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노직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Robert Nozick 1977

로버트 노직(영어: Robert Nozick, 1938년 11월 16일 ~ 2002년 1월 23일)은 미국철학자이다.[1] <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 (Anarchy, State, and Utopia (1974))>에서, 그는 존 롤스에 대항하는 자유지상주의 정치철학적 논의를 하였다. 그는 존 로크의 자연법적 논의를 빌려와 정치철학을 논하였다. 또한, 인식론에 기여하여, 지식이나 자유 의지에 대한 철학을 하였다. 그는 근로소득에 대한 과세까지도 강제노동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는 아담 스미스를 이어 받아 야경국가론 또는 최소국가론을 주장하면서 국가는 필요악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2]

생애[편집]

노직은 브루클린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소피 코헨(Sophie Cohen)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 슈테틀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코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 작은 사업을 운영했다.

노직은 브루클린에서 공립학교를 다녔다. 그 후 컬럼비아 대학교(A.B. 1959, summa cum laude)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프린스턴 대학교(Princeton University, 1963년 박사)에서 칼 헴펠의 지도를 받았으며,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일했다. 한때 그는 노르만 토마스의 사회당 청년부에 가입하기도 했다. 또한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그는 1960년에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으로 이름을 바꾼 산업민주학생동맹의 지역 지부를 설립하였다.

1959년 학사 학위를 받은 후, 그는 바바라 피어러와 결혼했다. 그들은 에밀리와 데이비드라는 두 아이가 있었다. 노직 부부는 결국 이혼했고 그는 시인 게르트루트 슈나켄베르크와 재혼했다. 노직은 위암과의 오랜 투병 끝에 2002년 사망했다. 그는 마운트 오번 묘지에 매장되었다.

정치 철학[편집]

노직은 "강제, 사기, 절도, 행정 법원"에 대한 보호의 좁은 기능에 한정된 최소한의 국가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직에게 있어서 상품 분배는 비록 그 과정에서 큰 불평등이 생겨난다고 해도, 단지 시작에 불과한 입장에서 동의하는 성인들 사이의 자유로운 교환에 의해 초래된 것일 뿐이다.

노직은 존 롤스의 정의론 제2원칙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의 가장 혜택 받지 못한 구성원들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되도록 조정되어야 한다는 부분적인 결론에 이의를 제기했다. 존 로크를 따라갔지만, 몇 가지 면에서 로크 자신과는 중요한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노직은 또한 칸트주의 사상에도 사람들이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끝인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로크나 칸트와 달리 노직은 자기 소유와 비침해 원칙의 일관된 적용이 성인들 사이에 유효한 합의적 또는 비강제적 노예 계약을 허용하고 간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식론[편집]

노직은 게티어 문제와 관련한 해답을 제시하려 하였다. 그가 제시한 지식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P는 사실이다.
  2. S는 P를 믿는다.
  3. P가 아닌 경우 S는 P를 믿지 않을 것이다.
  4. P인 경우, S는 P를 믿는다.

참고문헌[편집]

각주[편집]

  1. Feser, Edward (2005년 5월 4일). “Nozick, Robert”.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2. 康俊晚 (강, 준만) (2010). 《미국사산책》. 인물과사상사. ISBN 978-89-5906-139-6.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