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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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Kim Kwang-Hyun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No.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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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Kwang-hyun 2019 Premier 12.jpg

2019년 프리미어 12에 출전한 김광현.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8년 7월 22일(1988-07-22) (32세)
출신지 대한민국 경기도 안산시
신장 188 cm
체중 88.5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2007년
드래프트 순위 2007년 1차 지명(SK와이번스)
첫 출장 KBO / 2007년 4월 10일
문학삼성전 선발
획득 타이틀
계약금 5억원
연봉 4,000,000달러 (2020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8년 베이징
WBC 2009년 LA
프리미어 12 2015년, 2019년
아시안게임 2014 인천

김광현(金廣鉉 , 1988년 7월 22일 ~ )은 현 미국 내셔널 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투수이다.

아마추어 시절[편집]

5살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고 안산공업고등학교에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안산공고 3학년 때 경동고등학교를 상대로 패전 투수가 됐지만 19K 완투를 거두며 자신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 2006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대만을 상대로 완봉승을 기록하는 등 자국이 대회에서 선전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1차 드래프트에서 연고 지명 선수 2명 중 첫 번째 선수로 선정돼 계약금 5억원, 연봉 2,000만원에 SK 와이번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 5억원은 당시 팀 역사상 최고 계약금이었다.

KBO 리그 시절[편집]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2007 시즌[편집]

전반기에는 4점대 평균자책점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동안 투구폼을 교정했다. 그리고 후반기에는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제법 적응한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시즌 성적은 77이닝 동안 3승 7패, 3.62의 평균자책점, 52탈삼진을 기록했다. 2007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선발 등판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김성근이 고졸 루키였던 그를 선발 투수로 올린 이유는, 선발 투수들의 4일 휴식 로테이션을 지키며, 그가 시즌 중 두산베어스의 좌타자들에게 극강의 모습을 내비쳤던 것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을 믿어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해 7.1이닝 동안, 9탈삼진 반전시켰고, 팀은 우승을 달성했다.

2008 시즌[편집]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김광현.

시즌 성적은 162이닝동안 16승(모두 선발) 4패, 2.3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특히, 6월 8일에는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데뷔 첫 완봉승을 거뒀고, 7월 22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12탈삼진을 기록했다. 최다 승리, 최우수 ERA, 최다 K(트리플 크라운)에 도전했지만, 윤석민에게 ERA 타이틀을 내주며 달성에 실패했다. 하지만 2008 시즌 MVP,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또한,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해 에이스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일본을 두 번 상대해 두 번 모두 승리 투수가 되며 사상 첫 대한민국 대표팀의 올림픽 야구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예선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7탈삼진을 기록하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이어서 준결승에서 다시 맞붙은 일본을 상대로 8이닝동안 5탈삼진 호투하며 원조 일본 킬러인 구대성에 이은 '차세대 일본 킬러'로 떠올랐다. 올림픽 기간 동안 세 경기에서 14.1이닝동안 12탈삼진을 기록했다.

2009 시즌[편집]

시즌 전 개최된 2009 WBC 엔트리에 승선해 프로 데뷔 후 두 번째 국가대표 자격을 얻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컨디션 난조와 일본의 날카로운 분석에 발목이 잡혔다. 선발로 나서서 1.1이닝동안 8실점으로 최악의 피칭을 했다. 이는 대한민국일본을 상대로 콜드패를 당하는 빌미가 됐다. 이후에 중간 계투로 나서 일본을 다시 상대했지만 역시 처참히 무너지며 본인이 가지고 있었던 일본 킬러라는 별명을 무색하게 했다. 시즌 초 경미한 부상으로 인해 보름 정도 늦게 합류했지만,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됐다. 하지만 8월 2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김현수의 직선타에 왼쪽 손등을 맞아 쓰러졌고 실금이 가는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됐다. 그는 부상 전까지 탈삼진 3위, 평균자책점 1위, 다승 1위, 승률 1위로 전년도에 놓친 트리플 크라운은 물론 쿼드러플 크라운까지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고, 정규 시즌 MVP골든 글러브까지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또한, 이 부상을 당한 경기와 당시 감독이었던 김성근의 마운드 방문 규칙 위반 사건을 제외하면 그가 6회 전에 마운드를 내려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 부상 때문에 많은 기록들이 날아가고 말았고, 승률과 평균자책점 등 2관왕을 달성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시즌 성적은 138.1이닝동안 12승 2패,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10 시즌[편집]

