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 원융국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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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원융국사비
(浮石寺圓融國師碑)
대한민국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종목유형문화재 제127호
(1979년 1월 25일 지정)
수량1기
소유부석사
위치
영주 부석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영주 부석사
영주 부석사
영주 부석사(대한민국)
주소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부석사경내 (북지리)
좌표북위 36° 59′ 55.5″ 동경 128° 41′ 14.9″ / 북위 36.998750° 동경 128.687472°  / 36.998750; 128.687472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영주 부석사 원융국사비(榮州 浮石寺 圓融國師碑)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에 있는 비석이다. 1979년 1월 25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되었다.

개요[편집]

부석사 한켠에 지어진 비각 안에 놓여 있는 비로, 고려시대 승려인 원융국사 결응을 기리고 있다.

결응은 12세에 출가하여 복흥사에서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받았으며, 28세에 대덕(大德:덕이 높은 승려를 가리킴)이 되었다. 고려 정종 7년(1041) 부석사로 들어와 화엄종의 법통을 이어받았고, 문종 7년(1053) 4월 이 절에서 입적하였다. 왕은 그의 시호를 ‘원융’이라 내리었다.

비는 바닥돌 위에 거북받침을 마련하여, 비몸을 세운 후 머릿돌을 얹은 구조로, 거북받침은 원래의 것이 아니며, 비몸은 깨어지고 갈라져 있는 것을 이어 붙인 것이다. 바닥돌은 옆면에 안상(眼象)을 옅게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두었다. 거북받침돌은 많이 닳긴 하였으나 조각솜씨가 훌륭하며, 머리가 용 머리화되었으나 마치 돌사자처럼 보인다. 등에는 선명한 6각무늬가 덮혀 있으며, 무늬마다 ‘王’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비를 세운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결응이 문종 7년(1053)에 입적하였으므로 그 즈음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비몸의 파손으로 첫머리와 끝부분의 비문내용을 살피기 힘드나,『조선금석총람』에 그 전체가 실려 있어 내용 파악은 가능하다.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