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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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봉악단
Moranbong Band
Moranbong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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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6일 모란봉악단 시범공연에서 첫 곡 아리랑의 무대
기본 정보
결성 지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장르 , 클래식, 퓨전, , 이지 리스닝
활동 시기 2012년 ~ 현재

모란봉악단(牡丹峰樂團, 영어: Moranbong Band)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자악단으로서 여성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2012년 7월 6일 첫 시범공연을 가졌다.[1] 모란봉악단 단장 현송월의 2014년 5월 17일 노동신문 기고에 의한다면 악단의 이름 모란봉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의한다면, 김정은은 "문학예술부문에서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원대한 구상을 안고 새 세기의 요구에 맞는 모란봉악단을 친히 조직해 주었다"고 한다.[2] 김정은의 모란봉악단에 대한 관심과 지도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 즈음한 2014년 5월 17일 노동신문의 보도 특히 단장 현송월, 부단장 장정애, 바이올린 연주자 차영미의 기고문에 놀라울만큼 자세하게 나와있다.

첫 공연에서 모란봉악단은 하이힐과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들이 영화 '록키' 주제곡과 '마이 웨이(My Way)'를 연주하고, 미키마우스와 백설공주 같은 미국 만화 주인공들이 출현하는 파격적인 무대를 보여주었는데[3] 이러한 모습은 스위스 유학 경험이 있는 김정은과 은하수관현악단 출신의 가수인 ‘감각 있는’ 퍼스트 레이디 리설주가 뒤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관측도 있다.[4] [5] [6]

북한의 내각 문화상 박춘남에 의한다면 모란봉악단은 노래소리 높은 곳에 혁명의 승리가 있다는 이치를 구현한 이른바 음악정치의 전위대로서 노동당의 선군정치를 뒷받침하여 이른바 주체혁명의 새시대를 선도해나가는 사상전선의 기수로 떠받들여지고 있다고 한다.[7]

창단 배경[편집]

"나의 첫 사랑은 음악"이라는[8] 유명한 인생지론을 갖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음악은 정치에 봉사해야 하며, 정치가 없는 음악은 향기가 없는 꽃과 같고, 음악이 없는 정치는 심장이 없는 정치와 같다"라고 규정하였다.[9] 나아가서 북측의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김정일이 "인류 정치사상 처음으로 음악정치라는 새로운 경륜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빛나게 현실화한 위대한 정치가"라고 찬양하였다.[10] 다시 말해 북한의 음악은 유일사상과 부자세습 체제의 구축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그 목적은 인민들에게 공산주의에로의 투쟁을 고무시켜 주는 것과 계급교양 및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사용하는데 있다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민경찬 교수는 설명하였다.[11]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정치적인 해석으로 모란봉악단의 결성은 김정일시대의 '음악정치'를 김정은시대에 계승 발전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하였다.[12] 다시 말해 김정일시대의 음악정치가 이른바 조선식 전자음악을 연주한다는 왕재산경음악단(1983년 창단, 그후 왕재산예술단으로 변경)과 보천보전자악단(1985년 창단) 그리고 조선식 팝스오케스트라인 은하수관현악단(2009년 창단)으로 대표된다면 김정은시대의 음악정치는 2012년 모란봉악단으로 그 화려한 시작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파격적인 첫 시범공연[편집]

김정일 시대에 도입되기 시작한 전자악기는 모란봉악단에서 더욱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모란봉악단은 첫 무대에서 전기바이올린 3명과 전기첼로 1명의 현악 4중주단을 중심으로 전기기타/베이스 각 1명, 드럼 1명, 색소폰 1명, 피아노 1명, 전자건반악기(신디사이저) 2명의 연주자들과 가수 6명으로 이루어진 공연을 선보였다.

모란봉악단 공연이 주목을 받은 것은 그 화려한 조명과 무대장치, 현대적 전자악기, 여성단원들의 패션과 헤어스타일 등 기존의 북한 공연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첫 무대였던 2012년 7월의 시범공연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공산주의 폐쇄국가인 북한에서 자본주의의 상징인 디즈니 영화의 주인공 인형들이 무대에 등장하고 '원쑤'의 나라인 미제국주의 상업영화 '록키'의 영상을 무대 대형 스크린에 보여주고 주제곡까지 연주하였다. 미제국주의의 사상문화적 침투를 단속하고 통제했던 북한으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변화였다. [13]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는 "모란봉악단의 파격적인 행보는 주민들에게 김정은 시대에는 북한이 달라질 수 있다는 '변화'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젊고 활기찬 새로운 지도자상,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데 활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14]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모란봉악단의 첫 시범공연에 대하여 "공연의 주제와 구성으로부터 편곡, 악기 편성, 연주 기법과 형상에 이르는 모든 음악요소들을 기성 관례에서 벗어나 대담하게 혁신하였다"고 평가했으며[15] 또한 노동신문은 "우리 당의 음악정치를 맨 앞장에서 받들어 가는 모란봉악단이야말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최후 승리를 위한 대진군을 힘있게 선도해 나가는 제1나팔수다"라고 보도하였다.[16]

첫 공연 이후의 한계[편집]

2013년 12월 21일 로동신문 1면의 김정은 찬양노래 표지기사

모란봉악단의 파격적인 시범공연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해외 유학을 경험한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새로운 개혁과 개방의 의지를 보여 준 것이라는 평가와 기대가 교차하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모란봉악단의 신곡은 '불타는 소원'(2012년), '우리는 당신밖에 모른다'(2013년), '그이 없인 못살아'(2013년), '자나 깨나 원수님 생각'(2014년), '날아가다오 그리운 내 마음아'(2014년), '우리의 김정은 동지'(2015년), '김정은장군께 영광을'(2016년), '아버지라 부릅니다'(2017년) 등 김정은 개인에 대한 찬양과 충성을 맹세하는 가사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13] 가장 최근에 발표된 '아버지라 부릅니다'는 악단의 가수 류진아가 2014년 5월 노동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었던, 김정은을 아버지라 부르고 싶었다는 내용을 모티브로 삼은 듯 같은 제목이기도 하다.

2013년 12월 21일 노동신문은 1면 전면에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 '그이 없인 못 살아'라는 신곡 악보를 김정은 사진과 함께 컬러로 실었는데, '우리의 운명 김정은 동지, 그이 없으면 우린 못 살아'라는 비장한 가사로 끝나는 노래 악보에는 '절절하게 부르라'는 주문이 쓰여 있다. 또한 노동신문은 다음 날에는 1면에 이 노래에 대한 반응을 보도하였는데 노래가 김정은을 지칭하는 '경애하는 원수님'만을 하늘처럼 굳게 믿고 사는 천만군민의 민심을 반영했다고 주장하였다.[17] 결론적으로 모란봉악단은 김정은의 음악정치, 그 선봉에서 최고의 역할을 떠맡고 있는 셈이다.

