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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
== 인구 ==
부천시의 인구는 2009년 현재 884,976명이며 [[인구 밀도]]는 16,572명/km2이다. 0~14세 인구는 16.7%, 65세 이상 인구는 7.1%이다. 생산연령층인 15~64세 인구는 72.2%로 전국평균 72.8%보다 낮고, 유소년인구부양비는 23.1%로 전국 평균인 22.8%보다 높고, 노년인구부양비는 9.8%로 전국 평균인 14.5%보다 낮다. 여자 인구 100명당 남자 인구를 나타내는 성비는 100.8로 남자가 다소 많다. <ref>[http://www.bucheon.go.kr/stat/index.jsp 부천시 통계연보], 2010년 기본통계 PDF자료</ref>
부천시의 인구는 2009년 현재 884,976명이며 [[인구 밀도]]는 16,572명/km2이다. 0~14세 인구는 16.7%, 65세 이상 인구는 7.1%이다. 생산연령층인 15~64세 인구는 72.2%로 전국평균 72.8%보다 낮고, 유소년인구부양비는 23.1%로 전국 평균인 22.8%보다 높고, 노년인구부양비는 9.8%로 전국 평균인 14.5%보다 낮다. 여자 인구 100명당 남자 인구를 나타내는 성비는 100.8로 남자가 다소 많다. <ref>[http://www.bucheon.go.kr/stat/index.jsp 부천시 통계연보], 2010년 기본통계 PDF자료</ref>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될 당시 소사역을 중심으로 취락이 발달했고, 1908년 일본인들이 복숭아 재배를 시작하면서 노동인구가 이주한 이후 농촌적 경관을 유지해왔다. 1965~70년에는 서울로의 인구집중으로 인구성장률이 10.7%밖에 되지 않았으나 1973년 시 승격과 1975년 경인전철 개통으로 서울에서의 교외화 현상이 본격화됨으로써 1975~89년에는 연평균 34.9%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때 부천시의 지가는 12~18배 정도 상승했다. 이와 같은 인구성장률은 전국 1위로 경기도 내의 다른 위성도시보다도 월등한 것이었다. 그러나 1995~96년의 성장률은 2% 이하로 다소 안정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부천시는 서울에 비해 주택 가격이 싸서 서울로의 통근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공장이 많아 젊은 생산연령층 인구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006년 현재 인구는 90만 명에 육박해 인구면에서 한국 제11위, 경기도 제3위의 도시로 성장했다. 인구밀도로 보면 부천시는 인천, 서울 다음으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밀도 분포를 보면 행정동별로 심곡1동(3만 1,664명/㎢)·심곡2동(2만 8,641명/㎢)·심곡3동(3만 5,958명/㎢)·원미2동(3만 3,073명/㎢)·소사본3동(3만 7,301명/㎢) 등 주로 부천역 주변지역의 인구밀도가 높으며, 중4동(8만 3,676명/㎢)·상1동(3만 9,078명/㎢) 등도 인구밀도가 높다. 2006년 현재 주택보급률은 93% 정도이다. 인구이동을 보면 전출자수와 전입자수가 16만 7,701명으로 총인구 대비 19.4%이다. <ref>[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0b1173b003 부천시의 인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ref>


== 산업 ==
== 산업 ==

2012년 1월 25일 (수) 17:12 판

부천시
부천시의 위치
부천시의 위치
행정
국가대한민국
일반구3개
법정동24개
청사 소재지원미구 길주로 204 (중1동 1156)
단체장김만수
지리
면적53.5km2
인문
인구869,455명 (2010.04년)
세대322,563세대 (2010.04년)
상징
나무복숭아나무
복숭아꽃
보라매
지역 부호
웹사이트http://www.bucheon.go.kr/

부천시(富川市)는 대한민국 경기도 서부에 있는 이다. 주로 공업 기능을 담당하는 서울위성 도시로 급격히 성장하였다. 또한,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경인선이 시 중남부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국도 제6호선, 국도 제39호선, 국도 제46호선이 지나며 김포공항이 바로 인접하며, 2007년에는 전국 대부분의 지역을 노선으로 하는 종합버스터미널이 개장한 교통의 요지이다. 동쪽북쪽서울특별시 구로구, 서울특별시 양천구, 서울특별시 강서구가, 서쪽김포시, 인천광역시 부평구, 인천광역시 계양구가, 남쪽광명시시흥시가 접하고 있다.

부천은 복숭아가 많이 난다고 하여 예로부터 '복사골'이라는 별칭으로 불려 왔으며, 이 때문에 부천시는 복숭아를 상징물로 지정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 중동 신시가지 건설이 완료되고 2000년대 초반에는 상동 신시가지도 들어서, 2007년을 기준으로 87만 명 가량이 사는 대도시로 성장하였는데, 이 때문에 한편으로는 교통 문제와 지나치게 높은 인구밀도 문제 등 도시 문제를 겪고 있기도 하다. 2009년 기준 인구밀도가 16,572명/㎢로 전국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교통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이 지역을 경유하는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연장 구간 공사가 진행중이다. 부천시 전 지역에서의 대한민국의 시외 전화 번호 체계는 인천광역시와 공용하고 있다.

