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Tons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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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편집]

그러나 미국의 태권도 창시자 이준구에 의하면 태권도는 가라데에서 본 딴 것이다. [1]

Kuwata Keisuke[편집]

Keisuke is a Zainichi. His father was the advisor of the Korean Artist Association of Japan, and Keisuke wanted to have his marriage take place in Korea. He also composed [ http://www.youtube.com/watch?v=KR0CxHyI6lI&fmt=18 "Love Korea"] and had sung traditional Korean songs Imjin River and Arirang in public shows. He has never explicitly stated that he is a Zainichi, as it is considered taboo to do so in Japan. [2]

이소룡에게 태권도를 가르친 이준구[편집]

이소룡에서 태권도를 가르친 주인공은 미국에 초창기 태권도를 보급한 이준구 사범이다. 수년 전 싱가포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정기총회에서 만난 이 사범은 이후 한국에서 필자와 재회한 자리에서 이소룡과 생전에 함께 대적하는 듯 한 흑백 기념사진을 선물했다. 그 사진은 1968년 LA의 한 해변에서 서로 무술을 수련하는 사진이었다. 이 사범은 이소룡과 인연을 늘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이준구 사범은 필자를 비롯해 여러 언론과 인터뷰에서 종종 이소룡과 인연을 소개한 바 있다. 60년대 초반 미국 LA에서 열린 세계가라테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이소룡과 인연을 맺은 후, 이소룡의 부탁을 받고 태권도 발차기 기술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각기 수련하는 무술이 다르지만, 무술 동료로 서로 존중하는 사이였다.

이소룡은 이 사범에게 배운 발차기를 꾸준히 연마했다. 그 후 옆차기 기술을 전 보다 더욱 위력적으로 발전시켜 자신의 특기로 만들었다. 영화에서도 이소룡에게 이 옆차기를 맞은 상대는 줄곧 나자빠졌다. 옆차기는 뒤차기와 뒤후려차기 등의 발차기 기술에 비해 현란하지 않지만, 타격 속도가 빠르고 정확하면서 상대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위력적인 발차기다.

그럼 이소룡이 유독 옆차기를 주로 찬 것은 왜일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준구 사범이 여러 태권도 발차기 중에 특히 옆차기 기술에 특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태권도계에서는 “다른 관에 비하여 청도관(태권도는 초창기 청도관, 지도관, 무덕관 등 관을 중심으로 보급했다. 관이 통합되기 전에는 기술에도 조금씩의 차이가 있었다)은 옆차기를 잘했다”며 “이준구 사범은 청도관 출신이기 때문에 당연히 옆차기를 잘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렇다고 이준구 사범은 이소룡에게 옆차기만 전수하지는 않았다. 옆차기뿐만 아니라 돌려차기, 뒤차기, 뒤후려차기 등의 여러 발차기 기술을 가르쳤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사범이 옆차기를 보다 세심하게 가르쳤던지, 아니면 이소룡이 직접 수련하면서 실용적인 측면에서 옆차기를 다른 발차기에 비해 더욱 연마했을 수도 있다.

이종우 왈 태권도는 가라테의 변형[편집]

―많은 태권도 교본들이 태권도의 뿌리를 삼국시대 이전으로 잡고 있습니다.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하더라도 좀 무리가 따른다는 느낌이 듭니다.

“나도 그런 식으로 책을 쓴 사람이에요. 솔직히 우리가 내세울 게 없었잖아요. 초창기에는 태권도를 해외에 보급하는 과정에서 옛날부터 있었던 한국의 전통무술이라고 하면 명분도 서고 잘 먹혀들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유사성이 있더라도 그것은 사실과 다른 겁니다. 역사적 원류로 본다면 중국 것이 일본으로 들어갔고 일본 것이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해야 설득력이 있죠. 일본 사람들이 중국 무술을 많이 개량해서 과학적으로 만들었어요. 한가지 문제가 뭐냐 하면 일본 사람들은 유연성보다 근육성에 바탕을 두고 운동을 만들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몸의 움직임이 굳을 수밖에 없죠.

우리는 이걸 가지고 스포츠로 경기화하기 위해서 겨루기를 시킨 겁니다. 반면 일본 사람들은 겨루기를 안하고 혼자 하는 운동으로 놔두었고, 중국에서는 손 맞춰서 하는 유연한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렇게 볼 때 태권도는 중간 입장에서 어느 쪽도 아니에요. 쉽게 얘기하면 우지좌지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그거죠. 그런데 우리는 겨루기를 했기 때문에 급속도로 발전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중국과 일본이 역으로 우리 걸 배우게 된 겁니다. 자기들 무술은 보급이 잘 안되는 데다 젊은 아이들이 자기와의 싸움보다 치고 받는 걸 좋아하잖아요.”

―광복이 되고 도장을 연 사람들은 모두 가라테를 했나요.

“기본기를 놓고 볼 때 이렇게 막는다 저렇게 때린다 하는 건 모두 가라테와 똑같아요.”

―그렇다면 우리 전통무예와의 유사성은 없다는 얘기입니까.

“언뜻 보기에는 있는 것 같지만, 기본기가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사실상 유사성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택견도 현대에 와서 많이 변질됐어요. 태권도 하던 사람들이 택견을 배우니까 발차기가 태권도 스타일로 나오는 거죠.”