2017년 4월 북한의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제국주의의 사상 문화적 침투 책동에 주동적으로 대처하여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반동적인 사상 문화'가 제국주의 침략의 '주역'으로 등장했다고 설명하며 중동과 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벌어진 '색깔 혁명' 즉, 정권교체 혁명을 거론하며 제국주의의 사상적 침투가 '심각한 사회정치적 혼란과 파국적 위기'를 가져왔다고 강변하였다.[18] 2012년 7월 모란봉악단의 첫 공연에서 미 제국주의 상업영화 주제가와 그 캐릭터 인형들을 선보인 것과는 전혀 다른 기조가 아닐 수 없다.

첫 공연 이후의 변화[편집]

2012년 7월 6일의 첫 시범공연에서 모란봉악단은 1시간 40분의 공연시간 동안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여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미국의 상업영화 주제가들을 포함하는 많은 외국음악을 연주하였다. 하지만 첫 공연 이후 외국의 클래식 음악을 제외한 미국의 상업음악들은 다시는 연주되지 않았다. 외국 클래식 음악도 지금까지의 30여 차례 이상의 공연에서 3-4번 정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축소되었다. 그 비워진 공간에는 당과 영도자 그리고 체제를 찬양하는 노래들로 채워졌음은 물론이다.

다음은 첫 공연에서 연주된 외국음악 목록이다.[19]

경음악 <차르다쉬>(외국곡) Vittorio Monti <Csardas>, 경음악 <싸바의 녀왕>(외국곡) Michel Laurent <La Reine De Saba>, 경음악 <별의 세레나데>(외국곡) Paul de Senneville <Coup De Coeur>, 경음악 <뻬넬로뻬>(외국곡) Paul Mauriat <Penelope>, 경음악 <이제 곧 날아오르리>(외국곡) 영화<Rocky> 주제가<Gonna Fly Now>, 경음악 <장밋빛을 띤 미뉴에트>(외국곡) Paul Mauriat <Minuetto>, 경음악 <나의 길>(외국곡) Claude Francois·J. Revaux 작곡 Paul Anka 작사 <My Way>, 경음악과 노래 <세계동화명곡묶음> ① <세상은 좁아> Richard M. Sheman and Robert B. Sheman <It’s a small world>(작은 세상), ② <톰과 제리>영화<Tom And Jerry> 주제가, ③ <언젠가 꿈속에서>영화<Sleeping Beauty> <Once Upon a Dream>, ④ <곰아저씨 뿌>영화<Winnie the Pooh> 주제가, ⑤ <비비디바비디부>영화<Cinderella> <Bibbidi Bobbidi Boo>, ⑥ <미키 마우스 행진곡>티비쇼< The Mickey Mouse Club> 주제가, ⑦ <꿈은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영화<Cinderella> <A Dream is a Wish Your Heart Makes>, ⑧ <미인과 야수>영화<Beauty And The Beast> 주제가, ⑨ <언젠가는 나의 왕자님이 찾아오리>영화<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 <When you wish upon a star>, ⑩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영화<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 주제가, ⑪ <백조의 호수>발레<Swan Lake> 주제가, ⑫ <세상은 좁아>, 경음악 <집씨의 노래>(외국곡) Pablo de Sarasate <Zigeunerweisen>, 시범공연에서 연주되었으나 녹화영상에서 제외된 음악 ⓐ 경음악 <결투>(외국곡) 팝송<The Duel> ⓑ 경음악 <승리>(외국곡) 랩송<Victory> ⓒ 경음악 <달라스>(외국곡) 컨츄리송<Dallas>

첫 시범공연에서 악단 멤버들은 모두 드레스 차림으로 공연하였다. 악단의 핵심 현악 4중주단은 1부에서 어깨 또는 등이 노출되는 화려한 보랏빛 드레스를 입었으며, 2부에서는 무릎 위 짧은 검은 드레스 차림이었다. 현악 4중주단을 제외한 나머지 연주자들은 1, 2부 동일하게 흰 드레스가 공연의상이었다. 6명의 가수들은 화려한 한복으로 시작하여 무려 4종류의 서로 다른 드레스를 번갈아 입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 후 모란봉악단의 공연의상은 군복으로 바뀌게 된다. 예외가 있었다면 2012년 7월 28일 공연의 2부, 2013년 1월 1일 공연 그리고 2014년 3월의 공연뿐이었다.

모란봉악단은 공연 성격에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군복의상으로 무대에 오르는데 모란봉악단 부단장 김운룡에 의한다면 악단의 전체 성원들이 군복을 입도록 김정은이 '은정어린 조치'를 내려준 것이라고 한다.[20] 하지만 여러 군사제복을 입어도 비교적 짧은 스커트와 하이힐은 변하지 않았다. 또한, 머리 모양 역시 초기와 다르게 변화를 보여주게 된다. 첫 공연에서 가수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스타일을 보여주었으나 2013년 1월 1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이후에는 모두 짧은 단발머리로 바뀌게 된다.

2012년 7월 28일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의 Zigeunerweisen을 연주하는 모란봉악단의 현악 4중주단(왼쪽부터 선우향희, 홍수경, 차영미, 유은정)

첫 시범공연에서 선우향희(바이올린), 홍수경(바이올린), 차영미(바이올린), 유은정(첼로)의 현악 4중주단은 모란봉악단의 중심이었다. 그들은 무대 중심에서 그리고 무대 전면을 누비며 몬티(V. Monti)의 Csardas,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Zigeunerweisen 같은 현악 4중주를 들려주었다. 다른 연주자들의 의상이 1, 2부 동일하게 흰 드레스이었지만, 현악 4중주단은 1부에서는 화려한 보랏빛 드레스 2부에서는 짧은 검은 드레스를 입어서 다른 연주자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보통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제1 바이올린 파트의 수석 연주자이듯 제1 바이올린 선우향희도 모란봉악단의 악장으로서 곡을 진행하였다. 공연이 끝나고 악단의 단원들이 김정은과 청중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때도 무대 전면에 위치하였던 가수 6명은 뒷걸음질로 현악 4중주단에게 전면을 양보하고 현악 4중주단이 무대 제일 앞에서 인사를 하는 풍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후 선우향희가 악단을 떠나면서 현악 4중주단은 악단의 중심이 아니라 악단의 한 요소로 전락하는 듯 보였으며 이후 어느 공연에서는 무대 전면이 아닌 무대 측면의 뒷줄에 자리 잡는 '굴욕'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악단의 평가와 위상[편집]

모란봉악단의 공연이 조선중앙TV를 통해 녹화방송되면 평양의 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는 현지 방문객의 증언이 있었다.[21] 또한 조선중앙TV 등 북한방송은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뮤직비디오처럼 편집해 보여주고[22] 있을 뿐만 아니라 평양 시내의 대형 스크린 그리고 고려항공의 기내 스크린에서 조차 자주 나오는 것은 모란봉악단의 공연 영상이었다고 한다.