자연환경

지형

부천은 해발 고도 50m 미만이 시 전체의 80% 이상고 경사도 5% 미만이 약 70%로, 대체로 낮고 완만한 지형이다. 동부와 남부에는 200m 안팎의 산지가 있고 북부와 서부에는 여러 지류의 하천이 중동과 오정동에서 합류하면서 넓은 평야를 형성하여 전체적인 지형은 남동부가 높고 북서부는 낮다. 시가지에서 보면 남부는 성주산(217m)과 할미산(153m), 동부는 원미산(165m)이 완만한 구릉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는 중생대 쥐라기대보화강암흑운모화강암과 같은 화강암반이 오랜 세월에 걸쳐 침식된 구릉성 산지침식평야이다. 이들 중생대의 화산암체는 안양과 관악산 및 북한산의 대보화강암과 일체가 되는 형태이다. [1]경사가 완만한 침식평야는 배수가 잘 되어 일찌감치 송내동, 심곡동, 소사동, 원미동, 도당동을 따라 밭농사에 적합하여 복숭아 재배가 이루어졌고 취락의 입지에도 유리하여 부천의 구시가를 자리 잡고 있다.

북부와 서부에는 베르네천, 고리울천, 대교천, 심곡천 등 여러 지류의 하천이 중동과 상동, 오정동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면서 넓은 평야가 형성되었다. 이 지역들은 배수가 잘 되지 않는 들로 한강과 그 지류인 굴포천의 범람으로 형성된 충적평야로 부평평야의 일부분이다. 이곳의 토양은 사면의 이동물질과 표토에 포함된 유기물질들이 운반 퇴적된 비옥한 운적토이며 토목기술의 발달과 함께 배수 문제가 해결되면서 넓은 벼농사 지역으로 이용되어 왔다. 낮고 배수가 잘 되지 않는 범람원 지역이라 1984년 여름과 같은 큰 홍수 때는 몇 일간 침수된 기록이 있다. 이후 배수 시설이 보강되고 중동, 상동의 신도시로 개발된 신시가가 자리 잡고 있다.

부천의 하천은 1980년대 이후 대부분 복개되어 도로 밑으로 흐르고 있다. 역곡천과 베르네천의 일부 구간이 복개보다는 도심경관 하천으로 꾸며 지역 주민에게 휴게공간이 되도록 하는 자연형 하천 공사가 이루어졌고 상동을 중심으로 5.5km의 인공하천인 시민의 강이 조성되었다. 최근에는 심곡천의 일부 구간을 서울의 청계천과 비슷한 방식으로 복원될 계획이 세워지고 있다.

기후

부천은 온대 동안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Cfa Cw)와 냉대 습윤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Df)의 중간에 속한다. 평균기온은 12°C이며 최한월 1월은 -2.4°C, 최난월 8월은 25.1°C이다. 강수량은 1206mm이며 2월에 가장 적은 19.9mm, 7월에 가장 많은 309.2mm를 기록한다. 2004년부터 2009년 자료에 따르면 강설일은 14~21일, 황사일은 9~13일, 서리일은 27~44일이다. 지역의 대부분이 시가지인 영향으로 봄철 벚꽃 개화일은 남쪽에 위치한 경기도 시흥시나 인천광역시 남동구보다 1~2주 빠른 편이다.

부천(1979~2008)의 기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연간
출처: [2]

역사

출처 [3]

선사시대

부천에서는 아직까지 구석기시대 유적과 신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근지역인 시흥시 계수동목감동 등에서 다각면원구와 몸돌 등의 구석기시대 석기가 발견되었으며, 부천의 고강동에서도 다각면 원구가 발견되었다. 이것으로 볼 때 향후 부천에서 구석기시대 유적과 신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부천의 대표적인 선사유적으로는 고강동의 청동기시대 유적이 있다. 고강동 선사유적은 1995년 여름 홍수 때 유물이 드러나면서 발견된 유적으로 반달돌칼과 석창 등 매우 정교하게 가공된 석기들이 부천시에 신고되어 알려졌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7차에 걸쳐 발굴 조사되어 총 21기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제사유적인 적석환구유구가 확인되었다.

