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약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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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연방궁의 "3인의 서약동맹"

서약동맹(誓約同盟, 독일어: Eidgenossenschaft 아이트게노센샤프트[*]), 약칭 서맹(誓盟)은 중세 독일어권에서 어떤 서약에 따라 뭉친 동맹체를 말한다. 그 구성원을 서약동지(독일어: Eidgenosse)라고 했다.

가장 유명한 서약동맹은 1307년 우리, 슈비츠, 운터발덴 3개 칸톤이 서약해 성립한 스위스 서약동맹이다. 현대의 스위스 연방도 "연방"으로 번역되는 원어가 Eidgenossenschaft이기 때문에, 정식 국호는 “스위스 서약동맹”이다. 오늘날에도 스위스 시민 중 이민자가 아닌 스위스 토박이를 예스러운 표현으로 “서약동지”라고 부른다.

스위스 서약동맹이 유일한 서맹은 아니었으며, 중세의 자치도시운동은 수많은 서약동맹들을 출현시켰다. 이런 서맹들은 당시 라틴어로 conjurationes, 또는 독일어로 도시동맹(Städtebünde)이라고 불렸다. 서로 떨어진 도시들 사이에 맺은 동맹이었기에 스위스에 비해 결속력이 약했고 국가로 발전하지도 못했지만, 동맹에 참여한 도시들의 지위가 서로 동등했다는 점에서 이런 동맹들도 서약동맹의 일종이다. 가장 유명한 도시동맹으로는 한자동맹이 있고, 그 밖에도 13-14세기에 롬바르디아 동맹, 부르군트 동맹 등 여러 도시동맹들이 존재했다.

신성로마황제 카를 4세1356년 금인칙서에서 온갖 conjurationes, confederationes, conspirationes 들을 모조리 불법화함에 따라 대부분의 도시동맹들은 해산되었고, 때로는 해산에 강제력이 동원되었다. 재건된 경우에도 그 영향력은 크게 감소했다. 룩셈부르크가 출신이었던 카를 4세가 경쟁 가문인 합스부르크가를 견제하는 데 스위스가 유용하리라 판단했기에 스위스 서약동맹은 국체를 보존할 수 있었다.

독일농민전쟁 시기 일미동심으로 뭉친 농민군도 서약동맹을 칭했는데, 대표적으로 12개조 정강을 발표한 상슈바벤 서약동맹(oberschwäbische Eidgenossenschaft)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