고려항공 기내 스크린에서 나오는 모란봉악단 '단숨에' 공연 영상

기성의 틀과 관례를 벗어난,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모란봉악단에 대하여 노동신문은 "자기의 고유한 얼굴과 막강한 창작실력을 가진 멋쟁이악단, 새 세기 선군조선의 예술을 대표하고 선도하는 관록있는 예술단체"라고 평가하였다.[23]

2013년 8월 어린이의약품 지원 건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던 SBS 오기현 PD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 주민들은 악단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선우향희'를 최고의 스타로 여긴다고 한다. 이른바 북한의 아이돌인 것이다. 예전에는 '휘파람'을 부른 전혜영이나 '반갑습니다'의 이경숙 등 가수들이 최고 인기였는데, 오 PD는 가수도 아닌 연주자가 스타로 떠오른 것이 이례적이라고 부연하였다.[24]

또한 2014년 3월 일반에게 공개된 모란봉악단의 공연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관심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노동신문은 공연 첫날 5천석 규모의 4.25문화회관이 초만원을 이뤘다고 보도한 데 이어, '모란봉악단 공연 관람 열풍으로 수도 평양이 흥성인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가예술공연국으로는 매일같이 모란봉악단 공연 관람과 관련한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고 설명하였다.[25]

2014년 5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를 맞아 노동신문은 "문학예술혁명의 포성을 힘차게 울리는 것은 제국주의자들의 반동적인 사상문화를 혁명적 사상공세로 단호히 짓부시고 사회주의 수호전에서 결정적 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필수적 요구"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전국을 들었다 놓고있는 모란봉악단의 음악포성, 노래포성은 문학예술의 감화력과 견인력이 얼마나 큰 가 하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주고 있다"며 "오늘 우리 당은 문학예술 부문의 일꾼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이 모란봉악단의 창조정신, 투쟁기풍을 적극 따라배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26] 모란봉악단은 따라 배워야 할 모범적인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015년 11월 26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최한 '김정은 정권 4년 평가와 남북관계 전망' 학술회의에서 서구의 전자음악 특히 록이나 팝 음악에 대하여 자본주의 문화로 비판하였던 북한이 80년대 이후에는 보천보전자악단이나 왕재산경음악단을 만들어서 새로운 문화흐름을 수용하기 시작하였던 것처럼 사회문화적 상황이 변화하는 경우 문화정책도 일정 부분 새로운 조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하여 왔는데 이러한 정책변화를 상징하는 것이 모란봉악단이라고 설명하였다. 외부문화의 유입확대, 주민들 특히 젊은 세대의 문화취향 변화는 북한판 걸그룹이라는 문화정책적 대응을 가져왔다는 것이다.[27]

악단의 음악적 스펙트럼[편집]

배인교 단국대 연구교수는 '2010년대 북한 중앙음악단체의 민족악기 편성 양상'(국악원 논문집, 2015)에서 북한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음악 현상만을 검토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그 이유는 수많은 문화예술이 대부분 북한의 정치적 사안들과 맞닿아 있으며 당의 정책적 요구가 수용된 결과물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28] 마찬가지로 모란봉악단 역시 곡목 선정이나 배치, 공연의상 하다못해 단원들 모두 짧은 단발머리로의 변신 또한 모두 당의 선전선동 부서 결정이라는 관측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악단의 새로운 음악들이 영도자의 찬양만을 노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그 한계이기도 하다.

김정일은 2010년 4월 준공식을 가진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에 보낸 친필명제에서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29]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면서 다른 나라의 우수한 것을 보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모란봉악단은 초기에 미국 상업영화 주제가를 비롯한 외국의 음악을 상당수 연주한 것으로 보이지만 음악예술의 영향과 파급력을 염려한 지도부는 그후 체제수호와 당 그리고 영도자를 위한 노래들로 공연을 채우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란봉악단의 세계명곡묶음 연주(2013년 1월 1일 공연 영상[30], 2014년 5월 19일 공연 영상[31])는 세계 음악 팬들의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외국음악 연주로는 모짜르트 No.40,[32] Csárdás,[33] Zigeunerweisen,[34] Ma Reine de Saba[35] 등이 있다.

모란봉악단의 악기는 기타, 베이스, 드럼, 신디사이저 등 일반적인 록 그룹의 구성과 다를 바 없지만 여기에 바이올린, 첼로의 현악 파트와 피아노, 색소폰 등을 더해 한층 폭넓은 음악적 표현력을 갖추게 되었다. 모란봉악단의 이른바 시그니처 송으로 불리우는 '단숨에'[36]의 예를 보면, 중반부의 다이내믹한 기타 솔로에 이어지는 바이올린의 화려함은 이것이 전체주의 국가의 군가풍 노래가 아니라 서방세계의 로큰롤 송으로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단숨에'는 이른바 로켓 송(rocket song)으로도 불리우는데 성공적인 로켓 발사가 거듭될 때마다 새로운 편곡으로 발표되어서 지금까지 4가지의 '단숨에' 편곡 버전이 존재하고 있다.

악단의 상징물을 바이올린을 휘감는 오선지로 정했을 정도로 현악파트는 악단의 핵심이었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현악 4중주는 모란봉악단의 초기 음악적 정체성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예이었던 것이다. 종래의 북한 노래들 '그 품 떠나 못살아'[37], '10월입니다'[38], '내 삶이 꽃펴난 곳'[39], '우리의 행군길'[40], '결전의 길로'[41] 등은 현악 4중주의 편곡만으로 전혀 다른 노래가 되었다. 김정은을 눈물짓게 만들었다는 선우향희의 바이올린 독주 '매혹과 흠모'[42]는 그 노래의 배경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바이올린의 깊은 선율에 빠져 감상에 젖을 정도이기도 하다. 또한 경음악 '백두의 말발굽소리'[43]는 제1 바이올린, 제 2바이올린, 제 3바이올린, 첼로, 키보드, 색소폰,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 등이 차례로 나서 다이내믹한 솔로 연주로 말발굽소리를 들려준다. 이 음악은 2000년 5월 남북 정상회담을 축하한다는 취지로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의 공연이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있었을 때 연주되어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친숙한 멜로디이기도 하다. '백두의 말발굽소리'처럼 모든 연주자들이 차례로 솔로를 선보이는 방식은 '설눈아 내려라'[44], '내 나라 제일로 좋아'[45]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으로 모란봉악단은 전자악기에 꽹과리를 편성하여 민족적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전자악기로 형상하는 민요의 음조는 2014년 5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서 김설미가 부른 '바다 만풍가'[46]가 대표적으로 전자악기만으로 흥겨운 굿거리장단의 음악을 표현하였다.[28] 이어서 그해 9월 모란봉악단의 신작음악회에서는 민요풍 노래 '세월이야 가보라지', '철령아래 사과바다'가 등장하였다. 전통악기인 꽹과리의 안땅장단 연주로 시작하는[28] '철령아래 사과바다'[47]는 민요창법에 능한 김설미가 불렀는데 김설미는 이후 공훈배우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북측 음악관계자는 "모란봉악단이 펼친 특색있는 민요무대는 우리 선률이 제일이고 우리 장단이 제일이라는 확고한 관점을 가지고 민족음악을 장려하고 발전시킬데 대한 당의 의도를 빛나게 실천하였다"고 칭송하였다.[48] 또한 2016년 5월 공연에서는 민요 풍년가를 소재로 한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49]를 전자음악으로 편곡하여 들려주었는데 장새납 독주부분을 놀랍게도 기타의 솔로 연주로 멋지게 대신하였다. 대한민국의 교향악단들도 때로는 장새납을 구할 수 없어서 클라리넷이나 비슷한 국악기인 태평소장새납 독주부분을 대신하기도 한다.