특히, 제4차 조사에서 확인된 적석환구유구는 발굴 조사 당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청동기시대 제사유구로 당시의 제사의례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고강동 선사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인 민무늬 토기와 간 석기류 등은 청동기시대 뿐만 아니라 초기 철기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판단되어 한강 유역의 초기 국가단계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였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현존하는 문헌들에서는 부천의 역사를 대체로 고구려시대부터 기술하고 있다. 지금 부천을 포함하는 전통시대의 부평은 삼국사기를 비롯한 각종 사서에 고구려의 주부토(主夫吐)로 기록되어 있다. 주부토는 문헌에 나타나는 부천 지역에 대한 최초의 지명이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삼한시대 마한 54 소국의 하나인 우휴모탁국(優休牟琢國)을 부천 일대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주부토는 고구려의 지명으로 이 지역이 고구려의 영역에 포함되었던 시기는 475년(장수왕 63)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여 수도인 한성을 함락시키고 한강 일대를 차지한 때로 보인다. 그 이전에 이 지역은 백제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인근 지역인 인천의 옛이름이 백제의 미추홀이었던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장수왕으로 이어지는 전성기를 누리다가 6세기에 들어 왕위 계승 분쟁이 일어나는 등 정치적 불안이 거듭되었다. 이때를 틈타 백제와 신라는 551년(진흥왕 12) 한강 유역을 공격하여 부천 일대의 한강 하류 지역은 백제가, 한강 상류 지역은 신라가 분할 점령하였다. 553년 신라는 한강 하류 지역을 급습하여 백제군을 몰아냄으로써 한강 유역 전체를 독점하였다. 부천은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된 후에도 여전히 주부토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 부천은 당시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었음에도 757년 장제군(長堤郡)으로 개명되기까지 이 지역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팽창된 영토와 늘어난 인구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687년(신문왕 7) 전국을 9개 주로 나누고 지방 거점 5곳에 소경을 설치하여 9주5소경제가 완성되었다. 또 757년(경덕왕 16)에는 한화정책(漢化政策)을 시행하면서 그 직업의 일환으로 전통적인 지명들을 그 음이나 뜻에 의거하여 모두 한자식으로 변경하고, 주군ㆍ현간의 영속 관계를 정비하여 지방제도를 더욱 조직화하려고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부토군도 장제군이라는 한자식 지명으로 변화되었다.

삼국통일 후 한동안 전성기를 구가하던 신라는 경덕왕대를 고비로 점차 붕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9세기 말 견훤과 궁예가 각각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세움으로써 마침내 후삼국으로 분열되었다. 궁예는 강원도 지역을 기반으로 점차 한강 이남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898년(효공왕 2)에는 공암(孔岩)[지금의 김포군 양천] 검포(黔浦)[지금의 김포]ㆍ혈구[지금의 강화]등 패서도와 한산주 관내 30여 성을 차지하였다. 검포와 공암은 장제군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장제군도 궁예의 세력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고려 시대

918년 왕건은 궁예를 타도하고 고려를 건설한 후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940년(태조 23)에는 전국 주·부·군·현의 지명을 고쳤다. 이때 부천의 지명도 장제군에서 수주(樹州)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부천의 읍격이 상승된 것을 의미한다.

995년(성종 14) 고려는 지방제도를 정비하여 전국에 지방관을 파견하면서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이때 수주에도 단련사(團練使)라는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1150년(의종 4)에는 지명이 수주에서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변화되면서 읍격도 상승하였다. 고려 전기의 도호부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거점에 설치되었다. 당시 부천에 안남도호부를 설치한 것은 12세기에 백성의 유망이 많아지고,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등 정치적 변란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도 개경의 방위를 강화하기 위한목적이었다.

이후 고려시대 부천의 지명은 계속 변화했으며, 읍격 또한 승강을 반복하였다. 1215년(고종 2)에 안남도호부에서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길주목으로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다시 부평부로 강등되었다.

조선시대

392년 이성계에 의해 건국된 조선은 지방의 통치를 체계적으로 정비하기 위해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밑에 부·목·도호부·군·현 등을 두어 각기지방관을 파견하였다. 이때 부평은 전국 44개 도호부 중 하나로 종3품인 도호부사가 파견되었다. 당시 부평은 강화와 김포를 거쳐 한성 및 해주와 연결되는 한강 수로에 위치였기 때문에 행정구역상 수원진관에 소속되어 인천을 속읍으로 둔 군사적 요충지였다.

1592년(선조 25)부터 7년간 계속된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전체 지역에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의 제1군은 평안도 방면으로 북상하는 과정에서 5월 19일 부천의 원미산 장대봉에서 항거하는 선거이(宣居怡) 장군을 물리치고, 그날로 부평읍에 침입하여 계양산성을 근거지로 삼았다. 당시 부평부사 남유(南瑜)는 겁에 질려 싸우지도 않고 도망쳐 피신하였다. 계양산성을 근거지로 한 왜군은 인천을 함락시킨 후 김포와 통진을 거쳐 개성으로 진격하였다.

조선시대 부평은 조운 수로의 길목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삼남 지방에서 올라오는 조운선들은 인천과 부평 연안을 지나 강화도 염하 수로를 거쳐 한강의 마포나루에서 하역하였다. 그러나 강화도 염하 수로는 물살이 거세어 이곳에서 조운선들이 좌초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인천 연안에서 한강으로 직접 연결되는 물길을 내서 조운선을 운행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는 자연 하천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으로 수로를 내어 물길을 바꾸려는 것이었다.

