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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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주의(反共主義, Anti-communism) 또는 반공산주의(反共産主義)는 자본주의 권력이 자신의 이익을 확대 재생산할 목적으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정치 이념이다. 애초에 가진 것을 지킬 목적으로 반공주의를 하다 보니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와 관련없이 탄압하여 민주주의에 의해 보장되는 자유가 유린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나 반공주의를 내세울 때는 자본주의 대신 자유를 강조한다. 반공주의자들 대다수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정파이며[1], 이 때문에 절대자인 신을 내세워 민중을 착취하고 억압한 종교를 아편이라고 비판했던 마르크스공산주의변증법적 유물론유물사관을 비판하지만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절대자로 여기는 예수는 신을 내세워 착취하고 억압하는 제사장이나 바리세인 등을 비판하며 민중의 편에 서면서 부자들을 저주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으며 사도행전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는 "소유를 공동으로 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공동체를 조직하면서 자신의 소유를 속였던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자는 공산주의의 공유재산제도를 비판하며, 아나키스트들은 공산주의의 중앙집권적 권력화와 당의 의존한 일당제 체제에 대해서 비판한다. 그 외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우익 정파는 민족주의, 파시스트, 인종주의와 같은 민족주의 성향을 띄는 정파와 신자유주의 성향을 띠는 정파 등 실로 다양하다. 극단적인 반공주의의 경우, 공산주의 뿐 아니라 같은 반공주의의 일환인 자본주의마저도 배격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편에 있는 사람은 흔히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정치적 주장을 하는 사람에 대해 "대중 인기에 영합한다"는 비판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민주주의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 자본주의를 내세울 때 자본주의를 전면에 내세울 수 없어 대신 자유를 전면에 내세운다.

각국의 반공 정책[편집]

미국의 반공 정책[편집]

조지프 매카시에 의해 무분별한 반공주의의 광풍이 불어닥친 시대를 일컫는 매카시즘 시대 당시에는 공산주의자로 의심받는 자는 직장에 도태되거나 국외로 추방되었다. 이를테면 찰리 채플린의 경우 영화 《모던 타임즈》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어서, 공산주의자로 의심받아 추방당하는 수모를 받았다. 그외 독일계 공산주의 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반공주의자들의 탄압으로 독일(구 동독)으로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무분별한 매카시즘은 대부분 근거 없는 것이어서 마녀사냥으로 불리어 이후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냉전 기간 당시에 미국 내에 잠입한 소련의 간첩을 찾아낸 적은 있다.[2]

미국에서 부유한 대통령으로 일컫어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산주의 희생자를 위한 국가기념일’에 대한 메시지에서 "공산주의자들의 탄압의 결과로 사망한 1억 명 이상의 사람들을 추도한다"며, "오늘날 우리는 자유와 정의, 그리고 모든 인간의 삶의 가치에 대한 깊은 존경 등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 위에 세워진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모든 사람이 지킬 수 있도록 돕겠다는 우리의 약속을 거듭 강조한다"고 밝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자본주의 = 자유와 선, 공산주의 = 자유 억압과 절대 악으로 규정하나 히틀러가 주도한 나치미국이 주도한 전쟁에 의한 희생자가 더 많다는 진실을 외면한다.

일본의 반공 정책[편집]

20세기초 지식인들에 의해서 유입된 사회주의는 대역사건(1910년), 치안유지법(1925년), 고등계 신설로 탄압받았다. 1930년대 군부가 권력을 잡은 뒤에도 일본공산당원 등의 좌파 인사들 중에는 고문과 회유 때문에 사상 전향을 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1947년 일본이 완전히 민주주의 형태의 입헌군주제로 들어설 당시 공산주의를 합법화 했지만,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 심하게 우경화 된 일본은 공산주의와 유사한 계열의 사상들은 인정을 해주지 않았고 1960년대부터 1970년대 까지 연이어 시시각각 일본 적군파(일본 무장투쟁단체)의 테러에 노출되었다.

