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구원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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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구원방주는 1985년대한민국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개신교로부터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진 신자였던 윤홍선(율리아)이 창시한, 가톨릭 교회에서 파생된 가톨릭계 이단이다. 스스로는 여전히 가톨릭 교회의 일원이라 주장하고 있으나, 가톨릭 교회에서는 나주 윤 율리아와 연관된 일들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결정에 의해 공식적으로 파문되어 별도의 종교 단체로 간주되고 있다.

나주 성모 발현[편집]

1985년 6월 30일, 전라남도 금성시 중앙동에서 '정미용실'이라는 미용실을 운영하던 윤홍선(세례명 율리아)은 소유하던 성모상에서 피눈물과 향유가 흘러나왔다는 과학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우며 근거가 부족한 일방적 주장을 했고, 그 '기적'을 믿는 추종자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1]

   나주의 어느 성모상에서 1985년 6월 30일부터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주장과 함께 '나주 성모 발현'이라는 사적 계시가 문제 되기 시작하였다. 1991년 5월 16일을 시작으로 이른바 '성체의 기적'이 그의 사적 계시의 절정을 이룬다. 미사 중 입속에서 성체의 가장자리부터 차츰 피와 살로 변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2002년까지 21차례의 성체 기적 현상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2003년 2월 8일에는 8번의 기적 현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또 성모님에게서 수차례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전한다. 사회적으로는 소변의 음용 및 치유 효과 주장,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담긴 묵주의 판매, 급격한 부동산 증식 등으로 논란을 야기하였다. 2007년 가을 문화방송PD수첩은 윤홍선의 주장의 신빙성에 대한 검증 소개 프로그램을 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은 성모상에 흘러 나왔다는 피의 유전자 검사를 제의했으나 나주성모동산측에서 거부하였으며, 윤홍선 부부 소유의 땅이 1985년에 비해 20배 늘어난 사실을 지적하였다. 나주성모동산 측은 이에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냈으나 2007년 11월 13일에 법원에서 기각하여 같은 날 문화방송에서 정상적으로 방영되었다.[2]

나주현상의 문제점[편집]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최장무 안드레아 대주교는 교구장의 공지문(1998년 1월 1일, 2005년 5월 5일)과 사목적 지침들 (2001년 5월 5일) 을 따르지 않고 이의만 제기하고 있는 ‘나주 윤 율리아와 그 관련 현상들을 신봉하는 이들'이 더 이상 가톨릭교회와 일치 화합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2008년 1월 21일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교령을 발표하여 파문하였다. 또한 2008년 4월 23일 신앙교리성으로부터 받은 편지[3]에서 “초자연적인 것으로 증명되지 않았다(non constat de supernaturalitate)”는 것이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마리아의 구원방주 측은 신앙교리성과 광주대교구의 이같은 판단과 조치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가톨릭 신자"임을 표방하며 스스로 가톨릭교회의 지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곧 정식으로 인정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저 파문된 이단에 불과하다.

윤홍선 신격화[편집]

PD수첩의 보도 내용에 따르면, 마리아의 구원방주에서는 윤홍선을 신격화하고 있다고 한다. 정통 가톨릭 미사 전례에서는 성직자만이 제대에 올라설 수 있지만, 마리아의 구원방주에서 미사 전례라 주장하는 종교적 의식행위에서는 성직자 역할로 정해진 사람이 아닌 윤홍선 자신이 제대에 올라 강론을 하며 자신에게 들려온다고 주장하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말을 전하고 있으며. 그 외 윤홍선의 오줌을 '율신액'이라 부르며 추종자들은 그녀의 오줌을 음용하며, 마시면 질병이 치유되거나 성령이 강림한다고 믿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래서 금전을 지불하며 윤홍선의 오줌을 구매하여 마시는 엽기적인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4]

최근에는 악마에게 직접 물리적인 공격을 당했다고 주장하며.[5] , 그외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말씀을 듣고 전한다는 등[6][7] , 흡사 무속신앙의 영매 역할을 표방하고 있다. 윤홍선은 천주교 성직자 및 수도자에게 이어오는 정결 및 금욕주의를 표방하여 자신도 남편과 성관계를 가지지 않는다며 자신도 신성성을 가졌다는 식의 말을 한다.

기적수와 율신액 판매[편집]

윤홍선이 나주에 개발한 성모 동산의 땅을 시추하여 지하수를 개발하였다. 그 지하수는 성령이 담긴 '기적수'라 주장하며 추종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8] 더 나아가 2001년부터는 성모 마리아가 윤홍선 앞에 발현하여 "너의 오줌을 통해 성령을 내리겠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윤홍선이 배설한 오줌을 '율신액'(-身液, '율리아 몸의 액'이란 뜻)이라 이름붙여 판매하고 있다.[9] 마리아의 구원방주 추종자들 사이에서는 윤홍선의 오줌인 율신액을 마시면 질병이 치료되고 성령을 받는다고 믿어 음용하고 있다. 최근 윤홍선의 오줌을 스카프에 묻혀 '율신액 스카프'라 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 스카프 역시 착용하면 질병이 치료되고 성령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10][11][12][13][14][15]

기도문 개발[편집]

윤홍선은 스스로 "생활의 기도문" 이라는 기도문을 개발하여 추종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생활의 기도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16]

  • 가래침을 뱉을 때의 기도: 주님! 제 영혼 안에 서로 엉키어 잘 떨어지지 않는 모든 악습들까지도 모두 내 보내 주소서. 아멘.
  • 트림이나 방귀가 나올 때의 기도: 주님! 제 영혼에 필요 없는 가스를 모두 내보내 주십시오. 아멘
  • 구토할 때(대소변, 방귀, 트림할 때도 할 수 있음)의 기도: 주님! 제 안에 가득한 이기심과 자만심, 이론과 논리와 인간적인 계산으로 저울질하며 단순하지 못했던 제 모순들을 모두다 내 보내 주시어 주님과 성모님께서 생활하실 수 있도록 제 마음을 비우게 해 주소서. 아멘.
  • 귓밥을 팔 때의 기도: 주님! 제 귀를 통해 들은 판단과 험담의 말 또는 모든 죄악의 말들로 인해 제 마음과 영혼에 자리잡고 있는 나쁜 것들을 모두 파내 주소서. 아멘.
  • 대소변을 보고 뒷처리하면서의 기도: 주님! 제 영혼의 불필요한 것들을 깨끗이 닦아내 주시어 새롭게 해 주소서. 아멘

‘경당'과 ‘성모 동산'에서 광주대교구 교구장이 금지한 성사집행과 준성사 의식을 주관하거나 참여하는 성직자, 수도자[편집]

마리아의 구원방주는 독자적인 종교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가톨릭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며 윤홍선 추종자들의 공동체에 가까운 성격이다. 이런 공동체이지만 종교적 연출을 위하여 성직자나 수도자의 역할을 하는 직책을 가진 자들이 있다.

성직자 및 수도자 역할을 맡은 자[편집]

성직자와 수도자 역할은 과거 가톨릭 성직자나 수도자 출신자들만 맡을 수 있다. 파면으로 성직 혹은 수도직이 박탈되었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실제 성직자나 수도자처럼 대우하는 실정이다. 한국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직자였던 장홍빈을 필두로 몇 명의 수녀들이 그를 추종하며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가담했다. 수녀와 같은 수도자들은 소속 수도회에서 빠르게 파면되었다. 성직자인 장홍빈 신부 또한 2008년 1월 21일자로 파면되었다. 그러나 다른 수녀들이나 수도자와 달리 파면 시기가 비교적 최근임을 감안할 때, 천주교 광주대교구측에서 나름의 자비를 베푼 것으로 추정된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와 장홍빈과의 마지막 만남에서도 장홍빈은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파면 조치가 내려져 성직을 박탈당한다.[17]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상주하여 성직자와 수도자의 역할을 맡은 자들은 가톨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성직 및 수도직이 박탈된 자들이므로 성직자와 수도자가 아니기에 당연히 그들이 행하는 성사나 전례를 표방하는 의식은 성사로서의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18] 최근 장홍빈은 지병인 당뇨병이 크게 악화되어 외부 활동을 원활히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 기적수와 윤홍선의 오줌인 율신액을 마시는 것으로 치료를 대신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병의 특성상 장홍빈의 건강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출처 필요]

성소자 모집[편집]

'성소자'란 가톨릭의 신학교나 수도회에 들어가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길 희망하는 지원자를 뜻한다. 마리아의 구원방주에서는 2010년 1월 29일부터 성소자 모집을 시작하였다. 성소자들은 추운 겨울 시기인 2010년 1월 30일 십자가 모형을 지고 눈으로 덮힌 산길을 맨발로 올라가 기도를 표방하는 의식을 행하였다.[19]



[광주대교구] 정영수 라우렌시오 신부 관련 주의 요망[편집]

정영수 라우렌시오 신부는 1989년 예수고난회 소속으로 광주가톨릭대학에 입학하여 학부를 졸업했으나, 이후 예수고난회에서 제적되었다. 그 후 한국외방선교회에 입회하여 2000년에 사제품을 받은 후(주문진 성당 출신), 러시아에 파견되어 만 7년간 사목활동하고 2008년 초 귀국하였다. 정영수 신부는 러시아에서 귀국 직후 본인 스스로 한국외방선교회를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2008년 8월 인도네시아 폰티아낙 대교구에 입적되었다는 정영수 신부의 말에 따라 동년 11월에 한국외방선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제명처분되었다.

정영수 신부는 2009년부터 폰티아낙 대교구장의 지시로 전라남도 나주에 머무르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그곳에서 나주 윤 율리아를 추종하는 사람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는 등 성직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이는 관할권자인 광주대교구장의 허락(교구사제특별권한)을 받지 않은 것으로서 교회법적으로 명백히 불법이며, 나주 윤 율리아의 ‘임의적인 경당’과 ‘성모동산’에서 성사집행을 금지한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의 교령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였다. 이에 최창무 대주교는 교구장의 허락도 받지 않고 불법적으로 성사집행을 하고 있는 정영수 신부에게 2009년 12월 31일까지 광주대교구 관할지역에서 떠나라고 정식으로 권고하였다. 그러나 정영수 신부는 지금까지도 광주대교구장의 권고를 따르지 않고 계속해서 나주에 머무르면서 불법적으로 성사집행을 해왔다.

이에 광주대교구는 정영수 신부가 인도네시아 폰티아낙 대교구 소속이 맞는지 여부부터 확인하기 위하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소재 교황대사관에 사실 확인 요청 공문(2012.1.2)을 보냈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교황대사관에서는 정영수 신부가 폰티아낙 대교구에 입적한 사실이 없다는 답신(2012.1.24)을 보내왔다. 이로써 자신이 인도네시아 폰티아낙 대교구에 입적되었고 그곳 교구장의 지시로 나주에 머물고 있다고 한 정영수 신부의 이전 진술이 모두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정영수 신부는 한국외방선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제명된 2008년 11월 이후부터 사제로서의 모든 성무집행이 금지된 자이므로, 타교구나 선교회·수도회에 입적되거나 적어도 성품의 행사를 허용하는 주교를 찾을 때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 어디에서든지 그가 행한 모든 성사는 불법임을 분명히 한다(교회법 제746조, 제701조 참조).

그러므로 광주대교구는 정영수 라우렌시오 신부가 나주를 포함하여 본 교구 어디에서든지 미사 거행이나 그 밖의 어떤 경배 의식을 드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을 본 교구민 모두에게 알립니다. 신자들은 정영수 신부가 거행하는 불법적인 성사에 절대로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더불어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여 타 교구에서도 교회의 공적 질서를 크게 어지럽히고 있는 정영수 신부의 활동에 주의를 기울여 필요한 조처를 취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주교회의 사무처로 보낸 광주대교구 2012년 3월 30일자 공문]

나주 윤 율리아와 연관된 일들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각종 교회서적[편집]

올바른 성모신심/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편집]

<34 Page>

오늘날 우리나라의 잘못된 성모 공경과 신심

우리나라에서는 마리아 공경을 거부하는 프로테스탄트의 '반마리아주의'와 성모 마리아를 마치 하느님보다 더 자비하고 능력이 있는 여신처럼 간주하려는 '마리아 숭배'가 문제 되고 있다. 또한 교회가 승인하지도 않은 사적 계시를 받았다고 선전하면서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혼선을 가져오고 있다.