이 시도는 조선 중종 때 김안로에 의해서 추진되었는데, 인천 연안에서 인천과 부평의 경계인 원통이고개와 부천을 지나 한강으로 연결시키려는 것이었다. 당시 공사는 한강에서 시작하여 원통이고개까지 수로를 굴착하고 중단되었다.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이 고개를 굴착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1876년 조선은 일본과 조일수호조규(일명 강화도 조약)를 체결하면서 마침내 개항을 결정하였다. 1883년 인천이 개항됨에 따라 부천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종래의 8도를 폐지하고 13부제를 시행하면서 부평은 인천관찰부에 속한 부평군이 되었다.그러나 1896년 13도제로 전환함에 따라 경기도에 속한 부평군이되었다. 당시 부평군은 15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가운데 현재의 부천에 해당하는 곳은 상오정면·하오정면·석천면·주화곶면·옥산면의 일부 지역이었다

개항 이후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많은 외국인들과 교역품들이 서울로 향하면서 그 길목에 해당하는 부천에도 변화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하였다. 특히, 1899년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경인철도가 개통되어 부천에 소사역[지금의 부천역]이 설치되면서 현재의 부천이 형성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소사역은 광활한 김포평야에서 산출되는 농산물을 모아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치되었다. 개통 당시의 소사역사는 목조 건물이었으며, 매우 협소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사역이 설치됨에 따라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이주해서 여객을 상대로 한 접객업소와 음식점 등이 생겨났으며, 성주산 서쪽 기슭으로는 가로촌(街路村) 형태의 취락이 발달하였다. 그 후 1908년경 이곳에 일본인들에 의한 복숭아 과수원이 생겨나면서 경작을 위한 노동력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인근 주민들이 급격히 이주하여 취락의 발달이 촉진되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을 병합한 일제는 1914년 조계를 폐지함과 동시에 부제를 실시하면서 일본 조계 지역과 다소 면 일부를 합해 인천부로 삼고, 나머지 지역과 부평군을 합해 부천군으로 개편하였다. 이때 부천이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신설된 부천군은 인천부의 일부와 부평군을 중심으로 강화군의 일부 섬, 남양군의 대부면과 영흥면의 섬들을 포함하여 15면 160리에 달했다. 당시 부천군청은 인천도호부가 위치한 문학면 관교리에 있었다. 소사역 일대는 계남면에 해당하였는데, 계남면은 1931년 소사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41년 소사읍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부천군 15개 면 가운데 계남면·오정면·소래면이 현재의 부천시 영역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1919년 일제의 식민지 지배체제에 항거한 3·1운동이 발발함에 따라 부천에서도 격렬한 항일시위가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24일 계남면사무소가 군중들의 습격을 받아 조자칭과 판벽 등이 파괴되었다. 이후에도 부천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현대

광복 이후 혼란스러웠던 정국에 이어 1950년 6·25가 발발하자 부천의 민심도 불안한 양상을 보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신앙촌의 건설이다. 신앙촌의 건립 주체는 ‘전도관(傳道館)’이라는 기독교계 신종교 교주 박태선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장로였던 박태선은 1957년 부천군 소사읍 범박리를 중심으로 신앙촌을 건설하였다. 총 43만평의 황무지를 개척하여 300여 동의 주택과 50여 동의 공장 및 각종 공공시설을 건설하고 1만 명 이상의 신도들을 입주시켰다. 한때 활발한 활동을 보였던 신앙촌은 점차 쇠락하여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찾을 길 없고, 전도관과 시온고등학교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1960년대 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실시되면서 공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이루어졌으며,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의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였다. 이에 따라 1973년 행정구역 개편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수도권의 합리적인 개발과 인구 집중 억제, 무질서한 시가지 팽창 방지를 위해 수도권의 관할구역 조정이 있었다. 이때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었다.

1990년대 수도권 일대에 대한 신도시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중동지구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부천은 도시화가 급격히 이루어졌다. 중동지구 택지개발사업은 정부의 200만 호 주택건설계획의 실현, 토지 자원의 효율적 이용 및 도시 구조 개편, 대규모 택지 개발 및 주택 공급을 통한 사회적 불만 요인의 제거 등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 사업은 부천시 춘의동·삼정동·심곡3동·상동·중동·송내동의 6개 동에 걸치는 약 165만평에 이르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이 사업으로 인해 부천으로 유입되는 인구는 당초 17만 명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1995년을 전후한 시기에 위 6개 동의 인구는 26만여 명으로 당시 부천시 전체 인구의 30% 이상을 점유하였다.