악단의 구성원[편집]

악단의 연주자, 가수들은 평양음대 혹은 평양 금성학원 출신의 고급 음악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50] 그런데 북한에서는 연주자, 가수들을 모두 뭉뚱그려 '배우'로 호칭한다고 한다.

연주자[편집]

이름 소개
선우향희(전기바이올린, 악장)

선우향희는 김원균 평양음대를 졸업하고 2009년 만수대예술단 산하 삼지연악단에 입단하였다. 평양음대 재학 시절인 2008년 10월 제18차 2.16 예술상 개인경연 부문의 수상자이며,[51] 2011년 1월 삼지연악단의 신년축하공연에서는 선우향희만 유일하게 솔로 연주의 무대(바이올린 독주 사라사테 - Zigeunerweisen)를 갖기도 하였다.[52]
2012년 모란봉악단의 악장 겸 제1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노동신문은 2012년 7월 9일 자에서 김정은이 모란봉악단 시범공연을 관람한 직후 공연의 성과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악장인 선우향희동무가 정말 잘한다고 치하하였다"고 보도하였다.[53] 또한 조선중앙통신김정은이 악단 리더 선우향희의 훌륭한 디렉팅을 칭송하였다고 전했다.[54]
하지만 선우향희는 모란봉악단을 담당하는 북측 선전선동 부서의 선택으로부터 차츰 멀어지는 듯 보였다. 음악의 주 선율을 담당하는 제1 바이올린 연주자 그리고 악장(concertmaster)으로서 악단의 성공에 분명한 기여를 하였으나 악단내에서 파격적인 4명의 공훈배우 칭호 수여, 단원들에 대한 당 및 국가표창과 군사칭호 수여 그 어느 것도 선우향희는 받지 못하였다. 또한 2014년 봄의 몇 차례 공연에서 빠지고 다시 들어오고를 반복하다가 결정적으로 2014년 5월 19일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축하공연에서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2014년 9월 3일 모란봉악단의 신작음악회는 선우향희의 마지막 무대였다. 한편 공개되지 않은 무대인 2015년 9월 쿠바 외교사절들을 위한 공연에 잠시 출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거의 3년만인 2017년 5월 그리고 7월의 두 차례 공연에서 선우향희는 제1 바이올린 주자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2017년 7월 9일의 공연에서 선우향희는 오른손 약지에 반지를 낀 모습이 포착되었는데 이는 아마도 결혼반지인 것으로 추측되며 바이올린 연주에 방해받지 않기 위하여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지금까지는 기혼자로 보이기에 의심치 않는 가수 리옥화를 제외한다면 모란봉악단의 어떤 멤버도 반지를 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홍수경(전기바이올린)

홍수경은 신디사이저 연주자 리희경과 함께 모란봉악단의 첫 시범공연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은 멤버이기도 하다. 제2 바이올린 주자이며, 선우향희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2014년 3월 17일의 공연에서는 제1 바이올린을 담당하였다. 모란봉악단 이전에는 2011년 왕재산예술단과 2011-2012년 삼지연악단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였다.

차영미(전기바이올린)

차영미는 선우향희가 모란봉악단을 떠난 이후에는 제1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였다. 차영미는 2014년 5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 즈음하여 악장 선우향희를 제치고 그 토론에 참가하였으며 또한 김정은이 얼마나 자세하게 모란봉악단에 관심과 지도를 쏟아부었는지 알 수 있는 내용들을 노동신문 기고문을 통하여 밝히기도 하였다. 역시 모란봉악단 이전에는 왕재산예술단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였다.

유은정(전기첼로)

2016년 5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알려지지 않음(전기첼로)

유은정을 대신하여 2016년 12월 공연부터 참여하였으나 이름이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았다.

김은하(전기바이올린)

선우향희가 악단을 떠난 이후 현악기 파트는 3인조로 운영되다가 2015년 4월부터 김은하가 무대에 오르면서 다시 4인조로 편성되었다.

강평희(전기기타)

2014년 5월 19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악단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이었던 태영호의 증언에 의한다면 강평희는 2015년 5월 영국 런던의 에릭 클랩튼 공연에 김정은의 형 김정철과 동행하였다고 한다.[55] 모란봉악단 이전에는 왕재산예술단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였다.

조경희(전기기타)

조경희는 강평희 이후 2014년 9월부터 공연에 참여하였다.

리설란(전기베이스)

리설란은 2013년 2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악단을 떠났다. 이후 2015년 10월 11일 공훈국가합창단 공연에서 모습을 보였다. 2015년 10월 25일 '륙군소좌'의 군사칭호가 수여되었다.

전혜련(전기베이스)

전혜련은 2013년 4월 공연부터 리설란을 대신하여 베이시스트로 무대에 올랐다. 2016년 5월 공연까지 참여하였으며 그후 공훈국가합창단 공연에서 모습을 보였으나 2017년 9~10월 원산 함흥 신의주 순회공연에서 다시 모란봉악단 베이스 담당으로 무대에 올랐다.

알려지지 않음(전기베이스)

전혜련을 대신하여 2016년 12월 공연부터 모습을 보였으나 이름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김향순(신디사이저, 바얀)

러시안 아코디언인 바얀 연주에 능숙하기도 하다. 2013년 2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악단을 떠났다. 이후 공훈국가합창단에서 모습을 보였다. 2015년 10월 25일 '륙군대위'의 군사칭호가 수여되었다.

리희경(신디사이저)

리희경은 전기바이올린 홍수경과 함께 창단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연무대에 빠지지 않은 멤버이다. 모란봉악단 이전에는 왕재산예술단에서 신디사이저 담당으로 활동하였다. 역시 2015년 10월 25일 '륙군대위'의 군사칭호가 수여되었다.

김영미(피아노, 신디사이저)

김영미는 처음에 피아노 연주자로 모습을 보였으나, 2013년 2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김향선이 떠난 이후 2013년 4월 공연에서 신디사이저 연주자로 이동하였다. 모란봉악단 이전에는 왕재산예술단, 은하수관현악단에서 피아니스트로 모습을 보였다. 2016년 5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악단에서 떠난 것으로 보인다.

알려지지 않음(신디사이저)

김영미를 대신하여 2016년 12월 공연부터 모습을 보였으나 이름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김정미(피아노)

김정미는 2012년 12월부터 피아노 연주자로 모습을 보였다.

최정임(색소폰)

색소폰 담당이며 때로는 클라리넷 그리고 가끔 간단한 타악기를 담당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2012년 첫 공연부터 지금까지 줄곧 무대에 오르고 있는 몇 안 되는 연주자이다.

