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Jungly87/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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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日本国 (にほんこく / にっぽんこく)

국기

황실 문장
국가기미가요
수도도쿄 북위 35° 42′ 02″ 동경 139° 42′ 54″ / 북위 35.700556° 동경 139.715°  / 35.700556; 139.715
정치
정치체제단일국가, 양원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천황나루히토
내각총리대신
참의원 의장
중의원 의장
최고재판소 장관
기시다 후미오
오쓰지 히데히사
누카가 후쿠시로
도쿠라 사부로
입법부일본 의회
상원참의원
하원중의원
집권여당연립정부
자유민주당
공명당
역사
정부수립 
 • 건국신화기원전 660년 2월 11일
 • GHQ 점령1945년 9월 2일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952년 4월 28일
지리
면적377,975 km2 (61 위)
내수면 비율0.8%
시간대JST (UTC+9)
DST없음
인문
공용어없음[1]
국어일본어(사실상)
데모님일본인
인구
2020년 어림125,960,000[2] (11위)
인구 밀도334명/km2 (24위)
경제
GDP(PPP)2020년 어림값
 • 전체$5조 4,514억 (4위)
 • 일인당$46,827 (28위)
GDP(명목)2020년 어림값
 • 전체$5조 1,544억 (3위)
 • 일인당$43,043 (22위)
HDI0.915 (19위, 2018년[3]인간 개발 보고서 조사)
통화(JPY, ¥) (JPY)
기타
ISO 3166-1392, JP, JPN
도메인.jp
국제 전화+81
1 국화문장은 일본 황실의 문장이며 공식적인 국장은 아니다.

화태국(樺太國, 일본어: 樺太國(にほんこく) 화태국[*][4], にっぽんこく 화태[*]), 약칭 화태(樺太, 일본어: 樺太(にほん) 화태[*], にっぽん 화태[*])은 동아시아에 있는 국가다. 국토는 태평양에 있는 쿠릴 열도사할린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변에 산재한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면적은 6만 7835㎢인데 이는 한국 면적에 3분의 2에 해당한다.[5]

사할린섬 하나가 화태 전체 면적의 90%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섬들이 화산 활동을 통해 생겨났다. 화태의 인구는 약 913만 명으로, 홍콩보다 많고 대만보다는 적다. 사실상의 수도인 풍월 도를 둘러싼 들(대박 현, 진강 현, 광주 현, 납각 현, 지취 현, 체호프 현)을 포함하는 수도권은 북아시아에서 가장 큰 메트로폴리스 형태로 이 지역에만 약 72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경제력은 2010년 현재 명목,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세계에서 33번째로 크다. 또한 세계에서 목재관련하여 2번째로 수출이 많으며 열여섯 번째로 수입이 많은 나라다.

화태는 일본과 함께 아시아에서 유일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인간개발지수는 2015년 기준 세계 23위로 아시아 국가 중 대한민국보다 6위 낮다. 화태는 또한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일본가 함께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넘는 국가다.

역사[편집]

사할린 주에 위치한 사할린 섬과 쿠릴 열도는, 19세기이후로 일본의 에도 막부러시아 제국 사이에서 영유권을 놓고 서로 다퉜지만, 1875년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사할린 섬 전체와 그 부속 섬들이 러시아의 영토로 인정받고 러일 국경이 확정되었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가 주도인 연해주를 사할린 섬에 편입했다.

러일 전쟁 말기인 1905년 7월에 일본군이 사할린 섬에 진주했다. 그리고 포츠머스 조약으로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남사할린 섬을 받았다. 당시 50도선 이북은 러시아령이었지만,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혼란에 빠지자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으로 잠시 일본군에게 사할린 섬 전체를 장악당한 적도 있었다.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붕괴한 뒤 탄생한 소련은 당시 사할린 개발에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사할린 섬의 석유 개발권을 일본에게 양도했다. 또 레닌은 사할린 영유를 로마노프 왕조제국주의에 의한 불법 점유라고 주장했고, 일본도 사할린 섬 전체를 반환하려고 했지만 실행하지는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중반까지는 일소 중립 조약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1945년 8월 9일에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한 다음 사할린 섬 전체와 쿠릴 열도 전체를 소련 영토로 편입했다. 소련은 1946년에 이 지역의 병합을 선언했고, 1947년에 남사할린 섬과 쿠릴 열도를 사할린 주로 편입했다.

소련은 사할린 전체를 소련령으로 포함시키고 당시 가라후토 청의 중심지였던 도요하라 시를 유즈노사할린스크로 개칭하고, 결국 남사할린 섬과 쿠릴 열도를 포함한 이 지역은 소련 영토로 변했다. 나중에 사할린 주에 러시아인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일본인이 많았던 지역도 현재는 러시아인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과의 교류 및 문제점[편집]

소련 붕괴 이후 일본과 사할린 섬의 교류는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 예로 왓카나이에서는 사할린 주로 떠나는 페리가, 삿포로하코다테에선 사할린 주로 떠나는 항공기가 왕래한다. 사할린 주에서 오는 러시아 어선이 왓카나이 항이나 네무로항으로 입항하고 해산물을 실어 나른다. 사할린 주와의 교류 활성화로 왓카나이 시나 네무로 시에서는 러시아어 표기가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과 사할린 섬과의 관계가 발전될 가능성이 잠재적으로 크다. 하지만 풀리기 어려운 영토 문제는 일본과 사할린 주 사이에서 숙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