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큐멘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도큐멘타전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제6회 도큐멘타

〈도큐멘타(documenta)〉독일 카셀 지역에서 5년마다 열리는 현대 미술 전시회이다. 카셀대학교의 교수이자 미술가, 큐레이터였던 아놀드 보데(Arnold Bode)가 1955년에 창설했다. 창립 당시에는 카셀 지역에서 열린 연방원예전시(Bundesgartenschau)의 일부였으며,[1] 나치즘 시기의 문화적 암흑기를 쇄신하고자 독일에 현대미술을 이해시키려는 시도로서 진행되었다.[2] 제1회 도큐멘타에는 피카소, 칸딘스키 등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 여러 미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최근으로 갈수록 전세계의 예술 작품을 포함하는데, 작품 대부분이 장소특정적인(site-specific) 성격을 띤다.

매회 도큐멘타의 기간은 100일로 제한되며, 이 때문에 "100일간의 미술관"이라고도 불린다. 도큐멘타에서는 작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유럽 미술계의 다른 주요 행사인 베네치아 비엔날레, 아트 바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와 기간이 겹치는 일이 거의 없었으나, 2017년에는 이례적으로 네 개 행사가 동시에 열렸다.

도큐멘타는 전후 50년간 백인 남성 중심주의를 고수해 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2002년 제11회에는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가 감독을 맡으면서 기존의 유럽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인도와 아프리카로 전시의 영역을 넓혔다.[3]

2007년 제12회에는 예술감독 로저 뷔르겔(Roger Buergel)의 지휘 아래 유럽은 물론 아시아와 미주 지역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참가하며 전 세계로 영역이 확장되었다. 또 14세기 이후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각지에서 만들어진 회화와 공예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3]

이름의 유래[편집]

'도큐멘타'라는 이름은 만들어진 단어이다. 이는 나치 치하에서 독일 대중이 접할 수 없었던 현대미술을 기록하고자 했던 1회 전시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아놀드 보데의 지인들에 따르면, 이 명칭은 라틴어 단어 'documentum'과 관계된다. 이 단어는 라틴어 'docere(가르치다)'와 'mens(지성)'로 나뉘며, 전시의 의도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어로 보인다는 것이다.[4]

역사[편집]

1955년 열린 도큐멘타 첫 회의 발기인은 교수이자 디자이너인 아놀드 보데였다. 원래는 연방원예전시의 부차적인 행사로 계획되었으나, 13만 명 이상의 관객이 방문했다. 전시는 1945년 이후의 미술을 가리키는 "동시대 미술"에 초점을 두지는 않았다. 보데가 원한 것은 나치 시대 독일에서 "퇴폐 예술"로 규정되었던 야수파, 표현주의, 입체파, 청기사파, 미래주의, 형이상학적 회화 등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전시의 중점은 추상 미술, 특히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추상 회화였다.

시간이 가면서 초점은 동시대 미술로 옮겨 갔다. 초기에 전시는 유럽의 예술 작품만을 다루었으나, 점차 북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예술가들의 작품 또한 포함하게 되었다. 제4회 도큐멘타는 팝아트, 미니멀리즘, 키네틱 아트를 조명했다. 1972년 제5회는 〈현실에 의문을 던지다 - 오늘의 회화 세계(Questioning Reality – Pictorial Worlds Today)〉라는 주제를 취하며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작품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무엇이 예술로 간주되는가의 문제를 급진적으로 재정하며, 이들 양식에 대한 대중의 수용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또한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스위스 작가인 아돌프 뵐플리의 작품에 큰 섹션을 마련했다. 요제프 보이스는 그가 속한 직접민주주의 단체의 원조 하에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1987년 제8회는 예술의 영역에서 디자인의 승격-포스트모던 디자인에 대한 개방성을 보여주는-을 통해 또다른 주요 변화를 시사했다. 1997년 10회는 1945년, 1968년이나 1976/77년과 같이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격변이 일어난 시점을 연대기적 표지로 삼아 예술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미학적 탐구의 기능을 추적했다. 2002년 11회는 이주, 도시화, 후기식민적 경험과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다큐멘터리 사진, 영화, 비디오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현장에서 온 작품들도 조명했다.

제목 개최 기간 총감독 참여작가 수(명) 전시 작품 수(점) 관객 수(명)
documenta 1955년 7월 16일 - 9월 18일 아놀드 보데(Arnold Bode) 148 670 130,000
II. documenta 1959년 7월 11일 - 10월 11 아놀드 보데, 베르너 하프트만(Werner Haftmann) 338 1770 134,000
documenta III 1964년 6월 27일 - 10월 5 아놀드 보데, 베르너 하프트만 361 1450 200,000
4. documenta 1968년 6월 27일 - 10월 6 24-strong documenta council 151 1000 220,000
documenta 5 1972년 6월 30일 - 10월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 218 820 228,621
documenta 6 1977년 6월 24일 - 10월 2 만프레드 슈네켄부르거(Manfred Schneckenburger) 622 2700 343,410
documenta 7 1982년 6월 19일 - 9월 28 루드 푸흐(Rudi Fuchs) 182 1000 378,691
documenta 8 1987년 6월 12일 - 9월 20 만프레드 슈네켄부르거 150 600 474,417
DOCUMENTA IX 1992년 6월 12일 - 9월 20 얀 호엣(Jan Hoet) 189 1000 603,456
documenta X 1997년 6월 21일 - 9월 28 카트린 다비드(Catherine David) 120 700 628,776
Documenta11 2002년 6월 8일 - 9월 15 오쿠이 엔위저 118 450 650,924
documenta 12 2007년 6월 16일 - 9월 23 로저 뷔르겔, 루스 노악(Ruth Noack) 114 500 이상 754,301
dOCUMENTA(13) 2012년 6월 9일 - 9월 16 캐롤린 크리스토프-바카르기예프(Carolyn Christov-Bakargiev) 187 904,992
documenta 14 2017년 4월 8일 - 7월 16일(그리스 아테네)

2017년 6월 10일 - 9월 17일(독일 카셀)

아담 심칙(Adam Szymczyk)

각주[편집]

  1. Searle, Adrian (2012년 6월 11일). “Documenta 13: Mysteries in the mountain of mud” (영어). 2018년 7월 25일에 확인함. 
  2. Smith, Roberta. “Documenta 13 in Kassel, Germany” (영어). 2018년 7월 25일에 확인함. 
  3. “지구화 열풍 속 예술에게 길을 묻다”. 《weekly.donga.com》. 2018년 8월 6일에 확인함. 
  4. Harald., Kimpel, (1997). 《Documenta : Mythos und Wirklichkeit》. Köln: DuMont. ISBN 3770141822.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