[3]


reference[편집]

  1. ▶초창기 태권도는 사실 일본의 가라테를 그대로 본뜬 것 아닙니까.
    “청도관 초대 관장인 이원국 선생이 일본에서 대학 다닐 때 배운 가라테를 귀국해서 보급했으니, 맞는 말이에요. 역사는 거짓말하면 안 되죠.”
    “다 가라테를 기본으로 한 것”
    ▶주먹을 허리춤에 댔다가 지르는 것도 가라테 동작이죠?
    “맞아요. 그래서 내가 독특한 동작을 만든 거예요. 준리 태권도에서는 주먹이 가슴에서 나가죠.”
    ...
    “우리가 하는 게 좀더 과학적이라 할 수 있죠....
    광복 직후 서울에는 태권도장이라는 게 없었다. 청도관을 비롯한 무술도장의 대부분은 가라테를 가르치는 곳이었다. 이들은 가라테의 한자어 표기인 당수(唐手), 혹은 공수(空手)도장으로 불렸다.
    ▶9개 관에서 가르치는 기술은 다 비슷했습니까.
    “그럼요. 다 가라테를 기본으로 한 것인데.”
    ▶관마다 특징이 있지 않았나요.
    “굳이 말하자면, 청도관이 옆차기로 유명했고, 무덕관은 앞차기를 잘했다는 정도죠.”
    ▶가라테 기술과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합니까.
    “가라테를 가르친 거니까. 당수니 공수니 다 같은 거예요.”
    ▶발차기에서 차이가 없었나요.
    “태권도의 발차기 기술이 가라테보다 더 발전했지. 일본은 전통을 따지기 때문에 지금도 옛날 것 거의 그대로 가르쳐요. 그런데 한국은 그런 의식이 없어 뒤돌려차기니 뭐니 해서 제멋대로 만들어냈어요. 그게 뒷날 다 복이 된 거요.”
    ▶당시엔 뒤돌려차기가 없었습니까.
    “그랬지. 나도 그때 뒤돌려차기는 못 배웠어요. 기본 동작만 배웠지. 지금은 뛰어앞차기 등 기술이 얼마나 화려해요. 가라테보다 훨씬 앞서 있지. 상대가 안 되죠. 쿵푸도 그렇고. 그러니 올림픽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야. 대중이 좋아하니까.” 75세에 송판 깨는 美 태권도 황제 이준구
  2. 또 한명 언급하고 싶은 존경하는 재일교포가 있는데 바로 쿠와타 케이스케이다. 쿠와타는 일본인들이 지금까지 30년 동안 가장 사랑하는 밴드 Southern All Stars의 리더이자 보컬이다. Southern All Stars는 일본에서 영국의 queen같은 존재이고 쿠와타 또한 퀸의 프레디 머큐리 같은 존재이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예술인협회의 고문이었다고 한다. 쿠와타는 간간이 한국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 적이 있는데 결혼식을 앞두고 난데없이 결혼은 한국에서 하고 싶다고 하여 주위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고, 90년대 초에 일본에서 아직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조차 모르는 시절에 love korea라는 노래를 작곡하여 부르기도 하며, 임진강이나 아리랑 역시 공개 석상에서 여러 번 부른 적이 있다. There is one Zainich that I respect that I would talk about, who is Kuwata Keisuke....It is said that his father was the advisor of the Korean Artist Association. Kuwata time to time revealed his love for Korea, by acts such as saying he wanted his marriage to take place in Korea (frustrating other people), and he has sung 임진강 (Imjin River) and 아리랑 (Arirang) [both traditional Korean songs] in public shows. 특히 러브 코리아라는 가사가 매우 애절하고 슬픈데 이건 재일교포가 아닌 이상 작사할 수가 없는 가사라고 생각 한다. 아버지도 우셨던 언젠가의 러브코리아 또는 한글로도 읽히는 성모 마리아라는 가사 등은 꽤나 당시의 재일교포 사회상을 암시하는 가사라고 느껴졌다. 쿠와타가 러브 코리아를 부른 것은 우리나라로 치면 서태지가 공중방송에 나와서 러브 재팬 혹은 러브 차이나를 부른 격이다. "Love Korea"'s Lyrics are especially touching and sad, and I lyrics are such that only a Zainichi could compose it.... 이런 일들이 일본연예계에서 적지 않게 일어나고 그럴 때마다 일본 사회는 긴장한다. 일본 연예계에서의 재일교포 출신 발언은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일교포 출신들은 그들의 한국출신을 암시하는 요소들을 몰래 드러내기도 하고 일본 성을 사용할 때도 한국의 성으로 쓰인 한문을 집어넣어서 혼용하기도 한다. 솔직히 쿠와타 정도의 위치에 오르면 재일교포 출신을 밝히고 싶어도 밝히지 못할 것 같다... This kind of thing not infrequently happens in the Japanese entertainment industry, and at those times Japanese society becomes nervous. It is because it is considered taboo to reveal oneself as a Zainichi. Therefore Zainichis secretly reveal signs of their Korean origin and when using Japanese surnames they mix in Kanjis that are used in Korean surnames. Honestly, when a Zainichi goes to the status of Kuwata they could not reveal their Zainichi origin even if they wanted to. 문정현 기자, 재일교포 이야기 http://www.ok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0
  3. 이종우 국기원 부원장의 ‘태권도 과거’충격적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