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작용 (아비달마구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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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주요 논서인 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에서 설명하고 있는 마음작용심소법(心所法)에 대해 다룬다. 마음작용에 대한 전체적 · 일반적 내용은 '마음작용 문서'에서 다루고 있다.

세친(世親, Vasubandhu: 316?~396?)은 부파불교설일체유부에 출가하였다가 후에 대승불교로 전향하였는데, 《아비달마구사론》은 그가 설일체유부의 논사로서 있을 지은 논서로, 경량부의 등의 당시의 불교 교학 전반을 참조하여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비판적으로 집대성한 논서로,[1][2] 학자들에 의해 설일체유부아비달마 논서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논서로 평가받고 있는 논서이다.[3][4]

세친은 《아비달마구사론》에서 마음작용(심소법)에 대해 '마음작용이란 ~이다'라는 형태로 명시적으로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마음과의 관련하에 마음작용의 성격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마음마음작용은 반드시 결정코 구생(俱生)하므로, 둘 중의 어느 하나라도 결여될 때에는 다른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밝히고 있다.[5][6] 이 언급에 나타난 내용은 부파불교대승불교의 다른 논서들에서 나타나는 마음작용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인 '마음상응(相應)하는 모든 (法)'이라는 정의와 그 내용은 동일하다.[7][8][9][10]

세친은 《아비달마구사론》에서 (受) · (想)에서 (慢) · (疑)에 이르기까지 총 46가지 법을 들고 있으며, 이들 46가지 법들을 대지법(大地法: 10가지) · 대선지법(大善地法: 10가지) ·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6가지) ·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2가지) ·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10가지) · 부정지법(不定地法: 8가지)로 나누고 있다.[11][12][13][14]

정의[편집]

세친은 《아비달마구사론》에서 마음작용(심소법)에 대해 '마음작용이란 ~이다'라는 형태로 명시적으로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마음과의 관련하에 마음작용의 성격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아래 인용문과 같이 마음마음작용은 반드시 상응(相應)하면서 함께 일어난다[俱生, 俱起]고 밝히고 있다.

이 인용문에 나타난 내용은 부파불교대승불교의 다른 논서들, 예를 들어 《아비달마품류족론》《대승오온론》《현양성교론》 등에서 나타나는 마음작용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인 '마음상응(相應)하는 모든 (法)'이라는 정의와 그 내용은 동일하다.[7][8][9][10][15][16]

如是已辯色定俱生。餘定俱生今次當辯。頌曰。


 心心所必俱 諸行相或得
論曰。心與心所必定俱生。隨闕一時餘則不起。諸行即是一切有為。謂色心心所心不相應行。前必俱言流至於此。謂色心等諸行生時。必與有為四相俱起。言或得者。謂諸行內唯有情法與得俱生。餘法不然。是故言或。

이와 같이 색은 결정코 구생(俱生)한다. 다시 말해 동시에 함께 생기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다음으로 그 밖의 법으로서 결정코 구생하는 것에 대해 마땅히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心)과 심소(心所)는 반드시 함께하며
 제행(諸行)은 상(相), 혹은 득(得)과 [반드시 함께한다.]
논하여 말하겠다. 심과 심소는 반드시 결정코 구생하니, 둘 중의 어느 하나라도 결여될 때에는 다른 하나도 생기하지 않는다.
[본 송에서] 제행(諸行)이라 함은 바로 일체의 유위를 말하는 것이니, 이를테면 색과 심과 심소와 심불상응(心不相應)의 행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앞의 구절에서 언급한 '반드시 함께한다'고 하는 말은 여기에도 적용되니, 이를테면 색이나 심 등의 제행이 생겨날 때에는 반드시 유위의 4상(相 : 즉 生·住·異·滅의 네 가지 상)과 구생하는 것이다. 나아가 '혹은 득(得)'이라고 말한 것은, 이를테면 제행 가운데 오로지 유정의 법만이 득과 구생하고 그 밖의 법은 그렇지 않으니, 그렇기 때문에 '혹은'이라고 말한 것이다.

《아비달마구사론》 제4권. 한문본 & 한글본

분류[편집]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마음작용에 속한 총 46가지 들을 다음과 같이 6품(六品) 즉 여섯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의 명칭과 나열 순서는 《아비달마구사론》에 따른 것이다.[17][18][19][20]

  1. 대지법(大地法: 10가지): (受) · (想) · (思) · (觸) · (欲) · (慧) · (念) · 작의(作意) · 승해(勝解) · 삼마지(三摩地)[21][22]
  2. 대선지법(大善地法: 10가지): (信) · 불방일(不放逸) · 경안(輕安) · (捨) · (慚) · (愧) ·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불해(不害) · (勤)[23][24]
  3.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6가지): (癡) · 방일(放逸) · 해태(懈怠) · 불신(不信) · 혼침(惛沈) · 도거(掉擧)[25][26]
  4.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2가지): 무참(無慚) · 무괴(無愧)[27][28]
  5.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10가지): (忿) · (覆) · (慳) · (嫉) · (惱) · (害) · (恨) · (諂) · (誑) · (憍)[29][30]
  6. 부정지법(不定地法: 8가지): (尋) · (伺) · 수면(睡眠) · 악작(惡作) · (貪) · (瞋) · (慢) · (疑)[19][20]

개별 법의 설명 (46가지)[편집]

대지법(大地法: 10가지)[편집]

대지법(大地法, 산스크리트어: mahā-bhūmika, mahā-bhūmi)이란 모든 법 가운데 '대지'(大地)에 존재하는 법들을 말한다. 여기서 '대지'는 대법(大法)의 지(地), 즉 대법의 행처(行處), 즉 대법이 생기하는 영역으로서의 마음, 즉 일체의 마음[一切心], 즉 모든 마음[一切心]을 가리키며, '대법'은 항상 존재하는 마음작용들을 말한다. 따라서, 대지법이란 일체의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에 항상 존재하는 마음작용들을 말한다.[21][22] 달리 말하면, 한 마음이건, 한 마음이건, 무기의 마음이건 마음이 존재할 때면 언제나 발견되는 마음작용들을 말한다. 그리고 마음이 이러한 '대법(大法)'들을 소유하며 이들의 소의처 즉 행처(行處)가 되고 통솔자로서 이들 대법들과 함께 생기(生起)하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에서 마음을 '대지(大地)' 즉 '대법의 지'라고 한다.[22]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는 (受) · (想) · (思) · (觸) · (欲) · (慧) · (念) · 작의(作意) · 승해(勝解) · 삼마지(三摩地)의 10가지 이 있으며, 이들 10가지 마음작용은 온갖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과 동일 찰나화합하여 두루 존재한다[諸心剎那和合遍有].[31][32]

(1) 수(受)[편집]

(受, 감수작용, 지각, 느낌, 과보의 영납, 산스크리트어: vedanā, 팔리어: vedanā, 영어: feeling, sensation)는 (苦)와 (樂), 그리고 양자 모두가 아닌 것 즉 불고불락(不苦不樂)의 차별(差別)을 영납(領納)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33][34] 즉, 인식대상에 대해서 그것이 괴로운 것인지, 즐거운 것인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인지의 '차별을 지각하는' 마음작용이다. 즉 온갖 접촉사물에 대해 그것이 인지, 인지, 불고불락인지의 여부를 감성적으로 즉시에 '판별하여 지각하는' 마음작용이다.

(2) 상(想)[편집]

(想, 표상작용, 취상(取像), 취상(取相), 구료상(搆了相), 산스크리트어: saṃjñā, 팔리어: saññā, 영어: perception, cognition, conceptualization, distinguishing, idea)은 인식대상[境]에 대하여 차별상(差別相)을 취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35][36] 차별상이란 어떤 사물과 다른 사물을 구별짓는 어떤 것으로, '어떤 사물[境]에 대해 차별상취한다는 것'은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과 어떻게 다른 지를 식별하고 알게토대 또는 근거획득된다는 것을 뜻한다.

(3) 사(思)[편집]

(思, 의사, 의지, 추진, 조작(造作), 짓고 만듦, 산스크리트어: cetanā, 팔리어: cetanā, 영어: volition, directionality of mind, attraction, urge)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조작(造作: 짓고 만듦)하게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37][38]

(4) 촉(觸)[편집]

(觸, 접촉, 3사화합 · 분별 · 변이, 산스크리트어: sparśa, 팔리어: phassa, 영어: contact)은 (根) · (境) · (識)이 화합하여 생겨나는 마음작용으로,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능히 '인식대상과 접촉[觸對]'할 수 있게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39][40]

(5) 욕(欲)[편집]

(欲, 희망, 욕구, 희망의 인발, 산스크리트어: chanda, 팔리어: chanda, 영어: intention, interest, desire to act, desire for action, aspiration)은 지어야 할 [事]과 (業)을 희구(希求)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41][42]

(6) 혜(慧)[편집]

(慧, 반야, 택법, 간택, 식별, 지혜, 의심을 끊음, 산스크리트어: prajñā, 팔리어: paññā, 영어: wisdom, discrimination, discernment)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法)에 대해 능히 간택(簡擇)할 수 있게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43][44]

(7) 염(念)[편집]

(念, 관, 정념, 4념처, 끊임없는 수동적 관찰, 명기(明記)와 불망(不忘), 주의집중, 불산란, 산스크리트어: smṛti, 팔리어: sati, 영어: mindfulness, awareness, inspection, recollection, retention, memory)은 (緣: 소연인식대상, 또는 원인)을 명확히 기억[明記]하여 잊어버리지 않는[不忘],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45][46]

(8) 작의(作意)[편집]

작의(作意, 마음을 일으킴, 기억을 일으킴, 주의, 유의, 발동과 유지, 산스크리트어: manasikara, 팔리어: manasikara, 영어: attention, act of attention, ego-centric demanding)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능히 경각(警覺)하게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47][48]

(9) 승해(勝解)[편집]

승해(勝解, 확실한 이해, 뛰어난 이해, 인가와 유지, 산스크리트어: adhimokṣa, adhimoksha, adhimukti, 팔리어: adhimokkha, 영어: interest, intensified interest, decision, firm conviction, resolution, approval)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으로 하여금 능히 인식대상[境]에 대해 인가(印可: 도장찍듯이 찍어서 가결함)하게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49][50]

(10) 삼마지(三摩地)[편집]

삼마지(三摩地, 심일경, 대상과 하나됨, 전일(專一), 선정과 삼매, 산스크리트어: samādhi, 팔리어: samādhi, 산스크리트어: ekāgratā, 팔리어: ekaggatā, 영어: concentration, one-pointedness, unification, unification of mind)는 심일경성(心一境性) 즉 마음[心: 6식, 즉 심왕, 즉 심법]이 대상[境]과 하나가 되는[一] 것을 본질[性]로 하는, 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51][52]

대선지법(大善地法: 10가지)[편집]

대선지법(大善地法, 산스크리트어: kuśala-mahā-bhūmika)이란 모든 법 가운데 '대선지'(大善地)에 존재하는 법들을 말한다. 여기서 '대선지'는 대선법(大善法)의 지(地), 즉 대선법의 행처(行處), 즉 대선법이 생기하는 영역으로서의 마음, 즉 선한 마음[善心]을 가리키며, '대선법'은 항상 선한 마음작용들을 말한다. 따라서, 대선지법이란 일체의 선한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에 항상 존재하는 마음작용들을 말한다.[23][24]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는 (信) · 불방일(不放逸) · 경안(輕安) · (捨) · (慚) · (愧) ·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불해(不害) · (勤)의 10가지 이 있으며, 이들 10가지 마음작용선심(善心) 즉 선한 마음에만 두루 존재한다[唯遍善心].[23][24]

(11) 신(信)[편집]

(信, 믿음, 인가, 청정, 희망, 산스크리트어: śraddhā, 팔리어: saddhā, 영어: faith)은 마음으로 하여금 징정(澄淨)해지게 하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또는 (信)은 진리[諦, 4성제] · 보배[寶, 3보] · (業, 원인) · (果, 결과)에 대해 현전에서 인허(忍許: 인가하고 허락함, 확신함)하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53][54]

(12) 불방일(不放逸)[편집]

불방일(不放逸, 성실, 선법을 닦음, 마음을 방호함, 산스크리트어: apramāda, 팔리어: appamada, 영어: carefulness, concern, conscientiousness, conscious awareness, diligence)은 온갖 선법(善法)을 닦고 온갖 불선법(不善法)을 떠나는 것을 말하며,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닦는다[修]'는 것은 (善)에 전주(專注)하는 것 즉 전념(專念)하는 것을 본질[性]로 하는 행위 또는 실천이다. 또는 불방일(不放逸)은 호심(護心) 즉 능히 마음을 수호(守護: 지키고 보호함)하는 것을 말하며,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55][56]

(13) 경안(輕安)[편집]

경안(輕安, 조화롭고 가뿐함, 고르고 상쾌함, 평안, 산스크리트어: praśrabdhi, 팔리어: passaddhi, 영어: pliancy, alertness, flexibility, aptitude)은 심감임성(心堪任性) 즉 마음감임성(堪任性)을 말하며,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즉 경안마음을 가볍고 편안하게 하여 마음[心]으로 하여금 능히 선법감당[堪任]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본질[性]로 하는 선한 마음작용이다.[57][58]

경안(輕安)에는 신경안(身輕安)과 심경안(心輕安)이 있다. 마치 신수(身受)가 전5식과 상응하는 (受)이고 심수(心受)가 제6의식상응하는 (受)인 것처럼, 신경안전5식상응하는 경안이고, 심경안제6의식상응하는 경안이다.[59][60]

(14) 사(捨)[편집]

(捨, 내려놓음, 버림, 평등 · 정직 · 무공용, 고요, 평정, 평정심, 평온, 균형, 평형, 산스크리트어: upeksā, 팔리어: upekkhā, upekhā, 영어: serenity, equilibrium, equanimity, stability, composure, indifference)는 심평등성(心平等性)과 심무경각성(心無警覺性) 즉 마음평등성(平等性)과 마음무경각성(無警覺性)을 말하며,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즉 (捨)는 마음평등마음무경각본질[性]로 하는 선한 마음작용으로, 혼침(惛沈)과 도거(掉擧)를 떠나 마음평등하고 마음동요됨이 없는 것을 말한다.[61][62]

한편, 《아비달마구사론》에서 세친(捨)의 마음작용에 대해 다루는 절에서, 무경각성(無警覺性)으로 정의되는 (捨)와 경각성으로 정의되는 작의(作意)가 어떻게 서로 구기(俱起: 함께 일어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즉, 대지법에 속한 작의(作意)는 모든 마음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마음작용이고, 대선지법에 속한 (捨)는 모든 선한 마음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마음작용인데, 선한 마음에서 (捨)의 무경각성작의(作意)의 경각성이 어떻게 모순없이 공존할 수 있으며, 이들의 관계가 어떠하며, 어떻게 '한 찰나의 마음[一心]' 중에 함께 일어날[俱起]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63][64]

(15) 참(慚)[편집]

(慚, 부끄러워함, 자신에게 부끄럽게 여김, 산스크리트어: hrī, 팔리어: hiri, 영어: self-respect, conscientiousness, sense of shame, dignity, respect)은 대불선지법에 속하는 무참(無慚)의 반대가 되는 마음작용으로, 공경함[敬]이 있고, 존중함[崇]이 있으며, 어렵게 여겨 꺼림[忌難]이 있으며, 따라 속하는 일[隨屬, 즉 제자로서의 예의]이 있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또는 (慚)은 지은 에 대해 그 자체(예를 들어, 이숙인)를 지금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있는 선한 마음작용이다.[65][66][67][68]

(16) 괴(愧)[편집]

(愧, 뉘우침, 부끄러워함, 남에게 부끄럽게 여김, 산스크리트어: apatrāpya, 팔리어: ottappa, 영어: decorum, shame, consideration, propriety, fear)는 대불선지법에 속하는 무괴(無愧)의 반대가 되는 마음작용으로, 에 대해 두렵게 보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또는 (愧)는 지은 에 대해 그 의 다른 것(예를 들어, 이숙과)을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있는 선한 마음작용이다.[65][66][67][68]

(17) 무탐(無貪)[편집]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무탐(無貪, 염착이 없음, 집착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alobha, 팔리어: alobha, 영어: purity, non-attachment, without attachment, absence of desire)에 대해 정의하고 있지 않으며, 다만 무탐무진(無瞋) · 무치(無癡)와 더불어 선근(善根)을 이룬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무탐이 모든 '선의 뿌리[善根]'를 이루는 3가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무탐에 대한 정의 또는 설명을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무치(無癡)가 대선지법에 속하지 않는 것은 무치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慧)를 본질[性]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69][70]

(18) 무진(無瞋)[편집]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무진(無瞋, 자애로움, 자(慈), 사랑, 성내지 않음, 노여워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apratigha, adveṣa, 팔리어: adosa, 영어: good will, non-aggression, non-hatred, imperturbability, non-anger, absence of hatred)에 대해 정의하고 있지 않으며, 다만 무진무탐(無貪) · 무치(無癡)와 더불어 선근(善根)을 이룬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무진이 모든 '선의 뿌리[善根]'를 이루는 3가지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무진에 대한 정의 또는 설명을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무치(無癡)가 대선지법에 속하지 않는 것은 무치대지법에 속한 마음작용(慧)를 본질[性]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69][70]

(19) 불해(不害)[편집]

불해(不害, 아힘사, 해치지 않음, 비(悲), 불손뇌(不損惱), 연민, 비폭력, 산스크리트어: ahiṃsā, 팔리어: avihiṃsā, 영어: no harm, non-violence)는 무손뇌(無損惱)의 즉 손뇌(損惱)를 입힘이 없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즉, 불해(不害)는 손상시키거나[損] 괴롭히지[惱] 아니하는 선한 마음작용이다.[71][72]

(20) 근(勤)[편집]

((勤, 마음의 용맹함, 정진, 결단과 인내, 산스크리트어: vīrya, 팔리어: viriya, 영어: diligence, energy, perseverance, enthusiasm, sustained effort)은 마음으로 하여금 용한(勇悍: 날래고 사나움, 결단력이 있고 억세고 모짐, 강하고 눈을 부릅뜸, 용기가 있고 억셈[73])하게 하는 것, 즉 모질게 노력하게 하는 것을 본질[性]로 하는, 대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74][75]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6가지)[편집]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산스크리트어: kleśa-mahā-bhūmika)이란 모든 법 가운데 '대번뇌지'(大煩惱地)에 존재하는 법들을 말한다. 여기서 '대번뇌지'는 대번뇌법(大煩惱法)의 지(地), 즉 대번뇌법의 행처(行處), 즉 대번뇌법이 생기하는 영역으로서의 마음, 즉 염오심(染污心) 즉 번뇌오염마음을 가리키며, '대번뇌법'은 번뇌성마음작용들 즉 번뇌들 가운데 항상 존재하는 것들을 말한다. 따라서, 대번뇌지법이란 일체의 염오심(染污心) 즉 번뇌오염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에 항상 존재하는 마음작용들을 말한다.[25][26]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는 (癡) · 방일(放逸) · 해태(懈怠) · 불신(不信) · 혼침(惛沈) · 도거(掉擧)의 6가지 이 있으며, 이들 6가지 마음작용염오심(染污心) 즉 오염된 마음에 항상 존재한다[恒於染污心有].[25][26] 달리 말하면, 이들 6가지 마음작용은 오직 온갖 염오심오염된 마음구기(俱起)할 뿐이며[唯遍染心俱起] 다른 마음과는 구기(俱起)하지 않는다.[76][77]

(21) 치(癡)[편집]

(癡, 어리석음, 우치, 무지(無知), 무지(無智), 무현(無顯), 산스크리트어: moha, mūdha, avidyā, 팔리어: avijjā, 영어: ignorance, delusion, error)는 우치(愚癡) 즉 어리석음을 말한다. 달리 말해, (癡)란 바로 무명(無明) · 무지(無智) · 무현(無顯)의 마음작용으로,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78][79] 세친은 해당 단락에서 이들 세 낱말에 대해서 별도의 설명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데, 이들 낱말에 대한 현대 학자의 주석에 따르면 무지(無智)는 마음(事: 사물, 현상)와 (理: 이치, 본질)를 밝게 결택(決擇: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함)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고, 무현(無顯)은 (事: 사물, 현상)와 (理: 이치, 본질)가 은폐되어 마음에 밝게 드러나 알려지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79] '무명(無明)'이라는 낱말에 대해서는 현대 학자의 주석이 제공되어 있지 않은데, 무명(無明)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밝음[明]이 없음[無]'이다. 《아비달마품류족론》과 《아비달마구사론》에 따르면 밝음[明]은 혜의 8가지 다른 이름(智) · (見) · (明) · (覺) · (解) · (慧) · (光) · (觀) 가운데 하나이다.[80][81] 보광(普光)의 《구사론기(俱舍論記)》 제26권에 따르면, (明)은 조명(照明: 관조밝음)을 뜻한다.[82]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癡) 즉 무명(無明)은 근본번뇌에 속한다.[83][84][81]

근본번뇌견소단 · 수소단으로 분별할 때, (癡) 즉 무명(無明)은 견소단이기도 하고 수소단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무명10수면의 다른 번뇌상응하지 않고 홀로 생기(生起)할 수 있는데, 이 때의 무명독두무명(獨頭無明) 또는 불공무명(不共無明)이라 한다. 독두무명수소단이다. 무명10수면의 다른 번뇌와 서로 상응하면서 생기하는 경우 상응무명(相應無明) 또는 공무명(共無明)이라고 하는데, 10수면 가운데 5견(疑)와 상응하여 생기하는 상응무명의 경우, 5견(疑)가 견소단이기 때문에 이 때의 상응무명견소단이다. 10수면 가운데  ·  · 상응하여 생기하는 상응무명의 경우,  ·  · 견소단이자 수소단이기 때문에 이 경우의 상응무명견소단이자 수소단이다.[85][86]

3계(三界)와 5부(五部)로 분별해 보면, (癡) 즉 무명(無明)은 3계 모두에 존재하며 5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즉, (癡) 즉 무명(無明)은 욕계 · 색계 · 무색계3계 각각에서 견도소단 · 견집소단 · 견멸소단 · 견도소단 · 수도소단의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따라서, 3계 · 5부의 관점에서 볼 때, 무명욕계의 5가지 · 색계의 5가지 · 무색계의 5가지로 총 15가지가 있다. 이들 가운데 욕계의 4가지 · 색계의 4가지 · 무색계의 4가지의 총 12가지가 견소단견혹(見惑)이고, 욕계수도소단 1가지 · 색계수도소단 1가지 · 무색계수도소단 1가지의 총 3가지가 수소단수혹(修惑)이다.[85][86]

욕계(癡) 즉 욕계무명(無明)은 (瞋)과 욕계(貪) 즉 욕탐(欲貪)과 더불어 불선근(不善根), 즉 모든 불선의 뿌리를 이룬다.[87][88][89] 여기서 주의할 점은, '모든 불선의 뿌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것이 곧 '모든 번뇌의 뿌리'와 동의어인 것은 아니다. 불선번뇌는 깊이 관련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 개념이 다르다. 번뇌잡염불선유부무기를 합한 개념이다.

