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반남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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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반남 고분군
(羅州 潘南 古墳群)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
종목사적 제513호
(2011년 7월 28일 지정)
면적121,397m2
수량126필지
시대삼국시대
위치
나주 반남 고분군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나주 반남 고분군
나주 반남 고분군
나주 반남 고분군(대한민국)
주소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 103 등
좌표북위 34° 54′ 27″ 동경 126° 38′ 48″ / 북위 34.90750° 동경 126.64667°  / 34.90750; 126.64667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나주대안리고분군
(羅州大安里古墳群)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해지)
종목사적 제76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2011년 7월 28일 해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나주신촌리고분군
(羅州新村里古墳群)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해지)
종목사적 제77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2011년 7월 28일 해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나주덕산리고분군
(羅州德山里古墳群)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해지)
종목사적 제78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2011년 7월 28일 해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나주 반남 고분군(羅州 潘南 古墳群)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군이다. 2011년 7월 28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13호로 지정되었다.[1]

개요[편집]

이곳 반남 고분군에는 대형옹관고분 수십 기가 분포하고 있다. 대형옹관고분이란 지상에 분구를 쌓고 분구 속에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옹(甕: 항아리)을 매장하는 방식이다. 이 고분양식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구별되는 영산강유역 고대사회의 독특한 고분양식이다. 대형옹관고분은 A.D 3세기부터 6세기까지 약 3세기동안 영산강유역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3세기경에는 옹관절반을 지하에 묻는 반지하식이었으나 4세기 중반부터는 지상식으로 발전하며 이 때에는 분구의 규모가 훨씬 대형화되어 그 규모가 40~50m에 이른다.[2]

대형옹관고분은 나주 반남 일대는 물론, 영암, 함평, 무안 등 영산강을 따라 형성되고 있으며, 이 지역 고대 세력의 묘제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 옹관고분의 밀집도로 보아 이곳 반남 지역이 고대 지배세력의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2]

대형옹관고분의 출토유물은 영산강유역 계통의 유물이 주를 이루나 후기에는 백제계, 일본계의 유물이 섞이게되며 가야계의 특징도 일부 보이고 있다. 당시 사회가 백제, 가야, 왜 등과 활발한 교류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영산강 고대 수로 조건을 이용한 해상활동이 매우 활발했음을 말해주고 있다.[2]

한편 5세기 말경에는 대형옹관고분이 쇠퇴하고 횡혈식석실분, 전방후원형고분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들 석실은 토착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 지역의 고대세력이 능동적으로 횡혈식석실분을 채용하면서 사회발전을 모색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사회는 6세기 중엽부터 백제의 지방관제에 본격적으로 편입하게 한다.[2]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문화재청고시제2011-116호,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명칭 변경 및 지정·해제 고시》,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7560호, 392면, 2011-07-28
  2. 현지 안내문 인용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