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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알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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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파샤 알사이드
نوري السعيد
로마자 표기Nuri Pasha al-Said
출생바그다드
사망1958년
성별남성
국적이라크
경력오스만 제국군 장교
직업정치인
종교수니파 무슬림

누리 파샤 알사이드(아랍어: نوري السعيد, 영어: Nuri Pasha al-Said)는 영국령 이라크이라크 하심 왕국에서 활동한 이라크정치인이다. 이라크 총리직을 8번 지냈다.

북캅카스인 조상을 가진 바그다드수니파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다. 과거 오스만 제국군의 장교로 복무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아랍 민족주의자로 전향하였고, 아랍 반란에서 영국군의 도움으로 오스만 제국 세력을 몰아내는 데에도 참여하였다. 프랑스군의 점령으로 파이살 1세가 시리아에서 쫓겨나자 그를 따라 이라크로 옮겨갔다.

1930년 영국 위임통치령 메소포타미아에서 총리로 임명된 이후 핵심적인 정치 인물로 떠올랐다. 취임 직후 1930년 영국-이라크 조약이 성사되어 독립 보장을 약속받는 한편 영국군의 주둔과 석유 자원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였고, 이에 따라 이라크는 1932년 공식적인 독립을 얻었다.

알사이드는 입헌군주제 하의 이라크 하심 왕국에서 친영 성향의 정치인으로 계속해서 활동하였으나 이는 당시 국내 민중의 정서와는 대치되는 것이었다. 그는 많은 정적을 만들었으며 정치 혼란 속에 여러 차례 쿠데타 시도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결국 1958년 레바논 위기가 고조되는 와중 요르단 왕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요청한 것을 계기로 군 장교 압둘카림 카심압둘 살람 아리프가 쿠데타(7·14 혁명)을 일으켜 정부를 전복하고 왕가를 몰아내었다. 누리 알사이드는 도주하려던 중 잡혀 사살당했고, 성난 군중은 묻힌 시신을 끌어내어 훼손하고 거리에 끌고 다녔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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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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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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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자파르 알 아스카리
제2대 이라크 국방부 장관
1922년 11월 20일 ~ 1924년 8월 2일
후임
야신 알 알하셰미
전임
야신 알 알하셰미
제4대 이라크 국방부 장관
1925년 6월 26일 ~ 1928년 1월 8일
후임
압둘 모흐센 아사사덴
전임
무하마드 아민 자키
제7대 이라크 국방부 장관
1929년 9월 19일 ~ 1930년 3월 19일
후임
자파르 알 아스카리
전임
나지 알 수와이디
제11대 이라크 위임통치령 총리
1930년 3월 23일 ~ 1932년 11월 3일
후임
(이라크 왕국 총리)나지 샤우캇
전임
자밀 알 미드파이
제20대 이라크 왕국 총리
1938년 12월 25일 ~ 1940년 3월 31일
후임
라시드 알리 알 가일라니
전임
자밀 알 미드파이
제25대 이라크 왕국 총리
1941년 10월 10일 ~ 1944년 6월 4일
후임
함디 알 파차치니
전임
아르샤드 알 우마리
제29대 이라크 왕국 총리
1946년 11월 21일 ~ 1947년 3월 29일
후임
살레 야브르
전임
무자힘 알 파차치
제33대 이라크 왕국 총리
1949년 1월 6일 ~ 1949년 12월 10일
후임
알리 자우다트 알 아유비
전임
타우픽 알 수와이디
제36대 이라크 왕국 총리
1950년 9월 15일 ~ 1952년 7월 12일
후임
무스타파 마흐무드 알 우마리
전임
아르샤드 알 우마리
제42대 이라크 왕국 총리
1954년 8월 4일 ~ 1957년 6월 20일
후임
알리 자우다트 알 아유비
전임
압둘 와하브 무르잔
제45대 이라크 왕국 총리
1958년 3월 3일 ~ 1958년 5월 18일
후임
아마드 무크타르 바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