리윤희(드럼)

리윤희는 2012년 첫 공연부터 2014년 9월까지 활동하였다.

한순정(드럼)

한순정은 2014년 5월 디지틀 전자타악기를 연주하다 리윤희가 악단을 떠난 이후 드럼을 맡고 있다. 모란봉악단 이전에는 조선인민내무군협주단에서 드럼 담당으로 활동하였다.

가수[편집]

보통 하나의 공연에서 6-8명 정도의 가수가 출연하고 있다. 2012년 7월 첫 시범공연에 참여한 가수들은 김유경, 류진아, 박미경, 정수향, 박선향, 김설미이다.

이름 소개
김유경

모란봉악단의 메인보컬 정도로 여겨진다. 모란봉악단에서 세 번째로 2015년 10월 24일 공훈배우 칭호 받음. 역시 2015년 10월 25일 '륙군대위'의 군사칭호가 수여되었다.

류진아

류진아는 모란봉악단 멤버 최초로 2013년 7월 21일 공훈배우 칭호 받음.

박미경

박미경은 이전에 은하수관현악단의 가수로 활동하였다. 고음처리에 능숙하다. 어디선가 높은 화음이 들려온다면 박미경의 목소리일 것이다.

정수향

정수향은 이전에 왕재산예술단의 가수로 활동하였다. 2012년 7월 첫 공연부터 2017년 9월 최근 공연까지 비교적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박선향

2012년 첫 공연부터 2016년 12월까지 모습을 보였다.

김설미

김설미는 민요창법에 능하다. 흥겨운 굿거리장단의 '바다 만풍가', 꽹과리의 안땅장단 연주로 시작하는 '철령아래 사과바다'를 불렀다. 2014년 8월 28일 노래 '철령아래 사과바다'의 성과를 높이 사서 시계 표창을 받았으며 이후 모란봉악단에서 네 번째로 공훈배우 칭호 받음(날짜 불명).

라유미

라유미는 2013년 2월 처음으로 악단 공연에서 모습을 보였으며 불과 1년만인 2014년 5월 17일 모란봉악단 두 번째로 공훈배우 칭호 받음. 그러나 2014년 9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더는 무대에 오르지 않고 있다.

리명희

2012년 - 2015년 4월까지 활동. 이후 2016년 연말에 왕재산예술단에서 모습을 보임.

조국향

조국향은 2015년 9월부터 모란봉악단 공연에 모습을 보였다. 무대에서 늘 미소짓는 가수가 있다면 바로 조국향일 것이다. 박선향과 함께, 2015년 12월 무산된 중국공연 시 호텔 로비에서 마주친 국내 특파원들과 미소를 띠며 짧지만 따뜻한 대화를 나누었다.

리옥화

리옥화는 2014년 9월, 2016년 12월의 공연에 모습을 보였다. '륙군중좌'의 계급. 예전 왕재산경음악단, 보천보전자악단 산하 '모란봉' 소속 가수. '모란봉6중창조' 가수로 은하수관현악단의 공연에 출연. 2011년 7월 28일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56]

리수경

리수경은 2015년 그리고 2017년 7월의 공연에 모습을 보였다.

김효심

김효심은 2015년 10월부터 모란봉악단의 공연에 모습을 보였다.

유봉미

유봉미는 청봉악단 가수였으며 2016년 5월이후에는 모란봉악단 무대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청예

김청예는 2017년 7월 새롭게 모습을 보였다. 이전에 만수대예술단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옥주

김옥주는 청봉악단 가수이었으나, 2017년 9~10월 모란봉악단의 원산 함흥 신의주 지방공연에서 모습을 보였다. 예전 은하수관현악단의 모란봉중창조 가수로도 활동하였다.

지도부[편집]

이름 직함 소개
현송월 단장

예전 왕재산경음악단, 보천보전자악단 소속 가수. '륙군대좌'의 계급.
2017년 10월 7일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진입했다.[57]

장정애 부단장

예전 왕재산경음악단 소속 가수. 성악 지도. '륙군상좌'.

김운룡 부단장

인민예술가 작곡가. 행정. '륙군대좌'.
왕재산경음악단/왕재산예술단 작곡가 출신.

황진영 부단장

인민예술가 작곡가. '륙군대좌'.
1959년 7월 15일 평양 출생. 평양음악무용대학 작곡학부 졸업. 중앙방송위윈회 예술단, 영화 및 방송음악단, 국립교향악단 연주가, 작곡가. 보천보전자악단 작곡가 출신.

우정희 창작실 실장

인민예술가 작곡가. '륙군대좌'.
1954년 4월 11일 중국 길림성 연길시 출생. 평양음악무용대학 졸업 후 음악무용대학 교원. 백두산창작단 배우, 만수대예술단 작곡가, 왕재산경음악단 작곡가, 보천보전자악단 작곡가 출신.

안정호 창작실 부실장

인민예술가 작곡가. '륙군대좌'.
1958년 6월 11일 평양 출생. 평양음악무용대학 졸업 후 인민군협주단 연주가, 만수대예술단 연주가, 왕재산경음악단 연주가 작곡가, 보천보전자악단 작곡가 출신.

차호근 창작실 실원

작사가

길원금 녹음사

'레코딩 엔지니어'

공연 목록[편집]

다음은 모란봉악단의 날짜별 공연 목록이다. 공연 별로 더 자세한 정보는 Pekka Korhonen's Moranbong Band Discography[58]에서 발견할 수 있다.

2012년[편집]

2012년 7월 모란봉악단의 첫 시범공연이 있었던 만수대 예술극장
  • 7월 6일 (만수대예술극장) : 첫 시범공연. 1, 2부로 나누어서 공연하였으며 1부의 첫 곡은 아리랑, 2부는 영화 록키 주제가로 시작. 공연의상은 화려한 드레스. 공연시간의 상당 부분을 외국음악 연주와 노래로 할애하였다.
  • 7월 28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7.27 전승절 경축공연. 1, 2부로 나누어서 공연. 1부는 국방색 군복, 2부는 비교적 짧은 검은 드레스를 입고 공연. 2부 공연에서 Csárdás, Minuetto, Ma Reine de Saba, Mozart No 40, Zigeunerweisen 외국음악 연주. 외국 음악이 메들리가 아닌 개별 곡으로 연주된 것은 이 공연이 그 마지막이었음(유일한 예외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2015년 9월 쿠바 외교사절 환영공연).
  • 8월 25일 (동부전선 군부대 극장) : 8.25경축 화선공연. 공연의상은 국방색 군복. 녀성해안포병의 노래에서 다수의 여성 군인들 등장.
  • 8월 하순 : 청년절 경축공연. 정확한 내용 미상, 12월 31일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로 청년절 경축공연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됨.
  • 10월 10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조선로동당창건 67돐 경축공연. 흰색 인민군 정복 그리고 비교적 짧은 스커트를 입음. 이후 이 차림새는 모란봉악단의 표준 공연의상으로 자리 잡음.
  • 10월 29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창립60돐 기념공연.
  • 12월 21일 (목란관 연회장) : 광명성-3호 2호기의 성과적인 발사 축하공연. 경음악으로 편곡한 '단숨에' 첫 번째 버전 발표. 화려한 기타와 바이올린의 연주가 특징인 새로운 편곡은 '단숨에'를 단숨에 모란봉악단의 시그니처 송(signature song)으로 떠오르게 함. 이후로 지금까지 성공적인 로켓트 발사가 거듭될 때마다 '단숨에'는 서로 다른 편곡으로 발표됨.