(22) 방일(放逸)[편집]

방일(放逸, 노는 것, 불성실, 포기, 선법을 닦지 않음, 마음을 방호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pramāda, 영어: heedlessness, carelessness, unconcern, non-diligence)은 온갖 (善)을 닦지 않는 것을 말한다. 방일은 온갖 닦는 것 즉 불방일(不放逸)에 의해 대치(對治)되는 으로,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90][91]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방일(放逸)은 수번뇌에 속한다.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방일(放逸)이 어느 근본번뇌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인지에 대해 명확한 언급이 없는데, 설일체유부의 논사 중현의 《아비달마장현종론》에서도 마찬가지로 명확한 언급이 없다.[90][91][92][93]

(23) 해태(懈怠)[편집]

해태(懈怠, 게으름, 책려하지 않음, 노력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kausīdya, 팔리어: kusīta, 영어: laziness, slothfulness, spiritual sloth, idleness)는 심불용한(心不勇悍) 즉 마음이 결단력이 없고 인내하지 못하는 것, 마음이 모질게 노력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해태대선지법에 속한 (勤)에 의해 대치(對治)되는 으로,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94][95]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해태(懈怠)는 수번뇌에 속한다.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해태(懈怠)가 어느 근본번뇌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인지에 대해 명확한 언급이 없는데, 설일체유부의 논사 중현의 《아비달마장현종론》 제6권에 따르면 해태(懈怠)는 근본번뇌 가운데 무명(無明) 즉 (癡)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94][95][96][97]

5개 가운데 혼면개(惛眠蓋)는 대번뇌지법에 속한 혼침부정지법에 속한 수면이 결합된 것인데,[98][99] 게으름해태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100][101]

(24) 불신(不信)[편집]

불신(不信, 믿지 않음, 인가하지 않음, 청정하지 않음, 희망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āśraddhya, 영어: lack of faith, lack of trust, disbelieving a fact, disbelief)은 심부징정(心不澄淨) 즉 마음징정(澄淨)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불신대선지법에 속한 (信)에 의해 대치(對治)되는 으로,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02][103]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불신(不信)은 수번뇌에 속한다. 《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불신(不信)이 어느 근본번뇌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인지에 대해 명확한 언급이 없는데, 설일체유부의 논사 중현의 《아비달마장현종론》 제6권에 따르면 불신(不信)은 근본번뇌 가운데 (見)에 속한 사견(邪見)으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02][103][104][105]

(25) 혼침(惛沈)[편집]

혼침(惛沈, 몽매함, 침울함, 어두움, 무거움, 감당할 능력이 없음, 민활하지 못함, 산스크리트어: styāna, 팔리어: thīna, 영어: lethargy, gloominess, foggymindedness, torpor)은 신중성(身重性: 몸이 무거움) · 심중성(心重性: 마음이 무거움) · 신무감임성(身無堪任性: 몸이 민활하지 못함) · 심무감임성(心無堪任性: 마음이 민활하지 못함) · 신혼침성(身惛沈性: 몸이 혼미하거나 침울함) · 심혼침성(心惛沈性: 마음이 혼미하거나 침울함)을 말하며,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06][107]

신중성(身重性: 몸이 무거움) · 신무감임성(身無堪任性: 몸이 민활하지 못함) · 신혼침성(身惛沈性: 몸이 혼미하거나 침울함) · 심혼침성(心惛沈性: 마음이 혼미하거나 침울함)은 실제로는 몸이 무겁거나 민활하지 못하거나 혼미하거나 침울한 것이 아니라, 전5식이 무겁거나 민활하지 못하거나 혼미하거나 침울한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전5식상응하는 (受)의 마음작용신수(身受: 몸의 느낌, 몸의 감수작용)라고 하는 것과 같다.[106][107]

심중성(心重性: 마음이 무거움) · 심무감임성(心無堪任性: 마음이 민활하지 못함) · 심혼침성(心惛沈性: 마음이 혼미하거나 침울함)은 제6의식이 무겁거나 민활하지 못하거나 혼미하거나 침울한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제6의식상응하는 (受)의 마음작용심수(心受: 마음의 느낌, 마음의 감수작용)라고 하는 것과 같다.[106][107]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혼침(惛沈)은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무명(無明) 즉 (癡)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08][109]

혼침(惛沈)은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수면(睡眠)과 결합하여 5개 가운데 하나인 혼면개(惛眠蓋)를 이룬다. 혼침(惛沈)과 수면(睡眠)의 두 번뇌는 모두 마음성질[心性: 마음의 본질적 성질 즉 마음의 본질적 능력 즉 심의식]이 가라앉게[沈] 하고 흐릿하게[昧] 하는 작용을 한다.[98][99] 그 결과,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계온(戒蘊) · 정온(定蘊) · 혜온(慧蘊) · 해탈온(解脫蘊) · 해탈지견온(解脫知見蘊)의 5무루온 가운데 혜온지혜[慧]를 장애하며, 경량부의 교학에 따르면 5무루온 가운데 정온선정[定]을 장애한다.[110][111]

(26) 도거(掉擧)[편집]

도거(掉擧, 고요하지 않음, 들뜸, 산스크리트어: auddhatya, 팔리어: uddhacca, 영어: excitement, restlessness, ebullience, flightiness of mind, dissipation)는 마음으로 하여금 부정(不靜)하게 하는 , 즉 마음으로 하여금 고요히 안정되지 못하게 하는 으로,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12][113]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도거(掉擧)는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貪)으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08][109]

도거(掉擧)는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악작(惡作) 즉 (悔)와 결합하여 5개 가운데 하나인 도회개(惛眠蓋)를 이룬다. 도거(掉擧)와 (悔)의 두 번뇌는 모두 마음으로 하여금 적정(寂靜: 고요함)하지 못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114][115] 그 결과,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계온(戒蘊) · 정온(定蘊) · 혜온(慧蘊) · 해탈온(解脫蘊) · 해탈지견온(解脫知見蘊)의 5무루온 가운데 정온선정[定]을 장애하며, 경량부의 교학에 따르면 5무루온 가운데 혜온지혜[慧]를 장애한다.[110][111]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2가지)[편집]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산스크리트어: akuśala-mahā-bhūmika)이란 모든 법 가운데 '대불선지'(大不善地)에 존재하는 법들을 말한다. 여기서 '대불선지'는 대불선법(大不善法)의 지(地), 즉 대불선법의 행처(行處), 즉 대불선법이 생기하는 영역으로서의 마음, 즉 불선심(不善心) 즉 번뇌오염마음 중에서도 불선한 마음을 가리키며, '대불선법'은 불선한 마음작용들 가운데 항상 존재하는 것들을 말한다. 따라서, 대불선지법이란 일체의 불선심(不善心) 즉 번뇌에 의한 오염이 심화되어 불선의 상태에 처해 있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에 항상 존재하는 마음작용들을 말한다.[27][28]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대불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는 무참(無慚) · 무괴(無愧)의 2가지 이 있으며, 이들 2가지 마음작용불선심(不善心) 즉 불선한 마음에 항상 존재한다[恒於不善心有]. 달리 말하면, 이들 2가지 마음작용만이 모든 불선심불선한 마음악한 마음구기(俱起)한다[與一切不善心俱].[27][28]

(27) 무참(無慚)[편집]

무참(無慚, 스스로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 공경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āhrīkya, ahrī, 팔리어: ahirika, 영어: lack of shame, lack of consciousness, consciencelessness, shamelessness, disrespect)은 온갖 공덕(功德)과 유덕자(有德者)에 대한 무경(無敬) · 무숭(無崇) · 무소기탄(無所忌難) · 무소수속(無所隨屬)의 마음작용으로, 공경(恭敬)의 적대가 되는 법[敵對法]이다. 즉 공덕(功德: 계정혜 3학)과 덕이 있는 자[有德者: 스승]에게 공경[敬]하는 일이 없고, 존중[崇]하는 일이 없고, 어렵게 여겨 꺼리는 일[忌難]도 없고, 따라 속하는 일[隨屬: 제자로서의 예의]도 없는, 대불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 공경(恭敬)의 반대가 되는 마음작용이다.[116][117]

또는, 유여사(有餘師)의 정의에 따르면, 무참(無慚)은 지은 에 대해 그 자체를, 예를 들어 이숙인(異熟因)을,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없는, 대불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18][119]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무참(無慚)은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貪)으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08][109]

(28) 무괴(無愧)[편집]

무괴(無愧, 남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 뉘우치지 않음, 두려워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anapatrāpya, atrapā, 팔리어: anottappa, 영어: lack of propriety, disregard, shamelessness)는 (罪) 즉 모든 선사(善士)가 꾸짖고 싫어하는 법[訶厭法]에 대해 두려워 해야 할 것[怖畏]으로 보지 않는 마음작용으로, 대불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즉, 원인으로서의 (罪) 자체와 그것이 불러올 과보를 두려워 하지 않는 마음작용이다.[120][121]

그리고, 원인으로서의 미래과보를 두려워 하지 않는 마음작용무괴(無愧)는 인과를 부정하는 번뇌사견(邪見)과 인과도리미혹번뇌무명(無明)을 인기(引起)하여 현행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120][121]

또는, 유여사(有餘師)의 정의에 따르면, 무괴(無愧)는 지은 에 대해 다른 것을, 예를 들어 이숙과(異熟果)를,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없는, 대불선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18][119]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무괴(無愧)는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무명(無明) 즉 (癡)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08][109]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10가지)[편집]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이란 모든 법 가운데 '소번뇌지'(小煩惱地)에 존재하는 법들을 말한다. 여기서 '소번뇌지'는 소번뇌법(小煩惱法)의 지(地), 즉 소번뇌법의 행처(行處), 즉 소번뇌법이 생기하는 영역으로서의 마음, 즉 염오심(染污心) 가운데 특정한 일부, 즉 번뇌에 의해 오염마음 가운데 특정한 일부의 마음을 가리키며, '소번뇌법'은 소분(少分)의 번뇌 즉 특정한 일부의 번뇌를 말한다. 따라서, 소번뇌지법이란 일부의 염오심(染污心)에서만 존재하는 마음작용들, 즉 번뇌에 의해 오염마음 가운데 특정한 일부의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에서만 존재하는 마음작용들을 말한다.[29][30]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는 (忿) · (覆) · (慳) · (嫉) · (惱) · (害) · (恨) · (諂) · (誑) · (憍)의 10가지 이 있으며, 이들 10가지 마음작용은 일부의 염오심(染污心)과 구기(俱起)한다[少分染污心俱]. 달리 말하면, 이들 10가지 마음작용들은 모든 염오심 또는 불선심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며 특정한 염오심 또는 불선심에서만 발견된다.[29][30]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들 10가지 마음작용들을 소번뇌지법이라고 하는 이유는, 《구사론》에 따르면 다음의 4가지 이유 때문이다.[29][30]

(29) 분(忿)[편집]

(忿, 분노, 비난과 성냄, 노여워함, 산스크리트어: krodha, 영어: fury, rage, indigation, anger)은 근본번뇌이자 부정지법에 속한 (瞋)과 소번뇌지법에 속한 (害) 이외의 마음작용으로서, 유정비유정에 대한 심분발(心憤發)의 성질 즉 유정비유정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격분[憤發]하게 하는 성질의,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22][123]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忿)은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瞋)으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08][109][124][125][126][127]

(30) 부(覆)[편집]

(覆, 숨기고 감춤, 산스크리트어: mrakśa, 팔리어: makkha, 영어: concealment, slyness-concealment, hypocrisy)는 자신의 (罪)를 감추려고 하는,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28][129] (罪)는 모든 선사(善士)가 꾸짖고 싫어하는 법[訶厭法]으로서 그 자체와 그 과보두려워 해야 할 것[怖畏]이다.[120][121]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覆)는 수번뇌에 속하는데, 어떤 근본번뇌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인지에 대해서 3가지의 견해가 있다. 그 3가지는 (貪)으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라는 견해, 무명(無明) 즉 (癡)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라는 견해, (貪)과 무명(無明) 둘 모두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라는 견해이다.[108][109][124][125][126][127]

(31) 간(慳)[편집]

(慳, 아까워함, 인색, 희사하지 못함, 베풀지 못함, 산스크리트어: mātsarya, 팔리어: macchariya, 영어: stinginess, avarice, miserliness, greed)은 재시(財施) · 법시(法施)의 교시(巧施: 타인에게 보시하여 이익을 주는 것)와 반대되는 마음작용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재물[財]과 교법[法]에 대해 인색하여 집착하게 하는,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30][131]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慳)은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貪)으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08][109][124][125][126][127]

(32) 질(嫉)[편집]

(嫉, 시기, 질투, 산스크리트어: īrṣyā, irshya, 팔리어: issā, 영어: jealousy, envy)은 다른 사람의 온갖 흥성사(興盛事) 즉 온갖 흥하고 성한 일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기뻐하지 않게[不喜] 하는,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32][133]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嫉)은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瞋)으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08][109][124][125][126][127]

(33) 뇌(惱)[편집]

(惱, 괴롭힘, 사나움, 포악함, 죄사에 대한 견고한 집착, 산스크리트어: pradāśa, 영어: spite, spitefulness, malice, stubbornness)는 온갖 죄사(罪事: 가 되는 일, 악한 일, 나쁜 일)에 대해 견고히 집착하는,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마음(惱)와 상응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참다운 충고[如理諫]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회개[悔]하지도 않는다.[134][135] (罪)는 모든 선사(善士)가 꾸짖고 싫어하는 법[訶厭法]으로서 그 자체와 그 과보두려워 해야 할 것[怖畏]이다.[120][121]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惱)는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見)에 속한 견취(見取)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26][127][136][137][138][139]

(34) 해(害)[편집]

(害, 핍박, 해침, 손뇌, 산스크리트어: vihiṃsā, 영어: hostility, cruelty, intention to harm, spirit of violence)는 다른 유정핍박(逼迫: 억누르고 괴롭힘[140])하는,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마음(害)와 상응하게 되면 때리고[打] 매도하는[罵] 등의 일을 저지르게 된다.[141][142]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害)는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瞋)으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26][127][136][137][138][139]

(35) 한(恨)[편집]

(恨, 원한, 원망, 산스크리트어: upanāha, 영어: resentment, enmity, vindictiveness)은 소번뇌지법에 속한 (忿)의 마음작용소연(所緣)에 대해 자주자주 생각[數數尋思]하여 원한을 품어 버리지 않는[結怨不捨],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43][144]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恨)은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瞋)으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26][127][136][137][138][139]

(36) 첨(諂)[편집]

(諂, 마야, 가장하여 숨김, 심곡, 아첨, 산스크리트어: māyā, 영어: pretense, deceit, dissimilation)은 심곡(心曲)를 말한다. 즉 마음으로 하여금 아곡(阿曲)하게 하는,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마음(諂)과 상응하게 되면 스스로를 사실 그대로[如實] 드러내지 않게 되며, 따라서 다른 사람이 나의 허물을 바로잡아주는 그러한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방편을 시설[設]하여 그 결과 내가 참다운 것을 알게 되는 그러한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145][146]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惱)는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見), 즉 온갖 그릇된 견해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26][127][136][137][138][139]

(37) 광(誑)[편집]

(誑, 속임, 미혹시킴, 산스크리트어: śāthya, 영어: hypocrisy, dishonesty, deception, spirit of deception)은 다른 사람을 미혹시키려는[惑],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47][148]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誑)은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貪)으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26][127][136][137][138][139]

(38) 교(憍)[편집]

(憍, 교만, 오염된 기쁨, 산스크리트어: mada, 팔리어: mada, 영어: self-satisfaction, self-infatuation, mental inflation, smugness, conceit)는 자신이 가진 에 대한 염착발동근거 또는 전제로 하여 일어나는 마음작용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거만[傲]하게 하고 방일[逸]하게 하여 다른 것을 돌아보는 것[顧]을 하지 않게 하는 무소고성(無所顧性)의, 소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49][150][151][152]

또는, 유여사(有餘師)의 견해에 따르면, (憍)는 (貪)으로부터 생겨난 흔거(欣擧: 들떠 거들먹거리는 것)의 차별이다. 즉, 번뇌오염된 상태의 (喜)이다.[151][152]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憍)는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貪)으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26][127][136][137][138][139]

부정지법(不定地法: 8가지)[편집]

부정지법(不定地法)은 그 성질대지법 · 대선지법 · 대번뇌지법 · 대불선지법 · 소번뇌지법의 5가지 그룹 가운데 어느 특정 하나에 속한다고 확정할 수 없는[不定] 마음작용들을 말한다.[19][20]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으로는 (尋) · (伺) · 수면(睡眠) · 악작(惡作) · (貪) · (瞋) · (慢) · (疑)의 8가지가 있다.[19][20]

(39) 심(尋)[편집]

(尋, 대강의 상(相: 성질, 모습, 자성)을 분별함, 거친 성질, 거친 움직임, 산스크리트어: vitarka, vitarkah, 팔리어: vitakka, 영어: conception, selectiveness, gross detection, examination, application of thought, applied thinking, initial application, grossness of the mind)은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의 거친 성질[麤性]로서,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한편, 이에 대해 (伺)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세밀한 성질[細性]로서, 역시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53][154]

설일체유부의 정통 교학 즉 비바사사의 견해에 따르면, (尋)은 마음(6식 가운데 전5식)으로 하여금 감각적 대상(5경)을 추구하게 하는 보다 거친 성질마음작용[心之麤性]이다. 그리고 (伺)는 마음(6식 가운데 제6의식)으로 하여금 비감각적 대상 (법경)을 파악하게 하는 보다 세밀한 성질마음작용[心之細性]이다. 이들 두 마음작용 덕분에, 즉, 개별적 실체로서 존재하면서 서로 상응(相應)하면서 구기(俱起)하기 때문에 마음(麤) · (細)에 치우치지 않고 대상에 대한 고른 인식을 이끌어낼 수 있다.[155][156]

이들의 상응구기에 대해 비바사사는 다음과 같은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云何此二一心相應。有作是釋。如冷水上浮以熟酥上烈日光之所照觸。酥因水日非釋非凝。如是一心有尋有伺。心由尋伺不遍細麤。故於一心俱有作用。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심·사의] 두 가지가 한 찰나의 마음[一心]과 상응하[여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어떤 이는 이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즉 "찬물 위에 떠 있는 숙소(熟酥) 상에 뜨거운 햇볕이 비추어 쪼이더라도 숙소는 풀리지도 않고 엉키지도 않는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한 찰나의 마음에 심도 존재하고 사도 존재하니, 마음은 이러한 심과 사로 말미암아 두루 세밀하지도 거칠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찰나의 마음에 [이 두 가지 심소는] 함께 존재하여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비바사사의 제1설)

《아비달마구사론》 제4권. 한문본 & 한글본

또한, (尋)과 (伺)의 상응구기에 대해 비바사사는 이 두 마음작용어언행(語言行), 즉 어언, 즉 언어[語言] 즉 을 성립시키는 근거가 되는 거친 성질세밀한 성질마음작용이라는 2번째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157][158]

復有釋言。尋伺二法是語言行。故契經言。要有尋伺方有語言。非無尋伺此語言行。麤者名尋。細者名伺。於一心內別法是麤別法是細。於理何違。

다시 어떤 이는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심과 사의 두 가지 법은 바로 어언(語言)의 행(行)이니, 그래서 계경에서 말하기를, '요컨대 심·사가 있어 비로소 어언이 있게 된 것이다'고 하였던 것이다. 곧 심과 사가 없다면 이러한 어언의 행도 있지 않을 것이니, 그러한 것 중에서 거친 것을 '심'이라 이름하고, 세밀한 것을 '사'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러니 1찰나의 마음 안에 개별적인 법[別法]으로서의 거친 것(심)과 개별적인 법으로서의 세밀한 것(사)이 있을지라도 이치상 무슨 모순이 있을 것인가? (비바사사의 제2설)

《아비달마구사론》 제4권. 한문본 & 한글본

한편, 세친(尋)과 (伺)에 대해 위에 나타난 비바사사의 견해, 즉 설일체유부의 정통 견해와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데, 그는 거칠고 세밀한 성질 즉 는 다만 마음차별일 뿐 개별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즉, 비록 자성차별을 지닌 개별적인 실체의 종류[別體類]로서 존재한다고 볼 때는 위의 설명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이치상 어떠한 모순도 없을 것이지만 이들은 개별적인 실체의 종류로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실체의 종류 즉 한 찰나마음[一心]에서 상 · 하 두 품류거친 성질세밀한 성질이 동시에 일어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본다. 즉, 세친마음의 특정한 성질 또는 능력일 뿐 각각 개별적인 실체로서의 마음작용이 아니라고 본다.[159][160][161][162]

(40) 사(伺)[편집]

(伺, 자세한 상(相: 성질, 모습, 자성)을 분별함, 세밀한 성질, 세밀한 움직임, 산스크리트어: vicara, vitarkah, 팔리어: vicāra, 영어: discernment, discursiveness, analysis, sustained application, sustained thinking, selectiveness, subtle discernment, subtlety of the mind)는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세밀한 성질[細性]로서,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53][154]

(41) 수면(睡眠)[편집]

수면(睡眠, 잠, 흐릿함, 약화됨,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함, 산스크리트어: middha, 팔리어: middha, 영어: torpor, sleep, drowsiness, apathy)은 줄임말로 (眠)이라고도 하는데, 심매략성(心昧略性) 즉 마음으로 하여금 [6경과 6근에 대하여] 흐릿하고 약해지게[昧略, 흐리멍덩해지게] 하는 성질의,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마음수면상응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마음5근을 집지(執持)할 만한 공력(功力)이 없게 된다.[163][164]

수면(睡眠)은 3계 가운데 욕계에만 존재하는 마음작용이다.[165][166]

수면(睡眠)은  · 불선 · 무기3성 가운데 불선무기에 통한다.[167][168]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수면(睡眠)은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무명(無明) 즉 (癡)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08][109][124][125][126][127]

수면(睡眠)은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혼침(惛沈)과 결합하여 5개 가운데 하나인 혼면개(惛眠蓋)를 이룬다. 혼침(惛沈)과 수면(睡眠)의 두 번뇌는 모두 마음성질[心性: 마음의 본질적 성질 즉 마음의 본질적 능력 즉 심의식]이 가라앉게[沈] 하고 흐릿하게[昧] 하는 작용을 한다.[98][99] 그 결과,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계온(戒蘊) · 정온(定蘊) · 혜온(慧蘊) · 해탈온(解脫蘊) · 해탈지견온(解脫知見蘊)의 5무루온 가운데 혜온지혜[慧]를 장애하며, 경량부의 교학에 따르면 5무루온 가운데 정온선정[定]을 장애한다.[110][111]

(42) 악작(惡作)[편집]

악작(惡作, 후회, 추회 산스크리트어: kaukṛitya, kaukritya, 팔리어: kukkucca, 영어: regret, worry)은 (悔)라고도 하는데 심추회성(心追悔性)의 마음작용이다. 즉 그릇되게 지어진 것을 소연으로 하여 생겨나는[緣], 마음추회(追悔)하는 성질마음작용으로서,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69][170]

아비달마구사론》의 설명에 따르면, '악작(惡作)'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그릇되게 지어진 것'인데, 나중에 '그릇되게 지어진 것'을 대상으로 하여 추회후회하게 되므로, 악작이라는 낱말로 후회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즉, '그릇되게 지어진 것'이라는 원인으로써 '후회'라는 결과를 가리키는 용도로 사용한 경우이다. 이렇기 때문에, '악작(惡作)'의 문자 그대로의 뜻인 '그릇되게 지어진 것' 자체에는 후회의 뜻이 들어 있지 않지만, '그릇되게 지어진 것'은 나중에 후회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후회마음작용'의 명칭으로서 '악작(惡作)'을 사용한 것이다.[169][170]

악작(惡作) 즉 (悔)는 이 될 수도 있고 번뇌 또는 불선이 될 수도 있다. 을 짓지 않은 것이나 을 지은 것을 후회하는 것은 이고, 을 지은 것이나 을 짓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은 불선이다.[171][172]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번뇌 또는 불선으로서의 악작(惡作) 즉 (悔)는 수번뇌에 속하며 근본번뇌 가운데 (疑)로부터 일어나는 수번뇌이다.[108][109][124][125][126][127]

악작(惡作) 즉 (悔)는 대번뇌지법에 속한 마음작용도거(掉擧)와 결합하여 5개 가운데 하나인 도회개(惛眠蓋)를 이룬다. 도거(掉擧)와 (悔)의 두 번뇌는 모두 마음으로 하여금 적정(寂靜: 고요함)하지 못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114][115] 그 결과,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계온(戒蘊) · 정온(定蘊) · 혜온(慧蘊) · 해탈온(解脫蘊) · 해탈지견온(解脫知見蘊)의 5무루온 가운데 정온선정[定]을 장애하며, 경량부의 교학에 따르면 5무루온 가운데 혜온지혜[慧]를 장애한다.[110][111]

(43) 탐(貪)[편집]

(貪, 3계의 애(愛), 미착, 탐착, 산스크리트어: rāga, 팔리어: rāga, 영어: lust, attachment, craving)은 마음으로 하여금 외적 대상[境]이나 자신의 존재 자체[有, 自體]에 대해 깊이 미착(味著: 맛들여 집착함)하게 하는,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73][174]

(貪)은 욕계욕탐(欲貪)과 색계무색계유탐(有貪)으로 나뉜다. 욕탐(欲貪)은 욕계 중의 유정외적 대상[境]에 대해서 깊이 미착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색계무색계 중의 유정외적 대상[境]에 대해서는 미착하지 않는다. 하지만, 등지(等至, 산스크리트어: samāpatti: 선정, 정려[175][176][177][178])나 소의지(所依止), 즉 그들의 '존재 자체[自體]', 즉 (有)에 대해서는 깊이 미착함이 있는데 이와 같이 (有)에 대해 깊이 미착하는 것을 유탐(有貪)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이생외도무상이숙(無想異熟) 즉 무상천(無想天)에서의 5백 대겁 동안의 무상(無想)의 삶을 해탈이라고 생각하거나 무상이숙획득하는 원인이 되는 선정무상정(無想定)을 해탈도 또는 해탈문이라고 여겨 이들에 미착하는 것이 것이 유탐에 해당한다.[173][174]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貪)은 근본번뇌에 속한다.[83][84]

근본번뇌견소단 · 수소단으로 분별할 때, (貪)은 견소단이기도 하고 수소단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10수면 가운데 5견(疑)와 같은 이지적인 번뇌소연으로 하여 생기하는 (貪)은 5견(疑)가 견소단이기 때문에 이 때의 (貪)도 견소단이다. 예를 들어 5견에 속하는 어떤 견해를 탐착하여 즉 그것에 들러붙러 떠나지 못하여 그것을 정견이라고 주장하고 자신이 그러한 견해를 가진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면서 오만하고 나아가 그러한 견해를 가지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혹은 반대되는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할 때, 이 때의 그 견해에 대한 탐착견소단이다. 반면, 5견(疑)와 같은 지적 번뇌 없이 습관적으로 또는 즉물적으로 일어나는 , 즉 견물생심(見物生心)과 같은 정의(情意: 감정과 의지)적인 (貪)은 수소단이다.[85][86]

3계(三界)와 5부(五部)로 분별해 보면, (貪)은 3계 모두에 존재하며 5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즉, 욕계 · 색계 · 무색계3계 각각에서 견도소단 · 견집소단 · 견멸소단 · 견도소단 · 수도소단의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따라서, 3계 · 5부의 관점에서 볼 때, 욕계의 5가지 · 색계의 5가지 · 무색계의 5가지로 총 15가지가 있다. 이들 가운데 욕계의 4가지 · 색계의 4가지 · 무색계의 4가지의 총 12가지가 견소단견혹(見惑)이고, 욕계수도소단 1가지 · 색계수도소단 1가지 · 무색계수도소단 1가지의 총 3가지가 수소단수혹(修惑)이다.[85][86]

욕계(貪) 즉 욕탐(欲貪)은 (瞋)과 욕계(癡) 즉 욕계무명(無明)과 더불어 불선근(不善根), 즉 모든 불선의 뿌리를 이룬다.[87][88][89] 여기서 주의할 점은, '모든 불선의 뿌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것이 곧 '모든 번뇌의 뿌리'와 동의어인 것은 아니다. 불선번뇌는 깊이 관련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 개념이 다르다. 번뇌잡염불선유부무기를 합한 개념이다.

욕탐은 다른 사람의 재물에 대한 악욕(惡欲: 나쁜 욕구)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욕탐은 남의 재물에 대해 비리(非理)의 (欲: 욕구)를 일으켜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나에게 소속시키기 위해 강제로 혹은 슬그머니 취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는, 남의 재물탐착[耽]하고 희구[求]하는 악욕(惡欲) 즉 나쁜 욕구 · 사악한 욕구 또는 그릇된 욕구를 말한다. 그리고 5개탐욕개(貪欲蓋)는 욕탐욕계을 뜻한다.[179][180]

(44) 진(瞋)[편집]

(瞋, 미워함, 성냄, 노여워함, 상처입히고 해치는 것을 좋아함, 산스크리트어: pratigha, dvesa, 팔리어: paṭigha, 영어: ill will, anger, repugnance, hatred)은 다른 유정에게 상처입히고[傷] 를 끼치기[害] 위해 그 유정에 대하여 미워하고 성내는[憎恚], 부정지법에 속한 불선성질마음작용이다.[181][182]

(瞋)은 3계 가운데 욕계에만 존재하는 번뇌성마음작용으로, 유부무기가 아닌 불선으로 분류되는 번뇌이다.[183][184][185]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瞋)은 근본번뇌에 속한다.[83][84]

근본번뇌견소단 · 수소단으로 분별할 때, (瞋)은 견소단이기도 하고 수소단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10수면 가운데 5견(疑)와 같은 이지적인 번뇌소연으로 하여 생기하는 (瞋)은 5견(疑)가 견소단이기 때문에 이 때의 (瞋)도 견소단이다. 예를 들어 5견에 속하는 어떤 견해를 탐착하여 즉 그것에 들러붙러 떠나지 못하여 그것을 정견이라고 주장하고 자신이 그러한 견해를 가진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면서 오만하고 나아가 그러한 견해를 가지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혹은 반대되는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할 때, 이 때의 미워함증오(瞋)은 견소단이다. 반면, 5견(疑)와 같은 지적 번뇌 없이 습관적으로 또는 즉물적으로 일어나는 (瞋), 즉 견물생심(見物生心)과 같은 정의(情意: 감정과 의지)적인 (瞋)은 수소단이다.[85][86]

3계(三界)와 5부(五部)로 분별해 보면, (瞋)은 3계 가운데 욕계에만 존재하며 5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즉, 욕계에서 견도소단 · 견집소단 · 견멸소단 · 견도소단 · 수도소단의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따라서, 3계 · 5부의 관점에서 볼 때, 욕계의 5가지만 있다. 이들 가운데 4가지가 견소단견혹(見惑)이고, 수도소단 1가지가 수소단수혹(修惑)이다.[85][86]

(瞋)은 욕계(貪) 즉 욕탐(欲貪)과 욕계(癡) 즉 욕계무명(無明)과 더불어 불선근(不善根), 즉 모든 불선의 뿌리를 이룬다.[87][88][89] 여기서 주의할 점은, '모든 불선의 뿌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것이 곧 '모든 번뇌의 뿌리'와 동의어인 것은 아니다. 불선번뇌는 깊이 관련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 개념이 다르다. 번뇌잡염불선유부무기를 합한 개념이다.

