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슬라우 전투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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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슬라우 전투
제2차 세계 대전동부 전선의 일부
Bundesarchiv Bild 183-H26408, Rückzug deutscher Truppen auf Breslau.jpg
1945년 2월 2일, 브레슬라우의 독일군.
날짜1945년 2월 13일 ~ 5월 6일
장소
결과

소련군의 승리

  • 5월 6일에 브레슬라우의 수비군이 항복했으며, 나머지 독일군들은 이틀 후인 5월 8일 전원 항복했다.
교전국
나치 독일의 기 나치 독일 소련의 기 소련
지휘관
나치 독일 헤르만 니호프
나치 독일 한스 폰 알펜
소련 이반 코네프
병력
약 50,000명[1] 87,334명
피해 규모
약 30,000명의 병사 및 민간인 사상 약 60,000명 병사 사상
현재 브로츠와프
바르바로사 작전 진격도

브레슬라우 전투(독일어: Schlacht um Breslau, 러시아어: Осада Бреслау) 또는 브레슬라우 포위전나치 독일저지 실레지아브레슬라우(현재는 폴란드 영토로 브로츠와프라 불림)를 둘러싸고 4개월간 계속된 포위전이었다.

브레슬라우(브로츠와프)지역 설명[2][편집]

브레슬라우는 현재 오데르(오드라)강 연안에 있는 폴란드의 땅이다. 브레슬라우라는 이름은 독일어이고 현재는 브로츠와프라고 불린다. 폴란드 돌노실롱스키에주에 위치한 브레슬라우는 블라디슬라프 1세에 의해 10세기에 건설되었고 나중에 폴란드의 영토가 된다. 12세기부턴 학술, 상업의 도시로 번영하였고 14세기부터는 보헤미아의 땅이 되었다. 1742년 이 곳에서 평화조약이 체결되었고 프로이센의 영토가 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1945년부터 다시 폴란드의 영토로 돌아갔습니다. 1939년 당시 브레슬라우는 인구가 62만 9565명으로 독일 8위권 도시였다. 현재는 폴란드의 공업중심지로서 교통(철도, 도로)의 요지이며 공항도 있다. 2013년 기준 폴란드 제 4의 도시로 인구는 약 62만 명이다.

브레슬라우 전투의 배경과 성격[3][편집]

전투의 배경[편집]

브레슬라우 전투는 독소전쟁 말기에 일어난 전투이다. 1945년 2월 13일 소련군의 도시 포위로 전투가 시작되었고 5월 6일 헤르만 니호프가 소련에 항복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독소전쟁[4][편집]

1943년 6월, 독일 보병의 행진

독소전쟁은 인류역사상 최대규모의 단일전쟁으로, 나치 독일과 그 동맹국과 소련 사이에 벌어진 제 2차 세계대전의 한 전선이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소련과의 불가침조약(1939년 8월에 체결)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선전포고 없이 소련을 180만의 대병력과 함께 대규모로 침공한 바르바로사 작전이 펼쳐지면서 발발했다. 하지만 소련의 방위력의 의외로 강하여 독일의 단기 결전계획을 수포로 돌아갔고 이 전쟁은 소련이 1945년 베를린을 함락시킬 때까지 4년간 지속된다.

히틀러의 목적은 소련을 해체시켜 그곳의 주민을 일소하고 그곳을 궁극적으로 게르만 민족의 ‘생활공간(Lebensraum)'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소련 점령지의 주민은 청소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는 '정상적인' 전쟁이었으면 죽지 않아도 되었을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일차적으로 포로로 잡힌 소련군인과 정치위원들이 청소되었다. 독일군의 포로가 되면 소련군은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독일군에게 이들은 어차피 모두 제거해야 할 열등인종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례로 전쟁 초기에 포로로 잡힌 200만이 훨씬 넘는 소련군을 굶겨 죽인 일이 있다. 이러한 포로수용소는 독일의 광대한 점령지역(동부의 폴란드, 발트,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지)에 널려 있었다. 당시 기적적으로 살아난 한 소련 포로의 증언을 들어보면 극심한 기아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그 인육을 먹었다고 한다. 강제노동 중 부상자가 있으면 발가벗긴 후 영하 20도가 넘는 혹한 속에서 차가운 물을 부어 동사시켰다. 위생 상태는 극도로 불결해서 하루에도 수만 명의 수인이 죽어나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차라리 죽기를 갈망했다. 독일의 과학자, 의사, 의료진들은 이들 포로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생체실험에 이용하였다.