행정 구역

부천시 행정구역
원미구에 위치한 부천시청
  • 삼한시대 마한(馬韓)에 속하였다. [4]
  • 삼국시대 고구려 주부토군(主夫吐郡)으로 불렸다.
  • 통일신라시대 장제군(長堤郡)으로 개칭하여 그 관할에 4개 현(縣)을 두었다.
  • 고려 성종 때 수주(樹州)라 불렸다.
  • 고려 문종 때에 안남(安南) 또는 부평(富坪)이라 불렀다.
  • 1413년(조선 태종 13년) 도호부 (都護府)가 되었다.
  • 1914년 군부(郡府) 폐합령에 따라 넓은 지역이 인천부(仁川府)에 속하게 되고, 나머지 지역과 주변 일부 지역을 합쳐서 부천군으로 발족하였다.
  • 인천과 서울의 팽창으로 주읍(主邑)인 부평이 인천에, 9개 리가 서울에 편입되어 소사(素砂) 1읍과 9면을 관할에 두었다.
  • 1973년 7월 1일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9면이 옹진군·시흥군·김포군에 이관되고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었다.
  • 1975년 김포군의 오정면이 부천시에 편입되었다.
  •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증가로 중구를 원미구(遠美區)와 오정구(梧丁區)로 나누고, 역곡동·중동·상동을 제외한 남구는 소사구(素砂區)로 명칭이 바뀌었다.
  • 1995년 인천광역시 부평구 서운동 일부가 오정구 삼정동에 편입되었고, 원미구 중1동이 중1동과 3동으로 나뉘어졌다.
  • 2012년 현재 원미구·소사구·오정구의 3개 구가 있다.
소사구 9개동 심곡본1동, 심곡본동, 소사본동, 소사본3동, 범박동, 괴안동, 역곡3동, 송내1동, 송내2동
원미구 20개동 심곡1동, 심곡2동, 심곡3동, 원미1동, 원미2동, 소사동, 역곡1동, 역곡2동, 춘의동, 도당동, 약대동, 중동, 중1동, 중2동, 중3동, 중4동, 상동, 상1동, 상2동, 상3동
오정구 7개동 성곡동, 원종1동, 원종2동, 고강본동, 고강1동, 오정동, 신흥동

인구

부천시의 인구는 2009년 현재 884,976명이며 인구 밀도는 16,572명/km2이다. 0~14세 인구는 16.7%, 65세 이상 인구는 7.1%이다. 생산연령층인 15~64세 인구는 72.2%로 전국평균 72.8%보다 낮고, 유소년인구부양비는 23.1%로 전국 평균인 22.8%보다 높고, 노년인구부양비는 9.8%로 전국 평균인 14.5%보다 낮다. 여자 인구 100명당 남자 인구를 나타내는 성비는 100.8로 남자가 다소 많다. [5]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될 당시 소사역을 중심으로 취락이 발달했고, 1908년 일본인들이 복숭아 재배를 시작하면서 노동인구가 이주한 이후 농촌적 경관을 유지해왔다. 1965~70년에는 서울로의 인구집중으로 인구성장률이 10.7%밖에 되지 않았으나 1973년 시 승격과 1975년 경인전철 개통으로 서울에서의 교외화 현상이 본격화됨으로써 1975~89년에는 연평균 34.9%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때 부천시의 지가는 12~18배 정도 상승했다. 이와 같은 인구성장률은 전국 1위로 경기도 내의 다른 위성도시보다도 월등한 것이었다. 그러나 1995~96년의 성장률은 2% 이하로 다소 안정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부천시는 서울에 비해 주택 가격이 싸서 서울로의 통근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공장이 많아 젊은 생산연령층 인구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006년 현재 인구는 90만 명에 육박해 인구면에서 한국 제11위, 경기도 제3위의 도시로 성장했다. 인구밀도로 보면 부천시는 인천, 서울 다음으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밀도 분포를 보면 행정동별로 심곡1동(3만 1,664명/㎢)·심곡2동(2만 8,641명/㎢)·심곡3동(3만 5,958명/㎢)·원미2동(3만 3,073명/㎢)·소사본3동(3만 7,301명/㎢) 등 주로 부천역 주변지역의 인구밀도가 높으며, 중4동(8만 3,676명/㎢)·상1동(3만 9,078명/㎢) 등도 인구밀도가 높다. 2006년 현재 주택보급률은 93% 정도이다. 인구이동을 보면 전출자수와 전입자수가 16만 7,701명으로 총인구 대비 19.4%이다. [6]

