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Eunnor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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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영합니다 (토론) 2012년 10월 12일 (금) 22:42 (KST)[답변]

--Eunnorae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18:15 (KST)[답변]

무조건적인 삭제는 지양해 주시기 바랍니다.[편집]

Eunnorae님, 잠시 주목해 주세요. Eunnorae님이 만리장성 문서에 해 주신 편집은 문서를 편집하시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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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는 ‘중립적 시각’에서 바라봅니다.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은 글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글에는 다수 의견과 고려될 가치가 있는 소수 의견이 편견 없이 공평하게 반영되어야 합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그림은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건설되었다는 내용으로 이 그림이 기재되어있으면 한반도까지 만리장성이 이어져있었다고 속단시킬 우려가 있어 삭제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적인 편집취소는 위키피디아 정책에 반한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차단을 할것이라는 '경고성 멘트'를 하는 분은 위키피이아의 어느 지위에 계신지요? 그리고 편집에 '문제가 있어' 라고 하셨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요?
" 중국 국가문물국이 역대 장성의 총 길이를 발표(2012.06.05). 이번 발표에서 언급된 역대 장성이란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 ’만리장성‘뿐만 아니라, 중국 역대의 장성관련 유적을 모두 포함한 것임. 총길이 역시 이들 여러 장성의 전체 합(合)임. 분포지역에 길림성·흑룡강성을 포함하고 있어 고구려, 발해 유적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므로 이에 대한 정확한 내용 확인이 필요함." 라고 동북아 역사재단의 공식표명입니다. 이 그림과 이 내용과도 맞지않습니다.--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Eunnorae(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1. “중국 역대의 장성관련 유적”이라는 동북아역사재단의 공식표명 앞에서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펴낸 책들을 읽어 보시긴 하셨습니까? 토론:만리장성이라도 제발 좀 읽어 보십시오. 이 지도들을 삭제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동북공정에 버금가는 역사왜곡입니다.
2. 삭제해야 한다는 공인된 출처를 포함하는 근거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해당 지도들 대부분이 현재 대한민국을 비롯한 국제 학계에서 널리 공인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증명할 자료를 제시했고, 또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대한민국의 역사학계에서조차 그 지도들은 대부분 인정되고 공인된 것들입니다. 이 지도 같은 것이 동북공정 및 역사왜곡에 해당하는 것이죠. Eunnorea님께서 삭제하신 지도들과 비교해 보십시오.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3. 위키백과는 사용자들이 만들어가는 백과사전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잘못된 편집에 대해서 경고하는 것 역시 사용자의 자유이자 권리입니다. 위키백과의 정책들이라도 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4. 무조건적인 편집취소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저는 분명 이러이러한 부분들이 있으므로 삭제해서는 안된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귀하께서는 그것에 대해서 어떠한 피드백도 없이 다시 삭제하셨습니다. 대체 누가 무조건적인 행동을 한 것입니까?
5. 이상과 같은 내용은 위키백과 공동체 대대수의 사람들이 모두 동의하는 위키백과의 기본 원칙입니다. 귀하께서 해당 지도들을 삭제하기를 원하신다면 근거를 가져 오십시오. 근거 없는 편집은 불가합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15:48 (KST)[답변]

史記 의 하본기 주석에 보면 太康地 理志云「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 라고 되어있습니다. 갈석산은 유명한 중국 산으로 진시황제가 올라 유명합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박부탁드립니다. 근래 일어난 국사편찬위원회장의 망언부터 시작하여 경기도 교육청과 동북아 역사재단의 분쟁을 바라보니 일명 학계에 공인된 이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국사편찬위원장이 했던 말들을 기억하시지요? 그러니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이어졌다는 사료를 보여주십시오. 그 근원사료 말입니다.--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Eunnorae(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이미 궐백년 전에 반박된 사이비 역사학의 잔재를 가지고 대체 무엇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314년에 낙랑군이 축출된 뒤에 그 유민이 모용씨에게 흘러들어가 바로 그 갈석산이 위치한 곳에 낙랑군을 설치하였다는 것은 현대 역사학의 상식 중 하나입니다. 제가 한사군 문서라도 읽어보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귀하가 혼자서 역사학계를 믿지 못하겠다고 해봤자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귀하가 믿지 못하겠으니 공인된 출처를 가진 내용을 삭제해도 되는 겁니까? 위키백과의 원칙을 무시하셔도 정도가 있습니다. 다시 무조건적인 되돌림이 있을 시에는 응당한 제제를 요청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16:37 (KST)[답변]

--Eunnorae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16:55 (KST)[답변]

그러니깐 그 근원사료 하나만 가르쳐 주세요. 그 당시 고사료 말입니다. 그러면 제가 그걸 읽고 보고 사과들 드리겠습니다.--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Eunnorae(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근원사료라... 과연 2천년 전에도 사람들은 한반도를 한반도라고 썼을까요? 평안북도나 의주 같은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요? 참 웃기는 요구입니다만, 어쨌든 알려 드리죠.--Xakyntos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17:04 (KST)[답변]

고(구)려는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 그 나라는 평양성에 도읍하였으니, 곧 한 낙랑군의 옛 땅이다.
高麗者, 出自扶餘之別種也. 其國都於平壤城, 卽漢樂浪郡之故地,
《구당서》 〈동이열전〉 고구려조

그리고 제가 인용한 기사에 대한 반박 부탁드립니다. --Eunnorae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17:06 (KST)[답변]

