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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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기흥동
器興洞 Giheung-dong
Giheunggu-map.png
면적 11.7km2 km2
인구 19,311명 (2011년 12월 31일)
세대 7,142가구 (2011년 12월 31일)
법정동 공세동, 고매동
22
205
동주민센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로43번길 12-14
홈페이지 기흥동주민센터

기흥동(器興洞)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이다. 동주민센터는 공세동에 위치한다.

연혁[편집]

  • 고려시대 : 용구현과 조선시대 용인현에 속해있던 역참지역이었다.
  • 1914년 4월 1일 : 지내면의 영통리 지역과 기곡면의 일원을 합치고 구흥면과 내읍삼면 일부를 합친 지역으로 「기곡(器谷)」 에서의 첫글자와「구흥 (駒興)」에서의 첫글자를 합쳐서 기흥면으로 함.
  • 1985년 10월 1일 : 기흥면(器興面)이 기흥읍(器興邑)으로 승격.
  • 2005년 10월 31일 : 기흥읍(器興邑)에서 기흥동으로 분동.

지명 유래[편집]

기흥동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남쪽에 위치한 동이다. 서편에 1964년 준공한 신갈저수지(기흥저수지)가 있고 경부고속도로 기흥 IC가 있다. 조선시대 기곡면(器谷面) 지역으로 2005년 기흥구 신설과 함께 기흥읍에 속해 있던 고매리와 공세리를 합쳐 기흥동으로 분할하였다.

고매리(古梅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매동과 공세동 일부가 합쳐진 지역으로 예로부터 풍수지리상 마을 형국이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이라 하여 그렇게 불렸다는 설이 있다.

만평 · 신고매 · 원고매 · 가살미 · 능안 · 치니 등의 마을이 있다. 공세리(貢稅里)는 1914년 공세동과 한의동(汗宜洞) 일부를 합친 지역이다. 전해오는 속설에 이 마을에는 구절초라는 약초가 많이 자생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을 나라에 세공으로 바친 마을이라 하여 공세동으로 불렸다고 한다.

1789년(정조 13)에 조선시대 전국의 호수(戶數)와 인구수를 기록한 책, 『호구총수』(戶口總數)에도 공세동이 확인된다. 보평 · 불당골 · 큰말 · 탑안 · 한일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한일(閒逸)은 한의동이 변음된 것으로 보이며, 탑안은 고려 중기 것으로 확인된 5층 석탑이 있어서 불리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1]

인구[편집]

기흥동 연령별 인구구조

기흥동의 인구는 403,644명(2015년 2월 28일 기준, 내국인)으로 용인시 전체 인구의 41.9%를 차지한다. 남자는 199,751명, 여자는 203,893명이며 세대수는 145,145세대이다. 외국인은 259명이다. [2] 기흥동의 인구구조는 도시 지역의 특성이 나타나서 유소년(15세 미만) 인구 비율은 19.1%로 용인시 전체 18.3%보다 많으며 노년(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0.1%로 용인시 전체 10.3%보다 적다.[3]

법정동[편집]

  • 고매동
  • 공세동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기흥동(器興洞), 국토지리정보원(2008년판)
  2. 용인시 통계 바다[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015. 2월말 용인시 읍면동별 내국인 인구 구성비
  3. 용인시 통계 바다[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015. 2월말 용인시 읍면동 연령별 인구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