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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데데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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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데데킨트
Richard Dedekind
데데킨트(1870년 경 사진)
데데킨트(1870년 경 사진)
본명 Julius Wilhelm Richard Dedekind
출생 1831년 10월 6일(1831-10-06)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브라운슈바이크
사망 1916년 2월 12일(1916-02-12)(84세)
독일 제국 브라운슈바이크
출신 학교 괴팅겐 대학교
주요 업적
분야
박사 지도교수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율리우스 빌헬름 리하르트 데데킨트(독일어: Julius Wilhelm Richard Dedekind, 1831년 10월 6일~1916년 2월 12일)는 독일수학자이다. 해석학대수적 수론의 기초를 놓은 중요한 수학자의 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현대적 집합론수학철학의 발전에 선구적 기여를 했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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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의 데데킨트

데데킨트는 1831년 브라운슈바이크 콜레기움 카롤리눔의 교수이자 법학자이던 율리우스 데데킨트(Julius Levin Ulrich Dedekind)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출신지인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그곳에서 죽었다.

데데킨트는 1848년 콜레기움 카롤리눔에 입학하여 수학을 공부하다가 1850년 괴팅겐 대학교로 편입하여 학업을 이어나갔다. 당시 주로 기초적인 강의 뿐이었으나 가우스가 교직에 남아있었고, 데데킨트는 그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모리츠 슈테른(Moritz Stern) 교수가 새로 설립한 수학-물리학 세미나에 참여했다. 데데킨트는 1852년 가우스의 지도 하에 "오일러 적분에 관하여"(Über die Theorie der Eulerschen Integrale)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이 논문은 그의 재능을 잘 드러내지 못했다. 데데킨트는 당시 학문의 중심지이던 베를린 대학교에서 2년간 유학하며 베른하르트 리만과 교류했고, 두 사람은 1854년 하빌리타치온(교수자격)을 취득했다.

이후 괴팅겐으로 돌아온 데데킨트는 사강사(Privatdozent)로서 확률론기하학을 강의했다. 1855년 가우스가 사망한 이후 그의 뒤를 이어 교수가 된 페터 구스타프 르죈 디리클레가 데데킨트와 친분을 쌓았다. 데데킨트는 1858년 취리히 공과대학의 정교수가 되었고, 1862년부터 1894년 은퇴할 때까지 새로 승격한 브라운슈바이크 공과대학에서 수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1872년부터 1875년까지 모교의 총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여러 명문 대학에서 초빙 제안을 받았음에도 고향에 남았는데, 주로 가족과의 유대감 때문이었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누이 율리아와 함께 살았다.

데데킨트는 1916년 2월 12일 사망했으며, 브라운슈바이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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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데킨트는 취리히 공과대학에서 처음으로 미적분학을 강의하는 동안 오늘날 데데킨트 절단으로 알려진 개념을 개발했는데, 이는 현재 실수에 대한 표준적 정의로 사용되고 있다. 절단의 아이디어는 무리수유리수 전체를 두 집합으로 나누는데 한 집합에 속한 수는 모두 다른 쪽 집합의 모든 수보다 크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의 제곱근은 음이 아닌 모든 수의 집합을 제곱이 2보다 작은 것과 제곱이 2보다 큰 것으로 양분한다. 이러한 정의를 통해 수의 연속체 상의 모든 지점은 유리수 또는 무리수가 되며, 따라서 빈 위치나 불연속점은 없게 된다. 이를 현대 용어로 완비성(completeness)이라 하는데, 데데킨트는 무리수와 절단에 관한 이러한 생각을 소책자 "연속성과 무리수"(Stetigkeit und irrationale Zahlen)를 통해 발표했다.[1]

데데킨트는 두 집합 사이에 일대일대응이 존재할 때 두 집합이 "유사하다"고 정의했다.[2] 그는 이 유사성의 개념을 이용하여 무한 집합에 대한 최초의 정확한 정의를 제시했는데, 곧 집합이 "(자기 자신을 제외한) 자기 자신의 부분집합과 유사하면" 무한 집합이라는 것이다.[3][4] 현대 용어로 말하면, 집합은 진부분집합 중 그 자신과 동수(equinumerous)인 것이 있으면 무한 집합이 된다. 이 분야에서 데데킨트의 연구는 집합론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게오르크 칸토어의 연구를 예견하였다. 마찬가지로, 수학의 기초에 관한 그의 연구도 고틀로프 프레게버트런드 러셀과 같은 논리주의자들의 후대 연구를 예견하였다.

데데킨트는 르죈 디리클레, 가우스, 리만의 저작집을 편집했다. 특히 르죈 디리클레의 연구는 그를 훗날 대수적 수체아이디얼에 대한 연구로 이끌었다. 1863년 그는 르죈 디리클레의 정수론에 관한 강의들을 《정수론 강의》(Vorlesungen über Zahlentheorie)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해럴드 에드워즈(Harold Edwards)에 따르면, 이 책은 분명히 디리클레의 강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데데킨트 자신도 평생 이 책을 디리클레의 것으로 언급했지만, 책의 대부분은 디리클레 사후에 데데킨트가 직접 쓴 것이다.

비슷한 시기인 1872년 그는 데데킨트 절단을 개발하였다.[5] 《정수론 강의》의 1879년판과 1894년판에는 환론의 기초가 되는 아이디얼의 개념을 소개하는 부록이 추가되었다. "환"(Ring)이라는 용어는 나중에 힐베르트가 도입하였으며, 데데킨트의 저작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데데킨트는 아이디얼을 특정 수 집합 내에서 정수 계수를 가진 다항 방정식을 만족시키는 대수적 수가 이루는 부분집합으로 정의했다. 이 개념은 힐베르트와 에미 뇌터 등이 추가로 발전시켰다. 아이디얼은 에른스트 에두아르트 쿠머가 1843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고안한 이상수를 일반화한 것이다. 1882년 논문에서 데데킨트와 하인리히 마르틴 베버는 아이디얼을 리만 곡면에 적용하여 리만-로흐 정리의 대수적 증명을 제시했다.

그는 1888년 짧은 논문 《수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Was sind und was sollen die Zahlen?)[6]에서 자연수에 대한 공리적 기초를 처음 제안했는데, 기본 개념은 시작 수 1따름수 함수로 이루어져 있다. 이듬해 주세페 페아노는 데데킨트를 인용하여 동등하지만 더 간단한 페아노 공리계를 정립했으며, 이는 오늘날 표준이 되어 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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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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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wald, William B., ed. (1996) "Continuity and irrational numbers", p. 766 in From Kant to Hilbert: A Source Book in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 2 vols. Oxford University Press. full text
  2. The Nature and Meaning of Numbers. Essays on the Theory of Numbers. Dover. 1963. Part III, Paragraph 32 Google Books – 경유. 1901 edition, published by Open Court Publishing Company, translated by Wooster Woodruff Beman.
  3. Moore, G.H. (1982년 11월 17일). Zermelo's Axiom of Choice. New York: Springer. ISBN 978-0-387-90670-6.
  4. The Nature and Meaning of Numbers. Essays on the Theory of Numbers. Dover. 1963. Part V, Paragraph 64 Google Books – 경유. 1901 edition, published by Open Court Publishing Company, translated by Wooster Woodruff Beman.
  5. The Mathematical Development of Set Theory from Cantor to Cohen Page 3
  6. Richard Dedekind (1888). Was sind und was sollen die Zahlen?. Braunschweig: Vieweg. Online available at: MPIWG GDZ UBS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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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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