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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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지(見至, 산스크리트어: dṛṣṭi-prāpta, 영어: attained through insight), 견도(見到) 또는 견득(見得)은 불교의 성자들 중의 한 부류를 일컫는 말로서 신해(信解)의 상대가 되는 것으로, 다른 이 즉 선지식(善知識) 등의 말을 통해 인지한 불법(佛法: 붓다가 말씀하신 교법,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다시 스스로 경전과 논서를 공부하고 사유하여 결택한 후 이렇게 결택한 법 즉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수행하여 견도를 지나 수도에 든 성자를 말한다. 신해의 성자가 수도의 계위에 있는 둔근(鈍根)의 성자임에 비해 견지의 성자는 수도의 계위에 있는 이근(利根)의 성자이다.[1][2][3][4]

여기서 선지식(善知識, 산스크리트어: kalyāṇamitra)이란 남녀노소와 귀천에 관계 없이 붓다의 가르침[佛法]을 말하여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을 뜻한다. 특히 붓다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이나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나 자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청정한 수행을 하는 이가 선지식에 속한다.[5][6][7]

'견지'(見至) · '견도'(見到) · '견득'(見得)의 세 낱말에서 견(見)은 봄 즉 지혜반야를 뜻한다. '견지'와 '견도'라는 낱말은 반야[見]에서 반야로 이른다[至, 到]는 것으로 원인으로서의 반야를 통해 결과로서의 반야에 이른다는 것을 뜻한다. '견득'이라는 낱말은 스스로 법을 보는 것[見], 즉 지혜 즉 반야를 통해 이치를 증득[得]한다는 것을 뜻한다.[8][9][10][11]

달리 말해, 수법행성자견도 16심의 최후 제16심인 도류지(道類智)에 이르면 수도에 들어가는데, 이때부터 그 성자를 더 이상 수법행이라 이름하지 않고 견지라고 이름한다.[12][13][14]

견지(見至)는 다음의 분류 또는 체계에 속한다.

경론별 설명[편집]

중아함경[편집]

T01n0026_p0751c09║「若有比丘非俱解脫
T01n0026_p0751c10║非慧解脫,亦非身證而有見到。云何比丘
T01n0026_p0751c11║而有見到?若有比丘一向決定信佛、法、眾,
T01n0026_p0751c12║隨所聞法,便以慧增上觀、增上忍,如是比
T01n0026_p0751c13║丘而有見到。此比丘我說行無放逸,我見
T01n0026_p0751c14║此比丘行無放逸,為有何果,令我為此比
T01n0026_p0751c15║丘說行無放逸耶?或此比丘求於諸根,習
T01n0026_p0751c16║善知識,行隨順住止,諸漏已盡得無漏,心
T01n0026_p0751c17║解脫、慧解脫,於現法中自知自覺自作證成
T01n0026_p0751c18║就遊,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不更受
T01n0026_p0751c19║有,知如真。謂我見此比丘行無放逸,有
T01n0026_p0751c20║如是果。是故我為此比丘說行無放逸。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혜해탈도 아니며 또한 신증도 아니지만 견도(見到)가 있다. 어떤 비구에게 견도가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한결같이 결정코 부처님과 법과 스님을 믿고 들은 법을 따라 곧 지혜로써 관(觀)을 왕성하게 하고 인(忍)을 왕성하게 한다. 이런 비구는 견도가 있나니, 이런 비구에게 나는 ‘방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이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인가? 만일 이 비구가 모든 근을 항복받고 선지식을 친근히 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른다면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해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며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게 된다. 즉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이러한 결과가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느니라.


— 《중아함경》 제51권 제195경 〈아습패경〉(阿濕貝經). 한문본 & 한글본

아비달마대비바사론[편집]

아비달마대비바사론》제54권에서는 견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15][16]

어떤 이를 견지(見至)의 보특가라라 하는가? 수법행도류지를 얻고서 수법행을 버리고 견지를 얻는 것이다.
【문】그는 그럴 때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는가?
【답】 이름을 버리고 이름을 얻으며 도를 버리고 도를 얻는다. 이름을 버린다 함은 수법행의 이름을 버리는 것이요, 이름을 얻는다 함은 견지의 이름을 얻는 것이며, 도를 버린다 함은 견도를 버리는 것이요, 도를 얻는다 함은 수도를 얻는 것이다.
이 견지의 보특가라예류과이기도 하고 나아가 아라한향이기도 하다. 신승해처럼 그 모양을 해설해야 한다.

