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카이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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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북위 39° 06′ 04″ 동경 117° 09′ 53″ / 북위 39.10111° 동경 117.16472°  / 39.10111; 117.16472

난카이대학
南开大学
표어 允公允能,日新月异
(사회에 헌신, 지속적 자기개발)
종류 공립
설립 1919
총장 궁커
학부 수 12,451
대학원생 수 9,845
교직원 수 4,221
국가 중국의 기 중국
웹사이트 http://www.nankai.edu.cn/

난카이대학(南开大学,남개대학)은 중화인민공화국 톈진의 공립 대학으로 국가중점대학 중 하나이다. 현재까지 저우언라이, 원자바오 2명의 총리를 배출한 중국의 전통 명문 대학이다.

재정적인 문제와 텐진대학과의 합병 실패등을 원인으로 과거 명성에 비해 전체적인 종합순위는 떨어지는 추세이지만, 문,이과 부문에서 베이징 대학, 칭화 대학와 동등한 위치에 있으며 본과 및 연구생 입학성적 순위는 지속적으로 5위권 이내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경제학, 공상관리, 중문학, 화학, 수학, 정치학, 역사학 계열은 대학 전공 평가에서 꾸준히 5위권안에 위치한다.

역사학과의 경우 베이징 대학과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으며 중국의 사학계 중 유일하게 베이징 대학과 함께 중국의 동북공정을 인정하지 않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고구려를 한국의 독립적인 역사로 인식하고 있으며 조선의 사대주의를 현명한 외교정책으로 규정하고 있음.) [1]최근 과학 연구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2016년 네이처 인덱스 순위에서 서울대(57위)를 따돌리고 세계 50위를 차지하여 네이처가 선정한 10대 라이징 스타에 선정 되었다 [2] 또한 중화인민공화국의 대학으로는 유일하게 베이징대학과 함께 세계 공립명문대학 리그인 국제 공립 대학 포럼의 일원이며 복단대학, 상해교통대학, 인민대학, 난징대학, 절강대학 등 함께 중국의 전통적인 10대 명문 대학 중 한곳이다.[3] 2015년 중국 수험생 선호도 순위에서는 상해교통대학절강대학을 제치고 8위를 차지하였다. [4] 예로부터 한국의 SKY 와 같은 개념으로 중국 고위 인사들을 주로 배출하는 5개의 대학교를 (칭화대학, 베이징대학, 복단대학, 상해교통대학, 난카이대학) 일컬어 清北复交南(청북복교남) 이라 칭하였다. (현재는 남경대학, 절강대학, 인민대학, 중국과기대학이 추가됨.)

역사[편집]

난카이대학은 1900년대 초 중국 항일 운동의 중심지였으며,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학으로 평가 받고 있다.[5] 1919년 저명한 교육학자 장보링(张伯苓)과 얀판선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설립 당시에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사립대학이었다. 한국의 일제강점기에 난카이대학의 설립자 장보링은 독립운동가인 안창호, 이규창과 교류 하였으며, 한국 학생들의 독립운동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였다. 특히 독립운동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였으며 독립운동가들이 유학생의 신분으로 독립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신분 보장을 해주는 등 조선 독립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다. [6]도산 안창호는 난카이대학을 기반으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으며, 아리랑의 김산 등 많은 한국 학생들의 입학을 장려 하였다. 난카이대학 한인학우회는 중국내 최초의 한인 유학생회이며 이 시기 독립을 목표로 많은 한인들이 입학하여 저우언라이등 훗날 중국의 주요인사들과 조우 했다.[7] 1937년 중일 전쟁 당시에 도서관을 비롯한 캠퍼스의 상당 부분이 일본군의 폭탄 투하로 소실되었으며 대학의 종을 비롯한 유물 등이 강탈당하기도 했다. 1937년 8월에는 베이징 대학, 칭화 대학과 함께 창샤 전시 연합 대학을 결성하고 쿤밍으로 옮겨 시난연합대학을 세웠다.[8] 1946년 전쟁이 끝난 후 난카이 대학은 톈진으로 옮겨 정부에 의해 국립대학으로 다시 세워졌으며 네 개의 단과 대학(인문, 과학, 정치경제, 공학)과 16개의 학과로 재설립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전 총리 원자바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양전닝, 아시아 최초 울프상을 수여 받은 수학자 천싱선, 중화민국중앙연구원 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물리학자 우다요우, 역사학자 황런위, 중국 국무원의 국무 위원 양제츠, 현재 국무원 발전연구중심의 서기를 맡고 있는 전 북경시장 왕안순, 현 외교부장 왕이, 최초 여성 외교부 대변인 리진화, 중국 국가 외환 관리국 국장 왕윈구이, 마카오 사회문화부 장관 알렉시스 탐, 칭다오 시장 멍판리, WTO 사무차장 이샤오준, 중국 은행 감독 위원회 주석 궈수칭, 중국 보험감독관리위원회 위원장 샹쥔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상무부원장 왕이밍, IOC 부위원장 위자이칭, 유엔 공업개발 기구 사무장 리융, 아시아개발은행 부행장 장원차이, 중국의 주요 대기업인 중국 국전 그룹의 CEO 챠오바오핑, 중국 타이핑 보험 그룹의 CEO 왕빈, 중국 1위의 뉴스 포털 회사 투데이 헤드라인의 CEO 장이밍, 시진핑 국가 주석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 교수이자 중국에서 유일하게 한국의 사드 보복을 반대하고 있는 저명한 사회 학자 쑨리핑, 중국 감찰부장 마원, 한중일 협력 사무국 사무총장 양허우란, 광저우 당서기 런쉐펑, 조선의 주요 독립운동가 이규창, 박용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조선인 영화 배우 김염, 북한 전 조선 최고인민회의 위원장 최용건 등이 난카이 대학 출신이다.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김대중은 난카이 대학교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으며 당시 김대중이 걸었던 길을 大中路로 개명하였다. 한국의 초대 국회의원인 최성욱 의원, 탈북자 출신 첫 국회의원 조명철 의원을 배출하는등 한국의 정계와도 연관이 깊은 대학교이다. 현재 한국고등교육제단과 함께 격년으로 톈진포럼을 개최하고 있으며, SK 최태원 회장 등 한국 대기업 주요 인사들과 난카이대학 출신 중국 최고위급 인사들의 글로벌 파트너링을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9]

학교 동문[편집]

역대 역임 교수[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