손목 부상 후 일부 전문가들은 '그가 이전보다는 기량이나 구위, 제구 면에서 예전만 못하지 않겠느냐'며 혹평을 했지만, 이를 뒤집으며 시즌 초부터 압도적인 페이스로 리그를 지배했다.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9회 2아웃까지 안타를 하나도 맞지 않았지만 최형우에게 안타를 허용해 노히트 노런에 실패했다. 또한, LG 트윈스를 상대로 2년 만에 완봉승을 기록했다. 5월6월 즈음에 잠시 흔들렸지만, 2008 시즌을 넘어서며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시즌 성적은 193.2이닝동안 17승(16선발승으로 당시 자신의 최다 선발승 타이) 7패, 2.37의 평균자책점으로 2008 시즌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같은 시기에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류현진 역시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고 전반적인 성적에서 류현진에게 밀려 타이틀은 다승왕 하나에 그쳤다(16선발승으로 류현진 양현종과 선발승 공동 1위). 팀은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해 한국시리즈로 직행했고 그는 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4.2이닝동안 3실점으로 부진해 조기 강판됐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그가 마무리로 등판했다. 1.2이닝동안 1실점으로 흔들렸지만 팀의 세 번째 우승을 확정지었다. 시즌 후 개최된 광저우 아시안게임류현진, 봉중근 등 좌완들과 함께 국가대표에 뽑혔지만, 한국시리즈 이후 뇌경색에 의한 안면 마비 증세로 인해 임태훈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2011 시즌[편집]

뇌경색 이후 부진했던 그에게 당시 감독이었던 김성근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8이닝 8실점, 투구수 147개 완투패라는 비상식적인 벌투를 지시했고, 경기 직후 1군에서 말소됐다. 이 혹사로 인해 어깨 부상까지 겹쳤다. 이 부상으로 그는 정규 시즌 중에 복귀하지 못했으며, 김성근은 경질됐다. 시즌 성적은 74.1이닝동안 4승 6패,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팀은 3위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지만 그는 포스트시즌 4경기동안 2패로 부진했고, 팀도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2012 시즌[편집]

시즌 초 컨디션이 좋지 않아 6월 경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부상에 발이 묶였다. 구속은 물론 컨트롤이 매우 불안정했고, 체력과 구위에 문제가 생기며 자주 난타당했다. 시즌 성적은 81.2이닝동안 8승 5패,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포스트시즌 1차전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선발 등판해 6이닝동안 10탈삼진으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가 됐다. 이후 포스트시즌 5차전에서도 선발 등판했지만 1.2이닝만에 강판됐다. 하지만 팀은 승리해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도 선발 등판해 5이닝동안 4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하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고, 2013 WBC에는 어깨 부상이 재발해 합류하지 못했다.

2013 시즌[편집]

복귀가 다소 늦었고, 복귀 후에도 기복은 심했다. 시즌 성적은 133이닝동안 10승 9패,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구속은 140km 후반대였지만 제구가 굉장히 나빠졌다.

