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하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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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하
金東河
생애 1918년 4월 15일 ~ 1993년 12월 3일 (76세)
출생지 일제 강점기 함경북도 무산군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본관 김해(金海)
별명 호(號)는 무산(茂山)
정당 무소속
복무 만주국 육군
대한민국 대한민국 육군
대한민국 대한민국 해병대
복무 기간 1942년 ~ 1963년
최종 계급 만주군 육군 대위
ROK army Jungjang.svg 중장(中將)
주요 참전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기타 이력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체육회 고문
신민주공화당 고문

김동하(金東河, 1918년 4월 15일 ~ 1993년 12월 3일)는 대한민국군인, 정치가, 체육인, 체육행정가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생애[편집]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린 시절을 만주에서 보냈다.[1] 태평양 전쟁 기간 중인 1942년에 만주의 신경군관학교를 제1기로 졸업하고 만주군 장교로 임관했다. 박정희의 신경군관학교 1년 선배이다.

만주군 대위일 때 일본군이 전쟁에서 패하자 귀국하여 1946년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 후 미국 육군참모대학교를 졸업하였고 1949년 대한민국 해병대 창설 요원으로 참여하였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참전하여 인천 상륙 작전, 서울 탈환, 도솔산 전투, 대우산 전투 등 주요 전투에 참가하였다. 1951년에는 펀치볼 전투에서 승리하여 수훈을 세웠다.

1953년에는 교육단장을 역임했고, 휴전 협정 체결 후인 1958년에 해병 제1상륙사단장에 올랐다. 1961년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에 해병대를 이끌고 동참했다. 당시 계급은 해병 소장이었으며 박정희와 함께 한강대교를 건넌 정변의 핵심 세력 중 한 명이었다.

정변 성공으로 국가재건최고회의 고문과 최고회의 운영기획위원장, 재정경제위원장, 외무국방위원장, 대한체육회 회장 등을 차례로 지내고 1963년 해병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그러나 1963년에 박임항 등 정변 세력 내의 함경도 인맥이 대거 숙청된 반혁명사건에 연루되면서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권력에서 멀어졌다. 당시 김동하는 박정희의 조카사위이자 제3공화국 정권의 2인자로 부상한 김종필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2]

이후 풀려나 박정희의 배려로 한국마사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재단법인 5·16민족상 이사로도 활동했다. 한국 전쟁에서 세운 공로로 을지무공훈장을 받았고, 전쟁기념관2001년 12월에 김동하를 '이 달의 호국인물'로 선정하여 현양행사를 거행한 바 있다.

하지만 만주군 대위의 경력때문에 2009년 간행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3]

학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김동하 [金東河]”. 엠파스 백과사전. 2008년 4월 19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2. 오명호 (1999년 10월 1일). 〈제5장 Ⅱ. 군정 2년 반〉. 《한국현대정치사의 이해》. 서울: 오름. ISBN 89-7778-094-2. 
  3. 오마이뉴스 (2008년 4월 29일). “[명단]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4776명”. 2019년 5월 18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전임
이철승
제19대 대한체육회 회장
1961년 7월 29일 ~ 1962년 1월 9일
후임
이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