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촉성중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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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촉성중앙협의회(獨立促成中央協議會)는 1945년 10월 23일한국민주당, 한국국민당, 조선공산당, 건국동맹 등 각 대한민국의 정당 단체 200여 명이 모여 조직한 대한민국의 단체이다.

출범[편집]

1945년 10월 23일 오후 2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서울에 있는 조선호텔에서 이승만안재홍, 원세훈 등 각 정당대표 등 200명을 모아서 회합을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승만은 김구의 귀국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 유감을 표시했다. 이후, 각정당행동통일위원회(各政黨行動統一委員會), 대한신민당(大韓新民黨), 신조선당(新朝鮮黨), 대한민국국민당(大韓民國國民黨), 조선공산당(참석자: 이현상), 귀일당(歸一黨), 대한민국인민정치당(大韓民國人民政治黨), 대한민정당(大韓民政黨), 학병동맹(學兵同盟), 조선국민당(참석자: 안재홍), 한국민주당(참석자: 원세훈), 건국동맹(참석자: 이걸소(李傑笑)), 각 청년단체대표는 대체로 이승만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통일문제 등에 이승만에 일임한다는 의견을 표하였다. 다만, 공산당(共産黨), 학병동맹(學兵同盟), 청년단체 대표자 등 4,5단체에서는 상당히 강경한 의견도 있어 인민공화국이 우리나라의 총의에 가깝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안재홍의 제안으로 독립촉성중앙협의회라 칭하고 이승만이 회장에 추대되었으며 이에 만장일치로 찬성하였다.

1945년 11월 2일 천도교 강당에서 이승만의 사회로 안재홍, 여운형, 박헌영, 이갑성 등 각 정당 단체들이 모여, 조선의 즉시 독립, 38도선 철거, 신탁통치절대반대를 선언하였다.

해체[편집]

1952년 독립촉성중앙회는 이름을 자유당으로 바꿨다. 그런데 원내와 원외가 생각이 달라서 '원외 자유당'과 '원내 자유당'이 생겨났지만, 두 자유당 모두 당수는 이승만이었다.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