2013년[편집]

  • 1월 1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신년 경축공연. 공연의상은 검은 드레스. 14분에 이르는 세계 명곡메들리 연주. '단숨에' 연주는 공연의 클라이맥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외 통일 관련 노래도 부름. 많은 사람들은 모란봉악단의 공연 중 최고의 무대로 이 2013년 신년 경축공연을 꼽음. 공연 분위기가 가장 자연스러웠고 멤버들 특히 현악 4중주단의 미소가 넘쳐났던 공연.
  • 2월 1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조선로동당 제4차 세포비서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 모든 멤버들의 머리 모양은 짧은 단발머리로 변함.
  • 4월 11일 (630부대 군인회관) : 조선인민군 제630대련합부대 축하방문 화선공연.
  • 4월 25일 (목란관 연회장) : 조선인민군창건 81돐 경축공연. 공연의상은 상의 얼룩무늬 군복, 하의 국방색 스커트. 무대에는 방사포와 탱크 모형이 설치됨.
  • 6월 23일 (자강도 강계공장 체육관) : 자강도 로동계급들과 함께 한 공연. 무대에는 이전 공연처럼 방사포와 탱크 모형이 설치됨.
  • 7월 27일 (목란관 연회장) : 7.27 전승절 축하공연.
  • 8월 2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경축 열병식참가자들을 위한 축하공연. 노래 '샘물터에서' 간주 부분에서 현악 4중주단은 악기를 놓고 무대 전면으로 이동하여 가수들과 함께 춤을 추었음. 현악 4중주단이 안무를 한 것은 이번이 유일함.
  • 10월 10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조선로동당창건 68돐 경축 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
  • 10월 24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조선인민군 제4차 중대장, 중대정치지도원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

2014년[편집]

2014년 4차례나 모란봉악단 공연이 있었던 평양시의 4.25 문화회관
  • 3월 17일 (4.25문화회관) : 선우향희가 처음으로 무대에서 사라진 공연. 현악 파트는 여전히 멜로디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였으나 3인조로 축소되어 전면이 아닌, 무대의 오른쪽 뒤편에 배치되었으며 홍수경이 제1 바이올린을 담당하였다. 현악 3인조 앞에는 신디사이저 2대가 위치하였으며 기타리스트 강평희가 악장 역할을 하였다. 선우향희 뿐만 아니라 보컬의 핵심 류진아도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미확인 보도에 의한다면 장성택 숙청과 관련하여 이와 연관된 조사 때문에 공연에서 빠졌다는 관측이 있다.[59] 공연의 많은 부분은 김정은 찬양과 관련된 노래들로 채워졌다.
    모란봉악단 부단장 김운룡은 장성택 사태와 관련되었을지도 모를, 다음과 같은 내용을 2014년 5월 노동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다. '혁명의 최고수뇌부를 감히 어째보려고 양봉음위, 동상이몽한 현대판 종파분자들이 문학예술부문의 신념이 떨떨하고 혁명화를 부담스러워하던 자들에게 더러운 마수를 뻗친 사실은 우리를 더욱 각성시키고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우향희와 류진아는 이른바 '신념이 떨떨하고 혁명화를 부담스러워하던 자들'이었을까?
  • 3월 22일 (4.25문화회관) : 4월 1일까지 일반에게 공개된 10회의 공연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선우향희와 류진아는 여전히 무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일부 공연은 드레스, 일부 공연은 흰색 군복을 입고 공연하였다. 공연은 김정은과 당을 찬양하는 노래들로 채워졌다.
  • 4월 4일 ~ 4월 11일 (삼지연군, 대홍단군, 혜산시 예술극장) : 량강도 순회공연. 선우향희와 류진아가 복귀하였다. 공연의상은 항일유격대 여성대원 군복차림. 현악 4중주단은 흰 망토도 착용.
  • 4월 16일 (4.25문화회관) :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축하공연. 공연의상은 공군 항공점퍼, 바지, 부츠 그리고 베레모. 무대에는 실제 미그-19 전투기가 왼편에 배치됨. 최초로 현악 4중주단이 노래를 부름. 노래하는 도중 현악 4중주단 선우향희 홍수경 차영미 유은정 모두 눈물이 글썽이는 보기에 따라서 놀라운 정경이 펼쳐짐. 그 노래 가사는 김일성에 대한 것이었음.
  • 5월 2일 (송도원 국제친선소년회관) :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 준공 축하공연. 선우향희는 다시 무대에서 보이지 않음.
  • 5월 19일 (4.25문화회관) :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축하공연. 선우향희는 무대에 오르지 못함. 차영미가 제1 바이올린을 맡음. 17분에 이르는 세계명곡묶음 연주. 외국음악은 이 무대를 마지막으로 더는 연주되지 않음(예외는 2015년 9월 쿠바 외교사절 환영공연이나 해당 공연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음).
  • 9월 3일 (만수대예술극장) : 신작음악회. 공연의상은 흰색 군복 그리고 스커트가 아닌 바지. 선우향희의 마지막 무대이고 차영미는 공연에 참여하지 않음. 현악 3인조와 기타, 베이스 연주자는 주로 의자에 앉아서 연주함.

2015년[편집]

  • 4월 27일 (인민문화궁전) : 조선인민군 제5차 훈련일군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공연. 김은하는 제2 전기바이올린 주자로 새로 모습을 보임. 그리하여 현악 4중주단은 차영미(제1 전기바이올린), 김은하(제2 전기바이올린), 홍수경(제3 전기바이올린), 유은정(전기첼로)으로 구성. 가수 7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자와 함께 무대 전면에 위치.
2015년 9월 쿠바공화국 국가대표단 환영공연이 있었던 평양시 만수대지구의 인민극장
  • 9월 7일 (인민극장) : 쿠바공화국 국가대표단을 환영하는 공훈국가합창단과의 축하공연. 이 공연 전체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음. 선우향희가 잠시 모습을 보임. 오리지널 현악 4중주단(선우향희, 홍수경, 차영미, 유은정)이 연주한 마지막 무대.
  • 10월 11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조선로동당창건 70돐경축 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 차영미는 무대에 오르지 않음. 현악 3중주(홍수경, 김은하, 유은정).
  • 12월 12일 ~ 14일 (중국 북경) : 중국 북경에서 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북경 극장에서의 리허설 후에 공연은 취소되고 모란봉악단은 철수하였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리허설을 하며 공연 내용에 대해 조율을 하는 과정에서 북중 간의 마찰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하였다.[60]

2016년[편집]

  • 2월 13일 (목란관 연회장) : 광명성-4호 발사성공에 기여한 과학자,기술자,일군들을 위한 축하공연. 공연의상은 흰색 정복과 검정 스커트. 현악 3중주(홍수경, 김은하, 유은정). '단숨에'(두 번째 편곡) 도입부에서 홍수경은 불꽃 튀는 바이올린 솔로를 보여줌.
  • 2월 18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광명성-4호 발사성공에 기여한 과학자, 기술자, 일군들을 위한 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
  • 5월 11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경축 모란봉악단, 청봉악단, 공훈국가합창단 합동공연. 차영미는 7개월만에 복귀함 그리하여 현악파트는 홍수경-김은하-차영미-유은정으로 구성.
  • 12월 28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제1차 전당초급당위원장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 모란봉악단의 자리에 모란봉악단과 같은 제복을 입은 남성 연주자들이 처음으로 출현함(바이올린, 첼로, 색소폰 등).

