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작용 (아비달마장현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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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주요 논서인 중현의 《아비달마장현종론》에서 설명하고 있는 마음작용심소법(心所法)에 대해 다룬다. 마음작용에 대한 전체적 · 일반적 내용은 '마음작용 문서'에서 다루고 있다.

중현(衆賢, Saṃghabhadra: 5세기)은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사이다.[1][2] 그는 경량부의 교학을 비롯한 당시의 불교 교학 전반을 참조하여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비판적으로 집대성한 논서인 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을 카슈미르계 정통 설일체유부의 관점에서 반박하는 《아비달마순정리론》을 저술하였는데, 그 후 이 책의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체계적이지 않으므로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 · 요약하여 《아비달마장현종론》을 저술하였다.[3][4]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아비달마구사론》의 내용 중 이치에 합당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대로 기술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반드시 반박을 펼쳐 설일체유부의 종의(宗義)를 드러내고자 한다고 말하고 있다.[5][6]

아비달마구사론》과 마찬가지로 중현도 《아비달마장현종론》에서 마음작용(심소법)에 대해 '마음작용이란 ~이다'라는 식으로 명시적으로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마음마음작용의 성격에 대한 《아비달마구사론》의 언급인, "마음마음작용은 반드시 결정코 구생(俱生)하므로, 둘 중의 어느 하나라도 결여될 때에는 다른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다[心與心所必定俱生 隨闕一時餘則不起]"라는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다.[7][8][9][10] 이 언급에 나타난 내용은 부파불교대승불교의 다른 논서들에서 나타나는 마음작용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인 '마음상응(相應)하는 모든 (法)'이라는 정의와 그 내용은 동일하다.[11][12][13][14]

세친은 《아비달마구사론》에서 (受) · (想)에서 (慢) · (疑)에 이르기까지 총 46가지 법을 들고 있으며, 이들 46가지 법들을 대지법(大地法: 10가지) · 대선지법(大善地法: 10가지) ·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6가지) ·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2가지) ·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10가지) · 부정지법(不定地法: 8가지)로 나누고 있는데,[15][16][17][18] 중현도 《아비달마장현종론》에서 이 분류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19][20][21][22]

정의[편집]

중현은, 세친의 《구사론》에서와 마찬가지로,[7][8]현종론》에서 마음작용(심소법)에 대해 '마음작용이란 ~이다'라는 형태로 명시적으로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마음과의 관련하에 마음작용의 성격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아래 인용문과 같이 마음마음작용은 반드시 상응(相應)하면서 함께 일어난다[俱生, 俱起]고 밝히고 있다.

이 인용문에 나타난 내용은 부파불교대승불교의 다른 논서들, 예를 들어 《아비달마품류족론》《대승오온론》《현양성교론》 등에서 나타나는 마음작용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인 '마음상응(相應)하는 모든 (法)'이라는 정의와 그 내용은 동일하다.[11][12][13][14][23][24]

已說有色決定俱生。無色俱生今次當說。頌曰。


 心心所必俱 諸行相或得
論曰。心與心所必定俱生。隨闕一時餘未嘗起。諸行即是一切有為。所謂有色無色諸行。前必俱言。應流至此。謂有色等諸行生時。必與生等四相俱起。言或得者。唯有情法與得俱生。或言顯此不遍諸行。

유색법이 결정코 구생(俱生)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이제 다음으로 무색법의 구생관계에 대해 마땅히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心)과 심소(心所)는 반드시 함께 하며
 제행(諸行)은 상(相), 혹은 득(得)과 [반드시 함께 한다].
 心心所必俱 諸行相或得
논하여 말하겠다.
심과 심소는 결정코 반드시 구생하니, 둘 중의 어느 하나라도 결여될 때 다른 하나도 결정코 생기하지 않는다.
[본송에서] 제행(諸行)이라 함은 바로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을 말하는 것이니, 이른바 유색과 무색의 온갖 행(즉 유위법)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앞의 구절에서 언급한 '반드시 함께 한다'고 하는 말은 여기에도 적용되니, 이를테면 유색 등의 제행이 생겨날 때에는 반드시 '생(生)' 등의 4상(相)과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나아가 '혹은 득(得)'이라고 말한 것은, [제행 가운데] 오로지 유정의 법만이 '득'과 구생함을 말하며, '혹은'이라고 말한 것은 이것이 모든 유위법[諸行]과 두루 구생하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아비달마장현종론》 제5권. 한문본 & 한글본

분류[편집]

현종론》에서는 《구사론》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음작용에 속한 총 46가지 들을 다음과 같이 6품(六品) 즉 여섯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다. 아래의 목록에 나타난 명칭과 나열 순서는 《현종론》에 따른 것인데, 이들 명칭과 나열 순서도 《구사론》과 동일하다.[15][16][17][18][19][20][21][22]

  1. 대지법(大地法: 10가지): (受) · (想) · (思) · (觸) · (欲) · (慧) · (念) · 작의(作意) · 승해(勝解) · 삼마지(三摩地)[25][26][27][28]
  2. 대선지법(大善地法: 10가지): (信) · 불방일(不放逸) · 경안(輕安) · (捨) · (慚) · (愧) ·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불해(不害) · (勤)[29][30][31][32]
  3.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6가지): (癡) · 방일(放逸) · 해태(懈怠) · 불신(不信) · 혼침(惛沈) · 도거(掉擧)[33][34][35][36]
  4.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2가지): 무참(無慚) · 무괴(無愧)[37][38][39][40]
  5.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10가지): (忿) · (覆) · (慳) · (嫉) · (惱) · (害) · (恨) · (諂) · (誑) · (憍)[41][42][43][44]
  6. 부정지법(不定地法: 8가지): (尋) · (伺) · 수면(睡眠) · 악작(惡作) · (貪) · (瞋) · (慢) · (疑)[45][46][47][48]

개별 법의 설명 (46가지)[편집]

대지법(大地法: 10가지)[편집]

대지법(大地法, 산스크리트어: mahā-bhūmika, mahā-bhūmi)이란 모든 법 가운데 '대지'(大地)에 존재하는 법들을 말한다. 여기서 '대지'는 대법(大法)의 지(地), 즉 대법의 용지처(容止處) 즉 소행처(所行處), 즉 대법이 생기하는 영역으로서의 마음, 즉 일체의 마음[一切心], 즉 모든 마음[一切心]을 가리키며, '대법'은 항상 존재하는 마음작용들을 말한다. 따라서, 대지법이란 일체의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에 항상 존재하는 마음작용들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한 마음이건, 한 마음이건, 무기의 마음이건 마음이 존재할 때면 언제나 발견되는 마음작용들을 말한다. 그리고 마음이 이러한 '대법(大法)'들을 소유하며 이들의 용지처(容止處) 즉 소행처(所行處) 즉 용지(진퇴 거동의 뜻)나 소행(所行, 작용)의 근거가 되고 통솔자로서 이들 대법들과 함께 생기(生起)하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에서 마음을 '대지(大地)' 즉 '대법의 지'라고 한다.[49][50][51][52]

한편, 마음은 또 다른 마음구생(俱生)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지법이 아니다.[51][52]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는 (受) · (想) · (思) · (觸) · (欲) · (慧) · (念) · 작의(作意) · 승해(勝解) · 삼마지(三摩地)의 10가지 이 있다.[25][26][27][28]

(1) 수(受)[편집]

(受, 감수작용, 지각, 느낌, 과보의 영납, 산스크리트어: vedanā, 팔리어: vedanā, 영어: feeling, sensation)는 소의신을 능히 증익(增益)하거나 감손(減損)하거나 혹은 증익하지도 않고 감손하지도 않는 것으로서, 애촉(愛觸: 애호할 만한 촉) · 비애촉(非愛觸: 애호할 만한 것이 아닌 촉) · 구상위촉(俱相違觸: 양자 모두가 아닌 촉)을 영수(領受)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53][54]

구사론》에 따르면, (受)는 (苦)와 (樂), 그리고 양자 모두가 아닌 것 즉 불고불락(不苦不樂)의 차별(差別)을 영납(領納)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55][56]

(2) 상(想)[편집]

(想, 표상작용, 취상(取像), 취상(取相), 구료상(搆了相), 산스크리트어: saṃjñā, 팔리어: saññā, 영어: perception, cognition, conceptualization, distinguishing, idea)은 인식대상[境]에 대하여 남 · 여 등의 차별상(差別相)을 안립(安立)하고 집취(執取)하는 원인[因]이 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57][58]

구사론》에 따르면, (想)은 인식대상[境]에 대하여 차별상(差別相)을 취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59][60]

(3) 사(思)[편집]

(思, 의사, 의지, 추진, 조작(造作), 짓고 만듦, 산스크리트어: cetanā, 팔리어: cetanā, 영어: volition, directionality of mind, attraction, urge)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 불선 · 무기조작(造作: 짓고 만듦)하게 하여 (妙: 뛰어남) · (劣: 열등함) 혹은 (中: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않음)의 성질을 성취하게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61][62]

구사론》에 따르면, (思)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조작(造作: 짓고 만듦)하게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63][64]

현종론》에 따르면, (思)의 마음작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인식대상[境]에 대해 움직이는 작용을 갖게 된다. 이것은 마치 자석의 힘이 쇠붙이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는 것과 같다.[61][62]

(4) 촉(觸)[편집]

(觸, 접촉, 3사화합 · 분별 · 변이, 산스크리트어: sparśa, 팔리어: phassa, 영어: contact)은 (根) · (境) · (識)이 화합함에 따라 생겨나는 마음작용으로, 능히 (受)의 마음작용원인[因]이 되며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능히 '인식대상과 접촉[觸對]'할 수 있게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65][66]

구사론》에 따르면, (觸)은 (根) · (境) · (識)이 화합하여 생겨나는 마음작용으로,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능히 '인식대상과 접촉[觸對]'할 수 있게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67][68]

(5) 욕(欲)[편집]

(欲, 희망, 욕구, 희망의 인발, 산스크리트어: chanda, 팔리어: chanda, 영어: intention, interest, desire to act, desire for action, aspiration)은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인식대상희구(希求)하고 하게 하는[希求取境],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69][70]

구사론》에 따르면, (欲)은 지어야 할 [事]과 (業)을 희구(希求)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71][72]

(6) 혜(慧)[편집]

(慧, 반야, 택법, 간택, 식별, 지혜, 의심을 끊음, 산스크리트어: prajñā, 팔리어: paññā, 영어: wisdom, discrimination, discernment)는 소연(所緣, 인식대상)의 (邪: 그릇됨) · (正: 올바름) 등의 (相)을 간택(簡擇)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73][74]

구사론》에 따르면, (慧)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法)에 대해 능히 간택(簡擇)할 수 있게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75][76]

(7) 염(念)[편집]

(念, 관, 정념, 4념처, 끊임없는 수동적 관찰, 명기(明記)와 불망(不忘), 주의집중, 불산란, 산스크리트어: smṛti, 팔리어: sati, 영어: mindfulness, awareness, inspection, recollection, retention, memory)은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인식대상[境]을 명확히 기억[明記]하여 잊어버리지 않게[不忘失] 하는 원인[因]이 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77][78]

구사론》에 따르면, (念)은 (緣: 소연인식대상, 또는 원인)을 명확히 기억[明記]하여 잊어버리지 않는[不忘],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8) 작의(作意)[편집]

작의(作意, 마음을 일으킴, 기억을 일으킴, 주의, 유의, 발동과 유지, 산스크리트어: manasikara, 팔리어: manasikara, 영어: attention, act of attention, ego-centric demanding)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과 마음작용을 인기[引, 引起]하여 소연(所緣)에 대해 경각(警覺)하게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유의(留意)라고도 한다.[79][80]

구사론》에 따르면, 작의(作意)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능히 경각(警覺)하게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81][82]

(9) 승해(勝解)[편집]

승해(勝解, 확실한 이해, 뛰어난 이해, 인가와 유지, 산스크리트어: adhimokṣa, adhimoksha, adhimukti, 팔리어: adhimokkha, 영어: interest, intensified interest, decision, firm conviction, resolution, approval)는 인식대상[境]에 대해 인가(印可: 도장찍듯이 찍어서 가결함)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83][84]

구사론》에 따르면, 승해(勝解)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능히 인식대상[境]에 대해 인가(印可: 도장찍듯이 찍어서 가결함)하게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85][86]

현종론》에 따르면, 승해(勝解)에서 '(勝)'은 증승(增勝)을 말하며, '(解)'는 해탈(解脫)을 말한다. 따라서 승해마음으로 하여금 경계인식대상[境]에 대하여 무애자재(無礙自在)하게 전개[轉]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증상계(增上戒: 뛰어난 계) 또는 증상정(增上定: 뛰어난 선정)이라고 할 때의 증상(增上)과 그 의미가 같다.[83][84]

(10) 삼마지(三摩地)[편집]

삼마지(三摩地, 심일경, 대상과 하나됨, 전일(專一), 선정과 삼매, 산스크리트어: samādhi, 팔리어: samādhi, 산스크리트어: ekāgratā, 팔리어: ekaggatā, 영어: concentration, one-pointedness, unification, unification of mind)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산란 없이 소연경(所緣境)을 취하여 불유산(不流散: 흩어지지 않음)하게 하는 원인[因]이 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87][88]

구사론》에 따르면, 삼마지(三摩地)는 심일경성(心一境性) 즉 마음[心: 6식, 즉 심왕, 즉 심법]이 대상[境]과 하나가 되는[一] 것을 본질[性]로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89][90]

대선지법(大善地法: 10가지)[편집]

대선지법(大善地法, 산스크리트어: kuśala-mahā-bhūmika)이란 모든 법 가운데 '대선지'(大善地)에 존재하는 법들을 말한다. 여기서 '대선지'는 대선법(大善法)의 지(地), 즉 대선법의 용지처(容止處) 즉 소행처(所行處), 즉 대선법이 생기하는 영역으로서의 마음, 즉 선한 마음[善心]을 가리키며, '대선법'은 항상 선한 마음작용들을 말한다. 따라서, 대선지법이란 일체의 선한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에 항상 존재하는 마음작용들을 말한다.[29][30][31][32]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는 (信) · 불방일(不放逸) · 경안(輕安) · (捨) · (慚) · (愧) ·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불해(不害) · (勤)의 10가지 이 있으며, 이들 10가지 마음작용선심(善心) 즉 선한 마음에만 두루 존재한다[唯遍善心].[29][30][31][32]

(11) 신(信)[편집]

(信, 믿음, 인가, 청정, 희망, 산스크리트어: śraddhā, 팔리어: saddhā, 영어: faith)은 마음의 혼탁함[心濁]과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서, '전도됨이 없는 인과가 각기 개별적으로 서로에게 소속된다[相屬]는 사실[無倒因果各別相屬]'을 즉각적으로 인허(忍許: 인가하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 (欲)의 소의가 되고 능히 승해(勝解)의 자량[資]이 되는 마음작용이다.[91][92]

구사론》에 따르면, (信)은 마음으로 하여금 징정(澄淨)해지게 하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또는 (信)은 진리[諦, 4성제] · 보배[寶, 3보] · (業, 원인) · (果, 결과)에 대해 현전에서 인허(忍許: 인가하고 허락함, 확신함)하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93][94]

(12) 불방일(不放逸)[편집]

불방일(不放逸, 성실, 선법을 닦음, 마음을 방호함, 산스크리트어: apramāda, 팔리어: appamada, 영어: carefulness, concern, conscientiousness, conscious awareness, diligence)은 기리(己利) 즉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專)함으로써[專於己利] 즉 수행전주(專注) · 전념(專念)함으로써 을 방호하는 것[防身語意]을 말하며,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대번뇌지법에 속한 방일(放逸)에 반대된다.[95][96]

구사론》에 따르면, 불방일(不放逸)은 온갖 선법(善法)을 닦고 온갖 불선법(不善法)을 떠나는 것을 말하며,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닦는다[修]'는 것은 (善)에 전주(專注)하는 것 즉 전념(專念)하는 것을 본질[性]로 하는 행위 또는 실천이다. 또는 불방일(不放逸)은 호심(護心) 즉 능히 마음을 수호(守護: 지키고 보호함)하는 것을 말하며,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97][98]

(13) 경안(輕安)[편집]

경안(輕安, 조화롭고 가뿐함, 고르고 상쾌함, 평안, 산스크리트어: praśrabdhi, 팔리어: passaddhi, 영어: pliancy, alertness, flexibility, aptitude)은 바른 작의[正作意]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심신을 경쾌[輕]하고 예리[利]하고 편안[安]하고 적당[適]하게 하는 원인[因]이 되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 심감임성(心堪任性) 즉 마음감임성(堪任性)을 말한다.[99][100]

구사론》에 따르면, 경안(輕安)은 심감임성(心堪任性) 즉 마음감임성(堪任性)을 말하며,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즉 경안마음을 가볍고 편안하게 하여 마음[心]으로 하여금 능히 선법감당[堪任]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본질[性]로 하는 선한 마음작용이다.[101][102]

(14) 사(捨)[편집]

(捨, 내려놓음, 버림, 평등 · 정직 · 무공용, 고요, 평정, 평정심, 평온, 균형, 평형, 산스크리트어: upeksā, 팔리어: upekkhā, upekhā, 영어: serenity, equilibrium, equanimity, stability, composure, indifference)는 심평등성(心平等性) 즉 마음평등성(平等性)을 말하며,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03][104]

구사론》에 따르면, (捨)는 심평등성(心平等性)과 심무경각성(心無警覺性) 즉 마음평등성(平等性)과 마음무경각성(無警覺性)을 말하며,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05][106]

현종론》에 따르면, (捨)는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도거(掉擧)에 반대되는 마음작용으로, '(捨)'는 '진리계합하는 것을 통해 이끌어져 나오는 마음작용[如理所引]'으로서 마음으로 하여금 불균형[越]에 빠지지 않게 한다는 뜻을 가진다.[103][104]

(15) 참(慚)[편집]

(慚, 부끄러워함, 자신에게 부끄럽게 여김, 산스크리트어: hrī, 팔리어: hiri, 영어: self-respect, conscientiousness, sense of shame, dignity, respect)은 여리(如理) 즉 진리계합하는 상태를 지향[趣向]하는 자증상(自增上)과 법증상(法增上)의 2종류의 증상에 의하여 생겨나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 (愛)의 등류(等流)와 반대되는 심자재성(心自在性: 마음의 역량)을 말한다.[107][108]

구사론》에 따르면, (慚)은 대불선지법에 속하는 무참(無慚)의 반대가 되는 마음작용으로, 공경함[敬]이 있고, 존중함[崇]이 있으며, 어렵게 여겨 꺼림[忌難]이 있으며, 따라 속하는 일[隨屬, 즉 제자로서의 예의]이 있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또는 (慚)은 지은 에 대해 그 자체(예를 들어, 이숙인)를 지금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있는 선한 마음작용이다.[109][110][111][112]

(16) 괴(愧)[편집]

(愧, 뉘우침, 부끄러워함, 남에게 부끄럽게 여김, 산스크리트어: apatrāpya, 팔리어: ottappa, 영어: decorum, shame, consideration, propriety, fear)는 공덕(功德: 선, 즉 계정혜 3학)을 애락(愛樂)하고 닦는[修習] 것을 우선으로 하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 (癡)의 등류(等流)와 반대되며 또한 악법(惡法)과 열법(劣法)을 싫어하는[厭] 마음작용을 말한다.[107][108]

또한, 꾸짖음[謫] · 벌(罰) · 악취(惡趣) 또는 자타의 비방[自他謗]의 '원인이 되는 것[因]'을 두려워하는 것[怖畏]을 (愧)라고 한다는 견해가 있다.[107][108]

구사론》에 따르면, (愧)는 대불선지법에 속하는 무괴(無愧)의 반대가 되는 마음작용으로, 에 대해 두렵게 보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또는 (愧)는 지은 에 대해 그 의 다른 것(예를 들어, 이숙과)을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있는 선한 마음작용이다.[109][110][111][112]

(17) 무탐(無貪)[편집]

무탐(無貪, 염착이 없음, 집착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alobha, 팔리어: alobha, 영어: purity, non-attachment, without attachment, absence of desire)은 무진(無瞋) · 무치(無癡)와 더불어 선근(善根)을 이루는데, 무탐은 이미 하였거나 이직 하지 못한 경계탐착(耽著) · 희구(希求)하는 것과 반대되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 무애염성(無愛染性) 즉 마음애염(愛染)이 없는 성질마음(愛)라는 번뇌가 없는 것을 말한다.[113][114]

구사론》에서는 무탐(無貪)에 대해 정의하고 있지 않으며, 다만 무탐무진(無瞋) · 무치(無癡)와 더불어 선근(善根)을 이룬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무탐이 모든 '선의 뿌리[善根]'를 이루는 3가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무탐에 대한 정의 또는 설명을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무치(無癡)가 대선지법에 속하지 않는 것은 무치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慧)를 본질[性]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115][116]

(18) 무진(無瞋)[편집]

무진(無瞋, 자애로움, 자(慈), 사랑, 성내지 않음, 노여워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apratigha, adveṣa, 팔리어: adosa, 영어: good will, non-aggression, non-hatred, imperturbability, non-anger, absence of hatred)은 무탐(無貪) · 무치(無癡)와 더불어 선근(善根)을 이루는데, 무진유정이나 비유정에 대하여 에해의(恚害意) 즉 미워하거나 해치려는 마음이 없는 애민의 종자[哀愍種子]로서의,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13][114]

구사론》에서는 무진(無瞋)에 대해 정의하고 있지 않으며, 다만 무진무탐(無貪) · 무치(無癡)와 더불어 선근(善根)을 이룬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무진이 모든 '선의 뿌리[善根]'를 이루는 3가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무진에 대한 정의 또는 설명을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무치(無癡)가 대선지법에 속하지 않는 것은 무치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慧)를 본질[性]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115][116]

(19) 불해(不害)[편집]

불해(不害, 아힘사, 해치지 않음, 비(悲), 불손뇌(不損惱), 연민, 비폭력, 산스크리트어: ahiṃsā, 팔리어: avihiṃsā, 영어: no harm, non-violence)는 유정에게 손뇌(損惱: 손상과 괴롭힘)를 입히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작용에 반대되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 심현선성(心賢善性) 즉 마음의 어질고 착한 성질을 말한다.[117][118]

구사론》에 따르면, 불해(不害)는 무손뇌(無損惱)의 즉 손뇌(損惱)를 입힘이 없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즉, 불해(不害)는 손상시키거나[損] 괴롭히지[惱] 아니하는 선한 마음작용이다.[119][120]

(20) 근(勤)[편집]

(勤, 마음의 용맹함, 정진, 결단과 인내, 산스크리트어: vīrya, 팔리어: viriya, 영어: diligence, energy, perseverance, enthusiasm, sustained effort)은 이미 생겨난 온갖 공덕(功德: 선, 즉 계정혜 3학)은 수호(守護)하고 이미 생겨난 온갖 과실(過失: 번뇌, 불선, 죄)은 내버리며[棄捨], 아직 생겨나지 않은 온갖 공덕은 생겨나게 하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온갖 과실은 생겨나지 않게 하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 심무타성(心無墮性) 즉 마음의 타락됨이 없는 성질을 말한다.[121][122]

구사론》에 따르면, (勤)은 마음으로 하여금 용한(勇悍: 날래고 사나움, 결단력이 있고 억세고 모짐, 강하고 눈을 부릅뜸, 용기가 있고 억셈[123])하게 하는 것, 즉 모질게 노력하게 하는 것을 본질[性]로 하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24][125]

현종론》에 따르면, (勤)의 마음작용으로 인해 마음진리계합하는, 짓고 있는 [事]과 (業)에 대해 견고히 나아가고 멈추지 않게 된다.[121][122]

기타 대선지법[편집]

구사론》과 《현종론》에 따르면, 무치(無癡)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慧)를 본질[性]로 하는 선한 마음작용으로, 선한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므로 실제로는 대선지법에 속하지만 두 그룹에 중복하여 포함시키지 않기 위해 대지법에 소속시켜 논한다.[113][114][115][116][126][127]

또한 《현종론》에서는 《구사론》에서는 논의되지 않은 (厭)과 (欣)도 사실상 대선지법에 포함되어야 할 마음작용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선한 마음작용대선지법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이 두 마음작용은 상호 모순되기 때문에 '1찰나의 마음[一心]'에서 이 두 마음작용이 동시에 구기(俱起)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므로, 이 둘을 포함시키게 되면 '선한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마음작용들'이라는 대선지법의 정의가 만족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128][129]

무치(無癡)[편집]

무치(無癡, 어리석지 않음, 바른 앎, 결택, 산스크리트어: amoha, 팔리어: amoha, 영어: wisdom, non-delusion, non-bewilderment, lack of naivety, lack of stupidity)는 무탐(無貪) · 무진(無瞋)과 더불어 선근(善根)을 이루는데,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慧)를 본질[性]로 하는 선한 마음작용이다. 선한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므로 실제로는 대선지법에 속하지만 그 본질(慧)이므로 두 그룹에 중복하여 포함시키지 않기 위해 대지법에 소속시켜 논한다.[113][114][115][116][126][127]

염(厭)[편집]

(厭: 싫어함, 산스크리트어: nirvid)은 간략히 말하면, 유전연기와 그 결과물인 생사윤회염오(厭惡)하게 하는 선한 마음작용이다.[128][129][130][131]

현종론》의 표현에 따르면, (厭)은 선한 마음[善心]에서 일어나는 마음작용으로, 진리[諦: 즉 4성제]를 주의깊게 살피는데 그 중에서도 무량(無量)한 과환법(過患法: 과환의 법, 과실근심의 성질의 법, 즉 고제집제, 과실은 원인으로 집제에, 근심은 결과로 고제에 해당함)을 관찰하는 '개별적 실체로서의 성질[實性]'로서 무탐(無貪)에 수순하여서 일으키는 심염배성(心厭背性) 즉 마음과환법싫어하고 등지려는 성질을 말한다. 그리고 (厭)의 마음작용상응하는 것 또는 (厭)의 마음작용상응하고 있는 상태를 염작의(厭作意)라고 한다.[132][133]

흔(欣)[편집]

(欣, 기뻐함, 즐거워함, 산스크리트어: prāmodya, tuṣṭa)은 간략히 말하면, 환멸연기와 그것에 의해 증득되는 열반흔락(欣樂: 기뻐하고 즐김)하게 하는 선한 마음작용이다.[128][129][130][131][134]

현종론》의 표현에 따르면, (欣)은 선한 마음[善心]에서 일어나는 마음작용으로, 과환법(過患法: 과환의 법, 과실근심의 성질의 법, 즉 고제집제)으로부터의 출리(出離: 즉 멸제)와 과환법대치(對治: 즉 도제)를 흔구(欣求: 기쁘게 구함)하는 '개별적 실체로서의 성질[實性]'이자 증상력으로서, 증수(證修) 즉 증득수습[證修: 즉 멸제도제]에 수순하여서 일으키는 심흔상성(心欣尚性) 즉 마음출리법대치법을 기뻐하고 숭상하는 성질을 말한다. 그리고 (欣)의 마음작용상응하는 것 또는 (欣)의 마음작용상응하고 있는 상태를 흔작의(欣作意)라고 한다.[135][136]

또한, 《현종론》에 따르면, (欣)은 (喜) 즉 희수(喜受)와는 다른데, 희수를 떠난 경지 즉 제3정려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나 미지(未至)[137] 등의 경지에서도 현행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교 경전에서도 "흔으로부터 희가 낳아진다[從欣生喜]"라고 하여 (喜)와 (欣)이 다른 것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교 경전의 이 표현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欣)은 열희(劣喜) 즉 저열한 (喜)라고 할 수 있다. 즉, (喜)에 저열함뛰어남차별이 있어서 저열한 것(欣)이라고 하고 뛰어난 것을 그냥 (喜)라고 하며, 저열한 것(欣)이 바탕이 되어 뛰어난 것인 (喜)가 생겨난다.[135][136] 반대로, 희수를 떠난 경지 즉 제3정려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의 경우, (欣)은 묘락(妙樂)를 뜻하며 (喜)보다 뛰어난 것이다.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6가지)[편집]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산스크리트어: kleśa-mahā-bhūmika)이란 모든 법 가운데 '대번뇌지'(大煩惱地)에 존재하는 법들을 말한다. 여기서 '대번뇌지'는 대번뇌법(大煩惱法)의 지(地), 즉 대번뇌법의 용지처(容止處) 즉 소행처(所行處), 즉 대번뇌법이 생기하는 영역으로서의 마음, 즉 염오심(染污心) 즉 번뇌오염마음을 가리키며, '대번뇌법'은 번뇌성마음작용들 즉 번뇌들 가운데 항상 존재하는 것들을 말한다. 따라서, 대번뇌지법이란 일체의 염오심(染污心) 즉 번뇌오염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에 항상 존재하는 마음작용들을 말한다.[33][34][35][36]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는 (癡) · 방일(放逸) · 해태(懈怠) · 불신(不信) · 혼침(惛沈) · 도거(掉擧)의 6가지 이 있으며, 이들 6가지 마음작용염오심(染污心) 즉 오염된 마음에 항상 존재한다[恒於染污心有].[33][34] 달리 말하면, 이들 6가지 마음작용은 언제나 오직 온갖 염오심오염된 마음구기(俱起)할 뿐이며[恒唯與諸染心俱] 다른 마음과는 구기(俱起)하지 않는다.[35][36][138][139]

현종론》에 따르면, 대번뇌지법의 (癡) · 방일(放逸) · 해태(懈怠) · 불신(不信) · 혼침(惛沈) · 도거(掉擧)의 6가지 마음작용은 각각 그 순서대로 선혜(善慧) 즉 대지법(慧)의 바른 상태 즉 무치(無癡)와 대선지법불방일(不放逸) · (勤) · (信) · 경안(輕安) · (捨)에 의해 대치(對治)된다.[35][36]

(21) 치(癡)[편집]

(癡, 어리석음, 우치, 무지(無知), 무지(無智), 무현(無顯), 산스크리트어: moha, mūdha, avidyā, 팔리어: avijjā, 영어: ignorance, delusion, error)는 우치(愚癡) 즉 어리석음을 말한다. 소지경(所知境) 즉 알아야 할 대상에 대한 여리해(如理解) 즉 진리계합하는 이해참다운 이해가 장애되어 있는 무변료상(無辯了相) 즉 소지경에 대한 분별[辯]과 [了]이 없는 상태[相]를 말한다. 달리 말해, (癡)란 바로 무명(無明) · 무지(無智) · 무현(無顯)의 마음작용으로,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40][141]

구사론》에 따르면, (癡)는 우치(愚癡) 즉 어리석음을 말한다. 달리 말해, (癡)란 바로 무명(無明) · 무지(無智) · 무현(無顯)의 마음작용으로,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42][143]

세친중현은 해당 단락에서 이들 세 낱말에 대해서 별도의 설명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데, 이들 낱말에 대한 현대 학자의 주석에 따르면 무지(無智)는 마음(事: 사물, 현상)와 (理: 이치, 본질)를 밝게 결택(決擇: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함)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고, 무현(無顯)은 (事: 사물, 현상)와 (理: 이치, 본질)가 은폐되어 마음에 밝게 드러나 알려지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141][143] '무명(無明)'이라는 낱말에 대해서는 현대 학자의 주석이 제공되어 있지 않은데, 무명(無明)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밝음[明]이 없음[無]'이다. 《품류족론》과 《구사론》에 따르면 밝음[明]은 혜의 8가지 다른 이름(智) · (見) · (明) · (覺) · (解) · (慧) · (光) · (觀) 가운데 하나이다.[144][145] 보광(普光)의 《구사론기(俱舍論記)》 제26권에 따르면, (明)은 조명(照明: 관조밝음)을 뜻한다.[146]

(22) 방일(放逸)[편집]

방일(放逸, 노는 것, 불성실, 포기, 선법을 닦지 않음, 마음을 방호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pramāda, 영어: heedlessness, carelessness, unconcern, non-diligence)은 기리(己利) 즉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전념[專]하는 것을 포기하고 [情, 마음]을 놓아버리고 내버려두는,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47][148]

구사론》에 따르면, 방일(放逸)은 온갖 (善)을 닦지 않는 것을 말한다. 방일은 온갖 닦는 것 즉 불방일(不放逸)에 의해 대치(對治)되는 으로,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49][150]

(23) 해태(懈怠)[편집]

해태(懈怠, 게으름, 책려하지 않음, 노력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kausīdya, 팔리어: kusīta, 영어: laziness, slothfulness, spiritual sloth, idleness)는 선한 [事]과 (業)에 대해서는 뛰어난 능력을 이지러지게 하거나 감소시키지만 악한 [事]과 (業)에 대해서는 날쌔고 모질게 수순하여 성취하는,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해태비열근성(鄙劣勤性) 즉 비천하고 저열하게 노력하는 성질이라고 하는데, 그 노력[勤]과 수습[習]이 비천하고 오염된 것이기 때문이다.[151][152]

구사론》에 따르면, 해태(懈怠)는 심불용한(心不勇悍) 즉 마음결단력[勇]이 없고 인내[悍]하지 못하는 것, 마음이 모질게 노력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해태대선지법에 속한 (勤)에 의해 대치(對治)되는 으로,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53][154]

현종론》에 따르면, 해태무명(無明)의 등류(等流)이다. 즉, 근본번뇌 가운데 하나인 무명(無明) 즉 (癡)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51][152] 그리고 해태(癡)는 모두 대번뇌지법에 속하는 마음작용이다.

