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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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

1992년 ←
1997년 12월 18일
→ 2002년

투표율 80.7%
  Kim Dae-jung (Cropped).png LEEHAECHANG2010.jpg 2006년 11월 9일 국회의원 이인제.jpg
후보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정당 새정치국민회의 한나라당 국민신당
득표수 10,326,275 9,935,718 4,925,591
득표율 40.3% 38.7% 19.2%

South Korean presidential election 1997.svg

광역시·도별 우세지역
김대중
이회창

선거전 대통령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통령 당선자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이다. 1997년 12월 18일 목요일에 실시되어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는 1987년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되고 나서 처음으로 민주당계 정권이 집권한 최초의 평화적인 민주적 정권 교체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대선 후보 선출[편집]

신한국당[편집]

신한국당1997년 7월 21일 전당대회에서 이회창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다.[1] 이인제9월 13일 이 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하였다. [2]

1차 투표 결과

득표순위 이름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이회창 4,995 40.9% 결선투표 진출
2 이인제 1,774 14.7% 결선투표 진출
3 이한동 1,766 14.6%
4 김덕룡 1,673 13.8%
5 이수성 1,645 13.6%
6 최병렬 236 1.9%
총투표수 12,104

결선 투표 결과

득표순위 이름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이회창 6,922 60.0% 당선
2 이인제 4,622 40.0%
총투표수 11,544

새정치국민회의[편집]

새정치국민회의1997년 5월 19일 전당대회에서 김대중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다. [3]

득표순위 이름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김대중 3,223 77.5% 당선
2 정대철 907 22.5%
총투표수 4,157

자유민주연합[편집]

자유민주연합1997년 6월 24일 전당대회에서 김종필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다. [4]

득표순위 이름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김종필 2,575 82.3% 당선
2 한영수 554 17.7%
총투표수 3,129

통합민주당[편집]

통합민주당1997년 9월 11일 임시 전당대회에서 조순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다. [5]

건설국민승리21[편집]

건설국민승리211997년 10월 26일 결성대회를 가지고 권영길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다. [6]

국민신당[편집]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1997년 11월 4일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7]

한주의통일한국당[편집]

한주의통일한국당은 한얼교 창시자이자 한얼 사상의 창시자인 신정일을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하였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이은 두번째 대통령선거 출마였다.[8]

후보간 합종연횡[편집]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의 대통령 후보 김대중자유민주연합 소속의 대통령 후보 김종필1997년 11월 3일 대선 후보 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하고 김대중으로 대선 후보를 단일화한 뒤 김대중이 당선될 경우 공동 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다[9].

신한국당 소속의 대통령 후보 이회창통합민주당 소속의 대통령 후보 조순은 1997년 11월 7일 양당을 통합하고 이회창으로 대선 후보를 단일화하고 조순이 당 총재가 되는 것으로 연대에 합의하였고[10], 1997년 11월 21일 통합 정당인 한나라당이 공식 출범하였다[11].

논란[편집]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이회창 후보는 면제판정을 받은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 호화 빌라 논란, 며느리 원정출산 의혹에 시달렸다. 김대중 후보도 차명 비자금 의혹, 한국전쟁 당시 병역문제에 관한 의혹에 시달렸다.[12]

