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 (인공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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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假山) 또는 조산(造山)은 산 모양으로 쌓아 놓은 정원의 조경물, 또는 인공적으로 흙을 쌓아 이룬 산을 의미한다. 전자의 경우 경치를 더욱 좋게 하여 풍류를 즐기기 위함이며, 후자의 경우 풍수지리적으로 지기(地氣)가 험한 곳의 기운을 북돋게 하기 위함이다.

유명한 가산[편집]

대한민국[편집]

경복궁의 가산[편집]

경복궁 교태전 뒤에는 인공적으로 산을 조성하여, 교태전 안에서만 머무르는 왕비가 궁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이름은 아미산(峨眉山)으로, 중국 쓰촨 성에 있는 명산인 어메이 산(峨眉山)에서 따 온 것이다. 아름다운 굴뚝이 유명하다.

청계천의 가산[편집]

한양이 조선의 수도가 된 이래로 영조 대에 이르기까지 청계천의 토사를 준설하는 준천(濬川)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으며, 영조가 비로소 이를 시행하였다. ​봉조하였던 유척기는 300여 년 동안 쌓인 막대한 양의 토사를 준설한 것을 다른 곳으로 옮겨 쌓지 않으면 준설을 시행한 의미가 헛되게 된다고 말하였고[1], 이에 토사를 오간수문 부근의 청계천 좌우에 산처럼 쌓아 가산(假山)을 만들었다.

가산으로 몰려든 거지들은 가산에 땅굴을 파고 몰려 살았으며, 나라에서는 이들에게 뱀을 잡아 팔 독점 권리를 부여하여, 이들을 ‘땅꾼’이라 부르게 되었다.[2] 가산에는 꽃을 심었는데 그 향기가 좋았기 때문에, 지금의 청계5가와 을지로5가 사이 지역을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 시에 방산정(芳山町)으로 명명[3]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산은 준설토로 이루어졌으므로 기후 상황이나 준설량에 따라 그 높이와 면적이 계속 변하였다.

청계천 북쪽의 가산은 1898년에 서울전차 차고를 짓고, 1909년에 그 흙을 약간 헐어 종로에 넓게 도포하면서 그 면적이 줄었다. 나머지는 종로신진시장 서문2와 전태일다리(버들다리) 사이의 영역에 높이 5m 가량의 둔덕으로 남아 있다.[4] 남쪽의 가산은 1918년에 지금의 국립중앙의료원 위치에서 설립된 조선약학교, 1921년에 지금의 미공병단 부지에서 설립된 경성사범학교, 해방 이후 설립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5] 등을 건설하며 모두 헐렸다.

각주[편집]

  1. 《영조실록》 영조 95권 36년 4월 10일, 유척기가 준천 공사의 득이 없음을 아뢰자 물러가라 하고 석강을 열다. 국사편찬위원회
  2. 길윤형 (2003년 7월 3일). “[청계천]'땅꾼' 원조는 '가산' 거지들”. 《한겨레》. 2016년 12월 18일에 확인함. 
  3. 경기도고시 제7호
  4. 최종현; 김창희 (2013). 《오래된 서울》. 서울: 동하. 72쪽. ISBN 9788996787228. 
  5. 최종현; 김창희 (2013). 《오래된 서울》. 서울: 동하. 71쪽. ISBN 9788996787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