(24) 불신(不信)[편집]

불신(不信, 믿지 않음, 인가하지 않음, 청정하지 않음, 희망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āśraddhya, 영어: lack of faith, lack of trust, disbelieving a fact, disbelief)은 심부징정(心不澄淨) 즉 마음징정(澄淨)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불신사견(邪見)의 등류(等流)이다. 즉, 근본번뇌 가운데 하나인 사견(邪見)으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로,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달리 말하면, 불신(不信)은 온갖 진리[諦] · 보배[寶] · 정려(靜慮) · 등지(等至)에 대해 현전에서 경솔하게 비방하고, 보시 등의 (因: 원인)과 그 (果: 과보, 결과)에 대해 '마음에서 즉각 인정하지 않는 것[心不現許]'이다.[155][156]

구사론》에 따르면, 불신(不信)은 심부징정(心不澄淨) 즉 마음징정(澄淨)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불신대선지법에 속한 (信)에 의해 대치(對治)되는 으로,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57][158]

(25) 혼침(惛沈)[편집]

혼침(惛沈, 몽매함, 침울함, 어두움, 무거움, 감당할 능력이 없음, 민활하지 못함, 산스크리트어: styāna, 팔리어: thīna, 영어: lethargy, gloominess, foggymindedness, torpor)은 어둡거나[瞢] 즐겁지 않은[不樂] 일 등에 의해 생겨나는 심중성(心重性) 즉 마음의 무거움으로,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마음혼침에 의해 덮히고 가려지면[覆蔽] 흐리고 어두운[惛昧] 상태가 되어 선법불선법감임(堪任)할 수 없게 되는데, 이것은 혼침본질적 성질몽궤성(瞢憒性) 즉 어두움[159] 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혼침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경안(輕安)에 의해 대치된다.[126][127]

구사론》에 따르면, 혼침(惛沈)은 신중성(身重性) · 심중성(心重性) · 신무감임성(身無堪任性) · 심무감임성(心無堪任性) · 신혼침성(身惛沈性) · 심혼침성(心惛沈性)을 말하며,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60][161] 혼침(惛沈)은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무명(無明) 즉 (癡)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62][163]

한편, 《현종론》에 따르면, 마음4대종능생인(能生因)이기 때문에, 즉 마음4대종을 낳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혼침상응마음신중성(身重性) 즉 몸의 무거움을 일으키는데, 이에 따라 신중성혼침이라고 가설(假說)하지만 신중성은 실제로는 혼침이 아니다. 그 이유는 신중성신식(身識)의 소연경(所緣境)이기 때문이다.[126][127]

또한, 《품류족론》 제2권 ·계신족론》 제1권 ·대비바사론》 제42권에서는 대번뇌지법으로 (癡) · 방일(放逸) · 해태(懈怠) · 불신(不信) · 혼침(惛沈) · 도거(掉擧)의 6가지 이 아니라 불신 · 해태 · 실념(失念) 또는 망념(忘念) · 심란(心亂) · 무명(無明) 또는 (癡) · 부정지(不正知) · 비리작의(非理作意) · 사승해(邪勝解) · 도거 · 방일의 10가지 을 들고 있다. 즉, 이들 논서에서 혼침대번뇌지법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으며, 실념 또는 망념 · 심란 · 부정지 · 비리작의 · 사승해의 5가지 대번뇌지법에 포함시키고 있다. 《현종론》에 따르면, 이들 논서에서 혼침대번뇌지법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는 이유는 혼침이란 무명부(無明覆) 즉 '마음이 무명에 의해 덮힌 상태'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이에 대한 해석에는 2가지가 있다. 첫째 해석은, 혼침이 이들 논서에서 설해지고 있지 않은 것은 대번뇌지법에 속한 6가지 들 가운데 오직 혼침무명과 그 상(相)이 유사하기 때문인 것으로, 무명성(無明性)은 대변행(大遍行)이기 때문에 혼침대번뇌지법에 속한다는 것은 당연히 성립된다. 둘째 해석은, 이들 논서에서 언급된 무명이라는 명칭은 무명혼침의 2가지 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의 명칭으로, 따라서 이들 논서에서는 실제로는 무명혼침의 2가지 무명이라는 하나의 명칭으로 가리킨 것이다.[126][127]

(26) 도거(掉擧)[편집]

도거(掉擧, 고요하지 않음, 들뜸, 산스크리트어: auddhatya, 팔리어: uddhacca, 영어: excitement, restlessness, ebullience, flightiness of mind, dissipation)는 친하거나 사랑하는 이[親]를 생각하는 것[里尋] 등에 의해 생겨나는 심부적정성(心不寂靜性) 즉 마음으로 하여금 고요히 안정되지 못하게 하는 성질로서,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마음도거화합함으로써 균형을 벗어나[越路] 가게 된다.[164][165]

구사론》에 따르면, 도거(掉擧)는 마음으로 하여금 부정(不靜)하게 하는 , 즉 마음으로 하여금 고요히 안정되지 못하게 하는 으로,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66][167] 도거(掉擧)는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貪)으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62][163]

기타 대번뇌지법[편집]

품류족론》 제2권 ·계신족론》 제1권 ·대비바사론》 제42권에서는 대번뇌지법으로 (癡) · 방일(放逸) · 해태(懈怠) · 불신(不信) · 혼침(惛沈) · 도거(掉擧)의 6가지 이 아니라 불신 · 해태 · 실념(失念) 또는 망념(忘念) · 심란(心亂) · 무명(無明) 또는 (癡) · 부정지(不正知) · 비리작의(非理作意) · 사승해(邪勝解) · 도거 · 방일의 10가지 을 들고 있다. 즉, 이들 논서에서 혼침대번뇌지법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으며, 실념 또는 망념 · 심란 · 부정지 · 비리작의 · 사승해의 5가지 대번뇌지법에 포함시키고 있다.[126][127]

현종론》에 따르면, 이들 논서에서 대번뇌지법에 포함시키고 있는 실념 또는 망념 · 심란 · 부정지 · 비리작의 · 사승해의 각각은 대지법에 속한 특정한 마음작용그릇된 상태이기 때문에, 마치 (慧)의 바른 상태 또는 선한 상태인 무치(無癡)가 비록 실제로는 대선지법에 속하지만 대지법에 속한 것으로 논하듯이, 이들은 비록 실제로는 대번뇌지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중복을 피하기 위해 대지법에 속한 것으로 논한다고 말하고 있다.[126][127]

부정지(不正知)[편집]

구사론》과 《현종론》에 따르면, 부정지(不正知, 염오혜, 악혜, 그릇된 이해, 그릇된 앎, 오염된 이해, 오염된 앎, 바르게 알지 못함, 바르지 않은 앎, 산스크리트어: asaṃprajanya, 영어: non-alertness, inattentiveness)는 대지법 가운데 (慧)의 그릇된 상태 또는 오염된 상태인 염오혜(染污慧)이다.[126][127][168][169]

실념(失念)·망념(忘念)[편집]

구사론》과 《현종론》에 따르면, 실념(失念, 염오념, 그릇된 염, 오염된 염, 관을 놓침, 정념을 놓침, 4념처를 놓침, 산스크리트어: muṣitasmṛtitā, 영어: forgetfulness) 또는 망념(忘念)은 대지법 가운데 (念)의 그릇된 상태 즉 오염된 상태인 염오념(染污念)이다.[126][127][168][169]

비리작의(非理作意)[편집]

구사론》과 《현종론》에 따르면, 비리작의(非理作意, 염오작의, 그릇된 작의, 오염된 작의, 산스크리트어: ayoniśo-manaskāra)는 대지법 가운데 작의(作意)의 그릇된 상태 또는 오염된 상태인 염오작의(染污作意)이다.[126][127][168][169]

사승해(邪勝解)[편집]

구사론》과 《현종론》에 따르면, 사승해(邪勝解, 염오승해, 그릇된 승해, 오염된 승해, 산스크리트어: mithyādhimokṣa)는 대지법 가운데 승해(勝解)의 그릇된 상태 또는 오염된 상태인 염오승해(染污勝解)이다.

심란(心亂)[편집]

구사론》과 《현종론》에 따르면, 심란(心亂, 마음의 분산, 마음의 흐트러짐, 염오등지, 염오삼마지, 그릇된 등지, 그릇된 삼마지, 오염된 등지, 오염된 삼마지, 산스크리트어: vikṣepa, 영어: distraction, desultoriness)은 대지법 가운데 삼마지(三摩地)의 그릇된 상태 또는 오염된 상태인 염오삼마지(染污三摩地)이다.[126][127][168][169]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2가지)[편집]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산스크리트어: akuśala-mahā-bhūmika)이란 모든 법 가운데 '대불선지'(大不善地)에 존재하는 법들을 말한다. 여기서 '대불선지'는 대불선법(大不善法)의 지(地), 즉 대불선법의 용지처(容止處) 즉 소행처(所行處), 즉 대불선법이 생기하는 영역으로서의 마음, 즉 불선심(不善心) 즉 번뇌오염마음 중에서도 불선한 마음을 가리키며, '대불선법'은 불선한 마음작용들 가운데 항상 존재하는 것들을 말한다. 따라서, 대불선지법이란 일체의 불선심(不善心) 즉 번뇌에 의한 오염이 심화되어 불선의 상태에 처해 있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에 항상 존재하는 마음작용들을 말한다.[37][38][39][40]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대불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는 무참(無慚) · 무괴(無愧)의 2가지 이 있으며, 이들 2가지 마음작용불선심(不善心) 즉 불선한 마음에 항상 존재한다[恒於不善心有]. 달리 말하면, 이들 2가지 마음작용만이 모든 불선심불선한 마음악한 마음구기(俱起)한다[與一切不善心俱].[37][38][170][40]

(27) 무참(無慚)[편집]

무참(無慚, 스스로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 공경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āhrīkya, ahrī, 팔리어: ahirika, 영어: lack of shame, lack of consciousness, consciencelessness, shamelessness, disrespect)은 온갖 공덕(功德)과 유덕자(有德者)에 대한 무경(無敬) · 무숭(無崇) · 무소기탄(無所忌難) · 무소수속(無所隨屬)의 마음작용이다. 즉 공덕(功德)과 덕이 있는 자[有德者]에게 공경[敬]하는 일이 없고, 존중[崇]하는 일이 없고, 어렵게 여겨 꺼리는 일[忌難]도 없고, 따라 속하는 일[隨屬: 제자로서의 예의]도 없는, 대불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 공경존중을 장애하는 마음작용이다.[171][172]

현종론》에 따르면, 공덕(功德)이란 시라(尸羅: 계율) 등을 말하며, 유덕자(有德者)란 친교사(親敎師: 스승)를 말한다. 즉 공덕 ·  · 3학을 말하고, 유덕자는 스승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면, 무참은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공덕공덕 있는 자에 대해 공경하고 존중하는 일이 없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171][173]

또는, 유여사(有餘師)의 정의에 따르면, 무참(無慚)은 온갖 번뇌에 대해 능히 염훼(厭毀)하지 않는 즉 능히 싫어하거나 허물려고 하지 않는 마음작용이다. 또는 무참(無慚)은 홀로 있으면서 를 짓고서는 무치(無恥)한 것 즉 부끄러워함이 없는 마음작용이다. 또는 무참(無慚)은 불선심을 일으키는 바로 그 때 이숙인(異熟因)에 대해 돌아다봄[顧眄]이 없는 마음작용이다. 즉 온갖 불선마음이 현재 바로 눈 앞에 있는 상태에서 그 원인에 대해 돌아다봄[顧眄]이 없는 마음작용이다.[174][175]

구사론》에 따르면, 무참(無慚)은 온갖 공덕(功德)과 유덕자(有德者)에 대한 무경(無敬) · 무숭(無崇) · 무소기탄(無所忌難) · 무소수속(無所隨屬)의 마음작용으로, 공경(恭敬)의 적대가 되는 법[敵對法]이다. 즉 공덕(功德: 계정혜 3학)과 덕이 있는 자[有德者: 스승]에게 공경[敬]하는 일이 없고, 존중[崇]하는 일이 없고, 어렵게 여겨 꺼리는 일[忌難]도 없고, 따라 속하는 일[隨屬: 제자로서의 예의]도 없는, 대불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 공경(恭敬)의 반대가 되는 마음작용이다.[176][177]

또는, 유여사(有餘師)의 정의에 따르면, 무참(無慚)은 지은 에 대해 그 자체를, 예를 들어 이숙인(異熟因)을,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없는, 대불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78][179]

(28) 무괴(無愧)[편집]

무괴(無愧, 남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 뉘우치지 않음, 두려워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anapatrāpya, atrapā, 팔리어: anottappa, 영어: lack of propriety, disregard, shamelessness)는 (罪) 즉 모든 관행자(觀行者)가 꾸짖고 싫어하는 법[訶厭法]에 대해 두려워 해야 할 것[怖畏]으로 보지 않는 마음작용으로, 대불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즉, 모든 관행자꾸짖고 싫어하는 온갖 죄업(罪業)은 능히 현생내생의 세계에서 책망할 만하고 헐뜯을 만하고 비난할 만하고 벌할 만하고 애호할 수 없고 참기 어려운 이숙과를 초래하므로 두려워 해야 할 일[怖畏事]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죄업에 대해 그것이 불러올 과보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아무런 꺼림이 없는 마음작용이다. 간단히 말하면, 무괴현행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꺼려하는 바[無所忌憚]가 없는 마음작용을 말한다.[171][172]

그리고, 미래과보를 두려워 하지 않는 마음작용무괴(無愧)는 인과를 부정하는 번뇌사견(邪見)과 인과도리미혹번뇌무명(無明)을 인기(引起)하여 현행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전자의 사견은 나쁜 과보 또는 괴로운 과보가 초래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인과를 부정하는 것이고, 후자의 무명은 나쁜 과보 또는 괴로운 과보가 초래될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인과미혹한 것이다.[171][172]

또는, 유여사(有餘師)의 정의에 따르면, 무괴(無愧)는 온갖 불선에 대해 능히 염훼(厭毀)하지 않는 즉 능히 싫어하거나 허물려고 하지 않는 마음작용이다. 또는 무괴(無愧)는 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를 짓고서는 무치(無恥)한 것 즉 부끄러워함이 없는 마음작용이다. 또는 무괴(無愧)는 불선심을 일으키는 바로 그 때 이숙과(異熟果)에 대해 돌아다봄[顧眄]이 없는 마음작용이다. 즉 온갖 불선마음이 현재 바로 눈 앞에 있는 상태에서 그 결과에 대해 돌아다봄[顧眄]이 없는 마음작용이다.[174][175]

구사론》에 따르면, 무괴(無愧)는 (罪) 즉 모든 선사(善士)가 꾸짖고 싫어하는 법[訶厭法]에 대해 두려워 해야 할 것[怖畏]으로 보지 않는 마음작용으로, 대불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즉, 원인으로서의 (罪) 자체와 그것이 불러올 과보를 두려워 하지 않는 마음작용이다.[180][181]

그리고, 《구사론》에 따르면, 원인으로서의 미래과보를 두려워 하지 않는 마음작용무괴(無愧)는 인과를 부정하는 번뇌사견(邪見)과 인과도리미혹번뇌무명(無明)을 인기(引起)하여 현행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180][181]

또는, 유여사(有餘師)의 정의에 따르면, 무괴(無愧)는 지은 에 대해 다른 것을, 예를 들어 이숙과(異熟果)를,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없는, 대불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78][179]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10가지)[편집]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이란 모든 법 가운데 '소번뇌지'(小煩惱地)에 존재하는 법들을 말한다. 여기서 '소번뇌지'는 소번뇌법(小煩惱法)의 지(地), 즉 소번뇌법의 용지처(容止處) 즉 소행처(所行處), 즉 소번뇌법이 생기하는 영역으로서의 마음, 즉 염오심(染污心) 가운데 특정한 일부, 즉 번뇌에 의해 오염마음 가운데 특정한 일부의 마음을 가리킨다. '소(小)'란 바로 적다[少]는 뜻으로, 모든 염오심(染污心)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따라서, 소번뇌지법이란 일부의 염오심에서만 존재하는 마음작용들, 즉 번뇌에 의해 오염마음 가운데 특정한 일부의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에서만 존재하는 마음작용들을 말한다.[41][42][43][44]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는 (忿) · (覆) · (慳) · (嫉) · (惱) · (害) · (恨) · (諂) · (誑) · (憍)의 10가지 이 있으며, 이들 10가지 마음작용은 일부의 염오심(染污心)과 구기(俱起)한다[少分染污心俱]. 달리 말하면, 이들 10가지 마음작용들은 모든 염오심 또는 불선심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며 특정한 염오심 또는 불선심에서만 발견된다.[41][42][43][44]

현종론》에 따르면, 소번뇌지법에 속한 10가지 마음작용들의 공통된 성격은 불인(不忍) · 불락(不樂) · 분발(憤發)이다. 즉, 받아드릴 수 없고[不忍], 즐길 만한 것이 아니며[不樂], 번민하여 일어난다[憤發]는 것이다.[43][44]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들 10가지 마음작용들을 소번뇌지법이라고 하는 이유는, 《구사론》에 따르면 다음의 4가지 이유 때문이다.[41][42]

현종론》에서도 이들 10가지 마음작용들을 소번뇌지법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이유로 다음의 4가지를 들고 있는데, 순서와 표현만 다를 뿐 그 내용은 《구사론》과 동일하다.[43][44]

(29) 분(忿)[편집]

(忿, 분노, 비난과 성냄, 노여워함, 산스크리트어: krodha, 영어: fury, rage, indigation, anger)은 자신이나 친구의 손해와 원수의 이익으로 인해 생겨나는 마음작용으로, 진에(瞋恚)가 선행의 발동근거가 되어 일어나는 심분(心憤) 즉 마음분함[憤]으로,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82][183]

또는, 유여사(有餘師)에 따르면, (忿)은 (處)와 비처(非處) 즉 옳다고 여기는 바나 그르다고 여기는 바를 거스르는 것이 있을 때 일어나는, 심무고(心無顧)와 심분발(心憤發)의 성질의 마음작용이다. 즉, 마음으로 하여금 되돌아보는 일이 없게 하고 격분[憤發]하게 하는 힘[力] 또는 종자[子]이다.[182][183]

구사론》에 따르면, (忿)은 근본번뇌이자 부정지법에 속한 (瞋)과 소번뇌지법에 속한 (害) 이외의 마음작용으로서, 유정비유정에 대한 심분발(心憤發)의 성질 즉 유정비유정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격분[憤發]하게 하는 성질의,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84][185]

(30) 부(覆)[편집]

(覆, 숨기고 감춤, 산스크리트어: mrakśa, 팔리어: makkha, 영어: concealment, slyness-concealment, hypocrisy)는 자신의 (罪)를 숨기고 감추려고[隱藏] 하는,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罪)는 꾸짖을 만한 것[可訶]을 말한다. 즉, 시라(尸羅: 계율)와 궤칙(軌則), 그리고 온갖 청정한 명[淨命]을 훼범(毀犯: 허물고 범함)하는 것을 말한다. 감추려고 함[隱藏]은 를 은닉하고자 하는 욕구[匿罪欲]를 원인으로 하는 행위이다.[186][187]

또는, 유여사(有餘師)에 따르면, (覆)는 문식(捫拭: 비틀고 닦음) 즉 있으면서도 없는 체하는 것을 말한다. 즉, 으로는 을 품었으면서도 밖으로는 품지 않은 체하는 마음작용으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알아차리지[覺察] 못하게 하려는 욕구[欲]의 마음작용이다.[186][187]

구사론》에 따르면, (覆)는 자신의 (罪)를 감추려고 하는,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88][189] (罪)는 모든 선사(善士)가 꾸짖고 싫어하는 법[訶厭法]으로서 그 자체와 그 과보두려워 해야 할 것[怖畏]이다.[180][181]

(31) 간(慳)[편집]

(慳, 아까워함, 인색, 희사하지 못함, 베풀지 못함, 산스크리트어: mātsarya, 팔리어: macchariya, 영어: stinginess, avarice, miserliness, greed)은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자 수번뇌 가운데 10전(十纏)에 속한 번뇌인데, 《현종론》 제4권의 소번뇌지법을 논하는 대목에서는 (慳)에 대해 뒤에서 수번뇌를 다룰 때 그 본질[相]을 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현종론》 제27권의 수번뇌 가운데 10전을 논하는 대목에서는 (慳)에 대해 앞에서 논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착오에 따라, 《현종론》에는 (慳)에 대한 정의가 없다.[41][42][190][191]

구사론》에 따르면, (慳)은 재시(財施) · 법시(法施)의 교시(巧施: 타인에게 보시하여 이익을 주는 것)와 반대되는 마음작용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재물[財]과 교법[法]에 대해 인색하여 집착하게 하는,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32) 질(嫉)[편집]

(嫉, 시기, 질투, 산스크리트어: īrṣyā, irshya, 팔리어: issā, 영어: jealousy, envy)은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자 수번뇌 가운데 10전(十纏)에 속한 번뇌인데, 《현종론》 제4권의 소번뇌지법을 논하는 대목에서는 (嫉)에 대해 뒤에서 수번뇌를 다룰 때 그 본질[相]을 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현종론》 제27권의 수번뇌 가운데 10전을 논하는 대목에서는 (嫉)에 대해 앞에서 논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착오에 따라, 《현종론》에는 (嫉)에 대한 정의가 없다.[41][42][190][191]

구사론》에 따르면, (嫉)은 다른 사람의 온갖 흥성사(興盛事) 즉 온갖 흥하고 성한 일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기뻐하지 않게[不喜] 하는,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92][193]

(33) 뇌(惱)[편집]

(惱, 괴롭힘, 사나움, 포악함, 죄사에 대한 견고한 집착, 산스크리트어: pradāśa, 영어: spite, spitefulness, malice, stubbornness)는 가훼사(可毀事), 즉 허물어야 할 일, 즉 죄사(罪事: 가 되는 일, 악한 일, 나쁜 일)에 대해, 결정적이고도 견고히, 악한 마음으로 집착하는 마음작용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 가훼사죄사를 버리기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서의,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세간에서는 마음(惱)와 상응하고 있는 상태의 사람에 대해 "인도할 수 없다[不可引導]"고 말한다.[194][195] (罪)는 꾸짖을 만한 것[可訶]을 말한다. 즉, 시라(尸羅: 계율)와 궤칙(軌則), 그리고 온갖 청정한 명[淨命]을 훼범(毀犯: 허물고 범함)하는 것을 말한다.[186][187]

구사론》에 따르면, (惱)는 온갖 죄사(罪事: 가 되는 일, 악한 일, 나쁜 일)에 대해 견고히 집착하는,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마음(惱)와 상응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참다운 충고[如理諫]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회개[悔]하지도 않는다.[196][197] (罪)는 모든 선사(善士)가 꾸짖고 싫어하는 법[訶厭法]으로서 그 자체와 그 과보두려워 해야 할 것[怖畏]이다.[180][181]

(34) 해(害)[편집]

(害, 핍박, 해침, 손뇌, 산스크리트어: vihiṃsā, 영어: hostility, cruelty, intention to harm, spirit of violence)는 다른 유정에 대해 전혀 되돌아보지 않는 것은 아니나 섭수(攝受)하는 것처럼 하면서 손뇌(損惱: 손상시키고 괴롭힘)를 끼치는 일을 저지르는 원인[因]이 되는 비장뇌심(悲障惱心) 즉 다른 유정을 슬프게 하고 장애하며 괴롭히는 마음으로,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98][199]

구사론》에 따르면, (害)는 다른 유정핍박(逼迫: 억누르고 괴롭힘[200])하는,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마음(害)와 상응하게 되면 때리고[打] 매도하는[罵] 등의 일을 저지르게 된다.[201][202]

(35) 한(恨)[편집]

(恨, 원한, 원망, 산스크리트어: upanāha, 영어: resentment, enmity, vindictiveness)은 비애상(非愛相]) 즉 애호할 만한 것이 아닌 것에 대해 수념분별(隨念分別: 기억에 따른 분별)함으로써 생겨나는,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 (忿)이 상속하여 후기(後起)한 마음이 원한을 맺는 것[結怨]을 말한다.[203][204][205]

구사론》에 따르면, (恨)은 소번뇌지법에 속한 (忿)의 마음작용소연(所緣)에 대해 자주자주 생각[數數尋思]하여 원한을 품어 버리지 않는[結怨不捨],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06]

(36) 첨(諂)[편집]

(諂, 마야, 가장하여 숨김, 심곡, 아첨, 산스크리트어: māyā, 영어: pretense, deceit, dissimilation)은 자신이 품고 있는 마음[己情事]을 방편으로 숨기고 거짓된 모략으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他情]을 유혹하여 실제의 앎[實智]과는 어긋나게 하는 심곡(心曲) 즉 마음의 왜곡으로,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07][208]

구사론》에 따르면, (諂)은 심곡(心曲)를 말한다. 즉 마음으로 하여금 아곡(阿曲)하게 하는,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마음(諂)과 상응하게 되면 스스로를 사실 그대로[如實] 드러내지 않게 되며, 따라서 다른 사람이 나의 허물을 바로잡아주는 그러한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방편을 시설[設]하여 그 결과 내가 참다운 것을 알게 되는 그러한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209][210]

현종론》에 따르면, 심곡(心曲) 즉 마음의 왜곡(諂)과 심험(心險) 즉 마음의 험악함(誑)은 다른 이를 속인다는 것에서는 동일하지만 서로간에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211][212]

(37) 광(誑)[편집]

(誑, 속임, 미혹시킴, 산스크리트어: śāthya, 영어: hypocrisy, dishonesty, deception, spirit of deception)은 명리(名利) 등에 대한 (貪)이 선행하는 마음작용으로,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혹[惑]시키고자 거짓을 나타내는 일을 하게 하는 원인[因]이 되는 마음작용으로, 바른 결정[正定]과 어긋나게 하는 심험(心險) 즉 마음의 험악함으로서의,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13][214]

구사론》에 따르면, (誑)은 다른 사람을 미혹시키는[惑],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15][216]

현종론》에 따르면, 심곡(心曲) 즉 마음의 왜곡(諂)과 심험(心險) 즉 마음의 험악함(誑)은 다른 이를 속인다는 것에서는 동일하지만 서로간에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211][212]

(38) 교(憍)[편집]

(憍, 교만, 오염된 기쁨, 산스크리트어: mada, 팔리어: mada, 영어: self-satisfaction, self-infatuation, mental inflation, smugness, conceit)는 자신이 가진 에 대한 염착발동근거 또는 전제로 하여 일어나는 마음작용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거만[傲]하게 하고 방일[逸]하게 하여 다른 것을 돌아보는 것[顧]을 하지 않게 하는 무소고성(無所顧性)의,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즉, 자신의 용감함 · 건강 · 재산 · 지위 · 도덕성[戒] · 지혜 · 친족 등에 대해 먼저 염착을 일으키고 이를 발동근거로 하여 마음거만[傲]과 방일[逸]이 생겨남으로써 온갖 선본(善本)을 되돌아보는 일이 없는 마음작용이다. '온갖 선본(善本)을 되돌아보는 일이 없다'는 것은 마음거만[傲]해짐에 따라 온갖 선업(善業)을 즐거이 수습(修習)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217][218]

또는, 유여사(有餘師)의 견해에 따르면, (憍)는 (貪)으로부터 생겨난 마음작용으로, 자신의 젊음과 건강함과 나이 등의 갖가지 흥성사(興盛事)를 믿고 자부하여[恃] 마음거만[傲]해 지는 것이다.[219][220]

또는, 다른 유여사(有餘師)의 견해에 따르면, (憍)는 자상속(自相續: 자신의 소의신)에서 흥성한 제행(諸行) 즉 건강 · 재산 · 지위 등의 갖가지 유위법에 대한 탐착[耽染]을 발동근거 또는 전제로 하여 일어나는 마음작용으로, 다른 이를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가 뛰어나다고 하면서 '마음이 스스로를 믿고 자부하여 거들먹거리는 것[心自舉恃]'이다. 다른 이를 돌아보지 않는다[不顧他]고 하는 점에서 (慢)과 차이가 있다.[219][220]

구사론》에 따르면, (憍)는 자신이 가진 에 대한 염착발동근거 또는 전제로 하여 일어나는 마음작용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거만[傲]하게 하고 방일[逸]하게 하여 다른 것을 돌아보는 것[顧]을 하지 않게 하는 무소고성(無所顧性)의,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21][222][223][224]

또는, 유여사(有餘師)의 견해에 따르면, (憍)는 (貪)으로부터 생겨난 흔거(欣擧: 들떠 거들먹거리는 것)의 차별이다. 즉, 번뇌오염된 상태의 (喜)이다.[223][224]

부정지법(不定地法: 8가지)[편집]

부정지법(不定地法)은 그 성질대지법 · 대선지법 · 대번뇌지법 · 대불선지법 · 소번뇌지법의 5가지 그룹 가운데 어느 특정 하나에 속한다고 확정할 수 없는[不定] 마음작용들을 말한다.[45][46][47][48]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는 (尋) · (伺) · 수면(睡眠) · 악작(惡作) · (貪) · (瞋) · (慢) · (疑)의 8가지가 있다.[45][46][47][48]

(39) 심(尋)[편집]

(尋, 대강의 상(相: 성질, 모습, 자성)을 분별함, 거친 성질, 거친 움직임, 산스크리트어: vitarka, vitarkah, 팔리어: vitakka, 영어: conception, selectiveness, gross detection, examination, application of thought, applied thinking, initial application, grossness of the mind)은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의 거친 성질[麤性]로서,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한편, 이에 대해 (伺)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세밀한 성질[細性]로서, 역시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25][226]

구사론》에 따르면, (尋)은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의 거친 성질[麤性]로서,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한편, 이에 대해 (伺)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세밀한 성질[細性]로서, 역시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27][228]

설일체유부의 정통 교학 즉 비바사사의 견해에 따르면, (尋)은 마음(6식 가운데 전5식)으로 하여금 감각적 대상(5경)을 추구하게 하는 보다 거친 성질마음작용[心之麤性]이다. 그리고 (伺)는 마음(6식 가운데 제6의식)으로 하여금 비감각적 대상 (법경)을 파악하게 하는 보다 세밀한 성질마음작용[心之細性]이다. 이들 두 마음작용 덕분에, 즉, 개별적 실체로서 존재하면서 서로 상응(相應)하면서 구기(俱起)하기 때문에 마음(麤) · (細)에 치우치지 않고 대상에 대한 고른 인식을 이끌어낼 수 있다.[229][230][231][232]

또한, (尋)과 (伺)의 상응구기에 대해 비바사사는 이 두 마음작용어언행(語言行), 즉 어언, 즉 언어[語言] 즉 을 성립시키는 근거가 되는 거친 성질세밀한 성질마음작용이라는 2번째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233][234]

(40) 사(伺)[편집]

(伺, 자세한 상(相: 성질, 모습, 자성)을 분별함, 세밀한 성질, 세밀한 움직임, 산스크리트어: vicara, vitarkah, 팔리어: vicāra, 영어: discernment, discursiveness, analysis, sustained application, sustained thinking, selectiveness, subtle discernment, subtlety of the mind)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세밀한 성질[細性]로서,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25][226]

구사론》에 따르면, (伺)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세밀한 성질[細性]로서,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27][228]

(41) 수면(睡眠)[편집]

수면(睡眠, 잠, 흐릿함, 약화됨,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함, 산스크리트어: middha, 팔리어: middha, 영어: torpor, sleep, drowsiness, apathy)은 줄임말로 (眠)이라고도 하는데, 심매략성(心昧略性) 즉 마음으로 하여금 [6경과 6근에 대하여] 흐릿하고 약해지게[昧略, 흐리멍덩해지게] 하는 성질[相], 혼침(惛沈)과 상응하는 성질[相], 을 집지(執持)하지 못하게 하는 성질[相]의 3가지 성질[相]을 본질로 하는,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35][236]

현종론》에 따르면, 번뇌로서의 수면은 이들 3가지 성질[相]을 다 갖춘 경우이다. 수면혼침상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예를 들어 상쾌한 잠이 그러하다. 참고로, 《구사론》에서는 혼침상응하는 성질을 제외한 다른 2가지 성질만을 언급하고 있다.[235][236]

구사론》에 따르면, 수면(睡眠)은 심매략성(心昧略性) 즉 마음으로 하여금 [6경과 6근에 대하여] 흐릿하고 약해지게[昧略, 흐리멍덩해지게] 하는 성질의,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마음수면상응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마음5근을 집지(執持)할 만한 공력(功力)이 없게 된다.[237][238]

(42) 악작(惡作)[편집]

악작(惡作, 후회, 추회 산스크리트어: kaukṛitya, kaukritya, 팔리어: kukkucca, 영어: regret, worry)은 (悔)라고도 하는데 지어진 일 또는 짓지 않은 일, 특히 그릇되이[惡] 지어진 일[作]을 소연으로 하여 생겨나는[緣], 마음추회(追悔)하는 성질마음작용으로서,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39][240]

현종론》의 설명에 따르면, (悔) 즉 추회 또는 후회는 '그릇되이 지어진 일 또는 잘못 저질러진 일[惡作]'을 소연으로 삼기 때문에 악작이라는 명칭을 설정한 것으로, 무상정(無相定)과 신념주(身念住)의 경우와 같다. 즉, 무상정공해탈문(空解脫門) ·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 ·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의 3해탈문 가운데 무상해탈문을 말하는데, 그 자체의 본질은 무루정(無漏定) 즉 견도위(見道位) 이상의 성자무루지(無漏智)를 발하는 선정으로 깨달음의 세계[悟界]에 이르게 하는 원인이 되는 선정이지만,[241][242] 무상(無相)을 소연의 경계로 삼아 일어나는 선정이기 때문에 무상정이라 한다. 신념주(身念住)는 신념주(身念住) · 수념주(受念住) · 심념주(心念住) · 법념주(法念住)의 4념주(四念住) 가운데 하나로 부정(不淨)한 것이라고 억념하는 관법으로,[243] 부정(不淨)한 것이라고 하는 것의 본질은 무탐(無貪)이지만 소연이 되는 처소에 따라 '신념주'라고 이름한 것이다. 무상정신념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악작의 본질은 후회[追悔]이지만 후회의 소연이 '악작(惡作: 그릇되이 지어진 일, 잘못 저질러진 일)'이기 때문에 '악작'이라고 이름한 것이다.[239][240]

현종론》에 따르면, 악작불선에는 통하지만 무기와는 통하지 않는다. 이것은 지은 일 또는 짓지 않은 일에 대한 심척(心慼), 즉 마음의 슬픔 또는 근심이 악작본질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지은 일 또는 짓지 않은 일에 대해 마음우근(憂根)과 상응한 상태라야 악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요즈음 어찌하여 소화시키지도 않고 먹기만 하는가?' 또는 '나는 요즈음 어찌하여 이 벽에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인가?'라는 추변(追變: 추억)은 무기에 해당하는데, 아직 마음우근접촉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악작이라고 할 수 없으며, 우근접촉한 상태가 되면 악작이 일어난다.[239][240]

구사론》에 따르면, 악작(惡作)은 (悔)라고도 하는데 심추회성(心追悔性)의 마음작용이다. 즉 그릇되게 지어진 것을 소연으로 하여 생겨나는[緣], 마음추회(追悔)하는 성질마음작용으로서,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44][245]

구사론》의 설명에 따르면, '악작(惡作)'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그릇되게 지어진 것'인데, 나중에 '그릇되게 지어진 것'을 대상으로 하여 추회후회하게 되므로, 악작이라는 낱말로 후회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즉, '그릇되게 지어진 것'이라는 원인으로써 '후회'라는 결과를 가리키는 용도로 사용한 경우이다. 이렇기 때문에, '악작(惡作)'의 문자 그대로의 뜻인 '그릇되게 지어진 것' 자체에는 후회의 뜻이 들어 있지 않지만, '그릇되게 지어진 것'은 나중에 후회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후회마음작용'의 명칭으로서 '악작(惡作)'을 사용한 것이다.[244][245]

구사론》에 따르면, 악작(惡作) 즉 (悔)는 이 될 수도 있고 번뇌 또는 불선이 될 수도 있다. 을 짓지 않은 것이나 을 지은 것을 후회하는 것은 이고, 을 지은 것이나 을 짓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은 불선이다.[246][247]

(43) 탐(貪)[편집]

