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크리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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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크리토스 (Δημόκριτος)
데모크리토스
데모크리토스
출생일 기원전 460년 무렵
출생지 그리스 압데라
사망일 기원전 380년 무렵
시대 고대 철학
지역 서양 철학
학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분야 형이상학, 수학, 천문학
업적 원자론
가족관계

데모크리토스(고대 그리스어: Δημόκριτος, Democritus, 기원전 460년 무렵 ~ 380년 무렵)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생애[편집]

아폴로도로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전기에 따르면 데모크리토스는 기원전 약 470 - 460년에 그리스 북부 지방 트라키아의 해안 도시 압데라에서 부유한 시민인 헤게시스트라토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데모크리토스는 젊은 시절에 바빌로니아이집트를 여행하였다고 한다 (클레멘스, 스트로마타 1.69). 레우키포스에게서 배운 후, 그 생애의 대부분을 연구와 저술 및 교수로서 보냈다. 이 밖의 개인적인 면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데모크리토스는 전소크라테스 철학자 가운데 마지막 큰 인물로서 소크라테스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철학 사상은 물질주의에 바탕을 둔 이른바 원자론을 먼저 손꼽을 수 있으며, 윤리학, 인식론 등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 개념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철학 사상[편집]

형이상학적 결정론은 데모크리토스에 의해 잘 표명되었다.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까지도 그리고 사물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이미 오래전에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치이론가이기도 하다.

원자론[편집]

그는 '고대 원자론'을 완성하였다. 즉,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많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계는 이 원자와 텅 빈 공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원자가 합쳐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면서 자연의 모든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이 같은 입장에서 사물의 발달과 문화의 발달 등을 설명하였다. 이 원자론을 중심으로 하는 그의 학설은 고대 그리스에 있어서 초기 유물론의 완성인 동시에, 후기 에피쿠로스 및 근세 물리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유실된 작품들[편집]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기록에 따르면 데모크리토스의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대우주론>, <소우주론>, <우주지>, <행성에 관하여>, <자연에 관하여>,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 <지성에 관하여>, <감각에 관하여>, <영혼에 관하여>, <맛에 관하여>, <색에 관하여>, <원자의 다양한 움직임에 관하여>, <형태 변화에 관하여>, <천체 현상의 원인들>, <대기 현상의 원인들>, <불과 불타는 것에 관하여>, <청각 현상의 원인들>, <자석에 관하여>, <씨앗과 식물과 열매의 원인들>, <동물에 관하여>, <하늘에 대한 기술>, <지리학>, <극에 대한 기술>, <기하학에 관하여>, <기하학적 실재들>, <원과 구의 접선에 관하여>, <수론>, <무리수 선분과 입체에 관하여>, <투영>, <천문학>, <천문표>, <광선에 관하여>, <반사된 상에 관하여>, <리듬과 하모니에 관하여>, <시에 관하여>, <노래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화음과 불협화음에 관하여>, <호메로스에 관하여>, <표현과 언어의 정확함에 관하여>, <말에 관하여>, <이름에 관하여>, <가치에 관하여 또는 미덕에 관하여>, <현자의 특징이 되는 성향에 관하여>, <의학>, <농업에 관하여>, <그림에 관하여>, <전략론>, <대양의 주항>, <역사에 관하여>, <칼데아의 사상>, <프리기아의 사상>, <바빌로니아의 신성 문헌에 관하여>, <메로에의 신성한 문헌에 관하여>, <질병으로 인한 열과 감기에 관하여>, <아포리아에 관하여>, <법적 문제들>, <피타고라스>, <추론의 규준에 관하여>, <확증>, <윤리의 논점들>, <행복에 관하여>, 이 모든 것이 소실되었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원본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재구성한 것들이다. 일신교가 지배하던 시대에 데모크리토스의 이성적이고 유물론적인 자연주의는 허락되지 않았다. AD 390~39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의무로 칙령한 이래로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모든 학교가 폐쇄되고 기독교 교리에 맞지 않는 모든 문서가 방대하고 조직적으로 파괴되었다. 영혼의 불멸을 믿었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용인되었다.[1]

각주[편집]

  1. 카를로 로벨리. 〈알갱이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쌤앤파커스. 41쪽.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