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게내, 게내안말, 동자골 등 마을을 광주군 구천면 상일리로 병합하였다. 1963년1월 1일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상일동으로 바뀌었고[1]1975년10월 1일 강남구 관할이 되었고,[2] 1979년 10월 1일 강동구 관할이 되었다.[3] 동네의 이름은 이 동네가 게내(고덕천)의 위쪽에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5]
1914년 가재울, 비석말, 방죽말, 동자골 등 자연마을을 광주군 구천면(九川面) 고덕리로 병합하였다. 1963년1월 1일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고덕동으로 바뀌었고[1]1975년10월 1일 강남구 관할이 되었고,[2] 1979년 10월 1일 강동구 관할이 되었다.[3] 동네의 이름은 고려 말기 형조참의를 지낸 이양중이란 사람이 조선의 건국을 반대하여 이 동네에 은거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덕이 높은(高德) 사람으로 칭송받은 데에서 유래한다.[5]
1914년 기리울, 아랫말, 골말, 방아다리 등 마을을 광주군 구천면 길리로 병합하였다. 1963년1월 1일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길동으로 바뀌었고[1]1975년10월 1일 강남구 관할이 되었고,[2] 1979년 10월 1일 강동구 관할이 되었다.[3] 동네 이름에 대해서는 이 지역이 산사태 등이 없는 길한 동네라서 길동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과, '길다'의 뜻을 갖고 있는 고유어 이름 기리울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5] 실제로 이 지역에는 기리울 n길이란 이름의 길이 존재한다.
1914년 약수터, 굴바위, 안둔굴, 밖둔굴 등 마을을 광주군 구천면 둔촌리로 병합하였다. 1963년1월 1일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둔촌동으로 바뀌었고[1]1975년10월 1일 강남구 관할이 되었고,[2] 1979년 10월 1일 강동구 관할이 되었다.[3] 동네의 이름은 이곳에 광주 이씨의 시조인 둔촌 이집이 한 때 거주한 적이 있었던 사실에서 유래한다.[5]
1914년 샛말, 염주골, 간낫골, 건넛말, 샘말, 큰골 등 마을을 광주군 구천면 명일리로 병합하였다. 1963년1월 1일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명일동으로 바뀌었고[1]1975년10월 1일 강남구 관할이 되었고,[2] 1979년 10월 1일 강동구 관할이 되었다.[3] 동네의 이름은 994년(고려 성종 12년) 이 지역에 명일원(明逸院)이라는 역원을 설치한 데서 유래한다.[5] 하지만 현재 명일원 터는 상일동에 위치하고 있다.
1914년 성안말, 곰말, 안말, 벌말 등 마을을 광주군 구천면 성내리로 병합하였다. 1963년1월 1일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성내동으로 바뀌었고[1]1975년10월 1일 강남구 관할이 되었고,[2] 1979년 10월 1일 강동구 관할이 되었다.[3] 동네 이름은 이 곳이 풍납토성의 안쪽에 자리잡은 데서 유래한다.[5]
1914년 참앞, 우묵골, 점말, 새능말, 섬말, 갯물 등 마을을 광주군 구천면 암사리로 병합하였다. 1963년1월 1일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암사동으로 바뀌었고[1]1975년10월 1일 강남구 관할이 되었고,[2] 1979년 10월 1일 강동구 관할이 되었다.[3] 동네 이름은 이 곳에 신라시대의 절이 9개가 몰려 있었던 데서 구암사(九岩寺)라고 한 것을 암사리(岩寺理)로 줄여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다.[5]
1914년 당말, 벽동말 등 마을을 광주군 구천면 곡교리(曲橋里)로 병합하였다. 1963년1월 1일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천호동으로 바뀌었고[1]1975년10월 1일 강남구 관할이 되었고,[2] 1979년 10월 1일 강동구 관할이 되었다.[3] 동네 이름은 이 곳이 인가 수천 호가 들어설 만한 지역이라는 풍수지리설의 주장에서 유래한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