현종론》에서는 (貪, 3계의 애(愛), 미착, 탐착, 산스크리트어: rāga, 팔리어: rāga, 영어: lust, attachment, craving)에 대한 정의가 제공되어 있지 않다. 다만, 《구사론》과 동일하게, 욕계의 탐인 욕탐(欲貪)과 색계 · 무색계의 탐인 유탐(有貪)으로 나뉜다는 것은 언급하고 있으며, 욕탐에 대해서는 남의 재물에 대한 악욕(惡欲)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욕탐은 남의 재물에 대해 비리(非理)의 (欲: 욕구)를 일으켜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나에게 소속시키기 위해 강제로 혹은 슬그머니 취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는, 남의 재물탐착[耽]하고 희구[求]하는 악욕(惡欲) 즉 나쁜 욕구 · 사악한 욕구 또는 그릇된 욕구를 말한다.[248][249][250][251] 그리고 《구사론》에서와 동일하게, 욕탐은 대체로 외문전(外門轉)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욕탐은 주로 욕계5욕(五欲)의 대상을 소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유탐은 주로 내문전(內門轉)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유탐은 주로 선정이나 (有) 즉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소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유탐을 굳이 설정하게 된 것은, 이생이나 외도무상이숙(無想異熟), 즉 무상천(無想天)에서의 5백 대겁 동안의 무상(無想)의 삶을 해탈이라 여기고 이것에 집착하는 것처럼, 색계무색계의 존재[有]를 해탈로 여기고 집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252][253]

구사론》에 따르면, (貪)은 마음으로 하여금 외적 대상[境]이나 자신의 존재 자체[有, 自體]에 대해 깊이 미착(味著: 맛들여 집착함)하게 하는,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54][255]

(貪)은 욕계욕탐(欲貪)과 색계무색계유탐(有貪)으로 나뉜다. 욕탐(欲貪)은 욕계 중의 유정외적 대상[境]에 대해서 깊이 미착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색계무색계 중의 유정외적 대상[境]에 대해서는 미착하지 않는다. 하지만, 등지(等至, 산스크리트어: samāpatti: 선정, 정려)나 소의지(所依止), 즉 그들의 '존재 자체[自體]', 즉 (有)에 대해서는 깊이 미착함이 있는데 이와 같이 (有)에 대해 깊이 미착하는 것을 유탐(有貪)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이생외도무상이숙(無想異熟) 즉 무상천(無想天)에서의 5백 대겁 동안의 무상(無想)의 삶을 해탈이라고 생각하거나 무상이숙획득하는 원인이 되는 선정무상정(無想定)을 해탈도 또는 해탈문이라고 여겨 이들에 미착하는 것이 유탐에 해당한다.[254][255]

(44) 진(瞋)[편집]

(瞋, 미워함, 성냄, 노여워함, 상처입히고 해치는 것을 좋아함, 산스크리트어: pratigha, dvesa, 팔리어: paṭigha, 영어: ill will, anger, repugnance, hatred)은 유정(有情)을 미워하는,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즉, 유정류(有情類)에 대해 증에심(憎恚心) 즉 증오하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 핍박(逼迫)하려고 하는 마음작용이다.[248][249]

현종론》에 따르면, (瞋)은 3계 가운데 욕계에만 존재하는 마음작용 또는 근본번뇌로, 색계무색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256][257] (瞋)이 상계(上界) 즉 색계무색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258][259]

또는, 다른 견해에 따르면, (瞋)이 색계무색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색계무색계에는 뇌해사(惱害事) 즉 괴롭히거나 해코지할 일이 없기 때문이며, (慈) 등의 선근(善根)만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며, 섭수(攝受)된 온갖 것을 모두 원리(遠離)하기 때문이다.[258][259]

구사론》에 따르면, (瞋)은 다른 유정에게 상처입히고[傷] 를 끼치기[害] 위해 그 유정에 대하여 미워하고 성내는[憎恚], 부정지법에 속한 불선성질마음작용이다.[260][261]

그리고, 《구사론》에 따르면 (瞋)은 3계 가운데 욕계에만 존재하는 번뇌성마음작용인데, 유부무기가 아닌 불선으로 분류되는 번뇌이다.[262][263][264]

(45) 만(慢)[편집]

(慢, 거만, 자만, 오만, 고거심, 산스크리트어: māna, 팔리어: māna, 영어: pride, arrogance, conceit)은 심자거성(心自舉性), 즉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이 스스로를 높이는 성질의,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즉, 자신과 다른 사람의 (德)의 뛰어남[勝]과 저열함[劣], 또는 진실됨[實]과 거짓됨[不實]을 재고 헤아려서 마음이 스스로를 믿고 자부하여 거들먹거리며 다른 사람을 능멸(陵蔑: 업신여겨 깔봄)하는 마음작용이다.[217][218]

달리 말하면, (慢)은 유사(有事) 즉 원인을 갖는 유위법이나 비유사(非有事) 즉 원인을 갖지 않는 무위법에 대해 먼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고[校] 헤아린[量] 후, 이러한 비교와 헤아림을 발동근거로 하여 일으키는 고거심(高擧心) 즉 잘난 체하고 거들먹거리는 마음 또는 남에 대해 자신을 높이는 마음을 말한다.[265][266]

구사론》에 따르면, (慢)은 심자거성(心自舉性), 즉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이 스스로를 높이는 성질의,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달리 말하면, (慢)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德)에 대해 누가 더 우월한지를 따져 생각하고 헤아려서는 스스로가 더 뛰어나다고 믿거나, 혹은 동등하다고 믿거나, 혹은 못해도 많이 못하지 않다고 믿고, 이러한 믿음근거하여 거들먹거리며 다른 사람을 능멸(陵蔑: 업신여겨 깔봄)하는 마음작용이다.[267][268][269][270]

구사론》과 《현종론》에 따르면, (慢)은 세분하여 (慢) · 과만(過慢) · 만과만(慢過慢) · 아만(我慢) · 증상만(增上慢) · 비만(卑慢) · 사만(邪慢)의 7만(七慢)으로 나뉜다.[265][266][271][272]

(46) 의(疑)[편집]

(疑, 의심, 망설임, 주저함, 미룸, 진리에 대한 유예, 산스크리트어: vicikitsa, vicikitsā, 팔리어: vicikicchā, 영어: doubt, indecision, skepticism, indecisive wavering)는 있을까 없을까 또는 그럴까 그렇지 않을까의 유예(猶豫)의 '두 가지 갈래에서 일어나는[二趣轉]' 마음작용으로 그 갈래에서 동요[動]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는,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73][274]

구사론》에 따르면, (疑)는 있을까 없을까 또는 그럴까 그렇지 않을까의 '두 가지 갈래에서 일어나는[二趣相轉]' 마음작용으로 그 갈래에서 동요(動搖)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는,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275][276]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

  • 고려대장경연구소. 《고려대장경 전자 불교용어사전》. 고려대장경 지식베이스 / (사)장경도량 고려대장경연구소.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곽철환 (2003).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 네이버 지식백과.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K.571, T.1602). 《현양성교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571(16-1), T.1602(31-480).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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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55(27-453), T.1558(29-1).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618, T.1612). 《대승오온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18(17-637), T.1612(31-848).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7, T.1563). 《아비달마장현종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57(28-1), T.1563(29-777).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佛門網. 《佛學辭典(불학사전)》.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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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어)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아비달마품류족론(阿毘達磨品類足論)》. 대정신수대장경. T26, No. 1542,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중현 조, 현장 한역 (T.1563). 《아비달마장현종론(阿毘達磨藏顯宗論)》.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63,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편집]

