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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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
RamsesIIEgypt.jpg
이집트 제19왕조
제3대 파라오
재위 기원전 1290년 ~ 기원전 1224년
전임 세티 1세
후임 메르넵타
신상정보
배우자 네페르타리
종교 고대 이집트 종교

람세스 2세(世)(Ramesses II, 기원전 1313년 ~ 기원전 1223년)는 이집트 신왕국 제19왕조 제3대 파라오(재위:기원전 1290년 ~ 기원전 1223년)이다.

그의 치세 동안 이집트는 리비아, 누비아, 팔레스타인까지 세력을 확장해 번영하였다. 그는 호전적인 히타이트와 전쟁에서 명성을 얻었는데, 그 후 그들과 평화롭게 되었다.[1] 람세 2세, 라메세스 2세라고도 표기되었다. 람세스란 이름은 에 의해 태어났다는 의미를 가진 '라 메스 시스'의 그리스어 음이다.

생애[편집]

생몰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26세에 즉위하여 64년간 통치한 뒤 90세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사이 첫 번째 왕비 네페르타리와 여러 명의 왕비 및 측실과의 사이에서 현자(賢者)로써 명성이 높았던 카엠와세드, 후계자였던 메르에프타하를 시작으로 매우 많은 자식들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그들 대부분이 양자이며 왕의 아들이란 칭호를 하사받은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무엇보다 람세스 왕의 전용 활이라 불리는 커다란 강궁이 남아 있는데, 왕 이외에는 아무도 당기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뛰어난 전사였던 그가 많은 자식을 남기지 않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역시 그들은 왕의 친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치세 전반기에는 히타이트와 팔레스타인을 사이에 두고 세력을 다투었다. 기원전 1274년 카데쉬 전투에서 직접 출정하여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 2세와 전투를 벌였다. 이집트는 카데쉬 전투에서 거짓 정보에 속은 결과, 주력 군단이 괴멸당할 정도의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후 전투의 결과에 대해서는 양측의 기록이 달라 아직까지 논란의 대상이다. 하지만 히타이트 세력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내지는 못했다. 양쪽은 서로 상대를 물리치지 못하고, 장기간 전쟁을 계속하던 중 람세스 2세의 재위 21년째인 기원전 1268년에 이집트와 히타이트 사이에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휴전하였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 왕녀를 왕비로 맞이하였다. 이것은 세계사에서 최초의 평화조약이라 평가했다. 또한 카데쉬 전투에 대한 람세스 2세의 승리 선전은 이집트군의 군사 제도 개혁을 방해했기에 훗날 재앙의 불씨로 남게 되었다.

람세스 2세는 또한 나일 제1 강을 넘어 누비아로 원정을 떠났다. 람세스 2세는 전승 기념비를 많이 세웠고, 현재도 기념비의 상당수가 남아있는 파라오가 되었다. 누비아는 후에 이집트에 동화되어 본가 이집트의 쇠퇴를 구원하는 형태의 왕조를 세우게 된다.

업적[편집]

그는 히타이트와 전쟁을 벌이기는 했지만 실리를 추구할 줄도 알아서 히타이트와 휴전을 맺어 50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또한 아부심벨 신전, 카르나크 신전, 라메세움 등의 거대한 건축물을 이집트 전역에 건설하기도 했다.[2] 고대 파라오들에게 있어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알릴 수 있는 건축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경과 람세스 2세[편집]

비록 출애굽기에서는 파라오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지만, 일부 성서학자들은 구약 출애굽기의 파라오를 람세스 2세로 추정하기도 한다. 람세스 2세가 비돔(탈 엘-레타바)의 요새와 신도시 라암셋(피람세스)를 건설하였다는 것과 제19왕조 동안 이집트에 거주하던 셈족들의 도시인 아바리스(탈 엘-다바)가 버려졌다는 것[3]을 출애굽기와 연결하여 아바리스의 도시가 버려진 시기를 제19왕조의 그의 치세 동안으로, 그리고 그 이유를 셈족들이 이집트를 떠났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여 출애굽의 역사성을 증명하려는 성서 학자와 복음주의 계열의 학자들이 있다. 하지만, 아바리스는 람세스 2세가 피람세스를 완공하고, 피람세스가 더욱 더 성장하자 아바리스가 압도당했기 때문에 아바리스가 버려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4]

