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스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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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스페이

류스페이(중국어 간체자: 刘师培, 정체자: 劉師培, 병음: Liú Shīpéi, 1884년 6월 24일 ~ 1919년 11월 20일)는 중국 청나라 말기부터 중화민국 초기까지 활동한 혁명가, 유학자, 교육자, 정치인이다. 신숙(申叔), 좌암(左盦)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민족주의자 및 아나키스트로 알려져있다.

생애[편집]

장쑤성 의징(儀徵) 출신이며, 1902년 과거(科擧) 시험을 치뤘으나 최종합격에는 실패하였다. 이후 상하이로 이동해 장빙린(章炳麟)과 만난 뒤 학문 등을 교류했으며, 이름을 광한(光漢)으로 변경하였다. 그 뒤 1904년 상하이의 신문 <경종보(警鐘報)>에서 삼민주의를 선전하다 정부의 탄압을 받아 일본으로 망명했으며, 1905년 <국수학보(國粹學報)>가 창간하자 편집을 맡아 고문경학(古文經學)을 칭송하는 한편 '국수(國粹)'를 강조하며 국수주의 운동을 벌였다.

이후 일본 망명 기간 도중 아나키즘에 공명하였으며,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던 우즈후이(吳稚暉)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이론가로 명성을 쌓았다. 그 뒤 1909년 귀국해 단방(端方)을 따랐으며, 1911년 신해혁명 당시 단방이 사망하자 청두로 도주해 청두 국학원의 교사로 재직하였다. 이후 1915년 옌시산의 추천으로 위안스카이의 참정원(参政院)에 참여하였으며, <중국학보(中國學報)>를 창간하여 제제운동(帝制運動)을 홍보하였다. 그 뒤 위안스카이가 사망하자 톈진으로 이주했으며, 1917년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추천으로 베이징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이후 1919년 결핵으로 인해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또한 생전 <황제기년론(黃帝紀年論)>을 집필하며 황제(黃帝)가 즉위한 연도를 기년(紀年)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으며, 둔황에서 발견된 당사본(唐寫本)의 요약본을 저술하는 등 둔황학(敦煌學) 분야에도 관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