  1. 佛門網, "衆賢". 2013년 3월 22일에 확인
    "衆賢:
    出處: Other
    解釋: 衆賢 [py] Zhòng xián [wg] Chung-hsien [ko] 중현 Chunghyŏn [ja] シュウゲン Shūgen ||| Saṃghabhadra. A younger Sarvāstivādin contemporary of Vasubandhu, who criticized the latter's work on Abhidharma. Lived in Northern India during the fifth century CE. Putative author of the Apidamo shunzheng lilun 阿毘達磨順正理論.
    頁數: [Dictionary References] Ui87 [Credit] cmuller(entry) cwittern(py)
    出處: 佛教漢梵大辭典, 平川彰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Akira Hirakawa
    解釋: saṃgha-bhadra.
    頁數: P.3344-P.3345"
  2. 운허, "衆賢(중현)". 2013년 3월 22일에 확인
    "衆賢(중현): 인도 스님. 범어 승가발타라(僧伽跋陀羅, Saṃghabhadra)의 번역. 북인도 가습미라국 사람. 살바다부(薩婆多部)의 『비바사(毘婆娑)』를 배우고, 세친 보살이 지은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을 12년 간 연구한 뒤에 『구사박론(俱舍雹論, 순정리론)』을 지어 반박하고, 다시 세친을 만나 시비를 가리고자 중인도를 향하여 떠났다가 도중 말저보라국 도성(都城) 부근에서 병들어 죽음. 저서로는 『순정리론(順正理論)』 80권, 『아비달마현종론(阿毘達磨顯宗論)』 40권."
  3. 운허, "阿毘達磨藏顯宗論(아비달마장현종론)". 2013년 3월 22일에 확인
    "阿毘達磨藏顯宗論(아비달마장현종론): 【범】 Abhidharmakośaśāstrakārikāvibhāya. 40권. K-957, T-1563. 중현 지음. 당(唐)나라 때 현장(玄奘)이 651년 4월에서 652년 11월 사이에 번역하였다. 줄여서 『현종론』이라 한다. 전체 내용은 총 9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사론(俱舍論)』을 반박한 『순정리론(順正理論)』의 중요한 것을 뽑아 정의를 말한 논이다."
  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해제. p. 45-46 / 57
    "『구사론』이 저술되어 반포된 직후 한편으로는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해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설을 비판하고서 설일체유부의 정통학설을 밝힌 논서로서 세 종류가 현존한다. 현장(玄奘)의 한역(漢譯)으로만 존재하는 카슈미르의 정통유부의 종장(宗匠) 중현(衆賢, Sanghabhadra)이 지은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80권, 한글대장경178-181)과 『아비달마장현종론(阿毘達磨藏顯宗論)』(40권, 한글대장경200·201), 그리고 아비달마의 등불이라는 뜻의 작자 미상의 『아비달마디파(Abhidharmad pa)』가 바로 그것이다. 앞서 진제의 전승에 따라 중현은 비바사의 교의를 서술한 1만 송의 『광삼마야론』과 비바사의 교의를 옹호하면서 『구사론』을 논파한 12만 송의 『수실론』을 저술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아마도 『현종론』과 『순정리론』으로 생각된다.11) 그러나 『현종론』 서문에 의하면, 중현은 먼저 『순정리론』을 짓고 그 문구가 너무나 번잡하고 찾아보기 어려워 그 요점만을 간추려 『현종론』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12) 말하자면 『순정리론』이 본론의 일언 일구에 대해 파사(破邪)를 위주로 하는 광박(廣博)한 논서라면 『현종론』은 적극적으로 카슈미르 유부종의 정의(正義)를 간추려 현정(顯正)을 목적으로 하는 약론(略論)으로, 후자의 경우 「서품(序品)」이 덧붙여진 것을 제외하면 『구사론』을 비롯한 세 논은 논의의 체계가 동일하다.13) 그리고 『아비달마디파』는 게송으로 이루어진 「아비달마디파」와 그것의 산문의 주석인 「비바사프라바(Vibhasaprabhavritti)」를 일컫는 일군의 문헌으로 1959년 P.S. Jaini에 의해 교정 출간되었는데(Tibetan Sanskrit Works Series, vols.Ⅳ, Patna, 1967), 본론의 작자는 스스로를 등불을 밝히는 자(D pakara)로, 세친을 구사논주(Kosakara)로 칭하면서 『구사론』을 비판하고, 카슈미르의 정통 유부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이 같은 정통 유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구사론』은 여전히 설일체유부 학설의 정요로서, 또한 불교학의 기초 입문서로서 그 명성을 떨쳐 인도에서는 덕혜(德慧, Gunamati)·세우(世友, Vasumitra)·안혜(安慧, Sthiramati) ·진나(陳那, Dignaga)·칭우(稱友, Yasomitra)·만증(滿增, Purna-vardhana)·적천(寂天, amthadeva) 등이 주석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범본으로 현존하는 것은 안혜의 『탓트바아르타(Tattvartha)』(한역은 『俱舍論實意疏』란 명칭으로 일부만 현존)와 칭우의 『스푸타아르타(Sphutar-tha-abidharma-kosavyakhya)』뿐이며, 이것과 더불어 만증의 『락샤나아누사린(Laksananusarin)』, 진나의 『카르마프라디파(Karmaprad pa)』, 적천의 『우파이카(Upaika)』는 티벳 역으로만 존재한다. 티벳의 전승에 따르면 칭우는 현장의 스승이었던 계현(戒賢) 논사(AD 529-645)와 동시대 인물로서, 그는 세우(世友)나 덕혜(德慧)의 주석에 왕왕 세친의 진의를 잘못 이해한 곳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아 진의를 드러내기 위해 '명백한 뜻'이라는 의미의 『스푸타아르타』를 저술하였다고 하는데, 19세기 초 네팔에서 수집되어 부르누프에 의해 보고된 이래 가장 고전적인 주석으로 꼽히고 있다.(후설)
    11) 현장의 『대당서역기』 권제4(대정장51, p.891)에서는 2만 5천 송 80만 언으로 이루어진 『구사박론(俱舍雹論)』을 지었는데, 세친이 나중에 논의 제목을 『순정리론』으로 고쳐 지었다고 한다.
    12) 『현종론』 권제1(한글대장경200, p.1).
    13) 다만 『현종론』에서는 본론의 600여 본송 가운데 5송을 완전히 삭제하였고, 8송은 완전히 개작하였으며, 23송은 부분적으로 개작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졸고, 「중현의 구사론본송의 개작과 삭제에 대하여」 (『한국불교학』 제25집, 1999)를 참조할 것."
  5.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1권. p. T29n1563_p0777a07 - T29n1563_p0777a17. 서품(序品)
    "序品第一
     諸有遍於一切法 最極難知自共相
     獨能悟解無邪亂 是一切智今敬禮
     我以順理廣博言 對破餘宗顯本義
     若經主言順理教 則隨印述不求非
     少違對法旨及經 決定研尋誓除遣
     已說論名順正理 樂思擇者所應學
     文句派演隔難尋 非少劬勞所能解
     為撮廣文令易了 故造略論名顯宗
     飾存彼頌以為歸 刪順理中廣決擇
     對彼謬言申正釋 顯此所宗真妙義"
  6.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1권. pp. 1-2 / 1762. 서품(序品)
    "서품(序品)
     모든 존재[諸有]에 두루하는 일체법 가운데
     가장 알기 어려운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에 대해
     홀로 능히 깨달아 아신, 그릇되고 뒤섞임이 없는
     이러한 일체지(一切智)께 지금 공경 예배드리옵니다.
     나 중현(衆賢)은 이치에 부합하는 광박(廣博)한 언사로써
     다른 종의를 비판하고, 본 종(宗)의 뜻을 드러내고자 함에
     만약 경주(經主, 즉 世親)의 말이 이치에 부합하는 가르침이라면
     바로 그것에 따라 술(述)하여 그릇된 것을 구하지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대법(對法)의 취지나 경(經)에 어긋남이 있다면
     반드시 찾아 밝혀 삭제하고 물리치기를 서원하옵니다.
     이미 『순정리(順正理)』라고 이름한 논을 설한 바 있어
     사택(思擇)을 즐기는 자라면 마땅히 배워야 하겠지만
     문구가 번잡하고 끊겨있어 헤아리기 어려우며
     적은 노력으로 능히 이해할 바가 되지 못하기에
     광문(廣文)의 요점을 간추려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보다 간략한 논을 지어 『현종(顯宗)』이라 일렀습니다.
     일단 거기서의 게송을 늘어놓고 귀의처로 삼지만
     『순정리』 중에서의 번잡한 결택(決擇)은 지워버리고
     그것의 잘못된 말에 대해서는 올바로 해석하여
     종의가 되는 참된 묘의(妙義)를 드러내려 하옵니다."
  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8c27 - T29n1558_p0019a06. 마음작용의 성격
    "如是已辯色定俱生。餘定俱生今次當辯。頌曰。
     心心所必俱 諸行相或得
    論曰。心與心所必定俱生。隨闕一時餘則不起。諸行即是一切有為。謂色心心所心不相應行。前必俱言流至於此。謂色心等諸行生時。必與有為四相俱起。言或得者。謂諸行內唯有情法與得俱生。餘法不然。是故言或。"
  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0 / 1397. 마음작용의 성격
    "이와 같이 색은 결정코 구생(俱生)한다. 다시 말해 동시에 함께 생기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다음으로 그 밖의 법으로서 결정코 구생하는 것에 대해 마땅히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心)과 심소(心所)는 반드시 함께하며
     제행(諸行)은 상(相), 혹은 득(得)과 [반드시 함께한다.]
     心心所必俱 諸行相或得
    논하여 말하겠다. 심과 심소는 반드시 결정코 구생하니, 둘 중의 어느 하나라도 결여될 때에는 다른 하나도 생기하지 않는다.
    [본 송에서] 제행(諸行)이라 함은 바로 일체의 유위를 말하는 것이니, 이를테면 색과 심과 심소와 심불상응(心不相應)의 행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앞의 구절에서 언급한 '반드시 함께한다'고 하는 말은 여기에도 적용되니, 이를테면 색이나 심 등의 제행이 생겨날 때에는 반드시 유위의 4상(相 : 즉 生·住·異·滅의 네 가지 상)과 구생하는 것이다. 나아가 '혹은 득(得)'이라고 말한 것은, 이를테면 제행 가운데 오로지 유정의 법만이 득과 구생하고 그 밖의 법은 그렇지 않으니, 그렇기 때문에 '혹은'이라고 말한 것이다."
  9.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b17 - T29n1563_p0799b24. 마음작용의 성격
    "已說有色決定俱生。無色俱生今次當說。頌曰。
     心心所必俱 諸行相或得
    論曰。心與心所必定俱生。隨闕一時餘未嘗起。諸行即是一切有為。所謂有色無色諸行。前必俱言。應流至此。謂有色等諸行生時。必與生等四相俱起。言或得者。唯有情法與得俱生。或言顯此不遍諸行。"
  10.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198 / 1762. 마음작용의 성격
    "유색법이 결정코 구생(俱生)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이제 다음으로 무색법의 구생관계에 대해 마땅히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心)과 심소(心所)는 반드시 함께 하며
     제행(諸行)은 상(相), 혹은 득(得)과 [반드시 함께 한다].
     心心所必俱 諸行相或得
    논하여 말하겠다.
    심과 심소는 결정코 반드시 구생하니, 둘 중의 어느 하나라도 결여될 때 다른 하나도 결정코 생기하지 않는다.
    [본송에서] 제행(諸行)이라 함은 바로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을 말하는 것이니, 이른바 유색과 무색의 온갖 행(즉 유위법)이 바로 그것이다.92) 그리고 그 앞의 구절에서 언급한 ‘반드시 함께 한다’고 하는 말은 여기에도 적용되니, 이를테면 유색 등의 제행이 생겨날 때에는 반드시 ‘생(生)’ 등의 4상(相)과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나아가 ‘혹은 득(得)’이라고 말한 것은, [제행 가운데] 오로지 유정의 법만이 ‘득’과 구생함을 말하며, ‘혹은’이라고 말한 것은 이것이 모든 유위법[諸行]과 두루 구생하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11.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2b29 - T26n1542_p0692c05. 심소법(心所法)
    "心所法云何。謂若法心相應。此復云何。謂受想思觸作意欲勝解念定慧信勤尋伺放逸不放逸善根不善根無記根。一切結縛隨眠。隨煩惱纏。諸所有智。諸所有見。諸所有現觀。復有所餘如是類法與心相應。總名心所法。"
  12.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1권. pp. 1-2 / 448. 심소법(心所法)
    "심소법(心所法)이란 무엇인가? 어떤 법이 마음과 상응(相應)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수(受)·상(想)·사(思)·촉(觸)·작의(作意)·욕(欲)·승해(勝解)·염(念)·정(定)·혜(慧)·신(信)·근(勤)·심(尋)·사(伺)·방일(放逸)·불방일(不放逸)·선근(善根)·불선근(不善根)· 무기근(無記根)과 결(結)·박(縛)·수면(隨眠)·수번뇌(隨煩惱)·전(纏), 그리고 소유하고 있는 모든 지(智)와 모든 견(見)과 소유하고 있는 모든 현관(現觀)을 말한다. 또 그 밖에 이러한 종류의 법이 마음과 상응하는 것이니, 이를 통틀어 심소법이라 한다."
  1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8b26 - T31n1612_p0848c11. 심소법(心所法)
    "云何受蘊。謂三領納。一苦二樂三不苦不樂。樂謂滅時有和合欲。苦謂生時有乖離欲。不苦不樂謂無二欲。云何想蘊。謂於境界取種種相。云何行蘊。謂除受想。諸餘心法及心不相應行。云何名為諸餘心法謂彼諸法與心相應。彼復云何。謂觸作意受想思。欲勝解念三摩地慧。信慚愧無貪善根無瞋善根無癡善根精進輕安不放逸捨不害。貪瞋慢無明見疑。忿恨覆惱嫉慳誑諂憍害無慚無愧惛沈掉舉不信懈怠放逸忘念散亂不正知。惡作睡眠尋伺。是諸心法。五是遍行。五是別境。十一是善六是煩惱。餘是隨煩惱。四是不決定。"
  1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18, T.1612, pp. 2-3 / 12. 심소법(心所法)
    "어떤 것이 수온인가. 세 가지의 영납(領納: 받아들이어 감각하는 것)을 말하니, 첫째 괴로움이고, 둘째 즐거움이고, 셋째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이다. 즐거움이란 사라질 적에 화합의 욕망이 있는 것이고, 괴로움이란 생겨날 적에 분리의 욕망이 있는 것이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이란 이 두 가지 욕망이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상온인가. 경계에 대해 갖가지 상(相)을 취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행온인가. 수온과 상온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심소법[心法] 및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이다. 어떤 것이 나머지 모든 심소법인가. 마음과 상응하는 저 모든 법을 말한다. ‘저 모든 법’은 또 어떠한 것인가.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 · 욕(欲) · 승해(勝解) · 염(念) · 삼마디[三摩地] · 혜(慧) · 신(信) · 참(慚) · 괴 (愧) · 무탐(無貪)선근 · 무진(無瞋)선근 · 무치(無癡)선근 · 정진(精進) · 경안(輕安) · 불방일(不放逸) · 사(捨) · 불해(不害) · 탐(貪) · 진 (瞋) · 만(慢) · 무명(無明) · 견(見) · 의(疑) · 분(忿) · 한(恨) · 부(覆) · 뇌(惱) · 질(嫉) · 간(慳) · 광(誑) · 첨(諂) · 교(憍) · 해 (害) · 무참(無慚) · 무괴(無愧) · 혼침(惛沈) · 도거(掉舉) · 불신(不信) · 해태(懈怠) · 방일(放逸) · 망념(忘念) · 산란(散亂) · 부정지(不正知) · 악작(惡作) · 수면(睡眠) · 심(尋) · 사(伺)이다.
    이 모든 심소법에서 다섯 가지는 변행(遍行) 심소이고, 다섯 가지는 별경(別境) 심소이고, 열한 가지는 선(善) 심소이고, 여섯 가지는 번뇌 심소이고, 그 나머지는 수번뇌(隨煩惱)이고, 네 가지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2) 색을 유견유대(有見有對), 무견유대(無見有對), 무견무대(無見無對)의 셋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유견유대는 현색(顯色) 등을 가리키고, 무견유대는 안근(眼根) 등을 가리키며, 무견무대는 무표색을 가리킨다. 이 중 무표색은 유표업과 삼매에서 생겨난 선율의(善律儀)와 불선율의(不善律儀) 등의 업을 가리킨다."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p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1371startNum2 2-3 / 12]. 심소법(心所法)"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1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06 - T29n1558_p0019a10. 마음작용의 분류
    "向言心所。何者是邪。頌曰。
     心所且有五 大地法等異
    論曰。諸心所法且有五品。何等為五。一大地法。二大善地法。三大煩惱地法。四大不善地法。五小煩惱地法。"
  1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0 / 1397. 마음작용의 분류
    "앞에서 심소(心所)를 말하였는데, 무엇이 심소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소법에는 바야흐로 다섯 가지가 있으니,
     대지법(大地法) 등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心所且有五 大地法等異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심소법에는 바야흐로 다섯 가지의 품류가 있다.
    무엇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 것인가?
    첫 번째는 대지법(大地法)이며, 둘째는 대선지법(大善地法)이며, 셋째는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이며, 넷째는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이며, 다섯째는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이다."
  1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a20 - T29n1558_p0020a22. 마음작용의 분류
    "如是已說五品心所。復有此餘不定心所。惡作睡眠尋伺等法。"
  1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73 / 1397. 마음작용의 분류
    "이와 같이 다섯 가지 품류의 심과 심소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다시 이 밖에도 부정(不定)의 심소로서 악작(惡作)·수면(睡眠)·심(尋)·사(伺) 등의 법이 존재한다.51)
    51) 심소법에는 이상의 대지법·대선지법·대번뇌지법·소번뇌지법의 4품 이외 선·염오·무기 무엇과도 상응할 수 있어 그 구생관계가 결정적이지 않은 악작·수면(睡眠)·심(尋)·사(伺) 등의 존재가 있는데, 이를 부정지법(不定地法)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등'이라고 함은, 보광(普光)의 『구사론기』에 의하면 탐(貪)·진(瞋)·만(慢)·의(疑)인데, 이에 따라 심소법이 마흔여섯 가지가 되어 일반에서 유부의 법수(法數)를 75 법으로 일컫게 된 것이다. 이 중 악작과 심·사는 본권에서 후술되며, 수면은 본론 권제21에서 설명되고 있다."
  19.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b24 - T29n1563_p0799c01. 마음작용의 분류
    "於前所說四有為中。廣辯色心如前品說。心所等法猶未廣辯。今先廣辯諸心所法。頌曰。
     心所且有五 大地法等異
    論曰。諸心所法且有五品。大地法等有別異故。五品者何。一大地法。二大善地法。三大煩惱地法。四大不善地法。五小煩惱地法。"
  20.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199 / 1762. 마음작용의 분류
    "앞서 설한 네 가지 유위법 중에서 색법과 심법에 대해서는 앞의 품(「변본사품」)에서 설한 바와 같이 이미 널리 분별하였다. 그러나 심소 등의 법에 대해서는 아직 널리 분별하지 않았으니, 여기서 먼저 온갖 심소법에 대해 널리 분별하리라.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소법에는 바야흐로 다섯 가지가 있으니
     대지법(大地法) 등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心所且有五 大地法等異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심소법에는 바야흐로 다섯 가지의 품류가 있으니, 대지법(大地法) 등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품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첫째는 대지법(大地法)이며, 둘째는 대선지법(大善地法)이며, 셋째는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이며, 넷째는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이며, 다섯째는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이다."
  21.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800c24 - T29n1563_p0800c27. 마음작용의 분류
    "如是已說大地法等品類決定心所差別。復有此餘不定心所。惡作睡眠尋伺等類。總說名為不定地法。"
  22.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p. 211-212 / 1762. 마음작용의 분류
    "이와 같이 대지법 등의 품류로서 결정된 심소의 차별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다시 이 밖에도 [그 품류가 결정되지 않은] 부정(不定)의 심소로서 악작(惡作)ㆍ수면(睡眠)ㆍ심(尋)ㆍ사(伺) 등의 종류가 존재하는데, 이를 모두 부정지법(不定地法)이라고 이름한다.15)
    15) 심소법에는 이상의 대지법ㆍ대선지법ㆍ대번뇌지법ㆍ소번뇌지법의 네 품류 이외 선ㆍ염오ㆍ무기심 중 어떤 것과도 상응할 수 있어 그 구생관계가 결정적이지 않은 악작ㆍ수면(睡眠)ㆍ심(尋)ㆍ사(伺) 등의 존재가 있는데, 이를 부정지법(不定地法)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등’이라고 함은, 보광(普光)의 『구사론기』에 의하면 탐(貪)ㆍ진(瞋)ㆍ만(慢)ㆍ의(疑)인데, 이에 따라 심소법이 46가지가 되어 일반에서 유부의 법수(法數)를 75법으로 일컫게 된 것이다. 이 중 악작과 심ㆍ사는 본권에서 후술되며, 수면은 본론 제27권 ‘수번뇌’에서 설명되고 있다."
  23.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0c29 - T31n1602_p0481a12. 심소유법(心所有法)
    "心所有法者。謂若法從阿賴耶識種子所生。依心所起與心俱轉相應。彼復云何謂遍行有五。一作意二觸三受四想五思。別境有五。一欲二勝解三念四等持五慧。善有十一。一信二慚三愧四無貪五無瞋六無癡七精進八輕安九不放逸十捨十一不害。煩惱有六。一貪二瞋三慢四無明五見六疑。隨煩惱有二十。一忿二恨三覆四惱五嫉六慳七誑八諂九憍十害十一無慚十二無愧十三惛沈十四掉舉十五不信十六懈怠十七放逸十八失念十九心亂二十不正。知不定有四。一惡作二睡眠三尋四伺。"
  24. 무착 지음, 현장 한역 & K.571, T.1602, 제1권. pp. 10-12 / 293. 심소유법(心所有法)
    "‘심소유법(心所有法)’54)은 어떤 법이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것이고, 심왕(心王)55)에 의지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심왕과 더불어 함께 전전하여 상응함을 말한다.56)
    그것은 또한 어떠한가? 변행심소(遍行心所)57)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작의(作意)이고,58) 둘째는 촉(觸)이며, 셋째는 수(受)이고, 넷째는 상(想)이며, 다섯째는 사(思)이다.
    별경심소(別境心所)59)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욕(欲)이고, 둘째는 승해(勝解)이며, 셋째는 염(念)이고, 넷째는 등지(等持)이며, 다섯째는 혜(慧)이다.
    선심소(善心所)60)는 열한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신(信)이고, 둘째는 참(慙)이며, 셋째는 괴(愧)이고, 넷째는 무탐(無貪)이며, 다섯째는 무진(無瞋)이고, 여섯째는 무치(無癡)이며, 일곱째는 정진(精進)이고, 여덟째는 경안(輕安)이며, 아홉째는 불방일(不放逸)이고, 열째는 사(捨)이며, 열 한째는 불해(不害)이다.
    번뇌심소61)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탐(貪)이고, 둘째는 진(瞋)이며, 셋째는 만(慢)이고, 넷째는 무명(無明)이며, 다섯째는 견(見)이고, 여섯째는 의(疑)이다.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62)는 스무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분(忿)이고, 둘째는 한(恨)이며, 셋째는 부(覆)이고, 넷째는 뇌(惱)이며, 다섯째는 의(疑)이고, 여섯째는 간(慳)이며, 일곱째는 광(誑)이고, 여덟째는 첨(諂)이며, 아홉째는 교(憍)이고, 열째는 해(害)이다. 열 한째는 무참(無慙)이고, 열두째는 무괴(無愧)이며, 열셋째는 혼침(惛沈)이고, 열넷째는 도거(掉擧)이며, 열다섯째는 불신(不信)이고, 열여섯째는 해태(懈怠)이며, 열일곱째는 방일(放逸)이고, 열여덟째는 실념(失念)이며, 열아홉째는 심란(心亂)이고, 스무째는 부정지(不正知)이다.
    부정심소(不定心所)63)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오작(惡作)64)이고, 둘째는 수면(睡眠)이며, 셋째는 심(尋)이고, 넷째는 사(伺)이다.
    54) 이하 5위법(位法) 중에서 심소법에 관하여 변행심소 5가지, 별경심소 5가지, 선심소 11가지, 번뇌심소 6가지, 수번뇌심소 20가지, 부정심소 4가지를 설명한다. 심소유법을 흔히 줄여서 심소법(心所法), 심소(心所)라고 부른다. ‘심리작용’을 의미한다. ‘심소(心所)’에서 ‘소(所)’는 ‘소유(所有)’의 준말이며, 심왕에 종속되어 늘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정신세계를 객관적으로 분석해보면, 식별작용 이외에 갖가지 심리작용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유식논사들은 인간의 정신현상을 분석 해명하는 데 아비달마교학의 방법론을 도입하여, 정신세계를 식별작용의 주체[心王]와 그에 수반되는 심리작용[心所]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심왕(心王, citta)은 정신작용의 주체로서 구체적으로 8식(識)을 말한다. 심소(心所, caitta)는 심왕에 종속된 심리작용이다. 유식학에서는 모두 51가지 심소를 거론한다.
    55) 정신작용의 주체라는 뜻으로 심왕이라 이름한다. 구체적으로 8식(識)을 가리킨다.
    56) 심왕과 심소는 체(體)를 달리하며 상응(相應, samprayukta)하여 함께 생기[俱起]한다. ‘상응’이라 함은 심왕과 심소가 의지처[所依] · 인식대상[所緣] · 시간을 같이 하여 작용함을 말한다. 즉 동일한 감각기관에 의지하여(所依), 동일 대상을(所緣) 동일한 순간에(時) 인식한다. 심소는 비록 심왕과 자체를 달리 하지만 어디까지나 심왕에 종속된 요소로서 심왕에 수반되어 작용한다. 둘은 마치 국왕과 신하의 관계와 같다. 8식과 51심소의 상응관계는 다음과 같다. 아뢰야식에는 5변행심소가 상응한다. 말나식에는 5변행심소, 4번뇌심소, 수번뇌심소 중의 혼침 · 도거(掉擧) · 불신 · 해태(懈怠) · 방일 · 실념(失念) · 산란 · 부정지(不正知), 별경심소 중의 혜(慧) 심소의 18심소가 상응한다. 의식에는 모든 심소가 상응할 수 있다. 오식에는 5변행심소, 5별경심소, 선심소 11, 번뇌심소 중의 탐 · 진 · 치, 수번뇌심소 중의 무참 · 무괴 · 도거 · 혼침 · 불신 · 해태 · 방일 · 실념 · 산란 · 부정지 심소 등 34심소가 상응한다. 심왕과 심소의 작용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심왕은 대상에 대하여 오직 전체적인 모습[總相]을 취하고, 심소는 (總相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모습들[別相]까지 취한다. 그리하여 전체적인 대상 인식작용이 가능해진다. 또한 심소는 대상에 대하여 고(苦) · 락(樂) · 사(捨) 등의 감정을 일으키고, 대상을 선택하며, 선 · 악 등의 업을 짓게 한다.
    57) 변행심소(遍行心所, sarvatraga-caitta)는 팔식에 언제나 상응하여 함께 작용하는 보편적인 심리작용이며, 구체적으로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다섯 가지 심소를 말한다. ‘변행(遍行)’이라 이름하는 이유는, 이들 심소가 선 · 악 · 무기의 삼성 모두에 두루 일어나며[一切性], 삼계구지(三界九地) 어디에서나 작용하고[一切地], 유심(有心) · 무심(無心)의 모든 순간에 일어나며[一切時], 언제나 변행의 5심소는 함께 일어나기[一切俱] 때문이다.
    58) 『유가사지론』이나 『현양성교론』은 초기 유식논서이므로 5변행심소를 말할 때 작의가 먼저 열거된다. 『아함경』 등에서 예를 들면 “내부의 안처(眼處)가 무너지지 않고, 외부의 색처(色處)가 현전하며, 그리고 그것에서 생겨나는 작의(作意)가 바로 생기한다” 등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이후 세친(世親)의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에도 작의가 먼저 열거되다가, 『유식삼십송』부터는 촉(觸)을 먼저 든다.
    59) 별경심소(別境心所, viniyata-caitta)라고 이름하는 이유는, 대상이 ‘특별한 것’에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욕(欲) · 승해(勝解) · 염(念) · 정(定) · 혜(慧)의 다섯 가지 심소의 대상은 특별한 것이지 모든 것은 아니다. 대상 인식과 관련하여 ‘지향성’의 속성을 띤다. 대상에 따라 하나 둘 내지 다섯 가지가 구기(俱起)한다.
    60) 선심소(善心所, kuśala-caitta)는 심왕(心王)의 적절한 순간에 생기(生起)하는 보편적으로 착한 심소들이다. 이에 신(信) · 참(慙) · 괴(愧) 등 11가지 심소가 있다.
    61) 번뇌심소(煩惱心所, kleśa-caitta)는 보편적으로 악한 심리작용으로서 심왕을 오염시키고 이로 인하여 생사윤회의 고해(苦海)에 잠기게 한다. 이에 탐(貪) · 진(瞋) · 치(痴) · 만(慢) · 의(疑) · 악견(惡見)의 여섯 가지가 있다.
    62)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upakleśa-caitta)는 근본번뇌심소의 작용에 의해 같은 부류로서 이끌려 일어나는 번뇌심소이다. 이에 분(忿) · 한(恨) 등 20가지가 있다. 수번뇌심소는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근본번뇌심소에 의해 이끌려지는데, 탐(貪) · 진(瞋) · 치(痴)의 근본번뇌를 본체로 하여 이끌려진다. 수행에서 3독심(毒心)을 끊으라고 경책(警策)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를 들면 분(忿) · 한(恨) · 질(嫉) · 뇌(惱) · 해(害)의 심소는 진(瞋)의 심소를 본체로 하여 이끌려지고, 간(慳) · 교(憍)는 탐(貪)을, 부(覆) · 광(誑) · 첨(諂)은 탐(貪) · 진(瞋)을, 방일(放逸) · 해태(懈怠)는 탐 · 진 · 치를 본체로 하여 이끌려진다. 특히 진(瞋)의 심소에서 이끌려지는 번뇌가 많음을 알 수 있다.
    63) 부정심소(不定心所, aniyata-caitta)는 그 체성(體性)이 선(善)도 아니고 염오(染汚)도 아니며, 선 · 악 · 무기 3성(性)의 모든 심소와도 상응하여 삼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부정심소라고 부른다. 이에 회(悔) 등 네 가지가 있다.
    64) ‘악작’이 아니라 ‘오작’으로 읽어야 한다. ‘지은 바를 싫어함’. 회(悔)라고도 하듯이 후회 · 뉘우침의 뜻이기 때문이다."
  2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10 - T29n1558_p0019a17. 대지법에 속한 10가지 마음작용
    "地謂行處。若此是彼所行處。即說此為彼法地。大法地故名為大地。此中若法大地所有名大地法。謂法恒於一切心有。彼法是何。頌曰。
     受想思觸欲 慧念與作意
     勝解三摩地 遍於一切心
    論曰。傳說。如是所列十法。諸心剎那和合遍有。"
  2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61-162 / 1397. 대지법에 속한 10가지 마음작용
    "여기서 '지(地)'란 이를테면 행처(行處), 즉 생기하는 영역을 말하니, 만약 이것이 이러저러한 것(즉 심소)의 행처가 될 경우 이것을 설하여 그러한 법의 '지'라고 하는 것이다.15)
    곧 대법(大法)의 '지'가 되기 때문에 '대지(大地)'라고 이름하는 것이다.16) 그리고 이러한 제법 가운데 만약 어떤 법이 '대지'에 소유되었다면, 이것을 대지법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일체의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수(受)·상(想)·사(思)·촉(觸)·욕(欲)과
     혜(慧)·염(念)·작의(作意)와
     승해(勝解)·삼마지(三摩地)는
     일체의 마음에 두루하는 것이다.
     受想思觸欲 慧念與作意
     勝解三摩地 遍於一切心
    논하여 말하겠다. 전(傳)하여 설(說)하기를, 이와 같이 열거한 열 가지의 법은 온갖 마음과 [동일] 찰나에 화합하여 두루 존재한다고 하였다.17)
    15) 즉 심왕(心王)이 이러저러한 심소법이 일어나는 소의처가 될 때 그러한 심왕을 '지'라고 한다는 뜻.
    16) 여기서 대법이란 수(受)·상(想) 등의 심소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일체의 마음에 두루 통하며, 반드시 함께 생겨나기 때문에 '대법'이라 하는 것이다. 곧 마음은 이러한 대법(大法)을 소유하며 그것의 소의처가 되고 통솔자로서 구기하기 때문에 '대법의 지' 즉 '대지'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17) 여기서의 전설(傳說)도 예의 논주의 불신을 나타낸다. 논주 세친은 욕·승해·염·삼마지·혜의 다섯 가지는 일체의 마음과 상응구기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심소의 개별적 실재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예컨대 이하에서 논의하고 있듯이 경각성(警覺性)인 작의(作意)가 무경각성인 사(捨, 대선지법의 하나), 이해 간택의 작용인 혜(慧)와 무지인 무명(無明,대번뇌지법의 하나)이 어떻게 상응구기할 수 있는가. 경량부에 의하면 심소는 마음의 변이 차별상일 뿐이다. 본론 권제10(p.486 이하)과 권제28(p.1267)에서도 심소법에 대한 유부와 경부와의 대론이 논설되고 있다."
  27.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c01 - T29n1563_p0799c08. 대지법에 속한 10가지 마음작용
    "地謂容止處。或謂所行處。若此是彼容止所行。即說此法為彼法地。地即是心大法地故。名為大地。此中若法大地所有。名大地法。謂法遍與一切品類一切心俱生。由此故心非大地法。非心俱生故。彼法是何。頌曰。
     受想思觸欲 慧念與作意
     勝解三摩地 遍於一切心"
  28.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p. 199-200 / 1762. 대지법에 속한 10가지 마음작용
    "여기서 ‘지(地,bhūmi)’란 이를테면 용지처(容止處)를 말한다. 혹은 소행처(所行處)를 말한다. 즉 이것이 만약 그것의 용지(진퇴 거동의 뜻)나 소행(所行,작용)의 근거가 되었다면, 바로 이러한 법을 설하여 그러한 법의 ‘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즉 여기서의 ‘지’는 바로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93)
    2.대지법(大地法)
    곧 [마음은] 대법(大法)의 ‘지’가 되기 때문에 ‘대지(大地)’라고 이름하며,94) 이러한 제법 가운데 만약 어떤 법이 ‘대지’에 소유되었다면, 이를 ‘대지법’이라고 이름하는데, 이를테면 일체의 품류(대지법 내지 소번뇌지법)와 일체의 마음(선ㆍ불선ㆍ무기)과 두루 구생하는 법을 말한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마음은 대지법이 아니니, [또 다른] 마음과 구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수(受)ㆍ상(想)ㆍ사(思)ㆍ촉(觸)ㆍ욕(欲)
     혜(慧)ㆍ염(念)과 작의(作意)와
     승해(勝解)ㆍ삼마지(三摩地)는
     일체의 마음에 두루 존재하는 것이다.
     受想思觸欲 慧念與作意
     勝解三摩地 遍於一切心
    93) 즉 마음은 이러저러한 작용의 심소법이 일어나는 소의처가 되는 것으로, 이러한 마음을 ‘지’라고 한다는 뜻.
    94) 여기서 대법이란 수(受)ㆍ상(想) 등의 심소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일체의 마음과 두루 통하며, 반드시 함께 생겨나기 때문에 ‘대법’이라 하는 것이다. 곧 마음은 이러한 대법(大法)을 소유하며 그것의 소의처가 되고 통솔자로서 구기(俱起)하기 때문에 ‘대법의 지’ 즉 ‘대지’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
  2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26 - T29n1558_p0019b02. 대선지법(大善地法)
    "大善法地名大善地。此中若法大善地所有名大善地法。謂法恒於諸善心有。彼法是何。頌曰。
     信及不放逸 輕安捨慚愧
     二根及不害 勤唯遍善心
    論曰。如是諸法唯遍善心。"
  3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4 / 1397. 대선지법(大善地法)
    "나아가 대선법(大善法)의 '지(地)'를 대선지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제법 가운데 어떤 법이 만약 '대선지'에 소유되었다면 이를 대선지법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항상 온갖 선심에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신(信)과, 그리고 불방일(不放逸)과
     경안(輕安)·사(捨)·참(慚)·괴(愧)와
     두 가지의 근(根)과, 그리고 불해(不害)와
     근(勤)은 오로지 선심에만 두루하는 것이다.
     信及不放逸 輕安捨慚愧
     二根及不害 勤唯遍善心
    논하여 말하겠다. 이와 같은 제법은 오로지 선심에만 두루 존재하는 것이다."
  31.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c22 - T29n1563_p0799c26. 대선지법(大善地法: 10가지)
    "大善法地名大善地。此中若法大善地所有。名大善地法。謂法恒於諸善心有。彼法是何。頌曰。
     信及不放逸 輕安捨慚愧
     二根及不害 勤唯遍善心"
  32.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2 / 1762. 대선지법(大善地法: 10가지)
    "대선법(大善法)의 ‘지(地)’를 대선지(大善地)라고 이름하며, 이러한 제법 가운데 어떤 법이 만약 ‘대선지’에 소유되었다면 이를 대선지법이라고 이름하니, 말하자면 항상 온갖 선심에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신(信)과, 그리고 불방일(不放逸)과
     경안(輕安)ㆍ사(捨)ㆍ참(慚)ㆍ괴(愧)와
     두 가지의 근(根)과, 그리고 불해(不害)와
