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진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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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진보주의(대한민국의 進步主義)는 대한민국의 진보주의적,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주로 PD(민중민주)와 NL(민족해방)로 나뉜다.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진보는 아직 소수 세력이다.

독립 이후 여러 진보 진영이 존재했지만 현재 대부분 소멸되거나 통합을 거쳐 PD(민중민주)와 NL(민족해방)만 남게 되었다.

한편, 한국의 보수주의적 시각에서는 자유주의정당인 민주당도 진보주의 정당이라고 보기도 하며, 한국의 자유주의 자들이 진보주의를 자처하기도 한다.

사회주의자를 비롯한 진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진보를 사칭한다고 주장한다.

역사[편집]

일제 강점기[편집]

일제 강점기에는 사회주의적인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중에 비폭력적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여운형같은 중도좌파였고, 무력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였다.

해방 직후[편집]

중도좌파와 급진좌파의 대립[편집]

광복 직후, 진보주의자들은 여운형등을 비롯한 중도좌파와, 박헌영을 비롯한 급진좌파로 확연히 차이가 났다. 그러나 이들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였고, 중도좌파들은 통일정부를 세우려고 했고, 급진좌파들은 북정부를 지지했다.

중도주의적 좌파들은 우익들과 타협을 주장했으나, 한민당극우파들이나, 급진좌파들에게 테러를 당하는 경우가 빈번했다.[1]

중도좌파들의 경우, 신탁통치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지만 급진좌파들은 대개 찬성했다.

이들은 힘을 합쳐 남조선로동당을 창당했으나 여운형을 비롯한 우익과 타협적인 중도좌파대다수의 비타협적 급진좌파 공산주의자들의 대립이 격화되었고, 결국 소수파중도좌파들은 탈당해 근로인민당을 창당하였다.

이후 남조선로동당은 이승만 정부에 의해 불법 정당으로된다.

중도좌파에 속하는 진보주의자들의 일부는 월북하지 않고 대한민국에 남아있거나, 심지어는 월남했지만 박헌영을 비롯한 급진좌파에 속하는 진보주의자들은 대부분 월북했고, 이들은 후에 대부분 김일성의 스탈린주의적인 정책들에 의해 숙청당한다.[2] 이후, 북한에서 진보주의는 쇠퇴하였고, 주체사상만 남게 되었다.

사회주의자였으나, 반공주의자였던 조소앙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찬성하였으며, 사회당을 창당하였다.

사회민주주의 우파[편집]

한편 정치성향은 사회민주주의에 가깝지만 남한 단독정부 수립 찬성, 우익진영에 가담한 조소앙과 그의 지지자들은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에다 반공주의 성향이 가미된 사회당을 창당하였으나, 한국전쟁때 조소앙이 납북되면서 해산됐다.

이승만 정부[편집]

이승만 정부 시절에 좌파정당들은 대부분 불법화되었고, 탄압을 당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탄압이 더욱 심해졌다.

한때 공산주의자였으나, 공산주의의 독재부분에 반대하여 반공주의, 민족주의자로 전향한 조봉암자본주의공산주의 독재 모두 반대하는 민주사회주의 성향의 진보당을 결성했고, 당시 유일하게 허용된 좌익정당이였지만 평화통일론을 주장한 것을 핑계로 이승만정부는 간첩누명을 씌워, 진보당을 강제 해산시키고 조봉암을 사형시켰다.[3]

4.19 혁명 이후 혁신계[편집]

4.19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제2공화국이 성립되자, 탄압당한 소위 혁신계라고 불리던 진보주의자들이 다시 활개했다.

평화통일 운동[편집]

특히, 이승만정부시대에는 언급도 하지 못했던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학생들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구호를 외치며, 미국 소련같은 강대국들의 영향력에서 벋어나, 평화적인 중립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4]

사회주의 정당 재창당[편집]

탄압당하던 진보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은 1960년 한국사회당을 창당하였으나, 5.16 군사정변이후, 군사정권의 구정치인 정화법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박정희 정부[편집]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정권보다도 더 강경하게 국가보안법을 악용해 사회주의자, 진보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외치는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들마저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였다. 이는 박정희 본인이 과거 남조선로동당이라는 극좌 정당 당원이였다가, 우익으로 전향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후, 약 30년간 대한민국의 진보주의는 크게 후퇴를 거듭하였다.

통일사회당 이라는 제도권 안에서 유일하게 허용된 혁신계정당인 사회주의 정당이 있었으나, 박정희 정권 당시 반공 메카시즘 때문에 사실상 무시해도 될 정도의 군소정당이였고, 이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산당한다.

전두환 정부[편집]

박정희 때 완전히 전멸되다시피 한 혁신 세력들이 전두환의 쿠데타와 5.18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부활하게 된다.

이전까지 운동권에서는 주로 우익 성향의 반독재 민주화운동가들이 전부였지만, 5.18 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이 침묵하였다는 의혹이 높아지면서 좌파 운동이 다시 대학가에 불기 시작하였다.

끔직한 학살극으로 인해 대학가에서는 사회를 근복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었다.