(45) 만(慢)[편집]

(慢, 거만, 자만, 오만, 고거심, 산스크리트어: māna, 팔리어: māna, 영어: pride, arrogance, conceit)은 심자거성(心自舉性), 즉 다른 사람에 대해 마음이 스스로를 높이는 성질의,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 달리 말하면, (慢)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德)에 대해 누가 더 우월한지를 따져 생각하고 헤아려서는 스스로가 더 뛰어나다고 믿거나, 혹은 동등하다고 믿거나, 혹은 못해도 많이 못하지 않다고 믿고, 이러한 믿음근거하여 거들먹거리며 다른 사람을 능멸(陵蔑: 업신여겨 깔봄)하는 마음작용이다.[186][187][188][189]

(慢)은 세분하여 (慢) · 과만(過慢) · 만과만(慢過慢) · 아만(我慢) · 증상만(增上慢) · 비만(卑慢) · 사만(邪慢)의 7만(七慢)으로 나뉜다.[190][191]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慢)은 근본번뇌에 속한다.[83][84]

근본번뇌견소단 · 수소단으로 분별할 때, (慢)은 견소단이기도 하고 수소단이기도 하다.[192][193] 구체적으로는, 10수면 가운데 5견(疑)와 같은 이지적인 번뇌소연으로 하여 생기하는 (慢)은 5견(疑)가 견소단이기 때문에 이 때의 (慢)도 견소단이다. 예를 들어 5견에 속하는 어떤 견해를 탐착하여 즉 그것에 들러붙러 떠나지 못하여 그것을 정견이라고 주장하고 자신이 그러한 견해를 가진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면서 오만하고 나아가 그러한 견해를 가지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혹은 반대되는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할 때, 이 때의 오만 또는 무시(慢)은 견소단이다. 반면, 5견(疑)와 같은 지적 번뇌 없이 습관적으로 또는 즉물적으로 일어나는 (慢), 즉 견물생심(見物生心)과 같은 정의(情意: 감정과 의지)적인 (慢)은 수소단이다.[85][86]

3계(三界)와 5부(五部)로 분별해 보면, (慢)은 3계 모두에 존재하며 5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즉, 욕계 · 색계 · 무색계3계 각각에서 견도소단 · 견집소단 · 견멸소단 · 견도소단 · 수도소단의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따라서, 3계 · 5부의 관점에서 볼 때, 욕계의 5가지 · 색계의 5가지 · 무색계의 5가지로 총 15가지가 있다. 이들 가운데 욕계의 4가지 · 색계의 4가지 · 무색계의 4가지의 총 12가지가 견소단견혹(見惑)이고, 욕계수도소단 1가지 · 색계수도소단 1가지 · 무색계수도소단 1가지의 총 3가지가 수소단수혹(修惑)이다.[85][86]

(46) 의(疑)[편집]

(疑, 의심, 망설임, 주저함, 미룸, 진리에 대한 유예, 산스크리트어: vicikitsa, vicikitsā, 팔리어: vicikicchā, 영어: doubt, indecision, skepticism, indecisive wavering)는 있을까 없을까 또는 그럴까 그렇지 않을까의 '두 가지 갈래에서 일어나는[二趣相轉]' 마음작용으로 그 갈래에서 동요(動搖)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는, 부정지법에 속한 마음작용이다.[194][195]

모든 번뇌근본번뇌수번뇌로 나눌 때, (疑)는 근본번뇌에 속한다.[83][84]

근본번뇌견소단 · 수소단으로 분별할 때, (疑)는 견소단이다. 구체적으로는, 10수면 가운데 5견(疑)와 같은 이지적인 번뇌견도(見道)에서 바른 이치를 보는 순간 즉시 끊어지기 때문에 견소단이다.[85][86]

3계(三界)와 5부(五部)로 분별해 보면, (疑)는 3계 모두에 존재하며 4부만을 모두 갖추고 있다. 즉, (疑)는 욕계 · 색계 · 무색계3계 각각에서 견도소단 · 견집소단 · 견멸소단 · 견도소단의 4가지 측면만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3계 · 5부의 관점에서 볼 때, (疑)는 욕계의 4가지 · 색계의 4가지 · 무색계의 4가지로 총 12가지가 있으며 이들은 모두 견소단견혹(見惑)이다. 달리 말하면, (疑)에는 5부 가운데 수도소단이 없다. 즉 (疑)에는 수소단수혹(修惑)의 측면이 없다.[85][86]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

  • 고려대장경연구소. 《고려대장경 전자 불교용어사전》. 고려대장경 지식베이스 / (사)장경도량 고려대장경연구소.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곽철환 (2003).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 네이버 지식백과.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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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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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어) 佛門網. 《佛學辭典(불학사전)》.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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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편집]

