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릴로 프린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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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무소에서에서 찍은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사진

가브릴로 프린치프(보스니아어: Gavrilo Princip, 세르비아어: Гаврило Принцип, 1894년 7월 25일 ~ 1918년 4월 28일)는 남슬라브 통일을 목표로 삼은 보스니아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로, 오스트리아추정상속인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그의 아내 조피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저격, 살해하였다. 프린치프가 혼자 벌인 일은 아니고,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자들과 우파 성격의 단체를 결성하여 벌인 사건인데, 이것이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이어진 사라예보 사건이다.

당시 범슬라브주의의 한 갈래로 나온 남슬라브 운동1877년을 전후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세르비아가 주도하였다. 당시 보스니아도 세르비아와 합치며 독립하려 하였으나 1878년 베를린 조약으로 인하여 세르비아 왕국만이 독립하고 보스니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넘어갔다.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인 프린치프를 비롯한 남슬라브주의자들은 보스니아가 독립하여 세르비아와 합치는 것을 원했는데, 오스트리아는 러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으며 남슬라브 운동을 부추기는 세르비아를 제지할 구실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사라예보 사건이 터지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세르비아 영토 내에서 수사를 하게 해달라는 등의 요구를 담긴 통첩을 보냈다. 세르비아는 요구를 대부분 수락한다고 밝혔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여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프린치프는 재판을 거쳐 징역형을 언도받았으며, 전쟁이 끝나기 전에 감옥에서 25세의 나이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