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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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봉(成封, ? ~ ?)은 후한 초기의 유학자이자 관료이다.

행적[편집]

장제는 시중(侍中) 정홍·광평왕태상 누망·소부 성봉·둔기교위 환욱·위사령 가규 등의 유학자들을 북궁의 백호관(白虎觀) 불러들여 《오경》에 대하여 논의하게 하였다. 질문은 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 위응을 통하여 내리고, 답변은 시중 순우공이 정리하여 올리게 하였는데, 정홍이 가장 명쾌하게 논하니 유학자들이 칭송하였다. 건초 연간의 일이었다.[1]

성봉이 소부에서 물러난 후, 정홍이 후임으로 임명되었다.[2]

출전[편집]

각주[편집]

  1. 《동관한기》·《후한서》에는 이 사건에 대한 시점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단, 위응이 오관중랑장에 임명된 시기가 건초 4년(79년)이고, 누망이 태상에서 면직된 시기가 건초 5년(80년)인 것으로 보아, 위응과 누망이 동시에 각 관직에 재임 중이었을 건초 4년·5년 중 한 해임이 확실하다.
  2. 시기는 알 수 없다. 단, 정홍이 소부로서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건초 6년(81년)이다.
전임
화양홍
후한소부
(건초 연간)
후임
정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