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사와 진영

성산사와 진영
(星山祠와 眞影)
대한민국 고흥군향토문화재
종목향토문화재 제3호
(2019년 7월 23일 지정)
수량4점
소유성주이씨 무열공파종중
위치
고흥 한동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고흥 한동리
고흥 한동리
고흥 한동리(대한민국)
주소전라남도 고흥군 풍양면 한동리 231
좌표북위 34° 34′ 34″ 동경 127° 13′ 55″ / 북위 34.57611° 동경 127.23194°  / 34.57611; 127.23194

성산사와 진영(星山祠와 眞影)은 전라남도 고흥군 풍양면 한동리에 있다. 2019년 7월 23일 고흥군의 향토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1]

개요[편집]

성산사는 1824년(순조 24)~1826년 사이에 건립된 성산영당에서 그 단초가 열린 사우로 성산이씨(星山李氏) 명현선조인 경산부원군(京山府院君) 이장경(李長庚, 고려)외 6位를 배향하고 있다. 근래까지 정명원(鄭名遠, 1558~1593)도 함께 배향되어 있었으나 최근에는 성산이씨 만을 배향하고 있다.

성산이씨가 풍양 한동에 입향한 것은 임진왜란 이전으로 입향조는 이옥립(李玉立, 1541~1592)이다. 이옥립은 문경공(文景公) 직(稷)의 후예로 전주판관을 지낸 후 충북에서 고흥으로 이거하였다. 임진왜란 발발하자 이옥립은 창의하여 많은 공을 세우고 순절하여 충경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성산사 건립은 옥립의 후손인 이정윤(李廷允, 1754~?)이 경북 성주의 안산서원(安山書院)에서 이장경 등 6위의 영정을 가져 온데서 비롯된다. 건립을 주장한 사람은 후손인 이정윤, 이상영과 향교유생 신견록, 송두환 등 이었다. 그러나 건립연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현재 확인 할 수 있는 기록은 1824~1826년 당시 군수로 부임한 조경진에게 영당의 기문을 부탁하여 남겨진 <성산영당기(星山影堂記)>(1826년)이다.

성산사 내부에 진영이 모셔져 있다. 처음에 7위가 모셔졌다. 현재 3위는 도난당하여 없어지고 4위만 남아 전하고 있다. 진영은 모두 여말선초에 활동한 인물이다. 이 진영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림의 오른쪽 상단에 해당인물의 관직과 이름, 그리고 이모한 시기를 모두 기록해둔 점이다. 따라서 진영의 주인공이 누구이고, 몇 번째 이모본이며, 또한 최종 이모본이 제작된 시기에 대한 기초정보를 제공한다. 이모본이지만 모두 제작시기가 파악되는 기년작인 셈이다.

특히, 1746년의 <이조년상>의 의자에는 표범 가죽을 걸쳤는데, 표범 가죽의 머리가 답대(踏臺)의 중앙에 놓인 것은 18세기 사대부상에서 볼 수 있는 한 특징이다.[2]

지정 사유[편집]

성산사는 1764년에 창건되어 건축적 의미도 있지만, 성산사 내부에 보관된 진영(이모본) 4점의 가치가 크다, 향토문화재 지정 후 추가 조사가 필요한 중요한 유산으로 판단된다.

각주[편집]

  1. 고흥군공고 제2019-60호, 《향토문화재(유형) 지정》, 고흥군수, 2019-07-23
  2. 고흥군공고 제2019-55호, 《고흥군 향토문화재 지정예고》, 고흥군수, 2019-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