  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p. 3 / 57. 아비달마구사론 해제
    "본론의 작자는 서력기원 후 400-480년(혹은 320-400년) 무렵에 출세한 바수반두(Vasubandhu)로서, 세친(世親) 혹은 천친(天親)으로 한역되며, 바수반두(婆藪槃豆)로 음사되기도 한다. 546년 남해를 거쳐 중국에 와 본론의 구역(舊譯)인 『구사석론(俱舍釋論)』을 번역한 진제(眞諦, Paramartha)의 『바수반두법사전』에 따르면, 그는 불멸(佛滅) 900년 무렵 간다라의 푸루샤푸르(오늘 날 페샤와르)에서 카우시카(Kausika)라는 성을 가진 바라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은 유부에 출가하였다가 대승으로 전향하여 유가유식(瑜伽唯識)을 개창한 아상가(Asanga) 즉 무착(無着)이었으며, 동생은 역시 유부에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은 비린치밧사(Virincivatsa)였다. 그는 설일체유부에 출가하여 당시 굽타왕조의 수도였던 아요디야에 머물렀는데, 박학(博學) 다문(多聞)하고, 신재(神才)가 준량(俊良)하였으며, 계행(戒行)이 청고(淸高)하기로 이름 높았다. 그 후 스승 붓다미트라(Buddha- mitra)가 수론(數論, Samkhya)의 외도 빈드야바신(Vindhyavasin)에게 논쟁에서 패배하자, 그를 논파하기 위해 『칠십진실론(七十眞實論)』을 저술하였으며, 또한 『대비바사론』을 배워 그 교의에 깊이 통달한 뒤 대중들에게 강의하였다. 그러면서 하루 1게(偈)씩 모두 600여 수의 게송으로 그것을 정리하여 유부의 본고장인 카슈미르의 비바사사(毘婆沙師)에게 보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워 장행(長行)의 해석을 청하였으므로 이에 따라 저술된 것이 바로 이 『아비달마구사론』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설일체유부의 교의를 중심으로 하여 논설하면서도 그 뜻에 치우침이 있는 곳은 경부(經部)의 교의로써 논파하고 있어 카슈미르의 비바사사들은 그들의 종의가 파괴된 것에 우려하였다."
  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pp. 6-7 / 57. 아비달마구사론 해제
    "『구사론』은 번쇄 잡다한 카슈미르 비바사의 대표적인 요강서이기는 하지만, 경량부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저술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법보(法寶)의 말대로 '이장위종(理長爲宗)', 이치에 부합하는 좋은 이론이면 유부의 학설이든 어느 누구의 교설이든 종의로 삼는다는 논주의 개방적이고도 비평적인 정신이 논 전체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세친은 어떠한 부파의 견해에도 얽매이지 않고 어디까지나 비판적 입장에서 『구사론』을 조술하였는데, 그것을 지배한 정신이 바로 경량부적 사유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원담(鳳潭)의 경부위종설(經部爲宗說)이나 원휘(圓暉)의 현밀양종설(顯密兩宗說, 표면적으로는 카슈미르 유부의 이론을 표방하지만 내용적으로는 경량부 이론으로써 유부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에 세친은 은밀히 경량부를 종의로 삼는다)로써 『구사론』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경량부적 사유에서 유부 비바사의 교학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5) 세친 자신도 본론 8장을 마무리하면서 이 논을 전적으로 카슈미르의 비바사에 의존하지 않았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6)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진제 삼장의 제자인 혜개(慧愷)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법사(세친)의 덕업(德業)은 별전(別傳, 즉 『바수반두법사전』)에 실려 있는 것처럼 먼저 살바다부(薩婆多部)에 출가하여 그 부파에서 확립된 삼장을 배웠으며, 그 후 그들의 법에 다수의 어긋난 점이 있음을 보고 이 논(『구사론』)을 지어 그들의 주장을 모두 서술한 후 잘못된 부분마다 경부(經部)로써 그것을 논파하였다. 그래서 이 논의 본종(本宗)은 바로 살바다부이지만 그 중의 취사선택은 경부로써 정량(正量)으로 삼은 것이다."7)
    5) 현장역본 『구사론』에서 경부(經部)의 기명(記名) 기사는 18회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100여 곳에 걸쳐 언급되고 있다. 졸고, 「구사론상에 나타난 경량부 설」(졸저, 『유부아비달마와 경량부철학의 연구』, 서울 : 경서원, 1994), pp. 417-589.
    6) 본론 권제29 주 59) 참조.
    7) 『아비달마구사석론(阿毘達磨俱舍釋論)』 「서(序)」(대정장29, p.161상). 바로 이 같은 사정하에서 카슈미르 유부의 종장이었던 중현은 본론에 대한 비판서인 『구사박론』 혹은 『순정리론』(진제 전승에서의 『수실론』?)을 저술하게 되었던 것이며, 실제로 『순정리론』에서는 본론의 작자 세친을 경주(經主, sutrakara)라 일컬으면서 이 같은 '전설'이라는 말을 포함하여 장행의 일언일구에 대해 맹렬히 비판하면서 카슈미르의 유부종의를 변호하고 있다. 구사논주 세친이 어째서 '경주'로 불리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경부의 주(主)인가? 『순정리론』 상에서 세친이 경주로 불린 것은 168회이며, 이 중에서 그가 경량부설을 최선설(最善說)이라고 함으로써 비판된 것은 36회이다."
  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p. 1 / 57. 아비달마구사론 해제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Abhidharmakosa-sastra)』은 소승 제부파 중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asti vada)의 아비달마 논서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논서이다."
  4. 운허, "阿毘達磨俱舍論(아비달마구사론)". 2013년 3월 13일에 확인
    "阿毘達磨俱舍論(아비달마구사론): 【범】 Abhidharmakośaśāstra. 30권. K-955, T-1558. 세친(世親: Vasubandhu) 지음. 당(唐)나라 때 현장(玄奘)이 651년 6월에서 654년 9월 사이에 대자은사(大慈恩寺)에서 번역하였다. 줄여서 『구사론』이라 하고, 별칭으로 『대법장론』ㆍ『신역구사』라고도 한다. 이 논은소승 여러 부파 중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아비달마 논서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구사론』은 기본적으로는 아비달마 족신(足身)의 7론이나 『대비바사론』을 근거로 하면서도 이전의 논서와는 그 체계를 달리하는 법승(法勝)의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과 이를 개량 증보한 『아비담심론경(阿毘曇心論經)』 및 법구(法救)의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의 조직과 내용을 토대로 하여 작성된 논서이다."
  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8c27 - T29n1558_p0019a06. 마음작용의 성격
    "如是已辯色定俱生。餘定俱生今次當辯。頌曰。
     心心所必俱 諸行相或得
    論曰。心與心所必定俱生。隨闕一時餘則不起。諸行即是一切有為。謂色心心所心不相應行。前必俱言流至於此。謂色心等諸行生時。必與有為四相俱起。言或得者。謂諸行內唯有情法與得俱生。餘法不然。是故言或。"
  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0 / 1397. 마음작용의 성격
    "이와 같이 색은 결정코 구생(俱生)한다. 다시 말해 동시에 함께 생기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다음으로 그 밖의 법으로서 결정코 구생하는 것에 대해 마땅히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心)과 심소(心所)는 반드시 함께하며
     제행(諸行)은 상(相), 혹은 득(得)과 [반드시 함께한다.]
     心心所必俱 諸行相或得
    논하여 말하겠다. 심과 심소는 반드시 결정코 구생하니, 둘 중의 어느 하나라도 결여될 때에는 다른 하나도 생기하지 않는다.
    [본 송에서] 제행(諸行)이라 함은 바로 일체의 유위를 말하는 것이니, 이를테면 색과 심과 심소와 심불상응(心不相應)의 행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앞의 구절에서 언급한 '반드시 함께한다'고 하는 말은 여기에도 적용되니, 이를테면 색이나 심 등의 제행이 생겨날 때에는 반드시 유위의 4상(相 : 즉 生·住·異·滅의 네 가지 상)과 구생하는 것이다. 나아가 '혹은 득(得)'이라고 말한 것은, 이를테면 제행 가운데 오로지 유정의 법만이 득과 구생하고 그 밖의 법은 그렇지 않으니, 그렇기 때문에 '혹은'이라고 말한 것이다."
  7.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2b29 - T26n1542_p0692c05. 심소법(心所法)
    "心所法云何。謂若法心相應。此復云何。謂受想思觸作意欲勝解念定慧信勤尋伺放逸不放逸善根不善根無記根。一切結縛隨眠。隨煩惱纏。諸所有智。諸所有見。諸所有現觀。復有所餘如是類法與心相應。總名心所法。"
  8.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1권. pp. 1-2 / 448. 심소법(心所法)
    "심소법(心所法)이란 무엇인가? 어떤 법이 마음과 상응(相應)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수(受)·상(想)·사(思)·촉(觸)·작의(作意)·욕(欲)·승해(勝解)·염(念)·정(定)·혜(慧)·신(信)·근(勤)·심(尋)·사(伺)·방일(放逸)·불방일(不放逸)·선근(善根)·불선근(不善根)· 무기근(無記根)과 결(結)·박(縛)·수면(隨眠)·수번뇌(隨煩惱)·전(纏), 그리고 소유하고 있는 모든 지(智)와 모든 견(見)과 소유하고 있는 모든 현관(現觀)을 말한다. 또 그 밖에 이러한 종류의 법이 마음과 상응하는 것이니, 이를 통틀어 심소법이라 한다."
  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8b26 - T31n1612_p0848c11. 심소법(心所法)
    "云何受蘊。謂三領納。一苦二樂三不苦不樂。樂謂滅時有和合欲。苦謂生時有乖離欲。不苦不樂謂無二欲。云何想蘊。謂於境界取種種相。云何行蘊。謂除受想。諸餘心法及心不相應行。云何名為諸餘心法謂彼諸法與心相應。彼復云何。謂觸作意受想思。欲勝解念三摩地慧。信慚愧無貪善根無瞋善根無癡善根精進輕安不放逸捨不害。貪瞋慢無明見疑。忿恨覆惱嫉慳誑諂憍害無慚無愧惛沈掉舉不信懈怠放逸忘念散亂不正知。惡作睡眠尋伺。是諸心法。五是遍行。五是別境。十一是善六是煩惱。餘是隨煩惱。四是不決定。"
  1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18, T.1612, pp. 2-3 / 12. 심소법(心所法)
    "어떤 것이 수온인가. 세 가지의 영납(領納: 받아들이어 감각하는 것)을 말하니, 첫째 괴로움이고, 둘째 즐거움이고, 셋째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이다. 즐거움이란 사라질 적에 화합의 욕망이 있는 것이고, 괴로움이란 생겨날 적에 분리의 욕망이 있는 것이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이란 이 두 가지 욕망이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상온인가. 경계에 대해 갖가지 상(相)을 취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행온인가. 수온과 상온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심소법[心法] 및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이다. 어떤 것이 나머지 모든 심소법인가. 마음과 상응하는 저 모든 법을 말한다. ‘저 모든 법’은 또 어떠한 것인가.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 · 욕(欲) · 승해(勝解) · 염(念) · 삼마디[三摩地] · 혜(慧) · 신(信) · 참(慚) · 괴 (愧) · 무탐(無貪)선근 · 무진(無瞋)선근 · 무치(無癡)선근 · 정진(精進) · 경안(輕安) · 불방일(不放逸) · 사(捨) · 불해(不害) · 탐(貪) · 진 (瞋) · 만(慢) · 무명(無明) · 견(見) · 의(疑) · 분(忿) · 한(恨) · 부(覆) · 뇌(惱) · 질(嫉) · 간(慳) · 광(誑) · 첨(諂) · 교(憍) · 해 (害) · 무참(無慚) · 무괴(無愧) · 혼침(惛沈) · 도거(掉舉) · 불신(不信) · 해태(懈怠) · 방일(放逸) · 망념(忘念) · 산란(散亂) · 부정지(不正知) · 악작(惡作) · 수면(睡眠) · 심(尋) · 사(伺)이다.
    이 모든 심소법에서 다섯 가지는 변행(遍行) 심소이고, 다섯 가지는 별경(別境) 심소이고, 열한 가지는 선(善) 심소이고, 여섯 가지는 번뇌 심소이고, 그 나머지는 수번뇌(隨煩惱)이고, 네 가지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2) 색을 유견유대(有見有對), 무견유대(無見有對), 무견무대(無見無對)의 셋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유견유대는 현색(顯色) 등을 가리키고, 무견유대는 안근(眼根) 등을 가리키며, 무견무대는 무표색을 가리킨다. 이 중 무표색은 유표업과 삼매에서 생겨난 선율의(善律儀)와 불선율의(不善律儀) 등의 업을 가리킨다."
  1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06 - T29n1558_p0019a10. 마음작용의 분류
    "向言心所。何者是邪。頌曰。
     心所且有五 大地法等異
    論曰。諸心所法且有五品。何等為五。一大地法。二大善地法。三大煩惱地法。四大不善地法。五小煩惱地法。"
  1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0 / 1397. 마음작용의 분류
    "앞에서 심소(心所)를 말하였는데, 무엇이 심소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소법에는 바야흐로 다섯 가지가 있으니,
     대지법(大地法) 등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心所且有五 大地法等異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심소법에는 바야흐로 다섯 가지의 품류가 있다.
    무엇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 것인가?
    첫 번째는 대지법(大地法)이며, 둘째는 대선지법(大善地法)이며, 셋째는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이며, 넷째는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이며, 다섯째는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이다."
  1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a20 - T29n1558_p0020a22. 마음작용의 분류
    "如是已說五品心所。復有此餘不定心所。惡作睡眠尋伺等法。"
  1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73 / 1397. 마음작용의 분류
    "이와 같이 다섯 가지 품류의 심과 심소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다시 이 밖에도 부정(不定)의 심소로서 악작(惡作)·수면(睡眠)·심(尋)·사(伺) 등의 법이 존재한다.51)
    51) 심소법에는 이상의 대지법·대선지법·대번뇌지법·소번뇌지법의 4품 이외 선·염오·무기 무엇과도 상응할 수 있어 그 구생관계가 결정적이지 않은 악작·수면(睡眠)·심(尋)·사(伺) 등의 존재가 있는데, 이를 부정지법(不定地法)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등'이라고 함은, 보광(普光)의 『구사론기』에 의하면 탐(貪)·진(瞋)·만(慢)·의(疑)인데, 이에 따라 심소법이 마흔여섯 가지가 되어 일반에서 유부의 법수(法數)를 75 법으로 일컫게 된 것이다. 이 중 악작과 심·사는 본권에서 후술되며, 수면은 본론 권제21에서 설명되고 있다."
  15.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0c29 - T31n1602_p0481a12. 심소유법(心所有法)
    "心所有法者。謂若法從阿賴耶識種子所生。依心所起與心俱轉相應。彼復云何謂遍行有五。一作意二觸三受四想五思。別境有五。一欲二勝解三念四等持五慧。善有十一。一信二慚三愧四無貪五無瞋六無癡七精進八輕安九不放逸十捨十一不害。煩惱有六。一貪二瞋三慢四無明五見六疑。隨煩惱有二十。一忿二恨三覆四惱五嫉六慳七誑八諂九憍十害十一無慚十二無愧十三惛沈十四掉舉十五不信十六懈怠十七放逸十八失念十九心亂二十不正。知不定有四。一惡作二睡眠三尋四伺。"
  16. 무착 지음, 현장 한역 & K.571, T.1602, 제1권. pp. 10-12 / 293. 심소유법(心所有法)
    "‘심소유법(心所有法)’54)은 어떤 법이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것이고, 심왕(心王)55)에 의지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심왕과 더불어 함께 전전하여 상응함을 말한다.56)
    그것은 또한 어떠한가? 변행심소(遍行心所)57)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작의(作意)이고,58) 둘째는 촉(觸)이며, 셋째는 수(受)이고, 넷째는 상(想)이며, 다섯째는 사(思)이다.
    별경심소(別境心所)59)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욕(欲)이고, 둘째는 승해(勝解)이며, 셋째는 염(念)이고, 넷째는 등지(等持)이며, 다섯째는 혜(慧)이다.
    선심소(善心所)60)는 열한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신(信)이고, 둘째는 참(慙)이며, 셋째는 괴(愧)이고, 넷째는 무탐(無貪)이며, 다섯째는 무진(無瞋)이고, 여섯째는 무치(無癡)이며, 일곱째는 정진(精進)이고, 여덟째는 경안(輕安)이며, 아홉째는 불방일(不放逸)이고, 열째는 사(捨)이며, 열 한째는 불해(不害)이다.
    번뇌심소61)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탐(貪)이고, 둘째는 진(瞋)이며, 셋째는 만(慢)이고, 넷째는 무명(無明)이며, 다섯째는 견(見)이고, 여섯째는 의(疑)이다.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62)는 스무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분(忿)이고, 둘째는 한(恨)이며, 셋째는 부(覆)이고, 넷째는 뇌(惱)이며, 다섯째는 의(疑)이고, 여섯째는 간(慳)이며, 일곱째는 광(誑)이고, 여덟째는 첨(諂)이며, 아홉째는 교(憍)이고, 열째는 해(害)이다. 열 한째는 무참(無慙)이고, 열두째는 무괴(無愧)이며, 열셋째는 혼침(惛沈)이고, 열넷째는 도거(掉擧)이며, 열다섯째는 불신(不信)이고, 열여섯째는 해태(懈怠)이며, 열일곱째는 방일(放逸)이고, 열여덟째는 실념(失念)이며, 열아홉째는 심란(心亂)이고, 스무째는 부정지(不正知)이다.
    부정심소(不定心所)63)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오작(惡作)64)이고, 둘째는 수면(睡眠)이며, 셋째는 심(尋)이고, 넷째는 사(伺)이다.
    54) 이하 5위법(位法) 중에서 심소법에 관하여 변행심소 5가지, 별경심소 5가지, 선심소 11가지, 번뇌심소 6가지, 수번뇌심소 20가지, 부정심소 4가지를 설명한다. 심소유법을 흔히 줄여서 심소법(心所法), 심소(心所)라고 부른다. ‘심리작용’을 의미한다. ‘심소(心所)’에서 ‘소(所)’는 ‘소유(所有)’의 준말이며, 심왕에 종속되어 늘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정신세계를 객관적으로 분석해보면, 식별작용 이외에 갖가지 심리작용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유식논사들은 인간의 정신현상을 분석 해명하는 데 아비달마교학의 방법론을 도입하여, 정신세계를 식별작용의 주체[心王]와 그에 수반되는 심리작용[心所]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심왕(心王, citta)은 정신작용의 주체로서 구체적으로 8식(識)을 말한다. 심소(心所, caitta)는 심왕에 종속된 심리작용이다. 유식학에서는 모두 51가지 심소를 거론한다.
    55) 정신작용의 주체라는 뜻으로 심왕이라 이름한다. 구체적으로 8식(識)을 가리킨다.
    56) 심왕과 심소는 체(體)를 달리하며 상응(相應, samprayukta)하여 함께 생기[俱起]한다. ‘상응’이라 함은 심왕과 심소가 의지처[所依] · 인식대상[所緣] · 시간을 같이 하여 작용함을 말한다. 즉 동일한 감각기관에 의지하여(所依), 동일 대상을(所緣) 동일한 순간에(時) 인식한다. 심소는 비록 심왕과 자체를 달리 하지만 어디까지나 심왕에 종속된 요소로서 심왕에 수반되어 작용한다. 둘은 마치 국왕과 신하의 관계와 같다. 8식과 51심소의 상응관계는 다음과 같다. 아뢰야식에는 5변행심소가 상응한다. 말나식에는 5변행심소, 4번뇌심소, 수번뇌심소 중의 혼침 · 도거(掉擧) · 불신 · 해태(懈怠) · 방일 · 실념(失念) · 산란 · 부정지(不正知), 별경심소 중의 혜(慧) 심소의 18심소가 상응한다. 의식에는 모든 심소가 상응할 수 있다. 오식에는 5변행심소, 5별경심소, 선심소 11, 번뇌심소 중의 탐 · 진 · 치, 수번뇌심소 중의 무참 · 무괴 · 도거 · 혼침 · 불신 · 해태 · 방일 · 실념 · 산란 · 부정지 심소 등 34심소가 상응한다. 심왕과 심소의 작용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심왕은 대상에 대하여 오직 전체적인 모습[總相]을 취하고, 심소는 (總相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모습들[別相]까지 취한다. 그리하여 전체적인 대상 인식작용이 가능해진다. 또한 심소는 대상에 대하여 고(苦) · 락(樂) · 사(捨) 등의 감정을 일으키고, 대상을 선택하며, 선 · 악 등의 업을 짓게 한다.
    57) 변행심소(遍行心所, sarvatraga-caitta)는 팔식에 언제나 상응하여 함께 작용하는 보편적인 심리작용이며, 구체적으로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다섯 가지 심소를 말한다. ‘변행(遍行)’이라 이름하는 이유는, 이들 심소가 선 · 악 · 무기의 삼성 모두에 두루 일어나며[一切性], 삼계구지(三界九地) 어디에서나 작용하고[一切地], 유심(有心) · 무심(無心)의 모든 순간에 일어나며[一切時], 언제나 변행의 5심소는 함께 일어나기[一切俱] 때문이다.
    58) 『유가사지론』이나 『현양성교론』은 초기 유식논서이므로 5변행심소를 말할 때 작의가 먼저 열거된다. 『아함경』 등에서 예를 들면 “내부의 안처(眼處)가 무너지지 않고, 외부의 색처(色處)가 현전하며, 그리고 그것에서 생겨나는 작의(作意)가 바로 생기한다” 등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이후 세친(世親)의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에도 작의가 먼저 열거되다가, 『유식삼십송』부터는 촉(觸)을 먼저 든다.
    59) 별경심소(別境心所, viniyata-caitta)라고 이름하는 이유는, 대상이 ‘특별한 것’에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욕(欲) · 승해(勝解) · 염(念) · 정(定) · 혜(慧)의 다섯 가지 심소의 대상은 특별한 것이지 모든 것은 아니다. 대상 인식과 관련하여 ‘지향성’의 속성을 띤다. 대상에 따라 하나 둘 내지 다섯 가지가 구기(俱起)한다.
    60) 선심소(善心所, kuśala-caitta)는 심왕(心王)의 적절한 순간에 생기(生起)하는 보편적으로 착한 심소들이다. 이에 신(信) · 참(慙) · 괴(愧) 등 11가지 심소가 있다.
    61) 번뇌심소(煩惱心所, kleśa-caitta)는 보편적으로 악한 심리작용으로서 심왕을 오염시키고 이로 인하여 생사윤회의 고해(苦海)에 잠기게 한다. 이에 탐(貪) · 진(瞋) · 치(痴) · 만(慢) · 의(疑) · 악견(惡見)의 여섯 가지가 있다.
    62)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upakleśa-caitta)는 근본번뇌심소의 작용에 의해 같은 부류로서 이끌려 일어나는 번뇌심소이다. 이에 분(忿) · 한(恨) 등 20가지가 있다. 수번뇌심소는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근본번뇌심소에 의해 이끌려지는데, 탐(貪) · 진(瞋) · 치(痴)의 근본번뇌를 본체로 하여 이끌려진다. 수행에서 3독심(毒心)을 끊으라고 경책(警策)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를 들면 분(忿) · 한(恨) · 질(嫉) · 뇌(惱) · 해(害)의 심소는 진(瞋)의 심소를 본체로 하여 이끌려지고, 간(慳) · 교(憍)는 탐(貪)을, 부(覆) · 광(誑) · 첨(諂)은 탐(貪) · 진(瞋)을, 방일(放逸) · 해태(懈怠)는 탐 · 진 · 치를 본체로 하여 이끌려진다. 특히 진(瞋)의 심소에서 이끌려지는 번뇌가 많음을 알 수 있다.
    63) 부정심소(不定心所, aniyata-caitta)는 그 체성(體性)이 선(善)도 아니고 염오(染汚)도 아니며, 선 · 악 · 무기 3성(性)의 모든 심소와도 상응하여 삼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부정심소라고 부른다. 이에 회(悔) 등 네 가지가 있다.
    64) ‘악작’이 아니라 ‘오작’으로 읽어야 한다. ‘지은 바를 싫어함’. 회(悔)라고도 하듯이 후회 · 뉘우침의 뜻이기 때문이다."
  1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06 - T29n1558_p0019a10. 심소의 5가지 품류
    "或。向言心所。何者是邪。頌曰。
     心所且有五 大地法等異
    論曰。諸心所法且有五品。何等為五。一大地法。二大善地法。三大煩惱地法。四大不善地法。五小煩惱地法。"
  1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1 / 1397. 심소의 5가지 품류
    "앞에서 심소(心所)를 말하였는데, 무엇이 심소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소법에는 바야흐로 다섯 가지가 있으니,
     대지법(大地法) 등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心所且有五 大地法等異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심소법에는 바야흐로 다섯 가지의 품류가 있다.
    무엇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 것인가?
    첫 번째는 대지법(大地法)이며, 둘째는 대선지법(大善地法)이며, 셋째는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이며, 넷째는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이며, 다섯째는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이다."
  1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a20 - T29n1558_p0020a22. 부정지법(不定地法)
    "如是已說五品心所。復有此餘不定心所。惡作睡眠尋伺等法。"
  2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73 / 1397. 부정지법(不定地法)
    "이와 같이 다섯 가지 품류의 심과 심소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다시 이 밖에도 부정(不定)의 심소로서 악작(惡作)·수면(睡眠)·심(尋)·사(伺) 등의 법이 존재한다.51)
    51) 심소법에는 이상의 대지법·대선지법·대번뇌지법·소번뇌지법의 4품 이외 선·염오·무기 무엇과도 상응할 수 있어 그 구생관계가 결정적이지 않은 악작·수면(睡眠)·심(尋)·사(伺) 등의 존재가 있는데, 이를 부정지법(不定地法)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등'이라고 함은, 보광(普光)의 『구사론기』에 의하면 탐(貪)·진(瞋)·만(慢)·의(疑)인데, 이에 따라 심소법이 마흔여섯 가지가 되어 일반에서 유부의 법수(法數)를 75 법으로 일컫게 된 것이다. 이 중 악작과 심·사는 본권에서 후술되며, 수면은 본론 권제21에서 설명되고 있다."
  2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08 - T29n1558_p0019a13. 대지법(大地法)
    "諸心所法且有五品。何等為五。一大地法。二大善地法。三大煩惱地法。四大不善地法。五小煩惱地法。地謂行處。若此是彼所行處。即說此為彼法地。大法地故名為大地。此中若法大地所有名大地法。謂法恒於一切心有。"
  2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61-162 / 1397. 대지법(大地法)
    "온갖 심소법에는 바야흐로 다섯 가지의 품류가 있다.
    무엇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 것인가?
    첫 번째는 대지법(大地法)이며, 둘째는 대선지법(大善地法)이며, 셋째는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이며, 넷째는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이며, 다섯째는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이다. 여기서 '지(地)'란 이를테면 행처(行處), 즉 생기하는 영역을 말하니, 만약 이것이 이러저러한 것(즉 심소)의 행처가 될 경우 이것을 설하여 그러한 법의 '지'라고 하는 것이다.15)
    곧 대법(大法)의 '지'가 되기 때문에 '대지(大地)'라고 이름하는 것이다.16) 그리고 이러한 제법 가운데 만약 어떤 법이 '대지'에 소유되었다면, 이것을 대지법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일체의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15) 즉 심왕(心王)이 이러저러한 심소법이 일어나는 소의처가 될 때 그러한 심왕을 '지'라고 한다는 뜻.
    16) 여기서 대법이란 수(受)·상(想) 등의 심소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일체의 마음에 두루 통하며, 반드시 함께 생겨나기 때문에 '대법'이라 하는 것이다. 곧 마음은 이러한 대법(大法)을 소유하며 그것의 소의처가 되고 통솔자로서 구기하기 때문에 '대법의 지' 즉 '대지'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2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26 - T29n1558_p0019b02. 대선지법(大善地法)
    "大善法地名大善地。此中若法大善地所有名大善地法。謂法恒於諸善心有。彼法是何。頌曰。
     信及不放逸 輕安捨慚愧
     二根及不害 勤唯遍善心
    論曰。如是諸法唯遍善心。"
  2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4 / 1397. 대선지법(大善地法)
    "나아가 대선법(大善法)의 '지(地)'를 대선지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제법 가운데 어떤 법이 만약 '대선지'에 소유되었다면 이를 대선지법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항상 온갖 선심에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신(信)과, 그리고 불방일(不放逸)과
     경안(輕安)·사(捨)·참(慚)·괴(愧)와
     두 가지의 근(根)과, 그리고 불해(不害)와
     근(勤)은 오로지 선심에만 두루하는 것이다.
     信及不放逸 輕安捨慚愧
     二根及不害 勤唯遍善心
    논하여 말하겠다. 이와 같은 제법은 오로지 선심에만 두루 존재하는 것이다."
  2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28 - T29n1558_p0019c03.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大煩惱法地名大煩惱地。此中若法大煩惱地所有名大煩惱地法。謂法恒於染污心有。彼法是何。頌曰。
     癡逸怠不信 惛掉恒唯染"
  2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8 / 1397.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나아가 대번뇌법(大煩惱法)의 '지'를 대번뇌지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제법 가운데 어떤 법이 만약 '대번뇌지'에 소유되었으면 이것을 대번뇌지법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항상 염오심에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치(癡)·일(逸)·태(怠)·불신(不信)과
     혼(惛)·거(擧)는 오로지 항상 염오한 것이다.
     癡逸怠不信 惛掉恒唯染"
  2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a06 - T29n1558_p0020a12.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大不善法地名大不善地。此中若法大不善地所有名大不善地法。謂法恒於不善心有。彼法是何。頌曰。
     唯遍不善心 無慚及無愧
    論曰。唯二心所但與一切不善心俱。謂無慚愧。故唯二種名此地法。此二法相如後當辯。如是已說大不善地法。"
  2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72 / 1397.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나아가 대불선법(大不善法)의 '지(地)'를 대불선지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제법 가운데 어떤 법이 만약 대불선지에 소유되었으면 이것을 대불선지법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항상 불선심에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오로지 불선심에 두루하는 것은
     무참(無慚)과 무괴(無愧)이다.
     唯便不善法 無慚及無愧
    논하여 말하겠다. 오로지 두 가지의 심소만이 일체의 불선심과 함께할 뿐이니, 이를테면 무참(無慚)과 무괴(無愧)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오로지 두 가지 심소만을 대불선지법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이 두 가지 법의 상(相)에 대해서는 응당 뒤에서 분별하는 바와 같다.