     근(勤)은 오로지 선심에만 두루 존재한다.
     信及不放逸 輕安捨慚愧
     二根及不害 勤唯遍善心"
  3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28 - T29n1558_p0019c03.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大煩惱法地名大煩惱地。此中若法大煩惱地所有名大煩惱地法。謂法恒於染污心有。彼法是何。頌曰。
     癡逸怠不信 惛掉恒唯染"
  3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8 / 1397.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나아가 대번뇌법(大煩惱法)의 '지'를 대번뇌지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제법 가운데 어떤 법이 만약 '대번뇌지'에 소유되었으면 이것을 대번뇌지법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항상 염오심에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치(癡)·일(逸)·태(怠)·불신(不信)과
     혼(惛)·거(擧)는 오로지 항상 염오한 것이다.
     癡逸怠不信 惛掉恒唯染"
  35.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b07 - T29n1563_p0800b14.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6가지)
    "大煩惱法地名大煩惱地。此中若法大煩惱地所有名大煩惱地法。謂法恒於染污心有彼法是何。頌曰。
     癡逸怠不信 惛掉恒唯染
    論曰。云何如是六種名大煩惱地法。以恒唯與諸染心俱。頌言染者。是染心義。又放逸等及與無明。如其次第應知即是前不放逸勤信輕安捨等所治。"
  36.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p. 206-207 / 1762.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6가지)
    "나아가 대번뇌법(大煩惱法)의 ‘지’를 대번뇌지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제법 가운데 어떤 법이 만약 ‘대번뇌지’에 소유되었으면 이것을 대번뇌지법이라고 이름하니, 말하자면 항상 염오심에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치(癡)ㆍ일(逸)ㆍ태(怠)ㆍ불신(不信)과
    혼(惛)ㆍ도(掉)는 항상 오로지 염오심에 [존재한다].
    癡逸怠不信 惛掉恒唯染
    논하여 말하겠다.
    어찌하여 이와 같은 여섯 종류를 대번뇌지법이라고 한 것인가?
    오로지 항상 온갖 염오한 마음과 함께 하기 때문으로, 본송에서 ‘염오한 것’이란 바로 염오한 마음이란 뜻이다. 또한 방일 등과 무명은 그 순서대로 앞서 논설한 불방일ㆍ근(勤)ㆍ신(信)ㆍ경안ㆍ사(捨) 등에 의해 대치(對治)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1)
    1) 즉 방일은 불방일에 의해, 해태(懈怠)는 근(勤)에 의해, 불신은 신(信)에 의해, 혼침은 경안에 의해, 도거는 사(捨)에 의해 대치된다."
  3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a06 - T29n1558_p0020a12.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大不善法地名大不善地。此中若法大不善地所有名大不善地法。謂法恒於不善心有。彼法是何。頌曰。
     唯遍不善心 無慚及無愧
    論曰。唯二心所但與一切不善心俱。謂無慚愧。故唯二種名此地法。此二法相如後當辯。如是已說大不善地法。"
  3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72 / 1397.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나아가 대불선법(大不善法)의 '지(地)'를 대불선지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제법 가운데 어떤 법이 만약 대불선지에 소유되었으면 이것을 대불선지법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항상 불선심에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오로지 불선심에 두루하는 것은
     무참(無慚)과 무괴(無愧)이다.
     唯便不善法 無慚及無愧
    논하여 말하겠다. 오로지 두 가지의 심소만이 일체의 불선심과 함께할 뿐이니, 이를테면 무참(無慚)과 무괴(無愧)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오로지 두 가지 심소만을 대불선지법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이 두 가지 법의 상(相)에 대해서는 응당 뒤에서 분별하는 바와 같다.
    이와 같이 대불선지법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39.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c05 - T29n1563_p0800c11.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2가지)
    "如是已說大煩惱地法。大不善法地名大不善地。此中若法大不善地所有名大不善地法。謂法恒於不善心有。彼法是何頌曰。
     唯遍不善心 無慚及無愧
    論曰。唯二心所但與一切不善心俱。謂無慚愧。故唯二種名此地法。此二法相如後當顯。"
  40.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209 / 1762.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2가지)
    "이와 같이 대번뇌지법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나아가 대불선법(大不善法)의 ‘지(地)’를 대불선지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제법 가운데 어떤 법이 만약 대불선지에 소유되었으면 이것을 대불선지법이라고 이름하니, 말하자면 항상 불선심에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오로지 불선심에 편재하는 법은
     무참(無慚)과 무괴(無愧)이다.
     唯遍不善法 無慚及無愧
    논하여 말하겠다.
    오로지 두 가지의 심소만이 일체의 불선심과 함께 할 뿐이니, 무참(無慚)과 무괴(無愧)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오로지 두 가지 종류만을 이러한 대불선지법이라고 일컬은 것이다.9) 이러한 두 가지 법의 상(相)은 뒤에서 응당 나타내어 분별하는 바와 같다.10)
    9) 어떠한 이유에서 무참과 무괴만이 불선인가? 그것은 바로 수번뇌(隨煩惱)의 하나인 무참과 무괴에 의해 인과부정의 사견(邪見)과 인과 도리에 미혹하는 무명(無明)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즉 계ㆍ정ㆍ혜의 공덕이 있는 자를 공경하지 않거나 자신의 죄과에 대해 부끄럽게(혹은 두렵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악행이 괴로움의 과보를 낳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그에 따라 온갖 불선의 악행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혹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10) 본권 7-1) ‘무참과 무괴의 분별’ 참조."
  4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a12 - T29n1558_p0020a20.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小煩惱法地名小煩惱地。此中若法小煩惱地所有名小煩惱地法。謂法少分染污心俱。彼法是何。頌曰。
     忿覆慳嫉惱 害恨諂誑憍
     如是類名為 小煩惱地法
    論曰。如是類法唯修所斷。意識地起。無明相應。各別現行。故名為小煩惱地法。此法如後隨煩惱中當廣分別。"
  4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72-173 / 1397.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나아가 소번뇌법(小煩惱法)의 '지'를 소번뇌지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제법 가운데 어떤 법이 만약 소번뇌지에 소유되었으면 이것을 소번뇌지법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일부의 염오심과 함께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분(忿)·부(覆)·간(慳)·질(嫉)·뇌(惱)
     해(害)·한(恨)·첨(諂)·광(誑)·교(憍)
     이와 같은 종류의 법을 일컬어
     소번뇌지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忿覆慳嫉惱 害恨諂誑憍
     如是類名爲 小煩惱地法
    논하여 말하겠다. '이와 같은 종류의 법'은 오로지 수소단(修所斷)으로서 의식 지(地)에서만 일어나며, 무명과 상응하고, 각각 별도로 현행하기 때문에 이를 일컬어 '소'번뇌지법이라고 한 것이다.49) 이러한 법에 대해서는 응당 수번뇌(隨煩惱) 중에서 널리 분별하는 바와 같다.50)
    49) 『구사론기』에 의하면 고덕(古德)은 6식과 통하지 않고, 5단(斷)에 통하지 않고, 3성(性)에 통하지 않고, 3계(界)에 통하지 않고, 별두기(別頭起) 즉 각기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다섯 가지의 뜻으로서 소번뇌지법을 규정하였다. 따라서 이것은 탐 등의 번뇌와는 관계없이(隨從起가 아니다) 완전히 독립적으로 하여 일어나는 자재기(自在起 혹은 自力起)의 번뇌로서, 오로지 무명과 상응할 뿐이다(즉 여기서 '소'라고 하는 말은 이와 상응하는 법이 '적다'는 뜻으로, 이러한 열 가지의 소번뇌지법은 일체의 염오법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무명과 상응할 뿐이다). 즉 여섯 가지 대번뇌지법은 그 밖의 탐 등의 번뇌에 따라 일어나고[隨從起, 혹은 相應起], 항상 동시에 함께 생기하는 것[幷頭起]이지만, 열 가지 소번뇌지법은 스스로의 힘으로서 일어나는 번뇌[自力起]로서 무명과 상응할 뿐 다른 번뇌와 함께 일어나는 일이 없으며, 또한 동시에 함께 일어나는 일[別頭起]도 없기 때문에 '소'번뇌지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50) 수번뇌(upakleśa)란 탐(貪)·진(瞋)·만(慢)·무명·견(見)·의(疑)의 근본번뇌에 따라 일어나는 번뇌를 말한다. 완성된 유부교학에서는 보통 여기에 무참(無慚)·무괴(無愧)·악작(惡作)·수면(睡眠)·도거(掉擧)·혼침(昏沈)·분(忿)·부(覆)·질(嫉)·간(慳)의 10전(纏)과 뇌(惱)·회(悔)·한(恨)·첨(諂)·광(誑)· 교(憍)의 6번뇌구(垢)가 포함된다. 수번뇌는 본론 「수면품」 권제21(p.952 이하)에서, 교(憍)는 권제4(p.188)에서 설명되고 있다."
  43.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c12 - T29n1563_p0800c19.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10가지)
    "小煩惱法地名小煩惱地。此中若法小煩惱地所有名小煩惱地法。謂法少分染污心俱。彼法是何。頌曰。
     忿覆慳嫉惱 害恨諂誑憍
     如是類名為 小煩惱地法
    論曰。類言為攝不忍不樂憤發等義。小是少義。顯非一切染污心俱。又無相應。唯修所斷。意識俱起無明相應。隨煩惱中當釋其相。"
  44.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210 / 1762.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10가지)
    "나아가 소번뇌법(小煩惱法)의 ‘지’를 소번뇌지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제법 가운데 어떤 법이 만약 소번뇌지에 소유되었으면 이것을 소번뇌지법이라고 이름하니, 말하자면 일부의 염오심과 함께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분(忿)ㆍ부(覆)ㆍ간(慳)ㆍ질(嫉)ㆍ뇌(惱)
     해(害)ㆍ한(恨)ㆍ첨(諂)ㆍ광(誑)ㆍ교(憍)
     이와 같은 유형의 법을 일컬어
     소번뇌지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忿覆慳嫉惱 害恨諂誑憍
     如是類名爲 小煩惱地法
    논하여 말하겠다.
    [본송에서] ‘[이와 같은] 유형[類]’이라고 말한 것은 받아드릴 수 없고[不忍], 즐길 만한 것이 아니며[不樂], 번민하여 일어난다[憤發]는 등의 뜻을 포섭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소(小)’란 바로 적다[少]는 뜻으로, 일체의 염오심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또한 상응의 뜻도 갖지 않으니, 오로지 수소단(修所斷)으로서 의식과 함께 일어나며, 무명과 상응할 뿐이다.11)
    이러한 제법의 상에 대해서는 마땅히 수번뇌(隨煩惱)를 논설하면서 널리 분별하게 될 것이다.12)
    11) 열 가지 소번뇌지법은 일체의 염오한 마음과 상응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무명과 상응할 뿐이며, 오로지 제6식과 상응하여 각기 개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소’번뇌지법이다. 즉 대번뇌지법(염오한 마음과 두루 함께 나타나는 의식작용)은 그 밖의 탐 등의 번뇌에 따라 항상 동시에 함께 일어나지만[竝頭起], 소번뇌지법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 각기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번뇌로서 무명과 상응할 뿐 다른 번뇌와 함께 일어나는 일이 없다[別頭起].
    12) 이러한 소번뇌지법은 근본번뇌에 따라 일어나는 수번뇌(隨煩惱)의 하나이기 때문에 본론 제27권 ‘수번뇌’에서 자세하게 분별한다. 여기서 수번뇌(upakleśa)라고 함은 탐(貪)ㆍ진(瞋)ㆍ만(慢)ㆍ무명ㆍ견(見)ㆍ의(疑)의 근본번뇌에 따라 일어나는 번뇌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보통 무참ㆍ무괴ㆍ악작(惡作)ㆍ수면(睡眠)ㆍ도거(掉擧)ㆍ혼침ㆍ분(忿)ㆍ부(覆)ㆍ질(嫉)ㆍ간(慳)의 10전(纏)과 뇌(惱)ㆍ회(悔)ㆍ한(恨)ㆍ첨(諂)ㆍ광(誑)ㆍ교(憍)의 6번뇌구(垢)가 포함된다. 여기서 우선 열 가지 소번뇌지법을 간단히 분별해 보면 ‘분’은 유정이나 비유정을 미워하여 분노하는 것, ‘부’는 자신의 죄과를 감추려고 하는 심리작용, ‘간’은 재물이나 진리에 인색하여 다른 이에게 베풀어주지 않으려는 것, ‘질’은 타인의 온갖 흥하고 성한 일에 대해 기뻐하지 않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뇌’는 온갖 나쁜 일에 대해 견고히 집착하는 의식작용, ‘해’는 타인을 핍박하는 의식작용, ‘한’은 앞의 ‘분’의 대상에 대해 자주 생각하여 원한을 맺는 것, ‘첨’은 마음의 왜곡으로, 이에 따라 자신의 뜻을 진실되게 드러내지 않고 남의 허물을 말하여 그를 미워하는 이를 기쁘게 한다. ‘광’은 타인을 속여 미혹되게 하는 것, ‘교’는 자신이 소유한 재물ㆍ지위ㆍ미모ㆍ지식 등에 집착하여 마음이 오만 방자해져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는 성질의 의식작용이다."
  4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a20 - T29n1558_p0020a22. 부정지법(不定地法)
    "如是已說五品心所。復有此餘不定心所。惡作睡眠尋伺等法。"
  4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73 / 1397. 부정지법(不定地法)
    "이와 같이 다섯 가지 품류의 심과 심소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다시 이 밖에도 부정(不定)의 심소로서 악작(惡作)·수면(睡眠)·심(尋)·사(伺) 등의 법이 존재한다.51)
    51) 심소법에는 이상의 대지법·대선지법·대번뇌지법·소번뇌지법의 4품 이외 선·염오·무기 무엇과도 상응할 수 있어 그 구생관계가 결정적이지 않은 악작·수면(睡眠)·심(尋)·사(伺) 등의 존재가 있는데, 이를 부정지법(不定地法)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등'이라고 함은, 보광(普光)의 『구사론기』에 의하면 탐(貪)·진(瞋)·만(慢)·의(疑)인데, 이에 따라 심소법이 마흔여섯 가지가 되어 일반에서 유부의 법수(法數)를 75 법으로 일컫게 된 것이다. 이 중 악작과 심·사는 본권에서 후술되며, 수면은 본론 권제21에서 설명되고 있다."
  47.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c24 - T29n1563_p0800c27. 부정지법(不定地法: 8가지)
    "如是已說大地法等品類決定心所差別。復有此餘不定心所。惡作睡眠尋伺等類。總說名為不定地法。"
  48.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p. 211-212 / 1762. 부정지법(不定地法: 8가지)
    "이와 같이 대지법 등의 품류로서 결정된 심소의 차별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다시 이 밖에도 [그 품류가 결정되지 않은] 부정(不定)의 심소로서 악작(惡作)ㆍ수면(睡眠)ㆍ심(尋)ㆍ사(伺) 등의 종류가 존재하는데, 이를 모두 부정지법(不定地法)이라고 이름한다.15)
    15) 심소법에는 이상의 대지법ㆍ대선지법ㆍ대번뇌지법ㆍ소번뇌지법의 네 품류 이외 선ㆍ염오ㆍ무기심 중 어떤 것과도 상응할 수 있어 그 구생관계가 결정적이지 않은 악작ㆍ수면(睡眠)ㆍ심(尋)ㆍ사(伺) 등의 존재가 있는데, 이를 부정지법(不定地法)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등’이라고 함은, 보광(普光)의 『구사론기』에 의하면 탐(貪)ㆍ진(瞋)ㆍ만(慢)ㆍ의(疑)인데, 이에 따라 심소법이 46가지가 되어 일반에서 유부의 법수(法數)를 75법으로 일컫게 된 것이다. 이 중 악작과 심ㆍ사는 본권에서 후술되며, 수면은 본론 제27권 ‘수번뇌’에서 설명되고 있다."
  4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08 - T29n1558_p0019a13. 대지법(大地法)
    "諸心所法且有五品。何等為五。一大地法。二大善地法。三大煩惱地法。四大不善地法。五小煩惱地法。地謂行處。若此是彼所行處。即說此為彼法地。大法地故名為大地。此中若法大地所有名大地法。謂法恒於一切心有。"
  5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61-162 / 1397. 대지법(大地法)
    "온갖 심소법에는 바야흐로 다섯 가지의 품류가 있다.
    무엇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 것인가?
    첫 번째는 대지법(大地法)이며, 둘째는 대선지법(大善地法)이며, 셋째는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이며, 넷째는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이며, 다섯째는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이다. 여기서 '지(地)'란 이를테면 행처(行處), 즉 생기하는 영역을 말하니, 만약 이것이 이러저러한 것(즉 심소)의 행처가 될 경우 이것을 설하여 그러한 법의 '지'라고 하는 것이다.15)
    곧 대법(大法)의 '지'가 되기 때문에 '대지(大地)'라고 이름하는 것이다.16) 그리고 이러한 제법 가운데 만약 어떤 법이 '대지'에 소유되었다면, 이것을 대지법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일체의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15) 즉 심왕(心王)이 이러저러한 심소법이 일어나는 소의처가 될 때 그러한 심왕을 '지'라고 한다는 뜻.
    16) 여기서 대법이란 수(受)·상(想) 등의 심소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일체의 마음에 두루 통하며, 반드시 함께 생겨나기 때문에 '대법'이라 하는 것이다. 곧 마음은 이러한 대법(大法)을 소유하며 그것의 소의처가 되고 통솔자로서 구기하기 때문에 '대법의 지' 즉 '대지'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51.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b28 - T29n1563_p0799c06. 대지법(大地法)
    "諸心所法且有五品。大地法等有別異故。五品者何。一大地法。二大善地法。三大煩惱地法。四大不善地法。五小煩惱地法。地謂容止處。或謂所行處。若此是彼容止所行。即說此法為彼法地。地即是心大法地故。名為大地。此中若法大地所有。名大地法。謂法遍與一切品類一切心俱生。由此故心非大地法。非心俱生故。"
  52.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199 / 1762. 대지법(大地法)
    "온갖 심소법에는 바야흐로 다섯 가지의 품류가 있으니, 대지법(大地法) 등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품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첫째는 대지법(大地法)이며, 둘째는 대선지법(大善地法)이며, 셋째는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이며, 넷째는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이며, 다섯째는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이다. 여기서 ‘지(地,bhūmi)’란 이를테면 용지처(容止處)를 말한다. 혹은 소행처(所行處)를 말한다. 즉 이것이 만약 그것의 용지(진퇴 거동의 뜻)나 소행(所行,작용)의 근거가 되었다면, 바로 이러한 법을 설하여 그러한 법의 ‘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즉 여기서의 ‘지’는 바로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93)
    2.대지법(大地法)
    곧 [마음은] 대법(大法)의 ‘지’가 되기 때문에 ‘대지(大地)’라고 이름하며,94) 이러한 제법 가운데 만약 어떤 법이 ‘대지’에 소유되었다면, 이를 ‘대지법’이라고 이름하는데, 이를테면 일체의 품류(대지법 내지 소번뇌지법)와 일체의 마음(선ㆍ불선ㆍ무기)과 두루 구생하는 법을 말한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마음은 대지법이 아니니, [또 다른] 마음과 구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93) 즉 마음은 이러저러한 작용의 심소법이 일어나는 소의처가 되는 것으로, 이러한 마음을 ‘지’라고 한다는 뜻.
    94) 여기서 대법이란 수(受)ㆍ상(想) 등의 심소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일체의 마음과 두루 통하며, 반드시 함께 생겨나기 때문에 ‘대법’이라 하는 것이다. 곧 마음은 이러한 대법(大法)을 소유하며 그것의 소의처가 되고 통솔자로서 구기(俱起)하기 때문에 ‘대법의 지’ 즉 ‘대지’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
  53.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c09 - T29n1563_p0799c10. 수(受)
    "於所依身能益能損。或俱相違。領受非愛俱相違觸。說名為受。"
  54.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0 / 1762. 수(受)
    "소의신을 능히 증익(增益)하거나 감손(減損)하거나 혹은 두 가지 모두와 상위(相違)하는 것(증익하지도 않고 감손하지도 않는 것)으로서, 애호(愛護)할 만한 것이거나 애호할 만한 것이 아니거나 두 가지 모두와 상위하는 촉(觸)을 영납(領納)하는 것을 일컬어 ‘수(受)’라고 한다.95)
    95) 수(vedana)란 영납(領納)의 뜻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한 고(苦, 不快의 減損)ㆍ낙(樂, 快의 增益)ㆍ불고불락을 감수하게 하는 의식작용을 말한다."
  5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17 - T29n1558_p0019a18. 수(受)
    "此中受謂三種領納苦樂俱非有差別故。"
  5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2 / 1397. 수(受)
    "여기서 수(受)란 이를테면 세 가지의 종류를 말하니, 고(苦)와 낙(樂)과 양자 모두 아닌 것(즉 不苦不樂)을 영납(領納)하는 데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18)
    18) 수(vedanā)란 영납(領納)의 뜻으로, 대상에 대한 고(苦,不快의 減損)·낙(樂,快의 增益)·불고불락을 감수하는 의식작용이다."
  57.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c10 - T29n1563_p0799c11. 상(想)
    "安立執取女男等境。差別相因。說名為想。"
  58.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0 / 1762. 상(想)
    "남ㆍ여 등 경계대상의 차별상을 집취(執取) 안립(安立)하게 하는 근거를 일컬어 ‘상(想)’이라고 한다.96)
    96) 상(saṃjñā)이란 취상(取像)의 뜻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사물의 형상이나 언어적 개념의 차별상을 취(표상)하여 설정하게 하는 의식작용을 말한다."
  5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18. 상(想)
    "想謂於境取差別相。"
  6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상(想)
    "상(想)이란 이를테면 대상[境]에 대한 차별의 상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18)
    18) 상(saṃjñā)이란 취상(取像)의 뜻으로, 사물의 형상이나 언어적 개념의 차별상을 취(표상)하는 의식작용이다."
  61.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c11 - T29n1563_p0799c14. 사(思)
    "令心造作善不善無記。成妙劣中性。說名為思。由有思故。令心於境有動作用。猶如磁石勢力能令鐵有動用。"
  62.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p. 200-201 / 1762. 사(思)
    "마음으로 하여금 선ㆍ불선ㆍ무기를 조작하게 하여, 뛰어나거나 열등하거나 혹은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않은[中] 성질을 성취하게 하는 것을 일컬어 ‘사(思)’라고 한다.97) 즉 이러한 ‘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이 대상에 대해 움직이는 작용을 갖게 되는 것으로, 마치 자석의 세력이 능히 쇠붙이로 하여금 움직이는 작용을 갖게 하는 것과 같다.
    97) 사(cetanā)란 마음으로 하여금 선ㆍ불선ㆍ무기를 조작(造作)하게 하는 의사 혹은 의지의 의식작용으로, 유부에 의하면 이는 의업(意業)의 본질이다. 주31) 참조."
  6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18 - T29n1558_p0019a19. 사(思)
    "思謂能令心有造作。"
  6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사(思)
    "사(思)란 이를테면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조작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사(cetanā)라고 하는 것은 마음으로 하여금 선·불선·무기를 조작(造作)하게 하는 의사[意業]의 의식작용이다."
  65.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c14 - T29n1563_p0799c15. 촉(觸)
    "由根境識和合而生。能為受因有所觸對。說名為觸"
  66.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1 / 1762. 촉(觸)
    "근(根)ㆍ경(境)ㆍ식(識)이 화합함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 능히 ‘수’의 근거가 되어 촉대(觸對)한 바를 갖게 하는 것을 일컬어 ‘촉(觸)’이라고 한다.98)
    98) 촉(sparśa)이란 근ㆍ경ㆍ식의 화합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이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좋거나 좋지 않은 등의 느낌 즉 ‘수’가 일어나게 된다. 이는 말하자면 순수감각과 같은 의미의 의식작용이다."
  6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19. 촉(觸)
    "觸謂根境識和合生。能有觸對。"
  6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촉(觸)
    "촉(觸)이란 이를테면 근(根)·경(境)·식(識)이 화합하여 생겨나는 것으로, 능히 대상과 접촉[觸對]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촉(sparśa)이란 근·경·식의 화합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촉대(觸對)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69.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c15. 욕(欲)
    "希求取境。說名為欲。"
  70.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1 / 1762. 욕(欲)
    "[마음으로 하여금] 희구(希求)하여 대상을 취하게 하는 것을 일컬어 ‘욕(欲)’이라고 한다.99)
    99) 욕(chanda)이란 마음으로 하여금 뭔가를 희구(希求)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7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19 - T29n1558_p0019a20. 욕(欲)
    "欲謂希求所作事業。"
  7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욕(欲)
    "욕(欲)이란 이를테면 지어야 할 사업을 희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욕(chanda)이란 마음으로 하여금 뭔가를 희구(希求)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73.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c15 - T29n1563_p0799c16. 혜(慧)
    "簡擇所緣邪正等相。說名為慧。"
  74.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1 / 1762. 혜(慧)
    "소연(所緣,식의 대상)에 대해 그릇되거나 올바른 등의 상(相)을 간택(簡擇)하는 것을 일컬어 ‘혜(慧)’라고 한다.100)
    100) 혜(prajñā)란 소연이 되는 대상에 대해 능히 판단ㆍ간택(簡擇)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7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20. 혜(慧)
    "慧謂於法能有簡擇。"
  7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혜(慧)
    "혜(慧)란 이를테면 법에 대해 능히 간택(簡擇)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혜(prajñā)란 소연이 되는 대상에 대해 능히 판단·간택(簡擇)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77.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c16 - T29n1563_p0799c17. 염(念)
    "於境明記不忘失因。說名為念。"
  78.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1 / 1762. 염(念)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을 명기(明記)하여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근거를 일컬어 ‘염(念)’이라고 한다.101)
    101) 염(smṛti)이란 기억의 의식작용으로, 이것이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대상을 명기(明記)하여 잊어버리지 않게 된다."
  79.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c17 - T29n1563_p0799c18. 작의(作意)
    "引心心所令於所緣有所警覺。說名作意。此即世間說為留意"
  80.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1 / 1762. 작의(作意)
    "심ㆍ심소를 인기(引起)하여 소연에 대해 경각(警覺)하게 하는 것을 일컬어 작의(作意)라고 한다.102) 이것을 세간에서는 ‘유의(留意)’라고도 말한다.
    102) 작의(manaskāra)란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거나 경각(警覺)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8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21. 작의(作意)
    "作意謂能令心警覺。"
  8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작의(作意)
    "작의(作意)란 이를테면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경각(警覺)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작의(manaskāra)란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주의·경각(警覺,곧 留意)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83.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c18 - T29n1563_p0799c20. 승해(勝解)
    "於境印可。說名勝解。勝謂增勝。解謂解脫。此能令心於境無礙自在而轉。如增上戒增上定等。"
  84.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1 / 1762. 승해(勝解)
    "경계대상에 대해 인가(印可)하는 것을 일컬어 승해(勝解)라고 한다.103) 여기서 ‘승’이란 증승(增勝)을 말하며, ‘해’란 해탈을 말한다. 즉 이것은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경계대상에서 막힘없이 무애 자재하게 일어나게 하는 것이니, 이를테면 ‘증상계(增上戒,뛰어난 계)’라 하고 ‘증상정(增上定,뛰어난 선정)’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103) 승해(adhimukti)란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인가(忍可,認可) 결정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8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21 - T29n1558_p0019a22. 승해(勝解)
    "勝解謂能於境印可。"
  8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승해(勝解)
    "승해(勝解)란 이를테면 능히 대상에 대해 인가(印可)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승해(adhimukti)란 대상에 대해 인가(印可)·결정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87.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c20 - T29n1563_p0799c21. 삼마지(三摩地)
    "令心無亂取所緣境。不流散因名三摩地。"
  88.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p. 201-202 / 1762. 삼마지(三摩地)
    "마음으로 하여금 산란됨이 없이 소연의 경계를 취하여 흩어지지 않게 하는 근거를 일컬어 삼마지(三摩地)라고 한다.104)
    104) 삼마지(samādhi)란 마음을 평등(平等)하게 유지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하나의 대상에 전념하게 하는 의식작용[心一境性]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마치 뱀이 죽통(竹筒)에 들어가면 바로 펴지듯이 마음이 삼마지에 들면 산란되지 않고 바로 곧게 전이하게 되는 것이다.’"
  8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22. 삼마지(三摩地)
    "三摩地謂心一境性。"
  9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삼마지(三摩地)
    "삼마지(三摩地)란 이를테면 심일경성(心一境性)을 말한다.18)
    18) 삼마지(samādhi)란 마음을 평등(平等)하게 유지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하나의 대상에 전념하게 하는 의식작용[心一境性]으로, 이를테면 '마치 뱀이 죽통(竹筒)에 들어가면 바로 펴지듯이 마음이 삼마지에 들면 산란되지 않고 바로 곧게 전이하는 것이다.'"
  91.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c27 - T29n1563_p0799c28. 신(信)
    "論曰。心濁相違現前忍許。無倒因果各別相屬。為欲所依能資勝解。說名為信。"
  92.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2 / 1762. 신(信)
    "마음의 혼탁함[心濁]과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서, 전도됨이 없는 인과는 각기 개별적으로 상속(相屬)한다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인가 허락[忍許,즉 확신]하여 욕(欲)의 소의가 되고 능히 승해의 자량이 되는 것을 일컬어 ‘신(信)’이라고 한다.105)
    105) 신(śraddhā)이란 마치 청수주(淸水珠)를 연못에 놓아두면 더러운 물이 깨끗하게 되는 것처럼 마음을 맑게[澄淨] 하는 의식작용을 말한다.(『입아비달마론』 상권, 대정장28,p.982중: 『구사론』 제4권, 앞의 책,p.164) 『구사론』에서 ‘전도됨이 없는 인과에 대한 즉각적인 인가 허락하는 것’이라는 정의는 어떤 이의 설로 전하고 있다. 곧 청정한 의식작용으로 말미암아 4제(諦)와 3보(寶) 그리고 인과의 이치를 바로 믿게 되는 것이다."
  9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02 - T29n1558_p0019b04. 신(信)
    "信者。令心澄淨。有說。於諦實業果中現前忍許故名為信。"
  9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4 / 1397. 신(信)
    "신(信)이란 마음으로 하여금 징정(澄淨)하게 하는 것이다.20) 그런데 어떤 이는 설하기를, "4제(諦)나 3보(寶), 업과 그 과보에 대해 현전에서 인가하고 허락[忍許,즉 확신]하기 때문에 그것을 일컬어 '신'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20) 신(śraddhā)이란 마치 청수주(淸水珠)를 연못에 놓아두면 더러운 물이 깨끗하게 되는 것처럼 마음을 맑게 하는 의식작용을 말한다.(『입아비달마론』 권상, 대정장28, p. 982,중). 혹은 마음의 맑은 상태로서, 전도됨이 없는 인과는 각기 개별적으로 상속(相屬)됨을 즉각적으로 인가하며, 욕(欲)의 소의가 되어 능히 승해를 낳게 하는 것을 일컬어 신(信)이라고 한다.(『현종론』 권제5, 한글대장경200, p. 134)"
  95.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2, 제14권. p. T29n1563_p0799c28 - T29n1563_p0799c29. 불방일(不放逸)
    "專於己利防身語意。放逸相違。名不放逸。"
  96.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6, T.1562, 제14권. p. 203 / 3087. 불방일(不放逸)
    "오로지 자신의 이익에서 몸과 말과 마음을 방호(防護)하는 것으로서, 방일에 반대되는 것을 ‘불방일(不放逸)’이라고 이름한다.106)