2014 시즌[편집]

2014년 아시안 게임에서의 김광현

2013 시즌을 마치고 KBO로부터 올해의 재기상을 수상한 그는 수상 소감으로 반드시 내년엔 더 잘 할 것을 약속했다. 데뷔 후 첫 개막전 선발로 나섰다.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4년 만에 완투승을 거뒀다. 시즌 성적은 173.2이닝동안 13승 9패,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시즌 중 아시안 게임에 참가해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이 금메달로 인해 규정 햇수를 채우며 MLB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시즌 후 3살 연상의 신부와 결혼했고, 동시에 MLB 포스팅을 신청했다. 그 결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다소 낮은 금액인 200만 달러에 독점 협상권을 가져왔다. 그는 이를 수용했으나, 연봉 협상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났고 결국 12월 12일 마감 시한을 넘기며 협상이 결렬됐다.

2015 시즌[편집]

투구폼을 대폭 수정했다. 특히, 팔각도의 높이가 큰 폭으로 낮아졌다. 또한 뒷발을 올리는 높이도 많이 낮아졌고, 본격적으로 체인지업 연마에 돌입했다.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대해도 좋다는 시즌 개막 전 사전 인터뷰와는 달리 시즌 초 정상호와의 배터리 소화에서 고전했다. 평균자책점이 5점대까지 치솟기도 했고, 컨트롤 능력과 구위가 저하되며 자주 난타당했다. 그러나 5월 초에 당시 감독이었던 김용희가 배터리 조합에 변화를 줬고, 이 때부터 그는 이재원과 배터리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KIA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연이어 호투하며 본인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리고 6월 7일, LG 트윈스를 상대로 3피안타와 1사사구만 내 주며 완봉승을 거뒀다. 이후 팔꿈치 부상이 겹쳤지만, 다시 재기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성적은 176.2이닝동안 14승 6패,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시즌 후 WBSC 프리미어 12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예선 2경기에서는 부진과 불운이 겹치며 이름값을 하지 못했지만, 결승전에서 다시 맞붙은 미국 전에서 5회까지 막으며 대한민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2016 시즌[편집]

시즌 전 인터뷰에서 그는 개인 목표로 180이닝과 전 구단 상대 승리 달성을 삼았다. 그리고 2016 시즌을 끝으로 MLB에 재도전할 것을 밝혔다. 프로 데뷔 후 두 번째로 개막전 선발 투수로 출전했으나 체인지업이 흔들리며 크게 무너졌다. 하지만 4월 마지막 경기에서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승리 투수가 되며 역대 26번째이자 좌완 3번째, 그리고 좌완 20대 선수로는 최초의 100승(역대 14번째이면서 좌완 3번째 100선발승) 투수가 됐다. 6월 23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개인 8번째 완투, 7번째 완투승, 또한 개인 최다 탈삼진 기록인 13탈삼진을 기록했다. 이로서 3시즌 연속 LG 트윈스를 상대로 완투를 기록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경기에서 왼팔 굴곡근을 다치는 부상을 입었다. 결국 부상 치료와 ITP, 실전 투입까지 약 한 달 반 정도의 공백이 생겼다. 그는 8월 24일에 53일만에 선발 등판해 6이닝동안 3탈삼진을 기록했다. 2016년 시즌 후 11월 29일, 계약 기간 4년, 계약금 32억원 등 총액 85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하며 잔류했다.[1] 2016년 12월 6일,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토미존 수술을 받아 2017년에는 시즌 아웃됐다.[2]

2018 시즌[편집]

100이닝으로 이닝 제한을 두었지만 막판으로 갈수록 순위 경쟁이 치열해져 100이닝을 넘기며 시즌을 마감했다.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하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고,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세이브를 챙기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냈다.

2019 시즌[편집]

1선발로 시즌을 시작했고 17승(모두 선발) 6패로 다승 공동 2위에 올랐으며, 탈삼진 2위, 평균자책점 3위에 오르는 등 2010시즌 다음으로 좋은 성적을 냈다. 2019년 WBSC 프리미어 12가 끝난 후 MLB 진출을 원한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2019년 12월 6일에 포스팅 시스템을 실시했고, 최종적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2년 8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김광현의 등번호 29번은 SK 와이번스의 임시결번중이다.