대한민국의 반공 정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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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전 1920년대자유시 참변이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있어 방법론에 있어 차이가 있어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의 갈등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에서의 반공주의는 해방 직후 만주한반도 북부에 진주한 소련군들의 기독교 탄압과 소유를 공유화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한반도 이북이 거주하는 주민들이 대규모로 월남하면서 견고하게 형성되었다. 그렇지만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이념과 맞지 않아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공식적으로 선언된 것은 아니며 단지 재산권을 침해하는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경제적 자유를 지킬 목적으로 시행하였으며 특히 1948년 여수·순천 사건 이후 제정된 국가보안법에 근거하여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반하는 공산주의 활동에 대해 국가변란이라고 하면서 강력한 반공 정책을 시행하였으나 실제로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데 활용되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통치했을 시절에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던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나 그에 가담한 자들로 몰아 국외로 추방되거나 처벌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인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 등으로 인하여 반공주의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면서 국내,외에서 비판을 받았다. 거창 양민 학살 사건 등 민간인 집단 살해를 하면서 기승을 부렸던 반공주의에 의해 많은 피해가 있었으며 1961년 군사정변을 하면서 반공을 국시로 여긴 군부는 1968년에 국가재건과업의 제1목표인 반공체제를 강화함으로써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공산계열의 활동을 봉쇄하고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는 반공법을 제정하면서 국가보안법 제1조에서 정한 단체 중에서 "공산계열의 노선에 따라서 활동하는 단체"를 특정하여 법률에 의하여 반공을 공식화하였다. 하지만 1980년에 폐지되어 현재 법률상 공식적인 반공주의는 존재하지 않으나 6,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반공주의가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과거에 군사정부가 정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야당 정치권, 노동계, 재야 세력 등을 탄압하는데 활용했던 반공주의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기독교가 중심이 된 보수 진영에서 복지정책, 사학이나 대기업에 대한 규제 정책 등을 비판할 때 정부 비판이나 반정부 시위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기타 국가들의 반공 정책[편집]

터키, 오스트레일리아, 모로코, 태국, 군사독재정권의 대한민국과 피노체트 군사정권시절의 칠레 등이 강력한 반공 정책을 실시했다. 1970년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정부들은 콘도르 작전을 전개해 반체제인사 수 만명을 살해했다. 냉전 종식 이후 거의 대부분 국가들은 냉전 종식 이후, 반공 정책이 약화됐다.

대중문화 속의 반공주의[편집]

한국 천주교와 반공주의[편집]

한국 천주교는 일제시대부터 가톨릭 액션이라는 가톨릭 교회 평신도들의 사회운동을 통해 반공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한국의 가톨릭교회는 1920년대 초부터 교황의 반공적 교서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가톨릭 교리와 반공주의가 결합되었다. 당시 천주교의 최고 지도자들은 앞장서서 신자들의 반공적 행동을 촉구하였다. 노기남 주교는 총선거를 앞두고 관할교구 교회들에 공문을 보내 "공산주의적 세력 밑에 강제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하루 바삐 천주께서 주신 인권과 자유를 찾기 위하여, 또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공산주의자들이 회개하기 위하여"성모께 특별한 전구를 간청할 것을 명했다. 또 1950년2월 주교들은 교회의 사회적 입장을 집대성한 공동교서 '사회질서 재건에 대하여 교도와 동포에게 고함'에서 "공산주의야말로 인민의 아편'이라고 주장했다. [3]

비판[편집]

반공주의는 대개 종교와의 유착 및 자본주의에 대한 독선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 비판받는다. 반공주의자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의 원인을 개인의 의지박약이나 외부의 선동 등으로 돌리면서 노력하기만을 강요하고 사회문제의 해결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자본주의를 비판할 경우 거의 대부분 전체주의적, 국가주의적 명분을 내세워 무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비판의 비판 반공이 종교와의 연대를 기본으로 한다는 말은 근거가 없고 반공을 하는 세력중의 일부분으로 종교세력이 포함된다.

자본주의를 비판할 경우 전체주의 국가주의적 명분을 내세워 무력을 행사한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의 경우 공산주의 세력이 무장혁명을 통해 자신의 체제를 세우려는 시도가 먼저 있었고 그 진압과정에서 무력충돌이 있었다.

동시대 북한의 경우 대한민국과 같은 무장폭동이 전혀 없었음을 상기한다면 공산주의의 폭력이 먼저인지 반공세력의 무력행사가 먼저인지 반증하는 예가 될 수 있다.

문학[편집]

각주[편집]

  1. 반공주의 기사문1
  2.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2060711271
  3. 강인철《한국천주교의역사사회학》(한신대학교 출판부, P 133~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