또한 《아비달마대비바사론》제54권에서는 견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17][18]

【문】무엇 때문에 견지(見至)라 하는가?
【답】 그는 견(見)에 의하여 견에 이르기 때문에 견지라고 한다. 견도에 속한 견에 의하여 수도에 속한 견에 이르게 되고 향도에 속한 견에 의하여 과도에 속한 견에 이르게 된다.
또 그 보특가라는 견을 우선으로 삼음으로써 마음이 3결을 벗어나기 때문에 견지라 한다.
【문】신승해도 신지(信至)라 해야 하고 견지도 견승해(見勝解)라 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하나는 신승해라고 하고 하나는 견지라고 하는가?
【답】 신승해를 신승해라 하는 것과 같이 견지도 견승해라고 해야 하며 견지를 견지라고 하는 것과 같이 신승해도 신지라고 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다른 모양[異相]과 다른 문[異門]으로 법을 말하여 모든 지혜로운 자들이 좋아하며 받아 지니게 하여 서로 뒤섞이거나 어지럽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아비달마구사론[편집]

T29n1558_p0122c12║至住果位捨得二名。謂不復
T29n1558_p0122c13║名隨信法行。轉得信解見至二名。此亦由
T29n1558_p0122c14║根鈍利差別。諸鈍根者先名隨信行今名信
T29n1558_p0122c15║解。諸利根者先名隨法行今名見至。此二
T29n1558_p0122c16║聖者信慧互增故。標信解見至名別。

그리고 과위에 머무는 단계에 이르면 두 가지의 명칭을 버리고 획득하게 된다. 즉 그 때는 더 이상 수신행 · 수법행이라고 이름하지 않으며, 신해(信解)와 견지(見至)라고 하는 두 가지 명칭을 획득하게 되는데, 이것 역시 근기가 둔하고 예리한 차별에 따른 것이다. 이를테면 온갖 둔근자를 앞에서는 수신행이라고 이름하였지만 지금 여기서는 ‘신해’라고 이름하며, 온갖 이근자를 앞에서는 수법행이라고 이름하였지만 지금 여기서는 ‘견지’라고 이름하니, 이러한 두 성자는 (信)과 (慧)가 서로 증장하였기 때문에 신해와 견지라는 명칭으로 그 차별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 《아비달마구사론》제23권. 한문본 & 한글본[19][20]

T29n1558_p0131b24║依根不同立次二種。謂依鈍利信慧
T29n1558_p0131b25║根增如次名為信解見至。

근기가 동일하지 않음에 근거하여 그 다음의 두 종류를 설정하였으니, 이를테면 둔근과 이근에게 신근(信根)과 혜근(慧根)이 증가하였기 때문에 순서대로 ‘신해’와 ‘견지’로 이름하게 된 것이다.56)
56) 둔근수신행의 성자가 수도에 이르러 (信)의 증상력으로 말미암아 무루의 정해(正解)가 나타났기 때문에 ‘신해’라고 한 것이며, 이근수법행의 성자가 수도에 이르러 의 증상력으로 말미암아 무루 정견이 나타났기 때문에 ‘견지’라고 이름하였다. 본론 권제23(p.1068)을 참조 바람.