1997년 대선 후보들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 공약 대결과 외국 언론들의 김대중당선자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한 평가[편집]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3후보 모두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 복권을 공약으로 내세워 논란을 빚기도 했다. 1997년 8월 31일, 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 후보는 간담회에서 "김영삼 대통령 임기중에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하여 동서화합의 길이 열리도록 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이어 "그들(전두환 노태우)이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우리도 똑같이 대응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13] [14] [15] 그리고 다음날인 9월 1일 SBS 대통령 후보와 함께라는 프로그램에서 김대중 총재는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용서론을 강조했다.[16] 이렇게 김대중후보가 전두환 노태우 사면을 내세우자 경향신문은 "화해의 정치인'부각 영남 끌어 안기6共(공)세력들도 포용 색깔론 차단 효과까지 ‘용서’광주여론도 한몫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김대중))총재가 정치권의「뜨거운 감자"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17] 그리고 10월 23일, 새정치국민회의 박정수 부총재는 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김영삼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김대중후보가 당선되면 대대적인 사면이 단행될 것"이라고 밝혔다.[18] [19] 이날 김대중 후보를 대신해 대표 연설에 나선 새정치국민회의 박정수 부총재는 집권 정치 보복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김대중후보의 약속을 거듭 강조하고 아무런 전제 조건을 달지 않은 채 전두환·노태우 前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촉구했다.[20] 그에 대응하여 9월 1일 신한국당 대선후보인 이회창은 보수세력의 연합과 국민적인 지지를 얻고 김대중 후보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론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김영삼대통령에게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추석 전에 사면해 줘야 된다고 요구한다.[21] [22] [23]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회창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조기석방에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된다"며 이회창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24] 당시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앞다투어 전두환 노태우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사회 각계에서도 개탄의 분위기가 쏱아졌다.[25] 당시 김영삼대통령은 9월 12일, 당초 전두환 사면에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이회창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으나 다시 말을 바꿔 대선 전에 사면을 할 것이라며 입장을 선회한다.[26] 이렇게 이회창이 전두환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감옥에 있는 전두환이 이회창에게 "고맙다"며 "우리 때문에 정치적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냐" 화답할 만큼 매우 기뻐했던 것으로 밝혀졌다.[27][28] 그에 대해 이회창 후보도 전두환의 화답에 "고생 많으시다. 추석때 나오시기를 바랬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아쉽다"고 전두환측에게 화답한 것으로 밝혀졌다.[29] 당시 한겨레에서는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가 "추석전 전두환 노태우 두분의 석방을 바랬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아쉽게 됐다"고 전두환 측근들에게 화답하였다고 보도했다.[30] 그리고 이회창은 9월 24일, cbs와 경실련과의 간담회에서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해 "전직 대통령이 구금상태에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대통합 차원에서 석방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전두환 노태우 사면론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31] 이는 곧 경쟁자인 김대중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론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회창김대중이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 복권 공약을 내세운 것에 대해 이인제도 경쟁적으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 복권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32] [33] [34] 결국 이렇게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3후보 모두가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 복권을 경쟁적으로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12월 18일 대선에서 이회창은 김대중후보에게 39만표차로 떨어져 낙선하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인 1997년 12월 20일, 김영삼대통령과 김대중대통령 당선자와의 협의로 사면 복권되었다.[35] 당시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은 김영삼 대통령의 제안에 김대중대통령 당선자가 이것을 수용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는데 김대중당선자는 12월 21일, 일산자택에서 "이제는 국민 통합이 중요하다"며 전두환 노태우 사면을 지지했다.[36] 이런 사면에 대해 낙선한 이회창후보 측근도 "이회창쪽에서도 추석전 조기사면을 요구한 만큼 김대중당선자도 사면을 주장했으니 당연한조치"라고 평했고 낙선한 이인제후보쪽에서도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해 "이제는 국민대화합의 계기가 되어야 하고 매우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37] 12월 21일, 김대중당선자가 김영삼대통령과 협의에 의해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한 것에 대해 외국 언론들은 용기있는 결정이라며 평가했다. 뉴욕타임스지는 김대중 당선자가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동의한 것은 자신의 쓰라린 과거를 묻어둘 의사가 있음을 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고 미국의 ABC방송은 김대중 당선자가 40년간에 걸친 고난의 정치역정을 용서로써 마무리 짓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ABC방송은 이어 김 당선자의 용서는 경제회생이라는 어려운 임무를 떠안게 된 새 지도자로서 정치적인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김 당선자의 이번 조치가 국가 화합과 지역감정 해소, 그리고 경제위기 극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38] 뉴욕타임스는 "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화합책의 하나로 김대중(金大中(김대중))대통령당선자는 두 명의 전임 독재자들에 대한 사면에 동의했다. 김영삼대통령 측 대변인은 김대중당선자가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해 동의했다고 밝혔으나 김대중 당선자측은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해 우리가 그들(김영삼, 이회창 신한국당 대선후보, 전두환, 노태우)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 뿐"이라고 밝혀 사면에 대한 둘의 미묘한 신경전을 보도했다.[39] 당시 사면에 대해 1997년 12월 22일동아일보에서도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은 유력 대통령후보들이 모두 대화합을 명분으로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움으로써 대선 후 사면은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라고 보도했다.[40]


2013년 현재 전두환은 추징금 2205억원 중 1672억원을 미납한 상태이며,[41] 노태우는 2628억원 중 2344억원(89%)을 납부해 200억원이 넘는 추징금을 미납하다가 2013년에 완납했다[42]

선거 통계[편집]

김대중후보는 영남,강원지역 제외하고 수도권,충청,호남,제주에서 승리했다. 지난 대선에서 서울,호남에서 승리했지만 자유민주연합 소속의 대통령 후보 김종필와의 단일화으로 인해 경기,인천,대전,충남,충북,제주까지 확대되어 정권교체에 발판되었다. 그리고 한나라당 소속의 대통령 후보 이회창은 영남,강원지역에서 승리했다. 그로 인해 동서현상이 발생한다.