    106) 『구사론』에서는 불방일(apramāda)을 마음으로 하여금 온갖 선법을 닦는 것으로 정의하며, 마음을 수호하게 하는 것은 어떤 부파의 설로 전하고 있다."
  9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04 - T29n1558_p0019b06. 불방일(不放逸)
    "不放逸者。修諸善法離諸不善法。復何名修。謂此於善專注為性。餘部經中有如是釋。能守護心名不放逸。"
  9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4 / 1397. 불방일(不放逸)
    "불방일(不放逸)이란 온갖 선법을 닦는 것이다.21)
    [선법 그 자체가 이미 닦는 것인데,] 온갖 선법을 떠나 다시 무엇을 일컬어 닦는 것이라고 할 것인가?
    이를테면 그것은 바로 선에 대해 전념[專注]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그런데 다른 어떤 부파의 경에서는 이와 같이 해석하는 일이 있으니, "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을 일컬어 불방일이라 한다"고 하였다.22)
    21) 오로지 자신의 이익에서 몸과 말과 마음을 방호하는 것으로서, 방일의 반대되는 것을 불방일(apramāda)이라고 한다.(『현종론』 권제5, 한글대장경200, p. 134)
    22) 여기서 다른 부파의 경이란 『증일아함경』 권제4(대정장2, p. 563하). "云何爲無放逸行. 所謂護心也.""
  99.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799c29 - T29n1563_p0800a01. 경안(輕安)
    "正作意轉身心輕利。安適之因心堪任性。說名輕安。"
  100.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3 / 1762. 경안(輕安)
    "올바른 작의(作意)에서 일어나 심신을 가뿐하고 예리[輕利]하게 하며 편안하고 적당[安適]하게 하는 근거로서, 마음의 감임성[心堪任性]을 ‘경안(輕安)’이라고 이름한다.107)
    107) 경안(praśrabdhi)이란 몸과 마음을 경쾌 안적[輕利安適,편안]하게 하여 능히 선법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의식작용[心堪任性]을 말한다."
  10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06 - T29n1558_p0019b07. 경안(輕安)
    "輕安者。謂心堪任性。"
  10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5 / 1397. 경안(輕安)
    "경안(輕安)이란 이를테면 마음의 감임성(堪任性)을 말한다.23)
    23) 경안(praśrabdhi)이란 즉 마음이 가볍고 편안[輕利安適]하여 능히 선법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성질[心堪任性]의 의식작용을 말한다."
  103.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800a01 - T29n1563_p0800a03. 사(捨)
    "心平等性。說名為捨。掉舉相違如理所引令心不越。是為捨義。"
  104.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3 / 1762. 사(捨)
    "마음의 평등성을 설하여 ‘사(捨)’라고 한다. 즉 도거(掉擧,대번뇌지법의 하나)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참다운 진리[如理]에 의해 낳아져 마음으로 하여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의 뜻이다.108)
    108) 사(upekṣā)란 혼침(惛沈,무기력)과 도거(掉擧,들뜸)를 떠난 마음의 평등성(平等性,평정)을 말한다. 『구사론』에서는 이와 함께 작의(경각성)의 반대인 마음의 무경각성(無警覺性)이라고도 정의하고 있다. 그럴 경우 어떻게 경각성의 작의와 무경각성의 사가 구기할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유부 비바사사의 답은 양자 모두 실체인 이상 구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10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16. 사(捨)
    "心平等性無警覺性說名為捨。"
  10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5 / 1397. 사(捨)
    "어떻게 한 찰나의 마음[一心] 중에서 경각성과 무경각성, 즉 작의(作意)와 사(捨)라고 하는 두 가지 심소가 [마음과] 상응하여 함께 일어난다고 설할 수 있는 것인가?28)
    27) 사(upeksā)란 혼침(惛沈)과 도거(掉擧 : 대번뇌지법의 하나)를 떠난 마음의 평등성(平等性), 마음에 동요됨이 없는 것(무경각성)을 말한다."
  107.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800a03 - T29n1563_p0800a06. 참(慚)과 괴(愧)
    "趣向如理自法二種。增上所生違愛等流心自在性。說名為慚愛樂修習功德為先。違癡等流厭惡劣法。說名為愧。有說怖畏謫罰惡趣自他謗因。說名為愧。"
  108.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3 / 1762. 참(慚)과 괴(愧)
    "참다운 진리로 나아감으로써 자신과 법 두 종류의 뛰어난 힘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애(愛)의 등류(等流)와 서로 반대되는 마음의 자재성(自在性)을 일컬어 ‘참(慚)’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먼저 공덕을 애락(愛樂)하여 수습하는 것으로서, 치(癡)의 등류를 떠나 저열한 법을 혐오하는 것을 일컬어 ‘괴(愧)’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악취의 벌을 받거나 자타의 비방을 두려워하는 것을 일컬어 ‘괴’라 한다”고 설하기도 하였다.109)
    109) 일반적으로 ‘참’은 계ㆍ정ㆍ혜의 공덕이 있는 자를 공경하는 것, 혹은 스스로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는 의식작용이며, ‘괴’는 공덕 있는 자의 꾸짖음이나 죄과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는 것, 혹은 남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는 의식작용이다. 양자는 대불선지법인 무참과 무괴의 반대이기 때문에 거기서 상론한다."
  10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24 - T29n1558_p0019b25. 참(慚)과 괴(愧)
    慚愧二種如後當釋。"
  11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7 / 1397. 참(慚)과 괴(愧)
    "참(慚)과 괴(愧)의 두 종류에 대해서는 응당 뒤에서 해석하는 바와 같다.32)
    32)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인 무참(無慚)·무괴(無愧)를 설하면서 함께 언급한다. 『현종론』 (권제5, 한글대장경200, p. 134)에서는 참다운 진리로 나아감으로써 스스로와 법에 대해 뛰어난 힘이 생겨나니, 애(愛)의 등류(等流)를 거스릴려는 마음의 자재성을 일컬어 참(慚)이라고 하고, 수습(修習)을 애락하고 공덕을 우선 하는 것으로서, 치(癡)의 등류를 어기고 열등한 법을 혐오하는 것을 일컬어 괴(愧)라고 하였다."
  11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a21 - T29n1558_p0021a25. 참(慚)과 괴(愧)
    慚愧差別翻此應知。謂翻初釋有敬有崇有所忌難有所隨屬說名為慚。於罪見怖說名為愧。翻第二釋於所造罪。自觀有恥說名為慚。觀他有恥說名為愧。"
  11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2 / 1397. 참(慚)과 괴(愧)
    "그리고 참(慚)과 괴(愧)의 차별은 이러한 해석와 반대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첫 번째 해석과는 반대로 공경함이 있고, 숭배함이 있으며, 어렵게 여겨 꺼리는 일이 있을 뿐더러, 따라 속하는 일[隨屬, 즉 제자로서의 예의]이 있는 것을 설하여 '참'이라고 하고, 죄에 대해 두렵게 보는 것을 일컬어 '괴'라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 해석과는 반대로 지은 죄에 대해 그 자체를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있는 것을 일컬어 '참'이라 하고, 다른 것을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있는 것을 일컬어 '괴'라고 한다."
  113.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800a06 - T29n1563_p0800a09. 무탐(無貪)과 무진(無瞋)
    "二根者謂無貪無瞋。已得未得境界耽著。希求相違無愛染性。名為無貪。於情非情無恚害意哀愍種子。說名無瞋。"
  114.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p. 203=204 / 1762. 무탐(無貪)과 무진(無瞋)
    "‘두 가지의 근’이란 무탐(無貪)과 무진(無瞋)을 말하는데, 이미 획득하였거나 아직 획득하지 않은 경계대상에 대한 탐착 희구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마음에 애염이 없는 성질[無愛染性]을 일컬어 무탐이라고 한다. 그리고 유정이나 유정 아닌 것에 대해 미워하거나 해코지하려는 마음[恚害意]이 없는 애민(哀愍)의 종자를 일컬어 무진이라고 한다.110)
    110) 무탐과 무진은 선근(善根)의 하나로, 대상에 대해 애착하지 않고, 유정에 대해 미워하지 않는 의식작용이다. 참고로 여기서 선근의 나머지 하나인 무치(無癡)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것은 ‘혜’를 본질로 하는 것으로, 대지법 즉 일체의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의식작용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11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25 - T29n1558_p0019b27. 무탐(無貪)·무진(無瞋)·무치(無癡)
    "二根者。謂無貪無瞋無癡善根慧為性故。前已說在大地法中。不重說為大善地法。"
  11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7 / 1397. 무탐(無貪)·무진(無瞋)·무치(無癡)
    "두 가지의 근(根)이란 이를테면 무탐(無貪)과 무진(無瞋)을 말한다.33) 그리고 무치(無癡)의 선근은 혜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앞서 대지법 중에서 이미 설하였으니, 대선지법으로 거듭 설하지 않는 것이다.
    33) 무탐이란 이미 획득하였거나 아직 획득하지 않은 경계에 대한 탐착 희구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마음에 애염이 없는 성질[無愛染性]을 말하며, 무진이란 유정이나 비유정에 대해 미워하거나 해치려는 마음이 없는 애민(哀愍)의 종자를 말한다.(『현종론』 권제5, 한글대장경200, p. 134)"
  117.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800a09 - T29n1563_p0800a10. 불해(不害)
    "與樂損惱有情相違心賢善。性說名不。害"
  118.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4 / 1762. 불해(不害)
    "유정을 손상시키고 괴롭히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과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마음의 어질고 착한 성질[賢善性]을 일컬어 불해(不害)라고 한다.111)
    111) 다시 말해 다른 이를 손상시키고 괴롭히지 않는 것이 불해이다."
  11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27. 불해(不害)
    "言不害者。謂無損惱。"
  12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8 / 1397. 불해(不害)
    "불해(不害)라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다른 이를 손상시키고 괴롭히지 않는 것을 말한다."
  121.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800a10 - T29n1563_p0800a13. 근(勤)
    "於諸已生功德過失守護棄捨。於諸未生功德過失令生不生心無墮性。說名為勤。由有此故。心於如理所作事業堅進不息。"
  122.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4 / 1762. 근(勤)
    "이미 생겨난 온갖 공덕과 과실에 대해서는 수호하고 내버리며, 아직 생겨나지 않은 온갖 공덕과 과실에 대해서는 생겨나게 하고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으로서, 마음의 타락됨이 없는 성질[無墮性]을 일컬어 ‘근(勤)’이라고 한다. 즉 이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은 참다운 이치에 의해 지어지는 사업으로 견고히 나아가 멈추지 않는 것이다.112)
    112) 근(勤)이란 이를테면 마음으로 하여금 모질게 노력하게 하는 것[勇悍]을 본질로 한다.(『구사론』,앞의 책,p.168)"
  123. "勇悍[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3월 14일에 확인.
    "勇悍(용한): 날래고 사나움
    勇 날랠 용
    1. 날래다 2. 용감하다(勇敢--) 3. 과감하다(果敢--) 4. 결단력(決斷力)이 있다 5. 강하다(强--) 6. 용기(勇氣)가 있다 7. 다툼 8. 용사(勇士), 병사(兵士)
    悍 사나울 한
    1. 사납다, 억세고 모질다 2. 세차다, 빠르다 3. 날래다 4. 성급하다(性急--) 5. 날카롭다 6. (눈을)부릅뜨다"
  124.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27 - T29n1558_p0019b28. 근(勤)
    "勤謂令心勇悍為性。"
  12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8 / 1397. 근(勤)
    "근(勤)이란 이를테면 마음으로 하여금 모질게 노력하게 하는 것[勇悍]을 본질로 한다.34)
    34) 이미 생겨난 온갖 공덕은 수호하고 과실은 내버리며, 아직 생겨나지 않은 온갖 공덕 생겨나게 하고 과실은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으로서, 마음의 타락됨이 없는 성질[無墮性]을 일컬어 근(勤)이라고 한다. 즉 이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은 참다운 이치에 따라 지어지는 일로 견고히 나아가 멈추지 않는 것이다.(『현종론』 권제5, 한글대장경200, p. 134) 참고로 『순정리론』 권제11(대정장29, p. 391,중)과 『현종론』 권제5(상동)에서는 열 가지 대선지법에 흔(欣)과 염(厭)을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대선지법에는 '흔'과 '염'도 사실상 포함되어야 할 것이지만, 이 두 가지는 상위되는 것이어서 한 찰나 마음에 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배제한다고 논의하고 있다. 여기서 '염'이란 유전의 생사를 염오(厭惡)하게 하는 의식 작용이며, '흔'은 환멸의 열반을 흔락(欣樂)하는 의식작용이다."
  126.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b22 - T29n1563_p0800c05. 혼침(惛沈)
    "惛謂惛沈[夢-夕+登]瞢不樂等所生心重性。說名惛沈。由斯覆蔽心便惛昧無所堪任。瞢憒性故。由是說為輕安所治。心為大種。能生因故。由此為先起身重性。假說惛沈。實非惛沈。彼是身識所緣境故。然此惛沈無明覆故。本論不說為大煩惱地法。有言。彼論說無明名。唯目惛沈相相似故。無明性是大遍行故。是此地法不說而成。有說此名總目二義。掉謂掉舉。親里尋等所生。令心不寂靜性。說名掉舉。心與此合越路而行。非理作意。失念心亂。不正知。邪勝解。前已說為大地法故。於此地法中雖有而不說。如於大善地法不說無癡善根。"
  127.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p. 207-208 / 1762. 혼침(惛沈)
    "혼(惛)이란 혼침(昏沈)을 말한다. 즉 몽롱하거나 즐겁지 않은 일 따위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서, 마음의 무거운 성질[重性]을 일컬어 혼침이라고 한다. 이것에 의해 은폐됨으로써 마음은 바로 혼미해져 [능히 선법을] 감당할 수 없게 되니, 이는 바로 어둡고 답답한 성질[瞢憒性]이기 때문으로, 이에 따라 이것을 경안에 의해 대치되는 것이라고 설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마음은 능히 대종을 낳는 원인[能生因]이 되기 때문에, 이에 따라 우선 몸의 무거운 성질을 일으키는 것도 일시 혼침이라고 가설하였지만, 실제로는 혼침이 아니니, 그것은 바로 신식(身識)의 소연이 되는 경계대상이기 때문이다.5)
    그런데 이러한 혼침은 무명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본론에서는 대번뇌지법으로 설하지 않았다.6) 이에 대해 어떤 이는 말하기를, “그 논에서는 오로지 혼침에 근거하여 무명이라는 말을 설하였던 것이니, 두 가지의 상이 서로 유사하기 때문이며, 무명의 존재는 바로 대변행(大遍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혼침이 비록 이러한 대번뇌지법으로 설해지지 않았을지라도 성취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어떤 이는 설하기를, “이 말은 두 가지 뜻 모두에 근거한 것이다”고 하였다.
    5) 『구사론』(앞의 책,p.169)에서는 “무엇을 혼침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몸의 무거운 성질과 마음의 무거운 성질, 몸이 민활하지 못한 성질[不堪任性]과 마음이 민활하지 못한 성질, 몸이 혼미하거나 침울한 성질[昏沈性]과 마음이 혼미하거나 침울한 성질, 이것을 혼침이라 이름한다”고 설한 『발지론』 제2권(한글대장경176,p.39)에 따라 혼침을 설명하고 있는데, 본 논설은 이에 대한 해석이다.
    도(掉)란 도거(掉擧,들뜸)를 말한다. 이는 친한 이를 생각하는 것[親里尋] 등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서, 마음으로 하여금 고요히 안정되지 않게 하는 것을 설하여 도거라고 하였다. 즉 마음은 이것과 화합함으로써 길을 벗어나[越路] 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비리작의(非理作意)ㆍ실념(失念)ㆍ심란(心亂)ㆍ부정지(不正知)ㆍ사승해(邪勝解)는 앞의 대지법 중에서 이미 논설하였다.7) 그래서 이러한 대번뇌지법 중에 비록 존재하는 것일지라도 설하지 않은 것이니, 마치 대선지법에서 무치(無癡)의 선근을 설하지 않은 것과 같다.8)
    6) 여기서 본론이란 『품류족론』(제2권,대정장26,p.698하). 『계신족론』 제1권(대정장26,p.614중)과 『대비바사론』 제42권(대정장27,p.220상)을 참조할 것. 즉 『품류족론』에서는 대번뇌지법으로 불신ㆍ해태ㆍ실념(失念)ㆍ심란(心亂)ㆍ무명(無明)ㆍ부정지(不正知)ㆍ비리작의(非理作意)ㆍ사승해(邪勝解)ㆍ도거ㆍ방일의 열 가지를 들고 있다.(『계신족론』과 『대비바사론』에서는 실념이 망념(忘念)으로 되어있다.)
    7) 『품류족론』에서 대번뇌지법으로 설한 열 가지 법 중 비리작의 등 다섯 가지는 대지법에서 이미 논설하였다는 뜻. 여기서 비리작의는 염오한 작의이며, 실념은 거짓된 기억이나 기억의 상실, 심란은 염오의 등지 즉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부정지는 염오혜(慧), 사승해는 염오한 승해를 말한다. 대번뇌지법과 대지법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구사론』(앞의 책,p.170)을 참조할 것.
    8) 무치는 대선지법이지만, 혜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대지법에 포섭시켜 논설하였다.(본론 제5권 주110 참조)"
  128.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800a13 - T29n1563_p0800a25. 염(厭)과 흔(欣)
    "說二及言兼攝欣厭。厭謂善心審諦觀察無量過患。法實性故。起順無貪心厭背性。與此相應名厭作意。欣謂善心欣求過患出離對治。此增上力起順證修心欣尚性。此於離喜未至等地。亦有現行。故非喜受。與此相應名欣作意。諸契經中。喜欣別說從欣生喜。契經說故。諸作是說。劣喜名欣。彼輕安等應同此說。無異因故。何因唯喜說有勝劣。非輕安等故理不然。欣厭行相更互相違。於一心中無容並起。是故於此不正顯說。大善地法性不成故。亦有喜根厭行俱轉。定無有欣厭行俱轉。為表此二定不俱行。說二及言行相違故。"
  129.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4 / 1762. 염(厭)과 흔(欣)
    "[본송에서] 두 번에 걸쳐 ‘그리고’라는 말을 설한 것은 흔(欣)과 염(厭)도 아울러 포섭하기 위해서였다.113) 여기서 ‘염’이란 이를테면 진리를 살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과환(過患)의 법을 관찰하는 진실성[實性]의 선심을 말한다. 그래서 무탐(無貪)에 수순하는 마음은 [그와 같은 과환의 법을] 싫어하고 배반하려는 성질[厭背性]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와 상응하는 법을 염작의(厭作意)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리고 ‘흔’이란 이를테면 그와 같은 과환의 출리(出離)와 대치(對治)를 희구하는 선심을 말한다. 즉 이러한 증상력이 [출리와 대치의] 증득과 수습[證修]에 수순하여 기쁘게 숭상하는 성질[欣尙性]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와 상응하는 법을 흔작의(欣作意)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흔’은 희수(喜受)를 떠난 경지(즉 제3정려)나 미지(未至) 등의 경지에서도 역시 현행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희수가 아니니, 그 여러 계경 중에서도 “흔으로부터 희가 낳아진다”고 하여 ‘희’와 ‘흔’의 차별을 설하고 있다. 즉 계경에서 설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이들은 “저열한 희[劣喜]를 ‘흔’이라 이름한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경안 등도 마땅히 이와 동일하게 설해야 할 것이니, 다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떠한 근거에서 오로지 ‘희’에만 승렬(勝劣)이 있다고 설하는 것인가?
    경안의 경우와는 [동일하지] 않기 때문으로, 이치상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 렇듯 ‘흔’과 ‘염’의 두 행상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찰나의 마음 중에서 함께 일어난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본송)에서는 바로 드러내어 설하지 않은 것이니, 대선지법의 존재로는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역시 희근과 염(厭)의 행(行)은 함께 일어나는 일이 있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흔’과 ‘염’의 행이 함께 일어나는 일은 결코 없다. 즉 이 두 가지는 결정코 구행(俱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하여 두 번에 걸쳐 ‘그리고’라고 하는 말을 설하게 된 것이니, 그 작용이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113) 이하 대선지법에는 사실상 흔(欣)과 염(厭)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어서 일 찰나 마음에 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배제하였다는 내용으로, 『구사론』에서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 곧 ‘염’이란 유전(流轉)의 생사를 염오(厭惡)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며, ‘흔’은 환멸(還滅)의 열반을 흔락(欣樂)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130. 星雲, "". 2013년 3월 26일에 확인
    "厭:  梵語 nirvid。心所之名。為「欣」之對稱。即嫌惡生存現象諸苦之無量過患而欲出離之善的精神作用。大毘婆沙論卷二十八、順正理論卷十一等立之為善心所,且謂「厭」係於慧及無貪外另有之別法;俱舍論等則不別立。俱舍論光記卷四申其理由,謂厭與欣二行相乃相違之心所,於一心中不並起、不恆起,又不普於善心周遍相應,故不別立。〔大毘婆沙論卷一四三、卷一九六〕(參閱「欣厭」3325) p5758"
  131. 星雲, "[1]". 2013년 3월 26일에 확인
    "欣厭:  心所之名。欣,指令心欣慕功德之精神作用;厭,指厭背苦集無量過患之精神作用。入阿毘達磨論卷上(大二八‧九八二中):「欣謂欣尚於還滅品,見功德已,令心欣慕,隨順修善,心有此故,欣樂涅槃,與此相應,名欣作意;厭謂厭患於流轉品,見過失已,令心厭離,隨順離染,心有此故,厭惡生死,與此相應,名厭作意。」大毘婆沙論與順正理論列其為善心所所攝。又於俱舍論,謂善心所屬於大善地法,乃自性唯善與遍一切之善心,具遍善之義,故不另立欣厭二心所。以欣厭二行相為相違之心,於一心中不並起,不恆起,又不普於善心周遍相應,故不別立之。依成唯識論卷六載,欣與欲俱無瞋之一分,厭與慧俱無貪之一分,故無別體,在善心所中不別立。〔大毘婆沙論卷二十八、卷一四三、卷一九六、順正理論卷十一、俱舍論光記卷四〕 p3325"
  132.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800a13 - T29n1563_p0800a15. 염(厭)
    "厭謂善心審諦觀察無量過患。法實性故。起順無貪心厭背性。與此相應名厭作意。"
  133.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 204 / 1762. 염(厭)
    "여기서 ‘염’이란 이를테면 진리를 살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과환(過患)의 법을 관찰하는 진실성[實性]의 선심을 말한다. 그래서 무탐(無貪)에 수순하는 마음은 [그와 같은 과환의 법을] 싫어하고 배반하려는 성질[厭背性]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와 상응하는 법을 염작의(厭作意)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134. 佛門網, "". 2013년 3월 26일에 확인
    "欣:
    出處: Other
    解釋: 欣 [py] xīn [wg] hsin [ko] 흔 hŭn [ja] ゴン gon ||| (1) To desire, hope for wish for, long for. (2) To be happy, happiness, enjoyment.
    頁數: [Dictionary References] Naka430a [Credit] cmuller(entry) cwittern(py)
    出處: 佛教漢梵大辭典
    解釋: 欣 (see under 忻 1158 ) prāmodya, tuṣṭa; abhilāṣa, iṣṭa, √tuṣ, pramudita*, prasāda, moda, rati.
    頁數: P.1844-P.1850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入阿毗達磨論上八頁云:欣,謂欣尚。於還滅品,見功德已;令心欣慕,隨順修善。心有此故,欣樂涅槃。與此相應,名欣作意。"
  135.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800a15 - T29n1563_p0800a21. 흔(欣)
    "欣謂善心欣求過患出離對治。此增上力起順證修心欣尚性。此於離喜未至等地。亦有現行。故非喜受。與此相應名欣作意。諸契經中。喜欣別說從欣生喜。契經說故。諸作是說。劣喜名欣。彼輕安等應同此說。無異因故。何因唯喜說有勝劣。非輕安等故理不然。"
  136.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p. 204-205 / 1762. 흔(欣)
    "그리고 ‘흔’이란 이를테면 그와 같은 과환의 출리(出離)와 대치(對治)를 희구하는 선심을 말한다. 즉 이러한 증상력이 [출리와 대치의] 증득과 수습[證修]에 수순하여 기쁘게 숭상하는 성질[欣尙性]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와 상응하는 법을 흔작의(欣作意)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흔’은 희수(喜受)를 떠난 경지(즉 제3정려)나 미지(未至) 등의 경지에서도 역시 현행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희수가 아니니, 그 여러 계경 중에서도 “흔으로부터 희가 낳아진다”고 하여 ‘희’와 ‘흔’의 차별을 설하고 있다. 즉 계경에서 설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이들은 “저열한 희[劣喜]를 ‘흔’이라 이름한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경안 등도 마땅히 이와 동일하게 설해야 할 것이니, 다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떠한 근거에서 오로지 ‘희’에만 승렬(勝劣)이 있다고 설하는 것인가?
    경안의 경우와는 [동일하지] 않기 때문으로, 이치상 그렇지 않은 것이다."
  137. 星雲, "未至定". 2013년 3월 26일에 확인
    "未至定:  梵語 anāgamya-samādhi。又作未到定、未到地。於色界四禪定中,即將發得初禪定之前的準備修行之定,稱為未至定。因取其尚未至根本定之義,故稱未至定。色界之四禪定與無色界之四無色定,每一禪定之自體皆稱為根本定,每一根本定之前有準備階段之近分定,故自斷欲界之修惑所發之禪定(初禪之根本定),乃至斷無所有處之修惑所得之禪定(非想處之根本定),共有八根本定,又由伏滅欲界煩惱而發得近似初禪根本定之禪定(初禪之近分定),乃至伏滅無所有處煩惱而發得近似非想處根本定之禪定(非想處之近分定),共有八近分定。然在八根本定與八近分定中,唯有初禪之近分定與其他近分定有相異之處,故立別名,特稱為未至定。(參閱「近分定」 3517) p1935"
  138.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a04 - T29n1558_p0020a05.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故此地法唯六義成。此唯遍染心俱起非餘故。"
  13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71-172 / 1397.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따라서 이와 같은 지법(즉 대번뇌지법)에는 오로지 여섯 가지의 뜻만이 성취되니, 이러한 법들은 오로지 염오심에 두루 구기(俱起)하지만 다른 마음에는 그러하지 않기 때문에 [대번뇌지법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140.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b14 - T29n1563_p0800b16. 치(癡)
    "癡謂愚癡於所知境障如理解。無辯了相說名愚癡。即是無明無智無顯。"
  141.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207 / 1762. 치(癡)
    "치(癡)란 우치(愚癡)를 말하는 것으로, 알려질 대상에 대한 참다운 이해를 장애하여 분별 인식[辯了]이 없는 것을 일컬어 우치라고 한다. 즉 이는 바로 무명(無明)이고, 무지(無智)이며, 무현(無顯)인 것이다.2)
    2) 무지는 밝게 결택(決擇)할 수 없는 상태이고, 무현이란 일체 사리(事理)의 경계가 은폐되어 드러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142.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c04 - T29n1558_p0019c05. 치(癡)
    "癡者。所謂愚癡。即是無明無智無顯。"
  14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8 / 1397. 치(癡)
    "치(癡)란 이른바 우치(愚癡)를 말한다. 즉 이는 바로 무명(無明)이고, 무지(無智)이며, 무현(無顯)인 것이다.35)
    35) 무지는 밝게 결택(決擇)할 수 없는 상태이고, 무현이란 일체 사리(事理)의 경계가 은폐되어 드러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144.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6권. p. T29n1558_p0135a20 - T29n1558_p0135a28.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盡無生智二相何別。頌曰。
     智於四聖諦 知我已知等
     不應更知等 如次盡無生
    論曰。如本論說。云何盡智。謂無學位若正自知我已知苦。我已斷集。我已證滅。我已修道。由此所有智見明覺解慧光觀是名盡智。云何無生智。謂正自知我已知苦不應更知。廣說乃至。我已修道不應更修。由此所有廣說乃至。是名無生智。"
  14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1178 / 1397.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진지와 무생지의 두 지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4성제에 대한 지(智)로서
     '나는 이미 알았다'는 등으로 아는 것과
     '더 이상 알 것이 없다'는 등으로 아는 것이
     차례대로 진지와 무생지이다.
     智於四聖諦 知我已知等
     不應更知等 如次盡無生
    논하여 말하겠다. 본론(本論)에서 설한 바와 같다.19) "무엇을 일컬어 진지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무학위에서 '나는 이미 고(苦)를 알았다', '나는 이미 집(集)을 끊었다', '나는 이미 멸(滅)을 작증하였다', '나는 이미 도(道)를 닦았다'고 스스로 바로 알며, 이에 따라 소유하게 된 지(智)와 견(見)과 명(明)과 각(覺)과 해(解)와 혜(慧)와 광(光)과 관(觀)을 바로 진지라고 이름한다.20) 무엇을 일컬어 무생지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나는 이미 고를 알았으므로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나는 이미 도를 닦았으므로 더 이상 닦아야 할 것이 없다'고 스스로 바로 알며, 이에 따라 소유하게 된……(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따위를 바로 무생지라고 이름한다."
    19) 『품류족론』 권제1(한글대장경117, p.24).
    20) 여기서 '지'는 결단(決斷) 혹은 거듭하여 아는 것을 말하며, '견'은 추구(推求) 혹은 현조(現照)를, '명'은 명랑(明朗)을, '각'은 각오(覺悟)를, '해'는 달해(達解)를, '혜'는 간택(簡擇)을, '광'은 혜광(慧光)을, '관'은 관찰을 말하는 것으로, 이 여덟 가지는 모두 혜의 다른 이름이다."
  146. 보광 술 & T.1821, 제26권. p. T41n1821_p0386a11 - T41n1821_p0386a14. 혜의 8가지 다른 이름
    "智謂決斷。或謂重知。見謂推求。或謂現照。明謂照明。覺謂覺悟。解謂達解。慧謂簡擇。光謂慧光。觀謂觀察。智等八種並慧異名。"
  147.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b16. 방일(放逸)
    "逸謂放逸。於專己利棄捨縱情。名為放逸。"
  148.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207 / 1762. 방일(放逸)
    "일(逸)이란 방일(放逸)을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이익에 전념하기를 포기하여 뜻[情]을 놓아버리는 것을 일컬어 방일이라고 한다.3)
    3) 방일이란 온갖 선을 닦지 않는 것을 말한다.(『구사론』 제4권, 권오민 역, 동국역경원2002, p.168)"
  14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c05 - T29n1558_p0019c06. 방일(放逸)
    "逸謂放逸。不修諸善。是修諸善所對治法。"
  15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8 / 1397. 방일(放逸)
    "일(逸)이란 이를테면 방일(放逸)로서, 온갖 선을 닦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는 바로 온갖 선을 닦는 것[즉 不放逸]에 의해 대치(對治)되는 법이다."
  151.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b17 - T29n1563_p0800b19. 해태(懈怠)
    "怠謂懈怠。於善事業闕減勝能。於惡事業順成勇悍。無明等流名為懈怠。由此說為鄙劣勤性。勤習鄙穢故名懈怠。"
  152.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207 / 1762. 해태(懈怠)
    "태(怠)란 해태(懈怠)를 말하는 것으로, 선한 일에 대해서는 뛰어난 능력을 없애거나 감소시키지만 악한 일에 대해서는 날쌔고 재빠르게 성취하는 무명의 등류를 일컬어 해태라고 한다. 이에 따라 이것을 비천하고 저열하게 노력하는 것[鄙劣勤性]이라고 하니, 노력하고 익히는 것이 비천하고 더럽기 때문에 해태라고 이름한 것이다.4)
    4) 해태란 마음이 모질게 노력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구사론』 앞의 책,p.169)"
  15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c06 - T29n1558_p0019c07. 해태(懈怠)
    "怠謂懈怠心不勇悍。是前所說勤所對治。"
  15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9 / 1397. 해태(懈怠)
    "태(怠)란 이를테면 해태(懈怠)로서, 마음이 모질게 노력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는 바로 앞에서 설한 근(勤)에 의해 대치되는 법이다.36) <
    36) 선한 일에 있어서는 뛰어난 능력을 없애거나 감소시키고, 악한 일에 있어서는 날쌘 사나움을 따라 성취시키는 무명의 등류(等流)를 일컬어 해태라고 한다. 이는 바로 비천하고 열등하게 노력하는 것[鄙劣勤性]으로, 비천하고 더러운 것을 닦고 익히기 때문에 해태라고 이름하는 것이다.(『현종론』 권제6,한글대장경200, p. 138)"
  155.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b19 - T29n1563_p0800b21. 불신(不信)
    "不信者謂心不澄淨邪見等流。於諸諦寶靜慮等至現前輕毀。於施等因及於彼果。心不現許名為不信。"
  156.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207 / 1762. 불신(不信)
    "불신(不信)이란 이를테면 마음이 청정[澄淨]하지 않은 것으로, 사견(邪見)의 등류이다. 즉 온갖 진리[諦]와 실유의 법[實]과 정려(靜慮)와 등지(等至)에 대해 현전(現前)에서 경솔하게 비방하고, 보시 등의 원인에 대해서나 그 과보에 대해 마음으로 즉각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일컬어 불신이라고 한다."
  15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c07 - T29n1558_p0019c08. 불신(不信)
    "不信者謂心不澄淨。是前所說信所對治。"
  15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9 / 1397. 불신(不信)
    "불신(不信)이란 이를테면 마음 징정(澄淨)하지 않은 것으로, 이것은 바로 앞에서 설한 '신'에 의해 대치되는 것이다.37)
    37) 불신은 사견(邪見)의 등류(等流)로서, 4제의 온갖 진리[諦]와 실유의 법[實]과 정려와 등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경솔히 험담하고, 보시 등의 원인이나 그 과보에 대해 즉각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일컬어 불신이라고 한다.(앞의 논, p. 138)"
  159. "瞢憒性",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3월 27일에 확인.
    "瞢憒性(몽궤성):
    瞢 어두울 몽,먼눈 맹
    1. (눈이)어둡다 2. 부끄러워하다 3. 번민하다(煩悶--) a. 먼눈(시력을 잃어 보이지 않는 눈) (맹) b. 장님 (맹)