    이와 같이 대불선지법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2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a12 - T29n1558_p0020a20.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小煩惱法地名小煩惱地。此中若法小煩惱地所有名小煩惱地法。謂法少分染污心俱。彼法是何。頌曰。
     忿覆慳嫉惱 害恨諂誑憍
     如是類名為 小煩惱地法
    論曰。如是類法唯修所斷。意識地起。無明相應。各別現行。故名為小煩惱地法。此法如後隨煩惱中當廣分別。"
  3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72-173 / 1397.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나아가 소번뇌법(小煩惱法)의 '지'를 소번뇌지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제법 가운데 어떤 법이 만약 소번뇌지에 소유되었으면 이것을 소번뇌지법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일부의 염오심과 함께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분(忿)·부(覆)·간(慳)·질(嫉)·뇌(惱)
     해(害)·한(恨)·첨(諂)·광(誑)·교(憍)
     이와 같은 종류의 법을 일컬어
     소번뇌지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忿覆慳嫉惱 害恨諂誑憍
     如是類名爲 小煩惱地法
    논하여 말하겠다. '이와 같은 종류의 법'은 오로지 수소단(修所斷)으로서 의식 지(地)에서만 일어나며, 무명과 상응하고, 각각 별도로 현행하기 때문에 이를 일컬어 '소'번뇌지법이라고 한 것이다.49) 이러한 법에 대해서는 응당 수번뇌(隨煩惱) 중에서 널리 분별하는 바와 같다.50)
    49) 『구사론기』에 의하면 고덕(古德)은 6식과 통하지 않고, 5단(斷)에 통하지 않고, 3성(性)에 통하지 않고, 3계(界)에 통하지 않고, 별두기(別頭起) 즉 각기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다섯 가지의 뜻으로서 소번뇌지법을 규정하였다. 따라서 이것은 탐 등의 번뇌와는 관계없이(隨從起가 아니다) 완전히 독립적으로 하여 일어나는 자재기(自在起 혹은 自力起)의 번뇌로서, 오로지 무명과 상응할 뿐이다(즉 여기서 '소'라고 하는 말은 이와 상응하는 법이 '적다'는 뜻으로, 이러한 열 가지의 소번뇌지법은 일체의 염오법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무명과 상응할 뿐이다). 즉 여섯 가지 대번뇌지법은 그 밖의 탐 등의 번뇌에 따라 일어나고[隨從起, 혹은 相應起], 항상 동시에 함께 생기하는 것[幷頭起]이지만, 열 가지 소번뇌지법은 스스로의 힘으로서 일어나는 번뇌[自力起]로서 무명과 상응할 뿐 다른 번뇌와 함께 일어나는 일이 없으며, 또한 동시에 함께 일어나는 일[別頭起]도 없기 때문에 '소'번뇌지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50) 수번뇌(upakleśa)란 탐(貪)·진(瞋)·만(慢)·무명·견(見)·의(疑)의 근본번뇌에 따라 일어나는 번뇌를 말한다. 완성된 유부교학에서는 보통 여기에 무참(無慚)·무괴(無愧)·악작(惡作)·수면(睡眠)·도거(掉擧)·혼침(昏沈)·분(忿)·부(覆)·질(嫉)·간(慳)의 10전(纏)과 뇌(惱)·회(悔)·한(恨)·첨(諂)·광(誑)· 교(憍)의 6번뇌구(垢)가 포함된다. 수번뇌는 본론 「수면품」 권제21(p.952 이하)에서, 교(憍)는 권제4(p.188)에서 설명되고 있다."
  3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10 - T29n1558_p0019a17. 대지법에 속한 10가지 마음작용
    "地謂行處。若此是彼所行處。即說此為彼法地。大法地故名為大地。此中若法大地所有名大地法。謂法恒於一切心有。彼法是何。頌曰。
     受想思觸欲 慧念與作意
     勝解三摩地 遍於一切心
    論曰。傳說。如是所列十法。諸心剎那和合遍有。"
  3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61-162 / 1397. 대지법에 속한 10가지 마음작용
    "여기서 '지(地)'란 이를테면 행처(行處), 즉 생기하는 영역을 말하니, 만약 이것이 이러저러한 것(즉 심소)의 행처가 될 경우 이것을 설하여 그러한 법의 '지'라고 하는 것이다.15)
    곧 대법(大法)의 '지'가 되기 때문에 '대지(大地)'라고 이름하는 것이다.16) 그리고 이러한 제법 가운데 만약 어떤 법이 '대지'에 소유되었다면, 이것을 대지법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일체의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수(受)·상(想)·사(思)·촉(觸)·욕(欲)과
     혜(慧)·염(念)·작의(作意)와
     승해(勝解)·삼마지(三摩地)는
     일체의 마음에 두루하는 것이다.
     受想思觸欲 慧念與作意
     勝解三摩地 遍於一切心
    논하여 말하겠다. 전(傳)하여 설(說)하기를, 이와 같이 열거한 열 가지의 법은 온갖 마음과 [동일] 찰나에 화합하여 두루 존재한다고 하였다.17)
    15) 즉 심왕(心王)이 이러저러한 심소법이 일어나는 소의처가 될 때 그러한 심왕을 '지'라고 한다는 뜻.
    16) 여기서 대법이란 수(受)·상(想) 등의 심소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일체의 마음에 두루 통하며, 반드시 함께 생겨나기 때문에 '대법'이라 하는 것이다. 곧 마음은 이러한 대법(大法)을 소유하며 그것의 소의처가 되고 통솔자로서 구기하기 때문에 '대법의 지' 즉 '대지'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17) 여기서의 전설(傳說)도 예의 논주의 불신을 나타낸다. 논주 세친은 욕·승해·염·삼마지·혜의 다섯 가지는 일체의 마음과 상응구기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심소의 개별적 실재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예컨대 이하에서 논의하고 있듯이 경각성(警覺性)인 작의(作意)가 무경각성인 사(捨, 대선지법의 하나), 이해 간택의 작용인 혜(慧)와 무지인 무명(無明,대번뇌지법의 하나)이 어떻게 상응구기할 수 있는가. 경량부에 의하면 심소는 마음의 변이 차별상일 뿐이다. 본론 권제10(p.486 이하)과 권제28(p.1267)에서도 심소법에 대한 유부와 경부와의 대론이 논설되고 있다."
  3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17 - T29n1558_p0019a18. 수(受)
    "此中受謂三種領納苦樂俱非有差別故。"
  3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2 / 1397. 수(受)
    "여기서 수(受)란 이를테면 세 가지의 종류를 말하니, 고(苦)와 낙(樂)과 양자 모두 아닌 것(즉 不苦不樂)을 영납(領納)하는 데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18)
    18) 수(vedanā)란 영납(領納)의 뜻으로, 대상에 대한 고(苦,不快의 減損)·낙(樂,快의 增益)·불고불락을 감수하는 의식작용이다."
  3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18. 상(想)
    "想謂於境取差別相。"
  3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상(想)
    "상(想)이란 이를테면 대상[境]에 대한 차별의 상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18)
    18) 상(saṃjñā)이란 취상(取像)의 뜻으로, 사물의 형상이나 언어적 개념의 차별상을 취(표상)하는 의식작용이다."
  3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18 - T29n1558_p0019a19. 사(思)
    "思謂能令心有造作。"
  3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사(思)
    "사(思)란 이를테면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조작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사(cetanā)라고 하는 것은 마음으로 하여금 선·불선·무기를 조작(造作)하게 하는 의사[意業]의 의식작용이다."
  3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19. 촉(觸)
    "觸謂根境識和合生。能有觸對。"
  4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촉(觸)
    "촉(觸)이란 이를테면 근(根)·경(境)·식(識)이 화합하여 생겨나는 것으로, 능히 대상과 접촉[觸對]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촉(sparśa)이란 근·경·식의 화합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촉대(觸對)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4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19 - T29n1558_p0019a20. 욕(欲)
    "欲謂希求所作事業。"
  4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욕(欲)
    "욕(欲)이란 이를테면 지어야 할 사업을 희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욕(chanda)이란 마음으로 하여금 뭔가를 희구(希求)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4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20. 혜(慧)
    "慧謂於法能有簡擇。"
  4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혜(慧)
    "혜(慧)란 이를테면 법에 대해 능히 간택(簡擇)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혜(prajñā)란 소연이 되는 대상에 대해 능히 판단·간택(簡擇)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4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20 - T29n1558_p0019a21. 염(念)
    "念謂於緣明記不忘。"
  4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염(念)
    "염(念)이란 이를테면 소연을 명기(明記)하여 망실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염(smṛti)이란 대상을 명기(明記)하여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4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21. 작의(作意)
    "作意謂能令心警覺。"
  4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작의(作意)
    "작의(作意)란 이를테면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경각(警覺)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작의(manaskāra)란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주의·경각(警覺,곧 留意)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4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21 - T29n1558_p0019a22. 승해(勝解)
    "勝解謂能於境印可。"
  5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승해(勝解)
    "승해(勝解)란 이를테면 능히 대상에 대해 인가(印可)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18)
    18) 승해(adhimukti)란 대상에 대해 인가(印可)·결정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다."
  5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a22. 삼마지(三摩地)
    "三摩地謂心一境性。"
  5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3 / 1397. 삼마지(三摩地)
    "삼마지(三摩地)란 이를테면 심일경성(心一境性)을 말한다.18)
    18) 삼마지(samādhi)란 마음을 평등(平等)하게 유지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하나의 대상에 전념하게 하는 의식작용[心一境性]으로, 이를테면 '마치 뱀이 죽통(竹筒)에 들어가면 바로 펴지듯이 마음이 삼마지에 들면 산란되지 않고 바로 곧게 전이하는 것이다.'"
  5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02 - T29n1558_p0019b04. 신(信)
    "信者。令心澄淨。有說。於諦實業果中現前忍許故名為信。"
  5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4 / 1397. 신(信)
    "신(信)이란 마음으로 하여금 징정(澄淨)하게 하는 것이다.20) 그런데 어떤 이는 설하기를, "4제(諦)나 3보(寶), 업과 그 과보에 대해 현전에서 인가하고 허락[忍許,즉 확신]하기 때문에 그것을 일컬어 '신'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20) 신(śraddhā)이란 마치 청수주(淸水珠)를 연못에 놓아두면 더러운 물이 깨끗하게 되는 것처럼 마음을 맑게 하는 의식작용을 말한다.(『입아비달마론』 권상, 대정장28, p. 982,중). 혹은 마음의 맑은 상태로서, 전도됨이 없는 인과는 각기 개별적으로 상속(相屬)됨을 즉각적으로 인가하며, 욕(欲)의 소의가 되어 능히 승해를 낳게 하는 것을 일컬어 신(信)이라고 한다.(『현종론』 권제5, 한글대장경200, p. 134)"
  5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04 - T29n1558_p0019b06. 불방일(不放逸)
    "不放逸者。修諸善法離諸不善法。復何名修。謂此於善專注為性。餘部經中有如是釋。能守護心名不放逸。"
  5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4 / 1397. 불방일(不放逸)
    "불방일(不放逸)이란 온갖 선법을 닦는 것이다.21)
    [선법 그 자체가 이미 닦는 것인데,] 온갖 선법을 떠나 다시 무엇을 일컬어 닦는 것이라고 할 것인가?
    이를테면 그것은 바로 선에 대해 전념[專注]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그런데 다른 어떤 부파의 경에서는 이와 같이 해석하는 일이 있으니, "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을 일컬어 불방일이라 한다"고 하였다.22)
    21) 오로지 자신의 이익에서 몸과 말과 마음을 방호하는 것으로서, 방일의 반대되는 것을 불방일(apramāda)이라고 한다.(『현종론』 권제5, 한글대장경200, p. 134)
    22) 여기서 다른 부파의 경이란 『증일아함경』 권제4(대정장2, p. 563하). "云何爲無放逸行. 所謂護心也.""
  5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06 - T29n1558_p0019b07. 경안(輕安)
    "輕安者。謂心堪任性。"
  5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5 / 1397. 경안(輕安)
    "경안(輕安)이란 이를테면 마음의 감임성(堪任性)을 말한다.23)
    23) 경안(praśrabdhi)이란 즉 마음이 가볍고 편안[輕利安適]하여 능히 선법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성질[心堪任性]의 의식작용을 말한다."
  5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06 - T29n1558_p0019b16. 신경안(身輕安)과 심경안(心輕安)
    "輕安者。謂心堪任性。豈無經亦說有身輕安耶。雖非無說。此如身受應知亦爾。如何可立此為覺支。應知此中身輕安者身堪任性。復如何說此為覺支。能順覺支故無有失。以身輕安能引覺支心輕安故。於餘亦見有是說耶。有如經說。喜及順喜法名喜覺支。瞋及瞋因緣名瞋恚蓋。正見正思惟正勤名慧蘊。思惟及勤雖非慧性隨順慧故亦得慧名。故身輕安順覺支故得名無失。"
  6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5 / 1397. 신경안(身輕安)과 심경안(心輕安)
    "경안(輕安)이란 이를테면 마음의 감임성(堪任性)을 말한다.23)
    어찌 경에서 [심경안(心輕安) 이외] 신경안(身輕安)이 있다고 역시 또한 설하고 있지 않았던가?24)
    비록 설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는 신수(身受)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심수는 의식과 상응하고 신수는 5식과 상응하듯이 심경안은 의식과, 신경안은 전5식과 상응한다고 하면 신경안은 유루인데,] 어떻게 이것을 세워 [무루의] 각지(覺支)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계경 중에서 설한 신경안이란 몸의 감임성이라는 사실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시 이것을 어떻게 설하여야 [무루의] 각지로 삼을 수 있는 것인가?(유부의 물음)
    능히 각지에 따르기 때문에 여기에는 어떠한 과실도 없으니, 신경안으로써 능히 [무루의] 각지인 심경안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밖의 다른 곳에서도 이와 같은 설(說)을 찾아볼 수 있는가?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경에서 "희(喜)와 희에 따르는 법을 희각지라 이름하고,25) 진(瞋)과 진의 인연을 진에개(瞋恚蓋)라 이름하며,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근(正勤)을 혜온(慧蘊)이라 이름한다"고 설한 바와 같다. 즉 사유와 근(勤)은 비록 혜를 본질로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역시 혜라는 명칭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경안도 각지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명칭을 얻어도, 다시 말해 각지라 이름해도 아무런 과실이 없는 것이다.26)
    23) 경안(praśrabdhi)이란 즉 마음이 가볍고 편안[輕利安適]하여 능히 선법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성질[心堪任性]의 의식작용을 말한다.
    24) 이 난문은, 유부 범주표상에서 대선지법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는 경안에 대해 계경(『잡아함경』 권제 27,대정장2, p. 191하)에서 신(身) 경안도 설하고 있듯이 심소로만 한정지을 수 없지 않느냐?고 한 경량부의 물음이다. 즉 유부에서는 신수(身受, 5식과 상응하는 감성적 지각)와 심수(心受, 제6의식과 상응하는 오성적 지각)의 경우에서처럼 신경안도 심경안과 마찬가지로 심소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심·심소를 상응을 부정 하는 경량부에서는, 만약 신경안이 유루인 5식상응의 심소라면 유루의 경안을 어떻게 무루도인 7각지(覺支)의 하나[輕安覺支]로 꼽을 수 있겠는가? 라고 하여 심경안과 구별하고 있다. 또한 심경안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개별적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의지[思]의 차별로서 정심(定心)에서만 나타날 뿐 산심(散心)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5식에 상응하는 것은 법상의 이론상 실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신경안은 바람[風]의 촉(觸)을 본질로 하는 경안으로, 삼매중에서 일어나 무루인 심경안을 인기(引起)하기 때문에 7각지에 포섭시 킬 수 있다고 논의하고 있다.
    25) 여기서 경은 『잡아함경』 권제27(대정장2, p. 191중). 그리고 희에 따르는 법이란 희와 상응하는 심과 심소, 득(得), 그리고 생·주·이·멸의 4상(相)을 말한다.
    26) 이상은 경안에 대한 유부와 경부의 대론. 참고로 보광(普光)은 더 이상 유부의 반론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논주 세친 역시 경량부의 의견에 동조하였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6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16. 사(捨)
    "心平等性無警覺性說名為捨。"
  6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5 / 1397. 사(捨)
    "어떻게 한 찰나의 마음[一心] 중에서 경각성과 무경각성, 즉 작의(作意)와 사(捨)라고 하는 두 가지 심소가 [마음과] 상응하여 함께 일어난다고 설할 수 있는 것인가?28)
    27) 사(upeksā)란 혼침(惛沈)과 도거(掉擧 : 대번뇌지법의 하나)를 떠난 마음의 평등성(平等性), 마음에 동요됨이 없는 것(무경각성)을 말한다."
  6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16 - T29n1558_p0019b24. 사(捨)의 무경각성과 작의(作意)의 경각성
    "心平等性無警覺性說名為捨。如何可說於一心中有警覺性無警覺性。作意與捨二相應起。豈不前說諸心心所其相微細難可了知。有雖難了由審推度而復可知。此最難知。謂相違背而不乖反。此有警覺於餘則無。二既懸殊有何乖反。若爾不應同緣一境。或應一切皆互相應。如是種類所餘諸法此中應求。如彼理趣。今於此中應知亦爾。"
  6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66-167 / 1397. 사(捨)의 무경각성과 작의(作意)의 경각성
    "마음의 평등성(平等性), 무경각성(無警覺性)을 일컬어 사(捨)라고 한다.27)
    어떻게 한 찰나의 마음[一心] 중에서 경각성과 무경각성, 즉 작의(作意)와 사(捨)라고 하는 두 가지 심소가 [마음과] 상응하여 함께 일어난다고 설할 수 있는 것인가?28)
    어찌 앞에서 '제 심·심소는 그 상이 미세하여 참으로 알기 어렵다'고 설하지 않았던가?
    비록 알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깊이 살피고 헤아리면 다시 알 수 있는 점도 있을 것이나 이는 가장 알기가 어려우니, 이를테면 서로 위배되는 것이면서도 [한 찰나의 마음 중에서 상응 구기한다고 하면서] 모순[乖反]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작의)에는 경각이 있고, 다른 것(사)에는 경각이 없는 것으로, 이 두 가지는 이미 [그 작용에 있어] 현격하게 다른데 무슨 모순이 있을 것인가?29)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 두 가지는 마땅히 동일한 대상을 소연으로 삼지 않아야 하거나, 혹은 마땅히 일체의 법도 모두 서로 상응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30)
    이와 같은 종류의 그 밖의 제법도 여기서 마땅히 탐구되어야 할 것이고, 그와 같은 이치에 따라 지금 이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31)
    27) 사(upeksā)란 혼침(惛沈)과 도거(掉擧 : 대번뇌지법의 하나)를 떠난 마음의 평등성(平等性), 마음에 동요됨이 없는 것(무경각성)을 말한다.
    28)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는 무경각성(無警覺性)으로 정의되는데, 그럴 경우 이것은, 심대지법의 하나로서 마음을 자극 경계하여 대상에 대해 주의(注意) 경각(警覺)하게 하는 작용인 작의(作意)와 어떻게 서로 관계하며 함께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즉 이 논설은 상호모순되는 무경각의 '사'와 경각의 작의가 어떻게 구기할 수 있는가 하는 데 대한 난문이다. 광기(光記)나 보소(寶疏)에서는 이를 유부의 심·심소 상응구기설에 대한 비판으로만 전하고 있지만, 칭우(稱友)는 이를 경량부의 설로 평석하고 있다.
    29) 작의는 경각성의 심소이고, 사는 무경각성의 심소로서, 이 두 가지는 이미 법 자체가 다른 것이기 때문에 그 작용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뜻.
    30) 만약 이 두 가지가 동일한 대상을 소연으로 삼지 않을 경우, 심·심소의 오의평등(五義平等) 중 소연(所緣)평등에 위배될 것이고, 혹은 이 두 가지가 작용을 달리하는 것임에도 상응한다고 주장할 것 같으면 그 행상(行相)을 달리하는 탐(貪) 진(瞋) 등 일체의 법도 모두 서로 상응한다고 해야 한다는 뜻의 난(難).
    31) 예컨대 심(尋)·사(伺), 수(受)·상(想)처럼 그 행상(行相)이 동일하지 않더라도 상응구기하는 경우도 있고, 탐(貪)·진(瞋)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작의와 사는 이러한 이치에 따라 이해되어야 한다는 뜻. 즉 주의 경각의 작의는 일체 정신활동의 근저이므로 마음의 평정심 '사'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
  6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24 - T29n1558_p0019b25. 참(慚)과 괴(愧)
    慚愧二種如後當釋。"
  6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7 / 1397. 참(慚)과 괴(愧)
    "참(慚)과 괴(愧)의 두 종류에 대해서는 응당 뒤에서 해석하는 바와 같다.32)
    32)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인 무참(無慚)·무괴(無愧)를 설하면서 함께 언급한다. 『현종론』 (권제5, 한글대장경200, p. 134)에서는 참다운 진리로 나아감으로써 스스로와 법에 대해 뛰어난 힘이 생겨나니, 애(愛)의 등류(等流)를 거스릴려는 마음의 자재성을 일컬어 참(慚)이라고 하고, 수습(修習)을 애락하고 공덕을 우선 하는 것으로서, 치(癡)의 등류를 어기고 열등한 법을 혐오하는 것을 일컬어 괴(愧)라고 하였다."
  6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a21 - T29n1558_p0021a25. 참(慚)과 괴(愧)
    慚愧差別翻此應知。謂翻初釋有敬有崇有所忌難有所隨屬說名為慚。於罪見怖說名為愧。翻第二釋於所造罪。自觀有恥說名為慚。觀他有恥說名為愧。"
  6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2 / 1397. 참(慚)과 괴(愧)
    "그리고 참(慚)과 괴(愧)의 차별은 이러한 해석와 반대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첫 번째 해석과는 반대로 공경함이 있고, 숭배함이 있으며, 어렵게 여겨 꺼리는 일이 있을 뿐더러, 따라 속하는 일[隨屬, 즉 제자로서의 예의]이 있는 것을 설하여 '참'이라고 하고, 죄에 대해 두렵게 보는 것을 일컬어 '괴'라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 해석과는 반대로 지은 죄에 대해 그 자체를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있는 것을 일컬어 '참'이라 하고, 다른 것을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있는 것을 일컬어 '괴'라고 한다."
  6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25 - T29n1558_p0019b27. 무탐(無貪)·무진(無瞋)·무치(無癡)
    "二根者。謂無貪無瞋無癡善根慧為性故。前已說在大地法中。不重說為大善地法。"
  7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7 / 1397. 무탐(無貪)·무진(無瞋)·무치(無癡)
    "두 가지의 근(根)이란 이를테면 무탐(無貪)과 무진(無瞋)을 말한다.33) 그리고 무치(無癡)의 선근은 혜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앞서 대지법 중에서 이미 설하였으니, 대선지법으로 거듭 설하지 않는 것이다.
    33) 무탐이란 이미 획득하였거나 아직 획득하지 않은 경계에 대한 탐착 희구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마음에 애염이 없는 성질[無愛染性]을 말하며, 무진이란 유정이나 비유정에 대해 미워하거나 해치려는 마음이 없는 애민(哀愍)의 종자를 말한다.(『현종론』 권제5, 한글대장경200, p. 134)"
  7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27. 불해(不害)
    "言不害者。謂無損惱。"
  7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8 / 1397. 불해(不害)
    "불해(不害)라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다른 이를 손상시키고 괴롭히지 않는 것을 말한다."
  73. "勇悍[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3월 14일에 확인.
    "勇悍(용한): 날래고 사나움
    勇 날랠 용
    1. 날래다 2. 용감하다(勇敢--) 3. 과감하다(果敢--) 4. 결단력(決斷力)이 있다 5. 강하다(强--) 6. 용기(勇氣)가 있다 7. 다툼 8. 용사(勇士), 병사(兵士)
    悍 사나울 한
    1. 사납다, 억세고 모질다 2. 세차다, 빠르다 3. 날래다 4. 성급하다(性急--) 5. 날카롭다 6. (눈을)부릅뜨다"
  74.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27 - T29n1558_p0019b28. 근(勤)
    "勤謂令心勇悍為性。"
  7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8 / 1397. 근(勤)
    "근(勤)이란 이를테면 마음으로 하여금 모질게 노력하게 하는 것[勇悍]을 본질로 한다.34)
    34) 이미 생겨난 온갖 공덕은 수호하고 과실은 내버리며, 아직 생겨나지 않은 온갖 공덕 생겨나게 하고 과실은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으로서, 마음의 타락됨이 없는 성질[無墮性]을 일컬어 근(勤)이라고 한다. 즉 이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은 참다운 이치에 따라 지어지는 일로 견고히 나아가 멈추지 않는 것이다.(『현종론』 권제5, 한글대장경200, p. 134) 참고로 『순정리론』 권제11(대정장29, p. 391,중)과 『현종론』 권제5(상동)에서는 열 가지 대선지법에 흔(欣)과 염(厭)을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대선지법에는 '흔'과 '염'도 사실상 포함되어야 할 것이지만, 이 두 가지는 상위되는 것이어서 한 찰나 마음에 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배제한다고 논의하고 있다. 여기서 '염'이란 유전의 생사를 염오(厭惡)하게 하는 의식 작용이며, '흔'은 환멸의 열반을 흔락(欣樂)하는 의식작용이다."
  76.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a04 - T29n1558_p0020a05.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故此地法唯六義成。此唯遍染心俱起非餘故。"
  77.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71-172 / 1397.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따라서 이와 같은 지법(즉 대번뇌지법)에는 오로지 여섯 가지의 뜻만이 성취되니, 이러한 법들은 오로지 염오심에 두루 구기(俱起)하지만 다른 마음에는 그러하지 않기 때문에 [대번뇌지법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78.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c04 - T29n1558_p0019c05. 치(癡)
    "癡者。所謂愚癡。即是無明無智無顯。"
  7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8 / 1397. 치(癡)
    "치(癡)란 이른바 우치(愚癡)를 말한다. 즉 이는 바로 무명(無明)이고, 무지(無智)이며, 무현(無顯)인 것이다.35)
    35) 무지는 밝게 결택(決擇)할 수 없는 상태이고, 무현이란 일체 사리(事理)의 경계가 은폐되어 드러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80.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6권. p. T29n1558_p0135a20 - T29n1558_p0135a28.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盡無生智二相何別。頌曰。
     智於四聖諦 知我已知等
     不應更知等 如次盡無生
    論曰。如本論說。云何盡智。謂無學位若正自知我已知苦。我已斷集。我已證滅。我已修道。由此所有智見明覺解慧光觀是名盡智。云何無生智。謂正自知我已知苦不應更知。廣說乃至。我已修道不應更修。由此所有廣說乃至。是名無生智。"
  8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1178 / 1397.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진지와 무생지의 두 지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4성제에 대한 지(智)로서
     '나는 이미 알았다'는 등으로 아는 것과
     '더 이상 알 것이 없다'는 등으로 아는 것이
     차례대로 진지와 무생지이다.
     智於四聖諦 知我已知等
     不應更知等 如次盡無生
    논하여 말하겠다. 본론(本論)에서 설한 바와 같다.19) "무엇을 일컬어 진지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무학위에서 '나는 이미 고(苦)를 알았다', '나는 이미 집(集)을 끊었다', '나는 이미 멸(滅)을 작증하였다', '나는 이미 도(道)를 닦았다'고 스스로 바로 알며, 이에 따라 소유하게 된 지(智)와 견(見)과 명(明)과 각(覺)과 해(解)와 혜(慧)와 광(光)과 관(觀)을 바로 진지라고 이름한다.20) 무엇을 일컬어 무생지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나는 이미 고를 알았으므로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나는 이미 도를 닦았으므로 더 이상 닦아야 할 것이 없다'고 스스로 바로 알며, 이에 따라 소유하게 된……(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따위를 바로 무생지라고 이름한다."