여론 조사[편집]

날짜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박찬종 조순 김종필 비고
1월 3일[* 1] 15.3 16.3 1.7 16.5 2.5 4.3
4월 7일[* 2] 15.3 20.5 6.3 19.5 10.1 7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 임명
6월 14일[* 3] 25 17.8 15.8 20.2 5.7 이회창 대선자금 의혹, 국민회의 후보선출
7월 22일[* 4] 26.6 40.4 7.1 자민련,신한국당 후보선출
8월 31일[* 5] 25.2 15.2 31.7 16.5 7.9 이회창 병역의혹
9월 18일[* 6] 29.7 15.6 24 13 3.8 민주당 후보선출, 이인제 탈당
10월 27일[* 7] 34.3 10.6 21.9 4.7 2.9 김대중 비자금의혹
11월 10일[* 8] 35.3 21 28.1 김대중-김종필, 이회창-조순 단일화
11월 25일[* 9] 32.1 31.5 19.9

선거 결과[편집]

득표순위 기호 이름 정당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2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10,326,275 40.3%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 당선 당선
2 1 이회창 한나라당 9,935,718 38.7%
3 3 이인제 국민신당 4,925,591 19.2%
4 4 권영길 건설국민승리21 306,026 1.2%
5 7 신정일 한주의통일한국당 61,056 0.2%
6 6 김한식 바른나라정치연합 48,717 0.2%
7 5 허경영 공화당 39,055 0.2%
총투표수 26,042,633
선거인 수 32,290,416
투표율 80.7%
  • 득표율은 유효투표수 대비 백분율을 가리킨다.

지역별 득표수[편집]

광역시·도별 대선 투표결과 우세지역
연두색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우세지역,
파란색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우세지역이다.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권영길 허경영 김한식 신정일 합 계
서울 2,394,309 2,627,308 747,856 65,656 5,432 8,978 5,234 5,854,773
인천 470,560 497,839 297,739 20,340 1,915 2,356 1,862 1,292,611
경기 1,612,108 1,781,577 1,071,704 47,608 7,077 8,035 7,415 4,535,524
강원 358,921 197,438 257,140 8,231 3,201 1,851 4,161 830,943
대전 199,266 307,493 164,374 8,444 1,028 1,352 936 682,893
충남 235,457 483,093 261,802 9,064 3,011 4,109 4,122 1,001,198
충북 243,310 295,666 232,254 10,232 2,784 2,313 3,357 789,816
광주 13,294 754,159 5,181 1,478 154 660 273 775,199
전남 41,534 1,231,726 18,305 2,199 1,027 4,790 2,255 1,301,836
전북 53,124 1,078,957 25,037 4,189 943 4,981 1,968 1,169,189
부산 1,117,069 320,178 623,756 25,581 2,252 2,211 3,359 2,094,406
울산 268,998 80,751 139,824 32,145 627 427 991 523,763
대구 965,907 166,576 173,649 16,258 1,661 1,229 1,317 1,329,088
경남 908,808 182,102 515,869 27,823 3,125 2,150 8,047 1,648,014
경북 953,360 210,403 335,087 22,382 4,177 2,476 11,723 1,539,608
제주 100,103 111,009 56,104 3,856 551 799 1,245 273,577
  •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영남과 강원 지역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수도권, 충청, 호남, 제주 지역에서 우세했다.
  • 하지만 같은 보수성향 후보인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와의 표차를 합하면 보수후보들은 수도권, 충청, 제주에서도 과반수 이상을 득표했는데, 보수정당의 분열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대부분 지역에서 1위를 한다. 수도권과 충북, 대전 전 지역, 충남 지역 일부, 영남 전 지역과 제주, 강원은 보수진영이 과반수를 넘었지만 보수정당 후보들의 분열로 김대중 후보가 2위 한나라 이회창 후보와의 격차가 39만표 차이로 1위를 한다. 서울에서는 서남권의 금천구, 관악구를 제외한 서울 모든 지역에서 보수진영이 과반수 이상 득표를 했고, 인천에서는 전 지역에서 보수진영이 과반수 이상 득표를 했다. 경기도에서는 성남 수정을 제외하면 보수진영이 과반수 이상 득표를 했다.