-- 중략 --

<35 Page>

(2) 가톨릭 교회 안에서 빗나간 성모 신심들

-- 중략 --

나. 나주의 기적이나 사적 계시를 성역화하는 성모 신심27)

   나주의 어느 성모상에서 1985년 6월 30일부터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주장과 함께 '나주 성모 발현'이라는 사적 계시가 문제 되기 시작하였다. 1991년 5월 16일을 시작으로 이른바 '성체의 기적'이 그의 사적 계시의 절정을 이룬다. 미사 중 입속에서 성체의 가장자리부터 차츰 피와 살로 변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2002년까지 21차례의 성체 기적 현상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2003년 2월 8일에는 8번의 기적 현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또 성모님에게서 수차례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전한다.

   이에 따라 당시 교구장이었던 윤공희 대주교는 1994년 12월 30일 조사위원회를 결성하여 조사를 의뢰하였다. 이 조사위원회의 중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윤공희 대주교는 나주 기념행사를 금지하고 관련된 사제에게 더 이상 개입하지 말 것을 경고하였다. 그리고 1998년 1월 1일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공지문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사적 계시를 유권적으로 해석할 권한은 해당 교구장에게 있다. 이른바 '나주의 성모님 메시지'는 인간적이고 인위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어서 그 순수성과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성체의 기적이라고 주장하는 현상들은 교회의 믿을 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나주에서의 기이한 현상들은 신앙적으로 참된 초자연적 현상이라고 증명할 만한 근거가 없다. 오히려 어떤 초능력에 의한 현상일 수 있다. 따라서 나주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된 제반 홍보물의 발행과 유포를 공식적으로 금지한다. 또한 '나주의 성모님 메시지'를 선전하지 못하도록 한 권고가 유효하고, 교도권에 순종할 것을 명한다. 나주의 성모상과 관련된 사적 장소에서 미사 전례 성사 집전을 금한 이전의 조치가 유효하고, 매주 목요일, 매달 첫 토요일에 이루어지는 기도 모임과 집회를 금지한다.28)

   이후 2001년 후임 교구장 최창무 대주교는 5월 회람 '성모 성월을 마치며'를 통해 윤공희 대주교의 공지를 재확인하고 교도권에 순명할 것을 재차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두 차례의 명백한 금지령에도 여전히 많은 신자들이 나주를 찾아가고, 관련 홍보물이 유포되고 있다. 또한 매주 목요일과 매달 첫 토요일에는 정기적인 기도 모임과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잡지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교구장의 정당하고 적법한 교도권의 판단을 거부하면서 반박하고 있다. 특히 「 가톨릭 다이제스트」 1998년 2월 호, 1999년 2월 호에서는 "나주 문제를 생각해 본다", "교회가 외면한 성모님의 호소"라는 특집 기사들이 교구장의 결정을 비난한 바 있다. 대구대교구는 2003년 5월 21일자로 교구 신부들과 수도회 장상에게 '나주 성모상'과 그와 관련된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며, 윤 대주교, 최 대주교의 입장을 재차 확인하였다.

」2005년 5월 5일 최창무 대주교는 바르고 참된 신앙생활을 위하여 교구장 공지문을 발표하였다. 직접 찾아가 세 번이나 면담한 사실과 금전 출납 현황, 부동산 취득 등에 대한 등기 사항, 회계 업무에 대한 투명한 자료 제출 등을 교구가 직접 확인하고 검토할 수 있도록 지시하였지만 여전히 순명하지 않은 사실을 밝히고 있다. 최 대주교는 다시 한 번 순명을 권고하며 다음과 같은 공지문을 발표하였다.

1. 누구든지 교회의 공식 검증과 인준을 받지 않은 일을 “사적계시”라든지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선전하며 광고하는 것은 우리 가톨릭 교회와 무관한 일이며 교회를 모독하는 일이 될 것이다.

2. 교회의 공식 인준이 없는 나주의 “성모동산”이나 율리아의 집이나 “경당”에서 교회 이름으로 집회를 주선하거나 의식을 행하는 것은 건전한 신심행위도, 합당한 전례행위도 될 수 없다.

3. 1998년 1월 1일, 2001년 5월 5일 발표된 광주 대교구 교구장의 공지문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지역 교회공동체의 합법적인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이며 교도권을 거역하는 행위이다.

4. 나주 율리아가 주장하는 소위 “사적계시”나 “기적”을 홍보하거나, 숨어서 사람들을 모으고, “순례”하려는 행위는 교회의 순명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이며 건전한 신앙 생활이라 할 수 없다.

5.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그가 어느 교구, 어느 나라에 속하더라도 교회의 공식 신분을 지녔으므로 본 광주대교구 주교의 분명한 허락 없이 “성모동산”이나 나주 윤 율리아가 마련한 “경당”에 참배한다거나 그곳에서 종교의식, 전례 행위를 하는 것은 보편 교회와 지역 교회의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임을 분명히 밝힌다. 29)

   나주의 사적 계시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왜 마리아께서 발현하셨는지를 묻는 일이다. 발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지이다. 그러나 메시지가 계시 진리나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면 올바른 발현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는 그리스도 신앙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 신앙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마리아 신심에 멈출 수 없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을 중재하시는 분이시지만 성모 마리아께서 그리스도보다 우위이실 수 없다. 그리고 발현 목격자가 성모 마리아보다 더 위대하거나 중요할 수 없다. 이러한 기준에서 교회는 발현의 진실성 여부를 판단한다. 무엇보다 그것을 판단하는 책임자는 소속 교구의 교구장이다.30)

   둘째, 공적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사적 계시는 그와 같은 공적 계시를 보충하거나 보완하는 것일 수 없다. 그들의 모든 사적 계시는 이미 기록된 것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셋째, 입에 모신 성체가 사람의 살과 피가 되었다는 기적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부합하지 않는다. 교회 문헌은 사제의 축성으로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로 '실체 변화'한 후에도 그 형상은 여전히 빵과 포도주이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DS782.802.1321.1642.1652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사람의 살과 피의 형상이 아니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셨다.(1코린 11,23-27 참조). 2000년 전에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나자렛의 마리아를 통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셨지만, 이제 주님은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와 함께 사신다고 약속하셨다.

   넷째, 하늘에서 성체가 내려왔다고 하는 주장은 유효하게 서품된 사제의 축성에 의해서만 성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르침에 위배된다(DS 802; 「가톨릭 교회 교리서」, 1128항 참조). 그들은 천사가 하늘에서 성체를 가져왔다고 하고 또는 죄 많은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에서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이는 가톨릭 교리의 사효성(事效性)31)을 부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사의 유효성은 성사 집전자의 성덕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하느님을 체험하거나, 신비 현상에 접한 사람이 취해야 할 가장 첫 번째 태도는 겸손이다. 겸손이 결여된 체험이나 현상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여섯째, 나주의 이 모임은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마치 그곳이 성지인 것처럼 순례하려고 찾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교도권에 순명하지 않는 그릇된 신심 행위에 대한 바른 인식과 사목자들의 적극적인 지도가 필요하다.

27) 이는 1985년부터 나주의 윤 율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신심 운동에 관한 내용이며, 그들이 발표하고 선전한 여러 자료를 참조하였다.

28) 「평화신문」 1998. 1. 11., 9면 참조.

29) 최창무 대주교, "바르고 참된 신앙생활을 위한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공지문 - 나주 윤 율리아와 연관된 일들에 대한 사목 권고", 2005. 5. 5.

30) Cf. R. Laurentin, "Apparizioni", in Nuova Dizionario di Mariologia, a cura di., S. De Fiores-S. Meo, Edizioni Paoline, Torino, 1985, pp. 130-136. 제5차 라테라노 공의회(1516년)는 발현이나 사적계시에 대한 판별은 해당 소속 교구장에게 속한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주교는 자신과 더불어 신뢰할 수 있는 현명한 3-4명의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사한 다음 승인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1563년)도 주교의 권위로 승인받지 않고서는 어떤 발현이나 기적도 인정 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R. Laurentin은 교회 교도권이나 권위에 순종할 때 사적 계시의 표징들은 가치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31)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사효론", 「한국 가톨릭 대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4116-4118면 참조, 사효성(ex opere operato)은 성사의 예식 자체로 성사의 효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합법적인 성사 집전자가 교회가 정한 대로 성사를 집전한다면 집전자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상관없이 성사의 은총이 내린다. 한편 인효성(ex opere operantis)은 사효성과는 달리 성사를 받는 자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따라 그 은혜가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사적 계시에 대한 올바른 이해/조규만 주교[편집]

경향잡지 3월호 / 경향 돋보기

사적계시에 대한 올바른 이해

글_조규만

지난 1월 21일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는 '나주 윤 율리아와 그 관련 현상들에 대한 광주대교구장 교령'을 발표하여 윤 율리아와 관련된 어떠한 행위도 자동 파문 대상이 된다고 천명하였습니다. 이에 경향잡지는 지난 1월호의 '오늘날 우리에게 사적 계시란 무엇인가'에 이어 '사적 계시의 올바른 이해'를 기획하였습니다.


1. 계시란 무엇인가?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神秘와 하느님에 관련된 신비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알려주시는 것을 계시啓示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스스로를 계시종교啓示宗敎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알려주셔야만 인간은 하느님을 알 수 있다는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는 결코 하느님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이성과 양심을 통하여 자연 안에서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연을 관찰하는 가운데서도 하느님을 알 수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마태 6,25-30 참조)

교회도 자연을 통한 하느님 인식을 인정합니다. “거룩한 공의회는 ‘만물의 근원이시며 목적이신 하느님께서는 인간 이성의 자연적 빛으로 창조물을 통하여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계시헌장 6항). 이처럼 대자연과 양심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을 교리에서는 간접적 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는 하느님 자신이 알려주셔야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이를 직접계시라고 합니다. “자연적 이성을 통하여, 인간은 하느님의 업적에서부터 출발하여 확실하게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다른 인식의 질서, 신적 계시의 질서가 존재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편, 50항)

성경은 인류가 하느님을 알게 된 사실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것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 1-2).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과 그분이 주시고자 하시는 영원한 생명의 신비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서 알려진 것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난 것입니다”(계시헌장 1항).

이렇게 하느님께서 당신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계시의 목적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거룩한 신성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선성과 지혜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고 당신 뜻의 신비를 기꺼이 알려 주시려 하셨으며, 이로써 사람들이 사람이 되신 말씀,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다가가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도록 하셨다.”(계시헌장 2항) 그리고 그 계시의 방법은 말씀과 행적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이 계시 경륜은 서로 긴밀히 결합된 행적과 말씀으로 실현된다. 구원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신 업적들을 가르침과 그리고 말씀들로 표현된 사실을 드러내고 확인하며, 말씀들은 업적들을 선포하며 그 안에 포함된 신비들을 밝혀준다”(계시헌장 2항).


2, 사적계시란 무엇인가?

가톨릭교회 교리는 하느님의 계시를 크게 직접적계시와 간접적계시 이외에도 공적계시公的啓示와 사적계시私的啓示로 구별합니다. 사적계시를 특별계시特別啓示라고도 합니다. 공적계시란 근원적계시根源的啓示라고도 하며, 이는 인간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거룩한 신성에의 참여, 곧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예언자들이나 사도들, 또 결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알려주신 신비를 의미합니다. 한편 사적계시란 계시를 받은 당사자를 위해서나 일부 지역의 믿음의 공동체를 위하여 알려진 가르침이나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적계시가 공적계시와 모순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만일 사적계시가 공적계시와 모순이 된다면 그것은 거짓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사적 계시가 공적계시의 부족함을 보충하는 것일 수도 없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가 결정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전 현존과 출현으로 말씀과 업적, 표징과 기적으로 특별히 당신의 돌아가심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심, 마침내는 진리의 성령을 보내심으로 계시를 완수하시고 하느님의 증거로 확고하게 하셨으니 …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은 결코 폐기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기 전에는 어떠한 새로운 공적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계시헌장 4항)

물론 사적계시는 가능합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당신 자신을 나타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적계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러난 공적 계시를 어느 특정한 시대, 특별한 상황에 처하여 새롭게 강조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미 공적계시로 얻게 된 신앙과 희망을 지역적으로, 또는 시기적으로 생동적이게 하는 기능을 지닐 뿐입니다.