일부 학자들은 훨씬 이전에 있었던 힉소스인들의 패퇴가 출애굽 전승의 기원이 되었다고 보는데,[5][6][7][8][9][10] 초기 철기 시대 이전의 기록상으로 확인된 시나이반도(최북부)를 거쳐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갔던 민족이 힉소스인들뿐이었으며,[11] 요세푸스와 같은 역사가들 역시 이들의 패퇴를 출애굽과 연결시켰기 때문이기도 하다.[12] 물론, 힉소스인들이 이스라엘인의 선조였다는 주장은 사실상 낭설이며, 이스라엘 핑켈슈타인을 포함한 힉소스 패퇴를 출애굽으로 보는 학자들은 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이 영토를 확장하면서 가나안 저지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을 힉소스 패퇴에 대한 전승을 수입하거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하지만, 요세푸스가 인용한 역사가 마네토는 출애굽과 힉소스 패퇴를 명백히 구분하였으며, 출애굽을 훨씬 후대의 사건이라 기록하였고, 이집트 내의 기록 중 초기 철기 시대의 기록에서 파라오 세트나크테(기원전 1189년 ~ 기원전 1186년)가 이집트에서 셈족을 몰아냈다고 기록된 것과 아마도 마네토가 이를 출애굽과 연결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을 근거로 이스라엘 크놀 교수는 기원전 12세기에 발생한 셈족 추방이 출애굽 전승의 기원이었을 것이라 주장하였다.[13] 게리 A. 렌즈버그 교수를 포함한 일부 다른 학자들은 세트나크테의 아들인 람세스 3세(기원전 1186년 ~ 기원전 1155년)의 치세 때 이집트의 군사적 원정으로 이집트로 끌려온 이스라엘인들에 의한 작은 규모의 출애굽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14][15] 출애굽기에서 언급되는 지명들인 얌수프(갈대바다), 비하히롯, 믹돌, 바알스본 등의 지명이 제19왕조와 제20왕조의 기록들(Papyrus Anastasi V, Papyrus Sllier IV, Papyrus Anastasi III)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출애굽의 배경은 중기 청동기 시대보다는 후기 청동기 시대 말기나 초기 철기 시대였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창작물에서의 람세스 2세[편집]

프랑스 이집트학자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인 람세스(소설)은 이러한 람세스 2세의 삶에 관한 역사적 사료들과 성경의 내용,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쓰고 있으나, 지나친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드림웍스의 이집트 왕자에서는 성경의 이야기를 토대로 람세스 2세를 묘사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Gerald Leinwand (1986). 〈Prologue: In Search of History〉. 《The Pageant of World History》. Allyn & Bacon. 13쪽. ISBN 978-0-205-08680-1. Ramses II won fame for fighting the warlike Hittites, although he eventually made peace with them. 
  2. Gerald Leinwand (1986). 〈Prologue: In Search of History〉. 《The Pageant of World History》. Allyn & Bacon. 13쪽. ISBN 978-0-205-08680-1. Ramses built many magnificent buildings, including the temple at Abu-Simbel. 
  3. Manfred Bietak, Nicola Math, and Vera Müller, “Report on the excavations of a Hyksos Palace of Tell el Dabᶜa/Avaris.” Ägypten und Levante 22/23 (2013): 15-35.
  4. Marc van de Mieroop, "A History of Ancient Egypt", 2021, p. 125.
  5. Redford, Donald B. (1992). Egypt, Canaan, and Israel in Ancient Times. Princeton University Press. ISBN 978-0-691-03606-9. p. 412–413.
  6. Assmann, Jan (2014). From Akhenaten to Moses: Ancient Egypt and Religious Change. Oxford University Press. ISBN 978-977-416-631-0. pp. 26–27.
  7. Faust, Avraham (2015). "The Emergence of Iron Age Israel: On Origins and Habitus". In Thomas E. Levy; Thomas Schneider; William H.C. Propp (eds.). Israel's Exodus in Transdisciplinary Perspective: Text, Archaeology, Culture, and Geoscience. Springer. pp. 467–482. ISBN 978-3-319-04768-3. p. 477.
  8. Geraty, L. T. (28 March 2015). Thomas E. Levy; Thomas Schneider; William H.C. Propp (eds.). Israel's Exodus in Transdisciplinary Perspective: Text, Archaeology, Culture, and Geoscience. Springer. ISBN 978-3-319-04768-3. p. 58.
  9. Finkelstein, Israel; Silberman, Neil Asher (2002). The Bible Unearthed. Free Press. ISBN 978-0684869124. p. 68-69.
  10. Meyers, Carol (2005). Exodus.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 9780521002912. p. 8-10.
  11. The Bible Unearthed, p. 62–63.
  12. The Bible Unearthed, p. 55.
  13. Knohl, I. (2019). Exodus: The History Behind the Story. TheTorah.com. https://thetorah.com/article/exodus-the-history-behind-the-story
  14. Rendsburg, Gary. "The Pharaoh of the Exodus – Rameses III - TheTorah.com". www.thetorah.com.
  15. Shanks, Hershel; Dever, William G.; Halpern, Baruch; McCarter, Peter Kyle (1992). The Rise of Ancient Israel. Biblical Archaeology Society. ISBN 978-1-880317-07-5.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