— 《아비달마구사론》제25권. 한문본 & 한글본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見至(견지)",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見至(견지)
    ⇒견득(見得)
  2. "見得(견득)",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見得(견득)
    또는 견지(見至)ㆍ견도(見到). 7성(聖)의 하나. 수도위(修道位)에 있는 이 가운데서 지혜가 밝은 이. 지견(知見)이 빼어나서 스스로 법을 보고 이치를 증득할 수 있으므로 견득이라 함.
  3. "견지[見至]",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견지[見至]
    뛰어난 지혜로써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여 수도(修道)의 단계에 이른 성자.
    동의어: 견도(見到), 견득(見得)
  4. "見至",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7일에 확인:
    見至
    Basic Meaning: attained through insight
    Senses:
    To apprehend reality based on merely observing it through oneʼs own wisdom. Also translated into Chinese as 見得 and 見到. Reaching a correct view of the truth by the function of illuminating wisdom, which is the name applied to a certain level of attainment on the path. It is a stage that occurs after the practitioner fully apprehends the four noble truths, the path of seeing 見道 is completed and one first enters into the path of cultivation 修道. It the next stage after the experience of confidence 信解 in reality, meaning the fourth of the seven sages 七聖, the fourth of the eighteen learnings 十八有學, and the seventeenth of the twenty-seven sages 二十七賢聖. One of the seven Abhidharmic divisions of sages 七證 (Skt. dṛṣṭi-prāpta, dṛṣty-āpta, dṛṣṭy-āptatā; Tib. mthong bas thob pa). 〔瑜伽論 T 1579.30.358b19〕 [Ockbae Chun]
  5. "善知識(선지식)",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善知識(선지식)
    【범】 kalyāṇamitra ↔악지식(惡知識). 또는 지식(知識)ㆍ선우(善友)ㆍ친우(親友)ㆍ선친우(善親友)ㆍ승우(勝友)라고도 함. (1) 부처님이 말씀한 교법(敎法)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 세계를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사람. (2) 남녀노소,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 ⇒지식(知識)
  6. "선지식[善知識]",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선지식[善知識]
    산스크리트어 kalyāṇa-mitra 좋은 벗.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자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청정한 수행을 하는 자.
  7. "善知識",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善知識
    梵語 kalyāṇamitra,巴利語 kalyāṇa-mitta。音譯作迦羅蜜、迦里也曩蜜怛羅。指正直而有德行,能教導正道之人。又作知識、善友、親友、勝友、善親友。反之,教導邪道之人,稱為惡知識。據大品般若經卷二十七常啼品載,能說空、無相、無作、無生、無滅之法及一切種智,而使人歡喜信樂者,稱為善知識。華嚴經入法界品記述善財童子於求道過程中,共參訪五十五位善知識(一般作五十三位善知識),即上至佛、菩薩,下至人、天,不論以何種姿態出現,凡能引導眾生捨惡修善、入於佛道者,均可稱為善知識。又釋氏要覽卷上引瑜伽師地論,舉出善知識具有調伏、寂靜、惑除、德增、有勇、經富、覺真、善說、悲深、離退等十種功德。另據四分律卷四十一載,善親友須具備難與能與、難作能作、難忍能忍、密事相告、遞相覆藏、遭苦不捨、貧賤不輕等七個條件,即所謂「善友七事」。
