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남궁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rome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10월 7일 (수) 01:26 판

남궁(南宮)씨는 중국과 한국의 성씨다. 남궁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18,74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93위이다. 본관은 함열 단본이다.

기원

남궁씨(南宮氏)의 유래(由來)는 중국(中國)의 고대(古代)에서 비롯된다. 본래(本來) 황족(皇族)인 희성(姬姓)이었다. 은(殷)나라에 이르러 남(南)쪽 궁(宮)에 살았다하여 남궁(南宮)으로 성(姓)을 정하였다고 한다.

남궁(南宮)씨를 처음 사용(使用)한 인물은 남궁괄(适=括)로 추정(推定)된다. 남궁괄은 주 문왕(周文王)의 사우(四友) 중 한 사람이다. 그가 대장군(大將軍)으로 있을 때 폭군(暴君)인 은(殷) 나라 주왕(紂王-BC1154 ~ 1111)에 의해서 투옥(投獄)된 문왕(文王)을 기지(機智)를 발휘(發揮)하여 구해내기도 하였다. 그는 무왕(武王)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를 건국(建國)한 공신(功臣)으로 이상서(二尙書)에 오르고 한 지방(地方)을 식읍으로 받아 다스리게 되었으며 그 곳의 지명(地名)을 그의 성(姓)을 따라 남궁현(縣)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공자(孔子)의 사위가 된 남궁괄(括)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다.

한국 남궁씨(南宮氏)의 원조(遠祖)는 주(周) 나라남궁수(南宮修)이다. 남궁수는 기자(箕子)와 함께 조선에 동래(東來)하면서 평양(平壤)을 중심으로 기자조선(箕子朝鮮)을 건국(建國)하고 사도(司徒)의 직(職)에 올라 백성들에게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을 가르쳤으며, 음식의 예법(禮法)과 제사(祭祀)에는 편두(祭器)를 쓰게 하며 의관제도(衣冠制度)와 직제(職制)를 중국과 같게 하였다고 한다.

함열 남궁씨

함열 남궁씨(咸悅 南宮氏)의 시조는 고려 성종 때의 대장군 남궁원청(南宮元淸)이다. 그는 991년(고려 성종 10년)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여진족을 백두산(白頭山) 북방까지 몰아내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임명되고 감물아백(甘勿阿伯)에 봉해졌다. 이후 세보가 실전되어 그의 후손 남궁득희(南宮得禧)을 1세조로 하였다. 남궁득희의 증손 남궁민(南宮敏)은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간의대부를 지냈다. 함열 남궁씨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5명, 무과 급제자 9명, 사마시 53명, 음관 24명을 배출하였다.[1]

각주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