’이 있고, 그 위에‘시장경제’, 다시 그 위에‘자본주의’가 있다는 식으로 자본주의를 분석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아래에 있는 1, 2층을 억압하는 반시장(contre-marchè)으로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물질문명은 의식주 문화와 같은 것이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고, 장시간 변하지 않는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지역과 밀을 주식으로 삼는 지역에서 발달한 문명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통해 이해하면 쉽다.

시장경제는 매우 투명한 경제체제로써, 모든 정보가 공유되고 개방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일정량 이상의 이윤을 축적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재래시장에서 거래되는 물품은 양측이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는 아니다. 이와 같이 등가교환만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완전경쟁시장을 브로델은 시장경제라고 칭했다.

자본주의는 반시장으로서의 독점이다.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결코 완벽한 정보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따라서 완전경쟁이 일어날 수 없다. 브로델은 이 근거로, 자본주의는 이윤의 축적이 바탕인데, 독점 상태가 아니고서는 이윤이 일정량 이상으로 축적될 수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반시장적 요소를 가진 억압적 질서라는 명제를 내세운다. 브로델은 상업자본주의를 분석하면서 중세의 상업자본주의가 가능했던 것이 국가가 인정한 소수의 상인이 유통을 과점하는 과정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자유로운 형태변환이 가능해서, 유통과정에서 이윤이 더 이상 창출될 수 없는 경우에는 생산과정으로 옮겨가 산업자본주의와 같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칼 폴라니[편집]

폴라니는 그의 유명한 저서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에서 19세기 영국 헤게모니에 대한 분석을 감행함으로써 근대자본주의 비판가로 인정받는다. 폴라니의 관점이 제도주의 혹은 신제도주의로써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

19세기 영국 헤게모니 분석[편집]

폴라니는 19세기의 영국 헤게모니가 백년평화, 금본위제, 자기조정적 시장경제, 그리고 자유주의국가라는 네 가지 틀을 통해 유지되었다고 분석했다. 《거대한 전환》은 그 헤게모니가 20세기 초 들어 어떻게 위기에 빠지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백년평화는 세계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실제로 영국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100년간 유럽 내에서는 전면전이 없었다. 이전까지 백년 전쟁을 비롯한 갖가지 전면전으로 얼룩져왔던 유럽의 역사가 영국에 의해 정리된 것이다. 폴라니는 백년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영국의 힘이 영토제국주의와 강한 해군력, 그리고 금본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은 금본위제를 실시하면서 영국 파운드화를 국제결제 통화로 만들었다. 소위 기축통화가 된 것이다. 파운드화를 유일 태환권으로 만들면서 영국은 경제 헤게모니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본위제의 특성상 기축통화가 고정가치를 유지해야 안정적 국가간체계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통화주의적 경제정책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경제가 스스로 운용되는 상태를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써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기조정적 시장경제가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자기조정적 시장경제는 불황이 발생할 경우 구제정책을 활용할 수 없다는 맹점때문에 영국의 금본위제를 채택한 여러 국가들에서 결과적으로 자기조정적 시장경제가 위기를 양산하게 되고, 이를 제지하려는 사회의 반동이 나타나면서 영국 헤게모니는 근본적으로 붕괴의 시작점으로 돌입하게 된다는 것이 폴라니의 견해이다. 이 반동을 폴라니는 ‘이중운동’이라고 하는데, 이 이중운동이 제1차 세계대전 추축국들을 중심으로는 파시즘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고, 러시아의 경우에는 사회주의, 미국의 경우에는 뉴딜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 세 가지 이중운동 중에서 뉴딜이 점차 우위에 서게 됨으로써 비로소 20세기 미국 헤게모니의 토대가 형성된다고 폴라니는 주장한다.

용어 사용에 관한 논란[편집]

‘세계체제’라는 어휘가 해석될 때 World Regime으로 오역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오역을 막기 위해 ‘세계체제’보다는 ‘세계체계’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있다.[1]

주석[편집]

  1. 백승욱, 2006:17

같이보기[편집]

참고문헌[편집]

  • 백승욱. (2006). ≪자본주의 역사 강의≫. 서울:그린비. ISBN 89-7682-9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