일찍이 십자가의 성 요한은 사적계시의 한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신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에게 주실 다른 말씀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유일한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을 동시에 그리고 한 번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지금 다시 그분의 말씀을 문제시하려고 하거나 또는 어떤 환시나 계시를 바란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 오로지 눈을 돌리지 않고 그분과는 다른 것이나 어떤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어리석은 일일뿐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1)

그러므로 사적계시는 교회의 승인을 필요로 합니다. 자주 정신적 착란 현상과 혼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거짓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적계시가 교회의 승인을 받았다고 공적계시가 되는 것도 아니요, 모든 신자들이 반드시 믿어야 할 신앙의 내용일 수도 없습니다.

우리 시대의 큰 신학자였던 스힐러베엑스는 사적계시의 교회 승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어떤 발현이나 사적 계시에 대한 교회의 승인은 … 그 역사적 진실이나 권위의 절대적인 오류가 없다는 입증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단지 충분한 증거가 조사를 통해서 나왔고 그래서 우리가 이성적 바탕 위에서 발현의 신적 권위를 우리가 받아들이는 데 조심스럽게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비준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상 교회는 발현이 일어난 그 장소에서 마리아가 특별한 방법으로 공경을 받을 수 있다는 공식적 허락 이상의 무엇을 주고 있지 않다. …교회가 선언하는 것은 교회의 판단으로 그것이 신앙과 윤리적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이 없고, 그리고 거기에는 인간적 신앙에 의해 이루어지는 조심스러운 승인과 그들의 신심을 위해 충분한 징후들이 있다는 것이 전부이다.”2)

사적계시, 혹은 발현 등은 정신적 착란 또는 주관적 환시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발현과 사적계시의 승인에 대하여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사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발현이나 사적계시의 진실성 판단이나 교회의 승인은 해당 소속 주교 즉, 교구장에게 있습니다. 이는 일찍이 제5차 라테란 공의회와 트렌토 공의회에서 규정한 것입니다. 교회법 823조 1항은 사회 홍보 매체와 특히 서적 등을 감독하여 신앙과 도덕의 진리를 해치는 것을 배척할 의무와 권리가 교구장에 있다는 것을 명시합니다.3)

우리나라의 경우 상주 데레사에 관련해서 발표한 1957년 대구대교구장 서정길 대주교의 교령이나, 나주 율리아에 관련해서 발표한 1998년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의 공지문과 그 후 계속해서 2001년, 2005년, 그리고 최근 2008년 후임자 최창무 대주교에 의해 발표된  공지문과 교령은 모두 교회 규정에 따라 합법적인 권리와 의무 하에 정당한 절차와 권위 하에서 내려진 당연한 조처입니다.


3. 왜 사적계시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나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사적계시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적계시를 자신이나 또 교회 공동체의 선익 이외에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자신을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적계시의 현상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로마 군대의 백인대장 고르넬리오가 신비오운 영상 가운데 하느님의 천사를 만나 베드로부터 세례를 받게 된 사실이 그 한 가지 예입니다.(사도 10,1-48 참조)

역사적으로도 성 아우구스티노의 신비 체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비체험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과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경우는 자주 신비체험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과 교회는 일종의 신비체험으로서의 사적계시를 인정합니다.

사적계시는 어떤 특정한 시기에 개인이나 교회를 안내하는 기능을 담당하기는 하지만, 또 공적계시를 보충할 수도 없고, 대체할 수도 없으며, 교회의 신앙의 유산일 수도 없지만,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특수계시라고도 불리는 사적계시도 공적계시의 목적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희망을 위한 선익이듯이, 공동체에 선익을 주어야합니다. 일찍이 사도 바오로는 신비체험을 통하여 받게 된 은사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오늘날 사적계시를 받은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예언할 수 있기들 더 바랍니다. 누가 해석을 해 주어 교회가 성장에 도움을 받는 경우가 아니면, 예언하는 이가 신령한 언어로 말하는 이보다 더 훌륭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은사를 열심히 구하는 사람들이니,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그것을 더욱 많이 받도록 애쓰십시오. …그대야 훌륭하게 감사를 드리지만 다른 사람은 성장에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나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보다도 더 많이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교회에서 신령한 언어로 만 마디의 말을 하기보다, 다른 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내 이성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고 싶습니다.”(1코린 14, 5-19) 사적계시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이지만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적계시가 공동체의 선익의 차원을 거슬러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사적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시의 내용이며, 계시를 하시는 분이 계시를 받는 사람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주 율리아의 경우나 상주 데레사의 경우 메시지의 내용도 공적계시와 모순이 될 뿐만 아니라, 메시지보다도 전해주는 성모님이, 성모님보다 나주 율리아가 더 중요하게 부각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인정한 루르드의 발현이나 파티마의 발현에서는 발현 체험자였던 베르나데트나 루치아가 자신을 앞세운 것을 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교회의 권위에 순명하였음을 봅니다.

광주대교구의 공지문과 교령에 따르면4), 나주 율리아는 교회의 정당한 권위에 순명하지 않았으며, 불순명의 배후에는 돈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직권자는, 곧 해당 교구장은 당연히 재정에 대한 감사를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5) 나주 율리아는 성전 건축을 예고하고 모금하고 있는데 만일 그 모금과 금품수수가 미사예물과 헌금의 형태라면 더더욱 직권자인 교구장의 감사가 절대적입니다,6) 그런데 교령에 따르면, 나주 율리아는 교구장의 회계 장부에 대한 지시사항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금전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4. 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보다는 이러한 이적현상 또는 사적계시에 더 매달리는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는 어떤 표징들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에는 이성만으로 또는 감성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야”(마르 12, 30)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사실 하느님을 인식하고 믿은 데도 이성만이 아니라 감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앙과 이성은 진리이신 하느님을 향해 날아오르는 두 개의 날개와도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신앙과 이성, 서언 참조) 그러므로 이성만을 강조하거나 또는 감성만을 강조함으로써 신앙생활에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합니다. 감성만을 강조하게 되면 맹목적이거나 맹신적 경향을 띠게 됩니다. 이성만을 강조하게 되면 마음이 메마르고 무미건조하게 됩니다.

이적현상 또는 사적계시에 매달리는 현상은 마음이 메마르고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에서 충족할 수 없는 종교적 욕구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톨릭교회가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교리와 제도 중심으로 주지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어서 감성적으로 만족할 수 없는 부분을 사적계시 또는 이적현상으로 충족하고자 합니다. 이를 영적갈증이라고도 합니다.

가톨릭교회가 성령쇄신운동, 떼제 기도 등 여러 가지 프로테스탄의 기도운동을 받아들여 감성적인 부분을 보충할 수 있는 기회를 과거보다 많이 만들어 주고 있는 현실입니다만 그러한 영적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가톨릭신자들이 특별히 신흥종교에 많이 빠지는 경우를 봅니다.

결국 이적현상이나 사적 계시에 매달리는 이유는 우리의 신앙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언자들과,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르쳐 주신 말씀과 업적을 통해서도 하느님을 믿기가 어려운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표징을 구합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코린 1,22).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유다인들처럼 표징으로 하느님의 존재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때때로 마음에 감동을 주는 감성적 기도 모임을 통해서 눈물을 흘리고 하느님을 체험하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은 날씨처럼 수없이 변하기도 합니다. 감동적일 때가 있고, 무미건조할 때가 있습니다. 그 감정에 따라 하느님이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가 거부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희망은 이성과 감성을 필요로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두 가지 요소의 역사적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맹신주의와 급진적 전통주의가 이성의 자연적 능력들에 대하여 불신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합리주의와 존재직관주의가 오직 신앙의 빛만이 전해 줄 수 있는 지식들을 자연 이성에 돌리려고 했습니다.”(신앙과 이성, 52항). 그러므로 이 두 가지의 협력을 당부하였습니다. “교회는 신앙과 이성이 ‘서로서로 지지하고 있다’고 깊이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각기 상대방에게 순화시키는 비판과 더욱 깊은 이해를 위한 탐구를 계속할 자극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칩니다.”(신앙과 이성, 100항).


5. 오늘날 우리는 사적계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사도 바오로는 제자 티모테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한 바 있습니다.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화 쪽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대의 직무를 완수 하십시오.”(2티모 4, 3-5)

사도 바오로의 이러한 예언은 그 이후 교회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니체아 공의회를 비롯한 많은 공의회는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소집되었던 것입니다. 그 역사적 체험에서 얻은 지식들이 축적되었습니다. 그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하느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을 드러내실 수 있다는 점에서 사적계시와 영적체험은 가능합니다.

2) 이러한 사적계시는 어떤 특정한 시기에 개인이나 교회를 안내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적계시를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3) 그렇다고 사적계시가 공적계시를 보충하는 것일 수도 없고, 교회 신앙의 유산일 수도 없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편 67항 참조)

4) 그러므로 신비체험을 한 사람들의 메시지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으로 받아들일 의무가 없습니다. (스힐레베엑스, 칼 라너)

5) 사적계시가 유효하려면 공적계시에 부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공적계시야말로 진리요 모든 계시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6) 사적계시를 받은 사람의 심리적 상태가 정상이고 그들의 신심과 신앙생활이 올바른 것이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틀릴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사적계시를 받은 사람은 잘못할 수 있습니다. 사적계시나 신비체험은 계시 받은 자의 지식이나 인격적 품위에 따라 걸려지게 됩니다.

일찍이 하느님을 체험한 토마스 데 아퀴노 성인은 그렇게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서도 당신이 체험한 그 신비를 설명할 길이 없어서 “내가 하느님께 관하여 쓴 모든 글들은 쓰레기에 불과합니다.”라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집필 중이던 「신학대전」을 중단하고 침묵하였습니다. 빛이 어떤 물체를 통과하느냐에 따라 빛은9 다양한 모습으로 전달되는 것과 유사합니다.

7) 사적계시를 빙자하여 잘못된 해석, 왜곡이 가능합니다. 성경은 시몬 마구스가 거짓으로 꾸며내어 사적계시를 주장한 사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사도 8,9 참조)

8) 사적계시는 공동체에 선익을 주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 도움을 주는 일이 올바른 사적계시의 한 가지 기준이 됩니다. “신령한 언어로 말하는 이는 자기를 성장하게 하지만, 예언하는 이는 교회를 성장하게 합니다. …누가 해석을 해주어 교회가 성장에 도움을 받는 경우가 아니면, 예언하는 이가 신령한 언어로 말하는 이보다 더 훌륭합니다.”(1코린 14,5) 사실 계시를 받은 자가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선익이 되지 않습니다.

9) 사적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지입니다. 다음으로 성모님께서 발현하셔서 그 메시지를 전달해 주셨다면, 성모님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그 계시를 받은 자가 존경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순서가 잘못되었다면 분명 올바른 사적계시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제껏 교회가 승인한 성모발현이나 사적계시에서 계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중요성을 내세운 바 없습니다.

10) 교회가 승인한 사적계시일지라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신앙의 진리에는 등급이 있습니다. 첫째는 삼위일체 신비, 강생의 신비, 성체의 신비 등입니다. 두 번째로 성모님에 관한 믿음일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교회마다 다르게 주장하는 교리들일 것입니다.

1) [가톨릭교회교리서], 1권 65항에서 재인용: 갈멜의 산길, 2, 22.