구당서는 940년대에 쓰여진 역사서로서 장수왕 427년 평양천도 이후 쓰여진 책으로 고구려의 수도 위치 인식에 대한 부정확성을 의심해 볼 수 있으며 이 보다는 조.한 전쟁을 목도한 사마천의 사기를 더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다르다하여 사이비라고 비하 발언하는 것은 지양해야될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Eunnorae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17:13 (KST)[답변]

《사기》와 사기의 주석서도 구분하지 못하는 분께서 하실 말씀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귀하께서 가져오신 내용은 《사기》의 본문이 아니라 주석서의 내용이고, 그 주석서가 편찬된 시기는 무려 당나라 때입니다. 사마천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17:17 (KST)[답변]
제가 주석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기색은 에서는 그 당시 전해오던 지리지를 인용하여 기사를 쓴것입니다.
“조.한 전쟁을 목도한 사마천의 사기를 더 신뢰해야 한다” 귀하께서 바로 윗 줄에서 하신 말씀입니다만?--Xakyntos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17:36 (KST)[답변]

오해의 소지가 있게 적은 부분 같습니다. 제가 계속 지워도 님은 계속 편집취소 하시겠군요. --Eunnorae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18:15 (KST)[답변]

당연합니다. 귀하는 그것을 지워야 할 합당한 이유를 하나도 대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정 지우고 싶으시다면 그것을 지워야 한다는 공인된 출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근거를 가져오시면 됩니다. 물론 그런 것이 있을 턱이 없겠지만.--Xakyntos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19:10 (KST)[답변]
귀하께서는 만리장성이 진나라 시대때 어디까지 세워졌다고 생각는 지요? 그 위치를 나타내는, 장성이라는 말이 나오는 고서의 기사는 어떤 것들이 확인할수 있나요? 혹시 역사 학문을 직업으로 하시는 분이시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Eunnorae (토론) 2012년 10월 16일 (화) 22:34 (KST)[답변]
1. 사마천의 《사기》에는 만리장성의 위치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산과 구릉, 계곡을 따라 보수하여 성을 쌓으니 임조에서 출발하여 요동까지 만여 리에 이르렀다. 因邊山險巉谿穀可繕者治之,起臨洮至遼東萬餘裏。”요동의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몇몇 재야를 자칭하는 사이비 사학자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요동 지방이 지금의 랴오닝 성 동부 지역임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고고학은 물론이고 문헌사적으로도 요동군의 가장 동남쪽 끝은 서안평현, 지금의 단둥 지역임이 분명합니다. 서안평현의 영역은 단둥 지역을 중심으로 압록강 너머 청천강 이북까지의 지역에 이르며, 이 지역에서는 전국시대 연나라가 고조선을 구축하고 난 기원전 3세기 이후로 연나라 계통의 유물·유적이 끊임없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만리장성의 기초가 되는 전국시대 7국들의 장성은 이 시기에 이미 세워졌으며, 연나라가 세운 장성은 연북장성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에도 연나라의 영토는 거의 그대로 진나라로 계승되었으며, 심지어 청천강 너머 평양 인근에서는 시황제의 재상인 이사의 이름이 새겨진 유물도 출토되었습니다.
2. 이런 상황을 모두 종합해볼 때 만리장성이 귀하께서 믿는 갈석산, 즉 산해관 지역에서 끝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죠. 대한민국의 역사학계에서도 장성이 천산산맥 근방까지 이어졌다는 것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는 상태입니다. 천산산맥에서 청천강까지의 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나 적어도 청천강 일대까지 연나라 및 진나라가 영토화하고 지배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문이 없습니다. 문헌은 물론이고 고고학적인 근거가 너무나도 뚜렸하니까요. 더 설명이 필요하십니까? 아니면 제가 한 설명에 대해서 반박하실 수 있으십니까? 고견을 주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10월 17일 (수) 08:39 (KST)[답변]

서명[편집]

반갑습니다, Eunnorae님!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의 토론에 참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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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토론을 위한 곳이 아닌 일반 문서에는 서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위키백과를 편집할 때 궁금한 점이 있다면 길라잡이사용법을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사용자에게 질문해 주세요. --다이나믹 로동!(U,T,C,M) 2012년 10월 15일 (월) 18:49 (KST)[답변]

만리장성 지도에 대하여[편집]

이 지도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귀하께서 올린 지도는 명나라 때 세워진 명장성의 지도로서 진나라 때 세워진 진장성과는 다른 유적입니다. 물론 그 명장성 역시도 산해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요동반도까지 이어져 있음은 이미 학계에서도 고증이 끝난 문제입니다. 링크한 지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지요. 참고로 링크한 지도는 1750년 유럽에서 그려진 것(Korea, Bellin, Nicolaus, Leipzig, Schwabe 1750)으로, 만리장성의 동쪽 경계에 대해 1750년대의 유럽인들조차도 알고 있었을 정도로 명백한 문제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10월 20일 (토) 20:43 (KST)[답변]

이 지도(China, Cantelli, Giacomo da Vignola, Roma, Gio. Iacomo Rossi 1682)와 이 지도(Japan, Bonne, Rigobert, Paris, M. Bonne 1771)도 참조하시지요.--Xakyntos (토론) 2012년 10월 20일 (토) 20:49 (KST)[답변]

그림속에 장성은 산해관이라 적혀있고 지금 중국에 그곳에 중국사람들이 말하는 만리장성이 있는데 1550년대에 그려진 지도가 1750에 보이는 지도 보다 더 믿을 수 있다. 무섭군요.. -- 이 의견을 2012년 10월 20일 20:48 (KST)에 작성한 사용자는 Eunnorae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Mer du Japon 님이 추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