히틀러는 점령지에 마을이 보이면 지도상에서 지우라고 명령했다. 물론 극소수의 양심적인 독일군 장교는 히틀러의 광적인 명령을 거부했지만 독일군의 기동타격대 ‘아인자츠그루펜’ 이 일을 대신하였다. 그들은 마을이 보이면 모든 식량을 빼앗았다. 사람들이 점차 굶어 죽어가길 기다리는 것이다. 대도시의 경우 사람들이 반항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한 곳의 모든 사람들을 본보기로 교수형 시켜 시 중앙 광장에 몇 달이고 방치시켜두었다. 또한 본보기로 한 마을 전체 주민을 처형하고 모든 마을을 불태우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파르티잔(저항군)이 발생한 지역에서 범위 100km이내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도 있었다. 모든 이들이 '고무줄과 같이 신축성 있는' 파르티잔의 범위에 속해 처형당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인이나 러시아인은 노동력 충당을 위해 독일에 노예노동자로 끌려갔다. 이렇게 노예노동자로 끌려간 소련인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연구가들은 400만 명이 넘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전투의 성격[편집]

브레슬라우 전투는 소련군의 일방적인 포위전이다. 히틀러의 지시로 요새화된 브레슬라우와 소련군간의 공방전이 4개월동안 펼쳐진 전투였다.

브레슬라우의 요새화[편집]

1945년 2월 13일 브레슬라우는 소련군 우크라이나 제 1 전선군 사령관 이반 코네프 원수 예하 6군에 의해 포위되었다. 1945년 7월 25일 아돌프 히틀러는 브레슬라우 주를 요새화하여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수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도시를 군사 요새로 바꾸는 공사를 시작하였고 도심 대부분은 철거되어 활주로로 바뀌었다.


브레슬라우 전투의 경과[편집]

1945년 1월 19일[편집]

아돌프 히들러가 지시한 도시의 요새화를 진행하기 위해 1945년 1월 19일 실레지아의 지역지도자 카를 한케는 도시 거주자들에게 독일의 다른 도시인 드레스덴으로 피난할 것을 명령한다. 그와 동시에 독일군은 국민돌격대(볼크슈트름)을 지원하고 동부에서 강제로 끌려온 민간인 포로들을 노동자로 투입시켜 소련군의 공격을 거뜬히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의 군사 요새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브레슬라우 도심의 대부분을 철거하고 활주로를 만드는 공사였다.

2월 13일[편집]

소련군이 도시를 포위하기 시작했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2월 15일[편집]

독일 공군이 포위된 수비대에 공중 보급을 시작했다. 5월 1일까지 76일 동안 독일 공군은 식량 및 보급품 운송을 위해 2000회 이상 출격하여 1638톤의 보급품을 공급했다.

5월 6일[편집]

독일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기 이틀 전인 5월 6일, 마침내 독일군 수비대장 헤르만 니호프가 소련에 항복하며 약 4개월간의 포위전은 종결되었다.


브레슬라우 전투의 결과와 의의[편집]

브레슬라우 전투는 2차 세계대전 속에서 매우 의미있는 전투이다. 브레슬라우가 최후의 방어선이라고 판단한 히틀러는 도시하나를 요새화시킨다. 우크라이나 제 1 전선군 사령관 이반 코네프 원수가 지위하는 소련군은 그 요새를 무너뜨리기 위해 예하 6군을 동원하여 브레슬라우를 포위한다. 나치 독일은 이에 맞서 공중보급을 통해 총력을 다한다. 이 포위, 공방전은 무려 4개월 동안 지속되었으며 그 기간 동안 양측 약 14만 명의 군인들이 전사한다. 그리고 도시의 80~90%가 파괴된다. 결과적으로 독일군 수비대장 헤르만 니호프가 항복하면서 이 전투는 소련군의 승리로 끝난다.

이 전투의 의의는 브레슬라우 전투는 독일군의 마지막 발악이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소전쟁 중 마지막 전쟁이기도 하고 5월 6일 항복 이틀 뒤 나치독일은 무너진다. 이후 포츠담 선언을 통해 브레슬라우는 폴란드의 영토가 된다.

각주[편집]

  1. Duffy, p. 254
  2. “브로츠와프”. 2019년 12월 2일에 확인함. 
  3. “독소전쟁”. 2019년 12월 2일에 확인함. 
  4. “2차 세계대전은 사실상 獨·蘇전쟁이었다”. 2015년 5월 4일. 2019년 12월 3일에 확인함. 

참고 문헌[편집]

  • Duffy, Christopher (1991년). 《Red Storm on the Reich》. Atheneum. ISBN 0-689-12092-3. 
  • Hastings, Max (2004년). 《Armageddon: The Battle for Germany, 1944-1945》. Macmillan. ISBN 0-333-90836-8. 
  • (러시아어) 'Васильченко, Андрей Вячеславович, Последняя крепость Рейха. — М.: Яуза-Пресс, 2009. — 288 с. — ISBN 978-5-9955-0052-0
  • (러시아어) Хендрик Фертен. В огне восточного фронта. — М.: Яуза-Пресс, 2009. — 448 с. — ISBN 978-5-9955-0024-7
  • (러시아어) Мощанский И.]] Бои за Бреслау. Осада цитадели. — М.: Вече, 2010. — 112 с. — ISBN 978-5-9533-4801-0
  • (러시아어) Гюнтер Бёддекер. Горе побежденным. Беженцы III Рейха. 1944—1945. — М.: Эксмо, 2006. — 544 с. — ISBN 5-699-17369-2
  • (러시아어) Жан Мабир. Война в белом аду. — М.: Эксмо, 2005. — 384 с. — ISBN 5-699-09345-1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