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정 헌법 제15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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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수정 헌법 제15조(Fifteenth Amendment to the United States Constitution 또는 Amendment XV)는 남북 전쟁 후 성립된 3개의 헌법 수정 조항(재건 수정안 군) 중 하나이며, 시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할 때 그 시민의 인종, 피부색 또는 이전의 예속상태(노예)에 근거하여 부여를 거부하여서는 안된다고 선언한 것이다. 1869년 2월 26일에 상정하여, 1870년 2월 3일에 비준되었다.

원문[편집]

  • 제1절 : 미국 시민의 투표권은 인종, 피부색 또는 이전 예속상태를 이유로, 미국 또는 어떤 주에 의해서도 부정되거나 제한되지 아니한다.
  • 제2절 : 의회는 적절한 입법을 통하여 본조를 강제할 권한을 가진다.

해석과 역사[편집]

미국 헌법 수정 제15조는 재건 수정안 중의 하나이다. 노예제를 폐지한 수정 제13조, 시민권을 정한 수정 제14조과 더불어 하나로 논의될 수 있다. 이 수정안은 주 또는 연방 정부에 시민의 투표 자격으로 시민의 인종, 피부색 또는 이전 노예 예속 상태를 고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기본적인 목적은 원래 노예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이었다. 이 수정 조항의 규정에 따라 처음으로 투표한 사람은 1870년 2월 4일에 투표가 있었던 뉴저지주 퍼스 앤 보이시 교육위원회 위원 선거에서 토마스 맨디 피터슨이었다. 이날은 수정 제15조가 비준된 다음날이었다. 그러나 수정 제15조의 규정이 실제로 모든 주에서 확립된 것은 약 1세기가 지난 후, 1965년의 〈선거권법〉을 기다려야했다.

선거의 머릿수 및 절대 수가 기본이 된 후 1865년에서 1880년 사이에 미국 역사의 다른 시대보다 더 많은 흑인들이 정치적 직무로 선발되었다. 재건기에 어떤 주도 흑인 주지사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많은 주 의회는 실제로 많은 인구가 있는 흑인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 의회는 보편적인 공교육라고 하는 오늘날 당연한 것으로도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개념을 도입했다. 또한 인종 차별에 근거한 법률은 예를 들면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는 법률(소위 반인종간 결혼법)도 철폐했다.

쿠 클럭스 클랜과 같은 집단이 흑인 투표자나 백인 공화당원을 위협했지만, 연방 정부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남부의 정부를 지지한 것은, 공화당 지지자의 대부분이 투표할 수 있어 은밀한 지배도 가능해진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뉴올리언스에서 여러 인종이 섞인 정부가 가능했으며, 백인 폭도들이 점령을 하자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은 연방군을 파견해 선거에서 뽑힌 시장을 취임시켰다.

그러나, 접전 끝에 선발된 러더퍼드 B. 헤이스는 남부의 여론을 달래기 위해 연방군의 철수에 동의했다. 헤이스는 공화당원이 흑인의 투표권을 확보하기 위해 공갈을 처벌하는 법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딥사우스에서의 투표 방해를 간과하고 있다. 연방 의회는 이때 행동을 일으키고 싶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투표소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을 공표하자는 법안조차 통과하지 않았다. 규제가 없는 채로 흑인과 공화당원에 대한 투표소 폭력이 증가하고 심지어 살인도 일어났다. 이들 대부분은 법의 강제력에 의한 간섭도 없이 이뤄졌다.

1890년대까지 많은 남부 주는 읽기쓰기 능력 시험과 투표세 등 어려운 투표 자격 법률을 제정했다. 어느 주에서는 투표를 위한 등록 위치를 찾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그 위에서 주 헌법에 "할아버지 조항"이 명기되어 1867년까지 투표권을 얻고 있던 사람과 그 자손에 대해서는 시험이나 투표세를 면제함으로써 백인 투표율은 유지하려 했지만 할아버지 조항에 대해서는 1915년에 연방 최고 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려, 결과적으로 가난한 백인의 투표권도 빼앗게 되었다. 연방 선거에서 투표세에 대해서는 1964년 발효된 미국 헌법 수정 제24조에서 금지되어, 1966년 연방 대법원 판결에서 연방과 주 선거에서도 투표세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상정과 비준[편집]

미국 의회는 수정 제15조를 1869년 2월 26일에 상정했고, 이어 아래의 주에 비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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