각주[편집]

  1. 與 대선후보 李會昌씨, 동아일보, 1997년 7월 22일.
  2. 이인제씨 탈당 대선 출마, 한겨레, 1997년 9월 14일
  3. 金大中씨 大選후보 선출, 동아일보, 1997년 5월 20일.
  4. 자민련 대통령후보 김종필씨, 한겨레, 1997년 6월 25일.
  5. 민주, 조순 대선후보 선출, 한겨레, 1997년 9월 12일.
  6. 권영길씨 대선후보 추대, 한겨레, 1997년 10월 27일.
  7. 李仁濟후보 선출 어제 국민신당 창당, 동아일보, 1997년 11월 5일.
  8. 최종철 기자 (1997년 11월 1일). “통일한국당 신정일 후보는? 78년 한얼교 법통 취임”. 영남일보. 2014년 8월 18일에 확인함. 
  9. DJP단일후보체제 출범, 매일경제, 1997년 11월 4일.
  10. 신한국-민주당 통합 합의 후보 李會昌-총재 趙淳, 동아일보, 1997년 11월 8일.
  11. 한나라당 공식 출범, 한겨레, 1997년 11월 22일.
  12. 97대선 제2차 TV 합동 토론회, 병역 공방 치열 1997.12.7 mbc
  13. 全(전)|盧(노)씨 사면결정金(김)대통령 임기내" 金大中(김대중)총재 국민회의 1997.8 .31 동아일보
  14. 全(전)·盧(노)씨 현정권서 사면해야” 김대중총재 밝혀 1997.8.31 경향신문
  15. 김대중 총재,김대통령 임기내 전직대통령 사면 요청 1997.8.31 mbc 뉴스
  16. 국민회의와 자민련, 두 전직 대통령 사면 시기 이견 1997.9.1 mbc뉴스
  17. '화해의 정치인'부각 영남 끌어 안기6共(공)세력들도 포용 색깔론 차단 효과까지 ‘용서’광주여론도 한몫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김대중))총재가 정치권의「뜨거운 감자 1997.9.1 경향신문
  18. "全(전)·盧(노)씨 사면 바람직" 1997.10.23 경향신문
  19. 집권하면 대사면 단행” 국민회의 국회 대표연설 박정수 국민회의 부총재 1997.10.23 한겨레
  20. 국민회의, 전두환.노태우씨 사면 촉구 1997.10.23 mbc뉴스
  21. 신한국당 이회창,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추석전 조기 석방 건의 1997.9.1 mbc
  22. 김영삼 대통령.이회창 대표,두 전직 대통령 특별 사면 파문 관련 심야 긴급 회동 1997.9.2 mbc
  23. 전노씨 추석 이후로 사면 1997.9.1 경향신문
  24. "全(전)·盧(노) 추석전 사면 不可(불가)"1997.9.3 매일경제
  25. 한가위'정치오염' 1997.9.11 한겨레신문
  26. 全(전)·盧(노)씨 대선前(전) 사면 검토 1997.9.18 경향신문
  27. 옥중 전씨 사면건의 고맙다, 이회창 대표에 구두 메세지 1997. 9.24 경향신문
  28. 李(이)대표-全(전)씨 비밀메시지 오갔다 사면파동후 변호사 통해 1997. 9. 24 동아일보
  29. 李(이)대표-全(전)씨 비밀메시지 오갔다 사면파동후 변호사 통해 동아일보 1997.9.24
  30. 사면 노력해줘 고맙다” 전씨, 이회창대표에 인사말 1997.9.24 한겨레
  31. 이회창, 대표인선 원점 재검토 1997.9.24 한겨레
  32. 97대선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경남,부산 유세,집권후 정계 1997.12.15 mbc
  33. 이인제 pk다지기 1997.12.16 한겨레
  34. 빠른 시일 내에 전노씨 사면, 이인제 후보 기자회견서 밝혀 1997.12.16 경향신문
  35. 전두환과 노태우 특별사면 결정 1997.12.20 mbc
  36. 전두환 노태우 사면 한나라 국민회의 국민신당 모두 환영의사 1997.12.21 한겨레신문
  37.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사면에 여야 모두긍정적 반응 1997.12.21 동아일보
  38. 김대중 당선자의 전,노 전직대통령 사면은 용기있는 결정 1997.12.21 mbc뉴스
  39. "한국 全(전)- 盧(노)사면은 국민화합책" 미) 뉴욕타임스 본사 특약·본지 독점게재 1997.12.22 동아일보
  40. 全(전)-盧(노)씨 사면 「12.12사태」서「12.22석방」까지 뒤바뀐 영욕1997.12.22 동아일보
  41. 전두환 前 대통령, 추징금 1672억원 안내나 못내나
  4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