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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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개 사건은 1903년부터 1910년까지 영국 에드워드시대에 만연했던 생체해부에 대한 정치적인 논쟁이었다. 이것은 의대생들과 경찰, 개의 동상을 보호하려는 경찰관, 왕립재판소의 명예훼손재판 및 실험용 동물에 대한 조사를 위한 왕립위원회의 구성 간의 대결을 시작하게 한 스웨덴의 여성 반생체해부 운동가들의 런던대 의대강의실 침투사건에 영향을 끼쳤다. 이 사건은 반복적으로 국가를 분열시키는 유명한 원인이 되었다. 1903년 2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심리학과 사람인 윌리엄 베이리스가 60명의 의과대생 앞에서 갈색 사냥개에게 행한 불법적 해부 행위에 의해 그 논쟁의 방아쇠는 당겨졌다. 그와 그 학생은 그것을 충분히 마취시켰다고 하였으나 스웨덴 활동가(행동주의자)의 말로는 그것은 아직 의식이 있었고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한다. 그 실험 절차는 잔인하고 불법적이라 전국생체해부반대협회에게 유죄선고를 받았다. 호르몬의 발견의 잣대가 된 개 실험의 주최자 베이리스는 그의 명예에 대한 공격에 격분했다. 그는 명예훼손에 대하여 고발했고, 승소했다.

반생체해부론자들은 1906년 Battersea에 개의 동상을 기념물로 정하여 제막하였으나 의대생들은 잦은 기념물의 파괴와 소위 "개 반대자"들로부터 24시간 경찰의 보호를 필요로하는 그것의 선동적인 역병에 - "영국의 남성, 여성들이여, 얼마나 이것들이 지속되어야 하겠습니까?" - 라고 분노하였다. 한 의사는 의대생들이 경찰을 이기지 못한 실패가 후배 의사들과 앵글로 색슨족의 "전적인 쇠락"의 조짐이라고 한탄했다. 1907년 12월 10일, 1천명의 개반대자들은 막대에 갈색 개 인형을 꽂아 흔들고 여성참정권론자들, 무역연합론자들 및 400명의 경찰관들과 격렬히 부딪히며 런던시의 중앙을 통과해 행진했다 (갈색개 폭동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투쟁중 하나).

이것(동상)을 지지하는 강력한 2만건의 청원서에도 불구하고 의회측 대장장이들로 인해 반복적으로 녹아내려진 이후, 1910년 3월에는 지속되는 논쟁에 지친 Battersea 의회가 어둠을 틈타 동상을 제거하기위해 120명의 경찰관을 대동한 네 명의 일꾼을 보냈다. 갈색개의 새로운 조각상은 반생체해부론자 그룹들에 의해 70년후에 의뢰에 의해 1985년 Battersea 공원에 세워졌다. 피터 메이슨은 이 오래된 조각상에 의해 남겨진 것은 포장도로 위의 혹(혹은 언덕) 이라며 근처의 벽에 "개들 금지"라는 표지판을 썼다.

참고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