5.18이후 운동권은 반미감정이 극도로 폭발하여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좌파 민족주의 운동이 크게 유행하였고, 이러한 운동을 주도하는 자주파들이 운동권의 대 다수파를 차지하였다,

한편 반미가 없던건 아니지만, 반미의 중점을 두지 않고 사회민주주의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운동까지 좌파 민족주의에 해당되지 않는 좌익운동권을은 평등파라고 불렀다. 당시 소수파였다.

자주파들은 대개 주체사상 신봉자들이나 스탈린주의자들이였기 때문에 조직을 체계적이고 수직적, 권위적으로 다단계형태로 운영하였고, 저항하는 밑층을 반동분자로 몰았다.

한편 정통 사회주의자인 평등파들은 개개인의 이론이나 생각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비조직적이였고 수평적이였지만 한국 특유의 민족주의 성향이 없었기 때문에 큰 지지를 얻지 못하고 소수파로 존재하였다.

이러한 좌익운동가들은 우익 민주화 운동가들과 연대하여 전두환 독재정권에 저항하였다.[5][6]

민주화 시대와 현대[편집]

진보 세력은 대학에서 펼쳐진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으며, 여러 민주화 단체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NL이 주도하는 진보세력은 민주화 운동과 함께 친북적 사상을 대학가에 주입시킨다. 이때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386 세대는 대부분 정치인, 교수 등을 포함한 사회 엘리트 계층으로 성장하여 진보주의가 힘을 키울 수 있었다.

6월 항쟁 이후[편집]

민주화 운동이 종결을 맺으면서 야당 재야 인사였던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로 이들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이끈 진보세력도 분열된다. PDNL 또한 독자적 행보를 보였다. 김대중이 당선된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NL 세력이 김대중을 지지한 반면, PD는 독자적 정당들을 창당한다. 이들이 창당한 건설국민승리21민주노동당의 모체가 되었으며, 민주노동당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8명, 지역구 2명을 당선시켜 대한민국 정치 역사 처음으로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둔다. 사회당은 합당을 거부하다가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한 심상정, 노회찬 등이 창당한 진보신당과 합당을 한다. NL 진영은 2004년부터 조직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하여 다수파가 되었으며, PD 세력과의 갈등으로 진보신당이 창당되면서 분열된다. 하지만 2011년, NL이 주류인 민주노동당진보신당에서 탈당한 심상정, 노회찬을 포함한 PD 세력,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분당을 통해 친노 세력이 만든 정당인 국민참여당과 여러 사회 인사들과 단체들이 합당을 통하여 통합진보당을 창당한다. 통합진보당은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과 야권연대를 결성하여 국회의원 13명을 배출한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PD 세력은 당권을 잡은 NL의 종북주의적 행태를 비난하며 의원 7명이 탈당하여 진보정의당을 창당한다. 진보정의당은 당명을 변경하여 정의당으로 개편된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통합진보당정의당은 기초단체장을 한명도 배출하지 못하면서 참패한다. 2015년 통합진보당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해산된다.

경제적 관점[편집]

NL들의 경우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미국에 종속된 사실상 반식민지상태라고 보며, PD들의 경우는 미국에 큰 관점을 두지는 않지만, 한국이 불평등한 극우 파시즘 경제체제라고 주장한다.


두 계열의 공통점은 영미의 신자유주의에 본질적으로는 반대하기 때문에 민영화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취한다. 특히 일부 PD계열의 경우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주장한다.

사회적 관점[편집]

동성애에 찬성하는 것은 물론 동성애 결혼 합법화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성매매합법화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자본주의적, 물질주의적이라고 강력하게 반대한다.

복지공리주의에 큰 중점을 둔다.

외교적 관점[편집]

민족 해방파[편집]

민족해방계열의 경우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론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미국에 종속된 나라라고 해석하기 때문에 미국의 패권주의,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상대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우호적인 관점을 취한다.

NL의 경우 대개 친북적인 주체사상파들이 주류이며, 비주사파들의 경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체제에 반대하기도 하나, 이들도 대개 반미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민중 민주파[편집]

민중민주계열에서는 딱히 반미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한미 FTA신자유주의적 정책이기 때문에 반대하였다.

PD계열에서는 친미, 반미 이분법은 결국 미국 중심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친미도 반미도 아닌 탈미를 주장한다. 이는 미국은 무조건적인 적도 동지도 아니며, 최대한 대한민국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미국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박노자같은 한국의 평등파 계열을 지지하는 사회주의 학자들은,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왜곡된 반일 감정을 비판하였다.[7][8]

PD와 NL의 차이[편집]

NL은 한반도 통일민족주의를 중요 가치로 여기지만, PD는 노동자 해방과 계급투쟁을 중요 가치로 여긴다.

PD와 NL은 80,90년대 운동권 시대에 이러한 견해 차이로 서로 맞지 않았고, 타협하다가 싸우다가를 반복하였으나 민주노동당을 창당하며, 두 세력은 화합했으나, 결국 PD세력들이 진보신당을 만들어 탈당함으로써 다시 분열되었다. 현재 PD 평등파들은 극단적인 일부 NL들의 지나친 친북행위로 인해 진보이미지가 실추되면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PD파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박혀있으며, 한때 NL 주사파들을 종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추종자)이라고 비판하였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