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마사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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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boty (토론 | 기여)님의 2013년 12월 27일 (금) 15:57 판 (일본어 분류 정보를 이용.+분류:오와리 국 사람)
후쿠시마 마사노리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 1561년~1624년)는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휘하 장수로 있으면서 용맹을 떨쳤다.

생애

오와리 출신으로 아명은 이치미쓰로 1578년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휘하 장수로 들어가 용맹을 떨쳤다. 1592년임진왜란에서 일본군 제5진으로 참전하여 그 공을 오와리국의 영주가 되었다. 가토 기요마사와 더불어 무단파의 대표적 인물이며, 문치파인 이시다 미쓰나리와는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다. 그리하여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1599년 윤 3월 중립을 지키던 마에다 도시이에가 죽자 가토 기요마사, 호소카와 다다오키와 함께 이시다의 집을 습격하였다.

그는 이시다 미쓰나리가 나이 어린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대신하여 정권을 독차지할 것이라고 오판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가담하는 결정적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으며, 결과적으로 도요토미를 쇠망의 길로 몰아가는 어리석은 충신이라고 할 수 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워 히로시마의 영주로 임명되었고, 상공업을 육성하여 히로시마를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였으나, 1619년 금령을 어겨 시나노가와나카 섬의 소영주로 쫓겨나 병사했다.