2) E. Schillebeeckx, Mary, Mother of The Redemption, London 1964, 197쪽 이하(H. Graef, Mary, a History of Doctrin and Devotion, London 1994(4판), vol. 2, 84쪽. 재인용)

3) 제823조 (1) 교회의 목자들은 신앙과 도덕의 진리가 온전히 보존되도록 저술이나 사회 홍보 매체들의 사용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이나 도덕에 해독을 끼치지 못하도록 감독하고, 또한 신앙이나 도덕을 다루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출판할 저술은 목자들의 판단을 받도록 요구하며, 아울러 올바른 신앙이나 선량하 sehejr을 해치는 저술을 배척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4)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는 나주 율리아와 그 관련 현상들에 대하여 1998년 1월 1일, 2005년 5월 5일 두 차례 공지문을 발표하였고 2001년 5월 5일 사목적 지침 발표하였으며, 2008년 1월 21 교령을 발표하였다.

5) 제1265조. (1) 개인은 자연인이거나 법인이거나 누구도 소속 직권자와 교구 직권자의 서면 허가 없이는 어떠한 신심이나 교회 시설이나 목적을 위해서도 모금하는 것이 금지된다. 다만 구걸(탁발) 수도자들의 권리는 보존된다.

6) 교회법 제957조 미사들의 책무가 이행되도록 감독할 의무와 권리는 재속 성직자의 성당들에서는 교구 직권자에게 속하고 수도회나 사도 생활단의 성당들에서는 그들의 장상들에게 속한다. 제958조 (1) 본당 사목구 주임 및 미사 예물을 늘 받는 성당이나 그 밖의 신심 장소의 책임자는 특별한 대장을 비치하고, 여기에 거행할 미사들의 대수, 지향, 제공된 예물 및 거행 완료를 정확히 기재하여야 한다. (2) 직권자는 매년 몸소 또는 타인들을 시켜 이 미사 대장을 감사할 의무가 있다.

나주 현상에 대한 식별[편집]

황양주신부 2009년 석사학위논문 " 나주 윤율리아와 연관된 일들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식별" 내용중 일부 발췌

3. 나주현상의 문제점

1) ‘기적’이라고 주장하는 이적현상들의 문제점

(1) 나주에서 일어난 이적현상의 진실성 문제

앞에서 개략적으로 소개한 나주현상들은 우리 눈에 놀랍게 보인다는 점에서 이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표징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무속에서도 환시나 환청, 불 위를 맨발로 걷는 것, 날카로운 칼날 위에 맨발로 서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할 수가 있다. 교회는 이것을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어떤 현상이 참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명백한 경우(예: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요한 21,12))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식별을 통해서 판명해야 한다. 올바른 식별을 하기 위해서는 전통과 인간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최대한 객관적으로 수행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영이신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나주현상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나주현상의 진실성 여부에 대해서 엄밀하게 검토하고자 한다.

  첫째, 나주현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이 이적이라고 주장하는 현상들이 사실은 그 진실성 여부가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선전하는데 있다.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이들이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 현상의 결과물이지, 현상이나 과정 그 자체는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적현상을 보았다는 것은 현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가 아니라 현상이 나타난 다음이라는 사실이다. 사진사의 증언에 의하면, 눈물이나 피눈물, 향유 등이 흘러내렸으니 오라고 하여 가서 촬영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보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과정을 전체로 본 것은 아니다. 일단 사진사는 제3자로서 그의 증언은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자신은 부탁받은 시점에 출현하여 부탁받은 대로 사진을 촬영하였을 뿐이지 그 현상의 진실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입장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사진들을 찍었다는 사실과 그가 찍은 사진들은 그런 현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를 밝혀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둘째, 나주의 이적현상들이 발생한 시점이 대단히 인위적이어서 신빙성에 의문이 든다. 이적현상들은 주로 외국인 사제들이나 고위 성직자들이 방문할 때에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방문이 예상되는 날에 이적현상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들이 어김없이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기록하여 선전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지 않고서는 촬영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그들이 거주하는 성모경당에서는 미사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주 성당으로 가서 미사를 드리곤 하였다. 주임신부는 보통 그들과 함께 미사를 공동 집전하는데, 주임신부와 공동 집전할 때에는 별 일이 없다가도 이상하게 주임신부가 없을 때에는 꼭 이적현상이 일어나곤 하였다. 이런 일도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앞뒤의 사정을 감안해볼 때 우리는 그들이 사전에 기획 연출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연출이 아니라고 해도 자기암시에 의한 것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셋째, 많은 경우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두고 그리스도교의 표징으로 해석하고 유통하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면, 공중에서 하얀 물체가 떨어졌는데 그것을 가리키며 박연훈 루비노가 “오! 성체, 성체”라고 말했다. 머리 숙여 기도하던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서 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보고 ‘성체’를 봤다고 한다. 루비노가 ‘하얀 물체’를 가리키며 ‘성체’라고 하니까 ‘성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율리아가 영한 성체가 입안에서 살과 피로 변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 성체가 살과 피로 변화되는 순간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변해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율리아가 그것을 성체가 ‘변한 것’이라고 하니까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인정해버리고, 그것을 보고서, 눈으로 보았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또한 율리아 머리에서 나온 하얀 액체를 2,000년 전 성모께서 아기예수께 먹인 성모님의 젖이라고 했고, 유럽에서 온 어떤 사람이 1993년 7월 12일에 주고 간 나무 조각을 15년이 지난 2008년 7월 12일 성모께서 2,000년 전 예수님이 짊어지신 진본 십자가 조각이라고 했다면서 성광에 담아 경배하고 있다. 율리아가 ‘그것’이라고 선언하면 ‘그것’이 되고, ‘이것’이라고 하면 ‘이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넷째, 율리아는 수많은 치유 사례들이 있었다고 하면서 나주의 진실성을 주장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임파선 암으로 임종을 준비하고 있던 사람이 나주 성모님을 통해서 치유되었으며, 심장, 간, 고지혈증, 동맥경화, 신장 낭종, 신장결석, 십이지장궤양, 식도정맥류, 성기능 장애 등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갖가지 병을 안고 살았던 사람이 성모동산의 기적수를 마시고 모든 병이 치유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치유기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치유의 경우에도 교회는 매우 신중하게 판단하는데, 조금이라도 의심이 남아 있고, 확실하지 않으면 기적이라고 선언하지 않는 것이 교회의 태도이다. 가톨릭의 기적 선언에 대해 개신교(루터교) 신학자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루르드와 파티마에서 일어난 치유에 대해 가톨릭이 아닌 의사들이 엄격하게 과학적인 조사를 하였는데... 루르드에서 일어난 치유 중 1,200건 이상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으나 가톨릭은 그 중 44건만을 기적으로 선언했다.” 이는 설령 의사나 과학자들이 기적이라고 판명했을지라도 가톨릭교회는 쉽게 기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율리아와 그 주변인들이 이적현상에 집착하며 너무 쉽게 성모님의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이다. 더구나 앞에서 살펴본 대로, 화상 입은 환자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소년이 나주 성모동산의 기적수로 나았다고 했으나, ‘PD수첩’의 취재진들이 확인한 결과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율리아가 치유 사례라고 주장하는 것들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위의 분석은 현상적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런데 사건 자체가 거짓된 조작, 사술(詐術)이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적현상의 주동자인 율리아가 일관되게 성실한 태도를 가져왔다면 모르지만 인품과 성실성, 진실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사실들이 있다면 당연히 현상들의 진실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MBC 'PD수첩' 취재진들의 노련함으로 일부 중요한 현상들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면, 성체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그 장면이 사실은 율리아가 호주머니에서 하얀 면병을 꺼내서 공중에 던진 것으로 밝혀졌다. 또 소위 ‘기적수’라는 것도 사실은 전기 자동 펌프로 퍼 올린 지하수이고, 장미향도 율리아가 몰래 넣고 다녔던 향수주머니 때문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렇게 영적 체험자의 신뢰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면 나머지 현상들에 대해서도 연출이나 조작이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의 진실성은 모두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 나주현상의 영성적인 문제점

나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적현상들은 그 진위여부를 떠나 더욱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다양한 종류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적현상들이 왜 발생하는가?’ 다시 말해서 이적현상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첫째,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구별하는 식별기준에 따르면, 이적현상은 예언이 참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징표라고 했다. 그렇다고 예언할 때마다 이적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나주 현상의 경우, 율리아는 기적이 주된 목적이 아니고 메시지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적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확인해야 할 것은 이적현상과 예언(메시지)이 나오는 순서이다. 참 예언의 경우라면 예언(메시지)이 먼저고 다음에 이적이 뒤따라오는 것이다. 그런데 나주 현상의 경우에는 대부분 이적이 먼저 발생하고 그 다음에 메시지가 나온다. 실제로 율리아는 이적이 일어날 때마다 성모님이나 예수님으로부터 어김없이 메시지를 받았다. 또한 그 메시지는 반드시 앞서 발생한 이적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니까 나주의 현상들은 이적이 메시지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가 이적을 뒷받침하고 있다. 즉 수단(이적)과 목적(메시지)이 전도된 것이다.

  둘째, 기적의 목적은 신기하고 놀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애덕을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이적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식별기준의 하나로 언급한 성령의 열매인 좋은 덕성들 특히 애덕이 나타나야 한다. 얼마나 신기한 현상인가, 얼마나 많은 수의 이적이 일어났는가 하는 이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덕행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인들 중에는 놀라운 신비체험을 하신 분들이 있지만, 신비체험 때문이 아니라, 덕행을 쌓았기에 성인이 되었다. 그런데 나주현상에는 이적현상이 있을 뿐 그 목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다시말해서 사람들은 이적현상을 보고 놀라고 신기해할 뿐 그것으로 끝이다. 나주현상은 애덕과 같은 향주덕을 추구하기보다는 이적현상 자체에 집착하고 있다. 그 결과 이적과잉현상을 보이고 이적현상의 강도가 점차 강해질 뿐만 아니라 대단히 자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적들은 그 숫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영적 성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서 말한대로 어떤 현상은 상상이나 자기 암시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고, 또한 무속의 세계와 타종교에서도 관찰되기 때문에 모든 이적이 곧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기적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셋째, 영적 성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적계시나 거짓 신비체험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공통 현상 중 하나가 자신들의 신심행위를 정당화시키기에 걸림돌이 되는 교도권적 가르침들을 부정한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사제들과 수도자들에 대하여 독설적인 공격을 하는 가운데 자신의 신비체험에 대한 예언자적 사명을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의 체험이나 주장을 비호해줄 수 있는 교회의 핵심적(교도권의) 인물들(고위 성직자)에게 접근하려고 애쓴다. 이런 모습을 율리아에게서도 볼 수 있다. 율리아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한국인 성직자와 외국인 성직자 그리고 고위성직자들 앞에서만 기적을 보임으로써 그들을 통해 한국 교회로부터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동시에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한국인 성직자들은 오류에 빠져서 자신을 박해하는 불신자들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신자들에게 사목 일선의 사제들을 불신하게 만들고, 사제와 신자들 사이뿐만 아니라 호의적인 사제들과 비판적인 사제들을 갈라놓는 등 한국 교회에 혼란과 분열을 일으키면서, 그 정당성을 위해 이적현상을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나주의 이적현상들은 인위적이며 목적지향성을 가지고 있어 그 진실성을 의심하게 한다. 나주의 이적현상들은 복음적 가치를 고양시키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공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현상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그저 호기심과 놀라움을 줄 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적현상을 통해 식별기준의 하나인 성령의 열매를 맺고 덕행을 추구하기보다는 개인의 안위와 위로에 치중할 뿐 교계제도와 교도권을 불신하며 한국 교회를 혼란케 하고 분열시키는 데에 이적현상을 사사로이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그 진위여부를 떠나 교회적이지 않으며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할 근거가 없다’고 교도권은 선언한 것이다(참조; 제1차 공지문).

  2) ‘사적계시’라고 주장하는 ‘나주 메시지’의 문제점

  (1) 나주 메시지의 진실성

나주 메시지는 무엇보다 먼저 그 진실성이 의심된다. 그것은 메시지가 필요에 따라서 오락가락하고 그때마다 변경된다는 점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① 주문대로 제작하고 생산하는 메시지

나주 메시지는 책으로 발행할 때 필요에 따라 메시지의 내용을 빼버리거나 추가하거나 고치는 등 인위적이며 의도적인 경우가 많다. 주로 영적지도자에 의해서 주문되고 율리아가 제작하여 성모님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산한다.