    經論中臚舉善知識之各種類別,據智顗之摩訶止觀卷四下載,善知識有如下三種:(1)外護,指從外護育,使能安穩修道。(2)同行,指行動與共,相互策勵。(3)教授,指善巧說法。據圓暉之俱舍論頌疏卷二十九載,與法者為上親友,與財、法者為中親友,僅與財者為下親友,以上稱為三友。華嚴經探玄記卷十八亦舉出人、法、人法合辨等三種善知識。
    舊華嚴經卷三十六離世間品則說十種善知識,即:能令安住菩提心善知識、能令修習善根善知識、能令究竟諸波羅蜜善知識、能令分別解說一切法善知識、能令安住成熟一切眾生善知識、能令具足辯才隨問能答善知識、能令不著一切生死善知識、能令於一切劫行菩薩行心無厭倦善知識、能令安住普賢行善知識、能令深入一切佛智善知識。〔雜阿含經卷二十七、卷三十六、卷四十五、中阿含卷十即為比丘說經、長阿含卷五闍尼沙經、增一阿含經卷十一善知識品、尸迦羅越六方禮經、南本大般涅槃經卷二十三、法華經卷七妙莊嚴王本事品、大智度論卷七十一、卷九十六〕(參閱「知識」4370)p6157
  8. "見至",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見至
    梵語 dṛṣṭi-prāpta。又作見到、見得。見,指無漏之智慧。意謂以殊勝之智慧,而達至證見真理。七聖之一,十八有學之一,二十七賢聖之一。即俱舍論中,受教之利根者,入於斷情意煩惱位(修道位)時之名稱。以利根者自見法而得理,故稱見得;以得由因之見而至果之見,故稱見至。反之,鈍根者依信殊勝,而得信解。〔大毘婆沙論卷五十四、卷九十三、俱舍論卷二十三、卷二十五、阿毘達磨順正理論卷六十四、瑜伽師地論卷二十六、大乘義章卷十七〕(參閱「七聖」186、「二十七賢聖」265、「十八有學」512)p3776
  9. "見得", 불문망. 《불학사전》.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見得
    辭典解釋 :
    解釋[1]:
    謂前法行之人,轉入修道,以利根故,見法得理,故名見得。
    出處:明,一如《三藏法數》字庫
    解釋[2]:
    見得者,謂此人根利,若見於法,即能得理也。
    出處:明,一如《三藏法數》字庫
    解釋[3]:
    dṛṣṭi-prāpta.
    出處:佛教漢梵大辭典, 平川彰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Akira Hirakawa
    頁數:P.3414
    相近字:
    見微細罪生大怖畏 [w] , 見心 [w] , 見怖 [w] , 見怖畏 [w] , 見思 [w] , 見彼有過 [w] , 見彼我無別 [w] , 見常 [w] , 見已虛空 [w] , 見已而調伏者 [w]
  10. 오백 아라한 조, 현장 한역(T.1545).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제54권. 대정신수대장경. T27, No. 1545, CBETA.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T27n1545_p0280a17║問何故名見至。
    T27n1545_p0280a18║答由彼依見得至於見故名見至。謂依見
    T27n1545_p0280a19║道所攝見得至修道所攝見。依向道所攝
    T27n1545_p0280a20║見得至果道所攝見。
  11. 오백 아라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김석군 개역(K.952, T.1545).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54권.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문】무엇 때문에 견지(見至)라 하는가?
    【답】 그는 견(見)에 의하여 견에 이르기 때문에 견지라고 한다. 견도에 속한 견에 의하여 수도에 속한 견에 이르게 되고 향도에 속한 견에 의하여 과도에 속한 견에 이르게 된다.
  12. 오백 아라한 조, 현장 한역(T.1545).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제54권. 대정신수대장경. T27, No. 1545, CBETA.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T27n1545_p0278b28║云何見至補
    T27n1545_p0278b29║特伽羅。謂隨法行得道類智。捨隨法行。得
    T27n1545_p0278c01║見至。問彼於爾時何所捨得。答捨名得名
    T27n1545_p0278c02║捨道得道。捨名者捨隨法行名。得名者得
    T27n1545_p0278c03║見至名。捨道者捨見道。得道者得修道。此
    T27n1545_p0278c04║見至補特伽羅。或是預流果。乃至或是阿羅
    T27n1545_p0278c05║漢向。如信勝解應說其相。
  13. 오백 아라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김석군 개역(K.952, T.1545).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54권. 2022년 8월 19일에 확인:
    어떤 이를 견지(見至)의 보특가라라 하는가? 수법행이 도류지를 얻고서 수법행을 버리고 견지를 얻는 것이다.
    【문】그는 그럴 때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는가?