산업

부천시는 197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로 농업이 쇠퇴하고 공업도시로 변모하였다. 2006년 현재 경지면적은 9.37㎢로 총농경지는 시 면적의 17.5%를 차지하고 있으나 농가수가 850가구(농가율 0.3%)밖에 되지 않아 호당 경지면적이 0.96㏊에 달한다. 경지 중 논이 5.12㎢, 밭이 4.25㎢로, 논이 밭보다 20% 정도 많다. 북부의 논지역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유지되고 있으나 중동·상동의 논지역은 신시가지 개발로 인해 대폭 감소하였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원미동·춘의동·도당동·범박동에 있던 식음료가공업·벽돌제조업·정미업이 공업의 전부였으나 1960년대말 경인고속도로의 개통과 시 승격(1973) 이후 공장이 늘기 시작하여 1976년에 336개소, 1980년대 중반 이후 3,000여 개소에 육박하기도 했다. 2006년 현재는 3,400개 업체에 고용인구는 5만 7,724명에 달하고 있다. 이렇게 성장하게 된 요인은 시장과 수출항구가 가깝고 노동력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공업구조를 보면 조립금속·기계·전기·전자 공업의 업종이 전체업체수의 60%를 상회하고, 화학·섬유·의복 공업 또한 활발하다. 종업원수 1,000명 이상의 대기업체로는 경원세기(냉동기)·금강제화·대한항공·반도기계·비제바노사업부·유성기업·삼성반도체·신한일전기(펌프)·아남산업(반도체)·한국화장품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밖에도 부천시는 건설사업이 활발하여 각종 건설업체가 많다. 대부분의 공장은 부천시 내에 위치한 경인고속도로의 내리 인터체인지 남쪽 내동·삼정동·도당동에 집중하여 있으며, 일부 춘의동·소사동·송내동에도 다수 분포한다. 앞으로 중동 신시가지에 아파트형 공장을 분양하여 기존의 공업구조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7]

이처럼 경인공업지역의 핵심지역으로 성장한 도시 전통의 영햐으로 통계청 표준산업분류에 따르면 제조업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 부천 시내의 공업지역은 주로 원미구 도당동과 춘의동 지역 오정구 내동과 신흥동 지역에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그외 소사구 송내동과 소사동 지역에 일부 발달하고 있다. 제조업체는 8,743 곳이며 종사자 수는 66,226 명이며 비율로 보면 업체수의 비율 16.8%보다 종사자 수의 비율 27.0%이 더 높아 부천시의 제조업체는 비교적 중소규모임을 알 수 있다. 그 외 도매 및 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 및 교육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 세부적인 산업구조는 다음과 같다.[8]

산업별 업체수(곳) 업체비율(%) 종사자수(명) 종사자비율(%) 전국종사자비율(%)[9]
농업 임업 및 어업 0 - 0 - 6.8
광업 1 0.0 8 0.0 0.1
제조업 8,743 16.8 66,226 27.0 16.7
전기·가스·증기·수도사업 5 0.0 275 0.1 0.3
하수·폐기물 처리 원료재생 및 환경복원업 38 0.1 1,193 0.5 0.3
건설업 1,205 2.3 9,085 3.7 7.5
도매 및 소매업 11,502 22.0 36,332 14.8 14.9
운수업 5,283 10.1 10,798 4.4 5.4
숙박 및 음식점업 8,552 16.4 24,596 10.0 7.8
출판 영상 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 220 0.4 2,880 1.2 2.8
금융 및 보험업 498 1.0 8,751 3.6 3.4
부동산업 및 임대업 2,713 5.2 7,815 3.2 2.1
전문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 860 1.6 4,820 2.0 3.6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 서비스업 406 0.8 9,241 3.8 4.2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 79 0.2 7,914 3.2 4.3
교육 서비스업 2,523 4.8 21,554 8.8 7.8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 1,580 3.0 15,479 6.3 4.7
예술 스포츠 여가관련 서비스업 1,991 3.8 4,805 2.0 1.5
협회 및 단체 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업 5,973 11.4 13,759 5.6 5.9

교통

(서울특별시 구로구) ← 까치울역 - 부천종합운동장역 - 춘의역 - 신중동역 - 부천시청역 - 상동역 → (인천광역시 부평구)