    19) 『품류족론』 권제1(한글대장경117, p.24).
    20) 여기서 '지'는 결단(決斷) 혹은 거듭하여 아는 것을 말하며, '견'은 추구(推求) 혹은 현조(現照)를, '명'은 명랑(明朗)을, '각'은 각오(覺悟)를, '해'는 달해(達解)를, '혜'는 간택(簡擇)을, '광'은 혜광(慧光)을, '관'은 관찰을 말하는 것으로, 이 여덟 가지는 모두 혜의 다른 이름이다."
  82. 보광 술 & T.1821, 제26권. p. T41n1821_p0386a11 - T41n1821_p0386a14. 혜의 8가지 다른 이름
    "智謂決斷。或謂重知。見謂推求。或謂現照。明謂照明。覺謂覺悟。解謂達解。慧謂簡擇。光謂慧光。觀謂觀察。智等八種並慧異名。"
  8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9권. p. T29n1558_p0098b18 - T29n1558_p0098b24. 근본번뇌(根本煩惱)
    "前言世別皆由業生。業由隨眠方得生長。離隨眠業無感有能。所以者何。隨眠有幾。頌曰。
     隨眠諸有本 此差別有六
     謂貪瞋亦慢 無明見及疑
    論曰。由此隨眠是諸有本故業離此無感有能。"
  8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853 / 1397. 근본번뇌(根本煩惱)
    "앞(권제13 초)에서 세간의 차별은 모두 업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업은 수면(隨眠, anusaya)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생장할 수 있으며, 수면을 떠난 업은 유(有, 욕계·색계·무색의 3유)를 초래할 만한 공능을 갖지 않는다.
    그 까닭은 무엇이며, 수면에는 몇 가지가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수면은 모든 '유(有)'의 근본으로,
     이것의 차별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이를테면 탐(貪)·진(瞋)과, 역시 만(慢)·
     무명(無明)·견(見), 그리고 의(疑)이다.
     隨眠諸有本 此差別有六
     謂貪瞋亦慢 無明見及疑
    논하여 말하겠다. 이러한 수면은 바로 모든 '유'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떠난 업은 유를 초래할 만한 어떠한 공능(功能)도 갖지 못하는 것이다."
  8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9권. p. T29n1558_p0099b16 - T29n1558_p0099c08. 10수면의 견소단·수소단 분별 및 5부 분별
    "且於欲界五部不同乘十隨眠成三十六。謂見苦諦至修所斷。如次有十七七八四。即上五部。於十隨眠一二一一如其次第。具離三見二見見疑。謂見苦諦所斷具十。見集滅諦所斷各七。離有身見邊見戒取。見道諦所斷八。離有身見及邊執見。修所斷四。離見及疑。如是合成三十六種。前三十二名見所斷。纔見諦時彼則斷故。最後有四名修所斷。見四諦已後後時中數數習道彼方斷故。如是已顯。十隨眠中薩迦耶見唯在一部。謂見苦所斷。邊執見亦爾。戒禁取通在二部。謂見苦見道所斷。邪見通四部。謂見苦集滅道所斷。見取疑亦爾。餘貪等四各通五部。謂見四諦及修所斷。此中何相見苦所斷。乃至何相是修所斷。若緣見此所斷為境名見此所斷。餘名修所斷。如是六中見分十二。疑分為四。餘四各五。故欲界中有三十六。色無色界五部各除瞋。餘與欲同。故各三十一。由是本論以六隨眠行部界殊說九十八。於此所辯九十八中八十八見所斷。忍所害故。十隨眠修所斷。智所害故。"
  8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862-865 / 1397. 10수면의 견소단·수소단 분별 및 5부 분별
    "바야흐로 욕계의 수면은 5부가 동일하지 않음에 따라 10수면에 근거하여 서른 여섯 가지가 되니, 말하자면 견고제소단(見苦諦所斷)으로부터 수소단(修所斷)에 이르기까지 그 순서대로 열 가지와 일곱 가지와 일곱 가지와 여덟 가지와 네 가지가 있으며, 이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5부의 한 가지(견고소단)와 두 가지(견집소단·견멸소단)와 한 가지(견도소단)와 한 가지(수소단)에 있어서 그 순서대로 10수면을 모두 다 갖춘 것과, 세 가지 견과 두 가지 견과 견·의를 각기 배제시킨 것이다. 이를테면 견고제소단은 10수면을 모두 다 갖추고 있으며,25) 견집제소단과 견멸제소단에는 각기 유신견과 변집견과 계금취를 제외한 일곱 가지가 있으며, 견도제소단에는 유신견과 변집견을 제외한 여덟 가지가 있다. 수소단에는 5견과 의(疑)를 제외한 네 가지가 있다. 이상의 수면을 모두 합하면 바로 서른여섯 가지 종류가 되는 것으로, 그 중에 앞의 서른두 가지를 견소단(見所斷)이라고 이름하니, 4제를 관찰할 때 그것은 바로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후의 네 가지를 수소단(修所斷)이라고 이름하는데, 4제를 관찰하고 나서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자주자주 도(道)를 수습하여야 비로소 그것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이상의 사실로 볼 때 10수면 중의 살가야견(薩伽耶見, satkaya-dṛṣṭi, 유신견의 원어)은 오로지 1부에만 존재하니, 이를테면 견고소단이 바로 그것으로, 변집견도 역시 그러하다. 계금취는 2부에 모두 존재하니, 이를테면 견고소단과 견도소단이 바로 그것이다. 사견은 4부와 통하니, 이를테면 견고소단·견집소단·견멸소단·견도소단이 바로 그것으로, 견취와 의(疑)도 역시 그러하다. 그리고 그 밖의 탐 등의 네 가지(탐·진·만·무명)는 각기 5부와 통하니, 이를테면 견사제소단과 수소단이 바로 그것이다.26)
    이 중의 어떠한 상을 견고소단이라 하고, 내지는 어떠한 상을 수소단이라고 하는 것인가?27)
    만약 이러한 성제(聖諦)를 관찰하여 끊어지는 것(견소단의 번뇌 즉 見惑)을 소연의 경계로 삼는 것이라면 견차제소단(見此諦所斷)이라 이름하고, 그 밖의 것은 수소단이라 이름한다.28)
    이와 같이 6수면 중에서 견(見)은 열두 가지로 나누어지고, 의(疑)는 네 가지로 나누어지며, 나머지 네 가지는 각기 다섯 가지(즉 5부의 수면)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욕계 중에는 서른여섯 가지의 수면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색계와 무색계의 5부에는 각기 진(瞋)이 제외되며,29) 그 밖의 다른 것은 욕계에서와 동일하기 때문에 색계·무색계에는 각기 서른한 가지의 수면이 있다. 이에 따라 본론(本論)에서 '6수면은 [견의 차별적인] 행상과 [5]부와 [3]계의 차별로 인해 아흔여덟 가지가 된다'고 설하였던 것이다.
    이상에서 분별된 98수면 가운데 여든여덟 가지는 인(忍)에 의해 해손(害損)되기 때문에 견소단이며, 열 가지는 지(智)에 의해 해손되기 때문에 수소단이다.31)
    24) 98수면이란 탐(貪)·진(瞋)·만(慢)·무명·의(疑)·유신견·변집견·사견·견취·계금취의 10수면이 작용하는 세계 즉 3계와, 끊어지는 유형 즉 4제(諦) 각각에 대한 네 가지 관찰[見道]과 선정을 통한 수습[修道]의 다섯 가지 유형[五部]에 따라 분류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번뇌에는 이지적 측면의 번뇌[迷理惑]와 정의적 측면의 번뇌[迷事惑]가 있는데, 전자는 사설(邪說)·사교(邪敎)에 의해 일어나는[分別起] 후천적 번뇌이기 때문에 올바른 관찰에 의해 즉각적으로 제거될 수 있는 반면, 후자는 선천적으로 갖는[俱生起] 본능적 번뇌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에 걸친 반복된 수습이 필요하다. 유부에서는 전자를 견혹(見惑) 즉 4제의 진리성의 관찰에 의해 끊어지는 이른바 견소단(見所斷, 여기에는 見苦·見集·見滅·見道 所斷의 4부가 있다)이라 하고, 후자를 수혹(修惑) 즉 수습에 의해 끊어지는 수소단(修所斷)의 번뇌라고 하는데, 5견과 '의'가 오로지 견소단이라면 나머지 탐·진·만·무명은 양자에 공통된 번뇌이다. 98수면이란 이처럼 10수면을 3계·5부와 관련시켜 분류한 것이다. (후술)
    25) 일체의 모든 수면은 모두 고제(苦諦) 즉 무상·고·무아·공에 위배되기 때문이다.(후술)
    26) 탐·진·만·무명 중 앞의 세 가지는 수혹이기는 하지만 5견과 의(疑)를 연(緣)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며(예컨대 5견에 탐착하므로 그것을 정견이라 주장하고 그러한 견해에 오만해 하고, 나아가 타인을 증오 무시한다), 무명의 경우 그 자체로서 생기하는 독두무명(獨頭無明)이나 5견과 서로 관계하여 생기하는 상응무명은 견소단이지만 탐·진·만과 상응 구기하는 무명은 수소단이자 견소단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법의 인과관계상에서 일시 설정된 5취온을 실유의 자아로 집착하는 유신견은 인과관계상 현행의 결과(이것은 고·비상·비아·공으로 관찰됨)를 대상으로 하는 염오혜(染汚慧)이기 때문에, 변집견 역시 인과관계상의 현행의 결과에 대한 영속·단멸 등의 염오혜이기 때문에 오로지 견고소단이며, 계금취는 자재천 등이 세간의 참된 원인이 아님에도 그것을 상주하는 원인이라고 간주하는 염오혜이자 그릇된 금계를 청정도라고 판단하는 염오혜이기 때문에 견고소단이고 견도소단이다. 그리고 단멸의 입장에서 행위와 행위의 상속을 부정하는 사견은 인(집·도)과 과(고·멸)의 구조를 띤 사제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견취는 유신·변집·사견 등의 저열한 지식을 뛰어난 이치, 즉 사제로 견집(堅執)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는 4제에 대한 의심이기 때문에 견4제소단이다.
    27) 즉 5견과 의(疑)는 지적 번뇌이기 때문에 당연히 견혹이지만, 앞서 언급한 나머지 네 가지 수면 즉 탐·진·무명·만이 견소단과 수소단 모두와 통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경우의 탐이 견혹이고 어떠한 경우의 탐이 수혹인가 하는 물음.
    28) 5견이나 의(疑)와 같은 지적 번뇌를 소연으로 삼아 일어나는 탐 등은 견소단이며, 지적 번뇌없이 다만 습관적으로 일어난 탐 등은 수소단이다.
    29) 그곳에는 진(瞋)수면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를테면 '진'은 전5식이 감수하는 고수(苦受)에서 수증되는 것인데, 거기에는 고수가 없기 때문에 '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의 상속은 삼매[定]에 의해 윤택해지기 때문이며, 그곳에는 '진'의 이숙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진'은 그 속성상 불선의 악으로 분류되나 상계의 수면번뇌는 악이 아닌 유부무기, 다시 말해 올바른 지혜의 생기를 방해하는 그릇된 의식일 뿐이기 때문이다.(『현종론』 권제25, 앞의 책, p. 138 참조)
    31) 인(忍)과 지(智)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3 참조. 이를테면 욕계에서의 4제의 관찰을 법지(法智)라 하고, 대상[境]과 지식[智]이 법지와 유사한 색계·무색계에서의 4제의 관찰은 유지(類智)라고 하며, 이 같은 '지'를 '지'로서 인가하는 것을 '인'이라 하는데, 후자에 의해 번뇌가 끊어지며, 전자에 의해 이계(離繫)가 확증된다. 즉 '인'이 무간도라면 '지'는 해탈도이다."
  8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9권. p. T29n1558_p0102c28 - T29n1558_p0103a06. 불선근(不善根)
    "與上相違皆不善性。於上所說不善惑中。幾是不善根。幾非不善根。頌曰。
     不善根欲界 貪瞋不善癡
    論曰。唯欲界繫一切貪瞋及不善癡不善根攝。如其次第世尊說為貪瞋癡三不善根。性唯不善煩惱為不善法根立不善根。餘則不爾。所餘煩惱非不善根。義准已成。故頌不說。"
  8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895 / 1397. 불선근(不善根)
    "위에서 설한 불선의 혹(惑) 중에서 몇 가지가 불선근이고, 몇 가지가 불선근이 아닌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불선근은 욕계의
     탐·진과 불선의 치(癡)이다.
     不善根欲界 貪瞋不善癡
    논하여 말하겠다. 오로지 욕계에 계속(繫屬)되는 일체의 탐(貪)과 진(瞋)과 아울러 불선의 치(癡, 앞서 언급한 유신·변집견과 상응하는 것을 제외한 치)가 불선근에 포섭된다. 세존께서는 이를 그 순서대로 탐·진·치의 세 가지 불선근이라고 설하였는데, 그 본질[性]은 오로지 불선의 번뇌이다. 즉 모든 불선법의 근본[根]이 되기 때문에 '불선근'이라고 설정한 것으로, 그 밖의 다른 번뇌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 밖의 번뇌가 불선근이 아니라고 하는 뜻은 이 같은 사실에 준하여 이미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본송에서 설하지 않은 것이다.110)
    위에서 논설한 무기의 혹 중에서 몇 가지가 무기근이고, 몇 가지가 무기근이 아닌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110) 이를테면 탐·진과 불선의 치는 견·수의 5부소단과 통하고, 6식과 두루 상응하며, 각기 탐·진에·무명수면을 본질로 하며, 일체의 추악한 신·어업을 낳으며, 선근을 끊는 것이지만, 5견과 의는 5부와 통하지 않고, 만은 6식과 상응하지 않으며(전5식과 상응함), 10전(纏)과 6번뇌구(垢)는 수면성이 아니다.(이는 隨煩惱로서 본론21 참조) 그리고 이 같은 다섯 가지 뜻 중의 뒤의 두 가지가 바로 불선근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자세한 것은 『대비바사론』 권제47(한글대장경119, p. 504)과 권제112(동122, p. 266이하) 참조."
  89. 星雲, "不善根". 2013년 3월 16일에 확인
    "不善根:  梵語 akuśala-mūla。三界諸煩惱之中,欲界五部有三種不善之根,即貪不善根、瞋不善根、癡不善根。此三煩惱,其性唯不善,能生起、資養一切不善之法,故稱不善根。據大毘婆沙論卷一一二載,三煩惱具有五義,故獨立為不善根。五義即:(一)通於五部,(二)遍在六識,(三)是隨眠性,(四)能起粗惡之身業、語業,(五)作斷善根牢強加行。〔增一阿含經卷十三、俱舍論卷十六、大毘婆沙論卷四十七、入阿毘達磨論卷上、順正理論卷四十一〕(參閱「善根」4888) p994"
  90.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c05 - T29n1558_p0019c06. 방일(放逸)
    "逸謂放逸。不修諸善。是修諸善所對治法。"
  9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8 / 1397. 방일(放逸)
    "일(逸)이란 이를테면 방일(放逸)로서, 온갖 선을 닦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는 바로 온갖 선을 닦는 것[즉 不放逸]에 의해 대치(對治)되는 법이다."
  92.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b16. 방일(放逸)
    "逸謂放逸。於專己利棄捨縱情。名為放逸。"
  93.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207 / 1762. 방일(放逸)
    "일(逸)이란 방일(放逸)을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이익에 전념하기를 포기하여 뜻[情]을 놓아버리는 것을 일컬어 방일이라고 한다.3)
    3) 방일이란 온갖 선을 닦지 않는 것을 말한다.(『구사론』 제4권, 권오민 역, 동국역경원2002, p.168)"
  94.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c06 - T29n1558_p0019c07. 해태(懈怠)
    "怠謂懈怠心不勇悍。是前所說勤所對治。"
  9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9 / 1397. 해태(懈怠)
    "태(怠)란 이를테면 해태(懈怠)로서, 마음이 모질게 노력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는 바로 앞에서 설한 근(勤)에 의해 대치되는 법이다.36) <
    36) 선한 일에 있어서는 뛰어난 능력을 없애거나 감소시키고, 악한 일에 있어서는 날쌘 사나움을 따라 성취시키는 무명의 등류(等流)를 일컬어 해태라고 한다. 이는 바로 비천하고 열등하게 노력하는 것[鄙劣勤性]으로, 비천하고 더러운 것을 닦고 익히기 때문에 해태라고 이름하는 것이다.(『현종론』 권제6,한글대장경200, p. 138)"
  96.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b17 - T29n1563_p0800b19. 해태(懈怠)
    "怠謂懈怠。於善事業闕減勝能。於惡事業順成勇悍。無明等流名為懈怠。由此說為鄙劣勤性。勤習鄙穢故名懈怠。"
  97.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207 / 1762. 해태(懈怠)
    "태(怠)란 해태(懈怠)를 말하는 것으로, 선한 일에 대해서는 뛰어난 능력을 없애거나 감소시키지만 악한 일에 대해서는 날쌔고 재빠르게 성취하는 무명의 등류를 일컬어 해태라고 한다. 이에 따라 이것을 비천하고 저열하게 노력하는 것[鄙劣勤性]이라고 하니, 노력하고 익히는 것이 비천하고 더럽기 때문에 해태라고 이름한 것이다.4)
    4) 해태란 마음이 모질게 노력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구사론』 앞의 책,p.169)"
  98.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10c11 - T29n1558_p0110c18. 혼면개(惛眠蓋)의 작용
    "何故惛眠掉悔二蓋各有二體合立一耶。食治用同故合立一。食謂所食。亦名資糧。治謂能治。亦名非食。用謂事用。亦名功能。由此經中作如是說。惛眠雖二食非食同。何等名為惛眠蓋食。謂五種法。一[夢-夕+登]瞢。二不樂。三頻申。四食不平性。五心昧劣性。何等名為此蓋非食。謂光明想。如是二種事用亦同。謂俱能令心性沈昧。"
  9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65 / 1397. 혼면개(惛眠蓋)의 작용
    "어떠한 이유에서 혼면과 도회의 두 '개'는 각기 두 가지의 번뇌를 합하여 하나로 설정하게 된 것인가?
    먹이[食]와 대치[治]와 작용[用]이 동일하기 때문에 [번뇌 자체는 다를지라도] 합하여 하나의 '개'로 설정한 것이다. 여기서 '먹이'란 이를테면 [번뇌에] 먹히는 것[所食]을 말하는데, 역시 또한 자량(資糧)이라고도 이름한다. 대치란 이를테면 능히 대치하는 것으로 역시 또한 비식(非食, 즉 '먹히는 것'에 반대되기 때문에 '비식'이다)이라고도 이름한다. 그리고 작용이란 이를테면 사용(事用)을 말하는데 역시 또한 공능(功能)이라고도 이름한다.
    무엇을 일컬어 혼면개의 먹이라고 한 것인가?
    말하자면 다섯 종류의 법이니, 첫째는 눈꺼풀이 무거워 감기는 것[瞢]이며, 둘째는 신이 나지 않는 것[不樂]이며, 셋째는 노곤하여 하품하는 것[頻申]이며, 넷째는 너무 많이 먹어 소화가 되지 않는 것[食不平性]이며, 다섯째는 명료하게 감지하지 못하는 것[心昧劣性]이다.
    무엇의 일컬어 이러한 혼면개의 비식(즉 대치)이라고 한 것인가?
    이를테면 밝은 생각[光明想]이다.53)
    이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번뇌(惛과 眠) 작용도 역시 동일하니, 이를테면 다 같이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가라앉게 하고 어둡게 하는 것이다.
    53) 밝은 생각을 일으켜 마음이 분명하게 되면 혼면의 먹이(다섯 가지)가 능히 퇴치되기 때문에 비식(非食)이라 일컬은 것이다. 광명상(光明想)은 명조사유(明造思惟)라고도 한다."
  100. 가전연자 지음, 승가제바·축불념 한역 & T.1543, 제1권. p. T26n1543_p0771c19 - T26n1543_p0771c26. 개(蓋)·전(纏)·결(結)
    "以何等故世間第一法。不當言欲界繫。答曰。不以欲界道得斷蓋纏。亦不能除欲界結。乃以色界道得斷蓋纏。亦能除欲界結。若以欲界道得斷蓋纏。亦能除欲界結。如是世間第一法當言欲界繫。但不以欲界道得斷蓋纏。亦不能除欲界結。乃以色界道得斷蓋纏。亦能除欲界結。以是故世間第一法不當言欲界繫。"
  101. 가전연자 지음, 승가제바·축불념 한역, 권오민 번역 & K.943, T.1543, 제1권. pp. 7-8 / 461. 개(蓋)·전(纏)·결(結)
    "어째서 세간제일법을 욕계에 매인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가? [답] 욕계의 도로써는 개(蓋)7)나 전(纏)8)을 끊을 수 없으며 또한 욕계의 결(結)9)을 제거할 수도 없다. 그러나 색계의 도로써는 개와 전을 끊을 수 있으며, 욕계의 결도 제거할 수 있다. 만약 욕계의 도로써 개와 전을 끊을 수 있고, 또한 욕계의 결을 제거할 수도 있다면 이와 같은 세간제일법은 욕계에 매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욕계의 도로써는 개와 전을 끊을 수 없고 욕계의 결을 제거할 수도 없으며, 바로 색계의 도로써 개와 전을 끊을 수 있고 욕계의 결을 제거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세간제일법은 욕계에 매인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7) 범어로는 nīvaraṇa. 마음을 덮어 청정심을 가로막는 것으로, 통상 탐냄(rāga)ㆍ성냄(pratigha)ㆍ게으름(styāna-middha)ㆍ들뜸(auddhatya)ㆍ의심(vicikitsā)의 다섯을 말한다. 8) 범어로는 paryavasthāna. ‘속박’ 혹은 ‘얽어매임’이라는 뜻으로, 존재를 속박하고 구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9) 범어로는 saṃyojana. 사(使, anuśaya)와 더불어 번뇌의 이칭으로, ‘내면에 깃든 악한 성향’을 가리킨다."
  102.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c07 - T29n1558_p0019c08. 불신(不信)
    "不信者謂心不澄淨。是前所說信所對治。"
  10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9 / 1397. 불신(不信)
    "불신(不信)이란 이를테면 마음 징정(澄淨)하지 않은 것으로, 이것은 바로 앞에서 설한 '신'에 의해 대치되는 것이다.37)
    37) 불신은 사견(邪見)의 등류(等流)로서, 4제의 온갖 진리[諦]와 실유의 법[實]과 정려와 등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경솔히 험담하고, 보시 등의 원인이나 그 과보에 대해 즉각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일컬어 불신이라고 한다.(앞의 논, p. 138)"
  104.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b19 - T29n1563_p0800b21. 불신(不信)
    "不信者謂心不澄淨邪見等流。於諸諦寶靜慮等至現前輕毀。於施等因及於彼果。心不現許名為不信。"
  105.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207 / 1762. 불신(不信)
    "불신(不信)이란 이를테면 마음이 청정[澄淨]하지 않은 것으로, 사견(邪見)의 등류이다. 즉 온갖 진리[諦]와 실유의 법[實]과 정려(靜慮)와 등지(等至)에 대해 현전(現前)에서 경솔하게 비방하고, 보시 등의 원인에 대해서나 그 과보에 대해 마음으로 즉각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일컬어 불신이라고 한다."
  106.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c08 - T29n1558_p0019c11. 혼침(惛沈)
    "惛謂惛沈。對法中說。云何惛沈。謂身重性心重性。身無堪任性心無堪任性。身惛沈性心惛沈性。是名惛沈。此是心所。如何名身。如身受言。故亦無失。"
  107.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9 / 1397. 혼침(惛沈)
    "혼(惛)이란 이를테면 혼침(昏沈)을 말하는 것으로, 대법(對法) 중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즉 "무엇을 혼침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몸의 무거운 성질과 마음의 무거운 성질, 몸이 민활하지 못한 성질[不堪任性]과 마음이 민활하지 못한 성질, 몸이 혼미하거나 침울한 성질[昏沈性]과 마음이 혼미하거나 침울한 성질, 이것을 혼침이라 이름한다."38)
    이것은 바로 심소(心所)인데, 어찌하여 몸[身]이라고 일컬은 것인가?
    신수(身受)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따라서 이렇게 말하더라도 아무런 과실이 없는 것이다.39)
    38) 여기서 본론은 『발지론』 권제2(한글대장경176, p. 39).
    39) 5식상응의 '수'를 신수라고 이름하듯이 5식이 혼미하여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몸이 혼미하고 침울하다고 일컬을 수 있다는 뜻. 그런데 『현종론』 권제6에서는 혼침을 다만 마음의 무거운 성질이라 하였다. 즉 마음은 대종을 능히 낳는 원인[能生因]이 되기 때문에, 이에 따라 몸의 무거운 성질을 일으키는 것을 먼저 혼침이라고 가설하지만, 그것은 바로 식신(識身)의 소연이 되는 대상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혼침이 아니라는 것이다.(한글대장경200, p. 138)."
  108.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b13 - T29n1558_p0109b23. 수번뇌: 8전 또는 10전
    "後當略論纏煩惱垢攝者。且應先辯。纏相云何。頌曰。
     纏八無慚愧 嫉慳并悔眠
     及掉舉惛沈 或十加忿覆
     無慚慳掉舉 皆從貪所生
     無愧眠惛沈 從無明所起
     嫉忿從瞋起 悔從疑覆諍
    論曰。根本煩惱亦名為纏。經說欲貪纏為緣故。然品類足說有八纏。毘婆沙宗說纏有十。謂於前八更加忿覆。"
  10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p. 953-954 / 1397. 수번뇌: 8전 또는 10전
    "[이러한 수번뇌에 대해서는] 뒤에서 응당 전(纏)과 번뇌구(煩惱垢)에 포섭시켜 간략히 논설하리라.
    바야흐로 먼저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니, '전'의 상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전(纏)에는 여덟 가지가 있으니, 무참·무괴·
     질(嫉)·간(慳)·회(悔)·수면(睡眠)
     그리고 도거·혼침이 바로 그것이다.
     혹은 분(忿)과 부(覆)를 더한 열 가지이다.29)
     纏八無慚愧 嫉慳幷悔眠
     及掉擧惛沈 或十加忿覆
     무참과 간과 도거는
     모두 탐에서 생겨난 것이며
     무괴와 수면과 혼침은
     무명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無慚慳掉擧 皆從貪所生
     無愧眠惛沈 從無明所起
     질과 분은 진(瞋)에서 일어난 것이고
     회는 의(疑)로부터, '부'에 대해서는 여러 쟁론이 있다.
     嫉忿從瞋起 悔從疑覆諍
    논하여 말하겠다. 근본번뇌를 역시 '전'이라고도 이름하니, 경에서 "욕탐의 전을 연(緣)으로 한다"고 설하였기 때문이다.30)
    그런데 『품류족론』에서는 8전이 있다고 설하였지만 비바사종(毘婆沙宗)에서는 '전'에 열 가지가 있다고 설하고 있으니,31) 이를테면 앞의 여덟 가지에 다시 분(忿)과 부(覆)를 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29) 이 같은 열 가지는 유정을 계박하여 생사의 감옥에 가두기 때문에 이름하여 '전'이라고 하였다. 혹은 이러한 열 가지가 원인이 되어 온갖 악행을 일으키며, 악취로 잡아 가두기 때문에 이름하여 '전'이라고 하였다.(『현종론』 권제27, 앞의 책, p.225)
    30) 『잡아함경』 권제35 제977경(대정장2, p.253상), '시바여, 다섯 가지 인(因)과 다섯 가지 연(緣)으로 인해 심법에 우고(憂苦)가 생기니, 이를테면 욕탐전을 인으로 하고 욕탐전을 연으로 하여 심법에 우고가 생기며…….'
    31) 『품류족론』 권제1(한글대장경117, p.23). 『대비바사론』 권제47(한글대장경119, p.508) ; 권제50(동 p.579)."
  110.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10c24 - T29n1558_p0111a05. 5개(五蓋)의 장애
    "諸煩惱等皆有蓋義。何故如來唯說此五。唯此於五蘊能為勝障故。謂貪恚蓋能障戒蘊。惛沈睡眠能障慧蘊。掉舉惡作能障定蘊。定慧無故於四諦疑。疑故能令乃至解脫解脫智見皆不得起。故唯此五建立為蓋。若作如是解釋經意。掉悔理應惛眠前說。以必依定方有慧生。定障亦應先慧障故。依如是理。有餘師言。此五蓋中。惛眠掉悔如次能障定蘊慧蘊。由此契經作如是說。修等持者怖畏惛眠。修擇法者怖畏掉悔。"
  11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p. 966-967 / 1397. 5개(五蓋)의 장애
    "모든 번뇌에는 다 '개(蓋, nīvaraṇa)'의 뜻이 있는데,55) 어째서 여래께서는 오로지 이 다섯 가지만을 '개'라고 설하신 것인가?
    오로지 이것만이 5온에 대해 능히 뛰어난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56) 즉 욕탐개와 진에개는 능히 계온(戒蘊)을 장애하며, 혼침과 수면은 능히 혜온(慧蘊)을 장애하며, 도거와 악작(惡作, '회'의 다른 명칭)은 능히 정온(定蘊)을 장애한다.57) 그리하여 정온과 혜온이 없기 때문에 4제(諦)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나아가 의심으로 말미암아 능히 해탈온(解脫蘊)과 해탈지견온(解脫知見蘊)을 모두 능히 일으키지 못하게 되니, 그래서 오로지 이 다섯 가지만을 건립하여 '개'로 삼았던 것이다.
    만약 경의 뜻을 이와 같이 해석할 것 같으면 이치상 도회개는 마땅히 혼면개 앞에 설해야 할 것이니, 필시 정(定)에 의거하여 비로소 혜(慧)가 생겨나며, 정온의 장애도 역시 마땅히 혜온의 장애보다 선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이와 같은 이치에 따라 유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러한 5개 중에서 혼면과 도회는 각기 순서대로 정온과 혜온을 능히 장애한다. 이에 따라 계경에서는 '등지(等持)를 닦는 자는 혼면을 두려워하고, 택법(즉 지혜)을 닦는 자는 도회를 두려워한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58)
    55) 즉 번뇌는 수번뇌를 등기(等起)시키며, 어떤 것도 무루성도를 은폐 장애[覆蓋]하여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56) 여기서 5온은 후술하듯이 무루오온으로, 계(戒)·정(定)·혜(慧)·해탈(解脫)·해탈지견온(解脫知見蘊)을 말한다. 해탈온은 무루의 승해(勝解)의 심소를, 해탈지견온은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를 말한다.
    57) 욕탐개는 이욕(離欲)을, 진에개는 이악(離惡)을 멀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온을 장애하며, 혼침과 수면은 사마타를 멀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혜온을 장애하며, 도거와 악작은 비발사나(毘鉢舍那, vipasyana, 삼매에 의한 正觀)를 멀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온을 장애한다.
    58) 여기서 유여사는 『광기』에 의하면 경부사. 즉 경부사는 유부와는 반대로 욕탐과 진에가 계온을 장애한 후 혼면이 정온을, 도회가 혜온을 장애한다고 설하는 것이 법상의 이치상 올바른 순서라는 것이다. 즉 장애되는 무루온의 생기순서가 계·정·혜이므로 그것을 장애하는 개의 순서도 당연히 욕탐과 진에, 도회, 혼면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112.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c11 - T29n1558_p0019c12. 도거(掉擧)
    "掉謂掉舉令心不靜。"
  11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9 / 1397. 도거(掉擧)
    "도(掉)란 이를테면 도거(掉擧)로서, 마음으로 하여금 고요히 안정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114.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10c11 - T29n1558_p0110c24. 혼면개(惛眠蓋)와 도회개(惛眠蓋)의 작용
    "何故惛眠掉悔二蓋各有二體合立一耶。食治用同故合立一。食謂所食。亦名資糧。治謂能治。亦名非食。用謂事用。亦名功能。由此經中作如是說。惛眠雖二食非食同。何等名為惛眠蓋食。謂五種法。一[夢-夕+登]瞢。二不樂。三頻申。四食不平性。五心昧劣性。何等名為此蓋非食。謂光明想。如是二種事用亦同。謂俱能令心性沈昧。掉悔雖二食非食同。何等名為掉悔蓋食。謂四種法。一親里尋。二國土尋。三不死尋。四隨念昔種種所更戲笑歡娛承奉等事。何等名為此蓋非食。謂奢摩他。如是二種事用亦同。謂俱能令心不寂靜。由此說食治用同故惛眠掉悔二合為一。"
  11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65 / 1397. 혼면개(惛眠蓋)와 도회개(惛眠蓋)의 작용
    "어떠한 이유에서 혼면과 도회의 두 '개'는 각기 두 가지의 번뇌를 합하여 하나로 설정하게 된 것인가?
    먹이[食]와 대치[治]와 작용[用]이 동일하기 때문에 [번뇌 자체는 다를지라도] 합하여 하나의 '개'로 설정한 것이다. 여기서 '먹이'란 이를테면 [번뇌에] 먹히는 것[所食]을 말하는데, 역시 또한 자량(資糧)이라고도 이름한다. 대치란 이를테면 능히 대치하는 것으로 역시 또한 비식(非食, 즉 '먹히는 것'에 반대되기 때문에 '비식'이다)이라고도 이름한다. 그리고 작용이란 이를테면 사용(事用)을 말하는데 역시 또한 공능(功能)이라고도 이름한다.
    무엇을 일컬어 혼면개의 먹이라고 한 것인가?
    말하자면 다섯 종류의 법이니, 첫째는 눈꺼풀이 무거워 감기는 것[瞢]이며, 둘째는 신이 나지 않는 것[不樂]이며, 셋째는 노곤하여 하품하는 것[頻申]이며, 넷째는 너무 많이 먹어 소화가 되지 않는 것[食不平性]이며, 다섯째는 명료하게 감지하지 못하는 것[心昧劣性]이다.
    무엇의 일컬어 이러한 혼면개의 비식(즉 대치)이라고 한 것인가?
    이를테면 밝은 생각[光明想]이다.53)
    이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번뇌(惛과 眠) 작용도 역시 동일하니, 이를테면 다 같이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가라앉게 하고 어둡게 하는 것이다.
    도회(掉悔)는 비록 두 가지 번뇌일지라도 먹이와 비식이 동일하다.
    무엇을 일컬어 도회개의 먹이라고 한 것인가?
    이를테면 네 종류의 법이니, 첫째는 친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親里尋]이며, 둘째는 고국에 대해 생각하는 것[國土尋]이며, 셋째는 죽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不死尋]이며, 넷째는 옛날에 겪었던 여러 가지 희롱과 환락과 친구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무엇을 일컬어 이 개의 비식이라고 한 것인가?
