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 일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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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일번지》는 1997년 6월 30일부터 1997년 10월 22일까지 방영되었던 매주 월~목 밤 21시에 방영되었던 SBS드라마인데 3회분에서 출연자가 사창가를 보는 낯뜨거운 장면과 대사 등으로[1] 무책임한 비난을 샀으며 급기야 6~7%대의 저조한 시청률 탓인지 조기종영(11월-> 10월)되는 수모를 당했다[2].

제작진[편집]

출연진[편집]

이모저모[편집]

  • 전작이면서 SBS 9시 뉴스의 신설에 따라 오후 8시 25분에 방송된 행복은 우리 가슴에가 출연진 대부분이 30대 후반이라 극 분위기를 저하시켜 무책임한 비난을 산 데 이어 동시간대 KBS 1TV 정 때문에, MBC 세 번째 남자로 인한 시청률 부진 탓인지 78회 만에 조기종영당하자 SBS는 SBS 9시 뉴스를 없애는 동시에 8시대로 환원시켰으며 행복은 우리 가슴에 후속작 <미아리 일번지>부터 일일극 시간대도 오후 8시 55분으로 변경했다.
  • 아울러, 첫 회부터 집필을 맡아 온 작가 고혜정씨가 건강사정으로 인해 빠져 13회부터는 박찬성씨가 집필을 맡아왔다[4].
  • 이 과정에서 "시청률에 너무 집착한다" "지나치게 조급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그 이유는 잦은 프로그램 개편으로 일일극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시청률은 이전 일일극 행복은 우리 가슴에보다 훨씬 높은 평균 10~11%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측된다[5].
  • 그 결과 담당 PD 이종수씨나 연기자한테서 대본이 좋다는 소리를 들어 온 작가 고혜정씨는 SBS의 이번 조치로 날벼락을 맞은 셈이 됐는데 코미디 프로그램 작가로 인기를 끈데 힘입어 일일극에 발탁된 고혜정 작가는 12회 만에 중도하차함으로써 이미지를 상실했으며 <미아리 일번지> 때문에 KBS와 가계약한 일요아침드라마를 포기한 바 있었다[6].
  • 당초 1997년 5월 19일 첫 회가 나갈 예정이었지만 일일극이 다른 드라마에 비해 제작시간도 길고,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연기자들의 계산 탓인지 주요 배우들 섭외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 때문에 1997년 6월 30일로 첫 회가 변경됐는데[7] 이들 중 정흥채는 연극 스케줄과 겹쳐 캐스팅 제의를 포기해 버린 것으로 알려졌다[8].
  • 이렇게 되자 전작 행복은 우리 가슴에에서 호흡을 맞춘 한진희홍학표를 또다시 투입시켰다.


  1. 김갑식 (1997년 6월 30일). “드라마 「미아리 일번지」첫발부터 삐걱”. 동아일보. 2015년 9월 1일에 확인함. 
  2. 이무경 (1997년 8월 18일). “【방송】 시청률에 무릎끊는 SBS ‘미아리…’”. 경향신문. 2015년 9월 1일에 확인함. 
  3. 전상희 (1997년 7월 15일). “[미아리일번지] 방송 보름만에 작가교체”. 스포츠조선. 2015년 9월 1일에 확인함. 
  4. 전상희 (1997년 7월 15일). “[미아리일번지] 방송 보름만에 작가교체”. 스포츠조선. 2015년 9월 1일에 확인함. 
  5. 전상희 (1997년 7월 17일). “<TV·연예> SBS「미아리…」작가 돌연교체”. 국민일보. 2015년 9월 1일에 확인함. 
  6. 전상희 (1997년 7월 17일). “<TV·연예> SBS「미아리…」작가 돌연교체”. 국민일보. 2015년 9월 1일에 확인함. 
  7. 양성희 (1997년 5월 12일). 우리 가슴에 준비 SBS “오는 19일 프로개편/방송3사 ‘시청률 우선’”. 문화일보. 2015년 9월 1일에 확인함. 
  8. “[정흥채] 연극무대 복귀”. 스포츠조선. 1997년 6월 12일. 2015년 9월 1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