    【답】 이름을 버리고 이름을 얻으며 도를 버리고 도를 얻는다. 이름을 버린다 함은 수법행의 이름을 버리는 것이요, 이름을 얻는다 함은 견지의 이름을 얻는 것이며, 도를 버린다 함은 견도를 버리는 것이요, 도를 얻는다 함은 수도를 얻는 것이다.
    이 견지의 보특가라는 예류과이기도 하고 나아가 아라한향이기도 하다. 신승해처럼 그 모양을 해설해야 한다.
  14. "見至補特伽羅", 불문망. 《불학사전》. 2022년 8월 17일에 확인:
    見至補特伽羅
    辭典解釋 :
    解釋[1]:
    見至補特伽羅===瑜伽二十六卷四頁云:云何見至補特伽羅?謂即隨法行補特伽羅,於沙門果;得觸證時;說名見至補特伽羅。##二解 集論七卷十一頁云:何等見至補特伽羅?謂隨法行已至果位。##三解 大毗婆沙論五十四卷三頁云:云何見至補特伽羅?謂隨法行,得道類智;捨隨法行,得見至。問:彼於爾時,何所捨得?答:捨名得名,捨道得道。捨名者:捨隨法行名。得名者:得見至名。捨道者:捨見道。得道者:得修道。此見至補特伽羅,或是預流果,乃至或是阿羅漢向,如信勝解,應說其相。
    出處:朱芾煌《法相辭典》字庫
    相近字:
    見至道 [w] , 見至類 [w] , 見與不見 [w] , 見與慧四句分別 [w] , 見與智四句分別 [w] , 見至者 [w] , 見至生 [w] , 見至得人及非時解脫人道 [w] , 見至勝解補特伽羅 [w] , 見至不時解脫心 [w]
  15. 오백 아라한 조, 현장 한역(T.1545).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제54권. 대정신수대장경. T27, No. 1545, CBETA.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T27n1545_p0278b28║云何見至補
    T27n1545_p0278b29║特伽羅。謂隨法行得道類智。捨隨法行。得
    T27n1545_p0278c01║見至。問彼於爾時何所捨得。答捨名得名
    T27n1545_p0278c02║捨道得道。捨名者捨隨法行名。得名者得
    T27n1545_p0278c03║見至名。捨道者捨見道。得道者得修道。此
    T27n1545_p0278c04║見至補特伽羅。或是預流果。乃至或是阿羅
    T27n1545_p0278c05║漢向。如信勝解應說其相。
  16. 오백 아라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김석군 개역(K.952, T.1545).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54권.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어떤 이를 견지(見至)의 보특가라라 하는가? 수법행이 도류지를 얻고서 수법행을 버리고 견지를 얻는 것이다.
    【문】그는 그럴 때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는가?
    【답】 이름을 버리고 이름을 얻으며 도를 버리고 도를 얻는다. 이름을 버린다 함은 수법행의 이름을 버리는 것이요, 이름을 얻는다 함은 견지의 이름을 얻는 것이며, 도를 버린다 함은 견도를 버리는 것이요, 도를 얻는다 함은 수도를 얻는 것이다.
    이 견지의 보특가라는 예류과이기도 하고 나아가 아라한향이기도 하다. 신승해처럼 그 모양을 해설해야 한다.
  17. 오백 아라한 조, 현장 한역(T.1545).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제54권. 대정신수대장경. T27, No. 1545, CBETA.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T27n1545_p0280a17║問何故名見至。
    T27n1545_p0280a18║答由彼依見得至於見故名見至。謂依見
    T27n1545_p0280a19║道所攝見得至修道所攝見。依向道所攝
    T27n1545_p0280a20║見得至果道所攝見。復次由彼補特伽羅
    T27n1545_p0280a21║以見為先心脫三結是故名見至。問信勝
    T27n1545_p0280a22║解亦應名信至見至亦應名見勝解。何故
    T27n1545_p0280a23║一名信勝解一名見至耶。答如信勝解名
    T27n1545_p0280a24║信勝解見至亦應名見勝解。如見至名見
    T27n1545_p0280a25║至信勝解亦應名信至。而不爾者欲現異
    T27n1545_p0280a26║相異門說法令諸智者愛樂受持不相雜亂。
  18. 오백 아라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김석군 개역(K.952, T.1545).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54권.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문】무엇 때문에 견지(見至)라 하는가?
    【답】 그는 견(見)에 의하여 견에 이르기 때문에 견지라고 한다. 견도에 속한 견에 의하여 수도에 속한 견에 이르게 되고 향도에 속한 견에 의하여 과도에 속한 견에 이르게 된다.