    이를테면 사마타(奢摩他, samatha,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는 선정, 止로 번역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번뇌(掉와 悔)의 작용도 역시 동일하니, 다 같이 능히 마음으로 하여금 고요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54)
    이에 따라 먹이와 대치와 작용이 동일하기 때문에 혼침(惛沈)과 수면(睡眠), 도거(掉擧)와 추회(追悔)의 두 가지 번뇌를 합하여 하나의 '개'로 설하게 된 것이다.
    53) 밝은 생각을 일으켜 마음이 분명하게 되면 혼면의 먹이(다섯 가지)가 능히 퇴치되기 때문에 비식(非食)이라 일컬은 것이다. 광명상(光明想)은 명조사유(明造思惟)라고도 한다.
    54) 참고로 욕탐개의 먹이는 좋아할 만한 것의 상[可愛相]이며, 대치(비식)는 그것이 부정하다고 하는 생각[不淨想]이다. 진에개의 먹이는 증오할 만한 것의 상이며, 대치는 자(慈)의 선근이다. 의개의 먹이는 3세이며(『잡아함경』 권제27에서 "과거세에서 이와 같은 의개가 낳아진다"고 설하였기 때문이다), 대치는 능히 연성(緣性)과 연기(緣起)를 참답게 관찰하는 것이다.(『현종론』 권제28, 앞의 책, p.237)"
  116.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a03 - T29n1558_p0021a09. 무참(無慚)
    "今次當說於前所辯諸心所中少分差別。無慚無愧愛之與敬差別云何。頌曰。
     無慚愧不重 於罪不見怖
     愛敬謂信慚 唯於欲色有
    論曰。此中無慚無愧別者於諸功德及有德者。無敬無崇無所忌難無所隨屬說名無慚。即是恭敬所敵對法。"
  117.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0 / 1397. 무참(無慚)
    "이제 다음으로 마땅히 앞에서 분별한 온갖 심소법 가운데 약간의 차별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참(無慚)과 무괴(無愧), 애(愛)와 경(敬)의 차별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무참과 무괴는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죄를 두렵게 여기지 않는 것이며,
     '애'와 '경'이란 말하자면 신(信)과 참(慚)으로서
     오로지 욕계와 색계에만 있을 뿐이다.
     無慚愧不重 於罪不見怖
     愛敬謂信慚 唯於欲色有
    논하여 말하겠다. 무참과 무괴의 차별은 이러하다. 온갖 공덕(戒·定·慧의 삼학을 말함)과 공덕 있는 자(즉 스승)에 대해 공경하는 일이 없고, 숭배하는 일이 없으며, 어렵게 여겨 꺼리는 일[忌難]도 없을 뿐더러, 따라 속하는 일[隨屬], 즉 제자로서의 예의도 없는 것을 일컬어 무참이라고 한다. 즉 이는 바로 공경에 적대되는 법이다.68)
    68) 그러나 무참은 공경이 결여된 상태는 아니며, 개별적 존재[別體]로서 공경과 대응하는 법이다. 무명(無明)과 명(明)의 관계 역시 이러하다.(본론 「세간품」 권제10 참조.)"
  118.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a17 - T29n1558_p0021a21. 무참(無慚)·무괴(無愧)
    "有餘師說。於所造罪自觀無恥名曰無慚。觀他無恥說名無愧。若爾此二所觀不同。云何俱起。不說此二一時俱起別觀自他。然有無恥。觀自時勝說名無慚。復有無恥。觀他時增說為無愧。"
  11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81-182 / 1397. 무참(無慚)·무괴(無愧)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지은 죄에 대해 그 자체를 관찰하여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을 일컬어 무참이라 하고, 다른 것(이를테면 이숙과)을 관찰하고서도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을 일컬어 무괴라 한다"고 하였다.72)
    만약 그렇다면 이 두 가지는 관찰되는 바가 동일하지 않은데, 어떻게 구기(俱起)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두 가지가 일시에 구기하여 그 자체와 다른 것을 별도로 관찰하는 것이라고는 설하지 않았다.73) 그렇지만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無恥]이 죄 그 자체를 관찰할 때 두드러진 것을 설하여 무참이라 이름하고, 또한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이 [죄 그 자체와는] 다른 것을 관찰할 때 증성한 것을 설하여 무괴라고 하는 것이다.
    72) 말하자면 이숙인은 마땅히 때가 되어 현기하기 때문에 '그 자체'라고 하였고, 그것의 이숙과는 후시(後時)에 비로소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것'이라고 하였다.(『현종론』 권제6, 한글대장경200, p. 148)
    73) 이러한 무참과 무괴가 동시에 구기하여 각기 별도로 죄 자체나 다른 사실을 관찰한다는 것이 아니라, 죄 자체를 관찰할 때에도 다른 사실을 관찰하는 마음이 수반되는 경우가 있지만 다만 죄 그 자체에 대해 부끄러워함이 없는 마음[無恥]이 두드러진 것을 무참이라 한다. 즉 이 때에도 역시 무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작용이 저열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지 않으며, 다만 수승한 작용에 근거하여 무참이라고 한다는 뜻. 그리고 무괴는 이 반대의 경우이다."
  120.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a09 - T29n1558_p0021a17. 무괴(無愧)
    "為諸善士所訶厭法說名為罪。於此罪中不見怖畏說名無愧。此中怖言。顯非愛果。能生怖故。不見怖言欲顯何義。為見而不怖名不見怖。為不見彼怖名不見怖。若爾何失。二俱有過。若見而不怖應顯智慧。若不見彼怖應顯無明。此言不顯見與不見。何所顯耶。此顯有法是隨煩惱。為彼二因說名無愧。"
  12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0 / 1397. 무괴(無愧)
    "또한 모든 선사(善士)가 꾸짖고 싫어하는 법을 일컬어 죄(罪)라고 하는데, 이러한 죄에 대해 두렵게 보지 않는 것을 일컬어 무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두렵다'는 말은 애호할 만하지 않은 과보를 나타내니, 그것은 능히 두려움을 낳기 때문이다.69)
    ' 두렵게 보지 않는다'는 말은 어떠한 뜻을 나타내고자 한 것인가? 그것(죄)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일컬어 '두렵게 보지 않는다'고 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죄의 과보)의 두려움을 보지 않는 것을 '두렵게 보지 않는다'고 말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떠한 과실이 범하게 되는 것인가?
    두 가지 모두에 과실이 있게 될 것이니, 만약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지혜를 드러내게 될 것이며, 그것의 두려움을 보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무명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70)
    [두렵게 보지 않는다고 하는] 이 말은 견(見,즉 사견의 지혜)이나 불견(不見,무명)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가?
    이는 어떤 수번뇌(隨煩惱)의 법으로서 그러한 두 가지 원인(혜와 무명)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설하여 무괴라 이름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71)
    69) 미래에 지옥 등의 과보를 받는다는 말을 듣고서 현재 두려움을 낳게 되는 것을 말함.
    70) 즉 전자는 악과(惡果)인 줄 알면서도 두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견(邪見,판단의 慧를 본질로 함)이 되는 것이고, 후자는 두려워할 만한 과보를 초래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명이 되는 것이다.
    71) 이러한 원인을 『현종론』 권제6(한글대장경200, p. 147)에서는 인근인(隣近因)이라 한다. 즉 사견과 무명의 동인이 되는 수번뇌를 일컬어 무괴라고 한다는 뜻. 이를테면 미래의 악과를 두렵게 보지 않는 무괴의 수번뇌에 의해 인과부정의 사견과 인과도리에 미혹하는 무명이 인기(引起)되어 현행하게 되는 것이다."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FOOTNOTE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제4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214startNum180 180 / 1397]. 무괴(無愧)"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122.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b28 - T29n1558_p0109b29. 분(忿)
    "除瞋及害於情非情令心憤發說名為忿。"
  12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5 / 1397. 분(忿)
    "진(瞋)과 해(害)를 제외한 것으로서, 유정과 비유정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분발(憤發)하게 하는 것을 설하여 '분(忿)'이라고 이름한다.35)
    35) 불선근의 진(瞋)이 유정을 미워하여 해치려고 하는 것이고, 번뇌구인 해(害)가 핍박하고 응징하려는 것이라면, '분'은 이 같은 두 가지 이외의 분발심(憤發心) 즉 격분하는 것을 말한다."
  124.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b29 - T29n1558_p0109c04. 10전과 그 근본번뇌
    "於此所說十種纏中無慚慳掉舉是貪等流。無愧眠惛沈是無明等流。嫉忿是瞋等流。悔是疑等流。有說。覆是貪等流。有說。是無明等流。有說。是俱等流。有知無知如其次第。"
  12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5 / 1397. 10전과 그 근본번뇌
    "이상에서 설한 열 종류의 전 중에서 무참과 '간'과 도거는 바로 탐의 등류(等流)이며, 무괴와 수면과 혼침은 바로 무명의 등류이며, '질'과 '분'은 바로 '진'의 등류이며, '회'는 바로 의(疑)의 등류이다.36) 그런데 ['부'의 경우] 어떤 이는 '부'란 바로 탐의 등류라고 설하였으며, 또 어떤 이는 바로 무명의 등류라고 설하였다. 혹은 어떤 이는 설하기를, "두 가지 모두의 등류이니, 그 순서대로 앎이 있는 자와 앎이 없는 자가 바로 그러하다"고 하였다.37)
    36) 무참과 간과 도거는 탐을 직접적인 원인[近因]으로 하여야 비로소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탐의 등류이며, 무괴와 수면과 혼침은 무명과 지극히 밀접하기 때문에 무명의 등류이며, '질'과 '분'은 그 상이 '진'과 동일하기 때문에 진의 등류이며, '회'는 유예(猶豫) 즉 망설임에 의해 생겨나기 때문에 '의'의 등류이다. 이와 같이 열 가지 종류의 전은 모두 번뇌로부터 생겨나는 번뇌의 등류이다. 그래서 그것을 '수번뇌'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37) 지식이 있는 자는 애(愛) 즉 탐에 의해 그것을 낳기 때문이며, 무지한 자는 치(癡) 즉 무명에 의해 그것을 낳기 때문이다. 즉 학자나 관리와 같이 지식이 있는 자는 명리의 탐욕 때문에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하며, 무지한 자는 참회할 줄 몰라서 자신의 죄를 은폐하는 것이다."
  126.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17 - T29n1558_p0109c18. 수번뇌(隨煩惱)
    "此垢并纏從煩惱起。是故皆立隨煩惱名。"
  127.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7 / 1397. 수번뇌(隨煩惱)
    "이같이 이러한 구(垢)와 아울러 전(纏)은 번뇌로부터 생겨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수번뇌'라는 명칭으로 설정한 것이다."
  128.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b29. 부(覆)
    "隱藏自罪說名為覆。"
  12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5 / 1397. 부(覆)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하는 것을 설하여 '부(覆)'라고 이름한다."
  130.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b24 - T29n1558_p0109b25. 간(慳)
    "慳謂財法巧施相違令心吝著。"
  13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4 / 1397. 간(慳)
    "'간(慳)'이란, 이를테면 재시(財施)·법시(法施)의 교시(巧施 : 타인에게 보시하여 이익을 주는 것)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인색하여 집착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132.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b24. 질(嫉)
    "嫉謂於他諸興盛事令心不喜。"
  13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4 / 1397. 질(嫉)
    "'질(嫉)'이란, 이를테면 타인의 온갖 흥하고 성한 일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기뻐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134.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09 - T29n1558_p0109c10. 뇌(惱)
    "惱謂堅執諸有罪事。由此不取如理諫悔。"
  13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6 / 1397. 뇌(惱)
    "'뇌'란 이를테면 온갖 나쁜 일[罪事]에 대해 견고히 집착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충고[諫]도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다."
  136.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04 - T29n1558_p0109c08. 번뇌구(煩惱垢)와 그 근본번뇌
    "餘煩惱垢其相云何。頌曰。
     煩惱垢六惱 害恨諂誑憍
     誑憍從貪生 害恨從瞋起
     惱從見取起 諂從諸見生"
  137.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5-956 / 1397. 번뇌구(煩惱垢)와 그 근본번뇌
    "그 밖의 [수번뇌인] 번뇌구(煩惱垢)의 상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번뇌구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뇌(惱)·
     해(害)·한(恨)·첨(諂)·광(誑)·교(憍)가 바로 그것이다.
     煩惱垢六惱 害恨諂誑憍
     '광'과 '교'는 탐에서 생겨난 것이고
     '해'와 '한'은 진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며
     '뇌'는 견취로부터 일어나고
     '첨'은 온갖 견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誑憍從貪生 害恨從瞋起
     惱從見取起 諂從諸見生"
  138.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14 - T29n1558_p0109c18. 번뇌구와 그 근본번뇌
    "如是六種從煩惱生。穢污相麤名煩惱垢。於此六種煩惱垢中。誑憍是貪等流。害恨是瞋等流。惱是見取等流。諂是諸見等流。如言何曲謂諸惡見。故諂定是諸見等流。此垢并纏從煩惱起。是故皆立隨煩惱名。"
  13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p. 956-957 / 1397. 번뇌구와 그 근본번뇌
    "이와 같은 여섯 가지 종류는 번뇌(즉 근본수면)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더럽고[穢汚] 그 상이 거칠기 때문에 '번뇌구'라고 이름하였다. 즉 이러한 여섯 가지 종류의 번뇌구 중에서 '광'과 '교'는 바로 '탐'의 등류이며, '해'와 '한'은 바로 '진'의 등류이며, '뇌'는 바로 견취의 등류이다. 그리고 '첨'은 바로 온갖 '견'의 등류이다. 예컨대 "무엇을 아곡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온갖 악견을 말한다"고 설하였기 때문에 '첨'은 결정코 바로 온갖 '견'의 등류인 것이다.
    이같이 이러한 구(垢)와 아울러 전(纏)은 번뇌로부터 생겨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수번뇌'라는 명칭으로 설정한 것이다."
  140. "逼迫",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3월 15일에 확인.
    "逼迫(핍박): ①(사람을) 억누르고 괴롭히는 것 ②(형편(形便)이) 쪼들리거나 어려워 절박(切迫)한 상태(狀態)
    逼 핍박할 핍
    1. 핍박하다(逼迫--) 2. 닥치다 3. 가까이하다 4. 몰다 5. 좁다 6. 좁아지다 7. 쪼그라들
    迫 핍박할 박
    1. 핍박하다(逼迫--) 2. 닥치다 3. 줄어들다 4. 가까이하다 5. 궁하다(窮--: 가난하고 어렵다) 6. 좁다 7. 몰리다 8. 다가오다 9. 다급하다(多急--) 10. 허둥거리다 11. 다그치다"
  14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10 - T29n1558_p0109c11. 해(害)
    "害謂於他能為逼迫。由此能行打罵等事。"
  14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6 / 1397. 해(害)
    "'해'란 이를테면 다른 유정에 대해 능히 핍박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에 의해 능히 때리고 꾸짖는 등의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14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11 - T29n1558_p0109c12. 한(恨)
    "恨謂於忿所緣事中數數尋思結怨不捨。"
  14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6 / 1397. 한(恨)
    "'한'이란 이를테면 '분(忿)'의 소연에 대해 자주자주 생각하여 원한을 품어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14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12 - T29n1558_p0109c13. 첨(諂)
    "諂謂心曲。由此不能如實自顯。或矯非撥。或設方便令解不明。"
  14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6 / 1397. 첨(諂)
    "'첨'이란 이를테면 마음의 아곡(阿曲)을 말하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능히 스스로를 참답게 드러내지 않게 되며, 혹은 [남의 허물을] 바로잡아 다스리지 않게 되며, 혹은 방편을 설(設)하여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게 되는 것이다.38)
    38) 자신의 마음을 방편으로 숨기고 교활한 모략으로써 타인의 마음을 유혹하여 실제의 앎과는 어긋나게 하는 것을 '첨'이라 이름한다.(『현종론』 권제27, 앞의 책 p.227)"
  14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13. 광(誑)
    "誑謂惑他。"
  14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6 / 1397. 광(誑)
    "'광'이란 이를테면 다른 이를 미혹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14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b14 - T29n1558_p0021b17.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
    "尋伺慢憍差別云何。頌曰。
     尋伺心麤細 慢對他心舉
     憍由染自法 心高無所顧"
  15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5 / 1397.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
    "그렇다면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尋)과 사(伺)는 마음의 거칠고 세밀함이며
     만(慢)은 타인에 대한 마음의 오만함[擧]이며
     교(憍)는 자신의 법에 염착함으로써
     마음이 고양되어 돌아봄이 없는 것이다.
     尋伺心細麤 慢對他心擧
     憍由染自法 心高無所顧"
  15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c12 - T29n1558_p0021c14. 교(憍)
    "憍謂染著自法為先令心傲逸無所顧性。有餘師說。如因酒生欣舉差別說名為醉。如是貪生欣舉差別說名為憍。"
  15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8 / 1397. 교(憍)
    "'교'는 이를테면 먼저 자신의 법에 대해 염착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오만 방일[傲逸]하게 하여 다른 것을 돌아보는 일이 없는 성질을 말한다.87)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술에 의해 생겨난 흔거(欣擧, 들떠 거들먹거리는 것)의 차별을 설하여 취한 것이라고 하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탐으로부터 생겨난 흔거의 차별을 설하여 '교'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88)
    87) 즉 자신의 용감함이나 건강, 재산, 지위, 도덕규범[戒], 지혜, 친족 등의 존재[法]에 대해 먼저 염착을 일으킴으로써 마음에 오만 방일함이 생겨 온갖 선본(善本)을 되돌아보는 바가 없기 때문에, '교'라고 일컬은 것이다. 온갖 선본에 대해 되돌아보는 바가 없다고 함은, 마음이 오만해짐에 따라 온갖 선업을 즐거이 수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현종론』 권제6, 한글대장경200, p. 152)
    88) 이는 곧 염오의 희(喜)가 '교'라는 뜻으로, 유부 비바사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희는 제2선 이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교는 3계에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5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b14 - T29n1558_p0021b19. 심(尋)과 사(伺)
    "尋伺慢憍差別云何。頌曰。
     尋伺心麤細 慢對他心舉
     憍由染自法 心高無所顧
    論曰。尋伺別者。謂心麤細。心之麤性名尋。心之細性名伺。"
  15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5 / 1397. 심(尋)과 사(伺)
    "그렇다면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尋)과 사(伺)는 마음의 거칠고 세밀함이며
     만(慢)은 타인에 대한 마음의 오만함[擧]이며
     교(憍)는 자신의 법에 염착함으로써
     마음이 고양되어 돌아봄이 없는 것이다.
     尋伺心細麤 慢對他心擧
     憍由染自法 心高無所顧
    논하여 말하겠다. 심(尋)과 사(伺)란 이를테면 마음의 거칠고 세밀함을 말한다. 즉 마음의 거친 성질[麤性]을 일러 '심'이라고 이름한 것이며, 마음의 세밀한 성질[細性]을 일러 '사'라고 이름한 것이다."
  15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b18 - T29n1558_p0021b27. 심(尋)과 사(伺)
    "論曰。尋伺別者。謂心麤細。心之麤性名尋。心之細性名伺。云何此二一心相應。有作是釋。如冷水上浮以熟酥上烈日光之所照觸。酥因水日非釋非凝。如是一心有尋有伺。心由尋伺不遍細麤。故於一心俱有作用。若爾尋伺是麤細因。非麤細體。如水日光是凝釋曰體非凝釋。又麤細性相待而立。界地品別上下相形。乃至有頂應有尋伺。又麤細性無別體類。不可依之以別尋伺。"
  15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85-186 / 1397. 심(尋)과 사(伺)
    "논하여 말하겠다. 심(尋)과 사(伺)란 이를테면 마음의 거칠고 세밀함을 말한다. 즉 마음의 거친 성질[麤性]을 일러 '심'이라고 이름한 것이며, 마음의 세밀한 성질[細性]을 일러 '사'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심·사의] 두 가지가 한 찰나의 마음[一心]과 상응하[여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81)
    어떤 이는 이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즉 "찬물 위에 떠 있는 숙소(熟酥) 상에 뜨거운 햇볕이 비추어 쪼이더라도 숙소는 풀리지도 않고 엉키지도 않는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한 찰나의 마음에 심도 존재하고 사도 존재하니, 마음은 이러한 심과 사로 말미암아 두루 세밀하지도 거칠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찰나의 마음에 [이 두 가지 심소는] 함께 존재하여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비바사사의 제1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심과 사는 바로 거칠고 세밀함의 원인으로서, 거칠고 세밀함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니, 이를테면 [찬]물과 햇볕은 바로 [숙소가] 엉키고 풀리는 것의 원인으로서, 그 자체가 엉키거나 풀리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거칠고 세밀한 성질[麤·細性]은 상대(相待)적으로 설정된 것이니, 3계(界) 9지(地) 9품(品)의 차별은 상하로서 서로 형성된 것이며, 그럴 경우 나아가 유정천(有頂天)에도 마땅히 심과 사가 존재한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82) 또한 거칠고 세밀한 성질은 [다만 마음의 차별일 뿐] 개별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에 의해서는 심과 사를 분별할 수 없는 것이다.(세친의 난)
    81) 이 난문은 보광이나 법보에 의하면 경부에 의한 것이다. 즉 유부 범주표 상에서 다른 의식작용과 다양하게 결합할 수 있는 부정지법에 속하는 심(尋, vitarka)과 사(伺, vicāra)는 일반적으로 마음(전5식)으로 하여금 감각적 대상(5경)을 추구하게 하는 보다 거친 성질의 의식작용[心之麤性], 제6의식으로 하여금 비감각적 대상(법경)을 파악하게 하는 보다 세밀한 성질의 의식작용[心之細性]으로 정의되는데, 양자는 마치 찬물 위에 숙소(熟酥)를 띄워놓고 뜨거운 햇볕을 쪼이면 풀리지도 않고 서로 엉키지도 않은 채 각기 제 형태를 유지하듯이 개별적 실체(別體)로 상응구기함으로써 마음으로 하여금 추(酥)·세(細)에 치우치지 않고 고른 인식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유부에서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의식작용(麤·細)의 기체로서 '심' 과 '사'라고 하는 존재를 상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햇볕과 찬물은 숙소를 엉키거나 풀리지 않게 하는 원인으로, 그 본질[體]이 아니듯이 심과 사 역시 마음을 추·세에 치우치지 않게 하는 원인일 뿐, 그 자체 추·세의 본질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그 자체의 본질을 갖지 않은 어떤 것을 개별적 실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경량부의 기본논리이다. 그렇다고 할 때 개별적 실체가 아닌 추·세, 즉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사태는 한 찰나의 마음에 동시에 일어날 수 없으며, 또한 상응한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호 모순되는 그것들은 다만 동일물[心]의 계시적 차별상이기 때문이다. 곧 '종자상속의 이론'을 교설의 기본틀로 삼는 경량부로서는 유부의 개별적 실체로서의 심·심소 상응구기설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여기서의 논의도 그 한 예일 뿐이다.
    82) 3계 9지 9품 중에서 보다 상계 상지의 상품의 심소는 세밀하다고 해야 할 것이고, 보다 하계 하지의 하품의 심소는 거칠다고 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유정천 즉 비상비비상처의 상품은 하품보다 세밀하지만 하품은 그 지의 멸진정보다는 거칠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유부에 의하는 한 초선 이상에는 심·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15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b27 - T29n1558_p0021c02. 심(尋)과 사(伺)
    "復有釋言。尋伺二法是語言行。故契經言。要有尋伺方有語言。非無尋伺此語言行。麤者名尋。細者名伺。於一心內別法是麤別法是細。於理何違。若有別體類理實無違。然無別體類故成違理。"
  15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6 / 1397. 심(尋)과 사(伺)
    "다시 어떤 이는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심과 사의 두 가지 법은 바로 어언(語言)의 행(行)이니,83) 그래서 계경에서 말하기를, '요컨대 심·사가 있어 비로소 어언이 있게 된 것이다'고 하였던 것이다. 곧 심과 사가 없다면 이러한 어언의 행도 있지 않을 것이니, 그러한 것 중에서 거친 것을 '심'이라 이름하고, 세밀한 것을 '사'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러니 1찰나의 마음 안에 개별적인 법[別法]으로서의 거친 것(심)과 개별적인 법으로서의 세밀한 것(사)이 있을지라도 이치상 무슨 모순이 있을 것인가?(비바사사의 제2설)
    83) 여기서 어언(語言)의 '행(saṃskāra)'이란 말의 원인이 되어 그것을 능히 일으키게 하는 근거를 말한다. 이 설은 보광은 비바사사의 학설로, 법보는 유부 이사(異師)의 학설로 평석하고 있으나 칭우는 경량부의 학설로 평석하고 있다."
  15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b26 - T29n1558_p0021b27. 심(尋)과 사(伺)에 대한 세친의 견해
    "又麤細性無別體類。不可依之以別尋伺。"
  16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6 / 1397. 심(尋)과 사(伺)에 대한 세친의 견해
    "또한 거칠고 세밀한 성질은 [다만 마음의 차별일 뿐] 개별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에 의해서는 심과 사를 분별할 수 없는 것이다.(세친의 난)"
  16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c01 - T29n1558_p0021c09. 심(尋)과 사(伺)에 대한 세친의 견해
    "若有別體類理實無違。然無別體類故成違理。一體類中無容上下俱時起故。若言體類亦有差別。應說體類別相云何。此二體類別相難說。但由上下顯其別相。非由上下能顯別相。一一類中有上下故。由是應知。尋伺二法定不可執一心相應。若爾云何契經中說於初靜慮具足五支。具五支言。就一地說非一剎那故無有過。"
  16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7 / 1397. 심(尋)과 사(伺)에 대한 세친의 견해
    "만약 [자성의 차별을 지닌] 개별적인 실체의 종류[別體類]로서 존재한다면 이치상 실로 어떠한 모순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개별적인 실체의 종류로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치상 모순이니, 하나의 실체의 종류 중에 상·하 [두 품류]가 동시에 일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84) 만약 [이러한 두 가지] 실체의 종류 역시 차별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마땅히 그러한 실체의 차별상이 어떠한가에 대해 설해보아야 할 것이다.(세친의 再難)
    이러한 두 가지 실체의 종류의 차별상은 [너무나 미묘하여] 설하기 어려우며, 다만 상·하(즉 細·麤)에 의해 그 차별상을 나타낼 수 있을 뿐이다.(비바사사의 답)
    상· 하에 의해 능히 그 차별상을 나타낼 수 없으니, [심·사 뿐만 아니라] 각각의 종류 중에도 상·하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심·사의 두 가지 법은 결정코 한 찰나의 마음과 상응한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세친의 재난)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계경 중에서 "초정려에서는 5지(支)를 구족한다"고 설하였겠는가?(비바사사의 반증)85)
    '5지를 구족한다'는 말은 어떤 한 지(地)에 대해 설한 것으로, 1찰나에 그러하다는 말은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떠한 허물도 없는 것이다.(세친의 釋經)
    84) 세친 역시 경량부처럼 심·사 무별체설을 취한다. 따라서 각기 개별적인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 심· 사 즉 상·하 2법이 동시에 구기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심·사의 일심 상응설은 이치상 모순이라는 것이다.
    85) 『중아함경』 권제58 『법락니경(法樂尼經)』(대정장1, p. 788). '초선에는 5지(支)가 있으니, 각(覺, 尋의 구역)·관(觀, 伺의 구역)·희(喜)·락(樂)·일심(一心, 즉 心一境性)이 그것으로, 이것을 이른바 초선의 5지라고 한다' 정려지에 대한 논의는 본론 권제28(p.1281 이하)을 참조 바람."