첫째, 파신부가 미용실을 그만두도록 종용하자 율리아가 성모님의 입을 빌어 메시지로 생산한 경우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 1986년 8월 7일 율리아는 장부와 상의하여 미용실을 처분했다고 했다. 그런데 파신부가 만든 [1992년 9월 23일, 나주 성모님과 비한국인 순례자들, 기름은? … 세번째이다.]라는 유인물 7페이지를 보면, “성모님께서 당신에게 미용실에 대해 아무 말씀도 안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네, 성모님께서 이 일을 중지하라고 말씀하셔서 저는 순명하였습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율리아는 이렇게 해서 미용실을 처분하였다.

둘째, 나주에서의 사건이 빨리 공인되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파신부가 주문한 메시지이다. 파신부가 만든 [한국 나주에서 눈물 흘리시는 성모상/ 보통 눈물, 피눈물, 전세계인을 위한 메시지/ 사건의 진상과 전개 과정]이란 유인물의 10페이지에 “우리는 언제나 한결같은 더 큰 사랑으로 울고 계시는 성모님과 함께 더욱 기도하여 그 사랑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인정되어 원하는 인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곳(나주)이 이 나라의 첫 번째 당신 성지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에 율리아는 ‘메시지가 널리 전파되기 위해서 주교에게 알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87.4.21; 87.10.19).

셋째, 부산교구 박동준 신부가 1987년 4월 23일의 메시지 중 “환속한 사제들이 얼마나 착한지를” 이라는 문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파신부가 1988년 1월 23일 율리아에게 알려주었고, 이후 1988년 1월 25일 율리아는 “환속한 사제들이 원래는 착한 사제들이었는데”로 정정하여 파신부에게 알리고, 파신부는 이 정정 사실을 1988년 1월 28일 윤대주교에게 알려드렸다. 그런데 2006년에 출판한 ?나주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에는 “환속한 사제들이 얼마나 착한지를” 이라고 나온다.

넷째, 파신부가 제작한 유인물 [성모님께서 선택한 율리아와 그 남편과 가족들에 대해서]의 8페이지에 “1989년 1월 28일 토요일 율리아와 남편 율리오는 여러 문제들을 의논하기 위해 안양에 있는 내게 왔다. 생각들이 오고 간 끝에 나는 율리아를 다른 가능할 수 있는 새로운 고통 형태를 준비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탄의 공격, 고문, 포악한 행위 등에 따른 고통들 말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율리아는 다음날 1989년 1월 29일 파신부와 함께 미리내 성모성심 수녀원에 갔는데, 그곳에서 황데레사와 함께 두 번째 연결고통을 받은 현상과 메시지가 나온다.

  ② 의도적이고 인위적으로 메시지를 넣거나 빼고 수정함

나주 메시지는 초기에는 유인물 형식으로 제작하다가 1989년에 처음으로 1985년 6월 30일부터 1989년 2월 23일까지의 내용을 ?나주의 성모님 메시지?라는 책으로 발행했다. 이후 계속된 메시지를 덧붙여 93년과 94년 그리고 95년 등 해마다 책을 발행했는데, 가장 최근에는 1985년 7월 18일부터 2006년 6월 3일까지의 내용을 ?나주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라는 제목으로 발행했다.

그런데 ‘내용 자체가 바뀌는 경우’와 ‘자필 일기에 있는 내용들이 인쇄된 책에서는 빠진 것들’이 있고, 앞의 책에 있던 내용이 뒤에 출판된 책에서 빼거나 고치고, 앞의 책에는 없던 내용이 뒤의 책에 나타난 것들이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88년 1월 29일 황데레사가 율리아에게 그의 소명을 전수하는 첫 번째 연결고통을 받은 날의 현상과 말씀을 처음부터 통째로 빼버렸다.

둘째, 1988년 1월 30일의 현상과 말씀 중에 앞의 책에서 “데레사는 걱정하지 말아라.”가 뒤의 책에서는 “딸아 걱정하지 말아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가장 최근에 발행한 책에는 ‘딸’이라는 단어는 나오지만, 이 문장 자체가 없다.

셋째, 1991년 5월 23일 장신부가 최 베드로의 권유로 맨 처음 성모경당에 갔던 날로서, 이날 성모님의 말씀 중 “내가 이때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라는 말씀과 “성모님은 두 사람을 꼬옥 껴안아 주셨다”는 현상에 대한 자필일기의 내용이 ?나주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에는 빠졌다.

넷째, ‘성모동산’에 대한 메시지를 전부 빼버렸다. ‘전남 나주시 다시면 신광리’에 있는 ‘성모동산’과 ‘기적수’가 나오는 ‘샘터’ 그리고 ‘마리아의 구원방주 대성전터’는 모두 1992년 8월 27일 성모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주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에는 이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장홍빈 신부의 1992년 7월 27일자 일기를 보면 알게 된다.

장신부의 일기에 따르면, 성모님께서 직접 발현하시어 샘터와 대성전터 그리고 ‘마리아의 구원방주’와 깃발 모습까지 보여주셨다고 하는 곳은 ‘나주 신광리’가 아니라 ‘전남 화순’이다. 성모께서 나주가 아닌 화순에 발현하신 것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율리아의 후원자인 최 베드로가 화순에 있는 자신의 땅 일부를 율리아에게 기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율리아와 장신부 그리고 베드로와 몇몇 협력자들은 1991년 11월 25일, 26일, 28일 베드로가 기증하기로 한 화순에 있는 산에서 미사를 드렸고, 그때마다 성모께서 발현하시고 직접 샘터와 대성전터에 대한 메시지를 주셨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28일에 성모께서 알려주신 구원방주 샘터에서 성경을 펴니 요한복음 7장 38절이 나왔다고 한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섭리해 주신 말씀이라며 거기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감격의 눈물까지 흘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12월 5일에 율리아가 직접 손으로 샘터 땅을 팠는데 물이 나왔다. 그러니 화순 땅은 확실히 주님께서 섭리해주신 곳이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성모동산은 화순이 아니라 나주 신광리에 있다. 성모께서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그것도 직접 그 자리에 발현하시어 구체적으로 자리까지 지정해주시고, 성경말씀까지 들려주시며 주님께서 섭리해주신 자리인데 왜 그 섭리의 땅 화순을 마다하고 나주로 옮겨야 했는가? 그것은 기증하기로 했던 사람이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섭리가 잘못되었거나 성모께서 변덕을 부리신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없는 주님의 섭리가 사람의 필요에 따라 성경구절까지 들먹이며 나타나고, 사람의 변덕에 따라 성모께서 춤을 추신 셈이다. 적어도 성모성지인 성모동산과 샘터에 대한 환시와 메시지는 다른 이적현상들 못지않게 중요할 텐데, 화순에 대한 메시지는 물론 나주 신광리에 대한 메시지도 책에서 완전히 빼버린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주 메시지는 그 진실성에 대단히 심각한 결함이 있다.

  (2) 나주 메시지의 신학적 문제점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나주 메시지는 그 진실성 자체가 의문시되며 그 내용도 신학적으로 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① 마리아론의 문제점 ② 부정적 세계관의 문제 ③ 종말론과 구원론상의 문제점 ④ 성령강림의 국지(局地)화 주장 ⑤ 성체성사의 희화(戱畵)화 등이다.

  ① 마리아론의 문제점

율리아를 통해서 성모님께서 말씀을 하셨다고 주장하는 나주 메시지에는 마리아론적인 관점에서 문제가 많다. 우리가 복음서를 통해 알고 있는 마리아와는 너무도 다른 마리아이기 때문이다.

  첫째, 마리아 중심인 예수님과 성모님의 관계

나주 메시지에서 예수님과 마리아의 관계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예수님이 아니라 마리아다. 이는 성경과 교리에서 가르치는 바와 상충된다. 예수님은 메시지를 주실 때마다 항상 어머니를 언급하고 있다. 어머니를 언급하지 않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거의 없다. 문제는 언제나 마리아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마리아의 대변인, 보조자, 마리아의 말과 행위를 미리 알려주거나 나중에 보증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멀지 않아 내가 내 어머니와 함께 너희 각 사람에게 갈 것이다... 그러니 어서 잠에서 깨어나 내 어머니를 통하여 나에게로 오너라.”(94.4.3) “한국의 남북 정상회담을 누가 주선했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바로 내 어머니 마리아다.”(2000.6.13) “아! 외롭고 슬프구나. 감실을 마련해달라고 내 어머니께서 그렇게도 간곡히 부탁을 하셨건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셨기에 대천사 미카엘을 시킨 내 어머니의 뜻에 따라 위격적이고 신격적인 나의 현존 그 자체인 성체를 통하여 내가 한국 나주에 온 것이다.”(2000.11.2)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 속의 마리아는 철저하게 ‘제자됨’을 보여주셨다. 마리아는 성전에서 잃었던 어린 아들을 찾았을 때,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몰랐느냐’는 아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41-52 참조). 또한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을 가리키며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6-50) 라고 하셨다. 마리아는 어머니이지만 동시에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였다. 마리아는 듣고 간직하는 사람이었지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가르침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런데 나주 율리아의 메시지에서는 예수님이 성모 마리아를 두둔하는 변호인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주객이 전도되는 이런 모습은 신앙의 희화화에 지나지 않아 메시지의 상당 부분이 율리아의 상상력의 소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둘째, 존경받지 못해서 불평하시는 마리아

성경 속의 마리아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시고 세상의 아픔과 고통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런데 나주 율리아가 전하는 성모님은 스스로 존경받지 못하는 것을 가슴 아파하시고 불평하신다. 이 부분도 율리아의 심리적 투사와 객관적인 메시지를 혼동케 하는 요소가 된다. “모든 이로부터 존경을 받아야할 내가 천대받고 버림받고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제 멋대로 함부로 들었다 놓았다 하며 나를 외면해 버리고 있으니 내 마음이 몹시 슬프다. 어서 나를 도와다오.”(1988.2.4.) “하늘의 여왕으로서 존경받아야 될 내가 지금 지상 자녀들의 분열과 혼란 때문에 많은 희생과 고통과 눈물로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도와다오.”(1990.10.4.) “내가 언제까지 이리저리로 옮겨 다녀야 된단 말이냐. 어서 서둘러 내 아들 예수의 대리자인 사제들과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는 내 집을 마련해다오.”(1997.8.15.)

  셋째, 나주 율리아의 성모님은 성경말씀이나 교회의 가르침보다도 나주 메시지를 인정받아 전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계시하시는 듯 하다. 성모께서 곳곳에서 눈물과 피눈물로 호소하는 것은 죄인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나주 메시지가 인정받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성모께서는 그 무엇보다도 나주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전파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아무리 좋은 글도 알리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어서 퍼뜨려라.”(1995.6.19) 심지어는 메시지 인준과 성모경당에 감실을 설치하고 미사를 거행할 수 있도록 ‘주교와 타협하라.’(1989.2.23)는 메시지까지 주셨다. 교황청에서 교황비서가 찾아왔을 때는 인준을 호소하면서도, “나의 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주님께서도 어쩔 수 없으신데 낸들 어쩌겠느냐? 사울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너희는 알지?” 라고 하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은근히 협박까지 하셨다(1997.7.13). 이것이 과연 성모님의 메시지인가?