문화

행사 및 축제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Puch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 PiFan)는 1997년을 시작으로 매년 경기도 부천시에서 개최되고 있다. 영화제는 판타지 장르뿐만 아니라 코미디, 로맨스, 액션 영화 등 장르를 다양화하고 있다. 주제는 사랑, 환상, 모험이다. 사단법인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주최한다. 영화제는 일본의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YIFFF)와 유럽 판타지 영화제 연합(EFFFF)과의 협력을 통해 아시아 최대 규모의 장르 영화제로 성장하였다. 2001년 5월, 아시아에서 최초로 유럽 판타지 영화제 연합에 준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장르 영화 전문 프로젝트 마켓인 아시아 판타스틱 영화제작네트워크(NAFF)를 2008년부터 시작하여 아시아 영화 제작의 활성화를 위한 제작, 교육, 교류 네트워크에 이바지하고 있다.[10]
  • 부천국제만화축제
부천국제만화축제는 1998년 12월 8일부터 23일까지 한국만화협회 주관으로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부대 행사로서 개최되었고, 제2회 부천국제만화축제부터 만화축제로서 독립해 개최되고 있다. 1998년 처음 개최된 이래 2001년까지는 한국 만화의 다양한 흐름과 해외 만화를 소개하는 전시와 이벤트 중심의 축제였다. 2002년부터는 한국 만화산업의 활성화와 국내외 만화 출판물의 비즈니스를 위한 국제페어시장을 신설하여 아시아·유럽의 만화출판사와 만화작가가 참가하기 시작하였고, 2005년 제8회 부천국제만화축제는 제7차 세계만화가대회와 함께 개최되어 세계 27개국 600여 명이 참여한 명실공이 국제적인 만화 축제로서 성장하게 되었다. 부천국제만화축제는 기획 전시, 만화 페어, 이벤트, 학술 행사로 구성된다. 기획 전시는 주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전과 해외국가별 특별전, 주제별 기획전시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대 작가 특별전으로는 허영만특별전·강풀특별전·유시진특별전이 있었고, 해외국가 특별전은 프랑스만화특별전·이탈리아만화특별전·유럽독립만화전·한중만화일러스트전이 있었다.[11]
  • 복사골 예술제
1970년대 전까지 부천 지역은 복숭아로 유명했던 전원 도시였으나, 1973년 부천시 승격과 함께 급격한 도시화의 물결로 전원도시의 모습은 사라져 갔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천지부는 애향의 구심점을 찾고 잊혀져 가는 고장의 정취를 되살리고자 복숭아 고향에서 펼치는 예술의 한마당이라는 뜻의 복사골예술제를 1985년 4월 29일 개최하였다. 복사골예술제는 공연 행사로 전문 예술인과 문화 예술 단체의 국악제, 연극제, 무용제 등과 전국 규모의 행사로 사진콘테스트, 시조경창대회, 궁도대회 등을 진행하며 시민 참여 행사로 길놀이, 주부솜씨전, 휘호대회, 가요경연, 관악대연주회, 백일장, 사생대회 등을 진행한다. 2010년 제26회 복사골예술제가 6월 18일부터 6월 20일까지 3일 동안 한국문화화예술단체총연합회 부천지부 주관으로 부천시청 잔디광장과 대강당, 중앙공원, 시민회관, 복사골문화센터 등 부천시 전역에서 개최되었다.[12]