  16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b26 - T29n1558_p0109b27. 수면(睡眠)
    "眠謂令心昧略為性。無有功力執持於身。"
  16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4 / 1397. 수면(睡眠)
    "'면(眠)'이란, 이를테면 마음으로 하여금 흐리멍덩[昧略]하게 함을 본성으로 하는 것으로, [이것이 일어나는 경우] 몸을 집지(執持)할 만한 공력(功力)이 없게 된다."
  165.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10a02 - T29n1558_p0110a10. 수번뇌의 계계(界繫) 분별
    "此隨煩惱誰何界繫。頌曰。
     諂誑欲初定 三三界餘欲
    論曰。諂誑唯在欲界初定。寧知梵世有諂誑耶。以大梵王匿己情事。現相誑惑馬勝苾芻。此二於前雖已分別義相應故今復重辯。惛掉憍三通在三界。所餘一切皆唯在欲。謂十六中五如前辯。所餘十一唯欲界繫。"
  16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p. 958-959 / 1397. 수번뇌의 계계(界繫) 분별
    "이 같은 수번뇌 중의 어떤 것은 어떠한 계(界)에 계속(繫屬)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첨'과 '광'은 욕계와 초정려에 존재하고,
     세 가지는 3계에, 그 밖의 것은 욕계에 존재한다.
     諂誑欲初定 三三界餘欲
    논하여 말하겠다. '첨'과 '광'은 오로지 욕계와 초정려에만 존재한다.
    범세(梵世, 즉 초정려)에 '첨'과 '광'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는 것인가?
    대범왕은 자신의 사정을 숨기고 아는 체하는 상을 나타내어 마승(馬勝) 필추를 속여 미혹시켰기 때문이다.41) 그리고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앞(권제4)에서 이미 분별하였을지라도 그 뜻이 상응하기 때문에 지금 다시 거듭하여 분별한 것이다.
    그리고 혼침과 도거와 교(憍)의 세 가지는 다 같이 3계에 존재하며, 그 밖의 일체의 수번뇌는 모두 오로지 욕계에만 존재한다. 즉 열여섯 가지(10전과 6구) 중 다섯 가지(첨·광·혼침·도거·교)는 앞에서 분별한 바와 같고, 그 밖의 나머지 열한 가지는 오로지 욕계에만 계속되는 것이다.
    41) 이 에피소드에 관해서는 본론 권제4(p.179)를 보라."
  167.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26 - T29n1558_p0110a02. 수번뇌의 3성 분별
    "此隨煩惱誰通何性。頌曰。
     欲三二餘惡 上界皆無記
    論曰。欲界所繫眠惛掉三皆通不善無記二性所餘一切皆唯不善。上二界中隨應所有一切唯是無記性攝。"
  168.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8 / 1397. 수번뇌의 3성 분별
    "이 같은 수번뇌 중의 어떤 것은 어떠한 성질[性]과 통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욕계의 세 가지는 두 가지의 성질이고,
     그 밖의 것은 악이며, 상계의 것은 모두 무기이다.
     欲三二餘惡 上界皆無記
    논하여 말하겠다. 욕계에 계속(繫屬)되는 수면과 혼침·도거의 세 가지는 모두 불선과 무기의 두 가지 성질과 통하며, 그 밖의 일체의 수번뇌(즉 욕계계인 일곱 가지 전과 6번뇌구)는 모두 불선이다.
    상 2계 중에 상응하는 바에 따라 존재하는 일체의 수번뇌(즉 첨·광·교·혼침·도거)는 오로지 무기성에 포섭된다."
  16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b06 - T29n1558_p0020b14. 악작(惡作)
    "非諸善心皆有惡作。有時增數至二十三。惡作者何。惡所作體名為惡作。應知此中緣惡作法說名惡作。謂緣惡作心追悔性。如緣空解脫門說名為空。緣不淨無貪說為不淨。又見世間約所依處說能依事。如言一切村邑國土皆來集會。惡作即是追悔所依。故約所依說為惡作。又於果體假立因名。如說此六觸處應知名宿作業。"
  17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75-176 / 1397. 악작(惡作)
    "온갖 선심에 모두 악작(惡作)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53) 그것이 존재할 때에는 그 수가 증가하여 스물세 가지에 이른다.
    악작이란 무엇인가?
    그릇되게 지어진 것[惡所作] 자체를 일컬어 악작이라고 한다. 즉 그릇되게 지어진 것을 소연으로 하여 [생겨난] 법을 설하여 악작이라고 이름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그릇되게 지어진 것을 소연으로 하여 [생겨난] 마음의 추회(追悔)하는 성질을 말한다. 이는 마치 공(空)을 소연으로 하는 해탈문(解脫門)을 설하여 '공'이라 이름하고, 부정(不淨)을 소연으로 하는 무탐(無貪)을 설하여 '부정'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54) 또한 세간일반에서 보더라도 소의처(所依處)에 근거하여 그것에 능히 의지하는 것[能依事]을 설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일체의 시골이나 나라[國土]가 모두 와 모였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55) 즉 악작은 바로 추회의 소의가 되기 때문에 소의에 근거하여 악작이라고 설하게 된 것이다. 또한 결과 자체에 대해 일시 원인의 명칭을 설정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이러한 6촉처를 설하여 숙작업(宿作業)이라 이름하는 것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56)
    53) 악작이란 이를테면 후회로서, 이전에 착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이 선한 악작이지만, 모든 선심에는 반드시 이러한 작용이 있지 않기 때문에 선심과의 상응 유무가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54) 공을 소연으로 하는 해탈문은 그 자체 무루정으로서 공을 소연의 경계로 삼기 때문에 소연에 따라 '공 '이라 하였으며, 부정(不淨)의 자체는 무탐이지만 이 또한 소연에 따라 '부정'이라 이름하였다는 뜻.
    55) 일체의 시골[村邑]이 모두 와 모였다고 함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와 모였다는 뜻으로, 머무는 처소[所依處]에 근거하여 거기에 머무는 이[能依事]를 나타낼 수 있다는 예증.
    56) 숙작업(숙세의 선악업)을 원인으로 삼아 6촉처(6촉의 소의처가 되는 6근)의 결과가 생겨날 때, 결과인 6근에 원인의 명칭을 부여하여 숙작업이라고 할 수 있듯이, 악작으로 인해 추회(追悔)가 생기기 때문에 결과 인 추회하는 마음에 대해 그 원인이 되는 악작이라는 명칭을 부가할 수 있다는 뜻."
  17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b16 - T29n1558_p0020b18. 선의 악작과 불선의 악작
    "何等惡作說名為善。謂於善惡不作作中心追悔性。與此相違名為不善。此二各依二處而起。"
  17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76 / 1397. 선의 악작과 불선의 악작
    "어떠한 악작을 일컬어 선의 악작이라 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선을 짓지 않았거나 악을 지은 것에 대해 마음으로 추회(追悔)하는 성질을 선의 악작이라 하며, 이와 반대되는 것을 일컬어 불선의 악작이라 하니, 이러한 두 가지의 악작은 각기 두 가지 처소(선·불선)에 근거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17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9권. p. T29n1558_p0099a16 - T29n1558_p0099a26. 탐(貪)
    "言貪分二。謂欲有貪。此中有貪以何為體。謂色無色二界中貪此。名何因唯於彼立。彼貪多託內門轉故。謂彼二界多起定貪。一切定貪於內門轉故。唯於彼立有貪名。又由有人於上二界起解脫想。為遮彼故。謂於上界立有貪名。顯彼所緣非真解脫。此中自體立以有名。彼諸有情多於等至及所依止深生味著故。說彼唯味著自體。非味著境。離欲貪故。由此唯彼立有貪名。既說有貪在上二界。義准欲界貪名欲貪。故於頌中不別顯示。"
  17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859 / 1397. 탐(貪)
    "탐을 둘로 나눈다고 함은, 말하자면 욕탐(欲貪)과 유탐(有貪)이다. 여기서 유탐은 무엇을 본질로 삼는 것인가? 이를테면 색계와 무색계 중의 탐이다. 이러한 ['유탐'이라는] 명칭의 수면(隨眠)은 무슨 까닭에 오로지 그곳에만 설정하는 것인가? 그곳의 탐은 대개 내문(內門) 즉 내적인 경계에 의탁하여 일어나기 [→ 누락된 번역을 편집자가 추가함: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 2계에서 대개 선정[定]에 대해 탐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는데, 모든 선정에 대한 탐은 내문(內門) 즉 내적인 경계에 의탁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오로지 그곳에만 '유탐'이라는 명칭의 수면(隨眠)을 설정하게 된 것이다. 또한 어떤 이들은 상 2계에서 해탈하였다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으로,18) 그 같은 생각을 막기 위해서였다. 즉 상계에 '유탐'이라는 명칭의 수면(隨眠)을 설정하여 그들의 소연(所緣)이 참된 해탈이 아님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즉 여기서는 존재 자체(自體)를 설정하여 '유'라고 일컬었으니, 그곳의 모든 유정은 대개 등지(等至)나 소의지(所依止)에 깊이 미착(味著)하기 때문이다.19) 즉 그들은 오로지 그들 자체에 대해서는 미착한다고 설할 수 있을지라도 외적 대상[境]에 대해서는 미착하지 않으니, [그것에 대한] 욕탐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로 말미암아 오로지 그곳에만 '유탐'이라는 명칭의 수면(隨眠)을 설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미 유탐이 상 2계에 존재하는 번뇌라고 설하였으니, 이러한 뜻에 준하여 볼 때 욕계의 탐을 욕탐이라고 이름한다.20) 그래서 본송 중에서 별도로 나타내지 않은 것이다.
    18) 즉 어떤 이들은 색계와 무색계에서의 존재[有]를 해탈한 존재라는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유탐'이라는 명칭의 수면(隨眠)을 설정한 것으로, 이생 외도는 무상천(無想天)의 5백 대겁 동안의 무상을 진실의 해탈로 간주한다. 본론 권제5 (p.217) '무상정' 참조"
    19) '유(有)'란 내외의 일체의 존재를 포함하는 말이지만, 상 2계의 소연을 의미할 경우 정려심과 그 소의지(所依止)인 신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즉 상계의 유정은 이미 욕탐을 떠났기 때문에 외적 경계에 집착하는 일이 없으며, 오로지 선정과 자신에 대해서만 미착(味著)하기 때문이다.
    20) 즉 욕탐수면(欲貪隨眠)은 대개 외적 대상 즉 5욕경(欲境)을 소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외문전(外門轉)이다
  175. 운허, "等至(등지)". 2012년 10월 30일에 확인. 等至(등지)
    "等至(등지): 【범】 samāpatti 삼마발저(三摩鉢底)라 음역. 정(定)의 다른 이름. 마음과 몸이 평등·안온하여지는 것을 등(等)이라 한다. 정(定)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 등의 상태에 이르게 하므로 등지라 함."
  176. 阿含辭典, "三摩鉢底". 2013년 3월 16일에 확인
    "您所查詢的「三摩鉢底」:
    正受: 音譯「三摩鉢底」(samāpatti),另義譯為「等至」,字面上的意思,「三摩」(samā)是「正」,即「正確地」,「鉢底」(patti)是「獲得;得達;到達;達到」,合起來是指1.進入初禪以上(根本定)之定境,故另譯為「正定現前」。2.單存地指「達成;達到;進入」,如「初禪正受」、「隨意正受」。"
  177. 星雲, "正受". 2013년 3월 16일에 확인
    "正受:  梵語 samāpatti,巴利語同。音譯作三摩鉢底、三摩拔提、三摩[足*我]。意譯等至、正定現前。遠離邪想而領受正所緣之境的狀態。亦即入定時,以定之力使身、心領受平等安和之相。又定心而離邪亂稱為「正」,無念無想而納法在心稱為「受」,猶如明鏡之無心現物。觀經玄義分(大三七‧二四七下):「言正受者,想心都息,緣慮並亡,三昧相應,名為正受。」或謂正受為三昧、三摩地(梵 samādhi)或禪定之異名。
     蓋正受新譯「等至」,據大毘婆沙論卷一六二載,等持、三摩地、等至三者有異,以等持僅通於有心定,等至則廣通有心、無心定。俱舍論卷二十八,以四禪、四無色定為等至。大乘義章卷十三,以滅盡定、無想定之無心定為等至。又慧遠之觀無量壽經義疏卷末及智顗之觀無量壽佛經疏卷下等,就觀無量壽經中所說「教我思惟、教我正受」之語有所論述,謂散善之三福業為思惟,定善之十六觀為正受。〔雜阿含經卷十七、舊華嚴經卷十一功德華聚菩薩十行品、菩薩地持經卷九、解脫道論卷二、瑜伽師地論卷六十七、雜阿毘曇心論卷七〕(參閱「三昧」580、「三摩鉢底」673、「定」3171) p1989"
  178. 星雲, "三摩鉢底". 2013년 3월 16일에 확인
    "三摩鉢底:  梵語 samāpatti,巴利語同。音譯作三摩拔提、三摩[足*我]。意譯等至、正受、正定現前。指由遠離惛沈、掉舉等,而使身心達於平等安和之境。即身心安和之狀態,為三摩地之進境。依俱舍論卷二十八,四靜慮及四無色定為根本八等至,其中四靜慮及下三無色定等七者,各有味等至、淨等至、無漏等至三種,有頂地則僅有味等至與淨等至。
     有關三摩鉢底與三摩地(等持)之差別,大毘婆沙論卷一六二中列舉數種說法,有說等持以一物為體,等至以五蘊為體。有說等持為一剎那,等至則相續。有說諸等持即等至,而等至非是等持,如無想等至、滅盡等至即屬之。有說亦有等持非是等至,如不定心相應等持即屬之。又依俱舍論光記卷六所載,三摩地通於定、散及善、惡、無記等三性,唯有心平等,持心趣向於境,故稱等持。三摩鉢底則通於有心定與無心定二種,唯在定,不通於散。此外,亦有說三摩鉢底即禪定之異名者。又梁譯攝大乘論釋卷十一中,於三摩鉢底略舉境、眾類、對治、隨用、隨引、由事等六種體類差別。〔瑜伽師地論卷十一、十地經論卷五、雜阿毘曇心論卷七、俱舍論卷五、成唯識論述記卷六本、瑜伽論略纂卷一、卷五〕(參閱「三昧」580、「正受」1989) p673"
  179.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6권. p. T29n1558_p0088a29 - T29n1558_p0088b11. 욕탐(欲貪)
    "由過輕故不成業道。已辯三語。當辯意三。頌曰。
     惡欲他財貪 憎有情瞋恚
     撥善惡等見 名邪見業道
    論曰。於他財物惡欲名貪。謂於他財非理起欲。如何令彼屬我非他。起力竊心耽求他物。如是惡欲名貪業道。有餘師言。諸欲界愛皆貪業道。所以者何。五蓋經中依貪欲蓋佛說應斷此世間貪。故知貪名總說欲愛。有說。欲愛雖盡名貪。而不可說皆成業道。此惡行中攝麤品故。勿輪王世及北俱盧所起欲貪成貪業道。"
  18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6권. pp. 762-763 / 1397. 욕탐(欲貪)
    "그 밖의 세 가지 말(이간·추악·잡예어)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이제 마땅히 의업의 세 가지(애탐·진에·사견)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남의 재물에 대한 사악한 욕심이 탐이며
     유정을 미워하는 것이 진에(瞋恚)이며
     선악 따위를 부정하는 견해를
     일컬어 사견(邪見)의 업도라고 한다.
     惡欲他財貪 憎有情瞋恚
     撥善惡等見 名邪見業道
    논하여 말하겠다. 남의 재물에 대한 사악한 욕심이 탐(貪)이다. 이를테면 남의 재물에 대해 비리(非理)의 욕망을 일으켜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다른 이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소속시키기 위해 강제로, 혹은 슬그머니 취하려는 마음을 일으켜 다른 이의 재물을 탐착하고 희구하니, 이와 같은 사악한 욕심[惡欲]을 일컬어 '탐의 업도'라고 한다.
    그런데 유여사는 말하기를, "욕계의 온갖 애(愛)는 모두 탐의 업도이다"고 하였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오개경(五蓋經)』 중에서 탐욕개(貪欲蓋)에 의해 부처는 이 세간의 탐을 마땅히 끊어야 한다고 설하고 있기 때문에,80) '탐'이라고 하는 명칭은 욕계의 '애'를 설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설하기를, "욕계의 애를 비록 모두 다 탐이라 이름할 수 있을지라도 그 모두가 업도를 성취한다고는 설할 수 없으니, 이러한 악행 중에는 추품(麤品)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륜왕의 시기와 북구로주에서 일으킨 욕탐은 탐업도를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80) 『잡아함경』 권제29 제803경(대정장2, p. 206상). 여기서는 안나반나념(安那般那念)을 밝히면서 이 같은 식념관(息念觀)에서 세간의 탐애를 끊고 욕(欲)을 떠나 청정하며 ……온갖 의혹에서 벗어나 선법에 마음의 결정을 획득하면 5개(蓋)를 멀리할 수 있다고 하였다."
  181.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6권. p. T29n1558_p0088a29 - T29n1558_p0088b13. 진(瞋)
    "由過輕故不成業道。已辯三語。當辯意三。頌曰。
     惡欲他財貪 憎有情瞋恚
     撥善惡等見 名邪見業道
    論曰。... 於有情類憎恚名瞋。謂於他有情欲為傷害事。如是憎恚名瞋業道。"
  182.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6권. p. 762-763 / 1397. 진(瞋)
    "이제 마땅히 의업의 세 가지(애탐·진에·사견)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남의 재물에 대한 사악한 욕심이 탐이며
     유정을 미워하는 것이 진에(瞋恚)이며
     선악 따위를 부정하는 견해를
     일컬어 사견(邪見)의 업도라고 한다.
     惡欲他財貪 憎有情瞋恚
     撥善惡等見 名邪見業道
    논하여 말하겠다. ...
    유정류에 대해 증오하고 성내는 것을 진에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다른 유정에 대해 해코지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이와 같이 증오하고 성내는 것을 '진에의 업도'라고 한다."
  18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9권. p. T29n1558_p0099c04. 진(瞋)의 5부 분별
    "色無色界五部各除瞋。"
  18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762 / 1397. 진(瞋)의 5부 분별
    "그리고 색계와 무색계의 5부에는 각기 진(瞋)이 제외되며,29)
    29) 그곳에는 진(瞋)수면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를테면 '진'은 전5식이 감수하는 고수(苦受)에서 수증되는 것인데, 거기에는 고수가 없기 때문에 '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의 상속은 삼매[定]에 의해 윤택해지기 때문이며, 그곳에는 '진'의 이숙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진'은 그 속성상 불선의 악으로 분류되나 상계의 수면번뇌는 악이 아닌 유부무기, 다시 말해 올바른 지혜의 생기를 방해하는 그릇된 의식일 뿐이기 때문이다.(『현종론』 권제25, 앞의 책, p. 138 참조)"
  185. 星雲, "". 2013년 3월 15일에 확인
    "瞋:  梵語 pratigha 或 dvesa,巴利語 patigha 或 dosa 。又作瞋恚、瞋怒、恚、怒。音譯作醍鞞沙。心所(心的作用)之名。為三毒之一。係指對有情(生存之物)怨恨之精神作用。於俱舍宗屬不定地法之一,於唯識宗屬煩惱法之一。據俱舍論卷十六、成唯識論卷六所載,對違背己情之有情生起憎恚,使身心熱惱,不得平安之精神作用,名為瞋。又忿、恨、惱、嫉、害等隨煩惱,皆以瞋之部分為體,是為六根本煩惱(或十隨眠)之一。以其不屬推察尋求之性質(見),作用遲鈍,故為五鈍使之一。與貪、癡兩者,共稱為三毒(三不善根)。亦屬五蓋、十惡之一。
     瞋唯屬欲界所繫之煩惱,於色界、無色界則無。貪乃從喜愛之對境所起,反之,瞋則從違逆(不順心)之對境所起。瞋,為修學佛道上最大之障害,經論中常誡之,如大智度論卷十四(大二五‧一六七中):「瞋恚其咎最深,三毒之中,無重此者;九十八使中,此為最堅;諸心病中,第一難治。」「無瞋」即對境不起害心,為對治瞋之精神作用,屬俱舍宗十大善地法之一、唯識宗善心所之一,與無貪、無癡共稱三善根,又為四無量心中之慈無量心之體。〔雜阿含經卷二十七、卷二十八、悲華經卷六、大毘婆沙論卷二十七、卷三十四、卷四十四、卷四十八、顯揚聖教論卷一、順正理論卷四十、阿毘達磨藏顯宗論卷二十五、俱舍論光記卷十六、成唯識論述記卷六末〕 p6114"
  186.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021b14 - T29n1558_p0021b17.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
    "尋伺慢憍差別云何。頌曰。
     尋伺心麤細 慢對他心舉
     憍由染自法 心高無所顧"
  187.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185 / 1397.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
    "그렇다면 심(尋)과 사(伺), 만(慢)과 교(憍)의 차별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尋)과 사(伺)는 마음의 거칠고 세밀함이며
     만(慢)은 타인에 대한 마음의 오만함[擧]이며
     교(憍)는 자신의 법에 염착함으로써
     마음이 고양되어 돌아봄이 없는 것이다.
     尋伺心細麤 慢對他心擧
     憍由染自法 心高無所顧"
  188.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c10 - T29n1558_p0021c15. 만(慢)과 교(憍)
    "慢憍別者。慢謂對他心自舉性。稱量自他德類差別。心自舉恃陵蔑於他故名為慢。憍謂染著自法為先令心傲逸無所顧性。有餘師說。如因酒生欣舉差別說名為醉。如是貪生欣舉差別說名為憍。是謂慢憍差別之相。"
  189.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87-188 / 1397. 만(慢)과 교(憍)
    "만(慢)과 교(憍)의 차별은 이러하다.
    '만'은 이를테면 타인에 대해 마음이 스스로 치켜세우는 성질[自擧性]을 말하니, 자신과 다른 이의 덕(德)의 차별을 재고 헤아려 마음이 스스로를 믿고 거들먹거리며[擧恃] 다른 이를 능멸하기 때문에 '만'이라고 일컬은 것이다.86)
    '교'는 이를테면 먼저 자신의 법에 대해 염착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오만 방일[傲逸]하게 하여 다른 것을 돌아보는 일이 없는 성질을 말한다.87)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술에 의해 생겨난 흔거(欣擧, 들떠 거들먹거리는 것)의 차별을 설하여 취한 것이라고 하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탐으로부터 생겨난 흔거의 차별을 설하여 '교'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88)
    이상이 이를테면 '만'과 '교'의 차별상이다.
    86) 만이란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덕을 차별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다시 일곱 가지가 있다. 즉 가문·재산·지위·용모·힘·지식·기예·지계(持戒) 등에 있어 자신보다 열등한 이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하고 , 동등한 이에 대해 동등하다고 하는 만(慢), 자신과 동등한 이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하고, 자기보다 더 뛰어난 이에 자기와 동등하다고 하는 과만(過慢),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하는 만과만(慢過慢), 오취온을 나, 혹은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아만(我慢), 예류과의 뛰어난 덕을 증득하지 못했으면서 증득했다고 여기는 증상만(增上慢), 가문 등이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조금 열 등하다고 하는 비만(卑慢).,덕이 없으면서 자기에게 덕이 있다고 하는 사만(邪慢)이 그것이다.
    87) 즉 자신의 용감함이나 건강, 재산, 지위, 도덕규범[戒], 지혜, 친족 등의 존재[法]에 대해 먼저 염착 을 일으킴으로써 마음에 오만 방일함이 생겨 온갖 선본(善本)을 되돌아보는 바가 없기 때문에, '교'라고 일컬은 것이다. 온갖 선본에 대해 되돌아보는 바가 없다고 함은, 마음이 오만해짐에 따라 온갖 선업을 즐거이 수 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현종론』 권제6, 한글대장경200, p. 152)
    88) 이는 곧 염오의 희(喜)가 '교'라는 뜻으로, 유부 비바사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희는 제2선 이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교는 3계에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0.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9권. p. T29n1558_p0101a12 - T29n1558_p0101a21. 만(慢)
    "論曰。且慢隨眠差別有七。一慢二過慢三慢過慢四我慢五增上慢六卑慢七邪慢。令心高舉總立慢名。行轉不同故分七種。於劣於等如其次第謂己為勝謂己為等令心高舉總說為慢。於等於勝如其次第謂勝謂等總名過慢。於勝謂勝名慢過慢。於五取蘊執我我所令心高舉名為我慢。於未證得殊勝德中謂已證得名增上慢。於多分勝謂己少劣名為卑慢。於無德中謂己有德名為邪慢。"
  19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p. 878-879 / 1397. 만(慢)
    "논하여 말하겠다. 바야흐로 만수면의 차별에는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만(慢)이며, 둘째는 과만(過慢)이며, 셋째는 만과만(慢過慢)이며, 넷째는 아만(我慢)이며, 다섯째는 증상만(增上慢)이며, 여섯째는 비만(卑慢)이며, 일곱째는 사만(邪慢)이다. 즉 마음으로 하여금 잘난 체하고 거들먹거리게 하는 것[高擧心]에 대해 모두 '만(慢)'이라고 하는 명칭을 설정한 것으로, 일어나는 행상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일곱 가지 종류로 나눈 것이다. [자기보다] 열등하거나 동등한 이에 대해 순서대로 자기가 뛰어나다고 하거나 동등하다고 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잘난 체하게 하는 것을 모두 '만'이라고 설한다. [자기와] 동등하거나 뛰어난 이에 대해 순서대로 자기가 뛰어나다고 하거나 동등하다고 하는 것을 모두 '과만'이라고 이름한다. [자기보다]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그들보다] 뛰어나다고 하는 것을 일컬어 '만과만'이라고 한다. 오취온에 대해 그것을 자기[我]라고 하거나 자기의 것[我所]이라고 집착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잘난 체하게 하는 것을 일컬어 '아만'이라고 한다. 아직 증득하지 않은 수승한 덕성을 이미 증득하였다고 하는 것을 일컬어 '증상만'이라고 한다. [자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조금 열등하다고 하는 것을 일컬어 '비만'이라고 한다. 아무런 덕도 없으면서 자기에게 덕이 있다고 하는 것을 일컬어 '사만'이라고 한다."
  192.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9권. p. T29n1558_p0101b06 - T29n1558_p0101b25. 만(慢)의 견소단·수소단 분별
    "如是七慢何所斷耶。一切皆通見修所斷。諸脩所斷聖未斷時為可現行。此不決定。謂有脩所斷。而聖定不行。如殺生纏是脩所斷。而諸聖者必不現行。殺生纏者。顯由此惑發起故思斷眾生命。等言為顯盜婬誑纏無有愛全有愛一分。無有名何法。謂三界無常於此貪求名無有愛。有愛一分謂願當為藹羅筏拏大龍王等。此諸纏愛一切皆緣脩所斷故唯脩所斷。已說慢類等。有是脩所斷。何緣聖者未斷不起。頌曰。
     慢類等我慢 惡作中不善
     聖者而不起 見疑所增故
    論曰。等言為顯殺等諸纏無有愛全有愛一分。此慢類等我慢惡悔。是見及疑親所增長。雖脩所斷而由見疑背已折故。聖不能起。謂慢類我慢有身見所增。殺生等纏邪見所增。諸無有愛斷見所增。有愛一分常見所增。不善惡作是疑所增。故聖身中皆定不起。"
  193.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p. 880-882 / 1397. 만(慢)의 견소단·수소단 분별
    "그렇다면 이와 같은 7만은 무엇에 의해 끊어지는 것인가?
    일체의 만은 모두 견소단·수소단과 통한다.
    모든 수소단의 만은 성자가 아직 그것을 끊지 않았을 때에 현행한다고 해야 할 것인가?
    이는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76) 이를테면 수소단의 만일지라도 성자에게는 결정코 현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아직 욕탐을 떠나지 않은 성자에게] 살생의 전(纏)이 현행하지 않는 것과 같다. 즉 이것은 수소단이지만 모든 성자에게는 필시 현행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살생의 전'이란 이러한 혹(惑)에 의해 고의적인 의사[故思]를 발동시켜 중생의 생명을 끊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본송에서] '등'이라고 말한 것은 투도와 음행(즉 욕사행)과 허광어(즉 거짓말)의 전(纏)과, 무유애(無有愛)의 전부와 유애(有愛)의 일부도 역시 그러함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무유애란 어떠한 법을 일컫는 말인가?
    이를테면 3계의 무상(無常)으로, 이에 대해 탐구(貪求)하는 것을 무유애라고 한다.77) 그리고 유애의 일부란 이를테면 '원컨대 당래 애라벌나(藹羅伐拏,Airavaṇa, 제석천이 타는 용왕) 대용왕 따위가 되리라'고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러한 [살생 등의] 온갖 '전'과 '애'는 모두 수소단을 연으로 하기 때문에 오로지 수소단일 뿐이다.78)
    만의 종류 등에 수소단이 있음을 이미 논설하였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아직 그것을 끊지 못한 성자에게도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만(慢)의 종류 등과 아만과
     악작 중의 불선은
     성자에게 존재하더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견(見)과 의(疑)에 의해 증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慢類等我慢 惡作中不善
     聖有而不起 見疑所增故
    논하여 말하겠다. [본송에서] '등'이라고 하는 말은 살생 등의 온갖 전(纏)과 무유애의 전부와 유애의 일부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즉 이러한 만의 종류 등과 아만과 악업에 대한 후회(즉 악작)는 바로 견(見)과 의(疑)에 의해 직접적으로 증장된 것이기 때문으로, 비록 수소단이라 할지라도 그 배후의 법인 '견'과 '의'가 끊어졌기 때문에 성자에게는 능히 일어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만의 종류와 아만은 유신견에 의해 증장된 것이며, 살생 등의 전(纏)은 사견에 의해 증장된 것이며, 온갖 무유애는 단견에 의해 증장된 것이며, 유애의 일부는 상견에 의해 증장된 것이며, 불선의 악작은 바로 의(疑)에 의해 증장된 것이기 때문에 성자의 소의신 중에서 그 모두는 결정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76) 7만 중만과 아만을 제외한 5만은 수소단이기 때문에 욕탐을 떠나지 않은 성자에게 일어나는 일이 있지만, 만과 아만은 아직 끊지 않았을지라도 결정코 일어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77) 3계의 무상이란 3계의 중동분 상의 멸상(滅相)으로, 바로 중동분의 존재를 단멸시키는 이 같은 멸상에 집착하는 것을 무유애(vibhava-t a)라고 한다. 이에 반해 유애(bhava-t a)는 미래존재에 대한 탐애로서, 성자는 미래존재 중 일부인 악취 등의 존재를 바라는 일이 없기 때문에 '유애의 일부'가 현행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78) 즉 살생 등의 '전'은 수소단인 신업을 연으로 하여 일어나며, 허광어 등의 '전'은 어업을 연으로 하여 일어나며, 무유애는 수소단인 중동분 상의 멸상(滅相)을 연으로 하여 일어나며, 유애의 일부는 수소단인 당래의 소의신을 연으로 하여 일어난다. 이렇듯 이것들은 모두 수소단만을 연으로 하는 수소단의 법이지만, 성자로서 그것을 아직 끊지 못한 자 일지라도 결코 일어나는 일이 없다."
  194.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9권. p. T29n1558_p0103a13 - T29n1558_p0103a17. 의(疑)
    "何緣疑慢非無記根。疑二趣轉。慢高轉故。彼師謂疑二趣相轉。性動搖故不應立根。慢於所緣高舉相轉。異根法故亦不立根。為根必應堅住下轉。世間共了故彼非根。"
  195.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896-897 / 1397. 의(疑)
    "어떠한 이유에서 의(疑)와 만(慢)은 무기근이 아닌가?
    '의'는 두 가지 갈래[趣]에서 일어나며,112) '만'은 잘난 체하는 것[高]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그 논사(가습미라국의 비바사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의'는 두 갈래의 행상에서 일어나 그 성질이 동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으로 설정하지 않은 것이며, '만'은 소연에 대한 거들먹거리고 잘난 체하는 상[高擧相]에서 일어나 뿌리[根]의 존재와는 다르기 때문에 '근'으로 설정하지 않은 것이다. 즉 '근'이라고 할 만한 것은 반드시 견고하게 머물며, 마땅히 아래로 뻗어 내린다는 것은 세간이 다 같이 알고 있는 바이기 때문에 이것들은 '근'이 아닌 것이다."113)
    112) 여기서 '두 갈래'란 있을까 없을까, 그럴까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의혹의 망설임을 말한다.
    113) 즉 세간일반에서 관찰되는 뿌리[根]는 굳건하게 아래로 뻗어 내리지만, '의'는 동요를, '만'은 잘난 체하여 위로 지향하는 성질이기 때문에 '근'이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