2017년[편집]

2017년 7월 30일 공연에서 노래하는 모란봉악단의 가수들
  • 5월 19일 (목란관 연회장) :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케트 화성-12형 개발자들을 위한 축하공연. 선우향희는 거의 3년 만에 복귀. 이 공연은 TV로 공개되지 않음.
  • 7월 9일 (류경 정주영체육관) :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시험발사성공 축하공연(모란봉악단, 청봉악단, 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예술단 합동공연).
  • 7월 10일 (목란관 연회장) :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시험발사성공을 축하하는 연회 중에 진행된 공연. 이 공연은 TV로 공개되지 않음.
  • 7월 30일 (인민극장) :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성공 축하공연(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공연).
2017년 9월 모란봉악단 공연이 있었던 함흥시 함흥대극장
  • 9월 13일 ~ 21일[61] (원산시 송도원청년야외극장) : 모란봉악단, 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보도사진으로 미루어보아 바이올린 차영미는 무대에 오르지 않았으며, 신디사이저는 종래의 2대가 아닌 1대가 놓여져 리희경 혼자 연주하였다.
  • 9월 24일 ~ 30일[62] (함흥시 함흥대극장) : 모란봉악단, 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무대에 오른 가수들은 원산시 공연과 동일하게 김유경, 류진아, 박미경, 정수향, 조국향 그리고 김옥주.
  • 10월 4일 ~ 14일[63] (신의주시 평안북도예술극장) : 모란봉악단, 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10월 10일 조선중앙TV는 모란봉악단 단원들의 신의주 공연 대기실 인터뷰를 최초로 방송하였다. 정수향, 류진아, 김유경, 선우향희 그리고 전혜련의 짧은 인터뷰이며, 하루 3회 공연이라는 힘든 일정에도 단원들은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에 피곤을 모두 잊는다고 말함. [64]

단원들이 말하는 악단 생활[편집]

2012년 첫 공연을 한 이후 단원들의 이름과 공연 동영상을 제외한다면 모란봉악단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14년 5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를 가지면서 단원들과 악단 지도부의 노동신문 기고문은 모란봉악단에 대하여 훨씬 더 상세한 내용들을 외부세계에 알려지게 하였다. 그들의 기고문을 관통하는 일관적인 주제는 '나뭇잎을 타고 강을 건너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든다'는 식의 이른바 지도자에 대한 신격화 그리고 일방적인 찬양이지만 그러한 내용들은 빼고 그들의 악단생활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부분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차영미의 기고문에서[편집]

몇년전까지만 해도 나어린 음악소녀에 불과했던 제가 오늘과 같이 예술인대회의 높은 연단에 서게 되리라고는 꿈에서조차 상상해본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겨우 20대 초엽,드넓은 음악전선의 나어린 신입병사와도 같은 저를 일류급악단의 바이올린연주가로 키워주신 따사로운 사랑에 대하여 되새겨볼 때마다 솟구쳐오르는 감사의 정으로 목메이군 합니다. 동지들은 아마 기백있고 열정적인 연주,째인 안삼블,률동적인 대형변화 등으로 사람들을 황홀한 음악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저희들의 공연을 보면서 모란봉악단 배우들은 악단에 오기전부터 저런 독특한 기량을 소유하고있은것으로 생각할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런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량수준과 배우생활 경험같은것이 대단히 어린 음악계의 초학도들이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지군 합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모여오다나니 마음의 안삼블을 맞추지 못하고 자기만 자기라고 하던 일을 생각해보아도 그렇고 높은 수준에서 편곡된 악보를 도저히 연주할수가 없어 저도 모르게 당황해지던 일을 되새겨보아도 금시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그러나 우리 악단의 연주가들이 정말로 얼굴을 붉히지 않으면 안되였을 때는 자신들이 진정한 음악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습니다.

열백밤을 패고패여도 자꾸만 시간이 모자라는것만 같아 하루에 2~3시간밖에 못자면서도 기량훈련을 하고 공연준비를 완성하였습니다. 생손앓이를 하면서도 바이올린을 잡았고 끝이 째져 피가 흐르는 손가락으로도 신세사이자의 건반을 짚었으며 활대를 든 채로 잠들 정도로 피곤이 몰린 속에서 잠간 차례진 휴식시간마저 소설책을 읽고 음악감상을 하는데 바쳤습니다. 공장,기업소들을 비롯한 현실에 나가 시대의 벅찬 숨결을 실지로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그이와 함께 웃어도 보고 그이와 함께 울기도 하며 인민의 사랑을 받는 연주가로 성장해온 나날은 평범한 사람이 일생을 살아도 가질수 없는 귀중한 인생의 체험을 받아안는 영광의 시간들이였습니다.
우리의 방마다에 써붙인 "절대로 자만해서는 안된다"는 구호를 생활과 연주의 좌우명으로 삼고 보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지금보다 더 시간을 아껴 비약하자는것이 저희들의 한결같은 심정이며 각오입니다. -이하 중략 - 저는 바이올린을 혁명의 총대처럼 억세게 비껴들고 인생의 마지막활을 긋는 순간까지 위대한 시대 음악예술혁명의 제1바이올린수로 삶을 빛내여 나가겠다는것을 굳게 결의합니다.