    憒 심란할 궤
    1. 심란하다(心亂--) 2. 마음이 어지럽다 3. (사리에)어둡다 4. 어리석다

    性 성품 성
    1. 성품(性品), 타고난 사람의 천성(天性) 2. 바탕 3. 성질(性質), 사물(事物)의 본질(本質) 4. 생명(生命), 목숨 5. 마음 6. 만유(萬有)의 원인(原因) 7. 성별(性別) 8. 남녀(男女), 자웅(雌雄)의 구별(區別)..."
  160.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c08 - T29n1558_p0019c11. 혼침(惛沈)
    "惛謂惛沈。對法中說。云何惛沈。謂身重性心重性。身無堪任性心無堪任性。身惛沈性心惛沈性。是名惛沈。此是心所。如何名身。如身受言。故亦無失。"
  16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9 / 1397. 혼침(惛沈)
    "혼(惛)이란 이를테면 혼침(昏沈)을 말하는 것으로, 대법(對法) 중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즉 "무엇을 혼침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몸의 무거운 성질과 마음의 무거운 성질, 몸이 민활하지 못한 성질[不堪任性]과 마음이 민활하지 못한 성질, 몸이 혼미하거나 침울한 성질[昏沈性]과 마음이 혼미하거나 침울한 성질, 이것을 혼침이라 이름한다."38)
    이것은 바로 심소(心所)인데, 어찌하여 몸[身]이라고 일컬은 것인가?
    신수(身受)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따라서 이렇게 말하더라도 아무런 과실이 없는 것이다.39)
    38) 여기서 본론은 『발지론』 권제2(한글대장경176, p. 39).
    39) 5식상응의 '수'를 신수라고 이름하듯이 5식이 혼미하여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몸이 혼미하고 침울하다고 일컬을 수 있다는 뜻. 그런데 『현종론』 권제6에서는 혼침을 다만 마음의 무거운 성질이라 하였다. 즉 마음은 대종을 능히 낳는 원인[能生因]이 되기 때문에, 이에 따라 몸의 무거운 성질을 일으키는 것을 먼저 혼침이라고 가설하지만, 그것은 바로 식신(識身)의 소연이 되는 대상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혼침이 아니라는 것이다.(한글대장경200, p. 138)."
  162.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b13 - T29n1558_p0109b23. 수번뇌: 8전 또는 10전
    "後當略論纏煩惱垢攝者。且應先辯。纏相云何。頌曰。
     纏八無慚愧 嫉慳并悔眠
     及掉舉惛沈 或十加忿覆
     無慚慳掉舉 皆從貪所生
     無愧眠惛沈 從無明所起
     嫉忿從瞋起 悔從疑覆諍
    論曰。根本煩惱亦名為纏。經說欲貪纏為緣故。然品類足說有八纏。毘婆沙宗說纏有十。謂於前八更加忿覆。"
  16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p. 953-954 / 1397. 수번뇌: 8전 또는 10전
    "[이러한 수번뇌에 대해서는] 뒤에서 응당 전(纏)과 번뇌구(煩惱垢)에 포섭시켜 간략히 논설하리라.
    바야흐로 먼저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니, '전'의 상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전(纏)에는 여덟 가지가 있으니, 무참·무괴·
     질(嫉)·간(慳)·회(悔)·수면(睡眠)
     그리고 도거·혼침이 바로 그것이다.
     혹은 분(忿)과 부(覆)를 더한 열 가지이다.29)
     纏八無慚愧 嫉慳幷悔眠
     及掉擧惛沈 或十加忿覆
     무참과 간과 도거는
     모두 탐에서 생겨난 것이며
     무괴와 수면과 혼침은
     무명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無慚慳掉擧 皆從貪所生
     無愧眠惛沈 從無明所起
     질과 분은 진(瞋)에서 일어난 것이고
     회는 의(疑)로부터, '부'에 대해서는 여러 쟁론이 있다.
     嫉忿從瞋起 悔從疑覆諍
    논하여 말하겠다. 근본번뇌를 역시 '전'이라고도 이름하니, 경에서 "욕탐의 전을 연(緣)으로 한다"고 설하였기 때문이다.30)
    그런데 『품류족론』에서는 8전이 있다고 설하였지만 비바사종(毘婆沙宗)에서는 '전'에 열 가지가 있다고 설하고 있으니,31) 이를테면 앞의 여덟 가지에 다시 분(忿)과 부(覆)를 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29) 이 같은 열 가지는 유정을 계박하여 생사의 감옥에 가두기 때문에 이름하여 '전'이라고 하였다. 혹은 이러한 열 가지가 원인이 되어 온갖 악행을 일으키며, 악취로 잡아 가두기 때문에 이름하여 '전'이라고 하였다.(『현종론』 권제27, 앞의 책, p.225)
    30) 『잡아함경』 권제35 제977경(대정장2, p.253상), '시바여, 다섯 가지 인(因)과 다섯 가지 연(緣)으로 인해 심법에 우고(憂苦)가 생기니, 이를테면 욕탐전을 인으로 하고 욕탐전을 연으로 하여 심법에 우고가 생기며…….'
    31) 『품류족론』 권제1(한글대장경117, p.23). 『대비바사론』 권제47(한글대장경119, p.508) ; 권제50(동 p.579)."
  164.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b29 - T29n1563_p0800c02. 도거(掉擧)
    "掉謂掉舉。親里尋等所生。令心不寂靜性。說名掉舉。心與此合越路而行。"
  165.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208 / 1762. 도거(掉擧)
    "도(掉)란 도거(掉擧,들뜸)를 말한다. 이는 친한 이를 생각하는 것[親里尋] 등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서, 마음으로 하여금 고요히 안정되지 않게 하는 것을 설하여 도거라고 하였다. 즉 마음은 이것과 화합함으로써 길을 벗어나[越路] 가게 되는 것이다."
  166.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c11 - T29n1558_p0019c12. 도거(掉擧)
    "掉謂掉舉令心不靜。"
  167.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9 / 1397. 도거(掉擧)
    "도(掉)란 이를테면 도거(掉擧)로서, 마음으로 하여금 고요히 안정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168.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c12 - T29n1558_p0019c22. 《아비달마품류족론》 등의 10가지 대번뇌지법
    "唯有如是六種。名大煩惱地法。豈不根本阿毘達磨中說有十種大煩惱地法。又於彼論不說惛沈。何者十。謂不信懈怠失念心亂無明不正知非理作意邪勝解掉舉放逸。天愛。汝今但知言至不閑意旨。意旨者何。謂失念心亂不正知非理作意邪勝解。已說彼在大地法中。不應重立為大煩惱地法。如無癡善根慧為體故非大善地法。彼亦應爾。即染污念名為失念。染污等持名為心亂。諸染污慧名不正知。染污作意勝解名為非理作意及邪勝解故說。"
  16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9 / 1397. 《아비달마품류족론》 등의 10가지 대번뇌지법
    "오로지 이와 같은 여섯 가지 종류가 있어 이것을 대번뇌지법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어찌 근본 아비달마 중에서는 열 가지 종류의 대번뇌지법이 있다고 설하지 않았던가? 또한 그 논에서는 혼침을 설하지도 않았지 않는가?40)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를테면 불신·해태·실념(失念)·심란(心亂)·무명(無明)·부정지(不正知)·비리작의(非理作意)·사승해(邪勝解)·도거·방일이 바로 그것이다.
    천애(天愛)여! 그대는 다만 말[言至]만을 알고 그 뜻[意旨]은 알지 못하는구나.41)
    그 뜻이 무엇인가?
    이를테면 실념과 심란과 부정지와 비리작의와 사승해는 이미 대지법(大地法) 중에서 설하였기에 마땅히 거듭하여 대번뇌지법으로 삼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무치(無癡)의 선근은 혜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대선지법이 아니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도 역시 마땅히 그러한 것이다. 즉 염오한 염(念)을 일컬어 실념이라 하였고, 염오의 등지(等持)를 일컬어 심란이라 하였으며, 온갖 염오혜를 일컬어 부정지라 하였으며, 염오한 작의와 승해를 일컬어 비리작의와 사승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해 보아야 할 것이니, 만약 그것이 바로 대지법이라면 역시 또한 대번뇌지법이기도 한 것인가?
    40) 여기서 근본 아비달마는 『품류족론』(권제2, 대정장26, p. 698하). 『계신족론』 권제1(대정장26, p. 614중)과 『대비바사론』 권제42(대정장27, p. 220상)을 참조할 것. 다만 여기서는 실념이 망념(忘念)으로 되어있다.
    41) 여기서 천애(devānāṃ priyaḥ)란 어리석은 이를 조롱하는 말."
  170.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c06 - T29n1563_p0800c11.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2가지).
  171.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1c21 - T29n1563_p0802a12. 무참(無慚)·무괴(無愧)
    "心所俱生定量有諸心所。性相似同難知差別。今隨宗義辯彼別相無慚無愧。愛之與敬別相云何。頌曰。
     無慚愧不重 於罪不見怖
     愛敬謂信慚 唯於欲色有
    論曰。無慚無愧差別相者。於諸功德及有德者。無敬無崇。無所忌難。無所隨屬。說名無慚。諸功德者謂尸羅等。有德者謂親教等。於此二境無敬無崇。是無慚相。即是崇敬能障礙法。或緣諸德說為無敬。緣有德者說為無崇。無所忌難。無所隨屬。總顯前二。或隨次第。於所造罪不見怖畏。說名無愧。諸觀行者所呵厭法。說名為罪。於所呵厭諸罪業中。不見能招此世他世。譏毀[言*適]罰。非愛難忍。異熟果等。諸怖畏事。是無愧相。即不忌憚罪業果義。不見怖言。欲顯何義。為不見彼怖。為見而不怖。前應顯無明。後應顯邪見。此言不顯見與不見為無愧體。但顯有法是隨煩惱。能與現行無智邪智為鄰近因。說名無愧。此略義者。謂能令心於德有德無所崇敬。名曰無慚。於罪現行無所忌憚。名為無愧。"
  172.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p. 220-222 / 1762. 무참(無慚) · 무괴(無愧)
    "그런데 온갖 심소법의 성상(性相)에는 매우 유사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차별을 알기가 어렵다. 이제 유부 종의(宗義)에 따라 그 같은 심소의 개별적인 상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참(無慚)과 무괴(無愧), 애(愛)와 경(敬)의 개별적인 상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무참과 무괴는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죄에 대해 두렵게 여기지 않는 것이며
     ‘애’와 ‘경’이란 말하자면 신(信)과 참(慚)으로서
     오로지 욕계와 색계에만 존재할 뿐이다.
     無慚愧不重 於罪不見怖
     愛敬謂信慙 唯於欲色有
    논하여 말하겠다.
    무참과 무괴의 차별은 이러하다.
    온갖 공덕과 공덕 있는 자에 대해 공경[敬]하는 일이 없고, 존중[崇]하는 일이 없으며, 어렵게 여겨 꺼리는 일[忌難]도 없을 뿐더러 따라 속하는 일[隨屬,즉 제자가 되어 예의를 갖추는 일]도 없는 것을 일컬어 ‘무참’이라고 한다. 여기서 온갖 공덕이란 시라(尸羅,śila, 계율) 등을 말하며,34) 공덕 있는 자란 친교사(親敎師, 스승) 등을 말한다. 곧 이러한 두 대상에 대해 공경하는 일도 없고, 존중하는 일도 없는 것이 바로 무참의 특성이니, 이는 바로 공경하고 존중하는 것을 능히 장애하는 법인 것이다.
    혹은 ‘공경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온갖 공덕에 근거로 하여 설한 것이고, ‘존중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공덕 있는 자에 근거로 하여 설한 것이며, ‘어렵게 여기는 일도 없을 뿐더러 따라 속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앞의 두 가지(공덕과 공덕 있는 자)를 모두 나타낸 것이거나 혹은 그 순서에 따른 것이다.35)
    지은 죄에 대해 두렵게 여기지 않는 것을 일컬어 ‘무괴’라고 한다. 즉 모든 관행자(觀行者)가 꾸짖고 싫어하는 법을 설하여 죄(罪)라고 말한 것인데, [관행자가] 꾸짖고 싫어하는 온갖 죄업은 능히 이 세계나 저 세계가 나무라고 헐뜯을 만한, 비난하고 벌할 만한, 애호할 수 없고 참기 어려운 이숙과를 초래한다는 등의 사실에 대해 어떠한 두려움도 나타내 보이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무괴의 특성이다. 이는 바로 죄업의 과보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꺼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렵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은 어떠한 뜻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인가? 그것(죄업의 과보)을 두려움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인가, 보고도 두렵지 않다는 것인가? 전자의 경우라면 마땅히 무명을 나타내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고, 후자의 경우라면 마땅히 사견을 나타내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36)
    [‘두렵게 여기지 않는다’고 하는] 이 말은, ‘보는 것[見,즉 보고도 두렵지 않다는 사견]’이나 ‘보지 않는 것[不見,즉 두려움으로 보지 않는다는 무명]’이 무괴의 본질임을 나타내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다만 어떤 수번뇌의 법으로서 능히 현행의 무지(無智,무명)와 사지(邪智,사견)의 직접적인 원인[近隣因]이 되는 것을 일컬어 무괴라고 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한 말일 뿐이다.
    이상의 뜻을 요약한다면, 이를테면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공덕과 공덕 있는 자에 대해 존중하고 공경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을 일컬어 ‘무참’이라 하고, 죄가 현행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꺼려하는 일이 없는 것을 일컬어 ‘무괴’라고 하는 것이다.
    34) 계(戒)ㆍ정(定)ㆍ혜(慧)의 3학을 말한다.
    35) 즉 ‘어렵게 여기는 일이 없다’는 것은 공덕을 어렵게 여기는 일이 없다는 말이며, ‘따라 속하는 일이 없다’는 말은 공덕 있는 자에 따라 속하는 일이 없다는 뜻.
    36) 즉 전자는 두려워할 만한 과보를 초래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명(무지)이고, 후자는 악과인 줄 알면서도 두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견(판단의 慧를 본질로 함)이 되는 것이다."
  173.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p. 220-222 / 1762. 무참(無慚)·무괴(無愧).
  174.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2a12 - T29n1563_p0802a19. 무참(無慚)·무괴(無愧)
    "有餘師說。於諸煩惱不能厭毀。名曰無慚。於諸惡行不能厭毀。說為無愧。有說獨處造罪無恥。名曰無慚若處眾中造罪無恥。說為無愧。有說現起不善心時於異熟因無所顧眄。名曰無慚。於異熟果無所顧眄。說為無愧。諸不善心現在前位。皆於因果無所顧眄。故一心中二法俱起。"
  175.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222 / 1762. 무참(無慚)·무괴(無愧)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온갖 번뇌에 대해 능히 싫어하거나 허물려고 하지 않는 것을 일컬어 ‘무괴’라 하고, 온갖 악행에 대해 능히 싫어하거나 허물려고 하지 않는 것을 일컬어 ‘무참’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 어떤 이는 설하기를 “홀로 있으면서 죄를 짓고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을 ‘무참’이라 하고, 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죄를 짓고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을 설하여 ‘무괴’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어떤 이는 설하기를, “불선심을 바로 일으킬 때 이숙인에 대해 살펴보는 일이 없는 것을 일컬어 ‘무참’이라 하고, 이숙과에 대해 살펴보는 일이 없는 것을 ‘무괴’라 한다”고 하였다. 즉 온갖 불선의 마음이 현재전하는 상태에서 그 원인과 과보에 대해 모두 살펴보는 바가 없기 때문에 한 찰나의 마음 중에 두 가지의 법이 함께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176.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a03 - T29n1558_p0021a09. 무참(無慚)
    "今次當說於前所辯諸心所中少分差別。無慚無愧愛之與敬差別云何。頌曰。
     無慚愧不重 於罪不見怖
     愛敬謂信慚 唯於欲色有
    論曰。此中無慚無愧別者於諸功德及有德者。無敬無崇無所忌難無所隨屬說名無慚。即是恭敬所敵對法。"
  177.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0 / 1397. 무참(無慚)
    "이제 다음으로 마땅히 앞에서 분별한 온갖 심소법 가운데 약간의 차별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참(無慚)과 무괴(無愧), 애(愛)와 경(敬)의 차별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무참과 무괴는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죄를 두렵게 여기지 않는 것이며,
     '애'와 '경'이란 말하자면 신(信)과 참(慚)으로서
     오로지 욕계와 색계에만 있을 뿐이다.
     無慚愧不重 於罪不見怖
     愛敬謂信慚 唯於欲色有
    논하여 말하겠다. 무참과 무괴의 차별은 이러하다. 온갖 공덕(戒·定·慧의 삼학을 말함)과 공덕 있는 자(즉 스승)에 대해 공경하는 일이 없고, 숭배하는 일이 없으며, 어렵게 여겨 꺼리는 일[忌難]도 없을 뿐더러, 따라 속하는 일[隨屬], 즉 제자로서의 예의도 없는 것을 일컬어 무참이라고 한다. 즉 이는 바로 공경에 적대되는 법이다.68)
    68) 그러나 무참은 공경이 결여된 상태는 아니며, 개별적 존재[別體]로서 공경과 대응하는 법이다. 무명(無明)과 명(明)의 관계 역시 이러하다.(본론 「세간품」 권제10 참조.)"
  178.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a17 - T29n1558_p0021a21. 무참(無慚)·무괴(無愧)
    "有餘師說。於所造罪自觀無恥名曰無慚。觀他無恥說名無愧。若爾此二所觀不同。云何俱起。不說此二一時俱起別觀自他。然有無恥。觀自時勝說名無慚。復有無恥。觀他時增說為無愧。"
  17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81-182 / 1397. 무참(無慚)·무괴(無愧)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지은 죄에 대해 그 자체를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을 일컬어 무참이라 하고, 다른 것(이를테면 이숙과)을 관찰하고서도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을 일컬어 무괴라 한다"고 하였다.72)
    만약 그렇다면 이 두 가지는 관찰되는 바가 동일하지 않은데, 어떻게 구기(俱起)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두 가지가 일시에 구기하여 그 자체와 다른 것을 별도로 관찰하는 것이라고는 설하지 않았다.73) 그렇지만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無恥]이 죄 그 자체를 관찰할 때 두드러진 것을 설하여 무참이라 이름하고, 또한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이 [죄 그 자체와는] 다른 것을 관찰할 때 증성한 것을 설하여 무괴라고 하는 것이다.
    72) 말하자면 이숙인은 마땅히 때가 되어 현기하기 때문에 '그 자체'라고 하였고, 그것의 이숙과는 후시(後時)에 비로소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것'이라고 하였다.(『현종론』 권제6, 한글대장경200, p. 148)
    73) 이러한 무참과 무괴가 동시에 구기하여 각기 별도로 죄 자체나 다른 사실을 관찰한다는 것이 아니라, 죄 자체를 관찰할 때에도 다른 사실을 관찰하는 마음이 수반되는 경우가 있지만 다만 죄 그 자체에 대해 부끄러워함이 없는 마음[無恥]이 두드러진 것을 무참이라 한다. 즉 이 때에도 역시 무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작용이 저열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지 않으며, 다만 수승한 작용에 근거하여 무참이라고 한다는 뜻. 그리고 무괴는 이 반대의 경우이다."
  180.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a09 - T29n1558_p0021a17. 무괴(無愧)
    "為諸善士所訶厭法說名為罪。於此罪中不見怖畏說名無愧。此中怖言。顯非愛果。能生怖故。不見怖言欲顯何義。為見而不怖名不見怖。為不見彼怖名不見怖。若爾何失。二俱有過。若見而不怖應顯智慧。若不見彼怖應顯無明。此言不顯見與不見。何所顯耶。此顯有法是隨煩惱。為彼二因說名無愧。"
  18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0 / 1397. 무괴(無愧)
    "또한 모든 선사(善士)가 꾸짖고 싫어하는 법을 일컬어 죄(罪)라고 하는데, 이러한 죄에 대해 두렵게 보지 않는 것을 일컬어 무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두렵다'는 말은 애호할 만하지 않은 과보를 나타내니, 그것은 능히 두려움을 낳기 때문이다.69)
    ' 두렵게 보지 않는다'는 말은 어떠한 뜻을 나타내고자 한 것인가? 그것(죄)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일컬어 '두렵게 보지 않는다'고 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죄의 과보)의 두려움을 보지 않는 것을 '두렵게 보지 않는다'고 말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떠한 과실이 범하게 되는 것인가?
    두 가지 모두에 과실이 있게 될 것이니, 만약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지혜를 드러내게 될 것이며, 그것의 두려움을 보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무명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70)
    [두렵게 보지 않는다고 하는] 이 말은 견(見,즉 사견의 지혜)이나 불견(不見,무명)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가?
    이는 어떤 수번뇌(隨煩惱)의 법으로서 그러한 두 가지 원인(혜와 무명)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설하여 무괴라 이름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71)
    69) 미래에 지옥 등의 과보를 받는다는 말을 듣고서 현재 두려움을 낳게 되는 것을 말함.
    70) 즉 전자는 악과(惡果)인 줄 알면서도 두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견(邪見,판단의 慧를 본질로 함)이 되는 것이고, 후자는 두려워할 만한 과보를 초래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명이 되는 것이다.
    71) 이러한 원인을 『현종론』 권제6(한글대장경200, p. 147)에서는 인근인(隣近因)이라 한다. 즉 사견과 무명의 동인이 되는 수번뇌를 일컬어 무괴라고 한다는 뜻. 이를테면 미래의 악과를 두렵게 보지 않는 무괴의 수번뇌에 의해 인과부정의 사견과 인과도리에 미혹하는 무명이 인기(引起)되어 현행하게 되는 것이다."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제4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180 180 / 1397]. 무괴(無愧)"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182.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907b17 - T29n1563_p0907b19. 분(忿)
    "因自反損怨益而生。瞋恚為先心憤名忿。有餘師說。因處非處違逆而生。力能令心無顧而轉。乃至子上令心憤發說名為忿。"
  183.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1148 / 1762. 분(忿)
    "자신이나 친구의 손해와 원수의 이익으로 인해 생겨나는 것으로, 진에가 선행함으로써 마음이 분발(憤發)하게 되는 것을 ‘분(忿)’이라고 이름한다.72)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처(處)와 비처(非處) 즉 옳고 그름을 어기고 거역함으로 인하여 생겨나는 것으로,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되돌아보는 일이 없이 일어나게 하는 힘, 내지는 마음으로 하여금 분발(憤發)하게 하는 자상(子上, 의미불명)을 일컬어 ‘분’이라 한다”고 하였다.
    72) 6수면 중의 진(瞋)이 유정을 미워하여 해치려 하는 것이고, 6번뇌구 중의 해(害)가 핍박하고 응징하려는 것이라면, ‘분’은 이 같은 두 가지 이외의 분발심(憤發心) 즉 격분하는 것을 말한다. “진(瞋)과 해(害)를 제외한 것으로서, 유정과 비유정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분발(憤發)하게 하는 것을 설하여 ‘분(忿)’이라고 이름한다.”(『구사론』 제21권, 고려장27, p.607하; 대정장29, p.109중; 권오민 역, p.955)"
  184.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b28 - T29n1558_p0109b29. 분(忿)
    "除瞋及害於情非情令心憤發說名為忿。"
  18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5 / 1397. 분(忿)
    "진(瞋)과 해(害)를 제외한 것으로서, 유정과 비유정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분발(憤發)하게 하는 것을 설하여 '분(忿)'이라고 이름한다.35)
    35) 불선근의 진(瞋)이 유정을 미워하여 해치려고 하는 것이고, 번뇌구인 해(害)가 핍박하고 응징하려는 것이라면, '분'은 이 같은 두 가지 이외의 분발심(憤發心) 즉 격분하는 것을 말한다."
  186.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907b20 - T29n1563_p0907b23. 부(覆)
    "隱藏自罪。說名為覆。罪謂可訶。即是毀犯尸羅軌則及諸淨命。隱藏即是匿罪欲因有餘釋言。捫拭名覆。謂內懷惡捫拭外邊。是欲令他不覺察義。"
  187.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1149 / 1762. 부(覆)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하는 것을 설하여 ‘부(覆)’라고 이름한다. 여기서 ‘죄’란 이를테면 꾸짖을 만한 것으로, 바로 시라(尸羅, 계율)와 궤칙(軌則), 그리고 온갖 청정한 명[淨命]을 허물고 범하는 것을 말하며, ‘감추려고 함’은 바로 죄를 은닉하고자 하는 욕망을 원인으로 한다. 그런데 유여사는 다시 해석하여 말하기를, “[있으면서도] 없는 체[捫拭]하는 것을 ‘부’라고 한다. 이를테면 안으로는 악을 품었으면서도 밖으로는 품지 않은 체하는 것을 말하니, 이는 바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 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188.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b29. 부(覆)
    "隱藏自罪說名為覆。"
  18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5 / 1397. 부(覆)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하는 것을 설하여 '부(覆)'라고 이름한다."
  190.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7권. p. T29n1563_p0907a29 - T29n1563_p0907b14. 8전(八纏)과 10전(十纏)
    "纏煩惱垢攝者且應先辯。纏相云何。頌曰。
     纏八無慚愧 嫉慳并悔眠
     及掉舉惛沈 或十加忿覆
     無慚慳掉舉 皆從貪所生
     無愧眠惛沈 從無明所起
     嫉忿從瞋起 悔從疑覆諍
    論曰。根本煩惱亦名為纏。經說欲貪纏為緣故。若異此者。貪等云何可得名為圓滿煩惱。然諸論者。離諸隨眠。就勝說纏。或八或十。謂品類足說有八纏。毘婆沙宗說纏有十。即於前八更加忿覆。如是十種。繫縛含識置生死獄。故名為纏。或十為因起諸惡行令拘惡趣。故名為纏。無慚無愧嫉慳并悔掉舉惛沈。如前已辯。"
  191.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7권. pp. 1146-1148 / 1762. 8전(八纏)과 10전(十纏)
    "전(纏)과 번뇌구(煩惱垢)에 포섭되는 것에 대해 바야흐로 먼저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전’의 상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전(纏)에는 여덟 가지가 있으니, 무참 · 무괴 ·
     질(嫉) · 간(慳) · 회(悔) · 수면(睡眠),
     그리고 도거 · 혼침이 바로 그것이다.
     혹은 분(忿)과 부(覆)를 더한 열 가지이다.
     纏八無慚愧 嫉慳幷悔眠
     及掉擧惛沈 或十加忿覆
     무참과 ‘간’과 도거는
     모두 탐(貪)에서 생겨난 것이며
     무괴와 수면과 혼침은
     무명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無慚慳掉擧 皆從貪所生
     無愧眠惛沈 從無明所起
     ‘질’과 ‘분’은 진(瞋)으로부터 일어난 것이고
     ‘회’는 의(疑)에서, ‘부’에 대해서는 여러 쟁론이 있다.
     嫉忿從瞋起 悔從疑覆諍
    논하여 말하겠다.
    근본번뇌를 역시 ‘전’이라고도 이름하니, 경에서 “욕탐의 전을 연(緣)으로 한다”고 설하였기 때문이다.66)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어떻게 탐 등을 원만한 번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모든 논자(論者)들은 온갖 수면(즉 근본번뇌)을 떠나 [그 밖의] 수승한 것에 근거하여 ‘전(纏)’을 설하였는데, 어떤 이는 여기에 여덟 가지가 있다고 하고, 혹은 어떤 이는 열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즉 『품류족론』에서는 8전이 있다고 설하고 있지만,67) 비바사종(毘婆沙宗)에서는 ‘전’에 열 가지가 있다고 설하고 있으니,68) 이를테면 앞의 여덟 가지에 다시 분(忿)과 부(覆)을 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열 가지 종류는 함식(含識, 유정을 말함)을 계박하여 생사의 감옥에 가두기 때문에 ‘전’이라고 이름하였다. 혹은 이러한 열 가지가 원인이 되어 온갖 악행을 일으키며, 악취(惡趣)에 갇히게 되기 때문에 ‘전’이라고 이름하였다.
    여기서 무참(無慚)과 무괴(無愧), 질(嫉)과 간(慳), 그리고 회(悔) · 도거(掉擧) · 혼침(惛沈)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분별한 바와 같다.69)
    66) 『잡아함경』 제35권 제977경(대정장2, p.253상), ‘시바여, 다섯 가지 인(因)과 다섯 가지 연(緣)으로 인해 심법에 우고(憂苦)가 생기니, 이를테면 욕탐전을 인으로 하고 욕탐전을 연으로 하여 심법에 우고가 생기며…….’
    67) 『품류족론』 제1권(대정장26, p.693하; 한글대장경117, p.23). 68) 『대비바사론』 제47권(대정장27, p.243하; 한글대장경119, p.508):제50권(대정장27, p.258하; 한글대장경119, p.579).
    69) 무참과 무괴는 본론 제6권 ‘대불선지법’에서, ‘질’과 ‘간’은 ‘소번뇌지법’에서, ‘회’는 후회의 악작으로 ‘욕계 제 심소의 구생관계’(본론 제6권 주18 참조)에서, 도거와 혼침은 ‘대번뇌지법’에서 상술하였다. 다만 ‘질’과 ‘간’의 경우에는 그곳에서도 역시 수번뇌를 논설하면서 해석할 것이라고 하여 뒤로 미루고 있다. “‘질(嫉)’이란 타인의 온갖 흥하고 성한 일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기뻐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하며, ‘간(慳)’이란 재시(財施) · 법시(法施)의 교시(巧施, 타인에게 보시하여 이익을 주는 것)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인색하여 집착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구사론』 제21권, 고려장27, p.607하; 대정장29, p.109중; 권오민 역, p.954)"
  192.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b24. 질(嫉)
    "嫉謂於他諸興盛事令心不喜。"
  19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4 / 1397. 질(嫉)
    "'질(嫉)'이란, 이를테면 타인의 온갖 흥하고 성한 일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기뻐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194.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7권. p. T29n1563_p0907c10 - T29n1563_p0907c11. 뇌(惱)
    "於可毀事決定堅執難令捨因。說名為惱。由有此故。世間說為不可引導。執惡所執"
  195.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7권. p. 1151 / 1762. 뇌(惱)
    "허물어 버릴만한 일[可毁事]에 대해 결정적이고도 견고히 집착하여 버리기 어렵게 하는 원인을 일컬어 ‘뇌(惱, pradāśa)’라고 한다. 바로 이러한 법이 있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그러한 법을 지닌 자는] 인도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75) 여기서 ‘집착’은 악[심]에 의한 집착이다.
    75) ‘뇌’란 이를테면 온갖 나쁜 일[罪事]에 대해 견고히 집착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충고[諫]도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다.”(『구사론』 제21권, 고려장27, p.608상; 대정장29, p.109하; 권오민 역, p.956)"
  196.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09 - T29n1558_p0109c10. 뇌(惱)
    "惱謂堅執諸有罪事。由此不取如理諫悔。"
  197.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6 / 1397. 뇌(惱)
    "'뇌'란 이를테면 온갖 나쁜 일[罪事]에 대해 견고히 집착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충고[諫]도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다."
  198.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7권. p. T29n1563_p0907c12 - T29n1563_p0907c13. 해(害)
    "於他有情。非全不顧擬重攝受。為損惱因悲障惱心。說名為害。"
  199.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7권. p. 1151 / 1762. 해(害)
    "다른 유정에 대해 전혀 되돌아보지 않는 것은 아니나 거듭 섭수(攝受)하는 것처럼 하면서 괴롭히고 손해를 끼치는 일[惱損]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마음을 슬프게 하고 장애하며 괴롭히는 것을 일컬어 ‘해(害, vihiṁsā)’라고 한다.76)
    76) ‘해’란 이를테면 다른 유정에 대해 능히 핍박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에 의해 능히 때리고 꾸짖는 등의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구사론』, 앞의 책)"
  200. "逼迫",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3월 15일에 확인.
    "逼迫(핍박): ①(사람을) 억누르고 괴롭히는 것 ②(형편(形便)이) 쪼들리거나 어려워 절박(切迫)한 상태(狀態)
    逼 핍박할 핍
    1. 핍박하다(逼迫--) 2. 닥치다 3. 가까이하다 4. 몰다 5. 좁다 6. 좁아지다 7. 쪼그라들
    迫 핍박할 박
    1. 핍박하다(逼迫--) 2. 닥치다 3. 줄어들다 4. 가까이하다 5. 궁하다(窮--: 가난하고 어렵다) 6. 좁다 7. 몰리다 8. 다가오다 9. 다급하다(多急--) 10. 허둥거리다 11. 다그치다"
  20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10 - T29n1558_p0109c11. 해(害)
    "害謂於他能為逼迫。由此能行打罵等事。"
  20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6 / 1397. 해(害)
    "'해'란 이를테면 다른 유정에 대해 능히 핍박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에 의해 능히 때리고 꾸짖는 등의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203.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7권. p. T29n1563_p0907c13 - T29n1563_p0907c14. 한(恨)
    "於非愛相隨念分別。生續忿後起心結怨名恨。"
  204.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7권. p. 1151 / 1762. 한(恨)
    "애호할 만한 것이 아닌 상[非愛相]에 대해 기억에 따라 분별[隨念分別]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으로, ‘분(忿, 10전의 하나)’에서 상속된 후기(後起)의 마음이 원한을 맺는 것을 일컬어 ‘한(恨, upanāha)’이라고 한다.77)
    77) ‘한’이란 이를테면 ‘분(忿)’의 소연에 대해 자주자주 생각하여 원한을 품어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구사론』, 앞의 책) 참고로 한(恨)과 분(忿)의 차이는 이러하다. “예컨대 벚나무 껍질에 붙은 불처럼 그 상은 맹리(猛利)하지만 지속하는 세력이 약한 것을 ‘분’이라 하며, 겨울 방의 열기처럼 그 상은 경미하지만 지속하는 세력이 강한 것을 ‘한’이라고 한다.”(『순정리론』 제54권)"
  20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6 / 1397. 한(恨)
    "'한'이란 이를테면 '분(忿)'의 소연에 대해 자주자주 생각하여 원한을 품어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206.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11 - T29n1558_p0109c12. 한(恨)
    "恨謂於忿所緣事中數數尋思結怨不捨。"
  207.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7권. p. T29n1563_p0907c14 - T29n1563_p0907c15. 첨(諂)
    "於己情事方便隱匿。矯設謀略誘取他情。實智相違心曲名諂。"
  208.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7권. p. 1151 / 1762. 첨(諂)
    "자신의 마음을 방편으로 숨기고 교활한 모략으로써 다른 이의 마음을 유혹하여 실제의 앎과는 어긋나게 하는 마음의 왜곡[心曲]을 일컬어 ‘첨(諂, māyā)’이라고 한다.78)
    78) ‘첨’이란 이를테면 마음의 아곡(阿曲, 아첨과 왜곡)을 말하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능히 스스로를 참답게 드러내지 않게 되며, 혹은 [남의 허물을] 바로 잡아 다스리지 않게 되며, 혹은 방편을 설(設)하여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게 되는 것이다.”(『구사론』, 앞의 책)"
  20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12 - T29n1558_p0109c13. 첨(諂)
    "諂謂心曲。由此不能如實自顯。或矯非撥。或設方便令解不明。"
  21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6 / 1397. 첨(諂)
    "'첨'이란 이를테면 마음의 아곡(阿曲)을 말하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능히 스스로를 참답게 드러내지 않게 되며, 혹은 [남의 허물을] 바로잡아 다스리지 않게 되며, 혹은 방편을 설(設)하여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게 되는 것이다.38)
    38) 자신의 마음을 방편으로 숨기고 교활한 모략으로써 타인의 마음을 유혹하여 실제의 앎과는 어긋나게 하는 것을 '첨'이라 이름한다.(『현종론』 권제27, 앞의 책 p.227)"
  211.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7권. p. T29n1563_p0907c17 - T29n1563_p0907c18. 심험(心險)과 심곡(心曲)의 차이
    "心險心曲相差別者。如道如杖於他於自。因貪因見故有差別。"
  212.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7권. p. 1152 / 1762. 심험(心險)과 심곡(心曲)의 차이
    "그리고 마음의 험악함(즉 誑)과 마음의 왜곡(즉 諂)의 차별상은 [이러하다]. [전자는 험악한] 길과 같고, [후자는 구불구불한] 지팡이와 같은 것으로, [전자가] 다른 이에 대한 것이라면, [후자는] 자신에 대한 것이고, [전자가] ‘탐’에 의한 것이라면, 후자는 ‘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는] 차별이 있는 것이다.80)
    80) “즉 험한 길은 유정이 다른 처소로 나아가려고 할 때 능히 손해가 되고 장애가 되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행자가 열반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마음이 ‘광(誑)’과 함께 하는 경우 능히 손해가 되고 장애가 되며, 구불구불한 지팡이는 비록 그 뿌리를 잘랐을지라도 빽빽한 숲에서 끌어내기가 어렵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이 결여되고 아첨의 왜곡[諂曲]을 가진 자는 비록 방편으로써 욕계의 뿌리를 잘랐을지라도 다시금 인접(引接)하여 생사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또한 다른 이를 홀려 미혹하게 하는 것을 일컬어 ‘광’이라고 하였고, 자신의 마음을 감추는 것을 일컬어 ‘첨’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광’은 ‘탐’의 등류이고, ‘첨’은 온갖 ‘견’의 등류이다.”(『순정리론』 제54권)"
  213.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7권. p. T29n1563_p0907c15 - T29n1563_p0907c17. 광(誑)
    "於名利等貪為先故。欲令他惑邪示現因。正定相違心險名誑。"
  214.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7권. p. 1151 / 1762. 광(誑)
    "먼저 명리(名利) 등에 대해 탐하였기 때문에 다른 이로 하여금 미혹되게 하고자 거짓을 나타내는 원인으로서, 올바른 결정[正定]과 어긋나게 하는 마음의 험악함[心險]을 일컬어 ‘광(誑, śāṭhya)’이라고 한다.79)
    79) ‘광’이란 이를테면 다른 이를 미혹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구사론』, 앞의 책)"
  21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13. 광(誑)
    "誑謂惑他。"
  21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6 / 1397. 광(誑)
    "'광'이란 이를테면 다른 이를 미혹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217.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2c24 - T29n1563_p0803a02. 만(慢)과 교(憍)의 차별
    "慢憍別者。慢謂對他心自舉性。稱量自他德類勝劣。若實不實。心自舉恃陵蔑於他。故名為慢。憍謂染著。自法為先。令心傲逸無所顧性。於自勇健財位戒慧族等法中先起染著。心生傲逸於諸善本無所顧眄。故名為憍。於諸善本無所顧者。謂由心傲。於諸善業不樂修習。是謂慢憍差別之相。"
  218.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p. 227-228 / 1762. 만(慢)과 교(憍)의 차별
    "만(慢)과 교(憍)의 차별은 이러하다.
    ‘만’ 이란 이를테면 타인에 대해 마음이 스스로를 추켜세우는 성질[自擧性]을 말하니, 자신과 다른 이의 덕(德)의 뛰어남과 저열함, 혹은 진실됨과 거짓됨을 재고 헤아려 마음이 스스로를 믿고 거들먹거리며[擧恃] 다른 이를 능멸하기 때문에 ‘만’이라고 일컬은 것이다.41)
    ‘교’ 란 이를테면 먼저 자신의 법에 대해 염착(染著)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오만 방일[傲逸]하게 하여 되돌아보는 일이 없는 성질[無所顧性]을 말한다. 즉 자신의 용감함이나 건강, 재산, 지위, 도덕규범[戒], 지혜, 친족 등의 존재에 대해 먼저 염착을 일으켜 마음에 오만 방일함이 생겨남으로써 온갖 선본(善本)을 되돌아보는 일이 없기 때문에 ‘교’라고 일컬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온갖 선본에 대해 되돌아보는 일이 없다’고 함은, 마음이 오만해짐에 따라 온갖 선업을 즐거이 수습(修習)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만’과 ‘교’의 차별의 상이다.
    41) ‘만’이란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덕을 차별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다시 일곱 가지가 있다. 즉 가문ㆍ재산ㆍ지위ㆍ용모ㆍ힘ㆍ지식ㆍ기예ㆍ지계(持戒) 등에 있어 자신보다 열등한 이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하고, 동등한 이에 대해 동등하다고 하는 만(慢). 자신과 동등한 이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하고, 자기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와 동등하다고 하는 과만(過慢).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하는 만과만(慢過慢). 5취온을 나, 혹은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아만(我慢). 예류과의 뛰어난 덕을 증득하지 못하였으면서 증득하였다고 여기는 증상만(增上慢). 가문 등이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조금 열등하다고 여기는 비만(卑慢). 덕이 없으면서도 자기에게 덕이 있다고 하는 사만(邪慢)이 그것이다."
  219.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7권. p. T29n1563_p0907c18 - T29n1563_p0907c22. 교(憍)
    "憍相如前已具分別。有餘師說從貪所生。恃己少年無病壽等諸興盛事心傲名憍。有餘師言。於自相續興盛諸行。耽染為先不顧於他。謂己為勝心自舉恃。說名為憍。由不顧他與慢有異。"
  220.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7권. p. 227 / 1762. 교(憍)
    "‘교(憍, mada)’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널리 분별한 바와 같다.81)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탐으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자신의 젊음과 무병(無病)과 나이 등 온갖 흥(興)하고 성(盛)한 것을 믿어 마음이 오만해지는 것을 ‘교’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 [또한] 유여사는 말하기를, “먼저 자상속 중의 흥성한 제행(예컨대 건강 · 재산 · 지위 등)에 탐착하여, 다른 사람을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가 뛰어나다고 하면서 마음이 스스로를 믿고 거들먹거리는 것[擧恃]을 일컬어 ‘교’라고 하는데, 다른 이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하는 점에서 만(慢)과 차이가 있다”고 하였다.82)
    81) 본론 제6권 ‘만(慢)과 교(憍)’에서 분별하였다.
    82) ‘만’이란 자신의 입장에서 다른 이의 덕을 차별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믿고 거들먹거리며 다른 이를 능멸하는 것을 ‘만’이라 한다.(前註 참조)"
  22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b14 - T29n1558_p0021b17.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
    "尋伺慢憍差別云何。頌曰。
     尋伺心麤細 慢對他心舉
     憍由染自法 心高無所顧"
  22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5 / 1397.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
    "그렇다면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尋)과 사(伺)는 마음의 거칠고 세밀함이며
     만(慢)은 타인에 대한 마음의 오만함[擧]이며
     교(憍)는 자신의 법에 염착함으로써
     마음이 고양되어 돌아봄이 없는 것이다.
     尋伺心細麤 慢對他心擧
     憍由染自法 心高無所顧"
  22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c12 - T29n1558_p0021c14. 교(憍)
    "憍謂染著自法為先令心傲逸無所顧性。有餘師說。如因酒生欣舉差別說名為醉。如是貪生欣舉差別說名為憍。"
  22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8 / 1397. 교(憍)
    "'교'는 이를테면 먼저 자신의 법에 대해 염착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오만 방일[傲逸]하게 하여 다른 것을 돌아보는 일이 없는 성질을 말한다.87)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술에 의해 생겨난 흔거(欣擧, 들떠 거들먹거리는 것)의 차별을 설하여 취한 것이라고 하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탐으로부터 생겨난 흔거의 차별을 설하여 '교'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88)
    87) 즉 자신의 용감함이나 건강, 재산, 지위, 도덕규범[戒], 지혜, 친족 등의 존재[法]에 대해 먼저 염착을 일으킴으로써 마음에 오만 방일함이 생겨 온갖 선본(善本)을 되돌아보는 바가 없기 때문에, '교'라고 일컬은 것이다. 온갖 선본에 대해 되돌아보는 바가 없다고 함은, 마음이 오만해짐에 따라 온갖 선업을 즐거이 수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현종론』 권제6, 한글대장경200, p. 152)
    88) 이는 곧 염오의 희(喜)가 '교'라는 뜻으로, 유부 비바사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희는 제2선 이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교는 3계에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25.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2c03 - T29n1563_p0802c07. 심(尋)과 사(伺)
    "尋伺憍慢別相云何。頌曰。
     尋伺心麤細 慢對他心舉
     憍由染自法 心高無所顧
    論曰。尋伺別者。謂心麤細。心之麤性。說名為尋。心之細性。說名為伺。"
  226.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225-226 / 1762. 심(尋)과 사(伺)
    "그렇다면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상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尋)과 사(伺)는 마음의 거칠고 세밀함이며
     만(慢)은 타인에 대한 마음의 오만함[擧]이며
     교(憍)는 자신의 법에 염착(染著)함으로써
     마음이 고양되어 돌아봄이 없는 것이다.
     尋伺心麤細 慢對他心擧
     憍由染自法 心高無所顧
    논하여 말하겠다.
    심(尋)과 사(伺)의 차별은 이를테면 마음의 거칠고 세밀함이다. 즉 마음의 거친 성질[麤性]을 설하여 ‘심’이라 말한 것이며, 마음의 세밀한 성질[細性]을 설하여 ‘사’라고 말한 것이다."
  22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b14 - T29n1558_p0021b19. 심(尋)과 사(伺)
    "尋伺慢憍差別云何。頌曰。
     尋伺心麤細 慢對他心舉
     憍由染自法 心高無所顧
    論曰。尋伺別者。謂心麤細。心之麤性名尋。心之細性名伺。"
  22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5 / 1397. 심(尋)과 사(伺)
    "그렇다면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尋)과 사(伺)는 마음의 거칠고 세밀함이며
     만(慢)은 타인에 대한 마음의 오만함[擧]이며
     교(憍)는 자신의 법에 염착함으로써
     마음이 고양되어 돌아봄이 없는 것이다.
     尋伺心細麤 慢對他心擧
     憍由染自法 心高無所顧
    논하여 말하겠다. 심(尋)과 사(伺)란 이를테면 마음의 거칠고 세밀함을 말한다. 즉 마음의 거친 성질[麤性]을 일러 '심'이라고 이름한 것이며, 마음의 세밀한 성질[細性]을 일러 '사'라고 이름한 것이다."
  22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b18 - T29n1558_p0021b27. 심(尋)과 사(伺)
    "論曰。尋伺別者。謂心麤細。心之麤性名尋。心之細性名伺。云何此二一心相應。有作是釋。如冷水上浮以熟酥上烈日光之所照觸。酥因水日非釋非凝。如是一心有尋有伺。心由尋伺不遍細麤。故於一心俱有作用。若爾尋伺是麤細因。非麤細體。如水日光是凝釋曰體非凝釋。又麤細性相待而立。界地品別上下相形。乃至有頂應有尋伺。又麤細性無別體類。不可依之以別尋伺。"
  23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85-186 / 1397. 심(尋)과 사(伺)
    "논하여 말하겠다. 심(尋)과 사(伺)란 이를테면 마음의 거칠고 세밀함을 말한다. 즉 마음의 거친 성질[麤性]을 일러 '심'이라고 이름한 것이며, 마음의 세밀한 성질[細性]을 일러 '사'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심·사의] 두 가지가 한 찰나의 마음[一心]과 상응하[여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81)
    어떤 이는 이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즉 "찬물 위에 떠 있는 숙소(熟酥) 상에 뜨거운 햇볕이 비추어 쪼이더라도 숙소는 풀리지도 않고 엉키지도 않는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한 찰나의 마음에 심도 존재하고 사도 존재하니, 마음은 이러한 심과 사로 말미암아 두루 세밀하지도 거칠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찰나의 마음에 [이 두 가지 심소는] 함께 존재하여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비바사사의 제1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심과 사는 바로 거칠고 세밀함의 원인으로서, 거칠고 세밀함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니, 이를테면 [찬]물과 햇볕은 바로 [숙소가] 엉키고 풀리는 것의 원인으로서, 그 자체가 엉키거나 풀리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거칠고 세밀한 성질[麤·細性]은 상대(相待)적으로 설정된 것이니, 3계(界) 9지(地) 9품(品)의 차별은 상하로서 서로 형성된 것이며, 그럴 경우 나아가 유정천(有頂天)에도 마땅히 심과 사가 존재한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82) 또한 거칠고 세밀한 성질은 [다만 마음의 차별일 뿐] 개별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에 의해서는 심과 사를 분별할 수 없는 것이다.(세친의 난)
