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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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오스트리아 대공(황태자)이었지만 그 아내 조피 초테크는 왕녀가 아닌 백작영애였기 때문에 귀천상혼에 해당하여 대공비(황태자비)가 될 수 없었고, 두 사람의 자녀는 오스트리아 제위 계승권을 가질 수 없었다.

귀천상혼(貴賤相婚, morganatic marriage)은 귀족제에서, 가문의 격이 다른 사람끼리의 결혼을 말한다. 귀족과 평민간의 결혼 뿐 아니라, 왕족과 비왕족 귀족 간의 결혼도 귀천상혼에 해당한다. 귀천상혼한 부부 사이의 자녀는 부모 중 격이 높은 쪽의 작위와 특권을 상속받지 못한다.

동양에서도 신라골품제일본황실전범이 귀천상혼을 따랐지만, 근대 서양의 왕가들 사이에서 가장 엄격하게 지켜졌다. 룩셈부르크의 사례처럼 살리카법보다도 귀천상혼이 우선되기도 했다.

귀천상혼이 가장 엄격하게 지켜지던 독일어권 지역에서는 19세기 초 신성로마제국독일 연방으로 재편되면서 많은 제후국들이 통폐합되었는데, 이때 영지가 날아간 공작, 후작, 백작가문들을 왕족과 명목상 동등한 등족영주가라고 하여 왕가와 등족영주가의 결혼은 귀천상혼의 예외로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