  이천여 년의 가톨릭 교회 역사 안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는 다섯 가지다. 하나,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시다. 둘,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시다. 셋, 마리아는 원죄없이 잉태되셨다. 넷, 마리아는 승천하셨다. 다섯, 마리아는 구원의 중개자이시다. 교회가 이런 가르침을 통해 마리아를 공경하는 최종 목적은 구세주 예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마리아가 원죄없이 태어나고, 평생 동정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위한 깨끗한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이다. 즉 예수님 때문에 그리 된 것이다. 마리아가 구원의 중개자라는 선언은 마리아가 직접 구원을 중개한다는 뜻이 아니다. 구원의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에 마리아가 참여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마리아에 대한 교리는 모두 마리아가 중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며, 또한 예수님과의 관계 때문에 그런 교리가 선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주 메시지 속의 마리아는 여신(女神)의 위치에까지 올라가 있다. 이는 잘못된 성모신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② 부정적 세계관의 문제

나주 메시지는 죄악과 대 타락의 시대를 강조하고 있으며 매우 부정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비록 세상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개선을 위한 희망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이 세상은 하느님이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그런데 율리아에게 세상은 의미가 없고 온갖 죄악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 세상은 얼른 떠나야 할 죄와 타락의 땅일 뿐이다. “이 세상의 많은 자녀들이 지금만큼 회개에서 멀리 떨어져 마귀의 조종을 받으며 파탄을 초래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1990.8.15) “지금 이 시대는 노아의 홍수뿐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보다도 더 많이 부패한 대 타락의 시대가 되어버렸다.”(1996.6.27) “세상은 지금 죄악이 포화상태가 되어 대 타락에 이르러 하느님의 진노의 잔이 넘치고 있단다.”(1997.6.12) 이렇게 율리아의 메시지는 기쁨보다는 공포를, 희망보다는 혼란을, 사랑보다는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앞에서 살펴보았던 대로, 물질적 가난과 온갖 질병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심리적 상처로 점철된 율리아의 인생 역정과 무관하지 않다. 즉 쓰라린 인생 역정을 거치면서 세상이 무섭다고 했던 율리아의 인생관과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부정적 세계관이 그리스도교적 외피를 입고 확산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세계관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선하며(창세 1,31 참조), 인간의 자유의지로 말미암아 죄에로 기울어져서 타락하였지만, 구세주 그리스도의 구원활동에 힘입어 결정적으로 구원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고 선언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이 승리에 힘입어 궁극적인 승리에 이를 것임을 믿는 낙관주의자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분명히 수많은 환난 가운데 악을 거슬러 싸우고 죽음까지도 겪어야 할 필요와 의무가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파스카의 신비에 결합되고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화되어 부활을 향한 희망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사목헌장? 22항). 따라서 나주 메시지 속에 담겨 있는 부정적인 세계관은 교회의 가르침과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죄의식과 불안을 조장할 뿐이다.

  ③ 종말론과 구원론상의 문제점

종말론과 구원론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된다. 나주 메시지에서는 ‘이 시대의 메시아’인 율리아가 하느님의 징벌을 연기시켰다고 한다. 이는 신관과 종말론 그리고 구원론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맞지 않다.

예수님과 성모께서는 불쌍한 죄인들을 회개시켜 구원하시려고 율리아를 어린 시절부터 미리 준비시켰다고 한다(1987.3.13). 그래서 율리아는 성모님과 예수님의 명을 받들어 세상 온갖 죄인들,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보속고통을 받고 있으며, 나아가 인류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성모님의 고통까지도 대신하여 받고 있다고 한다. 율리아가 이 시대 우리의 구원을 책임진 메시아인 것이다. “네가 전하는 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영혼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너를 배척한 사람은 나를 배척하는 사람이며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배척하는 것이다.”(1995.6.18)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대한 징벌에 대해 미리 율리아와 상의하시고, 율리아 때문에 연기하셨다(1995.6.16)고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인간들의 회개와 사랑의 실천 그리고 율리아의 기도와 대속 고통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지금 징벌을 내려도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율리아가 “예” 라고 대답했다면, 하느님께서 세상을 멸망시켰을까? 이 메시지의 함의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멸망시키시기 전에 그 의도를 밝히고 인류를 대신하여 간청하는 간구를 들어주시어 그 계획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일은 구약성경의 아브라함이나(창세 18,16-32) 모세(탈출 32,7-14.30-35) 말고는 없었다. 따라서 율리아가 이들의 반열에 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대단한 교만이나 무지의 소치라고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구세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구세주가 아니었으며 그의 삶과 언행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가리키셨다. 성모님의 역사상 발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성모님은 결코 중심에 서고자 하신 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율리아는 스스로 구세주의 자리를 취하는 결정적인 우를 범하고 말았다.

또한 ‘그 날과 그 시간은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로지 아버지만이 아신다.’(마태 24,36)고 했다. 아버지만이 아신다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인간의 타락 때문에 세상의 멸망을 앞당긴다는 말도 아니고, 또 의인들 때문에 연기한다는 말도 아니다. 그와 관계없이 하느님께서 때가 되면 하실 일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뜻에 따라 세상을 벌하시는 것이 아니다. 창조와 종말은 하느님의 일이다. 더군다나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의하면 종말은 징벌이 아니라 세상의 완성으로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이며, ... 그 시간은 하느님만이 알 수 있다.” 그런데 나주 메시지의 구원론과 종말론은 율리아 때문에 징벌을 연기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종말을 종말론적 의미로서의 완성이 아니라, 인류의 마지막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교회의 가르침과는 다르다.

  ④ 성령강림의 국지(局地)화 주장

나주 메시지 중에는 ‘제2의 성령강림’에 대한 메시지가 여러 차례 나온다. “새로운 성령강림이 이루어질 것이다.”(1993.5.27; 1994.9.24) “제2의 성령강림으로 새로워질 것이다.”(1993.6.27) “성령강림의 때를 단축시켜 맞이해야 한다.”(1994.11.24) “이 세상은 부활과 새로운 성령강림이 있을 것이다.”(1995.11.21)

가톨릭교회에서 제2의 성령강림은 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의미하였다. 그 외에도 성령강림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재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지금 여기에서 작용한다는 믿음의 맥락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성령이 없이는 교회가 뼈만 남은 조직이지만,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에 피가 통하고 살이 붙은 살아있는 교회가 된다. 성령은 교회가 교회답게 살아가게 해주는 교회의 생명이다. 다시 말해서 제2의 성령강림은 특정지역이나 특정단체, 기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디가 되었든지 간에 하느님의 살아있는 지체가 되게 하는 보편적 은총이다.

그런데 율리아의 메시지에서 말하는 ‘제2의 성령강림’은 결국에는 나주 메시지의 인정과 전파 그리고 ‘마리아의 구원방주회’ 설립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93년 5월 27일은 성모성지에 대한 언급과 함께 이 말이 나왔다. 1994년 9월 27일에는 마리아를 인정하지 않는 루터 교회가 앞으로 교회의 어머니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말과 예루살렘 다락방을 언급하면서 이 말이 나왔다. 그리고 교황대사가 찾아온 1994년 11월 24일에는 교황을 통해 나주 메시지를 인정받고자 하니 도와달라고 호소하면서 교황대사가 왔으니 곧 될 것 같은 마음에 ‘성령강림의 때’를 단축시켜 맞이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1995년 11월 21일은 ‘나주조사위원회’가 참고인들을 면담하는 등 활발히 조사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한 달 전에 교황청 미사에서 교황에게까지 기적을 보여주었는데도 나주 메시지 인준에 대해 아무런 언질이 없으므로 더욱 조급해진 마음에,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성령강림을 준비하였듯이 나주 메시지가 인정받고 널리 전파되도록 이 마지막 시대의 사도들이 되어 함께 기도하자고 한다. 따라서 ‘제2의 성령강림’은 나주 메시지를 인정받고 ‘마리아의 구원방주회’를 설립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때를 빨리 단축시키자는 말 속에 그 조급함이 엿보인다. 이는 공적인 사건인 성령강림을 사사화(私事化)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율리아의 청원을 성모님의 메시지로 둔갑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한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나주 메시지에는 인간적이고 인위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그 순수성과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고, 내용은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사적계시라고 믿을만한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고 교도권은 선언한 것이다(참조; 1차 공지문).

  ⑤ 성체성사 교리에 대한 혼란

성체기적에 대한 현상과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성체가 위에서 내려왔다는 것, 둘째, 미카엘 천사가 어느 감실에서 그리고 죄 중의 사제에게서 성체를 빼앗아 왔다는 것, 그리고 셋째, 율리아가 영한 성체가 입안에서 살과 피로 변했다는 것이다.

첫째, 교회는 미사 중 사제의 축성을 통해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실체변화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이 경우는 미사 밖에서 이루어진 일이니 ‘성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를 ‘성체’라고 공경하는 것은 오히려 ‘성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성모께서 미카엘 천사를 시켜 죄 중의 사제에게서 성체를 빼앗아 왔다는 주장은 교리상의 문제가 있다. 죄 중에 있는 사제가 집전하는 성사가 유효한가의 문제인데, 일반 교우들의 심정에서는 유효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기에 이런 메시지가 주장되고 유통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교회는 오랜 고뇌 끝에 성사의 사효성(事效性: ex opere operato)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성사는 그것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의로움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가톨릭 교리서?, 1128항) 이 교리는 7성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제정하셨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성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예수님의 도구이며, 진정한 제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사성제가 유효한 것은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흠이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미사성제의 진정한 제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힘입어’ 그러하다. 만일 성사의 사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매번 성사에 참여할 때마다 교우들은 그 성사의 유효성 때문에 번민하게 될 것이다. 결국 교회는 교우들의 영적 선익을 위하여 근본적인 차원에서 성사의 유효성의 근거를 인간에게 두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 두는 교리를 확인하고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율리아는 ‘죄 많은 사제에게서 빼앗아 온 성체를’ 죄 없는 사제에게 넘겼다고 주장하였다. 율리아에게서 성체를 받은 그 사제가 죄가 없다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결국 이런 주장은 사제단을 분열시키고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적, 윤리적인 완벽함 위에 세우는 우를 범하게 할 뿐이다. 사도 바오로의 주장대로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행실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물론 ‘죄 많은 사제’에게서 성체를 빼앗았다는 주장은, 성체성사의 지고함을 상기시키며, 성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마땅히 죄에서 정화되어야 한다는 엄중한 꾸짖음으로 여겨져서, 충분히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다. 그러나 이런 직설적인 꾸짖음은 대단히 인간적인 표현이며 성경의 예수님과 성모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죄 많은 사제’가 무심하게 성체성사를 집전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또 얼마나 ‘죄 많은’ 교우들이 무심하게 성체를 받아 모시는가! 그래도 자비하신 하느님은 지금껏 죄 중에 성체를 영하는 교우에게서 성체를 빼앗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죄를 용서해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피”(마태 26,28)를 성찬례에서 주신다. 하느님의 교육 방식은 인간의 방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은 죄인이라 하여 그의 권리를 박탈하는 무자비한 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죄많은 여인(루카 7,37-50),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요한 8,3-11), 가출했다가 돌아온 아들(루카 15,20-21), 그리고 세리 자캐오(루카 19,1-10)에게 결코 죄를 묻지 않았고 오히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루카 7,48)라고 선언해주신 분이시다.

또한 율리아가 주장하는 대로 성모께서 미카엘 천사를 시켜 죄 중의 사제에게서 성체를 빼앗아 율리아에게 주고, 이를 다시 교황대사에게 주어 분배하도록 하셨다는 것은 율리아가 직무사제의 기능을 대신할 뿐 아니라, 교황대사보다 더한 위치에 서 있음을 주장하는 말로서 교회의 질서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인간적으로는 가상한 생각이지만 사랑이신 주님의 가르침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오히려 회개로 이끄는 긍정적인 죄의식이 아니라 절망으로 인도하는 부정적인 죄의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즉 스승을 배반한 유다가 부정적인 죄의식으로 인해 하느님을 무자비한 분으로 생각하고 나 같은 죄인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며 절망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처럼, 조그마한 죄에도 크게 상심하고 하느님을 무서운 분으로만 생각하여 하느님을 멀리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셋째, 율리아가 모신 성체가 입 안에서 살과 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도 앞 선 사례들처럼 의심의 여지가 있다. 같은 하나의 미사에서 여러 사람이 성체를 받아 모셨는데 유독 율리아가 모신 성체만 살과 피로 변한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특정한 변화사건을 통해서 뭔가를 제시하려고 했다면 변화된 그 ‘살’을 보존하여 증거로 삼아야지 왜 먹어버렸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이는 하나의 사술(詐術)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진위여부를 떠나 신자들에게 성체성사 교리에 대해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준다는 것이다. ‘사제가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를 축성함으로써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로 실체변화 하지만 여전히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성체성사 교리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376항. 1412항. 1413항.).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당신 살과 피를 직접 떼어서 주신 것이 아니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이 사라지고 그 외형이 다른 실체(살과 피)로 변한다면 그것을 성체라고 할 수 없다. 예수께서 그렇게 직접 살과 피로 주신다면 굳이 성체성사가 왜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이는 과거 교회역사에 있었다는 성체기적(예, 8세기 란치아노 성당의 성체기적)과 관계없이 성체성사 교리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가져온다는 것이 교도권의 선언이다(참조; 제1차 공지문).