    또 그 보특가라는 견을 우선으로 삼음으로써 마음이 3결을 벗어나기 때문에 견지라 한다.
    【문】신승해도 신지(信至)라 해야 하고 견지도 견승해(見勝解)라 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하나는 신승해라고 하고 하나는 견지라고 하는가?
    【답】 신승해를 신승해라 하는 것과 같이 견지도 견승해라고 해야 하며 견지를 견지라고 하는 것과 같이 신승해도 신지라고 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다른 모양[異相]과 다른 문[異門]으로 법을 말하여 모든 지혜로운 자들이 좋아하며 받아 지니게 하여 서로 뒤섞이거나 어지럽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19.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제23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T29n1558_p0122c05║ 至第十六心 隨三向住果
    T29n1558_p0122c06║ 名信解見至 亦由鈍利別
    T29n1558_p0122c07║論曰。即前隨信隨法行者至第十六道類智
    T29n1558_p0122c08║心名為住果。不復名向。隨前三向今住三
    T29n1558_p0122c09║果。謂前預流向今住預流果。前一來向今住
    T29n1558_p0122c10║一來果。前不還向今住不還果。阿羅漢果必
    T29n1558_p0122c11║無初得。見道無容斷修惑故。世道無容
    T29n1558_p0122c12║離有頂故。至住果位捨得二名。謂不復
    T29n1558_p0122c13║名隨信法行。轉得信解見至二名。此亦由
    T29n1558_p0122c14║根鈍利差別。諸鈍根者先名隨信行今名信
    T29n1558_p0122c15║解。諸利根者先名隨法行今名見至。此二
    T29n1558_p0122c16║聖者信慧互增故。標信解見至名別。
  2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3권. 2022년 8월 20일에 확인:
    제16 찰나의 마음에 이르러
    세 가지 향(向)이 과위(果位)에 머물게 되면
    이를 신해(信解)와 견지(見至)라고 이름하니
    역시 둔근과 이근의 차별 때문이다.
    至第十六心,
    隨三向住果,
    名信解見至,
    亦由鈍利別。
    논하여 말하겠다. 즉 앞에서 언급한 수신과 수법의 행자가 제16 도류지 찰나의 마음에 이르게 되면, 이를 일컬어 ‘과위에 머무는 자[住果]’라고 하지, 더 이상 ‘향하는 자[向]’라고는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향은 여기서 세 가지 과위에 머무는 자가 되니, 이를테면 앞에서 언급한 예류향은 여기서 예류과에 머물게 되고, 앞에서 언급한 일래향은 여기서 일래과에 머물게 되며, 앞에서 언급한 불환향은 여기서 불환과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라한과(阿羅漢果)는 필시 처음으로 바로 획득하는 일이 없으니, 견도로써는 수혹을 끊을 수 없기 때문이며, 세간도로써는 유정지(有頂地)를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91)
    그리고 과위에 머무는 단계에 이르면 두 가지의 명칭을 버리고 획득하게 된다. 즉 그 때는 더 이상 수신행ㆍ수법행이라고 이름하지 않으며, 신해(信解)와 견지(見至)라고 하는 두 가지 명칭을 획득하게 되는데, 이것 역시 근기가 둔하고 예리한 차별에 따른 것이다. 이를테면 온갖 둔근자를 앞에서는 수신행이라고 이름하였지만 지금 여기서는 ‘신해’라고 이름하며, 온갖 이근자를 앞에서는 수법행이라고 이름하였지만 지금 여기서는 ‘견지’라고 이름하니, 이러한 두 성자는 신(信)과 혜(慧)가 서로 증장하였기 때문에 신해와 견지라는 명칭으로 그 차별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92)
    91) 아라한과는 초월증(超越證)에 의해 직접적으로 바로 획득되는 일이 없으며, 반드시 불환과를 획득한 후 유정처(有頂處, 비상비비상처정)의 수혹을 끊고 나서야 비로소 획득될 수 있다.
    92) 둔근자의 과위를 ‘신해(śradhādhimukta)’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증상력으로 말미암아 승해(勝解)가 나타났기 때문이며, 이근자의 과위를 ‘견지(dṛṣṭy-āpti)’라고 하는 것은 혜의 증상력으로 말미암아 정견(正見)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수신행 위(位)의 믿음이 이 단계에 이르러 더욱 증장하여 무루의 승해를 처음으로 일으켰기 때문에 신해라고 한 것이며, 수법행위의 혜가 더욱 증장하여 정견의 혜로 현현하였기 때문에 견지라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