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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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군(上黨郡)은 중국의 옛 행정구역으로, 전국 시대부터 당나라까지 존속한 이다.

전국 시대[편집]

진나라의 상당군의 영역은 기존 삼진에 흩어져 있었다. 상당군이란 이름 자체는 한나라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1] 그러나 조 무령왕은 자국의 국경지대에 상당이 있다고 말했으며,[2] 이후 상당군의 속현이 되는 둔류(屯留)는 조나라와 한나라의 분쟁지역이었다. 조나라 숙후가 이곳으로 진나라 임금을 옮기기도 했고,[3] 한나라에서 이곳과 역시 상당군의 속현 열씨(涅氏)현으로 보이는 열(涅)을 뺏기도 했다.[4][5][6] 한나라의 상당군은 기원전 262년 한나라가 진나라에 야왕(野王)을 뺏기면서 본국과의 연결이 위태해지자 상당 풍정(馮亭)의 판단으로 조나라에 넘겨졌다. 이후 진나라와 조나라는 상당군을 두고 다투었고 기원전 260년 장평 전투에서 조나라가 대패하면서 진나라에 넘어갔다.[1]

전한[편집]

무제가 13주를 설치하면서 병주자사부에 속했다. 상당관(上黨關)·호구관(壺口關)·석형관(石硏關)·천정관(天井關)이 있다. 원시 2년(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7만 3798호, 33만 7766명을 관할했다.[7] 그 영역은 현대의 창즈 시진청 시·린펀 시·진중 시의 일부에 걸쳐 있었다. 아래의 속현 목록은 한서 지리지를 따른 것으로 원연·수화 지간(기원전 8년)의 현황으로 여겨지며, 총 14현을 관할했다.

현명 한자 대략적 위치 비고
장자현 長子縣 창즈시 장쯔 현 약간 서 군 치소가 있었다. 주나라의 사(史) 신갑(辛甲)의 봉지다. 녹곡산(鹿谷山)에서 탁수(濁水)가 나와 동으로 업(鄴)에 이르러 청장(淸漳)으로 들어간다.
둔류현[8] 屯留縣 창즈시 툰류 현 상흠(桑欽)에 따르면 강수(絳水)가 남서에서 나와서 동으로 바다에 들어간단다.
여오현 余吾縣 창즈시 툰류 현 북서
동제현 銅鞮縣 창즈시 친 현 상사정(上虒亭), 하사취(下虒聚)가 있다.
점현 沾縣 진중시 시양 현 남서 대맹곡(大黽谷)[9]에서 청장수(淸漳水)가 나와 북동으로 읍성(邑成)에 이르러 대하(大河)로 들어가니, 상당·위·광평·거록·신도·하간 6군을 지나 1680리를 가니 기주천(冀州川)이다. 응소에 따르면 점수(沾水)는 호관에서 나온다.
열현 涅縣 창즈시 우샹 현 북서
양원현 襄垣縣 창즈시 샹위안 현
호관현 壺關縣 창즈시 북 양장판(羊腸版)이 있다. 점수가 동으로 조가에 이르러 기수(淇水)로 들어간다. 응소에 따르면 이 현의 여정(黎亭)은 옛 여후국(黎侯國)이다.
현씨현 泫氏縣 진청시 가오핑 시 양곡(楊谷)에서 절수(絶水)가 나와 남으로 야왕에 이르러 심수(沁水)로 들어간다.
고도현 高都縣 진청시 완곡(莞谷)에서 단수(丹水)가 나와 남동으로 현수(泫水)로 들어간다. 천정관(天井關)이 있다.
노현 潞縣 창즈시 루청 시 북동 옛 노자국(潞子國)이었다.
의씨현 陭氏縣 린펀시 안쩌 현
양아현 陽阿縣 진청시 양청 현 북서
곡원현 穀遠縣 창즈시 친위안 현 양두산(羊頭山) 세미곡(世靡谷)에서 심수(沁水)가 나와 남동으로 형양(滎陽)에 이르러 하수로 들어가니, 상당·하내·하남 3군을 지나 970리를 간다.

[7][10]

각주[편집]

  1. 사마천: 《사기》 권45 한세가제15: 十年,秦擊我於太行,我上黨郡守以上黨郡降趙。十四年,秦拔趙上黨,殺馬服子卒四十餘萬於長平。
  2. 사마천: 《사기》 권43 조세가제13: 吾國東有河、薄洛之水,與齊、中山同之,無舟楫之用。自常山以至代、上黨,東有燕、東胡之境,而西有樓煩、秦、韓之邊,今無騎射之備。
  3. 사마천: 《사기》 권43 조세가제13: 肅侯元年,奪晉君端氏,徙處屯留 。
  4. 작자 미상: 《고본죽서기년》 위기: 梁惠成王十二年,郑取屯留、尚子、涅。
  5. 작자 미상: 《금본죽서기년》 위기: 楚師出河水以水長垣之外。龍賈帥師築長城于西邊。鄭取屯留、尚子。
  6. 고본죽서기년에서 지적하는 양성혜왕(양혜왕) 12년은 기원전 358년이고 금본죽서기년에서 지적하는 주현왕 10년은 기원전 359년으로 1년 차이가 난다.
  7. 반고 찬, 안사고 주: 《한서》 권28 상 지리지제8 상
  8. 《춘추》에서는 순류(純留)로 나온다. 屯은 안사고 주에 따르면 순(純)으로 읽어야 한다. 송기(宋祁)는 純은 鈍이 옳다고 했다. 통상 '둔류'로 읽으므로 이를 따른다.
  9. 맹(黽)은 요(𦥺, 要)의 오자라고 한다.
  10. 周振鹤 (2006년 6월). 《汉书地理志汇释》. 合肥市回龙桥路1号: 安徽教育出版社. 77 ~ 82쪽. ISBN 7-5336-47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