기타[편집]

악단의 상징 혹은 휘장[편집]

모란봉악단을 상징하는 휘장은 2012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67돐 경축공연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단원들의 군복 오른쪽 상단 부분에 큼지막한 금색의 배지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바이올린을 휘감는 오선지 모양이었고 오선지에는 두 마디의 악보가 그려져 있었다. 바로 김정일을 우상화하고 찬양하는 '김정일 장군의 노래' 첫 소절 부분이었다. 이후 드레스 혹은 군복 등의 공연의상과 관계없이 단원들은 이 휘장을 항상 오른쪽 가슴 상단에 패용하고 무대에 올랐다. 모란봉악단의 공연 영상을 담은 DVD 표지에도 그리고 공연을 녹화방송하는 TV 화면에서 곡목 소개시에도 이 모란봉악단의 상징물, 엠블럼(emblem)은 찾아볼 수 있다. 2015년 10월 18일 청봉악단의 평양 공연 마지막 날에 김정은, 리설주 부부는 모란봉악단의 단원들과 함께 이 공연을 관람하고 공연장인 인민극장의 현관 홀에서 모란봉악단의 지도부 그리고 단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에서 인민극장 현관 홀에도 마찬가지로 '김정일 장군의 노래' 악보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 벽에 커다랗게 부조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자본주의 무대 뺨친 북한판 `걸그룹' 공연 - 연합뉴스
  2. 부인? 여동생? 북 김정은옆 묘령 여인 누구? - 머니투데이
  3. 뉴스북한 김정은의 '미키마우스 애정' 새삼 관심 - SBS 뉴스
  4. 윤일건의 ‘내가 살던 평양’ ① 북한 퍼스트 레이디 리설주의 성장배경 - 월간조선
  5. 訪韓派 곳곳 포진… '김정은식 변화' 동력 되나 - 조선일보
  6. '북한 걸그룹' 모란봉악단 등장 1년…활약상 띄우기 - SBS 뉴스
  7.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에서 박춘남 대표의 토론 - 로동신문
  8. 김 총비서 '음악은 나의 첫사랑' - 통일뉴스
  9. 北김정일 "음악은 정치에 봉사해야" - 경향신문
  10. 북한 매체 "인류정치사상 처음으로 음악정치 구현" - 데일리NK
  11. 북한음악의 이해 - 민경찬 음악평론가
  12. 대중음악계의 새로운 아이콘 모란봉악단 앞세운 '열린 음악정치' -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13. '모란봉'은 김정은 음악정치 전위대 - 중앙일보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4. 북한 걸그룹' 모란봉악단 등장 1년…활약상 띄우기 - 연합뉴스
  15. 모란봉악단, 파격공연으로 '불문율'을 깨다 - 통일뉴스
  16. 북한 연구 | 김정은 ‘악단정치’의 비밀 - 월간중앙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7. 하루아침에 북 히트곡 된 '그이 없인 못 살아' - 중앙일보 북한네트
  18. 北매체 "제국주의 사상·문화는 침략주역…공격전 벌여야" - 연합뉴스
  19. 2015 신진연구 논문집 모란봉악단의 음악정치 - 천현식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20. 김정은위원장, 몸소 피아노에 범창까지 하며 모란봉악단 지도 - 한호석의 개벽예감
  21. Rock Gospels: Analyzing the Artistic Style of Moranbong Band by Pekka Korhonen - Sino-NK
  22. 클로즈업 북한 김정은 시대 아이콘 '모란봉악단' - KBS 남북의 창
  23. 로동신문 2014년 9월 4일자 - NK News 로동신문 자료
  24. 북한의 걸그룹 '모란봉악단' 뜨면 삼촌팬 들썩 - 한겨레
  25. 북한에도 '소녀시대'가 있다 - 허핑턴포스트
  26. 北,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개막...'모란봉악단 정신·기풍 배우자' - 통일뉴스
  27. 첨부화일 자료집(2015.11.26).pdf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료집
  28. 2010년대 북한 중앙음악단체의 민족악기 편성 양상 - 배인교 - 국악원 논문집 2015
  29. 김정일 "자기 땅에 발 붙이고 세계를 보라" - Daily NK 뉴스
  30. 모란봉악단 세계명곡모음 동영상 2013년 1월 1일 - YouTube
  31. 모란봉악단 세계명곡모음 동영상 2014년 5월 19일 - YouTube
  32. 모란봉악단 모짜르트 No.40 동영상 2012년 7월 28일 - YouTube
  33. 모란봉악단 Csárdás 동영상 2012년 7월 28일 - YouTube
  34. 모란봉악단 Zigeunerweisen 동영상 2012년 7월 28일 - YouTube
  35. 모란봉악단 Ma Reine de Saba 동영상 2012년 7월 28일 - YouTube
  36. 모란봉악단 단숨에 동영상 2013년 1월 1일 - YouTube
  37. 모란봉악단 그 품 떠나 못살아 동영상 2012년 7월 6일 - YouTube
  38. 모란봉악단 10월입니다 동영상 2013년 10월 10일 - YouTube
  39. 모란봉악단 내 삶이 꽃펴난 곳 동영상 2013년 10월 10일 - YouTube
  40. 모란봉악단 우리의 행군길 동영상 2012년 10월 10일 - YouTube
  41. 모란봉악단 결전의 길로 동영상 2012년 7월 28일 - YouTube
  42. 모란봉악단 매혹과 흠모 동영상 2014년 4월 16일 - YouTube
  43. 모란봉악단 백두의 말발굽소리 동영상 2014년 4월 16일 - YouTube
  44. 모란봉악단 설눈아 내려라 동영상 2013년 1월 1일 - YouTube
  45. 모란봉악단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동영상 2015년 4월 27일 - YouTube
  46. 모란봉악단 바다만풍가 동영상 2014년 4월 20일 - YouTube
  47. 모란봉악단 철령아래 사과바다 동영상 2014년 9월 4일 - YouTube
  48. 2014년도 북한 문학예술계의 성과와 동향 - 오양열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 문예연감
  49. 모란봉악단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동영상 2016년 5월 11일 - YouTube
  50. Band Members - Pekka Korhonen's Moranbong Band Discography at Wordpress
  51. 제18차 "2.16예술상"개인경연 입상자들의 공연중에서 - 우리민족끼리TV
  52. 삼지연악단 2011년 1월 신년축하공연 선우향희 바이올린 독주 - YouTube 공연 영상
  53. 김정은 시대 음악정치의 연속성과 혁신성 - 모리 토모오미 - 한반도 국제포럼 2016, 통일 북한학 학술대회 자료집 p457
  54. North Korea's five-part girl band - NY Daily News
  55. Wonderful Tonight: Taking Kim Jong Un's brother to a Clapton concert - Reuters
  56. 은하수관현악단 창작가,예술인들과 공연보장성원들에 대한 표창식 진행 - 백두 한나
  57. 모란봉악단 현송월의 고속 출세 - donga.com
  58. Moranbong Band - Pekka Korhonen's Moranbong Band Discography at Wordpress
  59. 北 "류진아 등 모란봉 악단 단원 장성택 연루" - 조선닷컴 뉴스
  60. 모란봉악단 공연 취소에서 드러난 김정은의 ‘조급성’ - DailyNK
  61. 강원도정신창조자들의 혁명열, 투쟁열을 백배해준 최후승리의 진군가 - 2017년 9월 22일 로동신문 기사
  62. 함남의 불길을 만리마대고조의 열풍으로 거세차게 타번지게 한 혁명의 진군가 - 2017년 10월 1일 로동신문 기사
  63. 공훈국가합창단, 모란봉악단, 왕재산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평안북도인민들의 대절찬속에 진행 - 2017년 10월 15일 조선중앙통신 보도
  64. 모란봉악단 10월 10일 신의주 공연 대기실 인터뷰 - YouTube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