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철종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송 철종

송 철종(宋哲宗, 1076년 1월 4일 ~ 1100년)은 북송의 7대 황제(재위 : 1085년 ~ 1100년)이다. 신종의 여섯 번째 아들. (煦)이다.

생애[편집]

1085년 북송 신종이 붕어하고 철종이 즉위하였다. 이듬해에는 왕안석도 사망했다. 철종의 나이가 어려 조모인 선인태후(宣仁太后)가 수렴청정을 하여 정권을 장악했다. 본래 신법을 반대했던 선인태후는 자신의 신임을 받았던 구법파 사마광을 재상으로 등용했다.[1] 사마광은 모역법 폐지와 차역법의 부활을 도모하고, 이것을 5일 이내로 실행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원래 사마광의 지휘도 기회주의적인 면이 많아서, 사마광이 상정하고 있던 차역법 그 자체가 이미 실현불가능할 만큼 현실과는 괴리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많은 지방관은 모역법 폐지에 반발했고, 도저히 기일을 지킬 수가 없었다. 그런데 채경은 개봉부라고 하는 가장 곤란한 장소에서 기일에 맞춰 법령의 개폐하고, 사마광을 기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신종 때에는 신법파에 가담하여 신법을 지지하였고, 구법파가 득세하자, 구법을 지지한다고 말한 태도는 구법파의 급선봉이었던 유안세(劉安世), 왕암수(王巌叟) 등에게서도 심한 비판을 받고, 하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마광도 오래 집권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고, 신법과 구법의 당쟁은 더욱 가속화되어 정치혼란으로 인해 송의 국력은 급속도로 약화된다.

1093년 선인태후가 병사하여 수렴청정이 8년 만에 끝나고, 철종이 친정을 시작했다. 철종은 연호를 소성으로 고치고 신법을 부활시켰다.[2] 이때 많은 구법파 관료가 추방되고, 신법파 관료가 등용되었다. 당시의 권력자 장돈(章惇)과 증포는 열렬한 신법 추진파였고, 신법을 국시라고 간주할 정도로 신법을 추종하였다.

1100년 철종이 대를 이을 아들이 없는 채로 25세의 일기로 붕어하자, 동생인 휘종이 황제로 즉위했다.

존호, 시호, 묘호[편집]

사후 시호는 흠문예무소효황제(欽文睿武昭孝皇帝)이며, 휘종 때인 1104년에 시호를 가상하여 헌원계도세덕양공흠문예무제성소효황제(憲元繼道世德揚功欽文睿武齊聖昭孝皇帝)로 추시 되었으나, 1113년에 다시 재개정하여 헌원계도현덕정공흠문예무제성소효황제(憲元繼道顯德定功欽文睿武齊聖昭孝皇帝)로 최종적으로 추시되었다. 묘호는 철종(哲宗)이며, 능은 영태릉(永泰陵)이다.

가족[편집]

황후와 후궁[편집]

  • 소자성헌황후 맹씨(昭慈聖獻皇后 孟氏, 1073년 ~ 1131년, 재위 : 1092년 ~ 1099년) - 원래는 폐후였으나. 정강의 변의 이후로 섭정황후로서 모셔짐.
  • 소회황후 유씨(昭懷皇后 劉氏, 1079년 ~ 1113년, 재위 : 1099년 ~ 1100년)
  • 귀비 모용씨(貴妃 慕容氏, 1073년 ~ 1152년)
  • 첩여 장씨(婕妤 張氏)
  • 첩여 호씨(婕妤 胡氏)
  • 미인 한씨(美人 韓氏)
  • 미인 위씨(美人 魏氏)
  • 미인 고씨(美人 高氏, ? ~ 1112년)
  • 재인 유씨(才人 劉氏)

황자[편집]

  • 장남 : 헌민태자(獻愍太子) 조무(趙茂, 1099년) - 소회황후 소생. 원래 시호는 월충헌왕(越冲獻王).

황녀[편집]

  • 장녀 : 등국공주(鄧國公主, 1094년 ~ 1096년) - 소자성헌황후 소생. 휘종 시기 때, 순미제희(洵美帝姬)로 개칭.
  • 차녀 : 진국정의공주(陳國靖懿公主, ? ~ 1117년) - 휘종 시기 때, 숙화제희(淑和帝姬)로 개칭.
  • 3녀 : 진국강의장공주(秦国康懿長公主, 1096년 ~ 1164년) - 소회황후 소생. 휘종 시기에 숙신제희(淑愼帝姬)로 개칭하였으나, 남송 고종 때 공주로 복호.
  • 4녀 : 양국공주(揚國公主, 1097년 ~ 1099년) - 소회황후 소생. 휘종 시기 때, 순미제희(純美帝姬)로 개칭.

각주[편집]

  1. 중국사학회, 《중국역사박물관》, 강영매 역, 범우사, 2004, p.50, ISBN 978-89-08-04304-6
  2. 청위, 장허성, 《중국을 말한다 11》 이원길 역, 신원문화사, 2008, p.22, ISBN 978-89-359-1450-0
전임
북송 신종
제7대 북송의 황제
1085년 ~ 1100년
후임
북송 휘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