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동 (14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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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金誠童, 1452년 ~ 1495년)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정치인으로 본관은 (구)안동. 자(字)는 명보(明甫)이고, 호는 제계(蹄溪)이다. 정난공신 의정부좌의정 김질(金礩)의 넷째 아들이자 의정부영의정 정창손(鄭昌孫)의 외손이고, 강희맹의 사위이다. 낙서 김자점의 고조할아버지이다.

음서로 관직에 올라 적성현감 재직 중 식년문과에 급제하였으나, 행 호군(行護軍)으로 재직 중 사망한다. 백범 김구에게는 19대 방조가 된다.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고려 명장 충렬공 김방경의 후손. 조선개국공신인 익원공 김사형의 후손으로, 세조 즉위에 공을 세운 좌의정 김질(金石質)의 넷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동래정씨로 의정부영의정을 지낸 정창손(鄭昌孫)의 딸이다. 또한 아버지인 김질과 동명이인인 조선 중기의 효자 영모당 김질(金質)은 그의 재종손이 된다.

그는 성품이 침착하고 신중한데다가 말수가 적고, 어려서부터 손님이나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항상 방안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과 얘기하지 않고 종일토록 책만 읽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관료 생활[편집]

음보로 관직에 올라 1492년(성종 23년) 경기도 적성현령으로 재직 중 동년의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바로 당상관으로 승진하였으며 이어 부평부사(富平府使)로 부임하였다. 부평부사로 임명되어 직무를 잘 처리하고 백성들을 잘 다스려 칭송받았다. 부평부사로 취임한 지 2년이 되기도 전에 선정이 조정에 보고되어 특별 승진하여 중추원사(中樞院事)를 거쳐가선대부(嘉善大夫)로 가자(加資)하였다. 그 뒤 내직으로 돌아와 행 호군(行護軍)이 되었다.

한성부 남대문 근처에 살았다. 그는 늘 공무에 성실하였고, 인품이 뛰어나 사람들로부터 모두 재상감이라는 기대를 모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죽었다. 당시 그의 나이 향년 44세였다.

사후[편집]

사후 사헌부대사헌(大司憲)에 추증(追贈)되었다. 묘는 경기도 시흥군 하상리(현 시흥시 하상동)에 안장되었고, 신도비와 재실이 있다.

가족 관계[편집]

  • 고조부 : 김사형(金士衡)
    • 증조부 : 김승(金勝)
      • 할아버지 : 김종숙(金宗淑)
        • 아버지 : 김질(金礩)
        • 어머니 : 동래정씨, 정창손의 딸
          • 부인 : 진주강씨, 강희맹의 딸
            • 아들 : 김언(金漹)
      • 외할아버지 : 정창손

평가[편집]

부평부사로 임명되어 직무를 잘 처리하고 백성들을 잘 다스려 칭송받았으며 박처륜(朴處綸)과 함께 성종대에 가장 유능하고 성실한 관리로 지칭되었다.

관련 항목[편집]

참고 문헌[편집]

  • 성종실록
  • 연산군일기
  • 국조방목
  • 국조인물지
  • 용재총화
  • 대동야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