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러 반 므힉 로빈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메리 로빈슨에서 넘어옴)
이동: 둘러보기, 검색
메리 로빈슨
영어: Mary Therese Winifred Robinson
메리 로빈슨
메리 로빈슨
아일랜드제7대 대통령
임기 1990년 12월 3일 ~ 1997년 9월 12일
전임: 패트릭 힐러리(제6대)
후임: 메리 매컬리스(제8대)

신상정보
출생일 1944년 5월 21일(1944-05-21) (73세)
출생지 아일랜드 마요 주 벨리나
정당 무소속
학력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LL.B.
하버드 로스쿨 LL.M.
배우자 니컬러스 로빈슨
자녀 3명

메리 테리즈 위니프리드 로빈슨(영어: Mary Therese Winifred Robinson, 아일랜드어: Máire Bean Mhic Róibín, 1944년 5월 21일 ~ )은 아일랜드의 여성 정치인이다.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미국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되었다.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트리니티 대학교 법학 교수를 지냈다.

25살이 되던 해 노동당 소속으로 상원의원에 선출되었고, 1990년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97년 9월 임기 종료 3개월을 남기고 사퇴하였다. 그 해 12월 국제연합(UN)의 인권 고등판무관으로 임명되어 국제 인권 문제에 대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인권 고등판무관의 임기는 2002년 종료되었다. 그 후 더블린 대학교 총장으로 재직중이며,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1990년 11월 9일 메리 로빈슨은 아일랜드의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된다. 부수상 겸 국방부 장관이었던 브라이언 레니한을 8만 표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1]

아일랜드의 정치 체제는 내각 책임제다. 때문에 대통령은 실권이 없으나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상징적 존재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상징적 대통령이라지만 그녀의 역할은 지대했다는 평이다. 남녀평등과 여권신장을 위해 헌신했으나 대통령 선거 출마 이전 남편과 세 아이의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아일랜드 주부이기도 했던 그녀는 대통령 취임사 속에서 여성의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를 미리 드러내 보였다. 그녀는 아일랜드 출신 시인이었던 예이츠의 시구를 인용하며 이렇게 연설한다. “나는 아일랜드인입니다. 오세요, 저와 함께 아일랜드에서 춤을 춥시다. (I am of Ireland. 'Come... dance with me in Ireland')” 그리고 집무실 창문에 등불을 걸었다. 이름하여 이민자의 등불. 수백 년 고달픈 역사 속에 조국을 떠나야 했던 수많은 아일랜드인과 그 후예들에게 조국의 빛을 밝히고자 하는 뜻이 담긴 등불이었다. 전 세계에 흩어진 ‘Irish' 즉 아일랜드인에게 비친 고향의 등대였다. 대통령 집무실 창문을 밝힌 이 가스 등불에 전 세계의 아일랜드인이 호응했다. “아일랜드에서 그녀와 함께 춤춰 보자.”

투자가 쏟아졌고 아일랜드 국민도 “우리도 한번 바꿔 보자.”는 마음으로 단결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수백 년 포한이 맺힌 영국과의 관계도 개선됐고 유럽의 지진아라 불린 아일랜드는 폭풍 성장을 거듭했다. 국민 소득은 3만 달러를 넘어섰고, 평균 경제성장률은 9.9%를, 소비지수는 유럽연합 대비 90%를 기록했다. 메리 로빈슨이라는 여성 대통령이 재임한 7년 동안 일어난 기적이었다.

그녀가 7년의 임기를 마칠 당시 그녀의 지지율은 무려 93%. 국민들 사이에서는 메리 로빈슨을 종신 대통령으로 삼자는 움직임까지 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마다하고 인권운동가로 돌아간다. "진정한 리더십은 나만이 아니라 남을 돌아볼 줄 아는 것이자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게 그녀의 말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주류가 아니라 주류의 밖에서 싸워 온 사람임을 자처했다. 정체된 사회에 머물지 않고 억압받는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던 아일랜드의 한 비주류 여성 변호사였던 메리 로빈슨은 자신뿐 아니라 아일랜드를 변화시켰고, 인권 운동가로서 세계를 변화시켰다다는 평을 얻고 있다.

전임
호세 아알랴라소
국제연합 인권고등판무관
1997년 ~ 2002년
후임
세르지우 비에이라 지 멜루
  1. “중앙선관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