미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편집]

2020 시즌[편집]

2019년 12월 17일 2년간 1100만(옵션 300만 달러 포함)달러 계약을 맺었고 다음날 새벽 6시 반 기자회견을 통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공식적으로 입단하며 오승환에 이어 구단에 입단한 2번째 한국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2020년 2월 23일 새벽3시에 뉴욕 메츠와의 시범경기에 등판해 1이닝 2삼진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7월 18일 새벽 청백전에 등판해서 5이닝 1피안타 1사사구 5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최근 12이닝 연속 비자책을 기록하고있고,선발 5경기로는 평균자책점이 0.33이다.최근등판 밀워키전 재미있는 장면이 나왔다.바로 밀워키의 간판 타자 크리스찬 옐리치를 만났다.첫 타석에서는 2루타를 내주었지만 2,3번째 타석에선 삼진 처리했다.

논란[편집]

  • 2015년 7월 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4회말 박석민의 내야 플라이 때 이재원이 타구를 잡지 못하자 본인이 직접 공을 잡아 홈으로 쇄도한 3루 주자 최형우를 태그 아웃시켰는데 이때 그의 글러브에 공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본인은 "태그를 위한 연속적인 동작을 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일부러 속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팬들의 많은 비판을 받았고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3] 하지만 김광현이 다른선수였어도 연속 동작을 위해 태그를 할상황이었다. 또한 여러투표에서도 김광현이 잘못한건 아니라고 나왔기 때문에 이사건은 종결됐다.

출신 학교[편집]

국가대표 경력[편집]

주요 타이틀[편집]

고교 야구[편집]

  • 2004년 미추홀기 전국 고교 야구 대회 우승 & 대회 MVP
  • 2006년 제일화재 프로야구 아마추어 선수 부문 MVP

KBO 리그[편집]

국제 대회[편집]

통산 기록[편집]





































4














W
H
I
P
2007 SK 19 3 7 .300 3.62 20 13 0 0 0 0 77.0 80 5 41 2 52 4 0 2 35 31 342 1.57
2008 20 16 4 .800 2.39 27 27 1 1 0 0 162.0 127 9 63 1 150 2 0 3 50 43 659 1.17
2009 21 12 2 .857 2.80 21 21 1 0 0 0 138.1 121 14 53 1 112 4 0 8 46 43 568 1.26
2010 22 17 7 .708 2.37 31 30 2 1 0 0 193.2 153 13 84 1 183 5 0 13 56 51 797 1.22
2011 23 4 6 .400 4.84 17 14 1 0 0 0 74.1 70 6 45 0 61 2 0 3 45 40 328 1.55
2012 24 8 5 .615 4.30 16 16 0 0 0 0 81.2 85 9 36 0 65 2 1 2 44 39 347 1.48
2013 25 10 9 .526 4.47 25 22 0 0 0 0 133.0 128 12 68 0 102 4 1 9 72 66 580 1.47
2014 26 13 9 .591 3.42 28 28 1 0 0 0 173.2 178 10 81 1 145 3 1 9 77 66 749 1.49
2015 27 14 6 .700 3.72 30 29 1 1 0 1 176.2 173 19 66 2 160 3 0 10 86 73 754 1.35
2016 28 11 8 .579 3.88 27 21 1 0 0 1 137.0 139 17 41 2 116 6 0 3 68 59 583 1.31
2018 30 11 8 .579 2.98 25 25 0 0 0 0 136.0 125 16 30 0 130 2 0 3 48 45 554 1.14
2019 31 17 6 .739 2.51 31 30 0 0 0 0 190.1 198 13 38 1 180 2 0 8 64 53 786 1.24
KBO 통산 : 12년 136 77 .638 3.27 298 276 8 3 0 2 1673.2 1577 143 646 11 1456 39 3 73 691 609 7047 1.33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검은 글씨는 아구 최고기록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이 전
다니엘 리오스
제28대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 수상자
2008년
다 음
 아킬리노 로페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