부천시 소재 박물관

부천시는 문화의 도시로 성장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 부천로보파크
부천테크노파크 내 로봇산업연구단지 1, 2 층에 건립한 국내외 최초의 로봇상설전시장으로, 부천시가 특화사업으로 선택한 차세대 성장동력 미래산업인 지능형 로봇산업을 적극 홍보, 육성하고, 신세대들에게 로봇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며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체험학습 공간이다. 박물관 내의 교육프로그램으로는 경기과학멘토, 생활과학교실, 로파스 교육, 전시연계교육이 있다.[13]
  • 한국만화박물관
한국만화박물관은 상동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내 소재하고 있으며 한국만화 100년의 추억을 환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한국 만화의 역사와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 및 작가소개와 체험전시, 디지털 극장(4D/3D), 만화열람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프로그램으로는 상설체험교육과 방학특별편성교육이 제공되고 있다.[14]
  • 부천활박물관
부천활박물관은 춘의동 종합운동장 내에 소재하고 있으며 유구한 우리 역사속에 민족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각궁을 전시하고 있다. 각궁은 현재까지 부천시를 대표하는 전통문화로 5대 160년 넘게 우리 시와 함께하고 있다. 부천에서 국궁의 제조, 궁술, 궁도의 뜻을 널리 알려 ‘각궁과 부천’을 한데 융화시켰던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으로 지정된 故김장환 선생 및 故김박영 선생의 뜻을 기려 대대로 이어 내려온 각궁에 대한 자료, 제조, 유물들을 한곳에 모아 2004년 12월 박물관이 개관되었으며, 각궁 외에도 각종 활과 화살, 화차 등 국토를 지키고, 수양을 하던 각종 용품과 유물 등 다양한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다.[15]
  • 부천수석박물관
부천수석박물관은 춘의동 종합운동장 내에 소재하고 있으며 수석 및 수석 관련자료 2,200여 점이 전시되어있는 박물관이다. 우리나라 및 외국의 다양하고 진기한 수석 전시를 통해 자연의 미를 체험할 수 있는 교육과 문화의 공간이다. 교육프로그램으로는 수석강좌와 석부작 만들기 등의 체험프로그램이 있다.[16]
  • 유럽자기박물관
유럽자기박물관은 춘의동 종합운동장 내에 소재하고 있으며 복전영자 관장이 수십 년간 수집한 18세기부터 근대에 이르는 유럽자기 및 유리(크리스털) 작품과 앤틱 가구를 부천시에 기증하여 시민들에게 유럽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국제적인 감각과 안목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고자 2003년 5월에 개관한 전문테마박물관이다. 유럽에서 최초로 중국식 백색자기를 개발한 독일의 마이센, 금채 장식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프랑스의 세브르, 본차이나를 개발해 자기역사에 획을 긋는 영국의 자기를 비롯하여 덴마크의 로열 코펜하겐, 헝가리의 헤렌드, 체코슬로바키아, 한국, 중국, 일본의 명품 자기들을 접할 수 있다.[17]
  • 부천물박물관
부천물박물관은 작동 정수장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물의 탄생과 소멸, 물 이용의 역사, 물의 소중함 등을 다양한 영상과 전시물을 통해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수돗물에 대한 생산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외에도 측우기와 물시계와 작두펌프와 물레방아 등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18]
  • 부천교육박물관
부천교육박물관은 2003년 개관되었고 춘의동 종합운동장 내에 소재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서삼경 등 전적류와 일제강점기의 교육자료, 미군정청과 6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교과서, 참고서, 상장, 학용품 등 학습 자료 4700여점과 고서가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교육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문화교실, 특별기획전시, 학술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되고 있다.[19]
  • 자연생태박물관
자연생태박물관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생물도감 속에서만 보았던 살아있는 한국의 민물고기 및 공룡화석 등을 만날 수 있는 자연체험 학습장으로 영상관에서는 3D입체영상물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야외에는 어린이동물원이 있으며, 박물관 앞 정원에서는 4월에 튤립전시회, 8월에 여름꽃전시회, 10월에 국화전시회 등이 열린다. 춘의동 381번지에 소재하고 있다.[20]
  • 부천식물원
부천식물원은 자연생태박물관 내에 소재하고 있으며 부천시의 상징인 복사꽃 모양을 형상화하여 유리온실로 건축하였으며, 온갖 희귀한 식물들을 볼 수 있는 식물의 낙원이다. 재미있는 식물관, 수생식물관, 아열대식물관, 다육식물관, 자생식물관 등 5개의 테마 식물관과 중앙정원에 총 310종 9,975본이 심어져 있다. 식물관 외에도 식물과 인간, 식물의 씨앗, 백두산과 한라산의 식물들 등을 소개한 식물전시관과, 식물퀴즈, 퍼즐놀이, 피톤치드를 체험할 수 있는 식물체험관, 도감을 열람할 수 있는 그린도서실이 있다.[21]
  • 펄벅기념관
펄벅기념관은 1967년부터 10년간 심곡본동에서 운영되었던 소사희망원을 복원하여 건립되었으며, 세계적인 대문호이자 사회사업가인 펄벅여사의 박애 및 희생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유물 232점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펄벅재단이 부천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노벨메달리스트, 펄벅이야기, 월드무비Q 등의 가족교육프로그램과, 펄벅 아줌마의 선물, 세계의 미술여행 등의 어린이 교육프로그램, 아시아배움터, 아시아문화탐험대, 다문화비교체험 등의 다문화교육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22]
  • 부천옹기박물관
옹기박물관은 2011년 11월에 개관하였고 여월택지지구 내 근린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상설전시실과 기증자특별전시실, 뮤지엄샵, 체험실, 움집 및 가마터 등이 꾸며졌으며, 배움과 전통문화 체험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23]

관련 드라마

관련 영화

관광

스포츠

자매 도시

위상

2011년 10월 10일 국토해양부가 주최 및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주관으로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진행될 《2011 도시대상》에서 부천시가 전국 232개 시·군·구 중 가장 우수한 도시환경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아 국비 500억원을 지원받게 되었다.[24]

주석

  1. 부천 향토백과, 디지털부천문화대전
  2. 부천시 통계연보 통계청
  3. 부천의 역사, 부천시 부천역사관
  4. 행정연혁, 부천시 부천역사관
  5. 부천시 통계연보, 2010년 기본통계 PDF자료
  6. 부천시의 인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7. 부천의 산업과 교통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8. 부천시 기본통계 2011년 통계연보 PDF자료
  9.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경제활동인구조사 산업별 취업자 현황, 2010년 4월 기준
  10. 영화제 소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11. 부천향토백과 부천의 지역축제 디지털부천문화대전
  12. 부천향토백과 부천의 지역축제 디지털부천문화대전
  13. 부천로보파크 부천로보파크 홈페이지
  14. 부천만화박물관 부천만화박물관 홈페이지
  15. 부천시 박물관 부천시 박물관 홈페이지
  16. 부천시 박물관 부천시 박물관 홈페이지
  17. 부천시 박물관 부천시 박물관 홈페이지
  18. 부천시 박물관 부천시물박물관 리플렛
  19. 부천시 박물관 부천시 박물관 홈페이지
  20. 부천 자연생태 박물관 부천 자연생태박물관 홈페이지
  21. 부천 식물원 부천 식물원 홈페이지
  22. 펄벅기념관 펄벅기념관 홈페이지
  23. 복사골부천 2011년 10월 복사골부천 205호 4쪽
  24. 전국최고 도시에 '부천시' 선정…국비 500억 지원받아《뉴시스》2011년 10월 9일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