    81) 이 난문은 보광이나 법보에 의하면 경부에 의한 것이다. 즉 유부 범주표 상에서 다른 의식작용과 다양하게 결합할 수 있는 부정지법에 속하는 심(尋, vitarka)과 사(伺, vicāra)는 일반적으로 마음(전5식)으로 하여금 감각적 대상(5경)을 추구하게 하는 보다 거친 성질의 의식작용[心之麤性], 제6의식으로 하여금 비감각적 대상(법경)을 파악하게 하는 보다 세밀한 성질의 의식작용[心之細性]으로 정의되는데, 양자는 마치 찬물 위에 숙소(熟酥)를 띄워놓고 뜨거운 햇볕을 쪼이면 풀리지도 않고 서로 엉키지도 않은 채 각기 제 형태를 유지하듯이 개별적 실체(別體)로 상응구기함으로써 마음으로 하여금 추(酥)·세(細)에 치우치지 않고 고른 인식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유부에서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의식작용(麤·細)의 기체로서 '심' 과 '사'라고 하는 존재를 상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햇볕과 찬물은 숙소를 엉키거나 풀리지 않게 하는 원인으로, 그 본질[體]이 아니듯이 심과 사 역시 마음을 추·세에 치우치지 않게 하는 원인일 뿐, 그 자체 추·세의 본질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그 자체의 본질을 갖지 않은 어떤 것을 개별적 실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경량부의 기본논리이다. 그렇다고 할 때 개별적 실체가 아닌 추·세, 즉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사태는 한 찰나의 마음에 동시에 일어날 수 없으며, 또한 상응한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호 모순되는 그것들은 다만 동일물[心]의 계시적 차별상이기 때문이다. 곧 '종자상속의 이론'을 교설의 기본틀로 삼는 경량부로서는 유부의 개별적 실체로서의 심·심소 상응구기설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여기서의 논의도 그 한 예일 뿐이다.
    82) 3계 9지 9품 중에서 보다 상계 상지의 상품의 심소는 세밀하다고 해야 할 것이고, 보다 하계 하지의 하품의 심소는 거칠다고 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유정천 즉 비상비비상처의 상품은 하품보다 세밀하지만 하품은 그 지의 멸진정보다는 거칠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유부에 의하는 한 초선 이상에는 심·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231.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2c06 - T29n1563_p0802c24. 심(尋)과 사(伺)
    "論曰。尋伺別者。謂心麤細。心之麤性。說名為尋。心之細性。說名為伺。若爾尋伺體不異心。經即就心說二性故。此言非理。由不了達經義趣故。經言所有心麤細性名尋伺者。由有此法心起便麤。此法名尋。由有此法心起便細。此法名伺或作異釋。故體異心。謂我不言。心之麤性名心麤性。心之細性名心細性。者爾云何依心麤性名心麤性。依心細性名心細性。雖一心中二體可得。用增時別故不相違。如水與酢等分和合。體雖平等而用有增。麤心品中尋用增故。伺用被損有而難覺。細心品中伺用增故。尋用被損有而難覺。若謂酢用一切時增故非喻者。此言非理。我不定說。以酢喻尋水喻於伺。但有用增者。即說如酢故。由是尋伺。雖一心中體具可得。用時別故。而無一心即麤即細。如貪癡性雖並現行。而得說心為有貪行。隨何心品有法用增。此法為門。總標心品。諸無色法就用說增。如是已說尋伺別相。"
  232.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p. 226-227 / 1762. 심(尋)과 사(伺)
    "논하여 말하겠다.
    심(尋)과 사(伺)의 차별은 이를테면 마음의 거칠고 세밀함이다. 즉 마음의 거친 성질[麤性]을 설하여 ‘심’이라 말한 것이며, 마음의 세밀한 성질[細性]을 설하여 ‘사’라고 말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심’과 ‘사’ 자체는 마음과 다르지 않으니, 경에서도 바로 마음에 대해 두 가지 성질로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은 올바른 이치가 아니니, 경에서 말하고 있는 취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즉 경에서 마음의 거칠고 세밀한 성질을 일컬어 ‘심’과 ‘사’라고 말한 것은, 이 법이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거칠게 일어나기 때문에 이러한 법을 ‘심’이라고 이름하였던 것이며, 이 법이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세밀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이러한 법을 ‘사’라고 이름하였던 것이다. 혹은 “그래서 [‘심’과 ‘사’] 자체는 마음과 다른 것이다”라고 달리 해석해야 할 것으로, 이를테면 우리는 마음이 지닌 거친 성질[心之麤性]을 마음의 거친 성질[心麤性]이라 이름하고, 마음이 지닌 세밀한 성질[心之細性]을 마음의 세밀한 성질[心細性]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만약 그렇다면 어떠한가? 마음에 근거하는 거친 성질을 마음의 거친 성질[心麤性]이라 이름하고, 마음에 근거하는 세밀한 성질을 마음의 세밀한 성질[心細性]이라 이름한 것인가?40)
    비록 일 찰나의 마음 중에 두 가지의 법체가 획득될 수 있을지라도 작용이 증강(增强)되는 때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물과 초(酢)를 같은 분량으로 화합하면 그 자체는 비록 평등할지라도 작용에 증강이 있는 것과 같다. 곧 거친 마음의 품류 중에서는 ‘심’의 작용이 증강하였기 때문에 ‘사’의 작용은 감손되어 존재하더라도 지각하기 어렵다. 또한 세밀한
    마음의 품류 중에서는 ‘사’의 작용이 증강하였기 때문에 ‘심’의 작용은 감손되어 존재하더라도 지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만약 “초의 작용은 언제나 증강한 것이기 때문에 비유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러한 말은 올바른 이치가 아니다. 나는 결정코 초를 ‘심’에 비유하고, 물을 ‘사’에 비유한다고는 설하지 않았으며, 다만 작용에 증강이 있는 것이 바로 초의 경우와 같다고 설하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심’과 ‘사’는 비록 일 찰나의 마음 중에 그 법체가 함께 획득될 수 있을지라도 작용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일 찰나의 마음이 바로 거칠고, 또한 바로 미세한 경우는 없는 것이다. 예컨대 비록 탐(貪)과 치(癡)의 성질이 비록 함께 현행할지라도 그 때의 마음을 유탐(有貪)의 행(行)이라고 설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어떠한 마음에도 작용이 강성한 법이 존재하니, 바로 이러한 법을 문(門)으로 삼아 마음의 품류를 전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무색법은 작용에 대해서만 증강을 설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심’과 ‘사’의 차별상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40) 『순정리론』 제11권에 따르면, 여기에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거친 성질과 미세한 성질은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마땅히 ‘심’과 ‘사’는 일 찰나의 마음에 함께 생겨나서는 안 될 것이다”라는 경부의 힐난이 진술되고 있다."
  23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b27 - T29n1558_p0021c02. 심(尋)과 사(伺)
    "復有釋言。尋伺二法是語言行。故契經言。要有尋伺方有語言。非無尋伺此語言行。麤者名尋。細者名伺。於一心內別法是麤別法是細。於理何違。若有別體類理實無違。然無別體類故成違理。"
  23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6 / 1397. 심(尋)과 사(伺)
    "다시 어떤 이는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심과 사의 두 가지 법은 바로 어언(語言)의 행(行)이니,83) 그래서 계경에서 말하기를, '요컨대 심·사가 있어 비로소 어언이 있게 된 것이다'고 하였던 것이다. 곧 심과 사가 없다면 이러한 어언의 행도 있지 않을 것이니, 그러한 것 중에서 거친 것을 '심'이라 이름하고, 세밀한 것을 '사'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러니 1찰나의 마음 안에 개별적인 법[別法]으로서의 거친 것(심)과 개별적인 법으로서의 세밀한 것(사)이 있을지라도 이치상 무슨 모순이 있을 것인가?(비바사사의 제2설)
    83) 여기서 어언(語言)의 '행(saṃskāra)'이란 말의 원인이 되어 그것을 능히 일으키게 하는 근거를 말한다. 이 설은 보광은 비바사사의 학설로, 법보는 유부 이사(異師)의 학설로 평석하고 있으나 칭우는 경량부의 학설로 평석하고 있다."
  235.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7권. p. T29n1563_p0907b13 - T29n1563_p0907b17. 수면(睡眠)
    "令心昧略惛沈相應。不能持身是為眠相。眠雖亦有惛不相應。此唯辯纏。故作是說。於此頓說眠三相者。此三與眠義相順故。"
  236.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7권. p. 1148 / 1762. 수면(睡眠)
    "마음으로 하여금 흐리멍덩[昧略]하게 하고, 혼침과 상응하며, 능히 몸을 집지(執持)하지 못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면(眠)’ 즉 수면(睡眠)의 특상이다. 수면은 혼침과 상응하지 않는 경우도 역시 있지만,70) 여기서는 오로지 ‘전’[의 하나]로 분별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설한 것이다. 또한 여기서 수면의 세 가지 상을 한꺼번에 설한 것은, 이러한 세 가지 특상과 수면의 뜻이 서로 부합하기 때문이다.71)
    70) 이를테면 잠(수면)은 몽롱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쾌한 것도 있다.
    71) 참고로 『구사론』(앞의 책)에서는 세 가지 특상 중의 ‘혼침과 상응하며’를 제외한 두 가지 특상만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반드시 혼침과 상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前註 참조)"
  23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b26 - T29n1558_p0109b27. 수면(睡眠)
    "眠謂令心昧略為性。無有功力執持於身。"
  23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4 / 1397. 수면(睡眠)
    "'면(眠)'이란, 이를테면 마음으로 하여금 흐리멍덩[昧略]하게 함을 본성으로 하는 것으로, [이것이 일어나는 경우] 몸을 집지(執持)할 만한 공력(功力)이 없게 된다."
  239.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1a21 - T29n1563_p0801b07. 악작(惡作)
    "不定地法復有二種。一者惡作。二者睡眠。非此二法貫通三界及六識身。有漏無漏。非唯不染。亦非唯染。故善心品非一切時。皆有惡作。但容可有。有時增數至二十三。言惡作者。悔以惡作為所緣故立惡作名。如無相定。有說無相及身念住有處名身。若爾有緣所未作事。心生追悔。應非惡作。不爾未作亦名作故。如追悔言。我先不作如是事業。是我惡作。然此惡作通善不善。不通無記。隨憂行故。離欲貪者。不成就故。非無記法。有如是事。然有追變。我須何為。不消而食。我須何為。不畫此壁。如是等類。彼心乃至未觸憂根。但是省察未起惡作。若觸憂根便起惡作。爾時惡作理同憂根。故說惡作有如是相。謂令心慼惡作心品。若離憂根誰令心慼。惡作有四。謂善不善。一一皆依一處起故。"
  240.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p. 214-216 / 1762. 악작(惡作)
    "부정지법에 다시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악작(惡作)이고 둘째는 수면(睡眠)이다. 이 두 법은 3계나 6식신의 유루ㆍ무루 모두에 통하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불염오도 아니고, 또한 역시 오로지 염오한 것만도 아니다. 따라서 선한 마음의 품류에는 언제나 모두 악작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인정된다.18) 그럴 때 [욕계 선한 마음에서의 심소의] 수는 증가하여 스물세 가지에 이른다.
    악작이라고 말한 것은, 후회는 그릇되게 저질러진 일[惡作]을 소연으로 삼기 때문에 악작이라는 명칭을 설정한 것으로, 무상정(無相定)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19) 또한 어떤 이는 말하기를 “무상정이나 신념주(身念住)는 처소가 있어 [무상과] 신(身)이라고 이름하였다”고도 하였다.20)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말해 그릇되게 저질러진 일을 소연으로 삼기 때문에 악작이라는 명칭을 설정하였다면], 아직 지어지지 않은 일을 소연으로 하여 마음이 후회를 낳았을 경우, 마땅히 악작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21)
    그렇지 않으니, 아직 짓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역시 ‘지은 일[作]’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내가 일찍이 이와 같은 일을 짓지 않았던 것은 바로 나의 악작(즉 잘못된 일)이다’라고 후회하여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러한 악작은 선ㆍ불선과 통하며, 무기와는 통하지 않으니, 우근(憂根,근심)에 따라 행해진 것이기 때문이며, 욕탐을 떠난 자는 성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무기법에는 이와 같은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기법에도] ‘나는 요즈음 어찌하여 소화시키지도 않고 먹기만 하는가? ‘나는 요즈음 어찌하여 이 벽에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인가? 라고 추변(追變,추억)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따위의 유형은 그의 마음이 아직 우근과 접촉하지 않은 것으로, 단지 이와 같은 성찰만으로는 악작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그의 마음이 우근과 접촉하였다면 바로 악작을 일으킬 것이며, 그 때의 악작은 이치상 우근과 동일하다. 따라서 악작은 이와 같은 특성을 갖는 것이라고 설해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마음으로 하여금 슬퍼하게 하는 것을 악작의 마음이라고 한다.’ 만약 우근을 배제한다면 무엇이 마음으로 하여금 슬퍼하게 할 것인가? 곧 악작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선과 불선의 악작이 각기 모두 두 가지 처소(짓고 짓지 않음)에 근거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22)
    18) 악작이란 이를테면 후회로서, 이전에 착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이 선한 악작이지만, 모든 선심에는 반드시 이러한 작용이 있지 않기 때문에 선심과의 상응 유무가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19) 무상정(無相定)은 3해탈문(空ㆍ無相ㆍ無願)의 하나로, 그 자체의 본질은 무루정이지만, 무상을 소연의 경계로 삼기 때문에 무상정이라 하였다. 마찬가지로 악작은 후회[追悔]이지만 후회의 소연이 악작(잘못 저질러진 일)이기 때문에 ‘악작’이라고 이름하였다는 뜻.
    20) 신념주란 몸은 부정(不淨)한 것이라고 억념하는 관법(4념주의 하나)으로, 부정의 본질은 무탐(無貪)이지만 소연이 되는 처소에 따라 신념주라고 이름하였다는 뜻.
    21) 이미 지어진 일에 대해 후회하는 것은 악작이라 할 수 있어도, 짓지 않은 업에 대해 설사 ‘그것을 하였더라면’ 하고 후회하였을지라도, 거기에는 소연의 경계가 될만한 지어진 일이 없기 때문에 악작이라고 이름할 수 없지 않은가? 하는 힐난.
    22) 일찍이 착한 일을 하지 않았거나 악한 일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 선의 악작이라면, 일찍이 악한 일을 하지 않았거나 선한 일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것은 악(불선)의 악작이다. 따라서 선심에 악작이 존재하는 경우라면 악작을 포함하여 23가지 심소가 동시 구기해야 한다."
  241. 운허, "三解脫門(삼해탈문)". 2013년 3월 31일에 확인
    "三解脫門(삼해탈문): 또는 삼공문(三空門)ㆍ삼삼매(三三昧). 해탈을 얻는 세 가지 방법. (1) 공해탈문(空解脫門). 일체 만유가 다 공(空)하다고 관함. (2)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 상대적 차별한 모양이 없다고 관함. (3) 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이라고도 하니, 일체 것을 구할 것이 없다고 관함을 말함. ⇒삼공(三空)"
  242. 운허, "無漏定(무루정)". 2013년 3월 31일에 확인
    "無漏定(무루정): 또는 출세간선(出世間禪)이라고도 한다. 견도위(見道位) 이상의 성자가 무루지(智)를 발하는 선정. 오계(悟界)에 이르는 연(緣)이 되는 것."
  243. 운허, "四念處(사념처)". 2013년 3월 31일에 확인
    "四念處(사념처): 신역(新譯)은 사념주(四念住). 소승의 수행자가 3현위(賢位)에서 5정심관(停心觀) 다음에 닦는 관(觀). 신념처(身念處)ㆍ수념처(受念處)ㆍ심념처(心念處)ㆍ법념처(法念處). (1) 신념처. 부모에게 받은 육신이 부정하다고 관하는 것. (2) 수념처. 우리의 마음에 낙이라고 하는 음행ㆍ자녀ㆍ재물 등을 보고, 낙이라 하는 것은 참 낙이 아니고, 모두 고통이라고 관하는 것. (3) 심념처. 우리의 마음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늘 변화 생멸하는 무상한 것이라고 관하는 것. (4) 법념처. 위의 셋을 제하고, 다른 만유에 대하여 실로 자아(自我)인 실체(實體)가 없으며, 또 나에게 속한 모든 물건을 나의 소유물이라고 하는데 대해서도, 모두 일정한 소유자(所有者)가 없다고, 무아관(無我觀)을 하는 것. 이 사념처관을 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의 순서로 따로따로 관하는 것을 별상념처관(別相念處觀), 총합하여 관하는 것을 총상념처관(總相念處觀)이라 함."
  244.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b06 - T29n1558_p0020b14. 악작(惡作)
    "非諸善心皆有惡作。有時增數至二十三。惡作者何。惡所作體名為惡作。應知此中緣惡作法說名惡作。謂緣惡作心追悔性。如緣空解脫門說名為空。緣不淨無貪說為不淨。又見世間約所依處說能依事。如言一切村邑國土皆來集會。惡作即是追悔所依。故約所依說為惡作。又於果體假立因名。如說此六觸處應知名宿作業。"
  24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75-176 / 1397. 악작(惡作)
    "온갖 선심에 모두 악작(惡作)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53) 그것이 존재할 때에는 그 수가 증가하여 스물세 가지에 이른다.
    악작이란 무엇인가?
    그릇되게 지어진 것[惡所作] 자체를 일컬어 악작이라고 한다. 즉 그릇되게 지어진 것을 소연으로 하여 [생겨난] 법을 설하여 악작이라고 이름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그릇되게 지어진 것을 소연으로 하여 [생겨난] 마음의 추회(追悔)하는 성질을 말한다. 이는 마치 공(空)을 소연으로 하는 해탈문(解脫門)을 설하여 '공'이라 이름하고, 부정(不淨)을 소연으로 하는 무탐(無貪)을 설하여 '부정'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54) 또한 세간일반에서 보더라도 소의처(所依處)에 근거하여 그것에 능히 의지하는 것[能依事]을 설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일체의 시골이나 나라[國土]가 모두 와 모였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55) 즉 악작은 바로 추회의 소의가 되기 때문에 소의에 근거하여 악작이라고 설하게 된 것이다. 또한 결과 자체에 대해 일시 원인의 명칭을 설정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이러한 6촉처를 설하여 숙작업(宿作業)이라 이름하는 것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56)
    53) 악작이란 이를테면 후회로서, 이전에 착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이 선한 악작이지만, 모든 선심에는 반드시 이러한 작용이 있지 않기 때문에 선심과의 상응 유무가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54) 공을 소연으로 하는 해탈문은 그 자체 무루정으로서 공을 소연의 경계로 삼기 때문에 소연에 따라 '공 '이라 하였으며, 부정(不淨)의 자체는 무탐이지만 이 또한 소연에 따라 '부정'이라 이름하였다는 뜻.
    55) 일체의 시골[村邑]이 모두 와 모였다고 함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와 모였다는 뜻으로, 머무는 처소[所依處]에 근거하여 거기에 머무는 이[能依事]를 나타낼 수 있다는 예증.
    56) 숙작업(숙세의 선악업)을 원인으로 삼아 6촉처(6촉의 소의처가 되는 6근)의 결과가 생겨날 때, 결과인 6근에 원인의 명칭을 부여하여 숙작업이라고 할 수 있듯이, 악작으로 인해 추회(追悔)가 생기기 때문에 결과 인 추회하는 마음에 대해 그 원인이 되는 악작이라는 명칭을 부가할 수 있다는 뜻."
  246.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b16 - T29n1558_p0020b18. 선의 악작과 불선의 악작
    "何等惡作說名為善。謂於善惡不作作中心追悔性。與此相違名為不善。此二各依二處而起。"
  247.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76 / 1397. 선의 악작과 불선의 악작
    "어떠한 악작을 일컬어 선의 악작이라 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선을 짓지 않았거나 악을 지은 것에 대해 마음으로 추회(追悔)하는 성질을 선의 악작이라 하며, 이와 반대되는 것을 일컬어 불선의 악작이라 하니, 이러한 두 가지의 악작은 각기 두 가지 처소(선·불선)에 근거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248.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2권. p. T29n1563_p0881b15 - T29n1563_p0881b24. 의(意)의 3업도: 탐·진·사견
    "已辯三語。當辯意三。頌曰。
     惡欲他財貪 憎有情瞋恚
     撥善惡等見 名邪見業道
    論曰。於他財物非理耽求欲令屬己。或力或竊。如是惡欲名貪業道。於有情類起憎恚心。欲為逼迫名瞋業道。於善惡等惡見撥無。此見名為邪見業道。舉初攝後。故說等言。具足應如契經所說。謗因謗果二世尊等總十一類。邪見不同。謂無施與。乃至廣說。"
  249.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2권. pp. 905-906 / 1762. 의(意)의 3업도: 탐·진·사견
    "세 가지 말(이간ㆍ추악ㆍ잡예어)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마땅히 의(意)의 세 업도(탐ㆍ진ㆍ사견)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남의 재물에 대한 사악한 욕심이 탐이며
     유정을 미워하는 것이 진에(瞋恚)이며
     선ㆍ악업 등을 부정하는 견해를
     일컬어 사견(邪見)의 업도라고 한다.
     惡欲他財貪 憎有情瞋恚
     撥善惡等見 名邪見業道
    논하여 말하겠다.
    남의 재물을 비리(非理)로 탐착하고 희구하여 그것을 자신에게 소속시키기 위해 강제로, 혹은 슬그머니 취하려는 이와 같은 사악한 욕심[惡欲]을 일컬어 ‘탐의 업도’라고 한다.
    유정류에 대해 증오하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 핍박하려고 하는 것을 일컬어 ‘진에의 업도’라고 한다.
    악견(惡見)으로써 선ㆍ악업 등을 부정하는 이러한 견해를 일컬어 ‘사견의 업도’라고 한다. 그리고 [본송에서는] 처음의 것(즉 선ㆍ악업을 부정하는 사견)을 언급함으로써 뒤의 것(업의 과보와 현성 등을 부정하는 사견)을 포섭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등’이라는 말을 설한 것으로, 그러한 모든 사견은 계경에서 설한 바와 같다. 즉 원인을 비방하고 결과를 비방하는 두 가지 사견으로써 세존께서는 모두 열한 가지 종류의 서로 다른 사견을 모두 취하였으니, 이를테면 ‘시여도 없고……(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53)
    53) 이를테면 『잡아함경』 제37권 제1039경(대정장2,p.271하); 『중아함경』 제3권 「사경(思經)」(대정장1,p.437하) 등에서는 인과를 부정하는 등의 열한 가지 사견을 언급하고 있는데, 본송에서는 선ㆍ악업을 부정하는 사견만을 언급하였고, ‘등’이라는 말속에 그 밖의 나머지 사견, 이를테면 인과업보와 성자 등을 부정하는 사견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 계경에서 설한 완전한 문구는 이러하다. “시여도 없고, 제사도 없고, 묘행도 없고, 악행도 없고, 묘ㆍ악 행업의 이숙과도 없고,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어미도 없고, 아비도 없고, 화생(化生)의 유정도 없고, 세간에 사문 혹은 바라문, 아라한도 없다.” 이 같은 견해는 육사외도 중의 아지타 케사캄발린(Ajita Kesakambalin)이나 막칼리 고살라(Makhali Gosāla)의 주장으로, 이러한 경향의 도덕부정론자를 로카야타(Lokāyata) 즉 순세파(順世派)라고 한다."
  250.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6권. p. T29n1558_p0088a29 - T29n1558_p0088b11. 욕탐(欲貪)
    "由過輕故不成業道。已辯三語。當辯意三。頌曰。
     惡欲他財貪 憎有情瞋恚
     撥善惡等見 名邪見業道
    論曰。於他財物惡欲名貪。謂於他財非理起欲。如何令彼屬我非他。起力竊心耽求他物。如是惡欲名貪業道。有餘師言。諸欲界愛皆貪業道。所以者何。五蓋經中依貪欲蓋佛說應斷此世間貪。故知貪名總說欲愛。有說。欲愛雖盡名貪。而不可說皆成業道。此惡行中攝麤品故。勿輪王世及北俱盧所起欲貪成貪業道。"
  25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6권. pp. 762-763 / 1397. 욕탐(欲貪)
    "그 밖의 세 가지 말(이간·추악·잡예어)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마땅히 의업의 세 가지(애탐·진에·사견)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남의 재물에 대한 사악한 욕심이 탐이며
     유정을 미워하는 것이 진에(瞋恚)이며
     선악 따위를 부정하는 견해를
     일컬어 사견(邪見)의 업도라고 한다.
     惡欲他財貪 憎有情瞋恚
     撥善惡等見 名邪見業道
    논하여 말하겠다. 남의 재물에 대한 사악한 욕심이 탐(貪)이다. 이를테면 남의 재물에 대해 비리(非理)의 욕망을 일으켜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다른 이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소속시키기 위해 강제로, 혹은 슬그머니 취하려는 마음을 일으켜 다른 이의 재물을 탐착하고 희구하니, 이와 같은 사악한 욕심[惡欲]을 일컬어 '탐의 업도'라고 한다.
    그런데 유여사는 말하기를, "욕계의 온갖 애(愛)는 모두 탐의 업도이다"고 하였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오개경(五蓋經)』 중에서 탐욕개(貪欲蓋)에 의해 부처는 이 세간의 탐을 마땅히 끊어야 한다고 설하고 있기 때문에,80) '탐'이라고 하는 명칭은 욕계의 '애'를 설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설하기를, "욕계의 애를 비록 모두 다 탐이라 이름할 수 있을지라도 그 모두가 업도를 성취한다고는 설할 수 없으니, 이러한 악행 중에는 추품(麤品)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륜왕의 시기와 북구로주에서 일으킨 욕탐은 탐업도를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80) 『잡아함경』 권제29 제803경(대정장2, p. 206상). 여기서는 안나반나념(安那般那念)을 밝히면서 이 같은 식념관(息念觀)에서 세간의 탐애를 끊고 욕(欲)을 떠나 청정하며 ……온갖 의혹에서 벗어나 선법에 마음의 결정을 획득하면 5개(蓋)를 멀리할 수 있다고 하였다."
  252.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5권. p. T29n1563_p0892c28 - T29n1563_p0893a09. 탐(貪)
    "若諸隨眠數唯有六。何緣經說有七隨眠。頌曰。
     六由貪異七 有貪上二界
     於內門轉故 為遮解脫想
    論曰。即前所說六隨眠中分貪為二。故經說七。欲貪有貪相差別故。色無色愛佛說有貪。彼貪多託內門轉故。又於上二界有起解脫想。為遮彼執故立有名。以此有言目生身義。既說有貪。在上二界。義准欲界。貪名欲貪。故於頌中不別顯。示多緣五欲外門轉。"
  253.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5권. pp. 1016-1017 / 1762. 탐(貪)
    "만약 온갖 수면의 수가 오로지 여섯 가지뿐이라고 한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경에서 “일곱 가지 수면이 있다”고 설한 것인가?5)
    게송으로 말하겠다.
     6수면은 탐의 차이로 말미암아 일곱 가지가 되니
     유탐(有貪)은 상(上) 2계의 그것으로
     내문(內門)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해탈이라는 생각을 막기 위해 [별도로 설정하였다].
     六由貪異七 有貪上二界
     於內門轉故 爲遮解脫想
    논하여 말하겠다.
    바로 앞에서 논설한 여섯 가지 수면 중에서 ‘탐’을 둘로 나누었기 때문에 경에서 일곱 가지라고 설한 것으로, 욕탐(欲貪)과 유탐(有貪)의 상(相)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즉 부처님께서는 색계와 무색계의 애(愛)를 유탐이라고 설하였는데, 그곳의 탐은 대개 내문(內門) 즉 내적인 경계에 의탁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6) 또한 (어떤 이들은) 상(上) 2계의 존재에 대해 해탈하였다는 생각[解脫想]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같은 주장을 막기 위해 ‘유탐’이라는 명칭으로 설정하였으니,7) 여기서 ‘유’라는 말은 바로 (그곳에) ‘태어난 몸[生身]’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8)
    그리고 이미 유탐이 상 2계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하였으니, 이러한 뜻에 준하여 욕계의 탐을 ‘욕탐’이라고 이름한 것으로, 그래서 본송 중에서 별도로 나타내어 (설하지) 않은 것이다. 즉 (욕계의 탐은) 대개 5욕경(欲境)을 소연으로 하여 외문(外門)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5) 이를테면 『잡아함경』 제18 490경(대정장2,p.127상); 『증일아함경』 제34권 「칠일품(七日品)」 제3경(동p.738하); 『장아함경』 제10권 「십상경(十上經)」(대정장1,p.54중) 등에서는 각기 7사(使, ‘사’는 수면의 구역어)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6) 즉 욕계에서의 탐은 외문전(外門轉) 즉 의복이나 음식 금전 등 외적인 경계를 추구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욕탐(欲貪)이라 하였으며, 색 · 무색계에서의 탐은 내문전(內門轉) 즉 선정의 경계(예컨대 喜 · 樂)를 추구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유탐(有貪)이라 하였다.
    7) 즉 어떤 이들은 색계와 무색계에서의 존재[有]를 해탈한 존재라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유탐’이라는 명칭의 수면을 설정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생 외도는 무상천(無想天)의 5백 대겁 동안의 무상을 진실의 해탈로 간주한다. 본론 제7권 ‘무상정’ 참조
    8) ‘유(有)’란 내외의 일체의 존재를 포함하는 말이지만(이러한 의미에서 상좌 스리라타는 외문을 반연하여 일어나는 탐을 욕탐, 내문 즉 존재자체를 반연하여 일어나는 3계의 탐을 ‘유탐’이라 하였다.『순정리론』 제46권 참조), 상 2계의 소연을 의미할 경우 정려심과 그 소의지(所依止)인 신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즉 상계의 유정은 이미 욕탐을 떠났기 때문에 외적 경계에 집착하는 일이 없으며, 오로지 선정과 자신에 대해서만 미착(味著)하기 때문이다."
  254.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9권. p. T29n1558_p0099a16 - T29n1558_p0099a26. 탐(貪)
    "言貪分二。謂欲有貪。此中有貪以何為體。謂色無色二界中貪此。名何因唯於彼立。彼貪多託內門轉故。謂彼二界多起定貪。一切定貪於內門轉故。唯於彼立有貪名。又由有人於上二界起解脫想。為遮彼故。謂於上界立有貪名。顯彼所緣非真解脫。此中自體立以有名。彼諸有情多於等至及所依止深生味著故。說彼唯味著自體。非味著境。離欲貪故。由此唯彼立有貪名。既說有貪在上二界。義准欲界貪名欲貪。故於頌中不別顯示。"
  25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859 / 1397. 탐(貪)
    "탐을 둘로 나눈다고 함은, 말하자면 욕탐(欲貪)과 유탐(有貪)이다. 여기서 유탐은 무엇을 본질로 삼는 것인가? 이를테면 색계와 무색계 중의 탐이다. 이러한 ['유탐'이라는] 명칭의 수면(隨眠)은 무슨 까닭에 오로지 그곳에만 설정하는 것인가? 그곳의 탐은 대개 내문(內門) 즉 내적인 경계에 의탁하여 일어나기 [→ 누락된 번역을 편집자가 추가함: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 2계에서 대개 선정[定]에 대해 탐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는데, 모든 선정에 대한 탐은 내문(內門) 즉 내적인 경계에 의탁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오로지 그곳에만 '유탐'이라는 명칭의 수면(隨眠)을 설정하게 된 것이다. 또한 어떤 이들은 상 2계에서 해탈하였다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으로,18) 그 같은 생각을 막기 위해서였다. 즉 상계에 '유탐'이라는 명칭의 수면(隨眠)을 설정하여 그들의 소연(所緣)이 참된 해탈이 아님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즉 여기서는 존재 자체(自體)를 설정하여 '유'라고 일컬었으니, 그곳의 모든 유정은 대개 등지(等至)나 소의지(所依止)에 깊이 미착(味著)하기 때문이다.19) 즉 그들은 오로지 그들 자체에 대해서는 미착한다고 설할 수 있을지라도 외적 대상[境]에 대해서는 미착하지 않으니, [그것에 대한] 욕탐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로 말미암아 오로지 그곳에만 '유탐'이라는 명칭의 수면(隨眠)을 설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미 유탐이 상 2계에 존재하는 번뇌라고 설하였으니, 이러한 뜻에 준하여 볼 때 욕계의 탐을 욕탐이라고 이름한다.20) 그래서 본송 중에서 별도로 나타내지 않은 것이다.
    18) 즉 어떤 이들은 색계와 무색계에서의 존재[有]를 해탈한 존재라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유탐'이라는 명칭의 수면(隨眠)을 설정한 것으로, 이생 외도는 무상천(無想天)의 5백 대겁 동안의 무상을 진실의 해탈로 간주한다. 본론 권제5 (p.217) '무상정' 참조"
    19) '유(有)'란 내외의 일체의 존재를 포함하는 말이지만, 상 2계의 소연을 의미할 경우 정려심과 그 소의지(所依止)인 신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즉 상계의 유정은 이미 욕탐을 떠났기 때문에 외적 경계에 집착하는 일이 없으며, 오로지 선정과 자신에 대해서만 미착(味著)하기 때문이다.
    20) 즉 욕탐수면(欲貪隨眠)은 대개 외적 대상 즉 5욕경(欲境)을 소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외문전(外門轉)이다
  256.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5권. p. T29n1563_p0893b14 - T29n1563_p0893b15. 진(瞋)
    "色無色界五部各除瞋。餘與欲同。故各三十一。"
  257.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5권. pp. 1021-1022 / 1762. 진(瞋)
    "그리고 색계와 무색계의 5부에는 각기 진(瞋)이 제외되며,14) 그 밖의 다른 것은 욕계에서와 동일하기 때문에 [색 · 무색계에는] 각기 서른한 가지의 수면이 있다.
    14) 그 이유에 대해서는 후술함."
  258.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5권. p. T29n1563_p0893b21 - T29n1563_p0893b26. 진(瞋)이 색계와 무색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
    "何緣上界無瞋隨眠。彼瞋隨眠事非有故。謂於苦受有瞋隨增。苦受彼無故瞋非有。又彼相續由定潤故。又彼非瞋異熟因故。有說。彼無惱害事故慈等善根所居處故。諸所攝受皆遠離故。"
  259.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5권. pp. 1023-1024 / 1762. 진(瞋)이 색계와 무색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
    "어떠한 연유에서 상계(上界:색 · 무색계)에는 진(瞋)수면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곳에는 진수면의 경계[事]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18) 이를테면 ‘진’은 (전5식이 감수하는) 고수(苦受)에서 수증되는 것인데, 거기에는 고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의 상속은 선정에 의해 윤택하기 때문이며,19) 또한 그곳에는 ‘진’의 이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20)
    그런데 어떤 이는 “그곳에는 괴롭히거나 해코지할 일[惱害事]이 없기 때문이며, 자(慈) 등의 선근만이 존재하는 처소이기 때문이며, 섭수(攝受)된 온갖 것을 모두 원리(遠離)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18) 원문은 ‘彼瞋隨眠事非有故.’ 여기서 ‘사(事)’는 소연의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사(事)’에는 자체사(自體事) · 소연사(所緣事) · 계사(繫事) · 인사(因事) · 섭수사(攝受事) 등 여러 의미가 있다.(『대비바사론』 제56권, 대정장27, p.288상; 『구사론』 제6권, 권오민 역, p.312~313; 『순정리론』 제17권, 대정장29, p.435중)
    19) 즉 진수면은 풍병(風病)처럼 메마르고 거친 특성[乾澁相]인데, 상 2계의 유정은 선정에 의해 상속이 축축하고 매끄럽기[潤滑] 때문에 거기에는 진수면이 존재하지 않는다.
    20) 즉 ‘진’은 필시 좋지 않은 비애(非愛)의 이숙과를 초래하지만, 상 2계에는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좋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260.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6권. p. T29n1558_p0088a29 - T29n1558_p0088b13. 진(瞋)
    "由過輕故不成業道。已辯三語。當辯意三。頌曰。
     惡欲他財貪 憎有情瞋恚
     撥善惡等見 名邪見業道
    論曰。... 於有情類憎恚名瞋。謂於他有情欲為傷害事。如是憎恚名瞋業道。"
  26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6권. p. 762-763 / 1397. 진(瞋)
    "이제 마땅히 의업의 세 가지(애탐·진에·사견)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남의 재물에 대한 사악한 욕심이 탐이며
     유정을 미워하는 것이 진에(瞋恚)이며
     선악 따위를 부정하는 견해를
     일컬어 사견(邪見)의 업도라고 한다.
     惡欲他財貪 憎有情瞋恚
     撥善惡等見 名邪見業道
    논하여 말하겠다. ...
    유정류에 대해 증오하고 성내는 것을 진에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다른 유정에 대해 해코지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이와 같이 증오하고 성내는 것을 '진에의 업도'라고 한다."
  262.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9권. p. T29n1558_p0099c04. 진(瞋)의 5부 분별
    "色無色界五部各除瞋。"
  26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762 / 1397. 진(瞋)의 5부 분별
    "그리고 색계와 무색계의 5부에는 각기 진(瞋)이 제외되며,29)
    29) 그곳에는 진(瞋)수면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를테면 '진'은 전5식이 감수하는 고수(苦受)에서 수증되는 것인데, 거기에는 고수가 없기 때문에 '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의 상속은 삼매[定]에 의해 윤택해지기 때문이며, 그곳에는 '진'의 이숙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진'은 그 속성상 불선의 악으로 분류되나 상계의 수면번뇌는 악이 아닌 유부무기, 다시 말해 올바른 지혜의 생기를 방해하는 그릇된 의식일 뿐이기 때문이다.(『현종론』 권제25, 앞의 책, p. 138 참조)"
  264. 星雲, "". 2013년 3월 31일에 확인
    "瞋:  梵語 pratigha 或 dvesa,巴利語 patigha 或 dosa 。又作瞋恚、瞋怒、恚、怒。音譯作醍鞞沙。心所(心的作用)之名。為三毒之一。係指對有情(生存之物)怨恨之精神作用。於俱舍宗屬不定地法之一,於唯識宗屬煩惱法之一。據俱舍論卷十六、成唯識論卷六所載,對違背己情之有情生起憎恚,使身心熱惱,不得平安之精神作用,名為瞋。又忿、恨、惱、嫉、害等隨煩惱,皆以瞋之部分為體,是為六根本煩惱(或十隨眠)之一。以其不屬推察尋求之性質(見),作用遲鈍,故為五鈍使之一。與貪、癡兩者,共稱為三毒(三不善根)。亦屬五蓋、十惡之一。
     瞋唯屬欲界所繫之煩惱,於色界、無色界則無。貪乃從喜愛之對境所起,反之,瞋則從違逆(不順心)之對境所起。瞋,為修學佛道上最大之障害,經論中常誡之,如大智度論卷十四(大二五‧一六七中):「瞋恚其咎最深,三毒之中,無重此者;九十八使中,此為最堅;諸心病中,第一難治。」「無瞋」即對境不起害心,為對治瞋之精神作用,屬俱舍宗十大善地法之一、唯識宗善心所之一,與無貪、無癡共稱三善根,又為四無量心中之慈無量心之體。〔雜阿含經卷二十七、卷二十八、悲華經卷六、大毘婆沙論卷二十七、卷三十四、卷四十四、卷四十八、顯揚聖教論卷一、順正理論卷四十、阿毘達磨藏顯宗論卷二十五、俱舍論光記卷十六、成唯識論述記卷六末〕 p6114"
  265.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5권. p. T29n1563_p0895b13 - T29n1563_p0895b25. 만(慢)
    "有愚癡者。先於有事非有事中。校量自他心生高舉。說名為慢。由行轉異分為七種。一慢。二過慢。三慢過慢。四我慢。五增上慢。六卑慢。七邪慢。於他劣等族朋等中。謂己勝等高舉名慢。於他等勝族朋等中。謂己勝等名為過慢。於他殊勝族朋等中。謂己勝彼名慢過慢。於五取蘊執我我所。心便高舉名為我慢。於未證得地道斷等殊勝德中。謂己證得名增上慢。諸有在家或出家者。於他工巧尸羅等德多分勝中。謂己少劣心生高舉名為卑慢。於無德中謂己有德名為邪慢。言無德者。謂諸惡行。違功德故。立無德名。猶如不善。"
  266.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5권. pp. 1041-1042 / 1762. 만(慢)
    "어떤 어리석은 이들은 원인을 갖는 유위법[有事]이나 원인을 갖지 않는 무위법[非有事]에 대해52) 먼저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고 헤아려서 잘난 체하고 거들먹거리는 마음[高擧心]을 낳게 되는데, 이를 일컬어 ‘만(慢)’이라고 한다. 이것은 일어나는 행상의 차이에 따라 일곱 가지 종류로 나누어지는데, 첫째는 만(慢)이며, 둘째는 과만(過慢)이며, 셋째는 만과만(慢過慢)이며, 넷째는 아만(我慢)이며, 다섯째는 증상만(增上慢)이며, 여섯째는 비만(卑慢)이며, 일곱째는 사만(邪慢)이다.
    [자기보다] 열등하거나 동등한 다른 종족이나 무리 등에 대해 자기가 뛰어나다고 하거나 동등하다고 하여 잘난 체하는 것을 일컬어 ‘만’이라고 한다.
    [자기와] 동등하거나 뛰어난 다른 종족이나 무리 등에 대해 자기가 뛰어나다고 하거나 동등하다고 하는 것을 일컬어 ‘과만’이라고 한다.
    [자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다른 종족이나 무리 등에 대해 자기가 그들보다 뛰어나다고 하는 것을 일컬어 ‘만과만’이라고 한다.
    5취온에 대해 그것을 자아[我]라거나 나의 것[我所]이라고 집착하여 마음이 바로 잘난 체하는 것을 일컬어 ‘아만’이라고 한다.
    지(地) · 도(道) · 단(斷) 등의 수승한 득(得)을 아직 증득하지 않았으면서 이미 증득하였다고 하는 것을 ‘증상만’이라고 한다.
    재가자나 혹은 출가자의 온갖 유정으로서 기예[工巧]나 시라(尸羅, 즉 계율) 등의 덕성이 자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다른 이에 대해 자기가 조금 열등하다(못하다)고 하면서 마음으로 잘난 체하는 것을 일컬어 ‘비만’이라고 한다.
    아무런 공덕도 없으면서 자기에게 공덕이 있다고 하는 것을 일컬어 ‘사만’이라고 한다. 여기서 ‘공덕이 없다[無德]’고 함은, 이를테면 온갖 악행은 공덕과 반대되기 때문에 그것을 ‘공덕이 없다’는 말로 설정한 것으로, 이는 마치 [악행은 선과 반대되기 때문에 그것을] 불선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52) 여기서 ‘유사’와 ‘무사’를 유위법과 무위법으로 번역한 것은, ‘사(事)’를 원인의 뜻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구사론』 제6권(고려장27,p.501하; 권오민 역,p.312); 『순정리론』 제17권 ‘무사법(無事法)에서의 事의 의미’ 참조."
  26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021b14 - T29n1558_p0021b17.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
    "尋伺慢憍差別云何。頌曰。
     尋伺心麤細 慢對他心舉
     憍由染自法 心高無所顧"
  26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185 / 1397.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
    "그렇다면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尋)과 사(伺)는 마음의 거칠고 세밀함이며
     만(慢)은 타인에 대한 마음의 오만함[擧]이며
     교(憍)는 자신의 법에 염착함으로써
     마음이 고양되어 돌아봄이 없는 것이다.
     尋伺心細麤 慢對他心擧
     憍由染自法 心高無所顧"
  26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c10 - T29n1558_p0021c15. 만(慢)과 교(憍)
    "慢憍別者。慢謂對他心自舉性。稱量自他德類差別。心自舉恃陵蔑於他故名為慢。憍謂染著自法為先令心傲逸無所顧性。有餘師說。如因酒生欣舉差別說名為醉。如是貪生欣舉差別說名為憍。是謂慢憍差別之相。"
  27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87-188 / 1397. 만(慢)과 교(憍)
    "만(慢)과 교(憍)의 차별은 이러하다.
    '만'은 이를테면 타인에 대해 마음이 스스로 치켜세우는 성질[自擧性]을 말하니, 자신과 다른 이의 덕(德)의 차별을 재고 헤아려 마음이 스스로를 믿고 거들먹거리며[擧恃] 다른 이를 능멸하기 때문에 '만'이라고 일컬은 것이다.86)
    '교'는 이를테면 먼저 자신의 법에 대해 염착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오만 방일[傲逸]하게 하여 다른 것을 돌아보는 일이 없는 성질을 말한다.87)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술에 의해 생겨난 흔거(欣擧, 들떠 거들먹거리는 것)의 차별을 설하여 취한 것이라고 하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탐으로부터 생겨난 흔거의 차별을 설하여 '교'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88)
    이상이 이를테면 '만'과 '교'의 차별상이다.
    86) 만이란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덕을 차별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다시 일곱 가지가 있다. 즉 가문·재산·지위·용모·힘·지식·기예·지계(持戒) 등에 있어 자신보다 열등한 이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하고 , 동등한 이에 대해 동등하다고 하는 만(慢), 자신과 동등한 이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하고, 자기보다 더 뛰어난 이에 자기와 동등하다고 하는 과만(過慢),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하는 만과만(慢過慢), 오취온을 나, 혹은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아만(我慢), 예류과의 뛰어난 덕을 증득하지 못했으면서 증득했다고 여기는 증상만(增上慢), 가문 등이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조금 열 등하다고 하는 비만(卑慢).,덕이 없으면서 자기에게 덕이 있다고 하는 사만(邪慢)이 그것이다.
    87) 즉 자신의 용감함이나 건강, 재산, 지위, 도덕규범[戒], 지혜, 친족 등의 존재[法]에 대해 먼저 염착 을 일으킴으로써 마음에 오만 방일함이 생겨 온갖 선본(善本)을 되돌아보는 바가 없기 때문에, '교'라고 일컬은 것이다. 온갖 선본에 대해 되돌아보는 바가 없다고 함은, 마음이 오만해짐에 따라 온갖 선업을 즐거이 수 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현종론』 권제6, 한글대장경200, p. 152)
    88) 이는 곧 염오의 희(喜)가 '교'라는 뜻으로, 유부 비바사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희는 제2선 이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교는 3계에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7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9권. p. T29n1558_p0101a12 - T29n1558_p0101a21. 만(慢)
    "論曰。且慢隨眠差別有七。一慢二過慢三慢過慢四我慢五增上慢六卑慢七邪慢。令心高舉總立慢名。行轉不同故分七種。於劣於等如其次第謂己為勝謂己為等令心高舉總說為慢。於等於勝如其次第謂勝謂等總名過慢。於勝謂勝名慢過慢。於五取蘊執我我所令心高舉名為我慢。於未證得殊勝德中謂已證得名增上慢。於多分勝謂己少劣名為卑慢。於無德中謂己有德名為邪慢。"
  27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p. 878-879 / 1397. 만(慢)
    "논하여 말하겠다. 바야흐로 만수면의 차별에는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만(慢)이며, 둘째는 과만(過慢)이며, 셋째는 만과만(慢過慢)이며, 넷째는 아만(我慢)이며, 다섯째는 증상만(增上慢)이며, 여섯째는 비만(卑慢)이며, 일곱째는 사만(邪慢)이다. 즉 마음으로 하여금 잘난 체하고 거들먹거리게 하는 것[高擧心]에 대해 모두 '만(慢)'이라고 하는 명칭을 설정한 것으로, 일어나는 행상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일곱 가지 종류로 나눈 것이다. [자기보다] 열등하거나 동등한 이에 대해 순서대로 자기가 뛰어나다고 하거나 동등하다고 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잘난 체하게 하는 것을 모두 '만'이라고 설한다. [자기와] 동등하거나 뛰어난 이에 대해 순서대로 자기가 뛰어나다고 하거나 동등하다고 하는 것을 모두 '과만'이라고 이름한다. [자기보다]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그들보다] 뛰어나다고 하는 것을 일컬어 '만과만'이라고 한다. 오취온에 대해 그것을 자기[我]라고 하거나 자기의 것[我所]이라고 집착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잘난 체하게 하는 것을 일컬어 '아만'이라고 한다. 아직 증득하지 않은 수승한 덕성을 이미 증득하였다고 하는 것을 일컬어 '증상만'이라고 한다. [자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조금 열등하다고 하는 것을 일컬어 '비만'이라고 한다. 아무런 덕도 없으면서 자기에게 덕이 있다고 하는 것을 일컬어 '사만'이라고 한다."
  273.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26권. p. T29n1563_p0899b25 - T29n1563_p0899c01. 의(疑)
    "何緣疑慢非無記根。疑二趣轉慢高轉故。謂疑猶豫二趣動轉。故不立根。根堅住故。慢高舉相向上而轉。故不立根。根趣下故。世間共見根相如是。隱於土下故名為根。是體下垂上生苗義。此三如彼。故亦名根。餘非隨眠。或無勝用。故不立彼為無記根。"
  274.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26권. pp. 1076-1077 / 1762. 의(疑)
    "어떠한 이유에서 의(疑)와 만(慢)은 무기근이 되지 않는 것인가?
    ‘의’는 두 가지 갈래[趣]에서 일어나며, ‘만’은 잘난 체하는 것[高]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의’는 유예(猶豫)의 두 갈래에서 동요하며 일어나기 때문에 근(根)으로 설정하지 않았으니,17) ‘근’은 견고히 머무는 것[堅住]이기 때문이다. 또한 ‘만’은 거들먹거리고 잘난 체하는 것[高擧相]으로, 위를 지향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근’으로 설정하지 않았으니, ‘근’은 아래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뿌리[根]의 모양도 이와 같아서 흙 밑으로 숨어들기 때문에 ‘근(즉 뿌리)’이라고 이름하였으니, [뿌리] 자체는 아래로는 뻗어 내리고 위로는 싹을 낳는 것이다.18)
    즉 이러한 세 가지(무기의 ‘애’와 ‘치’와 ‘혜’)도 그러한 뿌리와 같기 때문에 역시 ‘근’이라고 이름하였지만, 그 밖의 다른 무기는 수면이 아니거나, 혹은 뛰어난 작용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무기근으로 설정하지 않은 것이다.
    17) 여기서 ‘유예의 두 갈래’란, 있을까 없을까? 그럴까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의혹의 망설임을 말한다.
    18) 즉 세간일반에서 관찰되는 뿌리[根]는 아래로 뻗어 내려 견고하게 머물면서 위로는 싹을 낳는 원인이 되지만, ‘의’는 동요를, ‘만’은 잘난 체하여 위로만 지향하는 성질이기 때문에 ‘근’이 아니라는 것이다."
  27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9권. p. T29n1558_p0103a13 - T29n1558_p0103a17. 의(疑)
    "何緣疑慢非無記根。疑二趣轉。慢高轉故。彼師謂疑二趣相轉。性動搖故不應立根。慢於所緣高舉相轉。異根法故亦不立根。為根必應堅住下轉。世間共了故彼非根。"
  27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896-897 / 1397. 의(疑)
    "어떠한 이유에서 의(疑)와 만(慢)은 무기근이 아닌가?
    '의'는 두 가지 갈래[趣]에서 일어나며,112) '만'은 잘난 체하는 것[高]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그 논사(가습미라국의 비바사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의'는 두 갈래의 행상에서 일어나 그 성질이 동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으로 설정하지 않은 것이며, '만'은 소연에 대한 거들먹거리고 잘난 체하는 상[高擧相]에서 일어나 뿌리[根]의 존재와는 다르기 때문에 '근'으로 설정하지 않은 것이다. 즉 '근'이라고 할 만한 것은 반드시 견고하게 머물며, 마땅히 아래로 뻗어 내린다는 것은 세간이 다 같이 알고 있는 바이기 때문에 이것들은 '근'이 아닌 것이다."113)
    112) 여기서 '두 갈래'란 있을까 없을까, 그럴까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의혹의 망설임을 말한다.
    113) 즉 세간일반에서 관찰되는 뿌리[根]는 굳건하게 아래로 뻗어 내리지만, '의'는 동요를, '만'은 잘난 체하여 위로 지향하는 성질이기 때문에 '근'이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