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대명분(스코틀랜드 게일어: An t-Adhbhar Mòr[1], 영어: Great Cause)이란 1286년 알바 왕국(오늘날의 스코틀랜드)의 왕 알락산다르 3세가 낙마사하고, 그 유일한 적손인 노르웨이 왕녀 마르그레트 알렉산데르스도티르가 요절하면서 공위기가 시작되자 스코틀랜드 왕위를 두고 벌어진 분쟁이다.

1290년, 마르그레트(당시 3세)를 보정하던 스코틀랜드의 수호자들은 잉글랜드 왕세자 에드워드 캐너번(당시 5세)과 마르그레트의 약혼을 주선했다(버검 조약). 이 조약에서는 여러 가지를 규정하면서, 마르그레트와 에드워드의 자식이 잉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왕국의 왕위를 모두 물려받을 것이나,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속국이 아니며 독립국으로서 동군연합을 이룰 것이라고 규정했다.[2] 이것은 명백히 스코틀랜드의 독립주권을 보존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26일, 마르그레트가 오크니에서 죽으면서[3] 스코틀랜드 왕위는 공석이 되었다. 가장 유력한 왕위요구자는 갤러웨이 대부 존 발리올이었다. 존은 강력한 에드워드 1세의 대행자로 스코틀랜드에 파견되어 있던 더럼 주교 안토니 베크와 동맹하고 스스로를 "스코틀랜드의 후계자(heir of Scotland)"라고 칭했다.[4] 또다른 강력한 요구자는 애넌데일 대부 로버트 5세 드 브루스였다. 로버트는 마르그레트의 대관식 장소로 예정되었던 장소에 군대를 모았고, 마르 백작 돔날 1세 막 일리엄애솔 백작 데이비드 1세 드 스트라스보기 역시 로버트의 편을 들어 군사를 모은다는 소문이 팽배했다.[5] 스코틀랜드는 계승권 내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존과 로버트 외에도 14명의 후보자가 난립했는데, 모두들 크든 작던 혈연적 명분이 있었다.

Royal Crown of Scotland (Heraldry).svg
돈카드 1세
막 크리난
잉기뵤르그
핀스도티르
Royal Crown of Scotland (Heraldry).svg
말 콜룸 3세
막 돈카다
성녀 마거릿
Royal Crown of Scotland (Heraldry).svg
돔날 3세
막 돈카다
Royal Crown of Scotland (Heraldry).svg
돈카드 2세
막 말 콜룸
에드워드에트몬드
막 밀 콜룸
에델레트
막 밀 콜룸
Royal Crown of Scotland (Heraldry).svg
에드가르
막 밀 콜룸
Royal Crown of Scotland (Heraldry).svg
알락산다르 1세
막 밀 콜룸
Royal Crown of Scotland (Heraldry).svg
다비드 1세
막 밀 콜룸
마리
잉겐 밀 콜룸
마틸다
잉겐 밀 콜룸
Crown of Saint Edward (Heraldry).svg
헨리 1세
뷰클레륵
베호크
안리크
막 다비드
Crown of Saint Edward (Heraldry).svg
에드워드 1세
롱섕크
헥스틸다
Royal Crown of Scotland (Heraldry).svg
일리엄 1세
막 안리크
Royal Crown of Scotland (Heraldry).svg
말 콜룸 4세
막 안리크
다비드
막 안리크
마거릿마저리에이다 헌팅던플로리스 3세
폰 홀란트 백작
일리암
코민
Royal Crown of Scotland (Heraldry).svg
알락산다르 2세
막 일리엄
헨리이사벨에이다마거릿오프리카마거릿에이다이사벨로버트 4세
드 브루스
알리시아빌헬름 1세
폰 홀란트 백작
리처드
Royal Crown of Scotland (Heraldry).svg
알락산다르 3세
막 알락산다르
마저리이사벨패트릭외스타슈윌리엄다르보르갈
갤로웨이
존 1세
드 발리올
헨리
헤이스팅스
헨리플로리스 4세
폰 홀란트 백작
마그라드 닉
리 알라스다르
Heraldic crown of the King of Norway.svg
에이리크 2세
마그누손
윌리엄패트릭 던바
제6대 백작
윌리엄오프리카빌헬름 2세
폰 홀란트 백작
이르민가르드로버트애거서
Royal Crown of Scotland (Heraldry).svg
마르그레트
에이릭스도티르
니콜라 2세
드 소울스
패트릭
갈리슬리
윌리엄
드 로스 남작
패트릭 던바
제7대 백작
윌리엄
드 베스키
로저
드 맨더빌

발리올
존 헤이스팅스
제1대 남작
로버트 5세
드 브루스
로버트
드 핀케니
플로리스 5세
폰 홀란트 백작
에드워드 2세
캐르나펀
존 2세
코민

수호자들은 왕위계승자를 가리기 위해 궁정에서 104인의 방청객이 참여한 회의를 열었고, 마르그레트의 예비 시아버지였던 에드워드 1세에게 그 진행을 요청했다. 에드워드 1세는 1292년 11월 17일 자기 아들 에드워드 캐너번에게 다음 왕위가 돌아가는 것을 조건으로 존 발리올을 지지했고,[4] 이 결정을 스코트인 귀족들 다수가 수용하면서 존이 왕위에 올라 공위기는 일단락되었다.

각주[편집]

  1. http://www.bbc.co.uk/education/guides/zqv2pv4/revision/6
  2. Powicke, Maurice, The Thirteenth Century, 1216–1307, 1963, ISBN 0-19-821708-0
  3. “Queen Margaret, Maid of Norway”. Undiscovered Scotland. 
  4. Stevenson, J., Documents Illustrative of the History of Scotland, 1870
  5. Barrow, Geoffrey W.S., Robert Bruce & The Community of The Realm of Scotland, 1988, ISBN 0-85224-6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