 3) 나주현상의 중심인물인 율리아의 문제점

  (1) 율리아의 인간적인 성향(기질)

율리아는 어린시절부터 물질적 가난으로 인한 고통, 잦은 병치레와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받은 무시와 배신 등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 등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점에서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위로와 격려 그리고 사랑과 존중이 필요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기구한 인생 여정은 인정욕구, 사랑받고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 등의 보상심리가 무의식 속에서 그녀의 기질을 형성했을 것으로 본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대로, 율리아에게는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소질과 능력이 있었다고 본다. 첫째, 10살 무렵인 초등학교 3학년 때 즉석에서 노래(곡과 가사)를 만들어서 불렀고, 처녀시절에 갑작스레 참여한 백일장에서 중학생 때 썼던 시를 기억해내고는 그대로 써서 일등을 했다. 그리고 주로 여성을 상대로 대화를 많이 하는 미용사였다는 점과 주변사람들에게 인생 상담사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아 남다른 기억력과 문학적인 소질 그리고 언변에 뛰어난 재주가 있다고 본다. 둘째, 초등학생 때 그네를 타다 떨어져 실신하고 3일 동안 혼수상태였다가도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일어났다는 것, 중학생 때 자신도 모르는 답변을 하여 선생님을 놀라게 했고 그런 일들이 자주 있었다는 점, 예비신자 때부터 이상한 현상을 보고 들었으며 신앙상담과 안수기도로 치유하기도 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율리아는 남다른 특별한 능력(초능력, 염력, 무속인의 기질, 신기(神氣))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율리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부 현상들은 율리아의 남다른 기질이나 능력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할 여지가 충분하다.

  (2) 율리아의 진실성 문제

율리아는 1980년에 처음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하면서도, 다른 곳에서는 1973년에 누구의 권유도 없이 율리아 부부가 스스로 성당에 나갔다고 한다. 또한 예비신자 교리는 물론 평일미사까지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하는 1973년의 예비신자 때의 내용이 1980년 예비신자 때의 내용과 똑 같다. 성모동산 조성에 대해서도 장홍빈 신부의 일기에 의하면, 1992년 8월 27일 신광리 땅 7,000평을 6,500만원에 계약했고,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현금과 얼마간의 부동산을 담보로 하여 구입한다고 했다. 그런데 2003년 율리아 부부는 교구장과의 면담에서 성모동산을 조성한 일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며 파신부의 계획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일이고, 성직자 명의로 구입할 수 없기 때문에 율리오의 명의로 구입했다고 했다. 또한 교구장이 율리아에게 ?갈멜의 산길?을 읽으라고 했을 때 글자를 모른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다른 책은 안 읽고 성경만 읽는다고 변명했다. 조사위원들과의 면담에서도 성경만 읽는다고 했으나, 오기선 신부와 파신부가 읽으라고 줬던 책의 내용들이 ‘나주 메시지’ 속에 나타난 것으로 볼 때 성경 외에도 다른 책들을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PD수첩’ 제작진이 ‘성혈’의 유전자 검사를 제의하자 “주님의 살아계신 살과 피를 함부로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런데 나주성모동산 내의 기념품 판매점에서 성혈이 담겨있는 묵주를 5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그 외 ‘PD수첩’의 방영으로 일부 현상들이 거짓으로 드러난 점으로 보아 율리아의 증언과 행동에는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3) 율리아의 겸손과 순명의 문제

율리아는 물질적 가난과 육체적 질병 그리고 심리적 상처로 잠재된 보상 심리 등으로 인해 신자가 된 다음 통상적인 신앙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기이한 현상 등을 통하여 주목받는 신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체험을 겸손하게 처리하거나 숨기지 않고 즐기는 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설령 하느님의 영이 율리아에게 작용했다 하더라도, 교회의 판단이 내리기 전까지는 조용하게 기다리며 정상적인 생활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율리아는 교회의 판단도 없이 자신의 체험을 스스로 기적이요 사적 계시라고 단언하며 주장했다. 그리고 교구장의 인준을 받으려고 권한을 가진 사람들에게 접촉하는 등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였다. 또한 자신을 인정하는 사제들만 사제로 인정하고 비판적인 성직자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불의한 자들로 여겼다. 그래서 신비체험을 통해 더욱 하느님을 찬미하고 애덕을 실천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며 교회 안팎으로 혼란과 분열을 일으켰다. 또한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물론 교도권의 선언이 발표된 뒤에도 교회의 정당한 권위에 겸손하게 순명하지 않고 거부하고 반발하였다. 이는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비체험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4) 율리아와 재산문제

율리아가 교회의 정당한 권위에 불순명하는 배후에는 돈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PD수첩’을 통해 율리아 부부 소유의 땅이 나주현상이 시작된 1985년을 기점으로 20배 이상 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율리아는 마치 아무런 욕심이 없는 사람처럼, 교회가 하루빨리 나주현상을 인정한다면 모든 것을 교회에 다 내어드리고 조용하게 살겠다고 한다. 이는 교회의 구조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성금은 교회의 이름으로 봉헌된 것들로서 결코 율리아 부부의 소유가 될 수 없다. 또한 해당 교구장은 당연히 재정에 대한 감사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율리아는 교회의 이름으로 성전 건축을 예고하고 모금하고 있는데, 만일 그 모금과 금품수수가 미사예물과 헌금의 형태라면 더더욱 직권자인 교구장의 감사가 절대적이다. 그런데 율리아는 교구장이 명한 회계감사 지시에 순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율리아는 교구장이 나주현상을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재산을 헌납하라고 한다고 왜곡하고 있다. 이는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야 한다는 식별기준으로 볼 때 체험자가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4) 영적 지도자와 추종자들의 문제점

  나주 현상이 자동처벌 파문제재까지 받게 된 것은 영적지도자의 성급함과 미숙함 그리고 잘못된 교회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파신부는 타교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해당 교구장의 허락도 없이 사적계시 문제에 관여하고 지도신부 역할을 했다. 이는 성직자로서 기본적인 자세를 벗어나 교회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파신부는 나주현상에 대한 식별과 판단을 묻는 ‘(약칭)나주 조사위원회’의 질문에 대해,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이 판단할 일이라며 답변을 회피하였다. 이는 지도자로서 체험자에 대한 자신의 식별기준과 판단을 답하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그런 판단은 신앙교리성이 할 일이라고 하면서도 신앙교리성의 판단도 없이 스스로 사적계시요 성모님 메시지라고 단정하고 선전한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사실관계와도 맞지 않다. 즉 사적계시나 신비현상에 대한 일차적 판단은 신앙교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할 교구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파신부는 근본적으로 높은 권위(교황청)에 의지하여 정당한 권위(교구장)를 무시함으로써 교회질서를 어지럽게 하였다. 이는 곧바로 율리아와 추종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검증도 없이 율리아가 주장하는 것들을 그대로 ‘성모님의 메시지’라고 단정하고 전파한 것이다.

둘째, 장신부는 감성적으로 율리아의 체험과 주장을 그대로 인정해버림으로써 영적지도자라기보다는 추종자에 더 가깝다. 그는 외적으로 드러난 표징과 자신의 체험을 중시하여 교구장의 권고를 무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당 교구의 사제라는 점에서 율리아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 선전용으로 활용되었고, 이는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혼란과 분열을 가져오는 역할을 했다.

셋째, 율리아 추종자들은 독자적으로 각 교구별, 지역별 책임자를 정하고 자체적으로 기념일까지 정하여 정기적으로 기념일에 성시간과 기도회 등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기존의 수도회를 탈퇴하여 별도로 ‘마리아의 구원방주 수도회’를 설립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

  참으로 나주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현상에 집착하지 않고 각자의 가정과 본당으로 돌아가 각자의 자리에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리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주의 경우에는 율리아와 성모동산을 중심으로 새로운 파당을 형성하고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다. 개인적인 신념과 자기 확신을 존중해야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에서 한 순간 일탈한 것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지속적이라는 점에서 이교(異敎)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4. 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과 나주 현상의 교훈

  1) 영적체험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겸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교회의 공인을 받은 발현 체험자들의 공통점은 ‘자신에게 선물처럼 주어지고 발생하는’ 체험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교회에 알리고 그에 대한 판정을 기다렸다. 파티마와 루르드 성모님 발현지의 체험자는 어린이들이었다. 그리고 과달루페 발현을 목격한 사람은 순박한 농부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생각을 보태거나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 자신의 체험을 있는 그대로 교회에 전달했을 뿐이다. 그 사건을 체험자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관계되는 사람에게 전달하면 체험자의 일은 완수되는 것이다. 성령의 활동은 공동선을 위해 주어지는 선물이다. 따라서 체험자는 이적현상이나 메시지의 소유자가 아니다. 요즘말로 해서 발현 목격 체험을 ‘재산권’이라고 한다면, 그 소유권은 체험자가 아니라 교회에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그것을 꼭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인준을 받느냐 못 받느냐는 체험자의 책임도 아니고 체험자가 애를 쓸 일도 아니다. 그저 책임자인 교회에 알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체험자(증거자)로서의 바람직한 태도인 것이다. 그래서 체험자의 겸손과 교도권에 대한 순종을 가장 중요한 식별 기준의 하나라고 한 것이다.

율리아에게 애초에 어떤 기이한 현상이 실제로 일어났을지 모른다. 그때 율리아가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는 성모님의 모범을 따랐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나 십자가의 성 요한이 강조했듯이 외적 표징에 너무 쉽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성령으로부터 오는 내적 표지와 삶의 열매(사랑)를 더 중요시하여,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겸손하게 알아듣고자 노력하며, 바깥에 알리기보다 먼저 그 정신을 살고자 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율리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율리아는 자신의 체험과 주장을 인정받는 일에 몰두하기보다는 이미 내려진 교도권의 판단을 사심없이 받아들이고 순명해야 한다. 예수께서도 “형제가 잘못하거든... 교회에 알리라.”(마태 18,15-17)고 하여 공동선을 위한 판정권이 교회(교도권)에 있다고 하셨다. 그러니 자신의 옮음을 주장하며 스스로 세력을 형성하고 교회에 저항하면서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고 교도권에 따라야 한다.

  2) 영적 지도자에게는 특별히 신중함과 성숙한 교회정신이 필요하다.

  영적지도자가 초기에 잘 대응하였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확대되지 않고 미담으로 끝났을 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본당 신부가 3개월간 그 성모상을 사제관에 모시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돌려주었는데, 그때 잘 타일러서 격려와 위로를 해주고 ‘영적 체험자’로서 지녀야할 덕목을 일러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영적지도자가 외적 표징을 우선시 하지 않고 또한 성급하게 판단하여 홍보하지 않고, 관할 책임자와 긴밀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신중하게 이 문제를 대했어야 했다. 그리고 늦게라도 교도권의 선언을 받아들이고 그 결정에 순명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개인적인 체험과 신념을 앞세워 교도권을 무시하고 나주현상에 개입한 성직자만 없었더라면 이렇게 분열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의 영향이 극과 극으로 갈릴 수도 있음을 생각하여, 사제 양성 과정에서부터 어느 한 신심에 치우침이 없도록 해야 하고, 올바른 교회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교회는 신중한 태도와 열린 마음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교회 당국에서는 12년이 넘어서야 최초의 공적인 판단을 내렸다. 너무 늦지 않았느냐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는 기적이나 사적계시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따른 신중함 때문이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사도 5,38-39) 그러나 이후 두 번에 걸쳐 공지문과 사목지침을 발표하며 교도권에 대한 순명과 교회와의 일치를 권고했지만 이에 불순명 하였기에 마침내 자동처벌 파문제재에 해당하는 교령을 발표하게 되었다. 하지만 교회는 결코 이들에 대해 어떤 예단을 갖지 않고 언제든지 마음을 바꾸어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비록 율리아와 그 추종자들이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편향된 신심행위로 교회로부터 떨어져나갔지만, 공지문과 교령에서 반복하여 언급했듯이, 교회는 자부적 사랑으로 언제든지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인내롭게 유지해야 할 것이다.

