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국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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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국(南相國, 1945년 5월 22일 ~ 2004년 3월 11일, 충청남도 아산)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며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주)대우건설 사장을 역임했다.

생애[편집]

서울대학교 공업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1974년 2월 평사원으로 대우그룹에 입사하였다.[1] 평사원으로 20년간 대우그룹의 건설부문의 중견 요직을 역임하고 각지의 건설현장에서 근무하였으며[2] 이후 이사로 발탁되어 1997년 2월 15일 대우그룹 건설부문 전무에 임명되었고[3], 1998년 초고층 주상복합의 가능성을 보고 여의도'트럼프 월드'의 개발을 시작, 프리미엄이 50%이상 상승하여 당첨자들의 대만족평을 받기도 하였다.[2] 그해 7월 31일 숙명여자대학 행정관 준공식에 참석하였다.[4] 1998년 대우그룹 개발사업본부 본부장에 임명되어 서종욱 이사, 정재영 이사, 김건희 상무 등을 ‘스리 톱’으로 채용하기도 했다.[5]

1998년 12월 31일 (주)대우그룹 계열사별로 실시된 특별 승진 인사 때, 그는 대우그룹 건설부문 전무에서 사장으로 2계급 특진하였다.[6] 1999년 대우그룹 건설부문 대표이사·사장이 되었고, 1999년 1월 5일 건설부문 국내사업분야담당이 되었다.[7] 2월 5일 아파트 공사현장 안전점검의 날을 주관하였다.[8]

2000년 10월 22일 대우그룹 계열사들이 법인 분리될 때 대우건설 사장에 유임되었으며[9][10] 2001년 대우건설이 (주)대우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신설법인으로 태어난 뒤[2] 2002년 (주)대우건설 대표이사·사장을 지냈다.

2002년 대한건설협회 회원이사에 선임되었다.[11] 2002년 5월 1일에는 대한건설협회 부회장에 선출되었다.[12]

2002년8월 1일 한국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에서 주관하는 사랑의 집짓기운동에 동참하여 3천만원 상당의 숙소와 식사를 지원하였으며 아산지역 사업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는 대우건설 직원연수원(도고그린호텔)의 객실과 1주일동안 자원봉사자들의 아침과 저녁식사를 지원하기도 했다.[13]

2004년 3월 21일 한강수난구조대원들이 한남대교 아래에서 사체를 인양하는 모습

2003년 9월 5일 노건평에게 "사장직을 연임할 수 있도록 힘써 달라"는 청탁과 함께 3천만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고[14][15] 수사하는 과정에서, 3월 11일 방송에서 대통령 노무현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돈을 건넨 자신의 이름을 실명으로 언급하며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2004년 3월 11일 남상국은 한강에 투신자살했다.[15]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노건평은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16] 이로써 남상국이 살아 있었다면 역시 유죄 판결을 받았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평가[편집]

대우그룹의 환란 후 그룹 내부의 파열상황에서도 우수한 인재의 누수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철저한 인력관리야말로 비결중의 비결이라고 지적한다.[2] 회사의 경영침체로 워크아웃 상태가 되었을 때, 그는 직원들의 마음을 독려하여 다잡았고, 개발사업을 늘렸다 한다. 그가 사장이던 2001년2003년 대우건설이 수주한 사업들이 2004∼2006년 연평균 50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는 증언도 있다.[5]

상훈[편집]

2003년 12월 21일 주택건설의 날, 주택건설 산업 공로로 건설교통부 장관으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수상받았다.[17]

가족[편집]

  • 부인 김선옥[18]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