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당률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당률(唐律)은 중국 당나라 시대에 제정된 형법이다.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율령체제에 중요한 전적이 되었다. 한대(漢代)에 처음 시작된 「춘추결옥」(春秋決獄)이 정식으로 폐지되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당률은 중국 전통 법제사의 가장 위대한 성과 중의 하나로 꼽힌다.[1] 또한 당대에 그치지 않고 이후의 중국의 여러 왕조들은 물론, 주변의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의 법제에까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일본의 법제사학자 나카다 카오루(中田薫)는 당률을 가리켜 '동양의 로마법'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개요

[편집]

역사

[편집]

당률소의

[편집]

영휘 4년(653년)에 반포된 《당률소의》(唐律疏義 또는 唐律疏議)는 중국 (唐) 고종(高宗) 영휘(永徽) 3년(652년)에 편찬된 당률의 주석서이다. 정식 명칭은 《영휘율소》(永徽律疏)로, 당률소의라는 이름은 후대의 통칭이다. 또한 (宋), (元)대에는 《고당률소의》(故唐律疏義)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이래의 율(律)을 집대성해 그것에 소(疏)라는 이름의 주석을 붙였으며, 그 내용에서 「소(疏)는 율의 뒤에 있고, 율은 소가 있음으로써 존재한다」(疏在律後,律以疏存)고 칭하고 있다. 고종의 조칙에서 「율에는 공식적인 주석이 없고, 해마다 치르는 과거의 기준도 정해진 것이 없다」(律学未有定疏,毎年所挙明法,遂無憑準)는 현상을 지적하고, 태위(太尉) 장손무기(長孫無忌), 사공(司空) 이적(李勣), 상서좌복야(尚書左僕射) 우지녕(于志寧), 형부상서(刑部尚書) 당림(唐臨), 대리경(大理卿) 단지현(段宝玄), 상서우승(尚書右丞) 유연객(劉燕客), 어사중승(御史中丞) 가민행(賈敏行) 등에게 명해 위금(衛禁), 직제(職制), 호혼(戸婚), 구거(廄庫), 단여(擅興), 적도(賊盜), 투송(鬥訟), 사위(詐偽), 잡률(雑律), 포망(捕亡)과 단옥(断獄)의 12편으로 나누어, 502조 항목이 든 영휘율(永徽律)을 편찬했다. 그 조문의 뒤에는 주석이 붙어 《영휘율소》라는 이름으로 이듬해 반포되었다.

《당률소의》는 당대에 별다른 개변이 없었고, 후대의 《대송형률총류》(大宋刑律統類), 《대명률》(大明律), 《대청률례》(大清律例) 등의 성립에 영향을 주었으며, 한국과 일본, 한국에도 전해져 율령 체제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다.

당육전

[편집]

당 현종(唐玄宗) 개원(開元) 10년(722년)에 어명으로 편찬에 착수하여 개원 26년(738)에 완성한 《대당육전》은 당의 국가 조직 운영의 기본 원리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당육전》은 당시에 법전이라는 명목으로 편찬했거나 실제 행용(行用)을 위해 편찬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 통설이다. 《당육전》이 편찬된 현종 시기 현실에서 행용되던 법 형식은 율(律)‧령(令)‧격(格)‧식(式)으로 각각 법으로서의 일정한 기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육전과 같은 새로운 형식의 법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주례》의 육전제도가 성세(盛世)의 제도로서 권위가 높았기 때문에, 현종은 자신이 군림하고 있는 시대를 치세로 자임하고 싶어 당시의 제도를 태평시대의 것으로 꾸미기 위해, 《주례》와 같은 육전 형식으로 관직과 직장을 한데 묶어 편찬케 하였는데 이것이 《당육전》이다. 《당육전》은 당시 행용하던 율·령·격·식을 모두 기록한 것도 아니고 등재된 법조문도 요지를 적은 경우가 많아, 현실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때문에 완성된 후에도 반행(頒行)하지 않고 집현원의 서고에 보관해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격·식이 방대하고 산만한 데 비해, 관직에 따라 영·격·식을 배열한 《당육전》은 이용에 편리했기 때문에 당 후기부터는 점차 관인들의 중요한 참고서가 되었다. 더구나 점차 영·격·식이 산일(散逸)되어 찾아볼 수 없게 되자, 《당육전》은 당대의 제도문물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전장서(典章書)로 이용되었으며, 지금까지 당대의 행정체계를 총체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 자료이다.

연구사

[편집]

영향

[편집]

한국

[편집]

한국은 남북국 시대 후기 신라와 발해에서 모두 당의 율령을 수용하여 자국 실정에 맞춰 개변해 사용하였다.

일본

[편집]

베트남

[편집]

베트남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형률인 《국조형률》(國朝刑律)은 중국의 법률, 특히 당과 송, 명의 법률을 참조한 곳을 찾아볼 수 있다. 1483년 베트남 후 레 왕조성종(成宗)은 왕조 초(初)부터 당시까지 반포되어 시행되던 여러 법령(法令)들과 율례(律例)들을 수집하여 국조형률이라는 이름으로 집대성하였다.

당률과 《국조형률》의 경우 두 법의 형법의 구성 체계와 총칙(론), 각론에서 규율하는 죄목들의 체계(범죄의 구성요건과 위법성 책임 등)가 거의 일치하고 있다. 《국조형률》이 당률을 계수한 조문은 전체 조문 722개 중 456개로, 당률을 거의 그대로 계수하면서도 시간의 흐름과 당시 상황, 사정에 맞춰 수정 및 조정되었다. 당률을 계수한 것이 확실한 456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조항들은 베트남 안에서 독자적으로 창안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같이 보기

[편집]
  1. Johnson, Wallace (1979). The T'ang Code, Volume I: General Principles. Princeton University Press. ISBN 978-0-691-606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