  4) 영성생활에 있어서 정서적인 측면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는 말씀처럼, ‘보거나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2코린 5,7; 참조: 로마 8,24-25).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는 어떤 표징들을 원하고 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에는 이성만으로 또는 감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하느님을 인식하고 믿는 데는 이성만이 아니라 감성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앙과 이성은 진리이신 하느님을 향해 날아오르는 두 개의 날개와도 같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성만을 강조하거나 또는 감성만을 강조하면 신앙생활에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난다. 감성만을 강조하게 되면 맹목적이거나 맹신적 경향을 띠게 되고 이성만을 강조하게 되면 마음이 메마르고 무미건조하게 된다.

이적현상 또는 사적계시에 매달리는 현상은 마음이 메마르고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에서 충족할 수 없는 종교적 욕구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영적갈증을 느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톨릭교회가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교리와 제도 중심으로 주지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감성적으로 만족할 수 없는 부분을 사적계시 또는 이적현상으로 충족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신자들의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을 어리석은 것이라고 무시하기보다는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5) 치유나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믿음과 사랑을 청해야 한다.

  감성과 정서를 배제할 수는 없지만, 십자가의 성 요한이 지적했던 것처럼, 외적이고 감각적인 현상에 집착할 때 오는 위험이 어떠한가를 우리는 충분히 경험하였다. 그 유혹을 이겨내는 방법은 이미 예수께서 가르쳐주셨다. 공생활 시작부터 예수님을 유혹하려다 실패했던 사탄은 다음 기회를 노리며 떠나갔다. 그리고 예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예수님을 유혹했다. 사탄의 유혹은 모두 기적과 관련된 것이었다. 돌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는 유혹에 당신을 위해서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군중을 위해서는 빵을 많게 한 기적으로 배부르게 해주셨다. 이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으나 예수님은 이 유혹도 피하셨다(요한 6,15 참조). 또한 ‘십자가 위에서 뛰어 내리면 믿겠다’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뛰어내리지 않으시고 그대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참조: 마르 15,29-32). 사탄은 기적을 요구하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건전한 신앙인은 눈에 드러나는 결과나 치유나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믿음과 사랑을 청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우리의 신앙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는 말씀처럼, ‘보거나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2코린 5,7; 로마 8,24-25)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는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겸손하게 주님을 찾으며 애덕의 실천에 매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세에 동화되지 않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해야 할 것이다(로마 12,2).

  6) 끝으로 신자들이 올바른 신앙생활로 나아가도록 안내하여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나주현상에 대한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 공동체가 이런 일에 성숙하게 대처하고, 신자들이 건전한 신앙생활에서 오는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성서신학, 교의신학, 전례학, 사목신학, 영성신학, 교회법 그리고 그 외 관련 전문가들이 각각의 분야에서 심층적으로 나주현상에 대한 문제들을 정리하여 백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 론

  식별의 본질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시대의 징표를 읽음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다(사목헌장 4항. 11항; 로마 12,2).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발견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교회 안팎으로 혼란과 분열을 가져온 나주현상은 잘못된 식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본 논문은 식별에 대한 성경과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통해 오늘날의 영적 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식별기준을 정하고, 이를 토대로 나주 현상을 식별해보았다.

  1.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식별의 문제는 구약과 신약 시대는 물론 교회 역사상 항상 있어 왔다. 그만큼 미묘한 영적 현상들이 많이 일어났다는 반증이다.

2. 영적 현상이나 신비체험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그 체험을 말로 전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체험 이후에 그 원체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해석을 덧붙인 성찰을 마치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 전통에서는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마태 7,16-18; 12,33)는 원리에 따라 외적인 판단기준들을 마련하여 왔다. 그 기준은 크게 세 가지, 첫째,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의 일치 여부, 둘째, 체험자의 인품과 관련하여 진실성과 교도권에 대한 순명(겸손)의 문제, 셋째, 성령의 열매인 덕성들 특히 애덕을 실천하는 것이다.

3. 가톨릭 신앙은 개인적인 확신이 아니라 공적인 신앙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자신의 체험과 신념을 주장할 수 있으나 그것을 공적으로 주장하려면 먼저 자신의 체험과 신념에 대한 공적인 판단을 받아야 한다. 그 권한은 체험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교도권에 있다. 특히 주장하는 내용이 기적이나 사적계시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겸손이 중요하다. 마르틴 루터는 자기 체험과 개인적인 신념을 앞세워 교도권을 무시함으로써 엄청난 교회분열을 가져왔다.

4. 교회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언제나 신중했다(참조: 사도 5,38-39). 그래서 나주 현상에 대해 관망하고 있던 관할 교구장은 12년이 넘어서야 최초의 공적인 판단을 내렸다. 율리아가 ‘기적’이라고 주장하는 이적현상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증명할 근거가 없고, 소위 ‘나주 성모님 메시지’ 역시 ‘사적계시’라고 믿을만한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고 했다.

5. 율리아는 처음에 어떤 현상을 체험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의 가르침대로 율리아가 겸손하게 자신의 체험을 교회에 맡기고 인내롭게 기다리며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첫 번째 공지문이 발표되기 전부터 율리아와 추종자들은 별도로 자기들만의 기도모임과 기념일을 정하여 의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이들은 첫 번째 공지문에서 파문교령까지 총 6번의 교도권의 선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구별 지역별 담당자를 정하는 등 조직화하여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교회와의 일치를 거부했다.

6. 나주 율리아 문제는 100년간의 박해와 신앙 자유를 얻은 지 100년의 세월을 지내면서 한국 교회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에 벌어진 일이다. 따라서 나주현상은 1980년대 이후 한국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성경 공부, 영성에 대한 갈증과 깊은 관심 그리고 평신도들의 성장과 교회 안팎의 세속화 현상 등 이런 거시적 안목에서 보아야 한다. 나주 문제를 우리 교회의 수치로 여기거나 도려내야 할 암적 존재로 여기고 뿌리를 뽑아내면 된다고 여기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부정적인 현상도 우리 교회와 교우들 속에 그 원인과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가 한국 사회와 문화에 뿌리내리고 ‘우리 것’이 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도와 진통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거론하는 토착화, 복음화는 다름이 아니라 이런 진통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지는 기나긴 여정이다. 교회는 어머니와 교사로서 정도에서 벗어난 양들을 우리에 불러들이고 때로는 찾아가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들을 가르치고 타일러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노력을 계속 기울여야 할 것이다.

7. 율리아와 그 추종자들은 가톨릭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모든 사심을 버리고 신앙인의 가장 기본자세인 겸손과 순명의 정신으로 교회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는 첫 번째 공지문에서부터 마지막 파문교령까지 교회가 일관되게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공지문과 교령은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일치하라는 사랑의 채찍이기 때문이다.

8. 끝으로, 나주 문제는 시간이 가면 그냥 저절로 해결이 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고, 덮어두고 잊어버려도 되는 그런 사건도 아니다. 그래서 반면의 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대증적(對症的)인 반응이 아니라 여유와 시간을 갖고 나주 문제를 성서신학, 교의신학, 전례와 성사, 사목신학, 교회법, 영성신학 등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다각도에서 연구하고 토론하여 하나의 백서를 만들어 남길 필요가 있다.

각주[편집]

  1. 김재범 기자, 나주성모동산 '피눈물 성모상'의 비밀은… Archived 2013년 12월 2일 - 웨이백 머신, 한국일보-2007년 11월 14일자
  2. 'PD수첩-나주성모동산' 방송 후 큰 반향(연합뉴스 2007년 11월 14일
  3. (Prot. N. 112/1993-27066)
  4. PD수첩 '기적인가, 사기인가-나주성모동산의 진실', MBC-2007년 11월 13일 방영
  5. 마리아의 구원방주 공식 웹사이트 '3.1-3 바티칸에서 가시관 고통과 마귀 공격' 페이지 '3월 1일 아침 8시경, 묵주기도를 하던 율리아 자매님은 마귀의 극렬한 공격을 받았다. 마귀 두목은 “우리 사업의 걸림돌인 이년이 대주교를 만나기 전에 죽여야 한다. 자살한 것처럼 칼로 경동맥을 찔러 소리 없이 죽여라.”하였다. 마귀들이 떼거리로 달려들어 율리아 자매님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총 공격을 했다.'
  6. 마리아의 구원방주 공식 웹사이트 '06.30 성모님 동산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의 예수님상에서 진액을 흘려주심' 페이지 '저녁 6시경 성모님 동산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의 예수님 상에서 진땀과 눈물을 흘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은 메시지 말씀을 받으셨습니다.'
  7. 마리아의 구원방주 공식 웹사이트 '03.28 성모님 동산 십자가의 길에 향유를 흘려주심' 페이지 '그때 율리아 자매님께서는 성모님께로부터 메시지 말씀을 받으셨고 주님께서 율리아 자매님의 이마에 향유로 '십자' 성호를 그어 주셨다고 하시기에 함께 기도하던 모든 협력자들이 렌턴을 비추어 율리아 자매님의 이마를 확인해 본 결과 정말로 율리아 자매님의 이마에는 향기가 나는 기름으로 반짝이는 십자가 표시가 있었습니다.'
  8. 성모님 기적수 페이지, 마리아의 구원방주 공식 웹사이트
  9. 율신액 페이지, 마리아의 구원방주 공식 웹사이트
  10. 자유게시판 - 율신액 스카프로 발목을 치유받았어요, 마리아의 구원방주 공식 웹사이트
  11. 자유게시판 - 율신액 스카프로 신우신염까지 갈뻔한 요로감염을 치유받았어요, 마리아의 구원방주 공식 웹사이트
  12. 자유게시판 - 무서운 교통 사고....율신액스카프 은총 , 마리아의 구원방주 공식 웹사이트
  13. 자유게시판 - 율신액 스카프로 이명증 치유되었습니다, 마리아의 구원방주 공식 웹사이트
  14. 자유게시판 - 율신액 사진으로 은총 받았어요!, 마리아의 구원방주 공식 웹사이트
  15. 자유게시판 - 굳어져서 마비되었던 다리가 율신액 스카프로 완치됐어요! 아멘!, 마리아의 구원방주 공식 웹사이트
  16. 생활의 기도 페이지, 마리아의 구원방주 공식 웹사이트
  17. 천주교 광주대교구 웹사이트 -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교령' (전략)...사제수품 때 서약한 교구장에 대한 순명 의무를 상황에 따라 여러 차례 번복하며 어기는 본 교구 소속 장홍빈 알로이시오 신부가 더 이상 광주대교구의 사제단과 일치 화합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그는 두 번에 걸친 참사회 (2007년 6월 1일, 2008년 1월 15일) 에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입장을 변명하는데 만 급급하며 교구장에게 서약한 순명 의무 (교회법 제273조, 278조 참조) 를 지키는 교구사제이기보다는, “나주 윤 율리아와 그 관련 현상들을 신봉하는 이들에 속한 사람”임을 드러냈습니다. 따라서 장홍빈 알로이시오 신부는 광주대교구 소속 사제의 자격과 권리를 더 이상 보유할 수 없으며, 사제서품 때 그에게 부여한 ‘전국 공용 교구 사제 특별권한' 일체를 취소합니다 (교회법 제194조, 1333조, 1336조, 1371조 참조)...(후략)
  18. 천주교 광주대교구 웹사이트 -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교령' (전략)...이들의 이러한 행위는 결코 올바르고 균형 잡힌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며, 건전한 신앙행위나 경신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최종 확인합니다...(후략)
  19. 자료실->갤러리, 마리아의 구원방주 공식 웹사이트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